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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11 ‘노동자·민중이 주인되는 사회’가 반헌법?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신청 ②

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문제 삼았을까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활동이 모두 ‘체제 부정’이라고 주장했다. 


첫째, 진보당과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의 활동 대부분이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는 근거를 들이댄다. 일심회, 왕재산, RO 등이 모두 북한 지령의 전달 통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심회와 왕재산은 법원조차 그 조직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결한 바 있다. 또한 본 재판이 시작도 안 한 RO의 기소 혐의를 근거로 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모는 것은 근대 사법의 제일 원리인 판결 확정 전 무죄 추정 원칙도 내팽개친 것이다. 


또한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이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 해서 종북으로 모는 것도 억지다. 우익들은 수 틀리면 ‘김일성처럼 눈코입이 다 있는 걸 보니 종북’이라고 할 자들이다. 


이런 요구들은 북한과 아무 연계가 없는 시민·사회단체들도 미국의 간섭과 냉전 반공주의 독재에 반대해 자주적으로 제기해 온 역사적 요구들이다. 


무엇보다, 진보와 노동운동의 자주적 활동을 북한 지령에 따른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근본에서 노동계급의 자주적 사고와 실천 능력을 부정하는 엘리트적 발상이다. 


설사 일부 좌파가 북한 지배자들의 사상에 동조했더라도 그들이 북한 지배자들처럼 특권적 지배층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과 같게 취급될 수 없고, 또한 그런 사상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허용돼야 한다. 


둘째, 법무부는 탄압 대상이 되는 사상과 활동을 ‘체제 부정’으로 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무부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나라’라는 표현이 국민 주권 원리를 위반했고, “소수의 특권계층의 정치적 특권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도 ‘우리’ 체제의 부정이라고 주장한다. 


소수 특권을 배척하자는 것이 ‘우리 체제’의 부정이라니, 법무부는 현 체제가 일하지 않고 남의 노동에 기생하는 소수 특권계층의 지배체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까. 그들이 시장 근본주의 체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금지옥엽처럼 아끼는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범죄의 당사자임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정부와 집권당이 국민주권 운운하는 것도 후안무치다. 이론상으론, 의회주의 다당제를 채택한 나라의 선거는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마당이니 말이다. 


노림수


사실 진보당의 사상과 강령, 활동이 일관되게 노동자·민중의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 박경순 부원장은 9월 <진보정치>의 진보당 강령 해설 논평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반대·배격하는 이념이 아니라 … [그] 이념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자는 것”이고, “자주·자립경제는 자본주의 자주자립경제체제”라고 규정한 바 있다. 


미국과 일본에 경제적·지정학적으로 덜 의존하는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자는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헌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이 진보당 강령을 위헌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증언하고 있다. 


진보당 지도자들 다수의 실천에 관해 말하자면, 패권주의 방식과 초계급적 민중주의 전략이 문제가 돼 오긴 했지만, 의도 면에서 보면 노동자·민중 운동의 건설과 전파에 헌신해 왔다. 또한 그동안 선거적 방식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활동에 주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무부가 ‘노동자·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사상과 실천을 문제 삼는 것은 좌파 단속이라는 이 사건의 노림수와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준다. 종북, 간첩 등의 구호들은 본질을 흐리는 마녀사냥일 뿐인 것이다.


사실 자유민주주의가 형식상 다수결 원리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인구의 다수인 ‘노동자·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사상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진정한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 헌법 제1조가 표방한 국민 주권의 원리와 오히려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회의 현실은 계급으로 날카롭게 분열돼 있다. 즉, 1퍼센트 소수 특권층이 다수 대중을 체계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사회다.  


그래서 국민주권은 현실에서 기껏해야 4년이나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 때 보통선거권의 형태로 보장될 뿐이다. 그런데 이 보통선거로는 법무부가 보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라고 표방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인 “경제권력(사유재산권)”에 대해서는 손도 댈 수 없다. 


애초 국민주권은 봉건 왕권에 대항해, 재산을 가진 부르주아지들에게 권력이 있다는 것을 천명한 원리다. 한편에선 봉건 왕권에 맞서 부르주아지들이 대중을 동원하려고 내놓은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국민주권’ 사상은 그 형식과 그 실질 내용 사이의 모순 때문에 우파 정부도 국민주권 사상을 자신의 무기로 삼을 수 있는 한편, 지배자들의 반대편 대중에게도 사상적 무기가 되곤 한다. 


2004년 이후 대중적 촛불운동이 번질 때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가사로 한 노래가 대표곡이 돼 왔다. 물론 이는 현실에서 국가의 실질적 주권, 즉 권력이 대중에게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무부가 ‘국민주권’ 사상을 계급 지배 논리로만 해석해 좌파를 단속하려 하는 것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런 모순적인 국민주권 사상이 아니라, 소수 특권계급이 독점한 정치·경제 권력을 혁파하고 노동자·민중이 권력을 가지는 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비할 데 없이 민주적임을 알아야 한다. 


작업장과 지역에 기초한 노동자 권력은 진정한 다수 대중의 통치로서 지금처럼 대중을 기만하고 억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소수를 위해 전쟁이나 환경 파괴 산업, 국정원 따위의 탄압·협박 기구에 사회의 부와 인력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기존 지배자들이 이런 사회 변혁에 대항해 벌일 저항이 분쇄된다면, 이런 민주적 사회는 더는 억압적 국가기구를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시도는 바로 이런 민주적 변혁 사상에 대한 토론과 상상의 자유를 막으려는 것이다.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계급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지배자들의 반민주 작태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 <레프트21> 115호에 실린 글에 한 문장을 보태며 살짝 다듬은 것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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