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악을 지지하거나 

모순된 태도를 취한 진보 정당들




박근혜 정부가 자행한 공무원연금 개악은 노동에서 자본으로 소득을 역재분배하는, 전형적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 시도였다. 따라서 노동계급을 대변하겠다는 진보정당이라면,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진보 정당들의 태도는 매우 부적절했다.


정의당 지도부는 공무원연금 개악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지급률) 상향을 맞바꾸려 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야합을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이해당사자들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는 부정확한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최종 통과 때까지도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공식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독단으로 합의에 참여한 공무원노조 위원장·사무처장은 공식 기구에서 동의를 받지 못했고 결국 노조를 탈퇴했다.)


게다가 최종 통과된 ‘여야 합의안’에는 공무원연금 삭감의 반대 급부로 여당이 ‘약속’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도 빠졌다. 연금 개악 사기극의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의당 지도부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런 일은 정의당 지도부가,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한다는 관점에서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가령,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조승수 의장 명의로 낸 논평을 보면,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생길] 재정 절감분은 향후 70년간 총 3백33조 원에 달할 전망으로 기금 불안정성 문제 역시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그 의의를 인정한다.


그런데 국회 표결에서 정의당 지도부는 기권(심상정, 박원석, 김제남, 정진후 등은 기권, 서기호는 찬성)을 선택했다. 공무원노조 활동가들과 전교조, 민주노총이 개악안에 반대하며 국회 앞 2박 3일 농성에 들어간 것에 압력을 받은 듯하지만, 공무원연금 개악 필요성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한편, 노동당은 5월 23일 전국위원회에서 특별결의문(“기초연금 두 배로, 공무원연금 통합, 국민연금 하나로 평등한 노후 보장과 공적연금 강화 실현하자!”, 이하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20퍼센트(현재 물가로 40만 원 수준)로 상향하고 공무원연금 등을 국민연금과 통합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결의문’은 “공무원노조에서 연금수령액의 하향을 막기 위해 투쟁에 나선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공무원노조가 “2천1백만 명 국민연금 가입자와 ‘용돈 국민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의 국민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전무하다”고 비판한다.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삭감을 내 주고 국민연금 개선을 취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은 일단 사실도 아니다.


노동당이 공무원연금 개악안 통과를 규탄하는 논평조차 내지 않은 것에 비춰 보면, ‘결의문’이 지향하는 공적연금 상향 계획은 공무원연금 삭감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과 달리 공무원노조의 투쟁에 지지를 보냈으나, 실천적 결론은 마찬가지로 개악 용인인 것이다.


한편, 이날 전국위원회는 노동당 내에서 정의당 등과 통합을 모색하는 진보결집파와 그 반대파 사이의 불신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란 것을 보여 줬다. 진보결집파는 거의 모든 표결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 ‘결의문’은 정파를 가리지 않고 지지 받았다(63명 중 50명 찬성). 진보결집파는 물론이고 당내 좌파를 자임한 신좌파당원회의 상당수도 찬성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과 연관 단체인 좌파노동자회는 “공적연금 강화는 공무원 노동자의 희생이 아닌 ‘세대 내 소득재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며 공무원연금 개악에 반대했다.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자들의 압력을 의식해 개악 반대 입장을 취한 반면, 정당에서는 국민적 여론을 의식해 개악을 사실상 용인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인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보인 것이다.



좌파는 사회연대전략의 발상에 반대해야 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주들이 복지 재원 부담 책임을 한사코 회피하는데다가 당장의 투쟁 수준에서는 이를 강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모두 함께 더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도덕적 가치’를 우선해 노동계급도 재원 부담에 동참하자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러나 나눔 같은 도덕적 가치를 앞세우는 것은 많은 경우 그렇듯이, 사회 모든 구성원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 경우엔 ‘계급 간 조화(협력)’일 것이다.


또한 지배자들의 재정균형 논리를 노골적으로 받아들여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보편 증세를 내놓는 더 온건한 경우도 있다.


정의당과 노동당 지도부 중 상당수가 이런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해 왔다. 


계급 간 복지 확대 대타협을 위해 노동계급 내 일부(상대적 고임금층)의 (국가와 기업주에 대한) 소득 양보(임금 인상 자제와 증세)를 요구하는 것이 사회연대전략의 핵심 얼개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노동자 연대> 149호 “정규직 양보론과 ‘사회연대전략’, 무엇이 문제인가?”를 참조하시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 복지제도가 유용한 이유 하나는 그것이 계급 간 소득재분배 구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편 증세’론은 계급 간 불평등과 재분배 문제를 모호하게 한다.


또한 보편증세론으로는 노동계급 내부도 단결시키기 힘들다. 노동소득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실에서 세금 인상에 동의할 노동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도 증세에 동참하라는 압력은 노동계급 내 상대적 고임금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회연대전략이 실제로는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소득 양보를 강조하게 되는 이유다.


이런 발상은 경제 위기 시대에 노동계급의 투쟁 능력에 대한 비관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계급 간 협력을 위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잘 조직된 부분을 고립시켜 복지 확대를 쟁취할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다.


※ 사회연대전략의 모델로 알려진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도 국가경쟁력(노동생산성) 협조를 매개로 수익성 높은 부문의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해 두 마리 토끼(계급 간 연대=계급 타협, 계급 내 연대=동일임금)를 잡으려 한 것이다.


이 제도는 임금 억제 기능 때문에 기업주 다수의 지지를 받았으나(고수익 자본 일부는 임금 통제가 숙련 노동력의 유인[노동력의 수요 쪽 경쟁력]을 제약한다고 보고 부정적이었다), 경제 침체기에 노동과 기업주 양쪽 모두의 압력 속에서 파탄 났다. 




☞ <노동자 연대> 150호에 실린 기사(http://wspaper.org/article/15912)에 지면 제약상 생략한 부분 일부를 다시 덧붙여 올렸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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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박근혜, 노동운동이 막아야 한다 ①

박근혜의 반격에 어떻게 맞설까 



박근혜는 10월 내내 불편한 한 달을 보냈다.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동원된 정치공작과 선거개입의 실체가 며칠에 한 건씩 드러났고,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정권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정권 탄생의 절차적 정통성도 의심받는 판국에, 당선을 위해 급조해 내놨던 각종 복지 공약을 대놓고 파기하다 보니 60퍼센트가 넘던 지지율도 하락 추세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 대한 박근혜의 답은 부패한 자들로 친정체제를 더 강하게 구축하는 것이었다.


검찰총장에 김기춘 라인의 김진태, 감사원장에 김기춘과 동향인 판사 황찬현, 새 복지부 장관에는 국민연금 개악과 의료 민영화에 찬성하는 문형표를 내정했다.


인사청문회 시작도 전에 김진태는 부동산 투기, 로펌 고액 수수 의혹이 나왔고, 나머지 둘도 세금 체납과 병역기피 의혹이 제기됐다. 가히 박근혜의 부름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들이다.


박근혜는 대선 개입 사건 수사팀장도 공안통으로 교체했다. 껄끄러운 수사 라인을 다 쳐내고는 이제 와서 의혹과 문책을 “수사 결과에 맡기고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을 못 믿게 만들어 놓고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모순이 사람들에게 쉽게 먹힐 리 없다. 그러니 실제로는 더욱 강성우파적 대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침 10ㆍ30 재보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긴 여세를 이용해 공세를 강화하려고 한다. 재보선에 참패해 기가 죽은 민주당도 ‘이석기법’*에 합의하며 박근혜에게 힘을 실어 줬다.


그러나 애초 승패가 뻔한 곳에서 이긴 선거가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낼 순 없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힘이 실렸을 때 공세의 고삐를 쥐려는 것이다. 공무원노조 탄압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급하게 서둘렀다고 보는 이유다.


박근혜가 공무원노조를 문제 삼자 검찰은 곧바로 공무원노조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를 시작했다. 정부는 총체적 우파 공작으로 집권한 정부답게 ‘물귀신’ 작전도 조직적으로 펼친 것이다.


곧이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박근혜가 이런 사법 탄압으로 노리는 목표는 명백하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내핍 강요 본격화를 앞두고 저항의 섟을 죽여 반동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안전을 위해 강성우파식 법질서 통치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헌법재판소 구성이 아무리 우파적이라도 노동ㆍ민중 운동에 강력한 기반이 있고 자력으로 국회의원도 만들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행정 절차와 판결만으로 해산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진보단체들이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탄압을 지속해도 박근혜가 반동의 본편을 시작하려 할 때가 오히려 가장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절차적 정통성에 불신을 받는 정권이 대중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 즉 고통전가와 내핍 정책을 본격화하는 것이 축적되는 불만에 저항의 불씨를 당기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 연금 삭감, 고용 ‘유연화’ 등 내핍과 고통전가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조직 노동자들의 운동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런 위험을 모를 리 없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민주당에게 국가 정체성과 헌법에 대한 충성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다. 각종 내핍과 반동 조처들을 변변치 않으나마 ‘국민적 합의’로 포장할 수단, 즉 국회에서의 처리라는 모양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검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편, 국가정보원이 유일한 깃털인 줄 알았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갈수록 다채로운 깃털들이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에 이어 행정안전부와 노동부의 대선 개입도 드러났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인터넷 공작은 이미 2008년부터 시작됐고, 국정원과의 연계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도 새로 밝혀졌다.


이쯤 되면 이 총체적 부패 행위들의 꼭대기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보통 사람들이 볼 만도 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정원 개입 여부에도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이후 마녀사냥으로 선관위노조를 민주노총에서 탈퇴시키고 사실상 와해시켰다.


이런 의구심들이 이제는 합리적 의심이 되고 있다. 박근혜가 갈등 끝에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찍어낸 것도 더욱 의문을 증폭시킨다. 진실 규명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미약하나마 진실의 일부를 캐냈던 검찰 수사라인이 정권의 쳐내기로 붕괴한 마당에 특검 요구는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박근혜가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언급한 것도 이런 특검론을 경계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특검에 대한 바람이 커진 것은 박근혜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검찰을 못 믿게 만들어 놨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고위 공직자 비리를 수사할 ‘상설특별검사제’를 공약했던 박근혜가 특검 요구를 거부할 명분도 없다.


특검 요구에 동의하지 않던 정의당은 특검 요구로 선회하며 야당들이 공동으로 특검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안철수와 민주당이 연이어 특검 요구 대열에 합류했다.


정의당과 안철수 쪽은 국정원 개혁 법안도 공동으로 낼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새누리당 김태흠이 안철수의 특검 요구 기자회견을 두고 ‘3권 분립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전형적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발언이다.


새누리당이야말로 최근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무죄 판결 등을 두고 ‘종북 판사’ 운운했던 자들이다. 또한 특검은 법을 만들어 하는 것이므로 이를 요구하는 것이 3권 분립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특검이 진실을 밝히기는 힘들다. 검찰도 쳐내는 마당에 제대로 된 특별검사를 박근혜가 임명해 줄 리도 없다.


이런 약점들 때문에 그동안에도 특검이 정치ㆍ경제 권력의 핵심을 제대로 파헤친 사례가 없다.


국가권력이 동원된 음모와 공작은 국가기구가 분열해 내부 제보자가 생길 때 가장 효과적으로 폭로되곤 한다. 국가기관의 내분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것은 주로 대중운동의 힘이다.


국회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벌이는 운동, 특히 조직 노동운동이 중심이 돼 박근혜 정부와 우파 단결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때만 저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며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



※ 레프트21 115호.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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