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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4 침수 피해와 반지하 주택의 상관관계는? 4
  
서울시가 침수 피해가 집중된 반지하 주택 공급을 억제하겠다고 합니다. 장기적으론 건축법을 고쳐 반지하 주택 공급을 불허하겠답니다.

트위터로 보니 항의가 많더군요. 아마도 하수관 등 배수시설 불량과 늑장 대응 등 정부의 책임을 엉뚱한 곳에 돌린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사실 배수시설이 엉망이라 물이 역류해서 벌어진 일인데, 주거 형태를 문제 삼는 게 생뚱맞기도 하죠. 

한편, 이명박은 어제 침수 가정 한 곳에서 “기왕 이렇게 된 거 편하게 생각하고”라고 말해서 또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루라도 욕을 안 먹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체질인가 봅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의 첫째는 단순한 행정 미숙이 아니라 배수 시설과 관리서비스에서 부자 동네와 서민 동네가 차별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 투자의 우선 순위가 사람들의 진정한 편의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늘 서민에게만 반복되는 피해. 해결책은 무엇일까.



예를 들면, 강남구와 강서구의 21일 강수량은 같은 293밀리미터입니다. 그러나 강서구에선 7천 가구가 넘게 침수됐고, 강남구 피해 소식은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강남구에서도 고급 아파트 단지가 아닌 곳에서는 일부 물이 역류하는 사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수관, 펌프장 등 배수시설 전반에 관한 예산 등에 우선순위 차이가 있는 것이죠. 재개발이 되기 전 서울 금호동은 유명한 달동네였고, 제가 살던 외갓집은 그 산동네에서도 윗동네였으며 반지하도 아니었는데 폭우 때문에 집에 물이 찬 적이 있습니다. 집의 위치가 문제인 게 아닙니다.(배수가 안 된거죠)

제가 대학을 다니던 서울 이문동과 휘경동 일대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는데, 서민 동네였습니다. 1998년엔가 새벽 호우로 여러 사람이 죽었는데, 반지하 주택인 사람들만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배수 시설이 엉망이라 중랑천이 범람하면 집 안(화장실, 싱크대 등)에서 물이 역류하니까 새벽녁에 폭우가 오면 1층 집에서도 자다가 죽는 일이 벌어진 거죠.

결국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참다 못한 주민들이 2001년 수해 후 1호선 전철 통행을 막는 등 격렬한 항의를 해 사건이 커지고 나서야 배수시설 전반이 개선·정비돼 상습 침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투자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하고, 지역별 차별적 시설 투자 관행을 시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습니다. 반지하 주택(과 여러 열악한 주거 형태들)이라는 주거 환경을 그대로 둘 것이냐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오세훈 식으로 어설프게 하면 그나마 있는 집마저 잃을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반지하 주택이 좋아서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반지하 주택은 매우 비인간적인 주거 환경입니다. 지하인데다 햇볕도 잘 들지 않아 늘 습기에 차 있고, 집 안 공기도 탁합니다.(옷도 잘 안 마르죠) 도로보다 낮기 때문에 발코니 같은 여유 공간을 가질 수도 없죠. 오히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창문도 제대로 열지를 못합니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해로운 까닭입니다. 반지하에 자취하던 제 친구들도 늘 몸이 여기저기 안 좋았습니다. 여기에 상시적인 침수 위협은 화룡점정의 구실을 합니다[각주:1]. 이런 반지하 주택이 서울에만 35만 가구(서울시 주택의 10퍼센트)가 됩니다. 엄청난 땅값 상승의 이면에 가려진 비애입니다. 

반지하 주택 자체는 애초에 허가하면 안 되는 주거 형태입니다. 한국에서만 있다고 하는 이 비인간적 주거 형태는 최대한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가난한) 사람을 우겨 넣으려는 반서민 정책과 최대한 불로소득을 더 많이 만들어 내려는 가진 자들의 탐욕 . 그리고 집조차 사고파는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논리의 산물입니다. 구체적으론 주택 2백만 호 건설 공약을 지키려는 노태우 정부의 무리수였죠.

그래서 저는 단순히 반지하 근절 방침을 반대할 게 아니라, 오히려 반지하 문제를 거론하는 방식의 한계와 대책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주거 환경(복지) 개선 대안을 쟁점으로 제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인간적이고 안전하며 쾌적한 주거 환경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관점에서 말입니다. 

기본 관점에서 오세훈과 서울시 대책은 모순적이고 위선적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저지대의 반지하 주택이라는 '집의 위치'만 문제 삼습니다. 그것이 마치 우연인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반지하 아니면 웬만한 집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각주:2]

오세훈 대책이 제대로라면, 35만 가구 주거 복지의 획기적 개선 대책이 나와야 하죠. 그런데 내놓은 건 대대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냥 반지하 공급 줄이고, 임대 주택 늘리겠다는 말뿐입니다. SH공사가 하는 시프트 전세도 말만 공공임대지 전셋값을 시세따라 한번에 5퍼센트씩 올려대는데 누가 서울시 대책을 믿겠습니까. 

결국 ‘계급’ 쟁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침수 피해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이고, 인재의 핵심 쟁점은 자본주의 [주거] 상품화 논리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입니다. 침수 피해는 ‘계급’이라는 잣대로 살펴 봐야 종합적으로 사건을 이해하고 올바른 대책을 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모든 주택지의 주거 환경 전반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집에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돼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껏 해온 주택 정책을 봤을 때 오세훈의 반지하 주택 근절 정책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순 없습니다. 서민 주거 지역의 환경 개선은 이번처럼 사건이 났을 때 반짝 계획을 내놓고는 예산이 없다며 질질 끌다가 또 피해 사고를 반복하는 일은 익숙한 광경입니다. 

정부와 부자들은 집을 소득을 올리는 자산으로 삼고, 투기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반시설의 투자가 동네마다 다른 것은 그것 자체가 주택의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거 환경, 그들 사유재산의 가격이 우선순위를 결정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1998년 분양가 규제 철폐 후 경기 부양 명목으로 부동산 거품을 조장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근로소득보다 더 빨리 올라 집을 구하려는 모든 근로소득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앉아서 강탈당하는 꼴이 됐습니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는 불평등의 상징이 된 부동산 거품을 역시 경기 부양이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재정을 들여 떠받치고 있습니다. 집부자·땅부자들은 사유재산의 권리를 내세워 가난한 이들을 점점더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반지하 주택을 없애려면, 계급 불평등을 없애야 합니다. 사람들이 더는 그런 집에 살지 않아도 안정적인 주거 생활을 할 수 있을 때, 반지하 주택은 만들 이유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부 예산과 투자의 우선 순위를 사람들의 필요와 기본 의식주의 확보와 질 향상으로 돌리고, 주택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논리를 규제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봤을 때 이런 조처 자체가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사유재산과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논리 자체에 도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여러 나라들이 복지 등 정치적 필요 차원에서 토지공개념 등을 도입해 토지와 주택의 상품화를 규제합니다. 그래서 이런 투쟁에 이념적 덧칠을 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짓입니다. 생존을 위한 요구가 좌파적이라면 주류 엘리트 우파는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싫어한다고 자백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실 한국엔 부자 엘리트들의 의지는 빈약하지만 복지를 위한 재정은 넉넉합니다. (역대 정부 아래서) 단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 뿐.

우리는 불평등을 줄이라고 요구해야 하고, 인간의 기본권을 상품으로 다루지 말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저들이 이 정당한 요구를 거부한다면 저들에게 권력을 쥐여주는 이 사회 구조 자체를 부셔 버려야 할 것입니다.

  1. 사실 이론적으론 배수시설이 완벽하다면 지하시설이라고 꼭 침수될 이유는 없습니다. [본문으로]
  2. 이런 본질을 외면하는 오세훈의 대책은 가난한 이들의 초라한 집마저 빼앗는 정책이 될 것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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