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476쪽, 2만2천 원)/《삼성반도체와 백혈병》(삶이 보이는 창, 160쪽, 7천 원)[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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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웹사이트에서 경영이념을 찾아보면 “인재․기술, 인류공헌”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476쪽, 2만2천 원)을 보고 나면 이 슬로건이 이렇게 보인다. “이건희에게 충성할 ‘인재’를 돈으로 관리하는 ‘기술’에서 ‘일류’로 ‘공헌’한 집단들”.
 

요즘 인기를 끄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도 옛 삼성 광고에서 따온 것이다. 삼성이 1등주의를 표방하며 만든 광고 카피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였다.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남은 이익을 한 2조 원쯤 … 돌려서 우리나라 전 가정에 삼성 냉장고와 에어컨을 공짜로 줘서 LG를 망하도록 하라”는 이건희의 “황당한 지시”가 이 1등주의의 사례가 되겠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는 결국 삼성이 일등 기업․일등 권력이 된 것은 ‘일등 비자금 관리 기술’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이 책에서 삼성의 ‘일등 비자금 관리 기술’이 어떻게 정치 권력․재벌․언론 사이에 단단한 부패 사슬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비자금 관리의 핵심 부서에서 일했던 전직 수사 검사 출신의 내부 고발은 생생하기 그지없다.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입사할 때 실세 부서는 그룹 비서실이었다. 이 비서실이 IMF 때는 구조조정본부로, 지금은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꿔왔다. 이 부서는 그룹 안에서 “실”로 불린다.

이 “실”에서도 재무팀을 맡은 이학수[각주:2]와 김인주가 실세다. 이들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비자금 관리를 담당해서다.

“[삼성에버랜드 사건 판사에게] 한 30억 원 줄까”(이학수) “몇 천만 원 주는 걸 무얼 그리 겁내느냐”(김인주) “[삼성 본관에 압수수색이 들어오면] (칼로) 찌르고 도망가죠” 등 법과 상식을 초월해 “불법적인 행태를 저지른 게 이들에게는 자랑거리였다.”

삼성의 모든 계열사가 이 “실”의 재무팀 관재파트로 비자금을 만들어 보낸다. 심지어 “부실 규모가 1조 원인 회사”도 “실”의 종용으로 매년 50억 원씩 비자금을 만들어 보낸다. 이 돈을 “관계사”에서 넘겨 받아 삼성 태평로 옛 본관 27층 비밀금고로 실어 나르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관재파트 젊은 과장들이 “미래의 사장감”들이다.

 

삼성 장학생

비자금은 두 용도로 쓰인다. 하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고, 하나는 삼성 장학생 관리다.

김 변호사의 2007년 폭로로 진행된 특검에서 밝혀진 차명계좌 비자금만 4조 5천억 원이었다. 이 돈은 삼성생명 등에 투자돼 이건희 일가의 삼성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쓰여졌다. 장학생 관리는 이 과정에서 힘을 발휘했다.

삼성 에버랜드 편법 증여 사건의 재판부를 평소에 “삼성은 무죄다”고 공개 발언해 온 민병훈에게 편법 배당한 서울지법 법원장은 촛불 재판 고의 배당으로 악명을 떨친 신영철이었다. 이 재판에서 삼성의 변호인이 지금 대법원장 이용훈이다. 한편, 삼성이 줄기차게 지지한 한미FTA 협상을 이끈 김현종은 지난해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이 됐다.

이런 전방위 관리로 애초 김 변호사의 내부 고발은 불발될 뻔 했다. 유력 언론과 시민단체가 모두 외면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2007년 10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갔다. 당시 사제단조차 상대가 삼성이라 위험 부담에 내부 논란이 컸다고 한다. 실제로 첫 기자회견 후 신부들에게도 삼성이 접근했다.(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프레시안북)

그러나 김 변호사와 사제단의 용기 있는 고발은 반향을 얻었다. 비판 여론이 들끓고 대선후보인 권영길․정동영․문국현 등이 요구해 삼성 특검이 시작됐다.

그러나 특검 결과는 이건희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차명 비자금 4조 5천억 원을 이병철의 상속 유산이라고 판정해 오히려 “도둑에게 장물을 준 특검”이 됐다. 회사 돈으로 마련한 비자금이 합법적인 이건희 개인 재산이 된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김 변호사에게 “정권을 물어뜯지 않을” 특별검사 추천을 부탁했다고 한다. 권력자 누구도 물어뜯지 않은 특검은 김 변호사를 물어 뜯었다. 김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첫째 동기다.

 

무노조 경영

김 변호사는 책에서 ‘공공연한 비밀’도 사실로 확인해 준다. 그 첫째가 삼성이 1999년 부도 위기였다는 사실이다. 자체 검사 결과, “자본 잠식 50조 원”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구조본으로 불리던 “실”이 계열사 전체를 분식회계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제 장부상 지출을 맞추려면 어디선가 돈을 줄여야 했다. 삼성 노동자 6만여 명이 쫓겨났다.

2003년 삼성SDI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노동자들의 핸드폰 위치 추적 사실을 2004년 MBC <시사매거진>이 폭로했다. 이 일로 삼성을 고소했던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도리어 명예훼손으로 구속됐다. 그러나 삼성 구조본에서 인사팀장을 지낸 노인식은 김 변호사에게 삼성SDI 노동자 불법 도청 사실을 시인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을 먹여 살리는 노동자들과 “반도체 기술자”보다 “비자금 기술자”들이 더 대접받는 게 삼성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입사 후 임원 교육에서 본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가전부문 조립라인을 이렇게 회고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 없이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혹시 배탈이 나더라도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정도였다.”,  같은 직장에서 본사 직원이나 관리직은 쾌적한 공간에서 대접도 받고 권세도 부리는데, 생산 현장에서는 해마다 생산성 향상 30% 구호 아래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내핍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이 모습에서 삼성전자 기흥공장이 떠오른다.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바로 그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2007년까지 10년 사이에 확인된 사망자만 7명이다. 온양공장에서도 백혈병 환자가 4명이나 된다.

삼성은 산재를 인정하라는 이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다 끝내 외면했다. 노동부,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관리공단 모두 한통속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벤젠은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과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부른다. 노동․시민단체들과 ‘반올림’이란 단체를 만들어 진실을 알리던 이들도 최근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삶이 보이는 창, 160쪽, 7천 원)을 냈다.

 

베스트셀러

 

이 두 권의 책은 1등 기업 삼성, 더 나아가 삼성공화국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둘째 동기를 밝힌다.

어떤 이들은 김 변호사의 걱정대로 절망하고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은 결코 절망의 보고서가 아니다. 이런 책들 자체가 악명 높은 “관리 삼성”에서도 내부자들의 용기있는 고발이 존재한다는 점을 웅변한다.

삼성도 경제 위기에 전전긍긍대는 기업이고, 자신들의 불법을 감추려 노심초사하며 막대한 비자금을 뿌려야 한다. 1997년과 2002년엔 삼성이 민 이회창이 연거푸 낙선했다.

김 변호사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삼성이 치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동조합 때문에 생기는 비용보다,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밝힌다.

김 변호사는 주류 집단에게 반(反)삼성은 곧 반(反)기업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서 삼성은 특정 기업 이름이기만 한 게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가 메아리를 얻는 게 그래서 더 반갑다. 그의 책은 주요 언론들의 광고 거부에도 주요 인터넷서점에서 판매순위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병철 찬양 책들을 제치고 말이다.(2010.2.9)

 

 

  1. 2월 9일 날 쓴 서평인데, 좀 늦게 올린다. [본문으로]
  2. 이학수는 이명박이 ‘공정한 사회’를 말하기 시작한 8월, 8·15 특사로 풀려 나왔다. 이학수는 곧바로 삼성으로 복귀했다. (2010.9.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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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이 1라운드 승리를 거뒀는데, 금호타이어는 회사가 정리해고를 강행할 기세입니다. 금호타이어 사측은 오늘 1천1백99명 정리해고를 신고했다고 합니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려면 양보안을 낼 것이 아니라 최대의 힘으로 싸워야 합니다. 금호타이어 부실에 노동자는 조금도 책임이 없습니다. 쌍용차처럼 점거 파업도 해야 합니다. (☞ 관련기사: 한진중공업 승리, 금호타이어 투쟁, 쌍용차 경험)

지난해 쌍용차 파업 당시 일부 친기업주 언론들이 덴마크의 노동정책을 배워야 한다는 기사들을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한겨레>도 관련 기사들을 내보냈습니다. 고용을 두고 극단적 대립을 하지 않을 상생의 대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 쓰고 보니 마침 덴마크 총리가 오는 10일 방한한다는 군요)

덴마크의 노동시장 정책은 황금 삼각 모델로 불립니다. ①해고의 자유와 ②관대한 복지(실업수당), ③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세 가지 정책이 균형을 이뤄 노사 모두 만족한다는 겁니다.

① 덴마크 기업에서 해고는 한국보다 쉽습니다.
② 실업 노동자에게 정부는  기존 급여의 70~90퍼센트 수준의 실업수당을 4년간 줍니다.
그런데 그냥 주는 게 아닙니다.
③ 1년은 그냥 주고 3년은 정부가 제공하는 재취업 교육과 직업 알선에 성실히 응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노동의 유연안전성'이란, 안전망이 있으니 쉽게 자를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재취업시킨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사회민주주의의 신종인 '사회투자국가(이나 정책)'으로 부르거나, '제3의 길'의 한 변형으로 봅니다. 이념상으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정책을 세우는 게 사회민주주의인데, 이 정책은 기업주와 시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관점에서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도 이런 덴마크 모델을 도입하려 "사회투자국가(정책)"라는 담론으로 먼저 제시한 적이 있었고, 친기업주 언론들도 긍정적으로 언급해 왔습니다. 한국은 고용의 유연성 즉, 해고의 자유가 너무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편에선, 온건한 진보 학자들 중에도 이 모델을 선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연성이 이미 높은 수준으로 되기도 했거니와,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안정성이라도 확보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고용된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넘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1997년 전과 비교하면, 취업 노동자 수는 그리 늘지 않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는 몇 곱절 늘었습니다. 정규직이 잘린 자리를 비정규직이 채운 경우가 많은 겁니다. 고용 유연성이 이미 높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실직 후 소득안정성이 OECD 안에서 최악입니다[각주:1].

논리적으로 이미 유연성이 많이 확보된 나라에서 유연안정성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건 안정성 추구론자들이 적극 나서야 하는 문제인데, 이 나라에선 거꾸로입니다.

여기에서 우린 덴마크 모델의 허점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통상적 경기변동 대응력이 우수할 것 같지만 사실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정책의 가장 큰 허점은 경제 위기 때 드러납니다. 지금 같은 장기 침체기엔 더 심하겠지요.

경기 후퇴로 일자리의 절대적 규모가 줄어들 때, 이 모델은 무기력합니다. 해고가 쉽기 때문에 실업자는 늘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이 재취업할 일자리는 적습니다. 2008년 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의 후폭풍으로 지난해 덴마크는 인구가 5백60만 명인데, 실업자가 7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실업자가 빨리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실업수당을 줄 기금이 부족하게 됩니다. 실업 노동자들은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당하게 됩니다. 이미 덴마크 정부는 실업수당 기한을 2년으로 줄이려합니다. 실업수당 액수 상한선도 생겼습니다.

이 모델에서 기업주에게 해고는 권리지만, 고용은 의무가 아닙니다. 고용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개인들이 합니다[각주:2]. 일자리 창출 의무가 누구에게도 없다는 점에서 이 모델은 안정성의 후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덴마크 정부가 1994년 이 유연안정성 정책(황금삼각모델)을 도입하기 전에는 실업수당을 무기한 지급했습니다. 수급 기한을 4년으로 줄인 뒤에도 처음엔 조건 없는 소득보장이었지, 조건부 지급이 아니었습니다. 명백한 복지국가의 후퇴인 겁니다.(유연성의 보상으로 안정성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안정성만 후퇴한 셈입니다.)

게다가 개인을 해고하는 게 자유롭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이 약화되고 개인들로 파편화될 개연성도 큽니다.

친기업주 언론들이 덴마크 모델을 찬양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유연안정성' 모델은 절묘한 균형 정책이거나 제3의 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에 복지국가의 포장을 씌운 것에 불과합니다.


기본적으로 복지 비용은 정부 재정에서 나옵니다. 정부 재정 수입 즉, 세금을 누가 많이 내느냐 하는 것도 복지정책의 진보성을 평가하는 간접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2004년 기준으로 총 조세 수입에서 소득 역진적 간접세인 소비세가 32.7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개인소득세가 절반입니다. 법인세는 6.5퍼센트밖에 되질 않습니다. 노사가 분담하는 사회보험료에서 기업 몫이 4퍼센트입니다. 총 조세수입에선 0.1퍼센트입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건 덴마크의 기업들은 해고는 맘대로 하고, 실업자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비용은 사회에 떠넘기고 있다는 겁니다. 법인세율 자체가 OECD 안에서도 낮은 수준입니다.(한국보단 살짝 높습니다)

정부 재정 수입에서 법인세와 재산세 비중이 낮고 간접세인 소비세 비중이 높은 것은 스웨덴과 덴마크가 유사합니다. 차이나는 부분은 덴마크가 개인소득세 비중이 높은 대신, 스웨덴은 연금 등 사회보험에서 기업주가 부담하는 몫이 크다는 겁니다.

북유럽 복지모델도 기업들에겐 상당한 수준에서 규제 완화와 이윤 보장이라는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거죠.

결국, 유연안정성 제도 도입론은 노동자들에겐 사기극입니다. 덴마크 모델 찬성파들은 덴마크의 실업률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매우 낮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시긴 미국발 거품 경제 때문에 수출 중심 국가들이 모두 외형적으론 성장을 하던 때입니다.

결론은 덴마크 모델은 대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해고 금지법을 제정하고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릴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부도기업은 공기업화해 고용을 보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이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실업 대책으로 내놓은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시대에 진보진영은 그 이상을 내놓아야 합니다. (☞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경제 위기 시대에 실업에 저항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이 청년 미취업자들의 해결책이 될 수도 없습니다. 기업주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삶이 충돌할 때, 노동자들은 과감하게 노동자들을 살리는 정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행동해 삶과 권리를 지키지 못하면 누구도, 친기업주 언론이 칭송하는 어떤 모델도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노동자들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다수에 속하는 우리는 노동자들의 단호한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1. OECD가 최근 발표한 ‘2009년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OECD가입국 중 비교가능한 29개 국가의 ‘순임금대체율(근로시 순소득에 대한 실직시 순소득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은 30.7%로 세번째로 낮았다. 이는 29개국의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 중위값인 52.2%에 비해 21.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한국보다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이 낮은 국가는 미국(27.8%)와 영국(28.4%)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실직 5년차까지 순임금대체율 28.4%가 유지돼 실직시 소득 안전성은 높은 국가에 속했다. 반면 한국은 실직 2년차부터 순임금대체율이 0.3%로 급락해 실직후 혜택이 2년차 이후에도 지속된 26개국 중에서 가장 낮았다. 특히 실직 5년차까지의 평균 순임금대체율은 6.3%로 미국(5.6%)에 이어 29개국 중 두번째로 낮았고, 29개국 중위값 28.4%와 비교해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기업의 해고비용을 정부가 대신 처리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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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제도 도입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도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누진세를 강화하고 주식과 토지 등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국방비를 줄이면 일정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출처: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추가됐습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적정 액수의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제도입니다.주민등록이 된 모든 국민은 개인 통장을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는 매달 이 통장에 기본소득을 입금합니다.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는 사람들[각주:1]은 대체로 부자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득 하락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다.

대기업주와 땅부자, 주식부자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 돈을 주는 건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의 생산성을 낮춘다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실질 실업률이 13퍼센트에 이르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정당화하는 수작일 뿐입니다.

사 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부자들은 정부의 거품 정책으로 앉아서 돈을 법니다. 부동산 가격이 노동소득보다 빨리 오르면 집을 사려는 월급쟁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재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1백 대 주식 부자들의 74퍼센트가 재벌 2·3·4세들입니다. 이들 다수가 미성년자입니다.이들이야말로 소득을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평범한 노동자들 수백 명이 평생 모아도 벌지 못할 돈을 소유합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세계적 차원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협력적 노동의 기여 없이는 결코 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주와 부자들이 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이유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정주부와 어린이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이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여 사회적 지위를 더 높이고 천대와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보장은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당장 생계를 위해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가 기본소득 재원을 계산했습니다. 만 19세까지 30만 원, 만 39세까지 40만 원, 만54세까지 50만 원, 그 이상은 60만 원을 매달 지급하면 현재 인구 기준에서는 1년에 2백15조 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무상 교육․의료 비용을 더하면 총 2백40조 원이 필요합니다.

강남훈 교수는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에서 이자와 배당 등 불로소득에 30퍼센트의 소득세를 매기고 토지세와 주식 거래 양도소득세를 도입하자고 말합니다.[각주:2] (한국은 주식 거래 차익에 무는 증권거래세가 0.3퍼센트에 불과함.)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 주장에서 기존 복지제도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에 사용하자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소수지만 기본소득 요구가 신자유주의 플랜의 하나인듯 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이런 인식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강 교수의 제안을 보면, 국민연금에 한정해 재원을 돌리자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는 개념상으로 기본소득처럼 보편주의 복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본 성격이 같기 때문에 더 포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데 당겨쓰자는 겁니다. 전 합리적이라 봅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현재 인구의 절반이 소득이 부족해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입니다. 국민 절반이 연금을 받질 못하는 것이죠. 평균 소득이 1백50만 원 정도일 때, 이 소득 기준으로 20년을 납부해도 65세부터 월 30만 원을 조금 넘게 받습니다.(물론, 이 정도도 사보험보단 훨씬 높은 급여입니다)

이런 한국의 조건에서 지금 당장 모든 국민에게 40~6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 기존 연금 일부를 돌리는 건 그리 불합리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밖에 고용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연금 등이 좀 중요한 현금지불식 복지제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제도들은 그 지급액이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두 제도 모두 수급 자격을 심사하고 부정수급을 감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수급자에게 사회적 모멸감을 줍니다. 기본소득은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비해 장점이 있습니다.(실업급여는 예외일 수 있겠네요)

물론 일부 기본소득 모델은 이런 제도까지 통폐합하자고 합니다. 이 점은 논쟁거리이며, 전 이 견해엔 반대합니다. 이런 '필요에 따른 지급'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것이고, 이에 비춰 이 제도들은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업을 개인의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적 복지' 등의 이름으로 노동 여부/의지/능력과 복지를 연계시키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저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 기본소득의 존재를 이유로 기업주들이 저임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계층에 주는 소득제도는 소득 차이를 그대로 가져가므로 소득 재분배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고용 노동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거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실업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도입되는 모든 복지 제도(개혁) 안은 경기변동 탓에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존 제도의 비용 이전이나 불로소득 논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급진좌파가 개혁 요구를 낼 때, 제도의 완결성이나 (체제 안에서) 실현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반대로 첫째, 돈을 어느 계급이 부담하는가를 제기하는가. 둘째, 요구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 셋째, 노동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개혁 요구는 싸워야 실현이 가능하므로 요구의 내용 자체가 이 싸움을 크고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지제도를 다룰 때 늘 명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제도의 세부 설계(와 그에 바탕한 실현가능성 판단)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레프트21> 6호 "부자 증세로 기본소득 쟁취해야"  ⓒ사진 제공 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이 기준에서 한국 좌파들의 기본소득 요구를 보면, 재원을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지만, 그 돈이 부자들의 누진세와 불로소득에 매긴 세금에서 나옵니다. 과정 자체가 소득의 재분배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덧붙이면, 주식과 부동산 등 투기로 번 불로소득은 경제의 다른 부문에서 생산한 부를 약탈한 것에 불과하므로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것은 정당합니다.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려 사회와 개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보육에서 교육, 복지를 실행합니다. 노동자들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기업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들에게 줘야 할 것은 '해고의 자유'가 아니라 복지 비용 부담 의무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분명하다면 기본소득 요구는 꽤 쓸 만한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요구가 단지 대화와 설득으로 채택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제도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질서를 근본에서 바꾸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요구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를 어느 정도 거부합니다. 기본소득 지지자가 많아지는 것은 시장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폭넓게 단결해 싸운다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인 대기업주들과 벌일 싸움입니다. 특히, 경제 위기 시대에는 대자본가들이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기간 산업 등에 고용된 '조직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갖는 이유입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 점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 규모가 커 실업자가 늘어나는 때 조직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 실업자 등이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요구입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레프트21>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중행동의 요구로 기본소득 요구를 포함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사회당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있고, 학자로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와 시립대 곽노완 교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엔 약간 색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소득 지지 단체와 개인들은 기본소득네트워크 (http://cafe.daum.net/basicincome)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합니다. 제가 취재한 기본소득 국제학생대회도 이 네트워크가 주축이 돼서 개최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강남훈 교수가 재원 마련에 적용한 주요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①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 ②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지금대로 유지. ③ 불로소득(이자·배당·증권양도소득 등)은 30퍼센트 과세. ④ 환경 관련 세금 통합해 환경세로. ⑤ 재산세, 종부세 등은 토지세로 통합해 3% 과세. ⑥ 250조원 정도 추정되는 지하경제 철저 과세. ⑦ 단계적으로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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