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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면서 불거진 검찰 개혁 논란이 1년을 훌쩍 넘겼다. 제도 개혁은 별로 쟁점이 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문무일·윤석열 전·현직 검찰총장들이 모두 제도 변경에 별로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고위 인사들에 대한 여권의 수사 방해와 ‘윤석열 찍어내기’가 더 두드러졌다.

이것이 실패하면서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위기가 사실상 시작된 듯하다.

민주당이 던진 검찰 개혁 의제는 대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수사권 축소 또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 ②민주적 통제: 선출된 권력의 통제, ③공수처 신설: 부패 수사, 검찰 견제 등.

그리고 민주당의 대전제는 ‘검찰은 구악이자 적폐 세력으로서, 촛불 개혁 정부를 좌초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한 면은 진실이고, 한 면은 진실이 아니다. 검찰의 부패와 억압적 성격은 분명하다.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크게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위기는 검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위기는 감히 “촛불 정부” 운운하며 “진보”를 참칭하고는 개혁 염원을 배신한 결과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이 문재인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은 결국 대중이 정부 여당의 위선에 더는 속기 싫다고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오마이뉴스〉가 의뢰해 조사한 2019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여론조사를 보자.(2018년에도 했는데, 올해는 발표하지 않았다.)

검찰은 경찰(신뢰도 2.2퍼센트), 국회(2.4퍼센트) 다음으로 가장 믿지 못할 기관(3.5퍼센트)으로 선정됐다. 2018년에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는 국회(1.8퍼센트)-검찰(2.0퍼센트)-경찰(2.7퍼센트) 순이었다.

그동안 스폰서 검사, 떡값 검사 등 검찰에 대한 온갖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약촌 오거리 사건 등 억울한 사람들의 한이 풀린 유명한 재심 사건들에는 검찰의 조작이나 명백한 증거 무시, 계급 차별적 행태나 편견이 반영된 수사와 기소 등이 매번 등장한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연루된 홍강철 씨 간첩 혐의 사건도 무죄 판결이 났다. 이와 똑같은 조작 사건이 유우성 씨 사건이었는데, 당시 유우성 씨 수사 검사는 국정원 요원에게 증거 조작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같은 검사들이 봐주기를 한 것이다.

검찰은 2008년 온라인 논객 ‘미네르바’ 구속 사건이나 2013년 진보당 해산 사건 등 공안 탄압에도 적극 앞장섰다. 반면 부패한 기득권이나 반노동자적 기업주들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는 데에는 결코 그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이런 행태는 검찰 조직의 본질적 성격이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기관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검찰의 민주적 개혁은 공상이라는 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적 논제였다.)


체제 수호 기관, 검찰

검찰이 가진 수사권과 기소권은 기본으로 국가가 독점한 형벌권의 일부이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피억압 계급 지배를 위한 무장한 정치조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질서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처음 세워졌고, 그 목적에 맞게 조직됐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개별 자본들이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을 대리해서 사회 전체에 강요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자본가들의 투자와 거래, 계약이 물리적·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 체제 질서에 순응할 준비가 된 노동자를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상품 유통과 노동력의 이동을 위해 도로, 철도 등 교통망을 깔고, 산업 시설과 노동자 집중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상하수도, 전기 등의 제반 시설을 마련한다. 또한 영토 내의 자본주의 질서를 국경 안팎의 위협에서 보호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새롭게 등장하거나, 기존 국가가 새 질서에 맞게 재편되며 등장했다. 자본주의 국가의 영토 주권은 특정한 지역 안에서 물리적 힘을 독점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그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질서를 사회 전체에 강요하는 것을 뜻한다.

계급 편향성

자본주의 국가의 사법 제도는 국가가 체제 유지를 위해 하는 일련의 과정을 법제화해서 운영하는 것이다. 의회가 체제 수호를 위한 법을 만들면, 그것을 행정부가 집행한다. 경찰이 수행하는 치안 기능은 이런 질서 유지 기능을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질서를 어기는 일이 벌어지면, 수사(와 구금)-기소-재판-형벌집행의 과정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기능하는 기관들이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 등이다. 

이 과정은 강제를 통해 질서를 준수하도록 대중을 훈육하는 것이다. 동시에 체제 유지 질서를 정당화하고 따르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가령 사적으로 누군가를 감금하거나 때리거나 죽이면 위법으로 처벌 대상이지만, 국가가 사법 절차를 통해 누군가를 가두고 교수대에서 죽이는 것은 합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강제와 동의의 효과를 모두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기능하는 기관들은 기업인들의 경제 권력을 비롯해 지배계급의 권력을 보호하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기구들이다.

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검찰과 법원에서 법(법안부터 그에 따른 행정조처, 수사와 재판, 판결 등)이 계급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는 걸 잘 안다. 기관의 행태와 관행, 기관을 운영하는 자들의 언행 속에서 이런 계급 차별이 만연한 현실은 법원과 검찰 같은 핵심 권력기관들의 진정한 성격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일련의 연결된 과정의 일부로 존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어느 기관에 있느냐는 피억압 계급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후자를 위한 정의와 공정이 구현되는 개혁이 전혀 아닌 것이다.

조형물에 비친 검찰청 모습 검찰의 부패와 억압적 성격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집권 세력의 부패 은폐용 거짓 구호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임수현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문제를 둘러싸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억압적 기관으로서 검찰이 갖는 (확고부동한) 계급 편향성 문제다.

가령 2008년부터 10년간 산업재해 사망자가 연평균 2000명이 넘는데도 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서 사용자에 대한 정식기소율은 일반 사건의 절반에 못 미친다. 구속기소는 9명에 불과했다(대부분 약식기소 벌금형). 부당노동행위 등 사용자의 위법행위에 대한 기소율도 검찰 평균 기소율의 절반밖에 안 된다. 판·검사의 범죄에 대한 기소율은 그보다 더해 일반인 기소율의 수십 분의 일이다.

그런데 일단 기소를 하면, 거의 유죄다. 2018년 1심 무죄율은 0.79퍼센트다. 그러나 같은 시기 검찰은 접수된 사건에서 42.3퍼센트만 기소했다. 달리 말하면, 유죄 나올 것만 기소했다는 뜻이다.

결국 노동계급 사람들에게는 검찰이 누구는 기소하고 누구는 기소하지 않는지, 검찰의 그런 판단이 왜 법원의 판단과 거의 일치하는지가 중요하다. 수사권·기소권의 소재가 아니라 사법 절차를 진행하는 기관들의 계급 편향성이 진짜 문제다.

인적 연계

국가 기구들을 운영하는 상부 구성원들로는 소수만이 매우 엄격하게 선발된다. 그들은 선발과 동시에 엘리트 취급을 받으며 지배계급으로 이어지는 인적 연결망으로 통합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연결망 내부에서도 족벌, 학벌, 지역 출신 등을 따지며 서열화·분화가 일어나고 경쟁이 생긴다.

이런 관행 속에서 각 권력기관들이 사회 전반을 관장하면서도, 정작 그 핵심 구성원들은 폐쇄적인 이너서클을 이루고 상명하복으로 권력을 공유한다. 검찰, 법원 등의 막강한 권력이 바로 이들 “신성가족”을 묶어 주는 울타리이자 힘이다.

이 네트워크 안에는 선출된 정부와의 관계도 포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과 경찰은 체제 수호 기관임과 동시에 수십 년 동안 정권의 앞잡이, 몽둥이 구실을 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라인들을 서로 형성하려고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쟁투를 벌여 온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기관들의 최고위 대표들은 선출되지 않는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 과정은 지배자들 사이에서 합의가 될 만한 인사들이 임명되도록 돕는 작용을 한다. 물론 분열이 심각하면 일부 인사를 놓고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다른 자들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 나라 정치에선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자본주의 국가의 내분과 갈등

자본은 착취와 억압 문제에서 단결하지만,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자주 분열해 현실에서 자본주의 국가에도 이런 분열이 반영된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질서를 지킬 뿐 아니라 자국 영토에 기초한 자본의 경쟁력을 돕는다. 국가의 힘이 되는 조세 수입(재정)이 경제 번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개별 자본들과 국가들은 자국 영토 내 노동자 착취 문제에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겨난 잉여가치 몫을 두고, 또는 더 효과적인 착취·억압 방식을 둘러싸고 자본 간(때로는 자본들의 경쟁과 얽힌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게 진행된다. 자본주의는 자본들 간 경쟁에 기초해 돌아간다. 자본들의 경쟁적 축적은 경제 위기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본 간 경쟁과 위기, 분열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다.

체제가 안정적일 때는 이것이 흔히 “협치”라고 불리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내 정당 간 경쟁으로 수렴되지만, 위기 시기에는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부르기도 한다.

이런 경쟁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체제 위기와 분열을 야기해 노동계급이 저항에 나서고 성공할 조건을 만들기도 한다.(이것이 한줌의 단합된 과두 지배층이 다수를 단지 속이고 세뇌하며 음모적으로 지배한다고 보는 포퓰리즘적 서사와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분석의 차이다.)

한국 지배자들은 1987년 이후, 군사독재 일당국가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형태의 국가로 전환하도록 강제한 노동계급의 조직과 힘에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세계 시장에의 통합도가 높아질수록 경쟁력을 높여 경제를 더 효율화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유화적으로만 다루기는 쉽지 않다. 노동운동에 몽둥이도 휘두르고 싶지만, 눈치도 봐야 한다. 몽둥이가 먼저냐, 포섭이 먼저냐를 두고 지배자들끼리 자주 갈등을 벌인다.

자본 축적 방식을 둘러싼 이런 주된 모순들 속에서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불안정하게 발전해 왔다. 국가기관들 사이에 그리고 그 내부에 긴장이 일상화돼 있다. 여야 갈등은 거의 언제나 첨예한 배경이다.

그래서 한국 지배자들은 매우 소심하면서 또한 표독하다. 가령 지배계급의 품위까지 훼손시킨 박근혜를 미련없이 버리고 정치 안정을 위한 구원투수로 문재인을 선택했지만, 막상 문재인의 포퓰리즘 전략이 자칫 노동계급의 행동을 고무할까 봐 걱정하며 비난한다.

특히 지금은 경제·코로나 위기 속에서 정치 안정을 위한 방식을 두고 의견이 날카롭게 갈리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자신들이 진보진영 지도자들이 저항에 나서지 않도록 붙잡고 있으므로 현 정부를 위태롭게 하는 것에 반대한다. 반면 검찰 수뇌부와 많은 검사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부패 수사를 벌여야 대중을 달래고 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고 봤다. 둘의 갈등은 지금 전반적인 정치 안정을 해치고 있다. 경제 침체와 코로나 등 생태 위기와 기후 위기, 국제질서의 불안정이 상호작용하면서 불안정과 분열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치적 정당성과 안정성 문제로 불거진 갈등은 개혁 배신으로 인한 정권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의 민주적 통제가 허상인 까닭

앞에서 사법 절차가 강제와 동의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절차적 개혁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잠정적이다.

사법 절차가 전 과정에서, 그리고 늘 예외 없이 권력자와 사용자 편향적이면 노동계급은 이런 기관들(나아가서는 국가 자체)을 불신할 테고, 그런 정당성 위기는 안정적인 계급 지배를 위협할 것이다.

그래서 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체제의 정상적 작동이 어렵다고 여겨질 때 쓸 만한 내용이 일부 포함된 절차적 개선이 이뤄진다. 따라서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민주당에 의한 검찰 개혁이라는 공상을 지지하기보다 문재인 정부와 결별하고 체제를 흔들고 도전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만들어 내려고 애써야 한다.

1987~1989년 노동자 투쟁과 사회 운동의 고양기와 그 직후 시기에 그나마 보통의 사람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좌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법 절차 개선이 일어난 것은 결정적인 교훈이 돼야 한다. 가령 경찰에서 진술한 것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다른 증거 없는 자백은 무효, 위법적 증거 수집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미란다 원칙의 고지 같은 변화 말이다.

최근 사례로 보면, 박근혜를 퇴진시킨 운동 속에서, 또는 그 여파가 지속된 기간에 박근혜의 탄핵이 보수적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인용되고, 박근혜와 이명박이 구속된 일, 사법 농단으로 정당성 위기를 겪은 후에 나온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등도 그런 사례다.

그러나 투쟁이 혁명적으로 고양되지 않는다면 이런 변화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일시적, 잠정적 변화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일상적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밀실에서 검사나 형사들 앞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인맥이나 돈도 없는 이들이 즉각적으로 변호인 조력을 받거나 심문 과정에서 변호사를 대동할 권리를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쟁점이 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비대한 경찰 권력의 견제라는 명분으로 1953년 한국의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법보다 주먹이 먼저인 독재 정권들 아래서는 그런 견제조차 무용지물이었다. 실질적으로 경찰에 대한 견제가 관행화된 것은 일당국가가 대중 항쟁에 밀려서 좀 더 민주주의를 늘리는 방향으로 후퇴해야 했던 1987년 이후이다. 검찰공화국 담론의 시작점을 노태우 정부 때로 잡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경찰 견제가 기껏해야 검찰의 경찰 지휘로 한정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법 개혁?

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국내 수사권도 국가 형태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전환 속에서 잠시 폐지됐지만, 다시 부활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최근 개정안에서도 국정원의 수사권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경찰에게 이전된 것일 뿐이다.(보안에 능란한 국정원 요원들이 경찰 수사관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된다.) 그나마도 3년을 유예했으므로, 확정적인 것도 아니다.

이런 일들이 그다지 진보적 변화가 아니었음을 지금은 누구나 안다. 따라서 이 기관들 안에서 견제와 균형을 제도화하기, 공수처 같은 검찰2를 만들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기 같은 제도 변경들이 부패 근절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공수처는 기껏해야 옛 대검 중수부나 옛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독립기관화한 것일 뿐이다. 그런 부서들이 집권당의 대규모 정치자금 일부를 고리로 고위 정치인들과 유력 재벌들 몇몇을 구속한 적도 있지만, 부패는 없어지지 않았다. 검찰 자신이 부패 고리의 한 사슬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공수처 설립의 맥락도 검찰의 정권 수사를 막으려고 긴급하게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신뢰와 정당성은 이미 훼손됐다. 파죽지세 같은 윤석열 팀도 국정원을 뒤져야 하는 세월호 수사, 기무사 계엄 검토 수사 등을 흐지부지했고, 조국의 민간인 사찰 의혹 건은 불기소 처리한 바 있다.

기업과 안보 이익이 걸린 세월호 참사 수사는 정권이 바뀌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12월 28일 청와대 앞 세월호 유가족들ⓒ이미진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기관들끼리의 견제는 늘 이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슷한 기관들끼리의 견제와 균형, 중립성 모두 신화에 불과하다. 그 중립성은 기껏해야 경쟁하는 기업들, 지배계급 분파들, 주류 정당들 사이에서 중립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검찰·경찰은 물론이고 법원(사법부)도 노동계급에 이롭게 바꾸는 것(진보적 사회 개혁)이 불가능한 기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 안에서의 민주적 통제도 허상이다. 선출된 행정부나 의회도 본질적으로 체제 수호를 위해서 작동하므로 또 다른 국가기구인 검찰, 경찰, 법원을 통제한다는 것은 (용어만 좌파에서 훔쳐 온 것이지) 진정한 민주주의적 통제와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그런 주장을 하는 민주당이 마찬가지로 선출된 정부였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검찰 통제를 지지했던 것도 아니다.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던 노무현의 후예들이 민주적 통제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노무현의 이 말은 개혁 배신을 정당화하는 핑계였다.)

결국 민주당이 말하는 민주적 통제는 민주당의 통제이고, 민주당의 부패 의혹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듯이, 민주당의 통제는 민주 개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민주당은 민주화 수혜자일 뿐 민주화 주체 아님

민주당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행위자가 아니라 수혜자였다. 1997년 1월 민주노총 파업이 준 타격과 김영삼과 이회창이 이끈 집권당의 부패 스캔들과 그해 11월 IMF를 부른 경제 공황의 충격 속에서 광범한 대중의 지지로 김대중이 집권을 했고, 그 이후로 민주당은 지배계급이 선택하기도 하는 정당으로 확실하게 그리고 착실하게 변모해 왔다.

어디에서나 그랬듯이, 한국 국가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전환된 동력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조직 덕분이다. 1990년대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며 노동조합 설립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합법적 노동계 진보정당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좌파들이 합법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조직 덕분이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민주당이 처음 집권해, 국민의힘의 전신들이 지배하던 검찰, 경찰, 국정원 등과 긴장을 형성했던 것은 아직 지배계급의 제1선택지가 못 됐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이 구 집권당과 동등한 집권 경쟁 세력이 되려는 과정에서, 그 사이 강력해진 노동계급에게 양보가 불가피했다. 민주당은 양보의 대가로 노동계급이 경제 위기의 고통을 받아들이도록 노동계와 사회운동 지도자들을 포섭해 양보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중도파로서 왼쪽의 압력을 이용해 오른쪽을 견제하며(오른쪽 압력을 이용해 왼쪽을 침묵시키려고도 한다) 자신들의 우위를 확립하는 시도를 했고 가끔은 성공했다.

결국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지배자들이 더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막지 못할 때 노동자 조직들을 마지못해 허용하며, 대신 그 대중적 지도자들을 자본주의 국가의 일부로 통합해 전투성과 급진성을 억제하고 체제에 순치시키려는 체제이다.

김대중 정부가 김영삼 정부보다 더 많은 노동자를 구속하고, 집권 첫해에 이전 두 정부의 집권 첫해보다 더 많은 국가보안법 구속자를 양산한 것이나, 노무현 정부가 노동법 개악·이라크 파병·신자유주의 정책을 가열차게 펼치며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려 하고 국가보안법 탄압을 지속한 것은 민주당이 (민주화 과정의 수혜자일 뿐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의 싹들을 억제하는 데에 진정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박근혜 퇴진 운동 덕분에 집권해서는 개혁을 배신하고 부패를 은폐하며 그것을 검찰 개혁으로 포장하는 문재인 정부도 앞선 민주당 정부들과 다르지 않다. 엔지오 지도부 등에 포퓰리즘적 기반을 두고 이를 생색내듯 활용하지만,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의 정당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제·안보 위기가 심해지면서 민주당은 이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 안에 있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싹을 온갖 연막과 둘러대기, 달래기로 억제하는 것에 더 노골적이 됐다.

그러므로 민주당을 도와서 민주주의를 더 진전시킨다는 것은 공상이다. 민주당 발 검찰 개혁론이 (필연적으로) 희화화된 이유다. 진보진영 일각의 착각와 오해는 이제 교정돼야 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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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구속 이후

사법 적폐 청산에 필요한 일들

 

265호 | 2018-10-31 

| 주제: 공식정치, 국가기관

 

이춘식 할아버지는 13년 만에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을 받아 내고 소감을 말했다. “혼자만 남아 슬프고 서럽다.”

양승태 대법원이 대미·대일 관계를 고려해 판결을 일부러 질질 끄는 동안 피해자 동료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양승태 체제 아래서 벌어진 사법 농단의 본질이 (삼권분립 훼손 같은 권력 구조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관들이 사법권을 이용해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임을 이보다 더 잘 보여 주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이 사실상 고의적 행위이자 범죄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문재인이 임명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로 구성이 일부 바뀐 새 대법원 아래에서도 구 여권과 연계된 사법 농단 수사가 그동안 심각하게 방해받았다. 법원의 위상과 권력을 (외풍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동류 의식(계급 의식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에서였을 것이다. 법원은 대놓고 재판 개입 증거를 인멸한 유해용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또한 주거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양승태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했다.

그러다가 결국 강제징용 판결 사흘 전인 10월 27일에야 임종헌이 구속됐다. 임종헌은 법원 내 요직인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지낸 자로, 사법 농단의 실무 지휘자로 지목받아 왔다.

 

임종헌은 사돈의 회사인 세종호텔 노조 탄압 판결에도 도움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원본] [원본 정보]ⓒ조승진

 

그동안 ‘합법적’으로 자기 방어를 해 오던 법원도 임종헌 구속영장 기각까지 하는 건 무리라고 본 듯하다. 여론 악화 때문에 특별재판부라도 도입되면, 사법권을 독점해 온 법원 권력이 손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법까지 만들어 설치될 특별재판부가 양승태 일당을 무죄 판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임종헌 구속이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의심이 크다. 이른바 사법권 독립과 권력의 추악한 실체를 지난 몇 달 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비공개로 조사한 판사들이 80명 남짓이라는데, 이들 다수가 임종헌을 책임자로 지목했다고 한다. 이는 고위 판사들의 카르텔이 흔들리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이지만, 또한 임종헌 선에서 수사 확대를 막자는 공감대가 판사들 사이에 형성된 탓일 것이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양승태는 물론이고, 임종헌의 직속 상관인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지낸 박병대·차한성·고영한 등과 각각의 거래 재판에 임했던 판사들 모두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종헌은 구속 나흘째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검찰이 임종헌 구속 기한인 20일 안에 그 윗선인 양승태 등의 죄를 입증해 기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임종헌이 구속됐어도 법원에게는 무죄나 집행유예를 판결할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나 꼼수일지라도 법원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인사를 구속한 것은 대중의 적폐 청산 염원이 아직은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뜻일 게다.

애초에 노동자·서민의 거대한 운동으로 전임 우파 정권이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추악한 사법 적폐의 비밀들이 폭로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의 11월 투쟁이 사법 적폐 청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강력한 반우파 정서 때문에 우파에게 돌파구가 확 열리지는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10월 30일 스스로 공개한 보고서도 자신들이 정권을 잃은 요인으로 강경 대북·안보 노선을 지적했다. 즉, 너무 우파적이라서 지지를 잃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파들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부진을 이용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문재인의 우선회로 실망감이 커지면서 정치적 틈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운동 지도자들은 문재인에게 지지와 협력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그의 우선회에 맞선 투쟁으로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래야 세력균형을 더 왼쪽으로 이동시켜 적폐 청산에도 유리하다.

 


사법 농단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사법 농단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부당한 재판 거래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국가 권력의 피해자들이었다. 쌍용차 노동자처럼 정부와 사용자의 대량 해고에 저항한 노동자들이나, 유신 독재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 세월호 유가족, 전교조, 진보당 등.

사법 적폐 청산이 노동자·서민층의 정의이고 염원인 이유다.

이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출발점은 재판의 원상 회복일 것이다. 그러려면 재심이나 지연된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고, 억울한 구속자들이 석방돼야 한다. 또한 재판이 아닌 불이익과 사찰 관련 문제는 신속히 국가의 사과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사법 농단 세력을 철저히 수사해 법정에서 강력하게 단죄하는 것이다. 물론 철저한 사법부 개혁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 단죄로써 지배계급이 함부로 저항 세력을 탄압할 수 없게는 할 수 있다. 피해자 구제는 그 하나다.

 


특별재판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을 내놓았다. 그 안에 따르면, 대한변협과 이 재판을 맡을 법원(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의 판사들이 자기들 안에서 판사들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그중 3명을 골라 임명하자는 것이다.

법원 밖이 아니라 안에서 새로운 합의부를 신설하는 형식이므로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파의 위헌 시비의 핵심은 유죄 판결을 목적으로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마녀사냥식 여론 재판으로 보이게 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현행법 하에서도 재판부 기피나 제척이 가능하므로, 양승태 ‘장학생’들에게 재판을 맡기지 말자는 법이 꼭 위헌으로 해석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문제는 사법 농단 고위 판사들에게 유죄를 판결할 수 있느냐다. 대중 다수가 기존 법원을 못 믿겠으니 특별 재판부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게 단죄를 하고 싶어서다.

재판 거래 건으로 검찰에 비공개 출석한 판사만 최소 80명이라는데, 법원의 재판부 무작위 배당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법원 스스로 압수수색·구속 영장 기각으로 판결 의중을 미리 선보이지 않았던가.

 

노동자들이 법과 법원을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본] [원본 정보]ⓒ출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특별재판부 설치 제안은 사법 농단의 계급적 본질을 꿰뚫어 본 노동자·서민층의 불신을 반영한 것이다. 우파가 박주민 안이 특별재판부의 1심을 국민참여재판으로 하도록 한 것에 특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파는 만에 하나 특별재판부가 구성되더라도 확실하게 유죄와 실형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거나,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을 속셈으로 지금 위헌 시비를 거는 듯하다.

법원 권력의 일부인 현직 판사들 중에서 선발되는 특별재판부의 판사들은 계급적 압력 속에서 판결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재판부 구성 방식보다는 어느 사회세력의 압력이 더 큰지가 수사와 판결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법원 개혁?

지난 반년 간 고위 법관들은 대부분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 사법 농단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과 당시에 정권을 쥔 우파, 기업인들의 이해관계가 계급적으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일부 바뀐 현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도 사법 적폐 청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앞에서 설명).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에 정권의 의지 부족도 한 요인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여기에도 계급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 자신이 6월에 내린 친기업적 판결도 우파 대법원이 법 개악을 기다리며 7년간 판결을 미룬 적폐를 계승한 것이었다. 그 판결은 휴일 초과 근무에 초과수당을 할증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판결이 가능하도록 민주당은 2월에 법을 개악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김명수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 등 진보당 수감자들을 석방·사면하지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은 10월 30일,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며 변희재의 이정희 전 진보당 대표 종북 낙인 찍기를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법원은 삼성의 무노조 공작 수사를 방해하는 판결을 내려 왔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물론이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도 사법 적폐 청산 같은 사법부 개혁이 충분히 실행될 수 없다.

진정한 사회 혁명이라면 애초에 기존 국가를 대체할 새 국가의 일부로서 완전히 새로운 재판부를 민주적으로 구성해 구 체제의 부패 범죄·비리들을 처리할 것이다. 대중의 개혁 염원을 실현하려면 운동은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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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년반: 개혁 염원 배신과 진보·좌파 세력 견제

 

264호 | 2018-10-25 

| 주제: 공식정치, 주류정치

 

문재인 정부는 8~9월에 심각한 지지율 위기를 겪었다.

다급하게 앞당겨 추진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하락세는 멈췄지만, 역전된 건 아니다.

상반기의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끈 핵심 동력은 4월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반면, 나머지 쟁점들에서는 갈수록 큰 실망을 자아내는 일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특히, 노동과 사회·경제적 쟁점이 그렇다. 줬다 뺏은 최저임금 개악, 줄 듯하다가 뺏기만 한 노동시간 개악, 있는 일자리만 날아가게 한 제조업 구조조정, 비정규직 제로를 하겠다더니 정규직화 제로로 드러난 비정규직 대책 등은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다. 해당 사업장들에서 조직화와 투쟁이 등장하는 배경일 것이다.

부유층 눈치 보느라고 부동산 문제에 어정쩡하게 대처하고, 국민연금 개악의 운을 띄운 것도 서민들 화를 돋웠다. 박근혜가 하려던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제주 관함식과 주민 탄압도 감점 요인이다.

이런 상황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권을 안정시킬 카드가 문재인에게 별로 없음을 보여 준다. 판문점 선언 비준을 국회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강행해 버린 것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트럼프의 일방적 군축조약 폐기 선언으로 거듭 확인된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미·중 갈등 심화, 문재인이 유럽 순방 중에 각국 지도자들의 동조를 별로 못 얻은 일 등 사정이 썩 좋지 않다. 북·미 간 물밑 협상도 크게 진척이 없어 보인다. 백악관은 북·미 정상회담 예상 일시를 계속 뒤로 미루고 있다. 이 상태라면, 일각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가 중간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북·미 간 화해 무드가 이어질지 미지수다.

적폐 청산은 감속 중

남북 문제와 함께 지지율 고공행진의 요인이었던 적폐 청산이 지지부진한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갈수록 우파 눈치를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10월 초 이명박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그것 말고는 별 진척이 없다.

사법 농단 수사가 진척이 없으니, 국가가 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는 일도 진척될 리 없다. 기무사 수사, 5·18 발포 명령권자 수사, 심지어 세월호 참사 조사도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집권 1년 반을 넘기면서 민주당 인사들의 비리 연루 소식이 슬슬 나온다. 새로운 부패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적폐 구조와 그 수혜 세력에 유착돼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재벌 총수들을 (그가 아무리 부패 범죄자라도) 계속 감옥에 가둬 두지도 못하고, 전임 정권 비리·부패 청산 운운하면서도 국가기관의 중·하급 관료까지 다 숙청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적폐 청산에 지배자들의 저항이 거센 건 사실이다. 삼성 측의 무노조 공작에서 노조원이 피해자가 아니라거나, 증거를 제출했더니 증언이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판사들의 뻔뻔함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러나 문재인 본인이 재판 중이던 이재용을 우대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화체육부 블랙리스트 관련 관료 중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은 자유한국당 권성동(검사 출신) 등이 연루된 강원랜드 취업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다.

청와대 스스로 전교조 인정하기를 기피하고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등 양심수 석방 등도 노골적으로 기피한다. 삼권분립 운운하며 법원과 국회 탓만 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오히려 지지층 이반을 낳을 것이고 남북 화해 주도 말고는 문재인에게 지지층을 결집시킬 카드가 별로 없다 [원본] [원본 정보]ⓒ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조적인 유시민과 이재명

친문 핵심 인사들은 좌파와 노동운동이 발목을 잡은 게 노무현 정부 실패의 최대 요인이라고 본다. 문재인 자신과 유시민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과 우파 언론이 노무현을 탄핵까지 하며 못 살게 굴었는데도, 노동운동 탓을 더 많이 하는 건 친노 진영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파병, 노조법 개악, 한미FTA 체결,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 평택 미군기지 이전, 국민연금 개악, 비정규직법 개악 등 수많은 우파적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진보진영은 필요한 수위의 저항을 제기하지 못했고 그 틈에 우파가 노무현에 대한 대중의 환멸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었다.

여권으로서는 지금의 반우파 정서를 계속 민주당 지지로 묶어 놓으려면 좌파가 이익을 얻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을 두고는 여권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여당 대표 이해찬은 진보·좌파 세력을 달래가며 단속하는 게 낫다고 보는 듯하다. 민주노총을 찾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를 설득한 것도 그였다. 물론 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친문 친위세력은 진보·좌파 세력을 아예 입 다물게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노무현 시절에 부동산 원가 공개, 국민연금 개악, 한미FTA 체결 등으로 여권 대선 주자들이 반발해 노무현이 고립된 일을 반면교사 삼아 미리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권의 내분을 막으려다 되레 앞당기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친문 친위세력이 최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유시민을 추대해 사실상 정치 일선에 복귀시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노무현재단은 사실상 정치조직이다. 한명숙·문재인·이해찬 등 친노 그룹의 좌장격 인물들이 이사장직을 맡아 왔다. 햇병아리 초선 의원에서 일약 경남도지사로 올라선 김경수가 노무현재단 실무자 출신이고, 이재정 경기교육감, 정현백 전 여성부장관 등이 재단 이사 출신이다.

유시민은 진보 연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달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복지부 장관할 때 국민연금 개악을 지휘했고,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방에 적극 찬성했다.

유시민은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 합당을 추진할 때(2011년 말) 이를 반대하는 참여당 당원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합당은 진보진영이 문재인/민주당 정부 아래서 정권에 대한 좌파적 반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안에서 개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헌법 존중 의지를 이런저런 형식의 만남에서 확인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자는 정책을 내놓고 국회의 법 개정과 민주당의 당론 채택을 요구했다. 성남시에서 호평받았던 청년배당을 경기도 차원에서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

이재명 지사의 개혁 약속이 대중의 개혁 염원을 고무하고 기대를 부추기는 것은 우선회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게는 탐탁찮은 일일 것이다.

경찰은 겨우 휴대폰 2대를 압수할 목적으로 이 지사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드루킹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짓말이 들통났던 김경수는 민주당 전체의 보호막을 얻었는데 반해, 이 지사가 수차례 해명된 사건으로 수사받을 때는 민주당의 누구도 편들며 나서지 않는다. 청와대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은 방북 수행단에 접경지 단체장인 이 지사를 포함시키지 않았다.(이 지사가 최근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너무 심하게 공격했다고 한 건 친문에 대한 경고이기도 타협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실패하고 우파만 고무하게 될 얼치기 개혁 정부와 타협하기보다는, 공언한 개혁을 한사코 실행해 대중을 고무하는 것이 이 지사 자신에게나 노동자·서민에게나 좋은 일일 것이다.)


보수대통합 추진하는 우파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구두선에 불과함이 슬슬 드러나면서 지지율 위기를 겪자, 우파가 기운을 되찾고 있다. 우파는 박근혜 퇴진 이후 책임 공방과 돈 문제 등으로 사분오열했었다. 그러나 최근 보수대통합 운운하며 내후년 총선에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작용할 것이므로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은 부패 폭로로 대응한다. 적폐 청산 프레임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유치원 비리 폭로도 이 맥락 속에서 벌인 일로 볼 수 있다. 임명 과정에서 상처받은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돕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 개인은 상당한 용기를 발휘했지만 말이다.

유치원 운영자들은 교육공무원의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원생들을 안 받겠다고도 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오보를 불사하며 서울교통공사 등의 정규직 전환 비리 등을 문제 삼는다. 전형적인 피장파장 전법이지만, 이 공격은 민주당 정부, 민주당 지자체, 공기업, 노조 등을 모두 겨냥한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떨어져도 우파가 곧바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직까지 강력한 반우파 정서 때문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동향이 만만찮다. 승리한 박근혜 퇴진 운동에 조직 노동운동이 (초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덕분이다.

노동계 안팎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문재인과 일전을 벌이기를 꺼리므로, 투쟁들이 보편화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중도파 정부는 구두선으로 표방한 개혁에 실패하면 좌우 양쪽의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노무현 후반부와 달리 지금은 우파가 분열해 약화돼 있다. 노동자 투쟁에 유리한 요인이다.

그러나 임금과 노동조건 개악이 목적임을 분명히 한 문재인과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는 건 잃을 게 더 많다. 자칫 노무현 후반부처럼 좌파적 대안을 건설할 기회를 놓치고 우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유리한 조건들을 이용해서 문재인의 신자유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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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 군함 불참?제주 관함식 자체가 문제적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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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게 중형을 선고하라부패만 아니라 노동자·민중 탄압 범죄도 처벌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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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지지율 하락 ― 왼쪽의 대안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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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농단을 통해서 보다3권 분립이 민주주의의 정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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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포용국가는 노동자를 진짜로 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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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해편’이 개혁?보안경찰다운 위장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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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지만, 보관용으로 올려 둔다. 집회를 앞둔 8월 26일 금융 노사는 잠정합의를 했다. 크게 성과는 없지만 그렇다고 배신적 합의도 아닌 애매한 합의였다. 어쨌거나 노사 합의의 결과로 피업은 물론이고 8월 29일 수도권 집회도 취소됐다. 원래 쓰기도 22일에 썼는데, 25일 올라갔으니 올라간지 이틀도 채 안 돼 집회가 취소된 것이다. 글의 효력이란 면에서 요즘 말로 망글이 된 셈이다.




금융노조 ― 9·14 하루 파업, 8·29 수도권 집회성과주의 폐지, 인력 확대로 장시간 노동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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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시늉하며 우선회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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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진영의 이재명 찍어내기는 우파의 기만 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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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와 양승태 문건이 보여 주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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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8 폐막

폭염보다 더 뜨거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들의 토론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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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민중당 등의 선거제도 개혁 요구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연합정당 허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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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

지역구로 선거를 치르지만 한 정당이 얻은 지역구 득표의 총합 비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정당별 배정 총 의석 수와 지역구 당선자 수의 차이를 비례대표가 채우는 것. 종종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 득표를 초과할 때도 있다. 보통 그 경우 초과의석을 허용한다. 연석회의는 총선에서 이 제도를 전국 단위로 적용하고 지역구와 비례의 의석 비율은 1:1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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