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우파 참패, 그리고 ...


일단은 기쁘다. 탄성이 나온다. 촛불의 여파가 그때처럼 격하지는 않지만 1년을 넘게 지속하며 조금씩 파도처럼 밀고 가고 있다. 촛불이 우파를 약화시킨 공간 속에서 조심스럽게 시작됐던 남북화해 국면이 극적으로 힘을 얻으면서 우파 참패에 새로운 동력이 됐다.(진정한 평화가 되기엔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여전히 더 크지만)
그래서 많이들 예측했고 우파 야당들 스스로 반응했듯이(선거 내내 집토끼 지키기의 수세로 일관), 격한 반(反) 우파 정서가 일단은 민주당 몰아주기로 표현됐다.(우파 약세가 대선보다 좀 더 전국화됐고, 김문수 표를 보니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가 얻은 표를 대강 지켰다.)
그런 점에서 보면(선거 전 조건에 비춰 봐도) 광역단위에선 대체로 이재정이 교육감 된 것 말고 나올 결과가 나온 듯하다. 진보정당은 애초부터 주로 지역의 기초 단위에서의 전진에 초점을 뒀는데, 그 결과는 밤에 더 살펴 봐야 할 듯하다.(울산 북구는 아쉽지만, 이미 선거 기간에 판세가 결정된 듯 보여서 ...)
오늘 선거 결과와 한반도 평화 국면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좌우의 압력에 대항하는 힘은 당장은 세질 것이다. 
그러나 점점 핑계 거리가 없어질 것이므로 밀어 준 만큼 지금보다 더 개혁 염원이 청와대로 집중될 것이고, 개혁 추진에 대한 조급함도 커질 것이다. 그래서 경제와 안보 문제에서 이변이 없다면, 총선까지 힘을 실어달라며 이 정부의 줄타기는 계속될 것같다. 
그러나 이미 노동 문제에서 문재인은 촛불 염원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경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일부 경제 지표 악화를 이용해 지배계급이 압박하고 있기 때문)
촛불이 표현한 반(反) 우파 염원의 밑바탕에는 계급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우파 야당이 선거에서 찌그러지는 것은 과정에서의 목표이지, 그게 다가 아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아래로부터의 촛불 염원의 편에 서서 보자면, 할 일은 여전히 많고, 그것은 올곧게 개혁 염원을 대변하고 노동 개악 등에 반대해 투쟁을 건설하는 일일 것이다.



12년 전 한나라당 싹쓸이 분위기에 함께 휩쓸려 시무룩해 하던 민노당 시절 동료들이 생각난다. 만만치 않은 선거 경험 속에서 때마다 깨닫는 건 선거는 이전 활동의 결과물인데, 개인이 열심히 한 건 +@ 이고 제일 큰 요인이 선거 구도를 좌우하는 넓은 차원의 사회적 세력균형이라는 것. 이번처럼 분위기가 분명한 선거에서 전국 결과는 누구라도 대강 예측이 가능한 이유.

정당이나 개인의 개별적 노력은 대체로 바로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혁명, 항쟁, 공황, 전쟁 같은 격변적 사건이 이후의 일상(구조)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지, 일상이 단순히 누적된 효과로 구조가(따라서 일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격변적 사건의 발생에 일상적 실천이 기여했다면, 사실 의도한 바와 무관하게 새롭게 형성되는 맥락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큰 변화를 추구하며 혁명 같은 격변으로 가는 길을 닦으려는 실천이다. 1980년대 초중반의 투쟁들과 87년 항쟁, 산발적인 反박근혜 투쟁들과 박근혜 퇴진 촛불 등등의 사례가 있다. 아울러, 촛불 사건에 영향을 미친 일상은 노동운동이 실천한 일상이었지 민주당과 문재인이 우파와 공존하던 일상이 아니었다.

촛불은 혁명이 아니었고 가령 87항쟁(6, 7~8)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큰 사건이었다. 대중 참여 규모가 그래서 중요하다. 여진이 아직도 사회 곳곳으로 시간을 두고 잔잔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선거는 사건이 아니다. 그러니 촛불 여파가 새삼 크게 확인된 지금, 촛불이 선거 이후에도 또 한차례 변형된 맥락 속에서 영향을 미치는 거지 선거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원인인 게 아니다.(정의당이 광역비례에서 전국적으로 선전해 대선 때보다 더 많이 득표한 것이나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가 8만 표 넘게 얻은 것도 좋은 일이고 촛불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진정한 촛불 계승 정부가 아니므로 문재인은 선거 이후에도 지금처럼 계속 줄타기를 할 것이고, 노동계 진보/좌파에게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좋은 기회들이 가까이 있다.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면, 일상적 시기에 어떤 사건들의 결과로 생기는 열매는 그걸 심지도 않은 일상의 권력자들이 가져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정작 세상을 바꾸는 건 투쟁하는 (그래서 일상의 구조를 흔들 만한 큰 투쟁을 만들어내는) 노동 대중(과 좌파)인 것이다. 

일상의 실천에서도 정신과 목적에는 “혁명의 현실성”이란 문제의식이 깔려야 하는 이유다. 사실 그게 지금의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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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 하루 전 단상]


드루킹 여론 조작이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 정치 공작과 본질(지배계급 정당들의 공작적 여론 조작)에서 다를 바 없다고 보는 나로서는, 친문 강성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박근혜의 채동욱 죽이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개인 사생활 영역(프라이버시) 문제로 경쟁자 망신 주고 공직에서 끌어내리기.

이재명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재명이 문재인 왼쪽에 자리잡으며 이만큼 성장한 것이기 때문에(앞으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친문이 이재명 죽이기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효과는 우파의 사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문재인의 최저임금 삭감법이 그러듯이.

그 점에서 그들이야말로 뜬금없는 친미 아부와 대연정 제안으로 한나라당과 우파 기만 되살려 준 노무현의 충실한 진성 후예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파를 약화시키려면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이 문재인의 위선적인 적폐 청산이나 노동 개악 등에 지금보다 더 사납게 반응해야 하고 다른 대안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문재인이 왼쪽의 압력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파에게는 이 중도 자유주의 정부를 약화시키고 소생할 기회가 계속 있다. 이 운명을 좌, 우, 중도 세력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결국에는 좌파의 구실과 성장, 노동운동의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그 정치는 친문의 이재명 죽이기를 폭로하고 비판할 정도로 영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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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추가 [6.15 단상 나도 덕담 할 줄 안다]


정식으로 선출된 진보교육감 후보라서 최악의 경우 찍어주고 욕을 해야 설득력 있을 것 같아서 한 조희연 교육감을 빼고는 어쩌다 보니, 다 여성 후보에게 투표를 하게 됐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어쨌거나 그 중 한 표가 여성 노동자 의원 탄생에 기여했으니 다행이다. 구의원은 진보 단일 후보라 해서 녹색당 후보를 찍었는데, 정의당/민중당/녹색당 단일 후보였다. 서울에선 시비례에 노동당이 출마하지 않았으니,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자로서는 노동당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셈이다.

여러 글들로 노동당을 응원하기도, 안타까워 하기도, 사납게 비판도 해 왔는데, 최근 노동당의 어려움을 보니 안타까움이 더 크다. 그러나 노동당 내 누구도 노동과 젠더 문제를 현명하게 결합시킬 수 있는 정치를 발전시키려 하지 않은 문제(회피할 수 없는 문제)는 쓰지만 다시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의당의 광역비례 득표가 꽤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선거 막판에서야 들었다. 오비이락 슬로건에 불만이 많았는데(민주당 쓰나미 추수), 그 때문에 약간 냉철함을 잃은 듯하다. 저득표를 감수하고 서울, 경기 광역단체장을 출마시킨 건 광역비례 득표를 위해서였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경기에선 비례만 2명이 되는 쾌거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위상이 높은 만큼 이쪽도 출마 전에 이미 거물이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겠고, 전국적 구도가 훨씬 크게 작용하는 어려움도 있으며, 박원순과 이재명이 진보적으로 비치는 면이 강해서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암튼 8년간 명맥이 끊겼던 여성 노동자 서울시의원의 역할을 권수정 의원이 잘 해 주길 바란다. 

민중당은 선거평가 논평에서 광역 비례 총합 100만 표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는데, 진심인지 모르겠다. 정의당이 대표 진보정당으로 총대선에서 상당히 자리잡아버린 상황에서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게다가 신생정당 이미지 때문에 생소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광역단체장 득표는 전남 정도 빼고는 높기 어려웠다. 서울시장에서도 여성 노동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표를 줬는데, 아쉽게도 득표는 생각보다도 낮더라. 1%는 나오길 바랐는데. 지역 조직이 강점인 만큼 그래도 저력을 발휘해 지역구로만 11명을 당선시켰다. 

뼈아픈 곳은 울산일 것이다. 민주당 광풍에 휩쓸렸는데, 몇몇 아쉬운 지역구나 후보가 있다. 민중당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 문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아마 울산 단일화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나올 것같다. 의도했든 아니든 북구 후보를 독식한 모양새가 됐는데, 이도 사후 평가 거리가 되지 않을까. 울산/거제/창원 결과를 보면, 단일화나 단결을 잘 하기 위해서도 진보정당의 정치적 분화를 현실로 인정하는 게 현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월간 〈시대〉 6월호에 실린 신지예 후보(?)의 인터뷰를 읽어 보니, 2016년 총선 비례 때 받았던 좋은 인상의 이유도 좀 알 것 같다. 내가 그의 정치를 약간 편견을 갖고 본 면도 있는 것 같고. 노동 기반 정당은 아니고 동의하기 힘든 면도 없지 않지만, 더 크게 보아 진보정당으로서 녹색당, 청년 진보 정치인으로서 신지예 후보의 호성적에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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