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노동자 연대> 152호 | 발행 2015-07-06 | 입력 2015-07-04



■ 노동당 당대회 이후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당대회 유감 : 국민연금하나로 특별결의문 채택 

[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 본문의 파란색 문장들은 지면에 없는 부분.



진보재결집을 둘러싼 노동당 논쟁은 노동당 당세 약화가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 합당 이후로만 따져도 당권자가 2천 명 넘게 줄었다. 20~30대 청년 당원들이 그 상당수를 차지한다. 당권자 감소 때문에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졌다.


권태훈 부대표 등은 이것이 진보의 분립·분열로 말미암은 위기의 일부라고 진단한다. 진보 재결집론은 이런 위기의 돌파구로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더 성장하고 광밤위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노동자 투쟁 수준이 전반적으로 더 높아져야 한다. 돌아보면, 옛 민주노동당의 등장과 성공의 배경에는 1997년 연초 민주노총 파업과 그해 말 경제공황의 후폭풍에 맞서는 만만찮은 투쟁들이 있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이것이 좌파가 양과 질에서 전혀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노동계급 투쟁만이 이 사회의 지배자들인 자본가들의 이윤에 주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유지할 힘(현 사회를 운영하고 이끄는 생산력을 대표함)을 유일한 집단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경제투쟁일지라도 이윤 창출을 멈추는 투쟁에 참여해 노동 ‘계급’으로서 힘과 연대를 자각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의식과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배경에서 각종 정치·사회 운동들이 활성화되곤 했다. 수동적으로 사회 상층부가 제공하는 개혁을 선물 받는 것은 계급의 정치의식 향상과 별 연관이 없다.


요컨대, 핵심 과제는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데 좌파가 기여할 수 있느냐다.


경제와 지정학의 위기 시대에 계급 간 양극화는 노동운동 안에서도 좌우 정치 양극화를 낳는다. 개혁주의는 체제의 번영을 전제로 개혁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므로 체제의 위기 때는 개혁주의 운동 자체가 지배계급을 도와야 한다는 압력과 기층의 압력 사이에서 동요하는 위기를 겪다가 좌우로 분열하곤 한다.


최근 유럽에서 주류 개혁주의가 심각한 배신을 저지르며 우경화한 것, 이를 비판하며 좌파 개혁주의가 부상하는 것이 그 사례다. 또, 10여년 만에 민주노총에 좌파 지도부가 등장한 것이나, 4·24 총파업 직후에 노동운동의 우파 지도자들이 연이어 배신 행위들을 저지른 것도 이런 운동 내 좌우 양극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좌파 개혁주의는 기층의 전투적 압력을 더 많이 수용하는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좌파 개혁주의가 좋은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일관되지 않고 기층의 압력 변동에 따라 동요한다는 뜻이다. 한편에선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하고 우경적 4자 통합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지역 연대, 세월호, 최저임금 투쟁 등에서 기여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국적 계급 세력균형이 바뀌려면 기층의 전투성이 노동운동 상층의 보수성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결국 좌파의 좌파인 급진 좌파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 노동계급이 사회 전체에 그래야 하듯이 급진 좌파도 자신의 세력과 유용성을 노동계급 대중에게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2013년 초에 보건노조, 그해 중반에는 전교조, 그해 말에는 철도노조가 전체 운동에 부양력을 제공했다. 그래서 민주노총에 10여년 만에 좌파 지도부가 조합원 직선으로 당선한 것이나, 이 집행부가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했을 때 기대와 지지를 많이 받은 것도 조직 노동운동에 대한 기대감의 방증이 될 수 있다.


포섭된 노동?


그러나 이런 조직 노동운동의 힘을 고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당의 좌파 개혁주의 정치는 약점을 보여 왔다. 노동당은 주로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포섭된 노동”(옛 진보신당)이라고 평가절하하고, “불안정 노동”(옛 사회당)을 새로운 주체로 부각시켰다. 특히, 경제투쟁(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단위 작업장별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라며 폄하해 왔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좌파 지도부의 등장을 기층 투쟁 활성화에 이용하는 것에도 별 의욕을 안 보였다.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할 조직 노동계급의 노동조건 방어에도 뜨듯미지근했다. 


일부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노동운동보다 급진적 사회운동을 더 가치 있게 보기도 한다. 이는 장점도 있지만 약점이 더 크다. 생산 현장에 기반한 노동운동과 유리된 사회운동은 사회적 뿌리가 얕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체로 급속히 떠올랐다가 급속히 가라앉곤 한다. 그러면 일부는 우경화해 노골적인 사회연대전략(국민연금하나로) 같은 포퓰리즘으로 가기도 한다.


요컨대, 노동운동의 급진화를 요구하면서도 그 급진화에 꼭 필요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흔히 취하는 투쟁 형태(경제투쟁)에는 거리를 두는 모순이 노동당 정치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랬을까? 하고 묻는다면, 리더들이 과거에 가졌던 ‘혁명적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재편하는 전략’을 포기한 것, 즉 모종의 혁명주의에서 좌파 개혁주의로 옮겨 간 정치적 궤적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선거주의나 모종의 포퓰리즘으로 기운 것도 연관 있을 것이다.]


이런 약점 때문에 노동운동 안에 더 넓게 뿌리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현재 정치화 수준과 더불어 당세 위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진보신당에서 노, 심 등이 탈당한 분열 후 급속히 더 어려워진 것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경시하고 특정한 명망가 의존이 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당의 리더십 위기와도 연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 4·24 총파업 지지 논평에서 파업 요구의 하나인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노동당 공식 논평에서 박근혜의 ‘공공부문 정상화’에 대한 폭로나 반대를 보기 힘들었다. 공공부문은 대표적인 ‘정규직 고임금 직장’으로 찍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전통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중요 의제로 삼아 온 노동당이 현대차·기아차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그 쟁점에 무관심한 것도 같은 맥락인 듯하다. 이 투쟁들은 공장 안 모든 노동자를 위한 투쟁이며, 각 부품업체 노동자들에게도 큰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 현장 투사들과 조합원들은 2013년 봄 비공인 파업을 벌이며 투쟁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또한 이 노동자 부분들은 모두 지배자들이 노동계급 전체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 위해 제압해야 할 중요한 고지로 보는 부분들이다. 좌파가 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해서는 다른 투쟁에도 도움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노동자 투쟁이 아니어도 말이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4월 총파업이 정말로 성공적이었다면, 세월호 투쟁에도 힘이 됐을 것이다.


공상적 사회주의


정규직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며 열악한 비정규직 투쟁이어야만 더 급진적이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장점보다 약점이 많다. 이것은 과학적 전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덕주의, 즉 이성과 선한 의지를 앞세워 사회 구성원의 조화와 설득을 추구한 공상적 사회주의(특히, 1858년의 ‘참 사회주의’)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런 정치는 전략, 계급투쟁 등을 경시하는 2000년대 초·중반 자율주의 정치의 유산일 수도 있다.


이런 도덕주의는 노동운동의 약점을 노동자 대중의 현재 의식 수준에서 찾는 데서 주로 비롯하는데, 이런 이데올로기주의적 접근법으로는 ‘이기적인’ 경제투쟁보다는 이데올로기 투쟁(교육과 선전, 선거)을 더 중시하게 된다.


또한 정규직이나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의식을 낮춰 보는 외관상의 급진성은 실제로는 기회주의를 낳기도 한다. 상층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주의(관료주의)와 대중의 후진적 의식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이데올로기주의의 잣대로 바라보면, 노동운동 안에서 상층과 기층의 이해관계가 꽤 다른 현상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계급 간 중재자를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상층 개혁주의 지도층의 입맛에 딱 맞는 사회연대전략(국민연금하나로, 건강보험하나로, 보편증세론 등) 을 옛 진보신당 출신 지도자들 일부가 지지하고 사회당 계열이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은 것도 그 사례다.(사회당은 과거에 사회연대전략을 비판했다.) [이것은 노동당과 정의당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한 문제로 볼 수 있다.]


결국 노동당 정치의 수동적 급진성도 경제 침체기 당의 어려움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수동적 급진성에는 물론 노동당의 다양한 정치적 구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옛 진보신당 지도부는 무지개연합 식의 진보 재구성을 표방해 왔다. 그러나 다양성의 공존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진보적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자율주의 관성이, 한편에서는 이른바 ‘당적 질서’가 작동한다. 그 결과, 이질적 구성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일종의 정치적 “늪”이 되기도 한다. [이런 조직적 요인 때문에 안 그래도 취약한 노동당 리더십 구조를 더 취약해진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노동당 내 논쟁은 민주적 토론을 통한 결정과 상호 승복보다는 종종 상호 불신 속에서 징계로 해결되곤 한다. 2012년 대선에서 김순자 후보 지지 당원이 제명된 것이나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진보당·노동당의 단일후보가 된 김종철 전 부대표가 징계를 받은 것이 그 사례다.


반제국주의


끝으로, 노동당의 좌파 개혁주의가 제국주의 문제에 큰 의욕이 없는 것도 특별히 지적할 문제다. 최근 강상구 대변인은 <레디앙> 기고에서 이렇게 반성한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서] … 진보정당은 2009년 이후 단 한 번도 주요 행위자가 되어 본 적이 없고, 그럴 만한 행위자들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의 일차 원인인 듯이 주장하고(미·중간 제국주의 갈등이 더 선차적 원인이다), 따라서 그 해법도 비핵선언과 남북 적대 청산으로 “한미동맹의 근거를 자연스럽게 소멸”시키자고 주장한다.


이런 공상적 개혁주의의 관점으로는 박근혜 정부와 한미동맹에 일관되게 맞설 수가 없다. 사회당 경향도 제국주의 문제에서는 더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도 도덕주의와 평화주의가 현존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이해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전략이 부실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주의 간 갈등 속에서 좌파는 끊임없이 진영 논리 그리고/또는 자국 지배계급 지지 압력 사이에서 동요하며 길을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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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노동ㆍ정치ㆍ연대’가 출범했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노동정치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만든 중앙추진체다.


연석회의에는 공공운수현장조직(준),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연대다함께,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포럼, 전국현장노동자회, 혁신네트워크 등 7개 단체가 가입해 활동해 왔다. 노동ㆍ정치ㆍ연대는 전국에서 더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가입을 받을 계획이다.


이들은 노동기본권과 고용안정 보장, 민영화 중단, 보편복지,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경제협정 폐기, 노동악법ㆍ반민주악법 폐기 등 노동계급의 당면 문제 해결을 기본 과제로 내놓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 진보정치의 분열로 ‘각개 기어가기’가 노동조합의 투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그것은 또,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왜소화시켰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보면, 민주노총의 전ㆍ현직 지도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이 모여서 노동계 정당을 재건해 노동자 정치운동의 사분오열 상황을 극복하자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날 출범식에 권영길ㆍ단병호ㆍ이수호ㆍ임성규ㆍ신승철 등 민주노총 전ㆍ현직 위원장들과 정의당ㆍ노동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것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단결 염원을 보여 준 것이다.


물론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진보정치 운동의 분열이 남긴 정치적 상처가 아직도 심하기 때문이다. (※ 물론 아직은 역량상 당장 당을 만들어내는 수준의 활동을 할 수는 없다. 단체와 취지를 알리는 것과 함께 아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연계한 공동 선거대응 협의틀을 만드는 게 당분간은 주된 활동이 될 듯하다.)


그럼에도 노동ㆍ정치ㆍ연대의 출범은 노동운동 내 주요 지도자들이 진보정치의 분열과 그로 말미암은 주변화를 극복하려고 나서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배신의 역사?



한편, 이런 재편과 단결을 위해서는 옛 민주노동당 등 정치세력화 운동의 최근 과거를 공정하고 정직하게 평가하는 일도 중요할 테다. 


그런데 일부 좌파는 민주노동당과 제1기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를 지도자들의 온통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로만 평가한다.(이런 평가에 따르면 노동·정치·연대의 출범도 과거의 재탕일 뿐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와 일부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또, NL계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연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대중과 배신적 지도부’라는 구도로만 사태를 설명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이런 관점으론 우여곡절 속에서도 2007년 무렵까진 선진 노동자들 속에서 이 당이 성장했고, 또 선거적 성공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을 고무하기도 했다는 점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배신적 지도자’론은 개혁주의를 지지했던 대중을 결국 수동적 허수아비로 보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로 빠질 뿐이다. 올바른 강령으로 무장한 좌파가 우파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지도권만 잡으면 노동운동의 정치적 약점들이 바로잡힐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종파주의와 선전주의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배신과 음모로만 설명할 수 없다. 개혁주의는 체제 안에서 겪는 노동자들의 소외, 즉 자신들이 사회를 집단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경험과 생각에 기초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개혁주의를 벗어나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종파적ㆍ선전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개혁을 위한 투쟁 속에서 대중 자신이 자신감과 조직을 구축해 가는 과정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좌파가 대중과 교류하며 실천 경험 속에서 올바름을 입증해 가는 끈기 있는 노력과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회피했기 때문에, 2000년대 내내 민주노동당 바깥에서 그저 선전주의적 비판에 주력했던 일부 좌파들은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후에 생긴 정치적 공백을 노렸던 일부 좌파들의 실험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험뿐 아니라 그 바깥 좌파의 경험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 레프트21 115호.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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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진보당 위기 속에서 진보신당의 주요 활동가들도 통합진보당 위기를 나름대로 평가하면서 대안들을 내놓으려 하고 있. 홍세화 대표와 장석준 정책위원회 의장이 참여한 글 모음집 《지금 여기의 진보》도 그런 시도의 일부다.


여기서 홍세화 대표는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실패한 자유주의 정권의 복권을 위해 좌파 정치-운동을 ‘실체 없는’ 존재로 전락시키려는 이 시도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묻지마 야권연대’와 연립정부 노선을 비판한다.


홍 대표는 다른 글에서 “시야를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노동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려 하면 할수록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 경계는 흐려질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당연히 이 비판의 대상에는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신당권파의 주축인 심상정, 노회찬 등 옛 진보신당 지도자들도 포함될 것이다.


이들은 “국민적 눈높이”에 맞춘다는 이유로 무원칙한 통합에 함께했고, 통합진보당 분열이 기정사실화가 된 지금도 참여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유시민 등 옛 국민참여당 지도자들과 공동 행보를 취하며 분명히 선을 긋지 않고 있다.[각주:1]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도 <레디앙>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진정한 하나가 되겠다는 의지 없는 것 같다”며 선거적 이익을 주된 동력으로 삼았던 무원칙한 통합이 낳은 갈등을 꼬집었다.


그래서 홍세화 대표가 진보의 독자 대선 후보를 세우려고 제안한 ‘좌파연대 2012 대선운동’에는 일부 타당한 구석이 있다.[각주:2]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선거에서 진보가 독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박근혜가 위기를 겪는데도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리틀 노무현’들로 비춰지는 민주당 후보들도 우파 정권의 대안으로서 매력을 못 주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위기 조짐이 커지면서 고통전가에 맞설 대안이 필요한 때다.


그러므로 대선에서 민주당과는 결이 다른 진보적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필요한 과제다. 그러려면 행동강령적 요구를 중심으로 최대한 개방적으로 결속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反박근혜 정서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反박 단일화 여부는 닫아놓지 않는 것이 대중과의 소통에 유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제시하는 ‘기본소득,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 화석·핵 에너지 전면 탈피’ 등은 진보가 단결해서 추구할 만한 괜찮은 행동강령적 요구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미국의 점령운동에서 뉴욕의 상징적 운동을 넘어설 잠재력은 오클랜드에서 조직 노동자들이 주도한 진짜 점령운동에서 드러났다. 사진은 오클랜드 노동자들이 항만을 점령한 모습.



아쉬운 것은 진보신당 지도자들이 여전히 진보진영의 폭넓은 단결에는 시큰둥하다는 것이다진보신당은 지난해 ‘통합해도 참여당 끌어들이기를 막을 수 없다’며 진보대통합을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진짜 속마음은 ‘종북과 패권’ 때문에 자주파와는 결코 함께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최근 더 강화됐을 것이다.


지난해 진보대통합 합의안만 해도 ‘참여당과의 통합에 대한 비토권’을 진보신당에게 준 안이었다. 패권주의 방지를 위한 진보신당의 요구가 거의 1백 퍼센트 반영됐다. 


따라서 자신들이 개입해 사태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었던 기회를 차 버리고선,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사후정당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태도는 실천에서 자주파 리더들 뿐만아니라 이 경향을 지지하는 기층 대중과도 단결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백 번 양보해도 노동운동의 단결까지 해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노동대중의 단결과 공동 행동 속에서 대중과 운동 전반을 올바로 이끌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입증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홍세화 대표는 “2004[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진보정치는 상층 조직노동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 말고 무엇을 추구해왔던 것일까?”라고 반문하며, 이 시기에 진보정당이 “대기업노조의 경제적 이해를 해결해주는 ‘대리정치기구’” 구실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04년은 민주노동당의 당권과 민주노총의 지도부를 이른바 자주파 계열이 쥐게 된 해다. 운동에 대한 평가를 그 지도부의 이념으로만 평가한다면 사태의 한 면만 보는 실수를 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홍 대표의 진단은 사실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2005년 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에서, 2007년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에서, 연행과 구속을 마다 않고 가장 앞장섰던 연대 단체들 중에 가장 큰 세력은 단연 [그 내부 정파를 가리지 않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지역 조직들이었다.(급진좌파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다.)


결국, 진보진영 단결에 대한 진보신당 리더들의 이런 부정적 태도는 이들이 “조직 노동”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태도와도 이어진다. 진보신당 창당파들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 “민주노총당에서 탈피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홍세화 대표는 심지어 자본이 노동자들을 “포섭과 배제”로 분열시켰는데,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정규직 노동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은 ‘포함된 자들’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장석준 의장도 “현실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적 생산력 ‘때문에’ … 그 수인(囚人)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자들 생활 수준이 올라가서 체제에 안주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런 진단의 결론은 “‘불안정한 보조직, 기간직, 구 기술의 노동직, 대체직, 파트타임 직을 수행하는, 지위와 계급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 운동의 미래가 …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제된 노동”이란 존재 조건만으로 급진성이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 못 한 대학생이 정규직 노조 파괴를 위한 폭력에 용역으로 동원되는 현실을 보라. (그래서 ‘배제된 노동 주체론’은 오히려 엘리트주의나 선거주의로 후퇴할 가능성을 크게 품고 있다.[각주:3])


정부와 기업주의 반노동 테러 공세에 고통 당하며 저항했던 쌍용차, 한진중공업, 유성, KEC, 에스제이엠 등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포섭된 노동”으로 부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나마 현실에서 “배제된 노동”에게 든든한 등받침이 돼 주는 건 “조직 노동” 뿐이다. 


자본주의의 패악을 끝장내려면 노동계급의 힘에 기대야 한다. 자본주의 권력의 원천인 이윤 창출을 봉쇄할 수 있는 객관적 능력이야말로 진보적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따라서 진보적 사회 변혁은 현실의 노동자들이 내 맘 같지 않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조직 노동”과 “배제된 노동”을 구분하는 태도가 아니라, “조직 노동”이 그 힘을 “배제된 노동”과의 단결을 통해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태도로만 가능할 것이다. 분리주의적 이론은 단결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개혁주의적 노동운동 안에서 노동조합 의식이 체제 안의 부문적 개혁에 머물게 되고, 노조관료층과 기층 사이에 정치·사회적 구분이 생기게 되므로, 좌파는 이를 극복해 현장 노동자들의 집단적 잠재력이 발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론과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조직 노동” 대중을 단결시키는 일은 좌파가 야권연대 등 여러 문제 등에 적극 개입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회피해선 안정적 기반을 획득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단결을 해치는 분석들은 실천에서 기반의 협소함 때문에 고통받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안정적 조직 기반이 취약할수록 우경화 압력에 더 취약하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 총선에서도 진보신당이 야권연대를 비난하면서도, ‘진보신당은 야권연대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이정희 대표를 고소한 것은 이런 사정이 낳은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 독자파 리더였던 이재영은 <레디앙>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와는 함께할 수 없다면서도 “반성과 지분”을 조건으로 신당권파를 구성하는 참여당 지도자들과는 연합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각주:4] 


김종철 부대표는 “신당권파가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인식되어 왔고 … 어려움을 겪으면서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신당권파에 포함된 진보정치 세력에게 유시민 등 자유주의 정치 세력과 계속 공동 행보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의도치 않게 종파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


민주노총과 거리를 두려다 2008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실패하고, 진보신당이 이른바 통합파와 독자파로 분열한 것 자체가 사실은 이런 모순의 반영이다. 올해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믿는 구석은 거제와 창원의 일부 금속노조 기반이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추구할 수 있는 전략이다. 연립정부 노선이 노동운동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면, 진보정치 세력과 노동운동의 단결을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계급연합 노선과 싸워야 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 87호에 축약돼 실렸다. ☞ 바로가기





  1. 이들은 박원석 의원이 주도한 새로나기특위 보고서의 우경적 혁신에도 우호적이다. [본문으로]
  2. 8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사회연대 후보로 제안 명칭이 바뀌었다. [본문으로]
  3. 게다가 이런 구분 방식과 논리는 조직 노동운동을 ‘노동귀족’이나 ‘정규직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국민의 눈높이’ ― 사실은 여론을 지배하는 자본의 눈높이 ― 와 구분되기가 힘들다. [본문으로]
  4. “애들은 책상에서 자로 줄긋고 칼로 38선 팔 수 있지만, 정치세력은 마음대로 그렇게 하기 어려워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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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검색을 하다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2537 

신기해서 기사에서 인용된 내 글을 찾아 봤는데, 내 예전 블로그에서 발견했다. 민주노동당 당게시판에 올린 글을 긁어서 옮겨 놓은 것이 검색에 걸린 것이다. 여전히 시의성이 있는 듯해 옮겨 놓는다. 

비록 7년 전 사례지만, 최근 학교 폭력 문제를 이명박이 과장해서 부각시키고 통제 조처를 강화하는 것에 의심을 갖고 있던 분들께는 도움이 되리라 본다. 졸업식 경찰 배치나 학교를 상대로 일진 명단 제출 요구는 정말 황당한 짓이다.



노무현 정부가 학교 폭력 대책을 강조한 것도 이명박 만큼은 아니지만 위기 속에 속죄양 찾기라는 비슷한 맥락이 있다. 2004년 말 개혁입법에 실패하고 정권의 정당성 위기에 빠져들고 노무현은 한나라당과 대연정 발언을 하는 등 혼란스러울 때였다. 그때 속죄양 찾기에 나선 것이다.

더구나 당시는 개혁입법 저지에 승리해 자신감을 일부 회복한 재벌과 우익도 노무현 정부 등장을 계기로 활발해진 사회운동을 억누르려는 의도에서 공격 꺼리를 찾고 있었다. 글에서 언급한 교과서 개정 문제도 그런 쟁점 중 하나였다. 

이명박은 몰락 위기를 겪고 있다. 이명박의 학교 폭력 전쟁은 위기의 속죄양을 찾아 사회 전체적으로 경찰력 등 권위적 통제 강화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각주:1]
 사회 불안 심리를 강화하면, 사람들 사이에 상호 불신의 심리가 커진다. 이것은 서로를 신뢰하는 저항과 연대의 정서보다는 불안과 의존 등 보수적 심리를 자극한다. 이를 이용해 경찰력을 강화하고 이런저런 권위적 통제 수단을 늘리는 데 동의를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회 분위기가 냉각되면 우파적 의제로 정치 무대를 재장악하겠다는 것이다. 흔히 우파들이 위기에서, 특히 선거를 앞두고 써 먹는 수법이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오세훈이 치안 불안을 제시했다[각주:2].

영국 대처는 실업자와 범죄를, 프랑스 시라크는 이주자를 이런 식의 속죄양으로 삼아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렇다면, 조현오가 4월까지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한 것이 우연일까[각주:3].

한편에선 단기적으로 최근 확산되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격이기도 할 것이다. 이 정권과 우파들은 2008년 경험 때문에 청소년들의 급진화에 불안감을 갖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명박의 학교 폭력 전쟁은 그 하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왕재산 사건 등을 빌미로 한 국가보안법 탄압, 즉 공안 탄압과도 연결된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아직 고민의 깊이가 얕아 학교 폭력에 대한 교육적 해결 방법은 근본적으로 옳지만, 구체성은 좀 부족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 쪽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권위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될 순 결코 없다. 

그리고 본문에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을 1991년에 개시했다고 쓴 것은 실수다. 1990년 10월에 시작했고, 이를 통해 조성한 공안 정국은 1991년 5월 투쟁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5월 투쟁은 바로 공안정국이 지시한 폭력 시위 진압이 명지대생 강경대 씨를 죽게 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학교 폭력 논란 관련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비판  진보정당활동 

2005/03/12 19:06

복사http://blog.naver.com/bestorm/100011005218



관점에 대한 우려


학교 폭력의 심각성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이 최근에 발생한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중고교 시절이던 십몇 년 전에도 학교 폭력은 있었고 탈선이 있었고, 연합 조직도 있었습니다.

 

이계덕 당원의 글은(청소년위원회의 글은 이계덕 '군'이라고 계속 호칭하고 있는데, 같은 당원을 계속 아랫 사람 부르듯 '군'으로 호칭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시정하십시오) 틀린 점도 있고 적절한 지적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1천2백명이 모였다는 행사의 실체를 어느 언론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수십년 된 고질적인 학교 폭력을 새삼 문제삼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저는 청소년을 1차 대상으로, 그리고 청소년을 희생양 삼아 사회 전체에 대한 권위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봅니다.

폭력 행위자를 옹호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폭력이 발생하는 현재 한국 교육의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입니다.

진짜 이런 상황을 만든 자들은 몇몇 폭력적 행위자들을 흥분한 얼굴로 비난하고 나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숨막히는 입시 교육을 계속해서 유지합니다.

 

따라서 이런 제도적, 사회적 요인에서 발생한 다양한 일탈 중 하나가 비도덕적이라 해서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일탈은 계속될 것이고 폭력적 일탈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동안 청소년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 폭력이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통제가 너무 숨막혔기 때문에 그 활로를 자신보다 더 약한 자에게 푸는 방식에서 찾아온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청소년 문제를 걱정한다면, 이 권위적 통제와 입시 교육의 멍에를 벗겨 내고 이들에게 숨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진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청소년위원회가 지금 말하는 학교 폭력에 대한 근본적 대처 방안이란 것이 '폭력행위의 근절 방안'에 초점이 맞춰진 듯 읽힙니다. 이 점 분명히 해 주시구요,

단언컨대, 결코 지금의 입시교육, 계급차별 교육 아래에서는 학교 폭력 사라지지 않습니다. 괜히 우익들이 청소년을 희생양 삼아 권위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에 협조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일부 집단의 범죄를 악마화하면서 사회전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온 권위주의 통치 방식에 대한 경계도 해야 합니다.

국가는 자신들의 통치가 위기에 빠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통치 행위의 정당성에 의심이 만연할 때 일부 집단의 해악성을 부각시켜 사회 통제, 경찰 기구의 강화를 정당화해 왔습니다.

 

최근 부쩍 전경련 등이 학교 교육이 반시장적이라며 교과서 내용 수정, 시장 친화적인 내용 삽입/교과서 새로 발간, 중/고교/대학에서 시장주의 직접 교육 강화 등을 강조해 온 것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교육에서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위기를 겪고 있는 현실을 저들은 못마땅해 하고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죠. 최근, 여중생 사망 시위 이후 탄핵반대, 반전 등 시위에서 부쩍 청소년들이 눈에 많이 띄는 현실도 눈엣 가시겠죠.

 

사회 통제를 강화하려고 할 때 언제나 전체 대중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좋은 사례이구요, 91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치적으로 공안정국을 형성했습니다. 이때 서울대 앞 시위에서 권총 진압을 하다 지나가던 한 대학원생이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최근 조폭과의 전쟁은 정치수배자에 대한 권총 검거 등을 유발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학교 폭력의 강조가 얼마전 학교들에 전직 경찰들을 배치하겠다는 경찰청의 발상과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학교 폭력을 가장해 학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죠. 
전직 경찰들이 학교에 배치된다면 이들은 청소년들이 점차 자유분방해지는 것에 대한 통제, 심지어 전교조 활동에 대한 감시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이 설정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두 가지를 우리 당은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학교 폭력은 공교육이 입시 교육으로 전락해 다수 학생들을 소외와 차별로 빠뜨린 결과다.(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은 많지요. 서울대 폐지, 수능의 자격고사화, 무상교육 등)

둘째, 청소년들을 희생양 삼아 사회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

 

청소년위원회가 당장의 표피적인 여론에 굴복하여 아직 설익은 의견이라고 스스로 밝힌 의견을 두고 공식 입장과는 다르다 하는 식의 옹색한 대응이나 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해명 외에는 학교 폭력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입장이나 대안도 없습니다.

청소년위원회의 분발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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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원글]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입니다.

최근 이계덕군의 발언에 대한 많은 분들이 우려와 분노를 표현하고 계신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계덕군의 발언은 전혀 당의 의사나 청소년당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민주노동당은 최근 발표된 학교폭력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진심으로 우려합니다. 어린 마음에 큰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피해 학생들과 불안에 떨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생각할 때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며 또 근원적으로 학교폭력과 왕따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을 다각도로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정당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제시를 위해 각계의 자문과 자체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계덕군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면서 이것이 마치 당의 공식적 의견인 것처럼 알려져서 민주노동당에 대해 많은 분들이 우려와 분노를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계덕군의 의견은 개인의 의견이며 당과 사전에 어떤 논의도 없었음을 밝힙니다.

이후에 이계덕군에게 청소년들 전체가 그런 것인양 확대하고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계덕군이 말하는 일진회가 없다는 것은 사실관계 문제로 의견과 달리 확인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이계덕군에게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일진회와 학교폭력의 문제는 그 가해자와 피해자가 소수이냐 다수이냐의 문제보다 가해학생들의 점점 심해지는 폭력성과 일탈의 문제, 성장과정의 피해자에게 미치는 신체적 정신적 충격이 너무나 크다는 데에서 그 사안의 심각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로 민주노동당에 실망하고 우려를 표현하시는 많은 분들께 죄송하며 이계덕군이 당의 중앙 대의원임을 감안할 때 깊은 책임을 느낍니다.

앞으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는 학교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겠습니다.


-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 


  1. 뭐, 2008년엔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우고 이명박은 초중딩과 싸운다’는 말이 돌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노무현이 일관되게 조중동과 싸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2. 당시 논쟁과 관련해 썼던 글도 다시 올려 볼 계획이다. [본문으로]
  3. 10대 청소년들에게 전쟁이니 배수진이니 하는 말을 천하의 경찰청장이 하고 있으니 좀 우스꽝스럽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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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이하 노건투)는 통합진보당을 “노동자 정치세력화 열망을 버리고 … 노동자 탄압에 앞장섰던 자들과 야합해서 만든” “‘야합퇴보당’”이라고 규정한다.

노건투는 통합진보당이 “브라질 노동당,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인 “자본가정당”이 됐으므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민주노총의] 현장에서부터 차단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노건투는 통합진보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며 개입하자는 다함께의 주장을 “기회주의”라고 낙인 찍고는, 다함께가 혁명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벗어났다고 비판한다[각주:1].

“‘야합퇴보당’에서 다함께가 과연 일부라도 빠져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다함께의 목표가 “좌파 개량주의 당”을 만드는 것인양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건투의 주장은 차이점을 잘못 그으면서 진정한 논점과 건설적 논쟁을 방해하는 결과만 낳고 있다. 물론 잘못된 차이점 긋기는 잘못된 분석에서 출발한다.

통합진보당은 노건투의 주장처럼 ‘자본가 정당’인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개혁주의 정당이다. 이런 사회민주주의 당은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의 상층 관료층에 기반하고 있다. 이 관료층은 자본의 타도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중재를 본업으로 하는 집단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이처럼 노동운동에 기반했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 때문에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 등은 집권하면서 기존의 강령이나 약속을 뒤엎고 자본주의 옹호의 편에 서서 노동계급의 삶을 공격해 온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구 사민주의 당들은 지지 기반과 당원 구성에서도 그동안 노동계급 비중이 약화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당들마저 단순히 ‘자본가당’이라고 보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게다가 통합진보당은 서구 사민당과 달리 아직 노동자들을 직접 배신하고 탄압하는 집권당 위치에 서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르주아 양당 구조에서 배제되고 가끔은 탄압 받는 소수파 야당 신세다. 아직 대중에게 검증되지 않은 개혁주의 당을 단순하게 서구 사민당과 똑같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한술 더 떠 노건투가 통합진보당을 명백히 대자본가들에 기반한 미국 민주당과 똑같다고 치부하는 것은 ‘원칙’적이라기보다는 ‘억지’이고 ‘비약’이다.


구체적


통합진보당의 계급 기반 문제를 민주당과 한국노총의 관계와 비유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의 성격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와 부차적 요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당은 한국노총과 일부 NGO 지도자들을 영입했지만, 이 당의 주요 재정적·인적 기반은 여전히 기업주와 부자들이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비록 계급연합적 요소가 포함되긴 했지만 여전히 이 당의 핵심 구성요소는 노동운동 관료층이다.

따라서 구체성이 전혀 없는 노건투의 분석은 개혁주의에 대한 비개입주의적·종파적 태도를 뒷받침하려는 억지로 보인다. 노건투의 분석대로라면 통합진보당이 없고 한나라당과 민주당만 선거에서 겨루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개혁주의는 일상적 시기 노동자 투쟁의 자기제한성에서 비롯하고, 개혁주의 당은 이런 자기제한성을 직업적으로 표현하는 노동 관료들에 기반하므로 혁명가들은 개혁주의를 단순히 “자본가당과 다를 바 없다!” 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심지어 서구 사민당들조차 노동운동 기반 때문에 야당이 되면 운동을 대변하며 어느 정도는 지지를 회복하곤 했다.

20세기 초 영국 사회민주연맹(SDF)은 ‘개량’이라며 신노조운동이 [비록 의회주의 방식이었지만] 정치적으로 각성한 결과로 시작한 노동당 창당에 관여하길 거부했다. 그러나 좌파의 이런 종파적 기권주의 때문에 창당 후 노동당의 개혁주의는 오히려 강화됐고, SDF는 주변화돼 영향력 없는 종파로 전락해 버렸다.

노건투의 태도는 바로 이런 SDF의 사례를 좇는 듯하다.

그래서 노건투가 다함께가 혁명적 원칙을 버린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정확하지도 정직하지도 않다. 다함께는 노건투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수술’이 아니라 자본주의 폐지를 목표로 하고, 혁명가들의 독립적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실천해 왔다. 다함께는 옛 민주노동당에 가맹 단체로 활동했지만 독자적 주장과 조직, 기관지를 포기한 적이 없다.

따라서 진정한 차이는 혁명가들의 당을 어떻게 성장시킬까 하는 전술 문제다.

그런데 원칙만 내세운 노건투의 추상적인 통합진보당 반대 전술은 실제로는 개혁주의의 우경화 압력과 맞서 싸우기보다 그 힘을 과장하며 그 싸움에서 도피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노건투 등의 좌파들은 옛 민주노동당도 전혀 지지하거나 우경화 움직임에 반대하는 당원들의 캠페인에도 구체적으로 개입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우경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논평적 반대만 한다고 진보정당의 우경화에 실망한 대중이 그들에게 갈 일은 거의 없다.

 

노건투처럼 통합진보당 전체를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규정하면, 통합진보당 당원이거나 선거에서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정치적 접점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노동 대중의 계급적 각성과 혁명적 변화는 자신의 집단적 경험 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말라고 혁명가들이 선포한다고 대중이 자동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레닌은 “대중이 있는 곳”에서 혁명가들이 작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그것은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들 [자신의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레닌《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그러므로 모순된 의식을 가진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그 경험을 공유하고 논쟁하며 개입해야 한다. 최근에도 투쟁 중인 풍산마이크로텍, 건설플랜트, 새롭게 조직화된 학교비정규직 등의 노조에서 조합원들이 통합진보당에 집단 가입했다. 사측의 현장 통제에 항거해 분신한 현대차지부 신승훈 조합원도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다. 

투쟁하거나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르주아 야당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런 노동자들을 배척해 버릴 것인가.


개입


그런데 노건투의 방식은 이런 개입 자체를 거부하고 포기한다. 심지어 통합진보당 당명으로 ‘노동’을 선택한 사람이 당내에 “24퍼센트밖에 안 된다”며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이런 노건투 방식으로는, 3자 통합은 찬성했어도 노동중심성 후퇴에는 비판적인, 모순된 노동자들의 의식에 개입하기 힘들다. 이런 태도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에 무방비 상태로 대중을 내주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주요 혁명을 살펴 보며 개혁과 혁명의 문제를 다룬 책《혁명의 현실성》에서 영국 사회주의자 이언 버철은 레닌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지적했다.

개혁주의의 강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약점 또한 운동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 이해한다면 이들을 단순히 비웃어 넘길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레닌이 말했듯이 ‘전위의 항상적인 임무를 잊어버리는 것이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고 우리 임무의 무한함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며 이러한 임무를 제한하는 것이다.’”

우경화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종파적 반대로 반사이익을 얻고 성장하겠다는 생각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을 기회로 여기고 가동됐던 사노위 플랜의 실패에서 이미 그 한계가 증명됐다.

사실 노건투는 소그룹 몇 개가 모여 모호하고 절충된 강령을 선포하는 식으로 당을 건설하겠다는 식의 사노위 플랜에 합류하지 않았다. 혁명적 원칙을 중심으로 당을 만들겠다는 타당한 문제의식이었는데, 지금 보니 종파주의 때문에 대중속에 개입하여 혁명적 원칙을 유연한 전술로 적용시키지 못하는 것같아 안타깝다.

노동자들이 경험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듯이 혁명가들도 실천에서 배워야 한다. 혁명가들은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협력해 공동 행동을 건설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주장하고 조직하는 기예를 익혀야 한다. 고립을 감수하겠다는 식으로 대중에게 최후통첩식 설교를 하고마는 것은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과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1. 타락한 개량적 기회주의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그랬는지, 노건투는 노동자세상 23호에서 다함께 비판 기사를 이경훈 비판 기사의 꼭지로 넣었다. 그런 의도였다면, 솔직히 치사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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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한미FTA 날치기가 진보운동 진영의 게으름을 깨우고 있습니다. 투쟁에 함께하는 누구나 시민들의 분노가 엄청난지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투쟁에 나선 시민들은 명확하게 ‘비준 무효, 명박 퇴진’을 외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투쟁의 거리에서, 항쟁의 계절에 가장 두드러지는 원내 정당입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일관되게 반노동·반복지·반민주 협정인 한미FTA에 반대하며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광장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다수당입니다. 거리와 광장의 정치가 부활하니 의석수에 가려진 민주노동당의 잠재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이끌 가장 힘있는 사회세력인 민주노총, 그리고 전농이 모두 민주노동당의 배타적 지지 단체인 것입니다.(물론 안타깝게도 아직 충분히 힘을 발휘하고 있진 못합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감히 연단에 오를 생각조차 못합니다. 오히려 불만과 비난의 대상입니다. 물론 주적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손학규 등이 마이크 잡아 봐야 야유나 받게 될 겁니다. 나꼼수의 정봉주 전 의원도 환호보다 탈당하라는 질책을 더 받았죠.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는 이 투쟁의 지도력 면에서 정치적 존재감을 찾긴 힘듭니다. 그것은 그들의 FTA 원죄 때문입니다. 기세를 올리는 듯했던 ‘혁신과 통합’은 쥐죽은 듯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해찬과 문재인의 모호한 입장 때문이죠. 

이들 모두 이전 정권에서 FTA 체결의 원죄가 있고, 지금도 FTA 완전 반대인지 아닌지 모호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들 스스로 이 투쟁에서 주도력 발휘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지금 터져 나오는 이 
이 분노의 쓰나미를 ‘비준 무효’와 ‘정권 퇴진’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력은 우리 진보진영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확고한 실력에 달려 있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이 엄중한 시국의 한 가운데서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결정하는 당대회를 열려고 합니다. 
 
물론 참여당이 한미FTA 폐기 투쟁에 깃발을 들고 나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환영합니다. 지금 투쟁에 나오는 시민들 중에서도 민주당 대신 지지할 반MB 대안을 바라는 마음에 3자 통합을 지지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투쟁의 대열에서 환영하는 것과 정당을 함께하는 것은 다릅니다. 오히려 지금 국면이야말로 투쟁 속에서만 진보의 단결과 외연 확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한 주장이 옳았다는 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진지한 평당원들이라면 함께 연대하면서 진짜 진보의 힘과 가치를 증명하면 됩니다. 

국민참여당은 한미FTA를 체결한 정권을 계승하는 당입니다. 평당원들과 달리 그 당의 지도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신자유주의를 앞장서 추진했던 정부와 공기업 관료 출신들입니다. 참여당은 반MB 전선에서 연대 가능 대상일 뿐 정체성과 이념에서 당을 함께할 대상은 아닌 이유입니다. 
 
지금도 이 당 지도부가 내놓은 참여당 공식 견해는 ‘노무현의 FTA는 좋았다’는 것이고, ‘통합 진보정당이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정치를 표방하면 안 된다’는 것이고,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당의 지도부는 진보를 변화시켜 야권대통합에 참여시키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노동자 중심 진보정당을 순치시켜 자신들 재집권을 위한 보조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참여당과의 통합을 위해 창당 강령을 폐기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합의한 참여당 포함 3자 통합 강령은 진보정당의 이념과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 주지 못합니다. FTA 폐기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강령에서 빠졌습니다. 
 
왜 우리가 노동자·민중의 절절한 염원을 우리의 강령에서 포기해야 합니까.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통합의 방법으로는 이념과 정체성, 기반이 다른 그들을 결코 견인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총의 결의로 탄생한 당이며, 현재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이념과 정체성을 훼손하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분열을 감수하면서까지 참여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일 합리적 근거가 없습니다.
 
FTA 폐기로 모아지는 대중의 분노와 열기는 독자적 진보정당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는데, 정작 진보정당은 거꾸로 갈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내년 의석 확대도 우리 과제입니다. 그러나 진보만이 할 수 있는 과제에서 위력을 발휘해야 의석도 확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진짜 열쇠입니다. 
 
FTA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하는 참여당과의 통합은 FTA 폐기 투쟁을 민중항쟁으로 발전시켜 투쟁 목표를 반드시 쟁취해야 할 진보진영의 책임과 과제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지금 진보정당과 진보진영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다하려면 참여당과의 통합을 중단하고 당원의 총의를 모아 ‘비준 무효, 명박 퇴진’ 투쟁에 총력 매진해야 합니다. 
 
27일로 예정된 민주노동당 당대회는 취소하거나, 굳이 개최한다면 참여당 통합 안건을 부결시키고 오히려 정권 퇴진 투쟁 건설을 결의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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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26 재보선에서 진보정당은 위기와 가능성을 모두 보여 줬다.

우선 진보정당과 후보들은 무대 위에서 별로 시선을 끌지 못했다.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얻은 표는 2퍼센트 남짓이었다. 야권연대를 위해 ‘어차피 사퇴할 후보’라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조차 최규엽 후보 선거운동이 아니라 당선이 유력한 박원순 후보와 선을 대고 약속을 받아내기 바빴다.[각주:1]

진보의 독자성을 훼손해서라도 의회에 진출하는 게 실질적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 온 게 민주노동당 지도부였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거둔 성적을 보면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민주당과 단일화하지 않고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11~27퍼센트를 득표한 것이다. 이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는 거의 모두 낙선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노원구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당선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것과 대조된다. 양천구에서 민주당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표의 70퍼센트도 채 가져가지 못했다.

반MB ‘계급’투표를 한 노동계급 청년세대가 민주당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으며 이들 중 의미있는 수가 진보정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의 실체인 것이다[각주:2]

만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대통합이 성공했다면 이 가능성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강령까지 후퇴시키며 친자본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다가 진보대통합을 망쳐 버렸다.

그 결과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의 주도권을 안철수ㆍ박원순 등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안철수 현상에는 진보정당이 제대로 공백을 메꾸지 못한 탓도 있는 것이다. 

노동자ㆍ청년들이 계급적 각성을 하며 진보를 갈망하기 시작하는데, 노동자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약해지는 역설을 자초한 것이다.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뼈아픈 패착이 아닐 수 없다[각주:3].  
 

계급적 분노
 
한편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그토록 그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던 유시민과 참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각주:4]. 참여당이 여전히 구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아류[각주:5]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분열까지 조장하면서 참여당과 통합하려 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정당성은 더욱 약화됐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은 또다시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에게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회찬ㆍ심상정 등 통합연대 지도자들도 이 압박에 무원칙하게 타협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각주:6] 사실이라면 유감스런 일이다. 

민주당의 아류로 비치는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를 진보정당이 흡수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고, 민주노총에서 불필요한 분열을 재연할 것이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일으킬 것이고, 결국 진보정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더 약화될 수 있다.

그리 되면
 ‘혁신과 통합’ 등 NGO 성향 인사들이 주도하는 야권통합 정당에 진보정당들이 들어오라는 압력도 커질 것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나 친노의 주도력은 많이 약화됐지만, 야권연대의 선거적 힘은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번째 역설인데, 야권통합의 실질적 대주주인 민주당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야권통합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당과의 통합을 고집하면 일관되게 이 압력을 거스르기도 힘들다. 참여당은 진보정당과 ‘소통합’ 이후에 ‘혁신과 통합’과 함께 야권대통합으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당과의 통합이든 야권통합이든 모두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위태롭게 하는 퇴행적 시도다. ‘노동 없는 정치’가 정치 불신의 근본 배경인데, 그 정치를 해야 할 당의 독자적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청년세대는 이번 선거에서 1퍼센트 특권층이 지배하는 기성 정치 구조가 이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계급적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각성은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희망버스’와 최근 한미FTA 저지 운동이 그 사례다[각주:7]. 이들은 조직 노동운동의 투쟁에 대해서도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세력은 급진적인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미FTA 저지 투쟁이나 ‘99퍼센트의 저항 운동’ 등을 건설하며 이들의 분노를 행동으로 조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각주:8] 

그 과정에서 반한나라ㆍ비민주당 개혁주의의 현재 수렴점인 진보적 NGO들과도 개방적으로 협력해 급진화하는 청년 대중과의 소통과 공동 실천을 강화한다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이 계급적 각성의 급진적 정서에도 부합하며, 정치적으로도 더 급진화시킬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지해 선출한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든 나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든] 그런 대중행동으로만 개혁을 성취하고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68호에 실렸다. ☞ 바로 가기

※ 서울시장 재선거 과정이나 박원순 시장 선거운동, 그리고 안철수 현상에 관한 내 논평은 이전 포스트를 보세요. 

 
  1. 박원순 선본은 나경원에게 역전당한다고 경고등이 켜진 시점에서 노조들과 협약을 맺었다. 민주노총은 우리는 박 선본의 집토끼가 아니라며 협약을 해야 선거운동과 조합원 투표를 조직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본문으로]
  2. 이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이 흐름의 현재 정치적 수렴점은 NGO·의회 개혁주의로 보인다. 일부에서 민주노동당 대표냐, 야권연대당 대표냐 하는 비판을 듣는 이정희 대표가 당 바깥에서 인기가 높은 것도 이정희 대표가 상징하는 포지션이 여기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수렴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3.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 이 약돠되지 않았다면, 정치 지형상 급진화 속도는 더 빨랐을 가능성이 높다. [본문으로]
  4. 민주당도 출마한 두 곳에서 민주노동당 등과 단일화해 나갔으나 4퍼센트, 8퍼센트를 득표했다. 경기도지사 선거 때부터 보이는 참여당의 득표력 부진은 회복 기미를 찾기 힘들다. [본문으로]
  5. 어떤 이들은 본류로 보기도 한다.참여당 지도부가 주로 노무현 정부의 친위 정치인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통합연대가 최종 결정한 결정문의 문구로만 봐서는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에 찬성했다고 보긴 어렵다. 약간 섣부른 비판이었다. [본문으로]
  7. 더 멀리 가면 2008년 촛불항쟁도 그럼 흐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8. 다른 야당과는 필요하고 서로 의견이 같은 쟁점에서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사안별 연대를 하면 된다. 통합과 사안별 연대는 다른 문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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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보선을 서울시장 선거 중심으로 나름 정리해 봤다. 종합해서 보면,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 정서가 새로운 흐름으로 결정적 영향을 미친 듯하다. 
 


1. 한나라당의 참패, 박근혜 대세론의 붕괴

자신들이 내리 세 번을 이긴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것도 불과 출마 선언 두 달 밖에 안 된 정치 신인 후보에게 보수층이 총결집한 선거에서 졌다는 것은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다. 생각할수록 통쾌한 일이다.

땅을 파면 파란 흙이 나온다는 강원도 인제에서조차 민주당에 73표차로 겨우 이겼고, 그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는 11퍼센트를 득표했다. 민심 이반의 깊이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마네기 후보가 보여 준 짜증나기 그지 없는 인신공격은 부메랑 도술을 부리며 비웃음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수첩공주의 수첩도 소용없었다.  
홍준표의 사실상 무승부 발언은 자기 자존심상 뱉은 말일 수도 있지만, 보수의 분열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일 수 있다.

박원순 진영이 이런저런 허술함을 보였는데도, 우파의 막강한 네트워크 ― 행정, 언론, 교회 등 ― 를 동원했는데도,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은 정치 불신의 핵심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게다가 20~40대의 젊은 노동자·대학생 사이에서 지지율이 형편없었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불안감을 더 증폭시킬 것이다. 
이번 선거로 이명박의 레임덕 위기는 더 깊어질 것이고, 박근혜 대세론도 수도권에서 붕괴한 마당에 한나라당은 혁신과 보수화(오히려 더 반동적으로 가는) 사이에서 분열하고 자중지란을 겪게 될 것이다. 갖가지 폭로가 자기들 사이에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1퍼센트 정부와 체제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될 것이다.[각주:1] 그러나 다음 선거가 필패라는 계산이 나온 세력은 오히려 악행을 더 밀어붙이려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질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압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투쟁이다. 



2. 은폐된 민주당의 실패 

민주당은 자신이 지지하고 사실상 캠프를 주도한 박원순 후보의 당선으로 승리의 한 축에 끼여있지만, 실상은 엄청난 내상을 입은 선거였다. 

제1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못 냈고, 기초단체장 선거는 전북 두 곳 빼고 모두 패배했다. 특히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는 박원순 후보가 앞선 곳이고, 진보신당 후보가 2퍼센트 대 득표에 머물렀는데도 10퍼센트 넘게 패했다. 박원순을 찍은 유권자가 10퍼센트 넘게 민주당 후보를 외면한 것이다[각주:2]. 서울 동대문구 시의원 선거구에선 그들이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었다. 

부산 동구청장 선거에선 참여정부 인사를 후보로 내고 문재인의 지원을 받았는데도 한나라당을 이기지 못했다. 협상 실패로 민주노동당과 따로 나온 곳에서는 부천 한 곳을 빼고 모두 낙선했고, 민주노동당은 10~20퍼센트 득표를 했다.  

야권연대의 주도력에도 손상을 입은 것이고, 자력으로 내년 총선·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드러내고 말았다. 단독으론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는 것은 10년이나 집권했던 제1야당에게는 큰 타격이다. 

또한 정치 지도자들 개인을 향한 대중적 추모 열기와 달리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냉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 줬다. 

2010년 이후 주요 선거를 돌아봐도, 민주당 후보든, 참여당 후보든 노무현 정부 적자를 자임하는 후보는 야권의 전폭 지원을 받아도 당선하기 힘들었다. 한명숙이 그랬고, 유시민이 그랬다. 올해 김해 선거와 이번 재보선(부산)도 그렇다.

반한나라당 만큼이나 비민주당 정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 박원순 선거운동의 문제점은 선거 기간 중에 쓴 글에서 별로 달라질 것이 없어 여기서는 덧붙이지 않는다. ☞ 바로 가기


3. 위기와 기회, 진보정당

그래서 위기에 빠진 진보정당에게 기회가 있긴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서울 동대문구 시의원 선거와 강원 인제군수, 부천 시의원 선거, 제주 등에서 민주당과 경합했는데도 민주노동당 후보는 두 자릿수 득표를 했다. 

서울시장 선거 야권 후보 경선에서 존재감을 못 느낄 수준이었는데도 반MB 정서가 지배한 선거에서 이런 성적을 거둔 것은 강력한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의 한 켠에 무시 못 할 진보정치 지지층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대한 불만이 대체로는 계급적 불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정당은 이런 불만을 대변하는 데 갈수록 취약해 지고 있다. 진보 양당 통합에 실패한 것은 그런 점에서 큰 아쉬움을 준다.

그러나 겨우 기초의원 한 명 후보 내서 8퍼센트 얻은 참여당과 통합 못 한 게 이번 선거에서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한다면 맞는 평가도 아닐 뿐더러 문제의 본질을 한·민 양당 구도 프레임으로 왜곡하는 것일 뿐이다. 자기비하인 것이다[각주:3]

자기 당 후보가 애초에 당선가능성 없던 선거에서 10~20퍼센트 득표로 선전했는데도 이를 높게 평가히기보다 야권이 분열하면 진다는 교훈부터 끌어내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평가[각주:4]는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잘못된 노선을 그대로 보여 줄 뿐아니라 최근 진보정당의 무기력도 어느 정도는 설명해 준다.

자신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를 어찌 발전시킬지 성찰해야지, 야권연대 협상의 지렛대로만 사용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이라는] 
원칙과 정체성이 취약해 지는 것은 자기 중심이 없다는 것이고, 스스로 야권연대의 부속물을 자처하는 것은 정세의 종속 변수를 자처한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듯 아무리 야권연대의 주도력(박원순과 안철수 바람)이 민주당 바깥에서 불어도 야권 연대/통합시 지분은 민주당이 가장 크기 때문에 부차적 지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고, 민주당은 자본가정당이므로 노동자 진보정당에게 부차적 지위는 정치적 부속물의 지위를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연대 노선을 고수한다면 진보정치세력의 분열이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험난한 내부 논쟁이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 보인 가능성은 참여당 문제로 진보대통합이 실패한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보여 준다.(정치는 그래서 ‘타이밍’이다.)  



4. 세대 투표? 계급 투표?

박원순 후보가 노동의 가치를 앞세우지도 않았고, 노동운동이나 노동자 진보정당 출신이 아니므로 계급투표를 잣대로 대는 것은 좀 어색한 일일 수 있다. 비교적 진보·개혁적인 색채가 짙지만, 신자유주의 등 진보의 대척점에 서 있는 정책과 가치에 원론적으로 반대하는지는 모호하다.

그러나 지역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20~40대/대졸 이상/직장인에서 득표율이 높았다는 것(나경원은 반대)은 이것이 계급 투표 성격을 띠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안철수·박원순 현상에 깔린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 정서 밑바탕에 노동계급 청년층의 계급적 불만이 놓여 있다는 우리 분석(☞ 관련 글 보기)을 간접 입증하는 것이다. 

최근 KDI의 한 연구원은 ILO 기준으로 하면 현재 한국의 잠재적 청년실업률이 21.2퍼센트나 된다고 분석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이 일자리와 복지를 악화시키면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미래 희망 상실)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바로 노동계급 청년층이다.

초임 삭감, 비정규직, 청년실업, 고용불안, 교육비, 비싼 물가와 양육비 부담 등이 모두 [그 이름도 기막힌]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라 불리는 이들에게 집중된 문제다.


그동안 특권층 후보들이 여러 의혹으로 꼬꾸라질 때는 대체로 부정한 방법에 대한 분노가 많았다. 이회창 아들의 병역 비리 같은 것이 대표 사례다. 그러나 이번 나경원의 피부관리 1억 원 지출 의혹은 정치인이 특권층 부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대중의 미움과 분노를 산 것이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1퍼센트 부자 정부의 계급 차별 정책이 지속되면서 경제적 양극화도 깊어졌지만, 정치적으로도 계급 분단선이 더 깊어진 모양새다. 이 각도에서 보면, 집권 이전에도, 집권 시절에도, 야당인 지금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 친자본주의 당인 참여당이 새로운 바람의 능동적 수혜자가 되지 못하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겨레>처럼 이를 세대 투표라 보는 것은 피상적인 단견이다. 

10월 22일(토)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 이들의 문제는 노동계급 청년층 다수의 삶과 요구와 다르지 않다. 이들을 함께 대변할 진보 정치가 필요하다.




5. 탈정치? 탈이념?

탈정치가 정당정치를 뜻하든 탈이념을 뜻하든 세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피상적이다. 

사람들이 의식하든 못 하든 1퍼센트 부자 정권의 부정의한 정책에 반대해, 그 정권 자체를 몰아내고 싶어하는 것 자체로 매우 정치적인 행위다. 그것은 반복하지만 계급적 정서이고, 진보적 변화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정권 심판론이 어떻게 탈정치이겠는가. 그것도 ‘부자’ 정권 심판론이었다. 매우 계급적이다. 자유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면, 이념적이다. 지금 대중은 의식했든 못 했든 매우 ‘이념’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기존 정치권에서 올곧게 이런 계급분단선을 명확히 이해하고 새 세대에 걸맞는 용어법으로 이를 대변하며 앞장서 실천하는 정당이나 인물이 없거나 미약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런 급진화는 양식있는 ‘강남’ 좌파 지지에 머물러 있다

안철수나 박원순이 비록 ‘강남’좌파라 불리긴 하나, 그래도 그들은 실제로 특권층 정치와 거리를 둬 왔고, 그들이 대중에게 제시한 삶의 가치들이 특권층만을 위한 삶이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사람들은 본다. 

그래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부자와 가난한 이,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이라고 설명한 안철수 교수의 평가는 잘못됐다. 이것이 안 교수의 본심이라면 이는 안철수 현상의 모순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모순은 다시 정리하면, 진보정치를 바라는 정서가 진보적 대중운동이나 진보정당 지지로 조직화하지 못하는 것이고, 오히려 진보정당의 분열과 무기력 때문에 진보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을 수동적으로 지지하는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6. 야권 통합론의 부상

이렇게 봤을 때, 민주당 중심의 야권통합을 말해왔던 민주당은 일단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빠졌다. 대선을 앞두고 사상 최약의 전력을 갖춘 민주당은 진로를 놓고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 당내 혼란이 수습하기 어려운 것은 단순한 내부 알력이 아니라 당 바깥의 압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도권을 완전히 잃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 밖에서 야권통합을 말해왔던 ‘혁신과 통합’도 동력의 한 축인 문재인의 실패로 의기소침한(뻘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노무현 그림자를 미래지향적으로 걷어내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이들이 어쨌든 주도력을 행사하려 하는 한 참여당은 당분간 화제도 되지 못할 것이다.[각주:5] 

그렇다고 해도 민주당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지 민주당이 없어도 된다는 것은 아닌 점도 드러났으므로 야권통합론 자체가 가장 선거적 지분이 많은 민주당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다. 그래서 야권통합을 형식적이나마 추구해 왔던 손학규 체제가 당장 흔들리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만으로 한나라당 심판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야권통합을 지지하는 정서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엔지오 출신들도 꽤 유입될 텐데 그 포지션상 통합 정당론을 지지할 것이고 한 흐름으로 모아질지는 의문이다. 민주당 주도권을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도 변수가 될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여유가 있으니 밖에서 지켜보는 입장을 유지할 것이다. 진보정당도 이 흐름을 이겨낼 배포가 없다.

이처럼 주축 세력들이 취약한데 야권통합론이 거세지는 것은 반MB 진영 안에서 논쟁과 모순을 키울 것이다[각주:6]. 그것은 각기 다른 계급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연합이 지닌 본질적인 모순이기도 하다. 

그것은 박원순 후보의 선거운동에서 드러났다. 박원순 선본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노동운동 쪽에서 요구한 정책 협약 체결을 회피했다. 한미FTA 반대 표명 요구도 거부했다. 이런 식이니 평범한 다수 지지자들이 박원순 선거운동 방식에 실망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계급의] 욕구들이 반MB 연대라는 이름으로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번 박원순 후보 선거의 정책 총괄은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담당했던 교수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는 알다시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 폭등으로 문제를 심화시킨 당사자다. 

야권통합론이 연합정당 건설로 가려면 노동을 어떻게 대변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텐데, [그리고 이것이 한 관건이 될 텐데] 통합론의 한 축인 조국 교수 같은 경우는 노동이 정당정치에서 대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노동정치 노선은 애초에 노동운동 스스로 정치세력화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사민주의 정당의 성격상 불가피하게 정치와 운동 영역의 역할 분담이 이뤄지겠지만, 최장집 교수나 조국 교수 등이 말하는 기존 개혁 엘리트 정치인의 대리주의와는 결이 다른 면이 아직은 크다. 

그러므로 야권통합론 부상은 선거 평가와 마래 전망을 놓고 진보정당 안팎에서 다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야권통합론의 계급연합 모순은 대선 이후 집권 전망에서도 논쟁꺼리가 될 것이다. 

진보정치세력에게는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눈앞에 와 있다.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의 변화 흐름은 단기적으론 선거 연대가 유리해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론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가야 한다는 걸 보여 줬다. 문제는 단기 과제와 중장기 과제가 현실에서 구현될 땐 서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7. 앞으로 필요한 것은?

이상을 종합하면, 세계경제 위기와 한국 지배자들의 고통전가 정책 때문에 세계적인 흐름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노동계급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대중 사이에서 정치적 급진화가 수 년간 진행돼 왔다. 이것이 안철수·박원순 현상의 진앙지다. 지금은 이 급진화가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로 수렴되고 있다. 대체로 반보수·반재벌·반신자유주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것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최근 99퍼센트 점거 운동처럼 행동으로 분출되고 있는데,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이들을 대변할 마땅한 정치세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당선 후 행태가 실망스러울 경우 직접행동주의로 표출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은 이들을 대변할 자격 조건은 되는데, 규모와 역량이 아직 부족하고 시야가 매우 협소하다. 지금의 ‘묻지마 야권연대’ 노선을 중단하고 진보정치의 급진적 혁신과 재통합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이 정서를 행동으로 끌어내야 계급 의식의 전진과 노동자 진보정치의 주도력을 되살릴 수 있다. 당장은 노동계급 청년들의 분노가 선거를 계기로 표출된 것인 만큼 당선한 후보와 세력에게 초좌파적 냉소와 반감을 보내기보다 그 기대감이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와 행동으로 발전하도록 조직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각주:7].

박원순 후보가 모두를 대변하겠다고 이런 요구들 수용을 회피하며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면 집권 초기에 지지층과 먼저 갈등하기 시작해 그나마 있던 개혁 동력마저 상실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조직 노동운동은 이런 불만을 노동운동의 의제로 받아 안아야 하는데, 그 방식은 대중투쟁을 회피하는 선거 방식이 아니라 노동계급 고유의 힘을 발휘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희망버스2.0’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급진화를 더 촉진할 수 있다. 좌파는 유연하되, 충분히 급진적이어야 한다



  
  1. 그 점에서 박원순 진영의 약점을 이유로 기권주의 태도를 취한 사노위, 사회진보연대 등 일부 좌파들의 결정은 아쉽다. [본문으로]
  2. 이것이야말로 창피한 일일 텐데, 양천구청장에 당선한 한나라당 추재엽은 보안사에 근무한 독재정권 출신이며, 그 시절 고문 가담 의혹이 터진 반민주 인사다. [본문으로]
  3. 민주노동당은 존재감이 약해진 정도지만, 참여당은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민주당의 아류라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내 참여당 통합론자들은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본문으로]
  4. 10월 27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모두 발언. 물론 이는 민주당과의 총선 협상을 염두에 두고 민주당에게 경고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5. 민주노동당이 통합하자고 불러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본문으로]
  6. 안철수의 행보가 큰 변수가 될 수 있겠다. [본문으로]
  7. 당장은 박원순 후보의 집회으 자유 보장과 광장 개방 약속이 눈에 띈다. 이 약속 이행을 통해 한미FTA, 한진, 비정규직, 등록금, 유성, 강정 등을 모아 한국판 99퍼센트 점거 운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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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여유있는 분은 서울시장 선거 관련 이전 글을 먼저 보시오. ☞
박원순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보며 ―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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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재보선에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심판하기 위해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박승흡 강원 인제군수 후보와 진보신당의 민동원 서울 양천구청장 후보 등 진보 후보들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거꾸러뜨리길 진심으로 바란다진보정당 후보가 없는 조건과 1퍼센트 대변 정권 심판 정서를 전제로 했을 때, 박 후보는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을 만한 후보다.

19일 발표한 “서울시민권리선언”에서 박원순 후보는 집회ㆍ결사의 자유가 “시민의 권리”[각주:1]라고 밝혔다. “주거권 보장과 강제퇴거 방지”, “고용 안정과 적정 임금 보장”, “친환경 무상급식” 같은 대중의 요구도 “[서울]시의 의무”라고 약속했다.

박원순 후보는 선거 후반부에 “오세훈 전 시장은 이명박 전 시장의 아바타, 나경원 후보는 오세훈 전 시장의 아바타”라고 비판했고, “나경원이 노동자 편입니까? 박원순이 노동자 편입니까?” 라고 노동자의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박원순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의 온갖 비방과 인신공격과 색깔론은 역겨워서 듣고 있기 괴로울 정도. 어느 트위터리안의 말마따나, 그들의 인신공격은 시궁창물이 수돗물에게 비위생적이라고 하는 꼴이다. 

그런데 선거운동 전반부에 박원순 후보의 지지도가 다소 정체하는 듯한 것에는 이뿐 아니라 박원순 후보의 초반 선거운동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첫째,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 입당을 거절한 대신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주요 직책을 모두 민주당에게 줬다. ‘야권연대’에 충실해 왔던 민주노동당마저 반발해 철수할 정도였다[각주:2].


아쉬움


이는 박원순 후보의 정책과 메시지가 민주당의 포지션에 구속되는 결과를 낳았고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선본에서 잘 들리지 않는 효과를 냈다.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에선 진보신당 후보를 빼고 민주당 후보와만 정책 협약식을 해 진보신당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親부자 反노동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 그런데 민주당은 과거의 뿌리와 현재의 행태를 볼 때, 심판할 주체가 못 된다. 새롭고 진보적인 세력이 나와서 이명박을 심판해 달라. 이것이 안철수 현상에 깔린 민심이다. 물론 여기서 안철수 교수가 이 과제에 적합한 세력이냐는 별개 문제다.

 

박원순 선본은 교육시민단체들이 모인 ‘교육연대’가 제안한 교육개혁 정책 협약을 곧바로 수용하지 않았고, 노동 부문의 정책 협약 체결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한미FTA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지금,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각주:3].

박원순 후보는 진보 진영에서는 금기시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해서 국가보안법은 “남용될 수 있다면 그 조항은 개폐되는 게 맞다”며 전면 폐지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유럽 기준으로 치면 중도 우파”라고 자처하거나 “저는 천안함 북한 소행이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도 [우파의 색깔론 공세 앞에서] 수세적으로 비춰졌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관계자가 “민심은 기성정당을 외면하면서 박 후보를 지지했는데 박 후보가 자꾸 엉뚱하게 민주당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라고 평했겠는가.[각주:4] 

박원순 후보가 부상한 것이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 정서라는 점에서 이런 행보는 그 자체로서뿐만아니라 지지자들에게도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이 문제에 관한 기초 논의는 ☞ 
안철수·박원순 현상과 진보정당의 가능성)

둘째, 박원순 후보는 이 선거를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분명한 심판의 장으로 삼지 못했다. “잘한 것도 분명히 있다”거나 “시정의 연속성을 중시하겠다”는 논법도 부적절했다.

여기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박원순 후보가 추구해 온 대안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 후보의 온정적 개혁주의는 재벌 기부와 사회적 기업 등 정부ㆍ기업과 협력ㆍ보완 관계로 일하는 “협치(거버넌스)”이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지원 같은 청년 실업 대안은 나경원과 별 차별성도 없었다.

그래서 지지자들 사이에선 박 후보가 “착한 시장 뽑기”에 나왔냐는 불만도 나왔다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박원순 후보 선거운동 출정식에서 덕담으로 “원순씨가 참 온순하십니다. 좋죠?”라고 했던 말이 사람들에게는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진보정당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심판을 위해 박 후보에게 표를 던지려는 이들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지지층에서 비판이 일고 지지율도 답보하자, 박원순 후보는 다행히 16일부터 “더이상 온순 원순 아닙니다” 하며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앞서 지적한 아바타 발언이나, 시민권리선언도 이때부터 공약으로 발표되기 시작했다. 진보 교육단체들의 요구도 공약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지지자를 실망시킨 선거운동과 지지율 정체 기간과 선거운동 변화와 지지율 반등이 얼추 비슷하게 연동되고 있다. 여론조사를 1백 퍼센트 신뢰할 순 없지만, 그 추이는 내 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걸로 보인다.

 

박원순 후보는 이제라도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해 더 선명하고 과감하게 이명박 정권과 나경원 후보를 비판하고, 급진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네거티브(무엇에 반대한다) 없는 포지티브(무엇을 추구한다)는 오히려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지지자들이 바란 건 1퍼센트 정부와 후보를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민주당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진보 활동가들은 박원순 투표로 1퍼센트 정치세력 거부 흐름과 함께하며, 재보선 이후에도 한미FTA 반대 투쟁과 ‘99퍼센트 행동’ 등 아래로부터 운동을 지속하며 독립적인 반MB 진보 대안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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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애초 10월 18일에 쓴 글이다.  

  1. 집회를 위한 광장 개방이 “시의 의무”라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선거 막판이 되자 다시 선대위로 복귀했다. [본문으로]
  3. 한국에서 2007년 이후 FTA 자체에 대한 입장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것이 돼 왔다는 점, 그 이유가 FTA는 복지 확대를 위한 정부 개입을 가로막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박 후보의 신중론은 큰 유감이다. [본문으로]
  4. 이 인터뷰는 오늘 오후에 추가한 것이다. 출처는 내일신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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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앙당 웹사이트 메인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라와 있는 중앙당 당기위의 결정사항(중앙당기 제11-02-0902 호 (경북도당당기위 제11-01호)) 중 일부입니다.


우선 제소 사유를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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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소인은 민주노동당 경북도당 경주시위원회 운영위원회(이0춘 위원장 외 운영위원 7명)이고, ... 2011년 6월 27일 피제소인 제명을 요구하며 경북도당 당기위원회에 제소하였다.

이 사건의 배경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지부 소속인 일진베어링지회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 상급단체를 변경한데 있다. 제소인은 피제소인이 민주노동당 중앙대의원이라는 당직을 맡고 있으며 금속노조 일진베어링지회에서는 부지회장을 맡고 있는 등 핵심간부로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지켜내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부합되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변경(금속노조 탈퇴)을 앞장서서 주도하는 등 민주노동당 간부로써 지켜야 할 당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실추시켰다며, 아래의 징계사유를 들어 제명을 요청하였다.

당규 제7호 제2조의 징계사유 중,

1호 ‘강령의 정신에 현저하게 반대되는 입장의 정당이나 조직의 활동에 지속적으로 공공연히 참가하거나 지원한 경우’

2호 ‘강령과 당헌, 당규 및 당의 결정을 현저하게 위배하는 경우’

3호 ‘당의 명예를 현저하게 실추시킨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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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경북도당의 판결은 당원 자격 정지 2년으로 나왔죠. 그런데 피제소인이 이의신청을 중앙당 당기위에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소인들도 수용 의사를 접고 징계 양정이 적다며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판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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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 민주노총은 서로 별개의 조직체이며 그 조직체 내부 문제에 대한 징계는 해당 조직 내부에서 해결함이 원칙이라는 점에서, 노동조합이 상급단체를 변경하여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경우 그로 인해 다른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 미칠 영향이 아무리 크고 부정적이라고 할지라도, 당이 당 밖 대중조직의 자체 진로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정치적 조언과 조력의 범위를 넘어 징계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한다. 


이에, 조직변경과 관련된 제소사유는 징계사유 1호 ‘강령의 정신에 현저하게 반대되는 입장의 정당이나 조직의 활동에 지속적으로 공공연히 참가하거나 지원한 경우’나 2호 ‘강령과 당헌․당규, 당의 결정을 현저하게 위배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 

피제소인이 조직변경의 과정에서 보인 상식선을 심히 벗어난 태도에 대해서는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당의 명예를 현저하게 실추시킨 경우(당규 제7호 징계규정 제3조 제3호)를 적용하되, 경북도당 당기위가 결정한 자격정지 2년은 너무 무겁다고 보여지므로 이를 감안하여, 주문(직위 해제)과 같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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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오히려 제소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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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위원회에 대한 권고사항

... 특히 경주시위원회에서 ‘쪽팔리니 탈당하라’는 등의 발언을 비롯하여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한 부분은 피제소인과 일진베어링 소속 당원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으리라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일진베어링에는 상당수가 탈당하였지만 기존 82명의 당원 중 아직 50여명이 당원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바, 이에 중앙당기위원회는 경주시위원회에게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대응한 부분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이 사태를 신속히 수습하며 피제소인 및 일진베어링 소속 당원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치유와 단합의 노력을 다할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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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중앙당 당기위의 결정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민주노동당은 정치적으로 후퇴하며 바뀐 새 강령에서조차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승하는 정치세력”이라고 못박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아는 이라면,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승하는 노동조합 조직이 바로 민주노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이런 민주노총의 정치적·조직적 결의가 바탕이 돼 만든 정당이다. 한마디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같은 투쟁을 계승하며 노동자운동 조직으로서 역사와 대상이 겹쳐 있는 조직들이다.

이것을 무슨 아파트주민회 다루듯이 별개 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강령과 당의 역사,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명백하다. 

물론 이는 한국노총이나 상급단체 없는 노조를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당의 강령과 정체성은 여전히 지역본부 등을 통해 한나라당 등과 유착하는 등 한국노총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견제할 때 ‘기준’에 관한 문제다. 


둘째, 최근의 금속노조 작업장에서 벌어진 민주노총 탈퇴는 모두 구조조정을 위한 민주노조 파괴 공작에 따른 것이다. 발레오만도, 유성기업, KEC, 대림자동차가 대표 사례며, 일진베어링도 그 연장선에 있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들이 해고와 징계가 난무한 공장들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당론으로 이런 노조 탄압과 구조조정 시도에 반대해 왔다. 당대회 같은 곳에서 별도로 당론을 정하는 과정이 없었던 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근친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기업주를 위해 자주적 단결권을 부정하는 일에 반대하는 것은 진보정당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라 따로 여론을 수렴하거나 찬반 토론을 붙일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의 결정을 위배한 경우가 아니라고 본 판단 자체가 당론을 심각하게 위배하고 왜곡한 것이다. 

▲ KEC지회가 폭로한 회사 측 상황일지. 아래 쪽에 회사가 국정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 있다. 출처: 금속노조



셋째, 중앙당 당기위는 오히려 제소인들에게 피제소인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관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는데,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에 역행한 사람들에게 분노한 것을 단순히 감정적 대응으로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당원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노조 자체에서 민주노조 탈퇴 투표를 하면 안 된다고 호소하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이를 뿌리치고 민주노총 탈퇴를 강행한 것이다. 그 어떤 이유도 변명이 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중앙당 당기위를 이런 이들을 엄호했으니 당기위원들이야말로 징계감 아닌가. 



중앙당 당기위의 별개 조직 논리는 어쩌면 사회민주주의적 분업 논리, 즉 정치투쟁은 당이,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 담당하면서 양 조직의 지도자들이 노동운동 관료로서 서로 비판 않고 암묵적으로 동맹을 맺는 습성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와 사장들의 민주노총 탈퇴 공작은 궁극적으로 노동조건 후퇴와 인력 감축을 위한 걸림돌 제거의 성격으로 노동조합 자체 와해가 포함되므로 서로 침묵할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서 막아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중앙당 당기위의 결정은 통상적 당·노조 분업 논리를 넘어서서 노동계급 대중정당으로서 맺는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축소하려는 최근의 경향, 선거 공학에 따라 인기없는 노동운동과 거리를 두려는 경향의 발로로 본다.

이번 중앙당 당기위의 결정은 당권파 지도부가 추구하는 인민전선 전략이 당분간 걸어갈 우경화의 경로를 생생하게 보여 줬다. 진보정당의 원칙과 정체성, 현장 투사들의 바람을 저버린 민주노동당 중앙당 당기위원회의 결정을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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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 후보로 박원순 변호사가 뽑혀 여론조사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무소속 박원순후보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을 제치고 단일 후보가 된것은 “‘안철수 바람’을 토대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 정서 등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결과”(<미디어오늘>)로 볼 수 있다.

박원순 후보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의 창립을 주도하고, 2000년 총선 낙천·낙선 운동을 비롯해 국가보안법 반대,재벌 개혁,부패 추방 등 권력 감시 운동에 앞장서 온 진보적 NGO의 대표 인사다.

이처럼 기성 정치 바깥에서 진보·개혁적 사회운동 경력을 쌓아 온 박원순 후보의 부상은 ‘제도권’ 정치에 대한 비판이 반한나라·비민주당의 온건 개혁주의로 향하는 최근 경향을 보여 주는 듯하다.


박원순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제가 만난 시민들의 공통된 요구는 ‘내 삶을 바꿔 달라’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기성 양당 구조가 전혀 평범한 다수의 삶을 보호하거나 개선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불만을 잘 보여 준다.

이런 불만이 왼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우파 ‘시민후보’로 나섰던 이석연이 박원순 후보와는 대조적으로 “기성정치의 벽을 뚫는데 한계가 있다”며  꾀죄죄하게 중도 사퇴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안철수·박원순 바람이 불면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물론이고 민주당과참여당, 친노 정치인들의 지지율이 주춤하거나 추락한 것도 이같은 대중적 반감의 한 사례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위기감이 크다. 대선 전초전이라는 서울시장 선거에 제1야당이 후보를 못 내 체면을 구겼기 때문이다. 당대표 손학규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했는데,민주당은 손학규 말고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형편이다.

이런 민주당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민주당은 부자감세,한미·EUFTA, 미디어악법 등 중요한 쟁점마다 결정적 순간에 한나라당과 타협하며 반MB대중의 뒤통수를 쳐 왔다.


진보정치


문제는 이런 상황에 진보정치 세력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그동안 진보의 독자적 목소리보다는 민주당과의 협력이나 참여당과의 통합을 더 중시해 왔다. 기성정당 질서에 편입되는 방식에 중점을 둔 것이다.

반대로 진보정치 세력의 단결을 통해 기성 정치와 구분되는 대안을 내놓으려는 노력에는 소홀했다. 그
러다 보니, 최근 몇몇 선거에서 선거연합으로 실리를 얻기는 했지만 막상 정치적 존재감은 후퇴했다.

이번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기대와 조직력보다 저조한 지지를 받은 것도 진보세력이 분열해 있고 독자적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못 드러내는 상황에서 ‘어차피 사퇴할 후보’로 비춰진 것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좌파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진보 염원 청년·대중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박원순 후보는 “노동3권만큼 중요한 시민권이 어디 있냐”며 노동계급 문제에 우호적이긴 하다.

또 친환경 무상급식공공 무상 보육고용안정과 청년 실업 해결서울시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해고자 복직[각주:1]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를 위해 “토건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보편적 복지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진보진영은 박원순 후보와 이러한 진보적 요구·과제들을 지지하되, 이명박 정부와 우파의 방해를 뚫고 이런 과제들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 독립적인 대중행동 건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겨운 적반하장 검증론


한나라당은 아름다운재단이 재벌 기부 받은 것을 두고 “위선진보”라고 비난한다청와대 대통령실장 임태희도 “순수한 나눔이 아니면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우선 ‘도적으로서 완벽한 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런 말을 할 자격 자체가 없다.

SLS그룹와 부산 저축은행들의 로비자금이 청와대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것이“순수한 나눔”인가불법 탈세를 저지른 이건희 사면에 앞장선 자들은 또 어느 당이었던가이 정부야말로 재벌의 ‘차떼기’후원 대가로 탈세,노조 탄압산재 노동자 외면감세 혜택을 줘 왔다.

임태희는 “자선사업하는게 대기업의 본분은 아니”라고도 했는데기업의 공익 기부는 면세 혜택을받기 때문에 기업들 스스로 이미지 전략으로 활용하는 ‘영리’ 사업일 뿐이다

오히려 최근 “따뜻한 자본주의”니 “자본주의 4.0”이니 하면서 ‘기부’를 강조하다가 이제 박원순을 비난하는 <조선일보>의 행태가 더 일관성 없고 황당무계하기만 하다. 

늘 뒤가 구린대가성 돈을 받아왔던 자들 눈에 세상이 구려 보이는건 똥개 눈에 뭐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그래서 한나라당이 박원순 후보를 “청문회 수준으로 검증”하겠다고 했을 때,한 네티즌은 “무조건 봐 주겠다는 뜻”이라고 비웃었다[각주:2].

사실 한나라당의 속마음은 “좌파 야합 정치쇼”라는 마녀사냥 용어에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2008년 총선에서 개혁 공천하겠다며 박원순 후보를 “전국구 1번자리”인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다김문수가 두 번이나 박 후보를 직접 찾아갔다. 아름다운 재단에는 이명박도 기부한 바 있다그냥 자기들끼리 “우파 전향검증쇼”나 하는 게 어떨까.


온정적 개혁주의
 

우파들의 헛소리와달리 박원순 후보의 정책과 대안은 온정적 개혁주의다.

박원순 후보는 사회적 기업을 통한 복지 제공이 공공복지의 보완 구실을 하며 일자리 창출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이것은 좋은 취지와 부분적으로는 현실가능한 정책을 담고 있지만경제 위기와 양극화의 진정한 원인 에도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기업도 이윤 논리를 따르는 ‘기업’이므로 돈 없는 복지 소비자인 서민들에게 복지 전달자 구실을 하려면 결국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비용 절감 압력도 피할 수 없다. ‘아름다운 가게’조차 박봉을 감수하는 직원과 무급 자원봉사자들 없이는 유지가 어려운 상태다.

참여연대에서는 정부와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시민운동을 표방해 온 박원순후보가 아름다운재단부터는 정부와 대기업 후원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기업’이 복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의도치 않게 복지의 민영화라는 신자유주의에 부응할위험이 있다.

그래서 보편 복지는 부자 증세로 국가의 복지 재원을 늘리고 제도화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일자리는 국가의 직접 투자로 공공부문에 복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보다 더 효과적이다.

것은 재벌에게 “나눔”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친기업 정부·재벌 체제에 맞선 정치적 대중투쟁으로만가능하다.

그런데 박 후보는 “시위는 어차피 사그라지게 되어 있[]”면서“참여연대 15천명 회원이면 간사 50~60명이 지속적으로 사회의 맑은 샘물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말한 바 있다. 대중의 주체적 행동을 중시하기보다는 대중을 공익적 엘리트들의 수동적 후원자로 여기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기업 방식의 허약함은 이명박이 아름다운재단의  파트너인 하나은행과 미소금융을 하면서 아름다운재단의 
마이크로크레딧(서민소액저리대출) 사업이 파탄난 데서도 드러난다.

박 후보는 “시민운동을 적처럼 대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미소금융 사례에서 보듯 최근 시민운동이 중요시해온 협치를 곳곳에서 파괴했다. 

그 결과, 시민운동도 정치세력화해야 한다는 정서가 생겼는데, 그 대표주자가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의 빅텐트론이다. 박원순 후보의 출마도 이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데, 이는 빅텐트론에서 보듯 여전히 민주당 의존성을 버리진 못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박원순 후보로 모아진 기대감과 정치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박 후보가 내세우고 힘겨운 서민과 청년들이 공감하는 소박한 이상조차도 민주당과의 공동정부에 의존하는 방식보다는 독립적인 대중행동에 바탕해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 이 글은 일부 축약해 <레프트21> 66호에 실렸습니다. ☞ 기사 보기

 

  1. 상당히 민감한 공약이며 당선된다면 꼭 지켜져야 하는 공약 1순위를 다투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본문으로]
  2.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인사청문회 대상 중 82퍼센트가 위장전입과 투기 전력자다. 탈세도 심각하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인사청문회를 무사통과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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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925국민참여당이 통합 대상임을 확인하려는 임시당대회를 소집했다. 그것도 수임기관 내부의 이견 때문에 합의가 안 되자, 당권파 지도부가 직접 대의원 서명을 받아 당대회를 소집했다.

이런 초유의 상황은 당권파 지도자들의 참여당 통합 의지가 강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당 안팎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함께 보여 준다.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지 않는 김성진 최고위원조차진보신당에서 부결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국민참여당과 하자는 태도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다.

물론 진보신당 독자파가 진보 대중의 단결 염원을 거부한 것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 한 요인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도 아닌 국민참여당과통합하겠다는 것이 정당화될 순 없다. 이정희 대표도 인정했듯이진보정치대통합은 진보정당이 분열되어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지지자들의 요구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 부결 이후에 진보신당 통합파 지도자들과 민주노총 임원들, 진보 지식인들이 결성한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통합연대(이하 통합연대)가 진보대통합을 다시 추진할 수 있도록 인내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민주노동당이 이번 당대회에서 참여당과의 통합을 결정하면, 이들을 내치면서 진보대통합을 거의 파산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이 반복돼 오면서 진보대통합이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는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감동이 아니라 짜증과 상처들”(손호철 교수)뿐이게 된 것이다.

짜증과 상처를 낳은 핵심은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다. 참여당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자·민중을 고통스럽게 한 정권을 계승하겠다는 당이기 때문이다.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금속노동자 선언은노동자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경악스러운 소식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런 역사 때문에 권영길 의원은참여당이 통합하고자 한다면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고 건너야 할 강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이의엽 정책위원회 의장은 최근통합의 길에서 과거를 불문하겠다어떤 조직적 성찰이나 반성, 이런 얘기를 어떤 결정도, 표현도 한 바 없음을 명확히 말씀드린다며 참여당에게 구애했다. ‘묻지마 통합을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참여당 지도부는 이미 민주노동당 수임기관의 간부를 비공식적으로 만나참여당이 논의에 참여하는 강령의 작성이 새 정당 참여의 필수 요건이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경악

 

논의에 참여해서 참여당은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참여당의새로운 진보정당 추진위원회강령정책분과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진보 양당이 얼마 전 합의한 강령 초안이전반적으로반기업 정서가 드러나는  편향적 태도를 담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업에 부담을 줄파견제 철폐적시되는 것경계하며, “‘무상의료’, ‘무상교육’[]…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여당이 ‘5·31 합의문을 동의한다고 했던 것이 결코 진심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진보 양당의 강령 초안은 5·31 합의문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당이 5·31 합의문에 동의했다’는 근거로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던 세력은 정당성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이의엽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런 모순을 해명하기는커녕 “[5·31 합의문] 문구 수정은 당연하다유연하고 대중적으로 가다듬어야 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참여당이 진보를 향해 다가오고 있으니 통합할 만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진보의 가치를 포기하면서까지 친자본주의 정당과 통합하겠다는 것이 진정한 의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정치의 성장을 위해 외연 확대는 필요하지 않나 하는 고민은 있을 수 있다. 세력이 있어야 힘이 있고, 힘이 있어야 진보와 개혁을 쟁취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정서를 이정희 대표는 921일 당원 호소문에서진보정당이 더 이상 언제까지 무력하게 국회 안에 존재하는 것에서만 의미를 찾겠습니까. … [국민들은] 우리가 표 찍어 주고 이기게 해 줄 테니, 제발 합치기만 하라고들 하십니다하고 표현했다.

민주노동당 송재영 경기군포위원장도참여당 합류가 오히려반신자유주의 정치 전선을 확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참여당 견인론이다.

물론 몇몇 쟁점에서 참여당과 공조를 취할 수도 있다. 오세훈 투표 거부 운동 같은 쟁점은 함께하는 것이 유용했다. 세력 확대나 의석수 늘리기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개혁을 쟁취할 동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미FTA를 찬성하고무상의료’, ‘파견제 철폐를 거부하는 당과의 통합이 어떻게반신자유주의 정치 전선을 확대하는 것일 수 있겠는가. 노동자 정당인 민주노동당은파견제 철폐를 요구하지만 참여당은반기업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이런 계급적 이해관계는 화해불가능한 것이므로 참여당과 진보정당이 합당한다고덧셈의 정치가 이뤄질 순 없다참여당이 “’노동자 정당’의 면모를 보이는 것을 경계”하는 친자본가당이기 때문이다.

정희 대표는 “당원들의 힘”이 있기에 “진보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하지만, 이 민주노동당은 좌파적 창당 강령을 폐기하는 등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참여당과의 통합을 위해 진보의 가치들을뺄셈하고 있다.

반면 참여당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민주노동당이계급적 편향성을 못 벗었다며, 통합하면민주노동당 당원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겠다고 한다.

참여당 창당 주역인 천호선은 그 지향점을중도적인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819일 발표한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금속노동자 선언문의 지향점과 완전히 대조적이다.

통합 진보정당은 노동자계급, 특히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이어야 하며, … 거리에서 대중과 함께 싸우는 정당이어야 한다. …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노동자가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 변혁적 가치와 지향을 분명히 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반민주적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막고 개혁을 쟁취하려면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핵심이다. 통합진보정당은 이것에 도움되는 수단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력적인 투쟁이 진보의 대안을 현실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할 때야말로 진정한 외연 확대가 가능하다.

그래서노동 쪽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 실제로는 힘을 못 쓰게 됩니다라는 강기갑 의원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권영길, 천영세, 강기갑 등 민주노동당 전 대표들까지 반대하는데도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가 계속된다면 외연 확대는커녕 민주노동당뿐아니라 민주노총까지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진보대통합에 적극적이었던 진보교연 김세균 상임대표도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안이 통과된다면, … 민주노동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국민참여당 배제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들을 최대한 결집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참여당과의 통합안이 통과됐을 때, 이런 반발이 어떤 분열과 파장을 낳을지 지금으로서는 분명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안철수 신드롬으로 표현된 기성 정치의 위기는 대중과 유연한 방식으로 만나되, 기성 정치와는 결이 다른 진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안철수와 박원순이 뜨는 동안 민주당·참여당과 유시민의 지지율이 정체·추락한 것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따라서유연한 진보는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면서 그 원칙을 표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권영길 의원의 말은 일리가 있다.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과가 무엇이든,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며 노동자 단결과 투쟁을 위한 진보대통합을 추구했던 운동의 성과와 결속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계속 이어져야 한다.

 

 
※  이 글은 약간 축약돼 <레프트21> 65호에 실렸습니다. ☞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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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고 논쟁해야
 


민주노동당 게시판에서 일부 당원들이 이정희 대표를 비판하는 당원들이 ‘출신’과 ‘근본’을 따진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어제 후다닥 써서 글을 올렸는데, 꼼꼼히 다듬지 못해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다시 다듬어 정리를 했다. 

일단 참여당 통합에 반대해 이정희 대표를 비판한 당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왜곡이다. 나만해도 정치적 과거 그 자체 때문에 진보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거나 출신 성분을 따진 바가 전혀 없다. 내가 펌한 최미진 기자의 <레프트21> 기사도 과거 그 자체를 비난하진 않았다.

사실 출신이나 과거 등은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평가할 때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현재의 선택과 실천이다. 자신의 출신 배경 대신 노동자운동의 대의를 따르겠다는 정치적 선택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무현이 부자 가문이나 명문대 출신 엘리트라 반민중 정책을 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혁명가들의 경우를 봐도 출신보다 조직적 실천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 엥겔스는 자본가 집안에서 태어나 혁명 활동 내내 사장이었고, 레닌이나 트로츠키도 여유있는 중간계급 가정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출신 배경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늘 인생에서 앞세웠다.
 
민주노동당의 노동자·농민 당원들도 권영길 전 대표에게 언제 서울대 출신이라고 비난한 적 있던가.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 중엔 서울대 출신도 있었고, 고졸의 여공, 농민 출신도 있었지만, 당원과 지지자들은 그들을 학력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단지 진보의 원칙을 지키고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권리를 옹호하는 데서 하나 돼 앞장 서길 바랐다. 

돌아보면, 민주노동당이나 아니면 다함께를 포함한 당내 좌파들이 개인의 과거 그 자체를 문제 삼아 진보로 오겠다는 사람을 막은 적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미FTA 반대 투쟁 국면에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노무현 정부 비서관 출신 정태인 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실제로 한미FTA 운동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정태인 씨를 환영했다.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 부족한 민주노동당의 법안 발의 요건을 채워주면서 반신자유주의 정책에 함께 반대했던 임종인 전 의원이 열우당의 기득권과 단절하겠다며 탈당했을 때, 많은 당원들이 그를 격려했고 안산 재선거에서 당이 공식으로 그를 진보 후보로 선정하고 지원했다. 나는 그 때 민주노동당의 결정을 지지했다.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과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현재의 행보와 연결될 때다. 그 출신 배경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지금의 실천으로 반영되고 있을 때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손학규가 야권연대한다고 깝죽대다가 가끔 한나라당을 돕는 뻘타 날리면,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재집권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역시 한나라당 출신은 안 돼’ 하고 말한다.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대해 우리가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도 같은 원리다. 

따라서 누군가가 진보에 가담할 때는 정치적 과거 그 자체보다 과거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단절하냐가 더 중요하다.  

한편, 애석하게도 계급투쟁에서 대체로 지배자들이 더 계급의식적이다. 그래서 지배자들 편(지배계급 성원/그를 돕는 국가관료나 전문가/대체로 친체제 성향인 중간계급 등)에서 분열이 생겨 우리 편에 가담한 인물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편의 도덕성과 힘의 증거다. 그것은 우리 편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물론,  이건희, 정몽구, 전두환, 박근혜, 조중동 사주들 같은 이들에게서 개과천선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런 착각은 특정 집단들이 딛고 서 있는 사회적 존재조건/이해관계(토대)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한 개인이나 존재조건이 다른 이데올로기 동조자들이 개인적으로 과거의 속성에서 변화할 수 없다고 절대화하는 것은 경직되고, 결정론적 인식이다. 

그 과거를 공유하는 집단 내부에서 분열과 단절이 일어날 가능성 등을 우리 인식 상에서 부정하는 이런 태도는 좌파의 행동 반경을 불필요하게 좁고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각주:1]

적지 않은 2008년 촛불항쟁 참가자들이 진보정당에 지지를 보내거나 가입했다. 대체로는 그 전에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다가 실망한 사람들, 아니면 정치에 크게 관심 없던 사람들이었다. 공통점은 反한나라 反이명박 非민주였다. 

참여당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이 이런 입당을 반대하거나 문제라고 한 적이 결코 없다. 오히려 이들을 더 끌어들일 조직적 수단을 강구하자고 주장했다. 진보대통합도 그중 하나였다.[각주:2]   

이런 예만 봐도 참여당 통합 찬성파 당원들이 반대파 당원들에게 [마치 옛 인민군을 연상시키는 용어인] ‘근본과 출신성분을 따지며 편가르기 한다’고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왜곡과 모략에 가까운 짓이다. 다함께 등은 진보정당이 우경화하는 방식으로 개혁적 대중을 전취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이정희 대표의 친노적 과거에 관해 말하자면, 최근 이정희 대표의 현재 행보가 여러 비판적 논자들에게 과거 친노 행보를 떠올리게 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전혀 다른 견해도 있다.)

이정희 대표는 과거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강금실을 지지했다. 2007년 대선 예비경선에서 한명숙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각주:3]

그런데 지금 공교롭게도 이정희 대표가 당권파 실세 지도부를 등에 업고 참여당과의 통합을 앞장서 그것도 매우 비민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의 한명숙 후보 단일 후보 만들기에 앞장섰다. 유시민과는 공동으로 대담집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과정이 매우 비민주적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의 사퇴와 민주당 후보 지지는 당대의기구 어디에서도 논의되거나 승인된 바 없다.

지금은 당대회는 진보진영과 통합하라고 결정했는데도, 진보정당이 아닌 참여당과 합당 사안을 비공개 수임기관회의에서 결정하려 하고, 수임기관회의는 당대회 3분의 2 결정사항인 이 문제를 어물쩍 과반수로 통과시키려 한다. 당내 대의기구를 통한 토론을 회피하면서 요상한 설문으로 한 당원 여론조사로 분위기를 조성해 이런 비민주성을 덮으려 한다. 
참여당 통합 문제로 진보신당과 통합이 불발되게 생겼는데도 막무가내다.

발언 수준도 과도하고, 그 기준도 민중운동진영보다 참여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노무현 정부의 반민중적 정책들에 대한 비판을 단순한 감정적 ‘앙금’으로 치부하고 참여당 인사들의 과거를 묻지 말자더니,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에 진보세력이 참여해서 잘 되도록 도왔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이정희 대표의 과거 평가가 맞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단상 점거까지 하는 내부의 격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지만, 얻은 것 하나 없이 비정규직 악법과 악질적인 노사관계로드맵을 받았을 뿐이다. 민주노동당도 내부 논란이 있었지만, 2004년 4대 개혁 입법에 개혁공조로 협조했다가 열우당이 스스로 포기하는 바람에 뒤통수만 맞고 말았다. 

진보에게 책임이 있다면, 더 가열차게 투쟁하지 못해 노무현 정부의 반민중 정책을 막지 못한 데 있다. 헛된 기대로 시간을 끌다가 기회를 놓치고,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갈까 봐 제대로 힘을 동원해 싸우지 못했다. 지금 이정희 대표의 반성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성찰해야 진보가 혁신된다

과거에 대한 성찰이 현재의 실천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정희 대표의 입당 전 과거보다 입당 후 과거를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면 입당 전 과거는 개인의 과거지만, 입당 후 과거는 민주노동당의 의원과 당 대표로서 현재 실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행동한 입당 후 과거, 곧 정치적 현재가 진짜 문제다. 헌정회 우대법 찬성 사건, 호전적 대북결의안 기권 사건, 한-EU FTA 때 뒤통수 맞은 사건, 당 강령 개악, 지역구를 이해찬에게 물려받은 일, 거듭 당대의기구에서 급진적 정책에 반대했던 일, 현대차 비정규직 때 농성 해제 종용에 참가한 일 등. 


물론 입당 후 이정희 대표가 잘못만 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나는 쌍용차 때 공장에 뛰어들어가고 국회에서 온 몸을 던질 때, ‘이제는 망치를 들어 벽을 부숴야 할 때’라며 거리투쟁을 호소할 때는 사심 없이 칭찬하고 함께했다. 
말그대로 잘 한 건 지지하고, 못 한 건 비판해왔다. 나는 그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고 일관성을 지켜왔으니 껄끄러울 것도 없다.

한편, 대중운동 출신이 아니라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도 조야해서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 비판은 좀더 맥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의 출생과 기반 때문이다. 

이 당은 민주노총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하기로 결의하면서 탄생한 당이다. 민주노총은 이 당이 정치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에서 돈과 사람의 핵심 젖줄이었다. 민주노총 기반 때문에 성장을 못했다는 주장도 2002년~2004년까지 선거적으로 성장했던 것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 

민주노총 공식기구와 조합원들은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 통합 진보 정당을 지지한 것인데, 아무리 살펴 봐도 참여당과 합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도 이 때문에 참여당 통합 논의가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이정희 대표가 한진중공업에서 잘못된 합의를 한 채길용 집행부를 비판하면서 민주노총이 그를 제명해야 하고, 연대파업으로 한진과 유성, 전북 버스 등의 투쟁 승리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대중운동 출신이 아니니 어쩌지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정희 대표가 참여당은 통합 대상이 아니라 하고 진보신당에 대한 과거의 앙금을 씻자고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호소했다면 친노 과거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정희 대표가 진보정치의 외연 확대를 위해 거리로 나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올곧게 대변하는 유일한 세력이 되자고 했다면 엘리트 출신이니 뭐니 하는 조야한 비난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정희 대표가 기층 투쟁의 요구를 대변하기보다 단순한 정치적 중재자가 되려 하고, 더 나아가 그런 정치관에 기초해 매우 비민주적 방식으로 친자본가정당들과 당을 합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기반, 원칙까지 흐리는데, 민주노동당이 맺고 있는 노동 등 기층 운동과의 관계 때문에 [이런 우경화 행보가] 민중운동 전반에 혼란과 분열을 낳을 수 있어 반대하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며 논쟁해야 한다. 최소한 이정희 대표를 옹호하려는 논자들은 일부의 과잉 표현을 빌미 삼아 비판자들을 싸잡아 매도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쟁점은 이정희 찬반 논쟁도 아니고, 자주파 찬반 논쟁도 아니며, 진보의 외연 확장 찬반 논쟁도 아니다. 

진보의 원칙을 지키며 외연을 확대하자는 주장과 우경화해 외연을 확대하자는 주장 사이의 논쟁이다. 우리는 참여당 합당 아니면 진보의 외연 확대가 불가능한 것처럼 구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고 생각한다. 왜곡된 논점이 아니라 정확한 논쟁 구도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단결해 경제 위기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에 선다면, 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1. 그래서 노동자주의가 초좌파주의가 만나면 매우 경직된 원칙과 전술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민주노동당의 성격, 체제에 정상적으로 뿌리내린 노동조합의 구조 등 개혁주의를 분석할 때 특히 그렇다. [본문으로]
  2. 그 와중에 노무현 자살과 참여당 창당으로 그 부근의 정치적 공백이 부분적으로 메워졌고, 지금은 야권연대 노선이 대체로 이 공백(민주당에서 왼쪽으로 이탈했으나 기존 진보정당 수준까지는 채 오지 못해 그 오른쪽에 존재하는 수백만 명의 대중, 특히 새세대 청년들)을 채웠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진보대통합 논의가 야권통합의 압력을 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본문으로]
  3. 2008년 민주노동당 비례 후보로 영입 당시 인터뷰에서 이정희 대표는 강금실 지지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었으므로 흠이 될 문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형식적으론 맞지만, 친노와 진보정당은 당시만 해도 결이 완전히 달랐는데, 좀더 정치적 단절 과정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지금도 갖고 있긴 하다. 문제는 당시 당 지도부가 급하게 전략공천을 밀어붙이면서 그런 민주적 과정을 외면한 탓이 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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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노혁추 비판: 진정, 진보대통합의 우경화에 파열구를 낼 수 없는 것은 누구인가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급진적 성격의 창당 강령을 폐기하고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전망 속에 참여당과 당 통합까지 시도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개입하면서 진보대통합의 우경화를 저지하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우경화하는 진보대통합을 폭로하면서 진보대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도 있다. 진보신당 독자파가 대표적인 경우이지만,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와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이하, 노혁추)도 바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정당이 아니라 “부르주아 좌파정당”에 불과하고 이들이 추진하는 진보대통합은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의] 재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함께가 이런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그 속에서 우경화를 저지하려고 투쟁하는 것은 “대중의 꽁무니를 쫓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최근에 발표한 <사노위>15호 “다함께, 자신의 모순을 말하라!”와 16호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 ― 진보정치의 파산에 대한 수줍은 자기고백”, <혁명> 창간준비 1호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진보대통합, 처음엔 비극(悲劇) 이젠 소극(笑劇)!” 등의 기사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얼마 전에 격렬한 논쟁 끝에 분열한 사노위와 노혁추가 이 문제에서 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다함께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사노위 분열에 대한 다함께의 분석과 평가(전지윤,《마르크스21》10호, “사노위의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에 대해서는 둘 다 약속한 듯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마치 외부에 화살을 돌리면서 자신들 내부의 난점은 회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물론 현재 진보양당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진보대통합의 방향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한다는 점에서는 두 단체와 다함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그 외에도 두 단체와 다함께는 공통점이 많다. 자본주의를 적당히 고쳐 쓰자는 개혁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는 입장도 같고, 이를 위해서 혁명가들의 독립적 당이 필요하고 이런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도 같다.

따라서 이들이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의 지향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 어떤 ‘진보’도 현재의 막장 정치지형을 넘어설 수 없다”(사노위)면서, 마치 지금의 대립이 혁명적 당을 건설하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대립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대립은 혁명가들이 노동계급 대중의 개혁주의 의식과 조직에 연루를 맺고 그 속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혁명적 당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계급 대중 조직과 연루되길 회피하면서 그 밖에서 혁명적 당을 건설할 것인가에 있다.

“자본주의적 노동자당”

두 단체는 민주노동당 같은 노동계급 대중조직에 연루를 맺고 개입할 필요성을 부정한다. 여기에는 민주노동당의 성격에 대한 혼란이 깔려있다.

예컨대 사노위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며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성격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노혁추는 민주노동당이 강령 교체로 “노동자정당이라는 성격조차 잃게”됐으며 “부르주아 좌파 정당”이라고 말한다. 또 진보정당들이 “노동자당을 참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레닌과 볼세비키는 확고한 전략적 원칙과 전술적 유연함을 통해 결국 대중에 뿌리내리고 역사상 최초츼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했다.

이런 주장은 개혁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일부 합리적 핵심은 있지만, 옳다고 볼 수 없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영국 노동당을 일러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개혁주의 정당이 노동계급에 기반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개혁을 목표로 삼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런 정치로는 두 계급의 이익이 충돌할 때, 일관되게 자기 기반인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저항과 순응이라는 대립물이 복잡하게 통일된 모순적 혼합물인 것이다.
따라서 레닌은 개혁주의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그 당이 기반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민주노동당도 자유주의 정당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표현체로서 등장했다. 투쟁 속에서 각성한 [그러나 혁명 투쟁의 경험은 없는 한국의] 선진 노동자들의 첫 독립적 정치 표현체가 개혁주의정당인 것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지금도 여전히 인력과 재정에서 조직 노동자들,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주로 노조 상층 간부들을 매개로 한다. 당 지도자들과 노조 지도자들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에 개혁주의적 분업을 따른다. 당은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성에 치묵하고, 정치 활동은 선거와 의회정치로 협소화된다. 그래서 이 당은 운동 안에서 모순적 구실을 한다.

그래서 다함께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을 환영하면서도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기성 권력 체제는 민주노동당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덕망’ 있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 “장외 투쟁”을 삼가고 의회 내에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부르주아 정당들과 “상생”하라는 것이다. … 민주노동당은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압력에 조금씩 적응할 것이다. (최일붕, <다함께>30호, 2004년 5월1일)

그러므로 다함께가 “민노당에 대한 분명한 정치적 규정을 회피”(사노위)했다는 비난은 근거 없는 것이다. 다함께는 이 당의 개혁주의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당이 노동운동과 맺은 유기적 관계를 보고 이 당에 개입해 온 것이다. 이 당의 노동계급적 기반 때문에 노동운동의 쟁점들이 당내에 반영되고, 이 당의 정책과 실천이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최근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민주당 비판을 회피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모두 파업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조합원들이었다. 투쟁 상황이 당내 쟁점으로도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이런 관계를 이용해 노동자 대중과 그 운동 속에 개입하고 활동하면서 스스로를 훈련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을 주요한 도전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와 진보대통합

민주노동당 강령 논쟁이나 진보대통합 쟁점에 개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있던 반자본주의적 요소를 일소하는 창당 강령 폐기에 혁명가들이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우경화를 막는 주요한 과제였다.

제도권에 진출해 의원까지 배출한 진보정당의 강령에 반자본주의적 요소가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선전·선동을 위해서도 유리한 것이었다. 사회주의가 ‘소수 괴짜들의 주장’이 아니라는 상징적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같은 이유로] 민주노동당의 강령 후퇴는 그 상징적 효과 때문에 노동운동의 급진성을 후퇴시키고 혁명가들에게도 불리한 조건을 만든다. <조선일보>가 ‘민주노동당은 제도권 정당 중에서 유일하게 강령에 사회주의를 담고 있었다’며 강령 교체를 환영한 이유이기도 하.

민주노동당을 우경화시키려면 바로 노동운동과의 유기적 관계 때문에 노동계급 기반과 멀어지거나, 아니면 이 운동의 전투성을 약화시켜야 한다. 아직 이들은 노동계급 기반가 단절하기보다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약화시켜 수동적 기반으로 만들려는 것으로 보이나.

따라서 혁명가들은 노동운동의 전투성과 급진성을 약화시키는 맥락에서 추진된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를 반대하는 운동을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건설해야 했다.

실제로 다함께는 이번에 강령 후퇴 반대 투쟁을 통해 민주노동당 안팎의 노동자 대중을 향해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ㆍ선동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강령 후퇴에 반대하는 전투적 소수파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당대의원 대회에서 노동조합원들, 심지어 자주파 활동가들까지 포함해 대의원 3분의 1이 강령 후퇴에 반대표를 던지게 됐다.

강령 후퇴가 “이제야 자신들의 계급적 본성을 드러내 제 자리를 찾아간 것”(노혁추)일 뿐이라며 냉소하며 반대 운동을 회피해서는 결코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없다.

혁명가들이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그 과정에 개입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노혁추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은 총선ㆍ대선 선거 대응을 위한 개편”일 뿐이라고 냉소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면적 진실일 뿐이다. 진보대통합은 단결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이기도 하다는 것을 봐야 한다. 최근 실시한 금속노조 조합원 여론조사에서 73.8퍼센트가 진보대통합에 기대감을 나타냈고, 88.7퍼센트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비슷한 여러 여론조사와 같은 결과다.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 다수는 아직 통합 진보 정당을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표현이라고 여기고 노동계급이 이 당으로 단결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자신의 독자적 조직과 정치를 유지하면서도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통합 진보 정당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고무하고 투쟁 건설에 유용한 구실을 하도록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후통첩

물론 현재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강령 후퇴와 참여당과 통합 등을 통해 진보대통합을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 재판”(노혁추)으로 몰아가려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우경화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참여 자체를 반대한다”(노혁추)면서 단지 밖에서 비판적 폭로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밖에서 폭로하면서 “노동자들은 즉각 민주노동당과 단절하고 진정한 계급정당을 고민”(노혁추)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그 과정에 개입하면서, 진보대연합이 참여당과 통합이나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 등으로 나가지 않도록 투쟁하는 게 더 나은 대응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진보정당을 버리고 혁명정당으로 오라’고 최후통첩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혁명가들의 입장과 노선이 왜 더 올바른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사노위와 노혁추는 이런 관점이 없다. 심지어 노혁추는 “노동자들의 99퍼센트 이상은 민주노동당의 밖에, 90퍼센트 이상은 민주노총의 밖에 있지 않은가?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미래”라고까지 주장한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개입할 생각은커녕, 거의 인연을 끊자는 식인 것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밖에 있는 노동자 90퍼센트’의 다수가 민주당이나 심지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이런 종파적 태도의 이면에는 진보정당들의 우경화가 오히려 왼쪽의 공백을 낳아서 급진좌파에게 유리한 기회를 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노위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통합을 원한다? 그렇다”면서도 “진보대통합의 기만성을 폭로해 나가야 한다”고만 주장한다.

조직 노동자 다수가 영향력을 받고 있는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이 우경화하는 것을 저지하고 방향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폭로하면서 기다리면 자기들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헛된 기대만 하는 셈이다. 운동의 우경화를 방관해 종파가 성장하겠다는 발상은 종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레닌은 “반드시 대중이 있는 곳에서 작업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아무리 반동적일지라도 프롤레타리아나 반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있는 기구들과 협회 및 결사체들에서 체계적으로, 참을성 있고, 끈덕지고 끈기 있게 선전과 선동을 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어야만 하며,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이런 대중 속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 대중을 반동적인 지도자들, 부르주아지의 앞잡이들, 노동귀족들, 또는 부르주아화한 노동자들의 영향력 하에 내버려둠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개혁주의 조직과 단절해야 혁명가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이런 종파적 자세는 결과적으로 진보대통합 연석회의에 참가신청한 다함께를 반자본주의 단체라며 배제한 채 우경적 조항을 삽입하고
, 참여당 통합을 기정사실화하려 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좌파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라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태도를 결과적으로 [의도하든 않든] 도울 될 뿐이다. 이대로 된다면 그 상황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사노위와 노혁추처럼 개혁적 진보정당과 어떤 협력도 할 수 없다는 종파적 태도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책략에 이용돼 우경화를 재촉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만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이 당 지도부의 우경화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전투적 당원 노동자들과 소통하거나 대화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의 우경화, 계급연합에 파열구를 낼 수 없”(사노위)는 것은 진보대통합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다함께가 아니라 오히려 사노위와 노혁추다. 이들은 혁명가들이 독자적인 강령과 조직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 보고, 독자적 강령과 조직을 바탕으로 현실에 개입하며 유연한 전술을 구사할 필요성은 외면해 버린다.(그 점에서 두 단체는 당 건설과 운동 개입을 혼돈하고 있다.)

전자는 후자를 위한 당연한 전제다. 다함께도 민주노동당 개입 활동을 위해 독자 조직과 [기관지 중심의] 실천, 강령을 포기한 적이 결코 없다. 그러나 당 건설 선포만 하면 나머지 과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노위와 노혁추는 한 무리의 혁명가들이 모여 강령에 합의하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선포하면 자동으로 노동계급에 대한 지도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사노위와 노혁추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당 건설을 하려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이들은 혁명적이지 않은 노동계급 대중 속에서 이들의 운동과 유기적 연관을 맺으면서 함께 경험하고 때로 타협하고 때로 논쟁하면서 당을 건설하는 지난한 과정을 건너뛰려 했다.

그러나 사노위 실험이 실패하면서 이런 발상의 한계가 드러났다. 실제로 이들은 “강령으로 무장하지 않고는 꽁무니 전술과 정치적 대기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그토록 강조하지만, 막상 강령은 제정도 못 하고 분열했다.


대중과 함께 배우기

이들은 전쟁과 전략에 관해 늘 떠들지만, 막상 전투가 일어나면 ‘전투 하나로 전쟁이 결정나지 않는다’며 참전을 기피하는 장군과 같다. 추상적으로 그 말 자체는 맞지만, 실전에서 전투 없이 승리하는 전쟁은 없다.

민주노총의 공식 결의로 만든 ‘비혁명적인’ 진보정당조차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데 4~5년이 걸렸고 지금도 민주노총 조합원의 5퍼센트 정도를 당원으로 조직했을 뿐인데, 혁명정당이 현실 개입 속에서의 지난한 고투와 노력 없이 강령 통일과 창당 선언으로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은 몽상이다.

지금 혁명가들은 진보의 단결과 투쟁을 바라면서 동시에 민주당과 선거연합도 필요하다고 보는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에 개입해야 한다. 이 과제의 성패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투쟁 경험과 개혁주의 의식이 모순을 빚어내는 지점을 포착해 운동과 의식의 도약을 끌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앞서 예로 든 전북 버스나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의식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회피하는 사노위와 노혁추의 태도는 노동 계급 대중이 투쟁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원칙과 어긋난다.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들 [자신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곳곳에서 노동계급은 저항을 개시했고, 아랍에서는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혁명이 현실인 시대에 혁명가들은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우경화는 선진노동자들과 이 지도자들 사이에 간극을 낳을 것이고 진보진영 안에서 정치 양극화가 벌어질 것이다. 이 간극을 이용해 운동을 전진시키고, 혁명가들의 세력을 넓혀 계급을 투쟁으로 단결시킬 책무가 혁명가들에게 있다. 사노위와 노혁추가 이 중차대한 과제를 회피하지 않길 기대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 62호 온라인 기사로 실린 것을 약간 보완한 것이다. (☞ 기사 바로 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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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참여당 통합 반대가 속좁은 진보가 참여당을 두려워해서라며, 참여당과 통합해 그들을 견인하고 진보의 외연을 넓혀 대중성을 얻고 집권으로 가자고 말씀들하십니다. 과연 그럴까요.


참여당은 당세로 치면 민주노동당과 비교도 안 되고, 심지어 진보신당보다도 당비 내는 당원이 적습니다. 민주노동당처럼 탄탄한 지역 활동가 조직망을 전국에 갖춘 것도 아닙니다. 선출 공직자는 비교도 안 되죠. 야권 단일후보로 뽑혀 일대일 구도 속에서 총력 지원을 받아도 참여당 후보는 당선을 못 합니다. 유시민도 바로 그 당사자 중 하나죠. 


그런데 요상하게도 통합 관련해 참여당의 기세가 민주노동당 지도부보다 등등합니다. 참여당이 내년 총선에 독자로 출마하게 되면 비례후보만 내겠다는 것은 어느 당을 협박하는 걸로 보이나요. 노무현 정부 실패에 진보도 책임지라는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지도부는 진정성을 받아주자며 감싸기 바쁩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으로 참여당을 두려워하고 끌려가는 분들은 참여당 통합을 말하는 당 지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교도 안 되는 덩치의 당과 통합해야 집권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이 그만큼 주류 질서 속에 있는 당이기 때문이죠. 


기성 정치판에 내놔도 손색없는 국정운영 경력들(진보의 처지에서 보면 한심하거나 가증스러운), 인지도 짱인 유력 대선 후보 등. 참여당과 통합해서 얻는 대중성은 주류 질서에 영합하고 편입해 얻는 것이죠.

 

한마디로 참여당을 경외하는 당 대표와 지도부들이 최근 행보를 통해 인정받고 싶어하는 대상은 바로 이 나라의 주류 질서/주류 지배자들입니다. 한국의 현재 지배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반자본주의적인 창당 강령도 없애고, 헌정회법 개정안 찬성으로 전직 주류 엘리트들의 뒤를 봐 주는 데 협력하는가 하면, 당장 절실한 투쟁들을 모아 강력한 연대 건설에 앞정서는 대신 투쟁의 섟을 죽이며 1년 반 뒤를 기다려 선거에서 심판하자 하고, 파업 농성장에 민주당과 동행해 농성 해제나 종용하며, 호전적인 주류 엘리트들의 대북결의안에 반대하지 못해 왔죠. 이제는 참여당과 통합해 위험하지 않은 정당임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현재 참여당과 통합은 참여당의 좌경화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통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이’ ‘유’ 있는 통합 추진. 컨셉과 멘트, 장소까지 정말 불온하기 짝이 없는 행사다.



노동자·민중을 때려잡고 절망을 강요하며 눈물 짓게 한 자들과 합치는 게 더 좋은 일이라는 듯한 태도를 진보정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보이고 있으니, 결국 노동자·민중을 위한다는 정치라는 말은 다 듣기 좋은 말이고, 사실은 지도자들 몇 몇, 그리고 자기들 종파의 권력 참여에 더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비록 국가보안법을 인정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고 때로 의견 차이도 있지만 진보신당은 함께 진보의 요구를 들고 진보적 대중운동 속에서 일해 온 진보의 식구들입니다. 진보대통합의 일차 기준과 원칙은 진보세력이 통크게 단결한다는 것이 돼야 합니다. 


진보진영에서 누가 참여당에게 합의문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까. 합의문 승인한 단체와 통합을 한다는 것이 아무나 승인만 하면 통합해야 한다는 해석은 진의를 왜곡하는 무리한 해석입니다. 합의문 정신에 걸맞는 진보단체여야 자격이 있는 겁니다. 참여당은 정확히 말하면 합의문을 만든 연석회의에 참가신청을 했으나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다수 견해로 연석회의에 포함되지 못한 세력입니다. 


합의문 만들 때도 진보세력이 아니라고 배제된 세력이, 권한도 없는 회의(중앙위)에서, 합의문을 안건 자료로 첨부하지도 않은 채 통과시킨 ‘동의한다’는 한마디 표현이 그토록 믿음직스럽습니까,

그 당의 지도자들은 합의문과 충돌하는 강령은 전혀 손대지 않았고, 이명박의 한미FTA는 반대하지만 노무현의 한미FTA는 떳떳한 협상이었다는 집단이고 백주에 공권력의 이름으로 노동자와 농민을 때려 죽인 과거를 두고 한나라당에게 "국가 이익을 위해 지지층의 여론을 어기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냐, 그것이 노무현 정신"이라고 일갈하는 집단입니다. 


이정희 대표는 노무현 정부에 참여의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으면 어땠을까 하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이 노무현 정부에서 참여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4대 개혁 입법 투쟁 때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돼 국회 안팎에서 힘을 몰아준 바 있고요.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단상 점거 사태를 겪으면서까지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4대 개혁 입법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 버렸고, 민주노총은 노사관계로드맵이라는 족쇄를 차더니 결국 비정규직악법으로 카운터펀치를 맞았습니다. 이것이 원칙 없는 정권 참여, 원칙 없는 진보의 길이 낳을 패배의 길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2007년 대선에서 저조한 성적이 바로 이런 잘못된 과거와 관계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참여당과 통합보다 진정으로 노동자·민중의 개혁과 변화 염원을 대변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행히 전여농, 진보교연, 민주노총 전현직 지도부들이 참여당 통합에 반대하는 견해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도 진작에 이런 결정을 한 바 있죠.

이 뜻을 받아 안아야 하고,
 우리 당의 전현직 대표 등 지도자들이 이런 원칙 없는 행보에 제동을 거는 데 앞장서 주시길 바랍니다.

대중적 진보정당, 즉 진보정치의 대중화란, 각성한 노동 대중의 폭넓은 참여가 활발해질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즉 원칙있는 진보의 외연 확장을 뜻하는 것이지 원칙도 없고 정체성도 버리면서 진보 딱지 붙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진보정치가 폭넓은 노동 대중 속에 뿌리내린다는 뜻의 진보정치의 대중화가 말처럼 쉽게 달성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도로 가야 애초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모습처럼 애초 목표가 흐려져 본말이 전도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혁명의 현실성이 다시 주목 받는 시대에 적어도 거꾸로 가진 말아야죠. 보기에 먹음직스럽다고 독 묻은 사과를 먹을 순 없습니다. 우리는 백설공주가 아니라서 왕자가 와서 살려주지 않습니다. 개혁은 투쟁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참여당과 통합은 대중투쟁의 결기를 꺾을 뿐입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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