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사태를 대하는 반제국주의 좌파의 임무.

 

할 말을 하라! 


“파리 테러는 비극적 사건이고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을 일이지만, 그 사건 자체는 제국주의의 중동 간섭과 지배가 낳은 유산이다.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국가 공동체가 모두 단결하자’는 잘못된 프레임이다. 이는 오늘날 인종차별주의의 주류적 버전인 이슬람혐오증을 강화시킬 뿐이다. 그런 이슬람 악마화는 제국주의자들과 극우익 세력들을 도울 뿐이다. 오늘날 광신적 이슬람 근본주의는 제국주의가 중동에 뿌린 야만과 증오(종파간 분열을 포함한)의 열매를 먹고 자란다.



고향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들에게 후원받는 독재자들에게 유린되고, 이민 온 유럽에서는 2등 시민, 3등 시민으로 천대 받는 사람들의 종교를 비꼬고 모욕하는 것이 (풍자의 형식 때문에) 그 내용까지 옹호 받을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 무슬림 망신주기는 소신 있는 풍자가 아니라 체제의 인종차별과 편견에 편승하는 것일 뿐이다. 우익적 광기에 눈 감는 일이다. 그래서 약자를 비꼬는 건 풍자도 아니다. 일베의 ‘홍어 택배’ 운운이나 구제불능의 여성 비하가 풍자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 받을 일도 아니고 단지 유해한 공해에 불과하듯이 말이다.


게다가 프랑스야말로 아랍 출신 이주자들에게 식민 본국 아닌가. 아무리 테러가 규탄 받을 일이라 해도, 식민 본국 출신의 성공한 백인 엘리트들이 이민자들의 종교를 비꼬는 것이 칭찬 받을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권력의 강압적 조처 문제도 아닌데,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집단들의 극히 일부가 모욕적 행위자들에게 폭력으로 반응했다고 해서, 그것이 규탄 받아 마땅한 행동이라 해서, 이를 곧바로 ‘표현의 자유 수호’로 등치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를 함께 비웃었다고 해도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어디에도 기독교 신도라고 천대 받고 린치 당하며 열등인 취급 받는 나라는 없다. 히잡 금지는 있어도 십자가 금지는 없다.


흑인 차별을 예로 들어 보자.(오늘날 피부색 차별을 공식으로 옹호하는 집단은 거의 없으니까) 아파테이트가 종식되기 전, 남아공에서 흑인 전통 문화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하기가 주류 언론들에 실렸다면 어땠을까. (오늘날 미국에서 무슬림의 상당수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는 피지배 민중에게 필요한 것이지, 국가가 체계적으로 조장하는 인종차별에 편승해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의 악덕을 가려주기 위한 은폐막이 돼서는 안 된다. 사실 앞으로도 서방 강대국 안에서 광신적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위협을 두려워해 인종차별적 표현들에게 허용된 자유가 위축되는 일이 있을 것 같진 않다.


표현의 자유는 제약없이 자유로운 개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서로 다른 내용을 뜻한다. 사장들이 노동자들의 고임금 때문에 경영이 어렵다고 말할 자유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릴 (또는 올리라는 주장으로 지지를 얻을) 자유와 충돌한다.


사실 이번 테러 공격으로 ISIS나 알카에다 등이 목표한 바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역설로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반동, 즉 무슬림 혐오를 오히려 부추겨 무슬림 청년 대중이 더욱 테러리즘 전략에 가까이 오도록 하는 것 말이다.


지금 이런 광적인 세력이 영향력을 일거에 늘린 것은, 대중 행동을 통한 중동의 해방이 요원하다는 절망과 시리아 혁명 등을 종파간 다툼으로 파탄내려 한 역내 독재자들(예를 들어, 시리아 아사드)의 술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원인들을 더 거슬러 가면, 제국주의의 중동 침략, 강탈, 억압, 간섭 등이 더 근본적 원인으로 등장한다. 


그 점에서 이런 테러 행위, 또는 이슬람주의(정치적 이슬람)의 문제점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내재한 파시즘성 때문이라고 보는 따위의 주장들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에서 초역사적·초사회적, 즉 극히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무슬림 독재자들? 이슬람 파시즘? 무슬림 독재자와 무슬림 민중이 있는 사회의 민주주의 문제에서 종교가 분단선인가? 계급이 분단선인가? 


막간의 혁명을 사이에 두고 서구화 추구 독재와 이슬람신정주의 추구 독재가 이어진 이란에서 종교가 독재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정권은 히잡을 강제로 벗게 했고, 한 정권은 강제로 쓰게 했다.(터키의 케말 파샤 세력도 히잡을 강제로 금지시켰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슬림이 아니었던가?)


많은 경우, 종교는 사회적 비극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에 가깝다. 중동에서 세속 좌파의 실패를 분석하지 않고서는 이슬람주의의 성장을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가장 세속적이라는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가 선거로 집권한 2006년의 일은 PLO와 파타의 정치적 부패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이처럼 종교를 사회적 계급관계의 반영물로 보고 종교 그 자체보다 종교를 낳는 사회적 맥락을 더 중시해 다루는 것이 칼 마르크스 이래로 종교를 대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태도다.) 


이슬람 사회에서도 종교에 대한 태도는 각 집단의 계급적 처지, 상황, 전통 등에 따라 매우 다르다. 신정주의, 민주적 세속주의, 서구화 세속주의 등. 히잡을 쓴 중동의 여성 사회운동가들이 정치적 이슬람과 세속주의로 날카롭게 구분되는 일 등. 따라서 필요한 것은 분명하고 간단하다. 상황을 분별있게 보라는 것이다.


코르테스와 피사로의 중남미(잉카와 아스텍) 학살과 점령, 미국 KKK단의 인종차별 만행, 부시의 이라크 전쟁, 그리고 한국의 반공기독교 카르텔 따위를 두고 기독교 자체가 악마의 종교라고 하지 않는 바로 그 태도가 이슬람, 그리고 중동 출신의 피억압 민중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맥락에서 보는 진정한 배경은, 제국주의의 중동 억압과 독재자 후원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며,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서구에서 벌이는 이슬람혐오증(편견)이다. 그들은 이슬람 혐오증으로 중동에 대한 제국주의적 간섭의 명분을 얻고 국내적으로는 피억압 민중을 분열시키길 바란다.


따라서, 테러 대상이 언론사였다는 점이 문제의 근원적 맥락, 즉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의 문제를 기각하지는 못한다. 그리고는 언론의 자유 문제로 몰고가는 것은 (그것이 표현의 자유의 기준과 목적, 한계에 대한 성찰을 촉발시키긴 했지만) 이 사건을 종합해서 다룰 적절한 프레임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칫 지배자들의 이런 시도에 좌파들이 독립적으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을 돕는 것이고 극우와 파시스트들을 고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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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우파적 공세로 전환하는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경제·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박근혜는 우파 결집으로 임기 초 정치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이다.


44일에는, 한때 대화 시도를 했던, 쌍용차 해고자 농성 천막을 폭력으로 철거해 버렸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38명이나 연행하고,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에게는 구속영장까지 신청했다. 노동자가 죽든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 다음날 홍준표는 진주의료원 휴업을 발표했다. 


검찰과 경찰은 공개된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가입자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협박했다. 새누리당은 이를 종북 마녀사냥에 써먹고 있다. 새로 임명된 서울중앙지검장 조영곤도 “종북 엄단”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국가정보원 권한을 강화할 사이버테러방지법도 발의했다.


주요 권력기관 인사에서도 ‘꼴통우파’ 인물들이 약진하고 있다헌법재판소장에 박한철이 임명되면서 법무부장관과 헌재소장이 모두 공안검사 출신으로 채워졌다


최근 박근혜가 추가로 지명한 헌법재판관 조용호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보수파다. 5일 검찰 인사에선 전교조와 촛불시위 탄압 수사에 앞장섰던 자들이 대거 승진했다.


한편, <레프트21>이 예상한대로 박근혜는 통치력 회복을 위한 사정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국세청은 대기업 세무조사를 지난해보다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이미 한국GM, LG, GS, CJ 등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삼성생명과 현대·롯데카드 등 재벌 금융사 조사를 3월말에 시작했다. 행정기관 감사도 곧 시작할 것이다.


물론 열심히 뒤진다고 대기업주들이 처벌 받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4ㆍ1부동산 대책’도 말은 서민을 위한 주택 대책이었지만, 실상은 처치 곤란의 집부자들을 돕는 조처일 뿐이었다. 국민행복기금의 본질도 채권자가 돈을 잘 받게 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로 지배계급 안에서는 [청와대를 향한 비판을 가로막는] 단속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수습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게 된 데에는, 위기의 요소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뿐아니라, 커지는 실망감과 반감이 옮겨 갈 대안 정치 세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견제는커녕 대선 평가를 둘러싼 내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들도 분열과 혼란이 이어지면서 아직 존재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틈을 노려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철수도 정작 새로운 비전을 내놓지 못하면서 예상보다는 고전하고 있다.


(※ 이번 4·24 재보선에는 재벌 특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출마한 김지선 후보나 한반도 평화와 박근혜 심판을 주장하는 민병렬 후보 등 진보정당 독자 후보들에게 투표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처럼 야당들이 무기력한 탓에 얼마 동안은 박근혜의 정치 위기가 봉합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국정수행 지지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 정부의 우파·친재벌 본색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진주의료원 폐쇄를 놓고 [속내는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복지부장관 진영, 경기도지사 김문수,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서로 신경전을 벌인 것도 공공의료 후퇴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경제·안보 위기 탓에 이런 반감을 달랠 여유가 별로 없다. 게다가 사정 드라이브 과정에서 부패 추문이 폭로될 수도 있다.(최근 대기업 갈구기는 새로운 유착관계를 형성해 정권말에 터질 수 있다.) 


따라서 우파적 일방통행은 오래 못 가 반발과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우파 본색은 박근혜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박근혜의 위기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단결해 싸워 얻은 작은 승리가 정권을 흔드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변혁적 좌파들은 노동운동이 그 중심에 서도록 노력해야 한다.



□ 한반도 긴장 고조가 박근혜에게 유리하기만 할까?



한국 지배자들은 북한과의 냉전적 대결 구도를 핑계 삼아 국내 억압을 강화해 왔다그 중에는 1996년 판문점 총격 사건처럼 남북 지배자들이 뒷돈을 주고 받으며 짜고 친 사건도 있었다.


그러므로 탄압의 속죄양이 되곤 했던 진보진영 일각에서 최근의 한반도 상황을 남북 지배자들이 내부 단속을 위해 벌이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이런 주장이 맞든 틀리든 진보진영은 국가적 위기를 빙자해 좌파를 속죄양 삼으려는 시도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면지금의 위기가 우파 지배자들에게 유리하기만 하다는 관찰은 일면적이다이런 생각은 자칫 한반도 긴장 고조의 심각성을 무시하거나박근혜 정부의 약점을 보지 못 할 수 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 고조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패권 질서가 중국을 견제하면서 벌어지는 것이다박근혜 정부가 선택한 대외환경이 아니라는 뜻이다오히려 미―중 제국주의 간 갈등은 한국 지배자들에게 곤혹스런 상황이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그동안 중국 의존도가 커져 왔다수출의 4분의 1이 중국 대상이다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을 추구해 온 한국 지배계급 안에서 동북아 균형자론(미―중 간 양다리 외교론)이 한때 부각됐던 배경이다


이런 모순을 반영해 박근혜도 [인수위 시절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미국과 군사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인수위 시절에는 미국보다 먼저 중국에 친박 실세 김무성을 대표로 하는 특사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는 위기 고조 속에서 한미동맹으로 기울고 있다. [사실 기울 수밖에 없다. 왜냐면] 한국 주류 지배자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 하위파트너로 성장해 왔다박근혜는 바로 그들의 대변자다


한편한미일 동맹 강화는 일본의 우경화와 결부돼 있기 때문에대중의 반일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한국 지배자들에게는 이 또한 부담스러운 문제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은복지를 삭감해 군비를 늘리고제주 해군기지를 강행하는 것을 뜻한다일부 지배자들은 이 틈을 타 핵무장 야심도 드러내고 있다.


결국 박근혜가 이명박과는 다를 것이라며 내세웠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만신창이가 됐다. 한편, 한반도 위기 고조 문제로 양극화로 박근혜의 [시늉 뿐인] ‘대화’ 제스쳐조차도 우파 지지층의 강력 반발을 낳고 있다. 


박근혜의 친제국주의 정책은 위험천만할 뿐만 아니라, 위기와 모순을 더 키우고 있다.




※ 두 글은 http://left21.com/에 각각 축약하고 다듬어져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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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창이란 출판사에서 《열한 살의 한잘라》라는 만평(카툰) 모음집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나지 알 알리라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위대한’ 만평가다. 


한 컷짜리 흑백 카툰으로, 시대와 국제 질서를 꿰뚫는 통찰력과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비통한 역사적 기억과 감정, 그리고 불굴의 저항의지를 두루 담아 표현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의 작품 속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 뿐만 아니라 그들의 꼭두각시가 돼 팔레스타인 저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할 뿐인 [PLO를 포함한] 아랍 지배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도 담겨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나지 알 알리는 1948년 ‘나크바’[각주:1] 때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살던 열한 살 소년이었다. 나지 알 알리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뒷짐진 소년 ‘열한 살의 한잘라[각주:2]’는 바로  작가 자신의 분신인 것이다.


재앙의 시간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현실, 그리고 그 기억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저들이 우리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면, 저들의 시간도 더 앞으로 갈 수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지에 바탕해 그는 단순한 반서방 아랍 민족주의적 감성에 머물지 않고 아랍 세계 내부의 분열을 직시하며 무엇보다 단호한 아랍 민중의 단결과 저항을 부르짖은 작가였다.


이 이미지는 작품집에 포함된 것으로 블로그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6Hl1#ajax_history_3 에서 빌려 왔다. 이 그림은 미국이 아랍 지배자들의 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쪽저쪽 적도 많았다는[각주:3]] 나지 알 알리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 활동 공간이 된 쿠웨이트에서 추방된 후 안타깝게도 영국 런던에서 1987년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각주:4] 인티파다를 촉구하며 기다려 왔던 그가 제1차 인티파다[각주:5]가 시작된 해에 죽고만 것이다.


‘열한 살의 한잘라’는 영원히 어른이 못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아끼는 많은 팔레스타인 인들이 ‘내가 한잘라’라고 한다니, 승리하는 한잘라, 드디어 인간의 시간을 돌려 나이 들어가는 현실의 한잘라들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사실, 2007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복사집 제본 형태의 아랍어로 된] 나지 알 알리 작품집을 산 적이 있다. 그해 나는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반전회의에 한국의 대규모 참가단 중 하나였다. 


그때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지 알 알리에 대해 잘 알았던 건 아니다. 다른 동지의 소개와 추천이 있었고, 이 작가의 만평엔 뒷짐 진 소년이  나온다, 아랍 쪽에서 매우 유명한 만평가다 하는 정도였다. 



작품 몇 컷으로도 느낌이 팍 오는 것도 있고, 아랍에 대한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침략과 개입 문제가 화두였던 국제반전회의 참가자로서 가장 걸맞는 지출이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기꺼이 구입한 기억이 난다. (설사 소장용에 그칠지라도) 그걸 현지 동지들의 부스에서 사면서 연대감을 표시하는 건 덤이고 말이다.


내가 그 책을 보면서 느꼈던 건, 만평에게도 [심지어 언어 장벽을 넘어] 가슴 깊은 곳을 울릴 수 있는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내가 보기에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고,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중의 속시원한 대변자이며, 불굴의 선동가다. 


그런데 이번에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의 [만화] 작가 조 사코의 서문을 달고서 나온 것이다. 추가 해설도 있으니, 배경 설명이나 일부 작품 속 짧은 단어 해석이 아쉬웠던 나로선 반가운 출판이다. 지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글로 다루는 책 중 최근 내가 읽은 것은 9월에 나온《나의 아버지는 자유의 전사였다》(램지 바루드, 산수야, 2012)다. 

생생하면서도 현대사를 개괄할 수 있는 이 책도 신간들 중에선 내 개인 추천도서다.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저항에 관해 관심 있는 분이라면 두 책을 함께 봐도 좋을 듯하다. 

《한잘라》의 서문을 쓴 조 사코의 만화들도 모두 좋다. 출간 시기를 더 길게 잡으면 더 많은 좋은 책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인티파다》(책갈피)를 추천한다.






  1. 재앙이란 뜻의 아랍어라고 한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이 영국 등 서방 제국주의 진영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인들을 그 지역에서 쫓아내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을 일컫는 고유명사다. [본문으로]
  2. 한잘라는 아랍어로 쓰라림, 고통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본문으로]
  3. 나지 알 알리의 카툰을 본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격노하여 "나지 알 알리가 대체 누구야? 이따위 카툰 그리는 걸 당장 멈추지 않으면 손가락을 산성 용액에 담가준다고 전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4. 이스라엘의 소행인지, 아랍 쪽의 소행인지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본문으로]
  5. 1987년 12월 가자지구 난민 캠프에서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살해된 것을 계기로 폭발한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제2차 인티파다는 2000년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의 도발과 이스라엘 군대의 소년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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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도 ‘해적기지’ 또는 해적들의 만행이란 표현은 이미 지난해부터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에 맞서 싸우시던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이 써 오던 표현이다.(관련 언론 보도만 검토해 봐도 알 수 있다.) 

그 말은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던 해군에게 토지를 강제 수용 당하고, 범죄자·폭도·부랑아 취급 당하면서 범죄없는 마을로 칭송되던 마을이 타의에 의한 범법자 천지가 되는 현실에 대한 한탄이요, 분노가 섞인 표현이다. 

강정 토지 절반(주민들의 논밭과 집)을 강제 수용하고, 10미터 수심에 사람을 쳐박고 낄낄. 이것이 해적질이 아니고 뭔가. 

오히려 이런 절규와 한탄이 김지윤의 인증샷 이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런 외침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유는 없다. 지금 방송사 파업을 부른 바로 그 이유, 오로지 진실이 언론을 통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경선에 나선 김지윤 후보가 제주 해적 기지에 반대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심정과 분노와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돼야 할 진보 정치인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지윤 후보가 꼭 청년비례 후보로 국회에 입성하길 바란다.)

진보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것이고, 덕분에 해적 기지란 표현은 사람들에게 제주 강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제대로 의제화를 시킨 것이다. 이제 해적기지란 표현 논란은 제주 해군 기지에 대한 일종의 상징 싸움처럼 돼버렸다.

문정현 신부님의 말대로 “저들이 두려운 것은 전 국민이 해군더러 ‘해적’이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군기지 찬반 프레임이 안보 이슈에 가깝다면, 해적기지 찬반 프레임은 안보보다 민주주의 문제를 건드려 반MB(정권 심판) 프레임에 걸쳐 있다. 또 기지의 제국주의 성격에 접근하는 데도 해적기지 규정은 유리하다. 제주기지 반대가 
구럼비바위 보전 문제로 협소화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 북한과 긴장 관계를 유도하는 호전적 발언을 해 온 [
국방부장관을 위시한] 군 당국이 김지윤 고소로 무리한 강경 대응을 한 것은 해적기지 단어 하나가 기지 건설 강행의 정당성과 직결된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더 작게는 <조선일보>의 경우에 김지윤 낙선 공작의 의도도 없지 않다. 

만약 강정에서 한 짓거리를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포장한다면, 저들이 지금 적처럼 취급하는 강정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이 해적이란 말인가. 해군참모총장의 고소 행위야말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지속하겠다는, 바로 군이 민간에 개입한 해적질이다.

천안함이 정말 북의 소행이라면, 작전에도 실패하고 사병 안전도 못 지킨 무능에 책임지고 일벌백계를 당했어야 마땅한 작자들이 도리어 국민의 삶과 평화를 파괴하더니, 이제는 사병과 유족을 팔고 일부는 눈물이나 짜고 있다.
 

민주 사회에서 군은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아니다. 욕 먹을 일을 했으면 욕을 먹는 게 마땅하다. 선출된 대통령도 욕먹는 세상에 군을 욕하면 안 된다, 그런 게 어딨나. 나도 군필자고, 수많은 선후배와 친구들을 군대에 보내봤지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 같은 것도 없다. 법으로 징병제를 해 놨으니 다들 어쩔 수 없이 울고짜고 하면서도 입대하는 것이다.

지금 군의 명예훼손 고소는 작게는 강정 싸움에 대한 반동일 뿐아니라 군이 민간에 개입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만행이다. 진정 군대가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존재라면, 오히려 ‘그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군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순리 아닐까. 그러기는커녕 국가폭력을 계속 자행하겠다는 해군 당국은 해적 맞다!!! 

제주 강정마을에 있는, 주민들이 만든 포스터.




2. 물론 더 근본적으로 진보인 우리가 제주 해군 기지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들은 더 있다.

무엇보다 해군 기지 건설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은 바로 기지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생각해 보라. 평화 박물관을 짓겠다고 군대가 나서서 사람들을 패고 쫓아내고 생명 위협을 하겠는가. 

이 군항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이용될 기지다. 제주는 ‘남중국해-동중국해-센카쿠열도-대만해협-서해’로 이어지는 미국의 중국 해양 포위선,즉 미국과 중국의 해양 갈등선의 일부다. 미국은 세계경제 규모 2위로 떠오른, 그러나 여전히 서방 강대국들에게 경제·군사적으로는 열세인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삼아 왔다.

최근 태평양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 국방부 차관 애슈턴 카터는 최근 “태평양에 배치돼있는 미 해군 함정의 수를 현재 52% 수준에서 몇 년 안에 60% 수준까지 증강”하고 “항공모함도 1척을 추가 배치해 총 6척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짓는 기지는 이렇게 증강되고 있는 미군의 전략기동함대가 이용하면서 중국을 선제적으로 군사 압박하려는 기지다. 불가피한 방어용 기지가 아니란 말이다. 국방부 부인과 달리 제주 해군 기지에 배치될 한국 이지스함은 언제든지 미국 주도의 해상 MD 체제로 전환 가능하다.

제주 해군 기지는 미중 간의 군사 대결, 군비 경쟁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군사적 긴장과 군비 증강 경쟁을 고조시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괴물인 것이다.

중국과 일본 등이 주도하고 한국이 뒤따른 말라카 해협 등 주요 해상로 경비 경쟁에 미국이 직접 진출해 이 해상로를 중국 해양 봉쇄선으로 삼으려는 것이고, 그 선의 한 기점에 있는 제주 기지는 그런 구실을 할 목적으로 짓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 주둔하는 주한미군도 노무현 정부 때 이미 그 성격을 대북억지력에서 전략적 유연성이란 명목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한 신속기동군 성격으로 바꿨다.

용산미군기지가 평택미군기지로 가는 것도 그런 목적이었다. 평택이란 지리적 위치는 육지에 주둔한 주한미군이 공격의 주요 대상으로 염두에 둔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는 걸 보여 준다. 
 

미국의 호전적 패권전략 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호전성도 문제다. 지난 정부가 시작한 ‘대양해군론’은, 한미FTA와 군사 협력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와서 미국의 중국 해양 포위 전략과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더 큰 틀에서 한국 지배 엘리트 다수의 합의인듯하다[각주:1]
(이와 관련해서는 진보평론에 기고한 내 글을 참고하시오. ☞ 바로 가기

천안함 사건을 두고 북한 위협설을 그렇게 떠들던 이명박 정권이 왜 북한과 정반대 방향인 제주 해군 기지에 목을 매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 왜 한국 해군이 자국 해안 방어에 빈틈을 만들면서까지 머나먼 아덴만 앞바다에 애써 만든 주력 구축함(DDH급)을 보내고 있을까.[각주:2]

어떤 이들은 중국과의 이어도 다툼을 말하는데, 물론 중국을 편들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름이 섬이지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전설 속의 섬을 가지고 말 수준의 다툼을 벌였다고 전쟁 준비를 한다는 건 엄청난 오버일 뿐이다. 그리고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은 몇 년 된 주장으로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 해군 항공모함의 서해 진출 시도가 중국의 항공모함 건조에 자극을 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즉, 
가장 위험한 것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 그 자체라는 것이다. 경쟁적 방어 논리로 군비 경쟁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 가장 야만적인 어리석음이다. 한국이 중국과 군사 경쟁해서 압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경쟁으로 평화가 오는 일은 없다. 

사실 그런 논리면, 독도를 이유로 울릉도에 함대 기지를 짓자는 것과 같은데, 왜 미국은 울릉도가 아니라 제주도 해군 기지에만 찬성할까. 이용 목적과 상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핵심은 해군 기지의 지리적 위채와 결부된 호전성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군부의 목표는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의 하위 파트너로 적극적 구실을 해 국제 지위를 높여 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주들은 이런 전략을 환영할 것이다. 그것은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지배자들이 추구하는 한미 동맹 강화는 이처럼 경제와 군사 두 측면 모두다. 

한국 정부도 제주 기지를 군사적 해외 진출을 위한 전진 기지로 보고 있지, 방어형 기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에 건설하려는 해군 기지는 한국 영토 방어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전략의 일부이고, 한국 지배자들의 군사적 세계화를 위한 전진 기지다. 

미국의 제국주의 강도질에 협력하려고 만드는 기지니, 그 성격 자체로도 ‘해적기지’라 할 만하다. 사실 그 피해 면에서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고 사회를 파괴한 미국 군대의 제국주의 강도질을 해적에 비교하는 건 해적에게 미안한 정도로 과소 표현한 것이다. 





3. 사정이 이러니 해군 당국이 나서서 김지윤을 고소하겠다고 설레발치는 것이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이것은 ‘명박스러움’을 넘어서는 행위다. 해적이란 비난을 인정 않겠다는 것은 지난 5년 간의 만행을 인정 않겠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해적질’로 ‘해적기지’를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한미FTA와 제주 해군 기지, KTX 민영화 등은 대기업주와 군부를 포함해 친미 노선을 추구해 온 한국 주류 엘리트 집단이 초당적으로 협력해 온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조차 이 의제를 적극 추진한 것이 그 간접 증거다. 야당으로서 반대할 순 있지만 정부 운영권을 넘겨 받은 여당으로선 반대하기 힘든 것, 즉 지배적 주류 다수의 ‘컨센서스’라는 것이다. 코드네임은 두 개다. ‘미국’과 ‘재벌’.

이런 목적에서 이명박 정부와 우파들은 학교폭력과의 전쟁, 탈북자 북송 이슈 등으로 외곽을 치고 나서, 한미FTA 발효 강행과 제주 구럼비 폭파 강행, 한미군사훈련, KTX 민영화, 핵안보정상회의의 우파적 선전 등을 본격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해 계급 세력 균형을 뒤집어 보려 한 것이다. 이 경우 새누리당에게 유리할 텐데, 어쨌든 새누리당은 그들의 A당 아닌가.  

그런데, 이 쟁점들이 한국 지배적 주류의 전반적 합의라는 점은 민주통합당 지도부에겐 이 문제들이 아킬레스 건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한미FTA와 제주 강정에서 흉물스런 이명박 정부와 해적 집단을 보지 못한다. 그 쟁점들은 자신의 정치적 거울이다. 과거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것들, 미래에 자신들이 집행해야 할 것들. 

민주당이 일관되게 행동할 수 없는 까닭이다. 차라리 이명박의 손에 피를 묻히고 자신들의 그 대가로 집권하는 것을 바란다. 그럼에도 민주당 처지에선 통합진보당을 보완
물로 해 당장 한미FTA 폐기 등 진보·개혁적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지 않으면,  재집권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지키지 못 할 약속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류 지배자들 입장에선 혹시라도 총선 결과에 따라 [집권당의 참패로] 분위기가 더 악화돼 [즉, 반대 여론과 운동이 더 탄력을 받아] 그들의 핵심 이슈 추진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은 총선 전에 이 문제들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으려 하는 이다.

만약에 그 결과로 새누리당이 침몰하면 어차피 플랜B 정당인 민주통합당이 집권하면 되니 말이다. 어차피 중요한 이슈들이 돌이키기 힘들게 추진된 상황이니 민주당의 집권
이 덜 불안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번 집권 때 나름 임무를 잘 수행한 정당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구럼비 폭파 자체가 안보 문제로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작전의 일부인 것이다. 

저들의 흔한 수법이다. 1996년 총선에선 북에 돈 주고 판문점에서 총질한 총풍을 갖다 썼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천안함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 올해도 총선을 앞두고 북풍을 이용하려고 북한을 일부러 자극한다는 지적이 있다. 

두 새누리당 지도자들, 이명박과 박근혜의 선거적 노림수도 이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보수층은 결집하면서 민주당의 약점인 쟁점을 부각해 경쟁자들의 결집, 즉 야권연대는 부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저들에게
피하고 싶은 상황은 야권연대 무기력화가 단순히 야권 무력화가 아니라 민주당 지지세 위축의 반대급부로 통합진보당이 부상하는 경우다.
본으로 야권연대 지지 정서의 한켠에는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정서가 자리잡고 있기에 가능한 경우의 수다.

우익의 김지윤 때려잡기, <조선일보>의 문경식 후보 공약(“이명박 
구속”) 문제 삼기, 탈북자 북송 이슈화, 한미군사훈련 강행 등은 모두 이를 겨냥한 것이다. 종북좌파 색깔론인 것이다. 

야권연대 협상에서 민주당이 우위를 잡아야 과거 전력을 놓고 도찐개찐 싸움을 벌일 수 있다. 그래야 그나마 새누리당이 민심 이반과 분열 위기를 만회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바위처럼 님의 패러디물.




4. 이렇게 봤을 때,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진보적 정책을 희생시키고, 김진표 같은 X맨들을 위해 후보를 사퇴하면서 진보진영 사이에 분란만 일으킨 이번 야권연대 합의는 단견적 시야의 발로다. 김지윤 후보를 당의 입장과 무관하다고 발뺌하고, 이명박 구속 공약을 비난한 <조선일보>에 침묵한 것도 실책이다.

사실 인증샷 논란의 본질은 공인의 경솔한 [순간적] 언행 문제가 아니다. 인증샷 나흘 전 논평에서 이미 김지윤 후보는 ‘해적기지’라는 표현을 썼다. 저들은 강정 싸움을 색깔론으로 가져가려고 평소에 미운털 박힌 김지윤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문제는 매우 단순해서 강정싸움의 어느 편에 설 것이냐 하는 선택 문제였는
데,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선거를 앞두고 공중파와 조중동이 총공세를 펴니 그만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군의 정치 개입, 표현의 자유 위협[footnote][/footnote]에 대해서조차 말을 못하는 건 뭔가. 공인의 언행? 그런 개념이라면, 현직 판사가 가카빅엿이란 말을 쓰는 건 공직자로서 신중한 언행이었나. 그 분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로 영입돼 있다.(물론 나는 서기호 판사의 당시 발언을 내용과 형식 모두 옹호하는 사람이다.)
 
이런 실책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 지도부와 다수 정파들을 감싸고 있는 총선 심판론에 있다. 저들은 총선 전에 밀어붙이고 있는데, 총선에서 심판하자고 하니 오히려 분노를 느끼는 대중의 섟을 죽이게 되는 꼴이다. 게다가 선거 표를 의식한 정치를 우선하다보니, 조중동의 우파적 포퓰리즘 공세에 무기력해져 있다. 

애초 제주 강정 기지 건설에 찬성했던 유시민 대표의 부적절 발언은 여전히 그가 확실한 진보정당의 지도자로서는 아직 자격 미달이라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정희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청년비례 선출 위원회가 당과 무관하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이나, 노회찬·우위영·천호선이 공동 대변인으로 있는 대변인실이 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배
포한 것에서 통합진보당 지도부 전반의 무기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문제점은 배신성보다는 모순에 있다. 이정희 대표는 구럼비바위 폭파 발표가 나자마자 제주로 내려가 몸을 던지며 싸웠다. 통합진보당의 사법개혁 요구에는 명예훼손죄 폐지가 담겨 있다.(군의 김지윤 고소죄목이 명예훼손죄다.) 

이번 야권연대 합의에서도 진보의 몫을 늘리려고 했지만, 내용에선 후퇴하는 이런 식인 것이다. 한미FTA 폐기, 강정기지 반대가 모두 재검토 수준으로 후퇴했고, 경북 울진에는 민주당의 찬핵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로 합의해 녹색당의 항의를 받았으며, 김진표 등을 야권단일후보로 인정해 통합진보당 후보를 사퇴시켰다. 

무엇보다 진보의 단결과 투쟁을 민누리통합당과의 선거연대를 위해 희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대중이 바란 야권연대일까. 의심스럽다. MB스런 세상이 싫다고 야권연대하는데, MB스런 정책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할 정책을 내는 것, 
MB스런 집단을 야권단일후보로 미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런 바보스런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지금 진보가 할 일은 모순을 정리하고 일관된 진보의 자세, 진보의 대안을 구축하는 것이다. MB의 방송 장악에 정면으로 도전한 방송사 파업과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제주 강정 싸움을 두 축으로 한미FTA 폐기 투쟁 등을 결합해 전면적 반MB 투쟁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금 강정을 비롯한 곳곳에서 타오르는 분노의 정서를 거리에서 불붙여야 한다. 

그 투쟁 속에서 진보 대중의 사기와 투지를 높이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고 해야 한다. 그런 진정성이 있어야 진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선거도 승산이 생길 것이다. 




  1. 평택 기지 이전 합의 ― 한미FTA 협상 ― 제주 강정 기지 시작이란 세 사건의 연쇄적 진행도 그 연결고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본문으로]
  2. 여섯 척 구축함 중 세 척이 아덴만 교대와 정비로 묶여 한반도 해역 방어엔 상시적으로 세 척밖에 기동할 수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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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년 아랍 혁명의 의의
고전적 민중혁명의 귀환, 마르크스주의 혁명 전략의 현실성.

□ 노쇠한 자본주의의 장기불황 시대

 -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의 결합
 - 일국 위기와 국제 위기의 결합


□  지배계급의 본질
 - 제국주의든 자국의 독재자든 지배계급은 매우 잔인하고 교활하다는 점.
 -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새로운 대안권력 기구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
 - 부르주아민주주의 정치구조라는 완충지대가 없다는 점이 혁명의 속오를 오히려 높여.

□  고전적 민중혁명이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사건임을 증명
 
- 민중의 자기조직화 능력: 평범한 사람들(노동자, 여성, 실업자)의 잠재력이 어마어마.
 
- 노동계급의 구실.
 
- 민중의 무장봉기.

□  국제적 위기가 혁명의 국제적 확산으로.
 
-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
 
- 정치혁명과 사회혁명
 
- 제국주의의 반혁명적 개입


2.   아랍 혁명의 성과

  ○ 세계자본주의 질서(제국주의)에 타격을 준 혁명.
  ○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와 고통전가 시도에 저항하는 혁명.
  ○
 부패한 아랍 독재 체제 아래서 누적된 정치적 불만이 독재자들 타도.

이 세 가지를 종합해야, 튀니지 혁명이 아랍 전역의 혁명으로 번진 것을 이해할 수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와 연관성이 세계 지배자들을 또 두렵게 한다. 이것이 이 혁명의 또다른 국제적 성격이고, 국제적 확산의 또다른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또이 아랍혁명이 유럽의 노동자 투쟁과 상호작용을 하고, 올해 미국 위스콘신 점거, 스페인 점거 운동과 월가 점거 운동 등에 미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일국 혁명이 범아랍 혁명으로, 아랍혁명이 서구와 교류하는 혁명으로 발전한 계기.



□ 독재자 축출  표면적으로 보면, 평균 1인당 32년 집권의 독재자들이 쫓겨났다.

1월 15일 튀니지 벤 알리(23년) 퇴진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30년) 퇴진

6월 5일 예멘의 살레 사우디로 도망

8월 23일 리비아 트리폴리 함락

10월 20일 카다피(42년) 사망

11월 23일 살레(33년) 권력이양 서명
 

이 독재자들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모두 장악한 지배자들. 비대한 억압기구로 일상적으로 사찰과 억압, 착취. 저항은 잔인한 탄압. 엄청난 부. 한마디로 정리하면 1천 미터 지하 암반수보다 더 뿌리 깊은 증오의 대상.

사우디, 바레인처럼 너무 억압이 심해 반란이 없을 법한 곳들에서도 시위와 파업 발생. 탄압하면서도 양보를 해야 하는 처지. 시리아와 레바논, 팔레스타인도.

시리아: 알아사드는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군경을 동원해 무참히 짓밟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희생자 수는 5천명을 넘어섰다. 가족 정권이라 정권 균열이 상대적으로 적음. 리비아와 유사. 시민의 저항은 점차 조직적으로 발전하는 양상. 노동자 파업으로 전이. 서방과 연계된 야권 세력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정부 이탈 반군이 `시리아자유군'을 각각 결성. 시리아위원회는 망명자들 중심으로 서방과 연계를 맺으려 한다.

바레인: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와 아랍에미리트(UAE) 경찰 동원 시위 진압. 시위 계속.

쿠웨이트: 시위로 최근 내각 총사퇴 의회 해산.
 

한편에서는 양보도 제공했다. 주로  정치적 완충 구조, 즉 불만을 체제 내부에서 흡수할 수 있는 정치 구조를 수립하는 것으로 대응.

이집트: 자유 선거(대선과 총선) 약속, 계엄 해제 약속 

사우디/UAE/카타르 등 걸프 지역의 군주제 국가들: 넉넉한 사회복지 혜택

사우디: 차기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참정권 허용

카타르: 2013년 첫 총선 실시

UAE: 연방평의회 간접선거인단 대폭 확대
 


□ 제국주의 질서에 타격   

아랍 혁명은 미국의 세계패권과 그를 위한 중동 패권 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중에서도 이집트가 가장 중요. 아랍혁명의 성패도 상당 부분 이집트 혁명에 달림. 가장 인구가 많고, 가장 산업화, 가장 강력한 군대. 1천 년 가까이 아랍세계의 중심 국가. 그래서 미국의 중동전략에서 핵심 지역 동맹은 이스라엘, 사우디, 이집트.

제국주의는 모든 곳에서 모두를 지배할 수 없다. 가장 전형적인 방식: 현지의 부패한 독재자들과 결탁하는 것. 불가피할 때 민주적 외양.

이집트 친미화는 이스라엘의 안전(이스라엘을 워치독으로 하는 미국의 전략)에도 타격.


1952년 자유장교단 쿠데타: 나세르는 애초 반미주의가 아니었으나 미국의 적대로 전향.

1956년 수에즈운하 국유화: 국가자본주의/아랍민족주의/아랍공화국/토지개혁/복지국가

1967년과 1970년 연달아 이스라엘에 패배

1974년 후계자 사다트가 국가자본주의 해체.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1981년 무바라크는 신자유주의/친미 노선으로 완전히 기울어. 토지개혁도 되돌려.


미국은 이집트를 동맹으로 해 아랍민족주의를 타락시키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안전을 보장하려 해. 이집트는 그 대가로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라 중 가장 많은 원조를 매년 수혜.

냉전 이후 패권전략 재조정. 이라크에 직접 친미 신자유주의 정권 수립 목표, 실패. 
이라크 침략 후 약화된 미국의 위상: 억눌려 온 반제국주의 정서의 표출.
무바라크 정권의 친미·신자유주의 정책에 불만.
친이스라엘 고수 어려움. 이스라엘의 무력 정책이 오히려 반감 키워. 최근 미-이 갈등.

 - 특히 경제 위기로 취약해진 배경에서 아랍 혁명 발발. 줄줄이 친미정권 무너짐.
 
- 미국, 시늉으로라도 혁명을 지지하게 해야 하는 옹색한 처지로.
 
- 이집트혁명은 이스라엘의 약화와 고립, 반미/반이 인티파다 가능성. 가자지구 개방.
 
- 미국과 서방은 혁명이 위기를 겪은 리비아에서 기회를 잡음. 시리아도 개입 기회 노림.

 


3.   이집트 혁명의 현재  

혁명의 미래? 혁명은 활쏘기나 사격, 육상 경기가 아니다. 
기성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적대 계급 간에 권력과 사회 질서 재구성을 놓고 다투는 장. 그러므로 한 편의 의지만으로 혁명/반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혁명들이 어느 세력과 어떤 질서에 타격을 입혔는가를 봐야 한다. 그래야 그 작용과 반작용이 어떻게 이뤄질까를 전망할 수 있고, 우리의 미래와 과제를 예측하고 도출할 수 있다.

지정학상, 정치적, 전개상 가장 중요한 이집트혁명을 살펴 보며 혁명의 현재 상황을 따져 보자. 


□ 이집트혁명에서 세력간 비교


- 석유 판매 수익 커도 아랍 지역은 
부패한 독재로 빈부 격차 심화.

- 무바라크의 신자유주의 본격화: 민영화로 복지 후퇴, 청년실업률 40퍼센트, 인구 5분의 2가 극빈층.

- 2008년 경제 위기 후: 외환보유고 급감/식량가격 폭등
 

○ 군부

- 군부는 이집트 경제의 30퍼센트 지배.

- 혁명 초기, 혁명의 열기 때문에 이집트 지배계급, 특히 군부는 갈림길에 봉착.

첫째, 지배전략을 놓고 분열,

둘째, 사병이 혁명 열기에 동화. 진압 명령 내리면 군대 붕괴 위험.

- 미국 등과 협의 끝에 무라바크 버리기로 나머지 군부가 결정한 것.

그러나 사람만 제거하고, 체제는 남기는 것이 이들의 목적.

- 정치적 완충 구조 신설로 불만을 흡수하고 특권을 보존하려 함.

의회 선거 제도 개혁해 무슬림형제단 등이 완충세력으로 등장하도록 협상.

대통령 선거는 반격의 시간 벌려고 2012년으로 멀찍이 일정 잡음.

- 6월과 11월, 혁명세력의 강도를 측정하려고 도발 시도. 종단간 이간질.(콥트교도 공격)


○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주의 부상

- 1950년대 시작한 아랍민족주의의 실패가 역사적 배경.(좌파 무능, 인민전선, 탄압)

-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등의 모태.(이 조직들은 모두 아랍지역 무슬림형제단의 해당국 지부였음)

- 정치 활동과 함께 빈곤층 지원 사업 등 하면서 영향력을 키워 옴. 단원만 수십만 명.

- 종교단체인 만큼 다계급 구성. 민중혁명은 무슬림형제단이 공식으로 구상하는 집권이나 사회 개혁 프로그램과 거리가 멈.

-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혁명 중간에야 공식 지지. 그러나 노동계급 청년 단원들은 적극 초기부터 참여. 내분과 모순, 공식 기구에서는 혁명 지지파 숙청.

- 의회주의 체제 도입을 기대하며 그 정치 체제에서 정치적 완충물 구실: 지도부는자신이 집권하는 수준에서 혁명을 멈추고 군부와 타협하길 바람.

- 7월 이슬람 시위에 살라피주의자들이 선제 제안에 뒤늦게 참여.

- 10월 이후 1,2차 선거에서 연달아 1위 성적. 지도부는 군부와 타협 노선으로 기움.

- 자신들이 만든 정의발전당의 부대표를 기독교인으로 하는 등 군부와 미국(서방)에 79년 이란과 다르다는 걸 보여 주려 애씀.

- 미국과 군부가 계속 무슬림형제단을 파트너로 삼을지는 미지수.

※ 이밖에도 세속적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세력이 있음. 무바라크 타도와 선거 실시 합의 후에는 노동자 등 기층 혁명세력과 등돌림. 최근 좌파 마녀사냥에 가세.


○ 
 혁명세력

- 세속파 민주화운동세력/독립노조들/혁명좌파

- 200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반전운동,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퇴적물, 2006년 이후 마할라 중심 노동자 조직화와 파업 운동 부활.

- 혁명 초기 이미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은 노조운동, 리비아 등과의 차이.

- 2월 이후 노동자들의 경제투쟁 활성화: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상호 영향.

- 민중의 자기조직화: 혁명수호민중위원회, 독립노조, 정당

- 민주주의 투쟁 중요: 대중 시위로 국가안보국 습격과 해체

- 2월 이후 임금과 노동조건 둘러싼 파업 물결

- 좌파 정당들 등장, 혁명 좌파와 독립노조운동이 함께 민주노동자당 결성

- 콥트교도와 무슬림, 좌파와 미조직 대중을 이간질하려는 공작에 잘 대처하고 있음

- 급진좌파들은 7월 기반만 새 헌법을 부결시키자는 운동했으나 역부족이었음.

- 혁명좌파는 선거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나 거리에서 영향력 커지며 성장

- 무바라크 개인만이 아니라 군부 자체를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 영향력 커지고 있음.

- 11월 18일 시위는 군부의 반혁명 시험대였고, 광장 사수에 성공. 

- 거리 시위와 광장 점거를 주도하는 청년들과 노조운동의 결합이 관건 
 
 
서구식 자유주의 혁명? 쿠데타? 다 헛소리



4.    혁명은 어디로?


- 위기의 강도에 달려 있다: 판도라의 상자, 탄압만으로 억누를 수 없다. 
이집트도 선거 예정 등이 있기 때문. 다른 나라도 이런저런 양보를 함.

- 경제 위기와 생활 수준 향상 요구를 군부와 임시정부들은 해결할 수 있는가.

- 이슬람 개혁주의를 포용할 수 있는가.

- 이스라엘 등 전통적 반제국주의 정서에 부합하는 정책 펼 수 있나? 팔레스타인 독립 문제 해결 여부.

- 신자유주의 정책 전환 여부: 이집트 IMF에 돈 빌려 달라 요구. 군부는 미국에서 시위진압무기 대량 구입.

- 지배계급의 재구성: "청산" 과정, 얼마나 이행되느냐. 


□ 주관적 요건 
=> 혁명은 계속돼야 하고, 계속될 것.

앞서 언급한 요소들에서 아랍, 특히 이집트 지배자들이 혁명 대중의 요구를 들어줄 객관적 능력이 없음.
친미 부패 지배계급 청산 가능하지 않다.


- 노동자 투쟁의 전진에 달려 있다.(이집트와 시리아): 노조운동은 경제투쟁의 활력을 일반화하는 정치총파업 등 추진 필요. 독자정당 통해 무토지 농민을 혁명 지지로 할 수 있어야.

- 독립적 정치: 나쁜 예는 리비아, 시리아도 시험대. 독립적 정치는 군부의 종단간 이간질 시도와 좌파 마녀사냥에 맞설 수 있도록.

- 파업과 노조, 정당: 조직화

- 국제적 연대: 직접 연대, 더 중요한 것은 각국에서 투쟁을 전진시키는 것. 각국 투쟁의 확산은 제국의 개입 능력을 무력화함. 예) 베트남.
 


□ 우리에게 필요한 것

- 혁명적 낙관주의: 외양 속에 감춰진 본질 속에서 혁명의 현실성을 이해. 즉,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가 제기하는 인류에게 제기하는 과제는 체제의 혁명적 재구성이라는 사실.

- 노동계급의 중심성: 노동자들의 고유한 계급적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의 위력. 그것을 정치적으로 단일세력화하는 것의 중요성.

-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 정치투쟁이 경제투쟁, 특히 노동자들의 부문 투쟁과 조직화를 고무하는 패턴,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의 저수지 구실을 하는 패턴, 둘의 결합으로 대중투쟁의 계급적 성격이 분명해지면서 운동의 계급적 분화와 대중의 계급적 각성과 행동이 고무되는 패턴을 이해하고 이것을 현실 운동에 적용하려 해야 함.

☞ 2008년 촛불 때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라도 각지에서 번졌다면, 그러면서 촛불투쟁을 지지한다는 선언들이 조직됐다면 어땠을까. 직접적인 정치파업은 아니더라도 촛불항쟁의 성격과 위력을 한껏 고무했을 것.
 


※ 1월 25일을 이집트혁명 1주년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기념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하순 공개토론회 두 군데서 이 주제로 발표한 내용의 발표용 메모를 기념으로 올립니다. 세부 진행 과정 묘사보다는 큰 그림에서 혁명 전반의 상황을 이해하고, 혁명의 의의와 성과, 전망을 검토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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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공습 개시일은 바로 8년 전에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날짜만 같은 게 아니죠. 그때처럼 폭격은 추악한 의도로 시작됐습니다. 벌써 민간인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분열해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다만 미국 등이 역량과 향후 전망 문제로 예상보다 소극적이고,진보진영이 분열한 게 차이라고 있습니다. 8년 전에 미국 지배자들은 거침 없었고, 전쟁반대로 진보진영이 단결해 있어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공동 행동을 곧바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것, 그래서 자신감이 부족한 것, 군사력 동원 자체도 쉽지 않은 것, 카다피는 서방과 화해한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들은 제 개인적인 에상보다 좀더 뜨듯미지근하게 보입니다. 애초에 원하지 않은 개입이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그들의 폭격 의도가 더 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다피와 맺은 석유 개발 계획을 보호하고, 국내 정치 위기를 전쟁으로 돌리며(제국주의 지배자들의 전형적인 술책이기도 한), 중동 혁명으로 손상된 지역 패권을 유지하는 방편(특히 유럽 열강들의 패권)으로 개입했다는 의도가 더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국내 진보진영에 관해 말하자면, 지금은 진보신당은 비행금지구역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리비아 폭격 반대 집회에 불참했고 참여연대 등 엔지오들은 아직 입장을 내지 못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사실상 폭격을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 이날의 집회는 더 중요했습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단체와 개인들 다수는 진정으로 중동 항쟁을 지지하기 때문에 다국적군의 서방 폭격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습니다[각주:1].

서방 강대국들이 민주화를 지지한다며 공습을 시작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동 혁명을 지지하는 좌파들이 폭격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동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자 민중은 대체로 서방 제국주의가 후원해 온 독재자들에게 반대해 들고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혁명 지지와 서방 군사 개입 반대를 연결해야 합니다. 서방 지배자들이 혁명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민중 혁명이 제국주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중동의 민중에게도 도움되지 않고, 제국주의를 우리가 이길 수 없다는 생각만 키워줄 뿐입니다. 한국의 우익들도 리비아 사례를 통해 북한 군사 압박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폭격 지지는 우익들의 반동적 의제에 힘을 실어줄 뿐인 것이죠. 

무엇보다 서방 폭격은 혁명을 방해하고 더 큰 인도적 재앙을 낳을 것이 분명합니다. 일부 언론이 리비아 민중이 서방 개입을 환영하는 듯 보도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너무 억압받던 일부 이라크 민중이 미군을 환영했지만, 곧 점령의 진실이 드러났고 이들은 대미 항전으로 나섰습니다.

전쟁에 내재한 논리에 따라 서방이 지상군 개입으로 나아가거나 리비아와 중동의 민중 저항이 서방의 군사 개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게 될 때 일관되게 혁명을 지지하는 운동을 건설하려면, 지금 올바른 견해를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혁명이 더 진전돼 다른 나라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질 때도 이 논쟁은 반복될 가능성도 큽니다.


‘다국적군의 리비아 폭격 규탄 집회’가 26일 오후 4시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렸다.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나눔문화, 대학생사람연대, 전국학생행진, 경계를넘어, 사회주의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평화재향군인회,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 등 열두 개 단체에서 2백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다국적군의 폭격에 반대하는 것이 리비아 항쟁을 돕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미진

참가자들은 “다국적군은 리비아 폭격을 중단하라!”, “폭격 반대! 서방 개입 반대!”들을 외치며 집회를 시작했다.

사회를 맡은 반전평화연대(준) 공동간사 김어진 씨는 오늘 집회에서 다양하게 준비한 발언들을 들으면서 구호 소리가 더 커지길 바란다며 구호를 선창했다.

민주노동당 최창준 자주통일위원장은 미국 정부의 위선을 규탄하며, 리비아 폭격과 한반도 평화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비행금지구역에 많은 이들이 헷갈렸지만, 실상을 보니 미국이 맘 놓고 폭격하는 곳이었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군사 훈련을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다. 리비아 폭격을 용인하면, 한반도 평화도 못 지킬 것이다.”

다함께 전지윤 운영위원은 민간인 희생을 막으려면 서방 군사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리비아 민주화를 폭격한다는 것은 MB가 친서민하겠다는 말보다 더 큰 거짓말이다.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을 막으려고 2백만 명을 죽였고,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인구의 3분의 1을 죽였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1백만 명이 넘게 학살했다.

“카다피의 악랄함은 바로 이 제국주의자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제국주의가 카다피를 막고 인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서방의 군사 개입과 동시에 바레인 등에서 유혈 진압이 시작됐다. 지금 군사 개입은 제국주의 반혁명의 시도인 것이다.

“중동의 민중 혁명과 국제연대를 결합해 중동을 거짓말 금지구역, 독재 금지 구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금지 구역으로 만들자.”

△8년 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날, 리비아에서 서방의 공습이 시작됐다. 리비아 공습의 폭력적이고 반혁명적 성격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이미진

전국학생행진을 대표해 발언한 서울대 지윤 총학생회장은 “리비아 민중의 해방은 리비아 민중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계를 넘어’의 수진 활동가는 1990년대 이라크 비행금지구역은 미국의 명분과 달리 억압받던 쿠르드족과 시아파 민중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폭격 후에 오히려 쿠르드족은 후세인에게 학살됐고, 폭격으로 망가진 삶의 터전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은 평범한 이라크인들이었다. 오히려 미국의 군사 개입은 2003년 전쟁으로 이어졌다. 같은 일이 발칸의 코소보에서 반복됐다.

“지금 리비아 민중을 구한다고 폭격을 지지하는 것은 이런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한 방법이 결코 아니다. 서방은 리비아에서 민중이 죽어가는 화면을 계속 내보내며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프레임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왜 서방은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는 이스라엘에게 비행금지구역을 말하지 않을까.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대화로 해결하라고만 할까. 폭격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거를 잊었느냐고. 리비아 민중이 정말 자기 해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나눔문화 김재현 활동가는 이 전쟁이 세계 평화를 더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방은 리비아 민중이 카다피에게 고통받고 있을 때, 무엇을 했는가. 오랜 경제 제재로 리비아 민중을 고통스럽게 해 왔다. 카다피에게 오히려 무기를 팔아 왔고 지원해 왔다.

“이번 전쟁은 인류 평화공존에 중대한 도전이다. ‘국민보호책임’은 전쟁의 문턱을 더 낮췄다. 이제 언제든 북한을 공격할 수 있게 됐고, 북한은 이 때문에 핵무장을 더 재촉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 개입이 세계 민중에게 좋은 결과를 낳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미진

사회진보연대 수열 활동가는 ‘민주화를 위한 군사 개입’이 고리대금업자의 광고와 같다고 비판했다.

“다급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것처럼 말하지만 대출업자들은 오히려 민중을 갈취한다.

“악덕 고리대금업자를 찾는 것처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군사개입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민중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줄 것이다.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민중이 요구한 자유와 전기, 수도는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서방의 리비아 공습을 두고 한국 진보진영이 분열해 있지만, 이날 집회 연사들은 매우 인상적으로 서방 군사 개입의 본질과 효과를 폭로했다.

리비아와 중동의 민중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왜 서방 지배자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사회자의 바람대로 집회가 끝나갈수록 참가자들의 구호 소리는 높아지고 있었다.

폭탄은 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이 평범한 진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태세가 돼 있음을 보여 줬다.

※ 출처: http://www.left21.com/article/9486





 

  1. 제가 볼 때, 민주노동당은 이 문제에서 불분명합니다. 당 논평에서 리비아 민중항쟁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가 없습니다. 이날 집회에서도 미국을 규탄하고, 이를 한반도 평화와 연결했지만, 리비아 항쟁을 지지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3세계 민족주의 관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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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강대국들이 리비아에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카다피의 학살을 막고 리비아 민중을 구하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혁명을 돕고자 하고, 독재자 탓에 죽어가는 희생을 막으려는 심정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들이킬 순 없다.

서방 강대국들은 카다피보다 더한 살인마들이라는 점, 카다피와 서방 강대국들 정부 서로 진지하게 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 잘못된 외부 개입이 혁명을 왜곡하고 방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군사개입 찬성론은 목적과 반대되는 수단에 찬성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인 최병천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위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가 왜 서방 강대국의 군대여야 하는 것이냐인데,그는 우선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한다.

또 그는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라고 말하는데, 리비아 민중의 자기해방 능력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서방 군대의 개입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결국 최 위원의 주장은 민중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룰 가망이 없으니 강대국 군대가 강제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리비아 혁명의 수도 구실을 하는 벵가지의 한 건물에서 서방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혁명 투사들.


그런데 과연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존재인가.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은 패권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먹여 왔다. 이른바 ‘인도주의 개입’론은 소말리아, 코소보와 세르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해 줬다.

그러나 현실과 명분은 달랐다. 제국주의 군대는 ‘인도주의 개입’ 때마다 자신이 보호하겠다고 한 바로 그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도적 재앙에 빠뜨렸다.

소말리아에서 민간인 수천 명을 죽였고, 세르비아에선 민간인 지구가 폭격 대상이 됐고, 폭격은 민족간 증오를 더 부추겨 세르비아에선 알바니아계가 쫓겨났고, 코소보에선 세르비아계가 수십만 명 쫓겨났다.

세르비아 정부와 의심스런 코소보 해방군을 제외하면 그 두 민족의 평범한 대중은 그 전까지 이웃으로 살아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수백만 명이 학살당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듯이, 제국주의 점령군은 이곳들에서 카다피보다 더 끔찍한 짓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제거하겠다고 했던 후세인, 탈레반, 알카에다 등은 모두 미국이 키운 악당들이었다.

지금 카다피가 사용하는 무기들도 죄다 서방이 판매한 것이다.

최 위원의 주장처럼 리비아에서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가 대립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카다피는 후세인의 몰락을 보며 미국에 항복했고, 그 뒤에는 서방 정부들과 유착해 왔다.

이런 상호 유착 때문에 혁명 초기 서방 국가들은 카다피 비판을 애써 피했다. 지금 그들이 군사 개입을 망설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잡혀 개입할 지상군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개입이 또 실패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서방이 군사 개입을 한다면 그 목표는 강대국들의 패권과 석유 자원 확보이지 리비아의 민주화가 아니다.

이 때문에 리비아 혁명 세력의 ‘전국위원회’는 일단 서방의 지상군 개입에는 반대하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문제에서는 혼란스런 입장을 내면서도, ‘외국 군대’의 주둔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강대국들의 경제제재로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방이 군사 개입을 시작하면 ‘저항세력은 서방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라는 카다피의 악선동에 오히려 힘이 실릴 것이고, 혁명 세력은 분열할 것이다. 심지어 리비아 혁명에 우호적인 국제 좌파 진영도 분열할 것이다. 

일단 발을 들여 놓은 서방 군대는 ‘안정’과 ‘평화’라는 이름 아래 리비아의 모든 국내 세력과 석유 자원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친미독재 국가들을 위협하는 민중 반란 물결을 분쇄하려 할 것이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사실상 카다피의 대공능력을 무력화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므로 선제 폭격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것은 리비아의 혁명 열기를 식히고, 확산하던 중동 혁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폭격과 서방 군대 개입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끔찍한 재앙과 비극을 낳을 것이다.

제국주의 군대는 결코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혁명은 제국주의 폭탄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자기 해방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리비아 민중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혁명을 지지하는 서방 대중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카다피는 고립될 수 있고, 그렇게 돼야 그의 반혁명적 저항은 위력을 잃을 것이다.

서방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치어리더가 돼선 안 된다.

※ 이 글은 축약돼 <레프트21> 52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보기 ☞ 민주와 인권을 위한 서방 개입이 필요하다?

※ 이 글의 보론은 여기로  ☞ 보편적 인권 vs 국가 주권 구도는 허구다 를 읽어 보시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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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는 ‘반미 전사’인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한때 반미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69년 쿠데타 후에 국가이름을 리비아사회주의공화국으로 내세웠고 이집트, 시리아와 아랍연방을 구성해 이스라엘과 맞서기도 했다.

이 아랍연방은 이집트의 사다트 정부(무바라크의 전임자)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와해되고 만다.

미국은 카디피를 제거하려고 1986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하기도 했다. 미사일은 민간인지구에 떨어져 수백 명을 죽였다.

비록 카다피가 미국과 맞섰고,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리비아에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권력은커녕 모든 민중이 함께 누리는 풍요와 민주주의도 없었다.

다만 그가 서방 강대국들의 질서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것만으로 그의 독재정부가 진보적으로 평가받을 순 없는 까닭이다.

사실 이런 반항은 냉전 시대 소련의 후원 아래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한계가 뚜렷했다.

냉전 해체 이후 고립된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벗어나려 카다피는 미국 중심의 질서에 순응하려 했다. 미국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고, 2003년 12월에 핵 개발 포기 선언을 했다.

그 대가로 2004년에 경제제재가 해제됐고, 2006년에는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고 외교관계를 완전 정상화했다. 2006년 당시 이라크침략전쟁 기획자의 하나였던 부시 행정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핵 개발 문제로 북한과 이란을 압박하면서, “2003년이 리비아에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올해가 이란과 북한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총리 블레어는 미국을 대신해 2003년 극비 협상을 진행했다. 제재 해제와 외교 정상화 후 영국회사 BP는 그뒤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권을 여럿 따냈고, 영국 정부는 막대한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했다. 카다피의 아들은 영국에 유학했고, ‘제3의 길’을 배워 갔다.

그뒤, 영국 사법부는 1988년 팬암기 폭파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영국에 구속돼 있던 리비아 인 한 명을 조건 없이 석방했다.(증거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중동의 민중혁명 파괴가 진짜 목표

서방 강대국들이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인도주의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그래서 위선이다. 위선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들의 관심사는 막대한 자원과 리비아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관계 회복 후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이 석유와 각종 개발 사업에 큰 규모로 투자해 왔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형님 외교 대상국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중해, 소말리아 앞 아덴만 등에 있던 미국, 중국 등의 함대가 리비아로 이동하고 있다. 나토도 긴급 회의를 열고 개입을 논의했다.

자국민 안전 이동 등 여러 핑계를 대고 있지만, 리비아 혁명이 내전 상태로 진행되면서 저항세력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이 정부가 강대국과 다국적기업들에 적대적일 경우, 즉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권력이 무장한 채 리비아를 장악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청해부대도 ‘해적을 팽개치고’ 리비아로 이동했다. 구축함으로 민간인을 태우겠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다. 전세기와 육로, 민간 선박으로 ‘탈출’ 의향 한국 교민은 거의 이동을 한 상태다.

청해부대는 리비아에서 항구 이용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소형 보트를 직접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것 자체가 사실상 해당국의 허가 없는 해당국 영토/영해 내 군사 작전을 펴겠다는 뜻이다. 국민 안전을 핑계로 한 일방적 군사 개입인 것이다.

영국도 특공부대를 진입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 모두 리비아 혁명 상황을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시설의 안전을 말하는데, 석유시설은 80퍼센트 넘게 혁명 세력이 장악했으므로 카디피의 광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미국 네오콘들이 군사 개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포함된 나토 내부에서 영국 정부를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독자적으로 리비아와 관계 개선을 하고 각종 이권을 확보해 온 국가들인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등은 군사 개입과 비행금지구역에 두드러지게 소극적이다. 카다피와 유착관계를 고려할 때 현상 유지가 더 낫기도 하려니와 군사개입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재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국보다 감소하는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주:1]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군사 개입의 수순이며, 그 자체가 전쟁의 시작이기도 한데, 한편에서 그것은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할 여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당장 리비아 근해로 이동 중인 미군 항공모함 등이 ‘합법’적으로 제한 없이 군사 작전을 할 수 있다. 중동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세계의 모든 세력은 이부터 반대해야 한다.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제국주의 전폭기들은 카다피의 대공 방어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이유로 리비아 전역에 선제 폭격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떤 이유든 만들어 내서 혁명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폭격할 수 있다.

이는 리비아 전역에서 혁명 열기를 식히고 폭격의 공포에 떨게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리비아를 제국주의 군대가 장악하면 그것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반미 수사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 카다피의 반혁명 몸부림에 도움을 줄 것이다 . 이것은 리비아 안팎에서 좌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벌써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제국주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고 경고하며 카다피를 공개 응원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진 못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다.

지금 미군과 나토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매여 있어 지상군 투입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실패 트라우마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군사적 대응 방식에 선뜻 합의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대중운동의 정치적 반대로 이를 좌절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동의 민중혁명을 지지하고, 리비아 아 민중의 잠재력을 믿는 것과 연관돼 있다. 나쁜 쪽의 가능성을 막으려면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좌파가 단결해 리비아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방 강대국들이 군사 개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카다피의 저항에 따른 여러가지 피해를 때론 과장해 가며 교묘히 개입 지지 여론을 부추기려 할 것이다. 반군 내에서 폭격 요청을 조작하거나 과장할 수도 있다[각주:2]

무엇이든 나토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 목표는 현존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동의 민중혁명 확산을 차단하고, 리비아와 중동(과 석유 자원)에 대한 강대국들의 통제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다피의 학살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결코 ‘인도주의 개입’을 명분으로 한 서방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리비아의 운명은 리비아 민중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중의 혁명인 것이다. (계속)


<레프트21>51호 온라인 기사, ‘리비아 혁명가는 말한다 ― 서방의 군사 개입은 우리 투쟁을 방해할 뿐이다’에서 발췌.

(생략) ...

혁명위원회를 본 사람들은 위원회의 효율성과 열정에 감탄했고, 위원회의 통제 아래 있는 곳에서는 ‘자유’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벵가지에서는 비록 식량이 부족하지만 빈민들은 혁명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 벵가지에서 식량과 기타 서비스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제공된다.

많은 공장과 핵심 시설 들은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다른 곳들은 혁명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고용주에 의해 운영된다.

혁명가들의 군사 전략은 서방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대 진압 명령을 받고 온 군인들을 설득해 혁명의 편에 서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무장이거나 보잘것없는 무기를 가진 시위대들이 징집 군인들을 설득하는 데 계속 성공했다.

... (생략)




  1.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며, 프랑스 등은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반대 이유가 리비아가 자국의 무기수입 고객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의 행동을 설명할 때, 경제적 이익은 중요하지만 전략적 이익의 맥락에서 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개입이 리비아와 주변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까 봐 두려운 점이 큰 듯하다. 이들 국가들은 그래서 이라크 전쟁의 개시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혁명 세력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므로 이런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기존 기득권층에서 反카다피로 돌아선 세력 가운데 이런 세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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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의 여명” 작전 후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전력증강 계획을 앞당겨 해군 함정을 확충해 군함을 추가 파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주장했다. 

‘아덴만 마케팅’이 자극한 애국주의의 압력 속에서 해상 안전을 위해서라면 강경 대응이나 추가 파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감스럽게도 진보신당조차 “해군 선박의 추가 배치 등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변인 논평을 발표했다.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자는 것은 군비를 더 늘리자는 속셈에 불과하다. 인질 석방 몸값의 수백 배를 사람 죽이는 무기에 쓰자는 것이다. ⓒ사진 출처 합동참모본부




그러나 군사적 대응을 강화해서는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할 수도,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더 키우는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 해적 사건의 30~40퍼센트는 말라카 해협과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일어났다.

그때 유엔은 아무 개입을 하지 않았고, 주변국들이 알아서 협조해 대처했다.

그런데 소말리아에 대해선 달랐다. 유엔은 2008년 6월에 각국이 함대를 보내야 한다고 결의했다. 심지어 그해 12월엔 내륙까지 진입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서방 강대국들이 함대를 파견한 뒤인 2009년에 이 지역 해적 사건은 전 해보다 갑절로 늘었다. 2010년부터 해적 사건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해적의 활동 범위가 소말리아 연안을 넘어 인도양까지 넓어진 것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주도로 유엔이 허가한 강대국들의 함대 파견은 단순히 해상 교역로를 보호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의 일부였다. 

특히, 미국은 2003년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WMDPSI)[각주:1]을 주도적으로 구성했는데, 이는 쉽게 말해 미국이 테러 혐의 국가로 찍은 나라들에게 군사적 해상 봉쇄를 하겠다는 것이다. 

서방 강대국들, 특히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해적’을 빌미로 삼은 것이다.

아덴만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지나는 곳이고, 아라비아 반도의 석유가 인도양으로 나오는 바닷길목이다. 

소말리아는 미국이 알 카에다 본거지라 꼽은 예멘과 아덴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나라다. 소말리아 파견 함대는 중동을 포위하는 함대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은 최근 아프리카에 대한 군사 개입도 늘리고 있다. 현재 미국은 아프리카 사령부를 아프리카 대륙 안에 확보하지 못한 처지다[각주:2].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경제ㆍ군사적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미국에게 소말리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인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그래서 2006년에 미국에 비협조적인 이슬람법정연맹(UIC)이 소말리아 민중의 지지 속에 내전을 끝내고 불안정과 빈곤을 해결하려 나섰을 때, 미국은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 군대가 소말리아를 침략해 수도 모가디슈를 점령했다. 미군은 폭격 등으로 이를 지원했다. 미국이 세운 괴뢰 과도 정부와 각 세력 사이 내전이 다시 시작됐다.

난민 수백만 명을 낳은 지금의 내전과 기아 상태는 순전히 미국의 개입 때문인 것이다[각주:3].

소말리아 인들이 생계형 해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도 강대국들의 책임이다. 

1990년대부터 소말리아의 혼란을 틈타 각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불법(약탈적) 어업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버려 왔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의 어업이 붕괴됐다. 지금 함대를 파견한 어느 나라도 이런 행위를 막으려 한 적이 없다. 

1990년대 초반 국제구호단체들이 선진국들의 남는 식량을 마구잡이로 푼 결과, 소말리아 농업의 자생력이 오히려 파괴됐다. 이런 행위가 오히려 소말리아 식량 위기를 구조적 문제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도시에서도 바다에서도 생계를 해결할 방법을 빼앗긴 어민들은 바다로 나가 불법 어선들에게 ‘세금’을 받았다. 미국과 친미 강대국들은 이런 사람들을 ‘해적’이라 부르며 (불법 어선이 포함된) 자국 선박을 보호하겠다고 함대를 파견한 것이다.

해적의 규모가 커졌다 해도 이들을 양산하는 내전과 기아의 책임은 제국주의와 그 동맹자들에게 있다. 

소말리아 민중의 삶과 존엄을 파괴하는 제국주의 군대가 모두 철수하고 내정 간섭을 중단해야 소말리아에 평화와 민주적 재건의 싹이 피어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소말리아의 기아와 빈곤을 해결해 나갈 때 ‘해적’은 사라질 것이고 선원들의 안전도 지켜질 수 있다.

 부메랑이 될 ‘아덴만 마케팅

‘아덴만의 여명 마케팅’은 동이 채 트기도 전에 박살이 나는 듯하다. 
해양경찰청 수사본부는 7일 삼호주얼리 호 석해균 선장이 맞은 총탄 네 발 중 하나가 한국 해군의 탄환이라고 밝혔다. 
잃어버린 한 발의 총탄에 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나머지 한 발은 교전 과정에 생긴 파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정작 해적이 쏜 게 분명한 총탄은 하나뿐인 것이다.
해경은 “새벽 시간 배의 조명이 꺼지고 링스헬기가 엄청나게 사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우리 해군과 해적이 서로 총을 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정부와 군을 변호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교전 없이 해적을 제압했고 석 선장은 이미 쓰러져 있었다’는 국방부의 애초 발표와 정반대다. 
그동안 이명박은 자신이 직접 지시한 작전이 완벽히 수행됐다며 자랑해 왔다. 한나라당 대변인 안형환은 총알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이들에게 “간첩이나 다름없다”고 호통친 바 있다. 
이 모두가 거짓이었다. ‘완벽하고 성공한 작전’이기는커녕 해적 여덟 명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인질들의 생명도 도외시한 무모한 도박이었던 것이다. 국방장관 김관진도 작전 며칠 후 기자들에게 무리한 작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대통령의 지시로 그냥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금미305호 선원들이 9일 극적으로 석방됐는데, 정부는 6~7억 원에 불과한 몸값 지원조차 거절한 바 있다.
(여당은 원칙의 승리라고 논평했지만, 협상을 맡았던 케냐 교포 김종규 씨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석방금 지불 사실을 시인했다. 석방 과정의 의문점은 ①석 선장이 위중하고 해군의 총탄에 맞은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석방, ②케냐 교포인 협상 당사자가 석방 시점에서 서울에 와 있었던 점 등이다.) 
청해부대 파병 목적 자체가 ‘선원 안전 보호’에 있지 않다.
한국 지배자들의 소말리아 파병은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 편승해 군사력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에 꾸준히 참여하고 한미FTA 체결에 집착하며 “연안 해군”에서 “대양 해군”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청해부대는 미군이 유럽 여러 나라의 해군과 함께 구성한 연합함대(그 가운데 CTF-151[각주:4]) 지휘 아래서 한국 선박보다 갑절이나 많은 해외 선박을 호송했다. 한국 선박 가운데 직접 호송한 비율은 13퍼센트에 그친다. 
군사력을 대외에 과시하겠다는 한국 지배자들의 전략적 목표와 ‘레임덕 탈출’ 기회를 만들려는 이명박의 계산이 모두 무모한 군사 작전의 배경이 됐다. 
길게 보면, 한국민의 위험은 정부가 미국의 침략 전쟁을 도우러 중동에 파병한 대가다. 파병으로 도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지금 소말리아를 망친 주범이니까 말이다. 
2009년 청해부대 파병 직후 예멘에서 한국인이 표적 테러를 당한 일을 떠올려야 한다. 
한국 정부는 즉시 철군해야 한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50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 가기
  1. 영어 풀네임은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미국 주도로 여러 나라들이 맺은 협약 같은 것으로, 그 내용은 대량 살상 무기를 실을 것으로 의심되는 항공기나 화물선을 공해상이나 우방의 영해 및 영공에서 강제로 검문하거나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북한, 이란 등을 주요 대상국으로 함. [본문으로]
  2. 현재 미군의 아프리카 사령부 본부는 독일에 있다. 그 전에 미국에게 아프리카 사령부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중부 사령부와 유럽사령부가 분할 관할하다 아프리카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2007년 아프리카사령부를 신설했다. [본문으로]
  3.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혼란과 1991년 정부 붕괴 후 내전으로 일어난 인도적 재난을 악화시킨 것은 서방 강대국들의 구호단체들이었다. 이들이 소말리아 지역 사회와 협의없이 식량을 푼 대가로 소말리아 농업은 붕괴 위기에 빠졌고, 이는 식량 위기를 가속화했다. [본문으로]
  4. 한국 정부와 해군은 대 테러 작전 함대인 CTF-150 배속을 원했으나, 같은 해역에서 대 해적 작전을 초점을 두고 한국이 파병 직전인 2009년 1월 창설된 CTF-151에 배속됐다. 그래봐야 이 둘 모두 미국 제5함대의 연합해군사령부(CMF)의 지휘를 받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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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에 승리를! ‘중동의 민중 반란’ 기사 모음(속보 포함)


△2월 2일 민주화시위대가 무바라크의 깡패로 부터 타흐리르 광장을 지키고 있다. ⓒ사진 출처 Nasser Nouri


이집트는 미국의 중동 지배 전략에서 지렛대 같은 나라입니다.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나라(주도 국가이자 강국)면서 32년 동안 미국-이스라엘과 혈맹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아랍권 역대 최대의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서 중동 지배가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그 중동 지배의 핵심 열쇠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중 혁명이 승리한다면 그것이 가져올 세계의 변화 가능성은 어마어마합니다. 

이집트 민중의 혁명은 제국주의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도전입니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곧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이므로 결국 세계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그리 손쉽게 무바라크를 無발악 상태로 팽개쳐두지 않을 겁니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말하는 ‘질서있는 전환’은 혁명 민중을 향한 ‘질서 있는 반격’을 뜻합니다.

이집트 혁명은 크게 봐서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해 터져 나왔다고 봅니다.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경제 위기의 전이, 중동 지역의 억압적 정치 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이 쌓아온 민중의 절망과 분노. 이 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혁명은 엄청난 규모로 사람들을 고취하고 변화시켰기 때문에 이집트 혁명은 단기간의 정권 교체 문제를 넘어선 듯보입니다.

지난주부터 타흐리르 광장을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됐듯, 혁명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입니다.

허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야당, 서방의 눈치를 보며 몸 사리는 무슬림형제단, 강한 탄압으로 아직은 세력이 작은 사회주의 혁명가들. 이런 취약한 주관적 조건에서도 혁명이 전진한 것은 민중의 폭발적인 자생성 덕분인 듯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시간을 벌며 질서 있는 반격을 추구할수록 이 혁명도 가장 전투적이고 가장 명확한 부위를 중심으로 혁명적 지도력을 창출하는 과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독재가 민중항쟁에 항복했는데도 군부 일당의 정권이 5년, 일당국가체제가 10년 유지됐으며 이른바 민주 야당이 집권해서는 신자유주의로 민중의 삶을 더 어렵게 했던 한국의 경험을 돌아보면 혁명의 진전은 혁명의 성공과 생존을 위해 정말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러 정치적 논쟁과 우여곡절을 통과할 것입니다.

민중을 혁명적 방향으로 단결시킬 지도력 구심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위대한 이집트 민중이 지금 해야 할 일인듯합니다. 무엇보다 혁명에 참여한 민중이 자신들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조직해 힘을 결집한 수단들을 만드는 게 급선무겠지요. 그래야 무바라크가 고용한 깡패와 경찰의 폭력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노동자평의회 만들기, 민중의 생존권 보장 등 생활상의 요구와 정치 요구를 결합하기, 노동자와 무토지 농민들이 투쟁으로 동맹하기, 군대 사병들에게 혁명에 가담하고 병사들의 혁명위원회를 만들라고 호소하기, 민중 스스로 무장하기 등의 조처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집트 혁명으로 제국을 거꾸러뜨리고 중동을 혁명의 봉화대로 바꾸길 바랍니다. 이 혁명은 세계경제와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평화적 정권 이양을 거부할수록 혁명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4년 전 걸었던 그 거리들이 지금 혁명의 거리가 돼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이 혁명의 기운은 한국에서 MB라크(명바라크)와 싸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연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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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에 관한 제 지난 글(아덴만 축배 뒤의 진실: 소말리아에서 철군해야)에 몇 개의 댓글로 몇몇 분이 반론을 폈습니다. 

길거리에 삥 뜯겨 봤냐, 그런 상황에서도 불쌍한 해적 운운하며 한가한 소리 할 수 있냐는 반론이 가장 많은 듯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 선박이 피해를 보는데 정부가 범죄자인 해적을 사살해서라도 한국 선박 구하는 건 필요한 일 아니냐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서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전을 왜 비하하느냐, 정부가 또 돈으로 해결해야 하느냐 하는 반론성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반론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첫째 답변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성공했다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정부의 과장 광고 탓에 일부 사람들은 군사적으로도 불가능한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청해부대가 지금까지 한국 선박을 직접 호송한 것이 242회입니다. 같은 기간에 국토해양부가 밝힌 해당 수역 통과 한국 선박은 1천62 척입니다[각주:1]. 한 회에 여러 척을 호송한다고 해도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소말리아 해안선이 청해부대 작전 지역보다 넓은 데다가[각주:2], 1척의 구축함이므로 한국과 교대시 공백도 있습니다[각주:3]

게다가 강대국들의 함대가 소말리아 해역에 진을 치자, 해적들의 활동 범위는 오히려 인도양 전역으로 넓어졌습니다. 마치 풍선효과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한국 해군이 인도양은커녕 소말리아 해역을 완전히 평정할 능력이 되나요? 한국 자체로는 추가 파병이 불가능합니다. 여섯 개 뿐인 4천5백 톤급(이지스함 바로 아래 급) 구축함 중 하나가 그곳에 가 있습니다[각주:4].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청해부대는 한국 선박 보호를 위한 독자 작전이 아니라 대 테러 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미군 제5함대의 연합해군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연합 함대의 일원으로 파병됐다는 겁니다.

군사작전이 최선이라는 논리대로라면, 최소한 구축함 한 척을 더 보내야 할텐데, 아무리 소말리아 해역이 중요해도 본토를 지키는 해군 전력의 핵심 구축함 가운데 3분의 1을 먼 곳에 보낼 수 있는 간 큰 나라는 없습니다[각주:5].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서해에서 북한과 군사적 긴장을 유발한 상태입니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군사 강대국들도 유엔 결의안을 명분으로 함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해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엔이 해적을 좇아 내륙으로 쳐들어갈 권리까지 결의안으로 채택했는데도 그렇습니다. 

청해 부대가 직접 해적을 물리친 작전도 이미 14회입니다. 그런데도 해적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왜일까요? 

선박을 호송 중인 청해부대 대조영함.(함은 계속 교체함) ⓒroknavy http://www.flickr.com/photos/roknavyhq/5055901829/


이번에 문제가 된 해적 13명(피살 8명과 체포 5명) 중 10명이 한 동네(푼틀란드 갈카요) 출신이라고 하죠. 부산에서 조사 받는 해적들은 유치장에서 세 끼 꼬박 나오는 밥에 “굿”을 연발하고 있다고 하네요. 소말리아 해적이 기업화했다 해도 그들이 생계 때문에 ‘해적’이 된 사람들이지 광기어린 테러리스트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간접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말리아에서 해적이 생겨나는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점은 사실관계만 확인해도 분명해 보입니다. 무리한 작전은 오히려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뺏을 뻔했습니다.

둘째, 한국 정부의 태도입니다. 어느 분이 매번 한국 정부가 인질값을 내야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인질값을 지불한 적도 협상에 임한 적도 없습니다. 

인질값 협상은 모두 개인 차원이나 선박을 보유한 기업 차원에서 이뤄졌구요. 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금미호 선원들은 여태 풀려 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미호가 영세 어선이라 배 자체로 이미 담보 대출을 받은 상태라 정부에게 몸값을 지불할 돈의 대출을 요구했는데도 정부는 거절했습니다. 이쯤되면 표현상 비약이긴 하지만, 돈 없다고 몸값을 열 배나 낮춰 준 해적이 더 인간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대기업에 속하는 삼호해운의 선박만 구출해 주고 만 것입니다. 그나마도 무리한 작전[각주:6]을 펴느라 석해균 선장은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그의 완쾌를 빕니다)

이쯤되면 결과적으로 성공한 한 번의 작전으로 정부가 할 일을 다했다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자고 할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닐까요?

셋째,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이중적 태도입니다. 국제상공회의소의 국제해사국이 낸 통계(2003~2008)를 보면, 소말리아와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 행위가 늘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인도네시아와 인근 말라카 해협 등이 훨씬더 많은 해적행위 발생지였습니다[각주:7]

그러나 유엔은 이 지역에 내륙 침입권까지 주는 각국의 해군 파견 결의를 한 바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2003년과 2004년 해적행위는 빈도 면에서 2008년 아덴만보다 더 많습니다. 아덴만 해적이 늘기 시작한 2007년조차도 해적행위 숫자 자체는 그해 인도네시아와 비슷했습니다.

절대 규모에서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 행위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인데, 한국 정부(국토해양부) 통계는 이조차도 2008년 1~2분기에는 2007년 1~2분기와 발생 숫자가 같습니다. 의심스럽게도 유엔은 2008년 6월에 이미 소말리아에 해군을 파견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킵니다.(가장 폭발적으로 이 지역 해적 사건이 늘어난 것은 강대국 함대들이 온 후인 2009년 상반기입니다.) 

이런 차이는 해당 지역과 해당 지역의 국가에 대한 (유엔을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인도네시아와 그 주변국들은 서방 강대국들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죠. 

소말리아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른데, 하나는 정부가 붕괴한 상태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국에 적대적인 이슬람 정부가 등장할 뻔한(2006) 국가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소말리아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공격 대상이 됐죠. 미국이 소말리아를 폭격하고(2007) 미국의 사주를 받은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를 침공한(2006) 배경입니다[각주:8]



소말리아 자체는 별 것 없지만 그 지정학적 위치는 아라비아 반도와 마주보는 위치로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들, 중동 석유가 나가는 뱃길에 자리잡은 나라라는 겁니다. 이런 곳에 미국을 앞세운 서방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통제력을 유지·강화하려 합니다. 

유엔에서 내륙 침입권까지 확보하면서 소말리아 해안에 강대국들이 함대를 파견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석유가 계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최강대국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군사기지를 바라고, 아라비아 반도를 마주 보는 소말리아도 좋은 후보지 가운데 하나입니다[각주:9]. 소말리아를 통해 아라비아 반도 특히 예멘을 경계하고[각주:10] 아프리카 내륙으로는 케냐와 수단 등에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넷째, 여전히 소말리아에서 가난한 사람들 일부에게 해적으로 살도록 하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해결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초 소말리아 정부의 붕괴는 미국과 소련이 부추긴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사주로 에티오피아를 쳐들어간 소말리아 정부는 패배하고 약화된 군사정부는 분열합니다. 이것이 내전의 시작이죠.'

아버지 부시가 보내고 클린턴이 지휘한 미군은 평화유지군이란 깃발 아래 학살을 자행합니다. 미군은 평화 구호 활동이 아니라 군벌들 간 내전에서 특정 군벌을 편들어 자국에 우호적 정부를 만들려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군은 아이디드라는 장군을 편들었는데, 어쩌다 아이디드가 고분고분하지 않자 이들과 미군이 싸우게 된 겁니다. 2006년에는 에티오피아 침공이 있었구요.

여기에 정부 붕괴를 틈타 소말리아 영해에서 다른 나라 배들이 어업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버리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죠. 연평도 식으로 치면 이들의 어업은 국경(영해선) 침범입니다. 이런데도 함대를 보내는 게 자국 선박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면, 저는 과연 누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질을 하는 것이냐 되묻고 싶습니다. 

한국 정부는 2000년대부터 ‘대양 해군’을 부르짖어 왔습니다. 한미FTA를 ‘선진통상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선전해 왔습니다.(이명박 정부는 ‘성숙한 세계국가’) 이런 목표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소말리아 파병과 군사력 과시가 제게는 한묶음으로 보입니다. 이 묶음은 전임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 모두 공유한 목표이고 믿음이었습니다. 

청해부대 소속 UDT가 삼호주얼리 호에서 작전을 실행하는 실제 모습. 출처: 자주국방네트워크(KDN) http://koreadefence.net/detail.php?number=1495&thread=22r01



자국 배는 4분의 1도 ‘커버’ 못 하면서 그 배나 되는 외국 선박을 호위한 것은 청해부대의 진정한 임무가 아덴만과 소말리아 해역, 그리고 인도양에서 미국 중심의 군사 질서에서 한몫 하는 걸로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한마디로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전략의 하나로 소말리아에 가 있는 겁니다. 한국 지배자들은 ‘소제국주의’로 나아가는 듯 보입니다. 

따라서 저는 튀니지와 이집트인들이 보여 줬듯, 소말리아인들에게도 스스로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먼 얘기지만, 미국의 뜻을 거슬러 민중이 봉기한 튀니지와 이집트는 민주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저도 한국인 인질이 더 없었으면 좋겠고, 지금 잡힌 인질도 풀려났으면 합니다. 한국인 선원들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같은 이유로 소말리아 민중의 안전과 생계도 중요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인질값을 주고라도 선원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적행위가 없어지도록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탐욕스런 개입을 중단하고 소말리아의 모든 해역에서 제국주의 군함들은 철수해야 합니다. 차라리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게 낫습니다. 차라리 정부가 금미호 선원들의 몸값을 지원하지 않는 걸 비판하십시오. 

국민의 세금을 먹는 정부가 국민의 안전에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 간접적으로 보면, 한국민의 위험은 바로 그 세금으로 미국의 침략 전쟁을 도우러 중동에 파병한 대가이기도 합니다. 그 파병으로 도운 것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고, 그것이 지금 소말리아를 망친 주범이니까요. 
  1. 이 시기에 대해 조선일보의 1월 25일자(인터넷에는 24일 밤) 사설은 “2009년 3월~2010년 10월 한국 국적 또는 한국인이 탄 선박 925척이 소말리아 해역을 통과했지만 청해부대 호위를 받은 경우는 13%인 120척뿐이었다. 게다가 소말리아 해적은 활동 범위를 인도양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본문으로]
  2. 청해부대의 호송 작전 거리는 아덴만 일부인 1천2백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소말리아 해안선은 총 3천 킬로미터가 넘습니다. [본문으로]
  3. 해군은 6개월 주기로 교대하는 구축함 왕복에 총 8주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4. 그보다 작은 배는 장거리까지 나가 작전할 능력이 안 되고, 이보다 큰 이지스함은 단 두 척이라 나라 밖으로 보낼 수 없다고 한다. [본문으로]
  5. 지금도 돌아온 구축함의 정비 기간을 포함하면 몇 달은 두 척을 뺀 네 척만 운용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금 인도 해군과 MOU를 체결하고 인도 구축함의 도움을 받기로 했죠. 그런데 이는 한국 해군도 인도 선박을 함께 호송해 주는 것이니 절대적인 대책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6. 한국 주말 언론 보도에 시점을 맞추려던 것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긴 합니다. [본문으로]
  7. 이 지역에선 아시아지역해적퇴치협정이란 걸 맺었는데, 이 협정은 주변국들끼리의 협정이다. [본문으로]
  8. 한마디로 정부를 붕괴시킨 것은 미국이라는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이 내륙 진입권리까지 각국 해군 함대에게 준 것은 확인 사살과 같은 짓입니다. [본문으로]
  9. 현재는 소말리아 인접국인 지부티에 미군 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지부티는 아덴만 안에 있는 소국입니다. [본문으로]
  10. 미국은 예멘도 알카에다 근거지라며 군사적 통제를 하려 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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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쇠퇴하는 경제적 영향력을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으로 만회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세르비아[각주:1],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벌인 야만적인 침략 전쟁은 이런 전략의 결과였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북한의 군사 위협을 과장해 ‘평화’의 유일 관리자를 자임해 왔는데 그 실상은 군사적 대북 압박이었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의 핵무장)을 묶어 두고,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했다. 군사대국들이 밀집한 동북아의 맞춤형 전략인 것이다[각주:2].


양국간 대화든 6자회담이든 매번 약속을 어기고 사태를 악화시킨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북핵 위기 시작 이후 제네바 합의(1994)를 이행하지 않았고, 북미공동선언(2000)을 무시했으며, 9ㆍ19 공동선언(2005)은 바로 뒤집었다.
해외 계좌 동결, 북한 선박 임의 검색 등 경제 제재도 강화돼 왔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에 정전협정을 깨고 남한에 핵무기를 들여 온 적이 있다. 핵을 포함한 대규모 선제공격 훈련을 실시해 온 것도 미국와 남한 정부였다[각주:3]. 1994년에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이런 군사ㆍ경제적 압박이 북한 정권을 핵과 미사일 개발, 벼랑끝 외교[각주:4]로 내몬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반제국주의 저항으로 볼 수는 없다.


반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북한의 군사적 대응

사회주의는 총과 미사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대중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핵심 수단은 말과 설득, 그리고 자신의 힘을 민주적적 사회 운영에 발휘하려는 집단적 행동이다. 폭력은 지배자들의 반동적 폭력에 맞서는 방어적 수단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최소성의 기준을 벗어나는 대량살상무기는 사회주의의 방어수단이 될 수 없다.


첫째, 핵은 인류와 환경을 오염하고 파괴하며 폭격 지역의 인간을 절멸시키는 ‘대량살상무기’일 뿐이다.


따라서 방어적 억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변호도 명분이 없다. 약소국의 핵무장은 제국주의 핵 강국들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핵무기를 반대한다.

둘째, 군비 증강으로 강대국에 맞서려면 다른 분야를 희생해 가용 자원을 군사 분야로 최대한 집중시켜야 한다. 이 과정이 3대 세습 같은 권력의 초집중, 비민주적 억압의 강화, 노동계급 삶의 희생을 낳았다.

올해 김정일은 “[인민에게] 흰 쌀밥에 고깃국을 주겠다”고 한 아버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만성 식량부족국가가 돼 버렸다.

그 뒤 국제협상에서 북한의 요구 중 빠지지 않는 게 식량 지원이었는데, 정작 북한 정권의 우선 순위는 군비 증강에 가 있다.

결국 민중의 희생으로 군비를 늘리는 것은 북한 체제의 억압적ㆍ착취적 성격을 드러낼 뿐이다.

셋째,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북한은 진정으로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나라 안팎에서 모두 대중적 지지를 동원할 수 없다. 사실 북한 정권은 이에 관심도 없다.

대규모 살상무기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연평도처럼 군사 보복식으로 대응하면, 표적이 되는 상대 국가(남한)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민중에게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각주:5]. 남한의 반제국주의 운동이 매번 부딪히는 어려움이다[각주:6].

역설이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시도는 미국 제국주의의 동북아 개입을 정당화하고 일본이 재무장하는 명분을 쌓는 데 이용됐다. 남한 정부와 우익 언론도 이를 국내에서 억압적 조처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

반대로 체제와 정권이 진정한 개혁을 제공하면서 ‘세계적 반동의 보루’인 미국 제국주의와 맞서는 경우, 나라 안팎에서 진정한 반제국주의 대중 동원을 이룰 수 있다[각주:7].

이것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제국주의 연합군을 물리친 배경이다[각주:8].


비슷한 예로,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반(反)차베스 우익 쿠데타를 세 번이나 후원했는데, 이들은 번번이 민중 저항에 직면해 실패했다.

그러나 차베스는 반제국주의ㆍ반자본주의 운동에 지지를 호소[각주:9]하다가도 한편에서 관료와 군부에 의존하고, 중국 같은 비서방 강대국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최근에는 핵개발을 선언했다.

이런 사례는 반제국주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이 돼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체제의 우선순위


제국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기업 경쟁이 국제적 규모로 확산한 결과다[각주:10]. 호전적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바꾸는 일은 자본주의를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목표는 제국주의 미국에게서 “체제 보장”을 받고 그 질서에 편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대응이 반제국주의가 아닌) 넷째 이유다.

김일성은 1994년 전쟁 위기 때 방북한 카터에게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고 말했고,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같은 언급을 김대중에게 전했다.

“철천지 원쑤”의 군대를 통일 후에도 수용한다는 것은 현재의 주둔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억압 체제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세계자본주의) 질서에 순응할 수 있다는 의사 표시인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려는 바는 북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는 한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의 군사 압박을 막는데 도움이 될 정치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립은 더 깊어질 뿐이다.
그러나 국가간 경쟁과 축적을 인민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는 체제와 정권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신화를 거부하고 아래로부터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7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9048


  1. 1999년 나토군을 앞세운 폭격 전쟁. [본문으로]
  2. 북핵 위기 주범설은 완전한 위선인데, 미국은 훨씬 더 파괴력이 큰 핵무기를 1만 6백 기나 보유하고 있다고 하며, 이스라엘 같은 호전적 우익 국가에게는 NPT에 가입하지 않고 핵무기 1백여 기를 보유하는데도 절대 제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지지했다. [본문으로]
  3. 연인원 20만 명이 참가하며 한미 육해공이 모두 [본문으로]
  4. 이른바 벼랑끝 외교가 남한 지배자들의 제국주의 추종 외교보다 자주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본질은 북한 정권이 미국에게 벼량으로 내몰린 상황에 있다. 북한이 능동적으로 벼량으로 간다는 것은 친제국주의 세력과 언론이 한반도 위기 주범을 북한으로 몰고가려는 술책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의 자주파는 북한 정권을 미화하려는 의도 때문에 이 술책에 무비판적이다. [본문으로]
  5. 베트남 전쟁 등 여러 사례를 봐도 약소국 민중의 민족해방투쟁이나 제국주의의 간섭에 부딪힌 제3세계의 진보 정권들에게는 제국주의 본국 민중운동의 지지가 매우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본문으로]
  6. 미국의 대북 압박이 원흉이며 이에 반대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주장하면, 흔히 남한 민중 전체를 겨누는 북한의 핵무기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악의적 반론에 부딪히곤 한다. [본문으로]
  7. 북한이 민중을 위해 필요한 개혁을 제공하는 정권이라고 상상해 보자. 미국의 군사적 대북 압박에 저항하는 여론을 이끌어 내고, 저항 운동을 건설하는 일은 매우 쉬워질 것이다. [본문으로]
  8.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뒤이어 독일에서 제정이 타도되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 열강들은 14개국 연합군을 꾸려 러시아의 반혁명 백군을 지원하며 혁명 러시아를 침공했다. 만 3년의 내전은 러시아혁명의 조건을 더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열악한 무력에도 혁명 러시아의 군대는 말과 설득을 앞세워 승리했다. 전투 전에는 적국 병사들에게 선동 연설과 유인물이 배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곳곳에서 전투를 거부하는 연합군 병사들이 생겨났다. [본문으로]
  9. 차베스가 2005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창한 것이 한 예다. 당시 연설장소인 체육관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모인(유럽과 우리 같은 아시아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급진적 청년 수만여 명은 차베스의 연설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본문으로]
  10. 기업주들은 경제적 경쟁자든 아래로부터 저항이든 국내에서 자신의 권력과 이윤에 대한 도전자들에 대처하는 데 국가의 힘을 빌린다. 이들이 국경을 벗어나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때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약소국에게는 국가를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교역 조건을 강요하고, 선진국끼리 무역분쟁 때도 국가간 경쟁이 촉발된다. 제국주의는 세계자본주의의 오늘날 이름이다. 그래서 진정한 反제국주의는 反자본주의여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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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의 주요 지도자와 원로 들이 11월 30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 시국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각주:1] 선언문은 “주변국들의 대화”를 촉구하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협의”와 “6자회담 재개”를 평화적 긴장 해소 방안으로 주장했다. 

시국회의 참여자들이 반공적 냉전주의를 부추기는 주류 지배자들과 언론을 거슬러 ‘평화적’ 대응을 촉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어떻든 평범한 민중에게나 저항하는 민중에게나 국가간 평화 상태가 긴장과 전쟁 상태보다 낫다. 

평화를 바란다면 지금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하듯 무력 대응을 강화해 군사 긴장을 높이는 방식의 대응에 마땅히 반대해야 한다. 대결보다 ‘대화’를 촉구한 것에 1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럼에도 “6자회담”과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실제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해소되진 않는다. 내가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 제안들은 안타깝게도 남북한 국가와 주변 강대국들에게 평화 정착의 주체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참가국들은 세계 최상위 그룹의 군사강대국들이다.

그중에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온갖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평화를 파괴해 왔고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 유일한 핵무기 실전 사용국인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게 핵 공격 위협을 멈추지 않아 왔다. 미국은 냉전 후 약해진 경제력 대신 경쟁국과 비교해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해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 조지워싱턴 호.

이런 미국에게 이 지역 패권은 세계 패권 전략의 일부다. 워낙 군사 강대국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 전략의 충실한 동맹자들이다.

미국은 북한을 악마화해 자신의 주도 하에 ‘북한 위험’을 관리해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한·일의 미국 의존성을 유지하며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보호하는 척하지만 오히려 북한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며 자기 영향력 아래 넣는 것에 더 열중이다.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고 침략과 간섭을 불사하는 호전적 국가다. 

이 강대국들이 각자의 영향력과 이권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이 6자회담의 본질이다. 이 나라들에 한반도 민중의 생존과 평화를 맡기자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박선원이 폭로한 내용, 즉 한반도 통일 후 중국에 북한 영토를 줄 수도 있다는 미국 관료의 발언은 조선 민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대국들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해방 후 미소 합의로 말미암은 강제 38선 분단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번 위기 자체가 6자회담이나 합의문으로 군사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하나의 증거다. 

평화 수단

2003년 시작한 6자회담이 지난 7년 동안 거둔 주요한 성과는 2005년 9ㆍ19 공동성명[각주:2]과 2007년 2ㆍ13 합의[각주:3] /10ㆍ3 합의였[각주:4]. 이 합의들 모두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발목 잡힌 상황에서 북핵 폐기와 그에 따른 보상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보여 주는 바는 이 합의들이 휴지 조각이 됐다는 것이다. 합의들을 먼저 어긴 건 언제나 미국 행정부였다. 우리가 결코 핵무장을 반제국주의의 수단으로 볼 순 없지만, 북한의 핵개발 시도 자체는 소련 붕괴 후 미국의 군사위협, 그리고 그 뒤 제네바 합의 위반[각주:5]의 산물이다.

9ㆍ19 공동성명에 기대를 걸고 있던 일부 진보진영에게 고(故) 리영희 교수는 “합의문의 문구 자체는 우리가 바라던 바다. …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제적인 조약이나 합의를 지킨 사례가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로 미국은 휴전협정을 어기고 한반도에 핵무기를 (맨 처음 그리고 몰래) 들여 온 당사자였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도 마찬가지다. 경제 협력이 군사 경쟁을 막진 못한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서유럽 국가들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중국은 미국의 가장 큰 채권국가이며 교역량도 매우 큰 나라인데도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은 최대 수출/수입국인 중국이 됐는데도 연평도 훈련 문제 등으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 남북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협력해 운영해 왔지만 군사 갈등을 막지 못했다.

6·15정상회담 2년 뒤 벌어진 서해 교전도 한 사례다. 동해에서 금강산 관광을 하며 서해에선 1차(1998)보다 더 격렬하게 해상 전투를 벌인 것이다.

긴장의 주범인 강대국들이나 그 위계체제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부가 평화를 위해 움직이길 기대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2002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은 수렁에 빠졌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군사적으로 아주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있다. 이런 사태 전개는 200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강력했던 국제 반전운동 없이 설명할 수 없다. 강대국과 한국 정부(또는 북한 정부)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주소는 http://www.left21.com/article/8994

  1.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YMCA, 한국진보연대, 민변, 민주노총 등이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3가지 요구 사항으로 △남과 북, 주변국이 즉각 대화에 나서고 △한반도의 긴장 해소 방안으로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이행할 협의에 나서야 하며 △6자회담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를 제시했다. [본문으로]
  2. 9ㆍ19 공동성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바로 그 회담의 종료 발언에서 미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경수로 건설을 위해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동성명 채택 후에도 미국은 BDA(방코델타아시아) 자금을 빌미로 대북 금융제재를 계속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고,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지만 역시 이행하지 않았다. ※출처: http://www.left21.com/article/6202 [본문으로]
  3. 상세 해설은 http://www.left21.com/article/3873 를 보라. [본문으로]
  4.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의 1단계 실행조치 합의 같은 것인데, 2단계로서 2007년 같은 해 10·3 합의가 있다. 그러나 내용 자체가 그다지 진전 있는 합의라고 보기엔 과거 합의의 재탕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북한이 소련 붕괴 후 위협 속에서 핵개발에 기대려 했다가 미국의 침략전쟁 직전까지 갔던 게 1994년 위기다. 김일성 사망 후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지만 미국은 북한의 원자로 폐기를 대가로 주기로 한 중유를 약속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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