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혁명이 서방의 군사 개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간교하게도 서방 열강들은 군사 개입 목표를 카다피 제거와 민주화 시위대 보호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글을 써 왔는데, <레프트21>에 실린 독자편지에 여러 관련 기사들과 겹치지 않는 내용으로 답변을 해 봤습니다.

리비아 혁명에서 서방 개입이라는 난제

배상진

지난 호 기사에서 리비아 혁명에 대한 두 편향, 즉 독재 국가를 옹호하는 한심한 주장과 민주주의의 'ㅁ'도 가져오지 못할 서방의 개입을 지지하는 어리석은 주장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 주장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한 가지 맹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만약 서방이 실제로 군사적 개입을 통해 카다피 세력을 공격할 때다. 원칙적으로는 카다피와 서방세력에게 모두 반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시기에 이러한 충돌이 벌어질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후 북한이나 쿠바 등에서 벌어질 혁명의 중요한 전략, 전술 문제가 될 수 있다.

리비아 민중들은 제국주의 세력과 제휴해 카다피를 우선 축출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하는가? 아니면 카다피 세력과 우선 협상하면서 서방 세력부터 몰아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두 세력을 동시에 축출하는 전략을 써야 하는가? 셋째라고 한다면 원칙상 옳을지는 모르지만 역량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효과적인 전략인지에도 다소 의문이다.

어떤 전략을 쓰고 어떤 세력과 일시적으로 제휴를 하든, 서방과 카다피 모두 궁극적으로는 리비아 민중의 적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로와는 별개로 리비아 민중의 권력 장악을 위한 시도에서 이 문제를 건너뛰고 생각할 수는 없을 듯하다.

<레프트21> 52호 | 독자편지 online 입력 2011-03-17



사실, 이 문제를 놓고 <레프트21>이 여러 기사를 싣고 있으니 먼저 이 기사들을 참고하길 바라며 몇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중동의 민중 반란 기사 모음: 여기누르세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군사개입을 결정하자마자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곧바로 전투기 출격과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다. 정확히 8년 전, 미국과 그 동맹들이 이라크 침략을 개시했던 날이다.

이제 리비아 주요 도시는 서방 전투기와 함대의 폭격을 받는 처지가 됐다.
비행금지구역이 평화 조처가 아니라 리비아 전역을 향한 군사 작전이라는 비판자들의 주장이 옳았다는 게 드러났다.

이미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다. 전례를 볼 때 민간인 사망은 필연적이다. 1999년 세르비아 공격 때 나토(NATO)가 자랑한 ‘정밀폭격’은 방송국, 병원, 발전소 등을 부숴 버렸다.


카다피는 민중 혁명이 서방 제국주의 사주를 받은 것이고, 자신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거짓 선전을 정당화할 기회를 얻었다. 서방의 폭격으로 카다피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전쟁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공중 폭격은 지상군 투입으로 이어질 것이다. 1999년 나토의 코소보전쟁(세르비아 공격) 때도 78일간 무차별 폭격을 했지만 결국 지상군이 투입돼서야 코소보를 점령하고 협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상군 투입은 더 큰 인도적 재앙을 낳을 것이다.

이것은 혁명세력의 명분과 발언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당분간 혁명 세력은 주변화될 것이다. 이것이 민중 혁명에 도움이 될까.

서방 열강은 중동 혁명을 차단하고, 석유와 패권을 지키려는 전쟁을 시작했다. 저들은 동결된 카다피의 재산을 혁명세력에 제공하는 등 혁명세력을 직접 강화시키는 방안은 수행하지 않았다. 저들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중동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한다. 민중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배상진 씨는 서방의 개입을 반대하는 주장이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옳다’고 지적하면서도 카다피와 서방 군대에 동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 주장’의 “맹점”이라고 주장한다. 역량이 분산돼 혁명에 불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리비아 혁명 세력이 초기보다 위축된 상황을 보고 하는 주장인 듯하다. 이해할 만한 그 사정에도 이 주장은 좀 혼란스럽다. 원칙적으로 옳은 주장이 그 주장이 반대한 실제적인 상황이 오면 쓸모없어진다는 말이니까.


나는 배상진 씨가 먼저 자신의 원칙을 따라 “제국주의 군대가 카다피를 물리치는 것을 ‘자기해방’을 뜻하는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 보길 바란다.

서방 군대가 카다피를 제거하는 것은 결코 혁명이 아니다. 그래서 서방 개입에 침묵하거나 용인하는 것이야말로 ‘일관된 혁명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다.

서방 지배자들은 리비아 해방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이 사우디아라비아·UAE 군대가 미군 제5함대 기지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 진압을 위해 바레인에 진격한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들은 동결한 카다피의 재산을 혁명 세력에게 제공하거나 심지어 무기를 제공하는 등 혁명세력을 직접 강화하는 정책은 한사코 거부했다.

서방의 군사 개입과 절친 동맹인 사우디 등의 바레인 진격 시점이 유사한 것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와 아랍의 그 동맹자들이 반혁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게다가 리비아는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지 60년밖에 되지 않았다. 군사 개입을 주도할 미국은 1986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해 민간인 수백 명을 죽였다. 서방 강대국들은 20여 년 동안 경제 제재로 리비아에 가난을 강요했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우리가 지금 보다시피, 단지 카디피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리비아 민중의 머리 위에서 서방의 폭격이 벌어지는 것을 뜻한다.

혁명 역량에 관해 말하자면, 민중 혁명의 힘은 단순히 군사력의 크기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제가 아무리 잔인해도 그 옹호자들은 결국 피억압 민중 안에서 반혁명 군대를 모집하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혁명의 힘은 우리 편을 확고하게 단결시키고 구 체제에 묶여 있는 민중을 혁명의 편으로 끌어당겨, 저들을 약화시키고 우리 편을 강화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는 리비아의 진정한 혁명가들이 혁명의 사회적(계급적) 내용을 더 심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이 더 많은 정치ㆍ사회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중동의 민중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대혁명에서도 러시아혁명에서도 구체제를 지지하는 제국주의의 군대는 혁명의 대의로 단결한 민중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이것은 혁명세력의 강령과 실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체제가 아니라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 진정한 이익과 해방을 얻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베트남과 2006년 레바논에서도 압도적인 무장력을 갖춘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대는 각각 베트남 인민 게릴라와 레바논 헤즈볼라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리비아 혁명세력은 군사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서방 강대국의 방해와 구체제 이탈 인사들의 존재 때문에 혁명을 더 심화시키거나 서방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록 구체제 이탈 인사들의 존재는 혁명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폭격이 시작된 지금 리비아 혁명가들이 서방 개입에 무기력하게 대응한다면, 독재자도 싫어하지만 식민 지배 경험과 강대국들의 경제 봉쇄 때문에 제국주의도 혐오하는 민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 당기거나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리비아에서 온갖 “난제”를 해결할 혁명 전략은 서방의 군사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혁명의 사회적 내용을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공개 포럼 안내]
○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 ― 누구에게 이익인가? _24일(목) 7:30 대학로 한성대 에듀센터 807호

○ 서방 군사 개입은 왜 중동 혁명의 걸림돌인가? _24일(목) 7:30 강남역 8번출구 모임전문공간 모토 S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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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는 ‘반미 전사’인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한때 반미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69년 쿠데타 후에 국가이름을 리비아사회주의공화국으로 내세웠고 이집트, 시리아와 아랍연방을 구성해 이스라엘과 맞서기도 했다.

이 아랍연방은 이집트의 사다트 정부(무바라크의 전임자)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와해되고 만다.

미국은 카디피를 제거하려고 1986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하기도 했다. 미사일은 민간인지구에 떨어져 수백 명을 죽였다.

비록 카다피가 미국과 맞섰고,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리비아에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권력은커녕 모든 민중이 함께 누리는 풍요와 민주주의도 없었다.

다만 그가 서방 강대국들의 질서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것만으로 그의 독재정부가 진보적으로 평가받을 순 없는 까닭이다.

사실 이런 반항은 냉전 시대 소련의 후원 아래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한계가 뚜렷했다.

냉전 해체 이후 고립된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벗어나려 카다피는 미국 중심의 질서에 순응하려 했다. 미국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고, 2003년 12월에 핵 개발 포기 선언을 했다.

그 대가로 2004년에 경제제재가 해제됐고, 2006년에는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고 외교관계를 완전 정상화했다. 2006년 당시 이라크침략전쟁 기획자의 하나였던 부시 행정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핵 개발 문제로 북한과 이란을 압박하면서, “2003년이 리비아에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올해가 이란과 북한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총리 블레어는 미국을 대신해 2003년 극비 협상을 진행했다. 제재 해제와 외교 정상화 후 영국회사 BP는 그뒤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권을 여럿 따냈고, 영국 정부는 막대한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했다. 카다피의 아들은 영국에 유학했고, ‘제3의 길’을 배워 갔다.

그뒤, 영국 사법부는 1988년 팬암기 폭파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영국에 구속돼 있던 리비아 인 한 명을 조건 없이 석방했다.(증거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중동의 민중혁명 파괴가 진짜 목표

서방 강대국들이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인도주의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그래서 위선이다. 위선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들의 관심사는 막대한 자원과 리비아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관계 회복 후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이 석유와 각종 개발 사업에 큰 규모로 투자해 왔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형님 외교 대상국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중해, 소말리아 앞 아덴만 등에 있던 미국, 중국 등의 함대가 리비아로 이동하고 있다. 나토도 긴급 회의를 열고 개입을 논의했다.

자국민 안전 이동 등 여러 핑계를 대고 있지만, 리비아 혁명이 내전 상태로 진행되면서 저항세력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이 정부가 강대국과 다국적기업들에 적대적일 경우, 즉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권력이 무장한 채 리비아를 장악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청해부대도 ‘해적을 팽개치고’ 리비아로 이동했다. 구축함으로 민간인을 태우겠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다. 전세기와 육로, 민간 선박으로 ‘탈출’ 의향 한국 교민은 거의 이동을 한 상태다.

청해부대는 리비아에서 항구 이용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소형 보트를 직접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것 자체가 사실상 해당국의 허가 없는 해당국 영토/영해 내 군사 작전을 펴겠다는 뜻이다. 국민 안전을 핑계로 한 일방적 군사 개입인 것이다.

영국도 특공부대를 진입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 모두 리비아 혁명 상황을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시설의 안전을 말하는데, 석유시설은 80퍼센트 넘게 혁명 세력이 장악했으므로 카디피의 광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미국 네오콘들이 군사 개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포함된 나토 내부에서 영국 정부를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독자적으로 리비아와 관계 개선을 하고 각종 이권을 확보해 온 국가들인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등은 군사 개입과 비행금지구역에 두드러지게 소극적이다. 카다피와 유착관계를 고려할 때 현상 유지가 더 낫기도 하려니와 군사개입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재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국보다 감소하는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주:1]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군사 개입의 수순이며, 그 자체가 전쟁의 시작이기도 한데, 한편에서 그것은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할 여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당장 리비아 근해로 이동 중인 미군 항공모함 등이 ‘합법’적으로 제한 없이 군사 작전을 할 수 있다. 중동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세계의 모든 세력은 이부터 반대해야 한다.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제국주의 전폭기들은 카다피의 대공 방어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이유로 리비아 전역에 선제 폭격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떤 이유든 만들어 내서 혁명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폭격할 수 있다.

이는 리비아 전역에서 혁명 열기를 식히고 폭격의 공포에 떨게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리비아를 제국주의 군대가 장악하면 그것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반미 수사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 카다피의 반혁명 몸부림에 도움을 줄 것이다 . 이것은 리비아 안팎에서 좌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벌써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제국주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고 경고하며 카다피를 공개 응원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진 못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다.

지금 미군과 나토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매여 있어 지상군 투입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실패 트라우마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군사적 대응 방식에 선뜻 합의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대중운동의 정치적 반대로 이를 좌절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동의 민중혁명을 지지하고, 리비아 아 민중의 잠재력을 믿는 것과 연관돼 있다. 나쁜 쪽의 가능성을 막으려면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좌파가 단결해 리비아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방 강대국들이 군사 개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카다피의 저항에 따른 여러가지 피해를 때론 과장해 가며 교묘히 개입 지지 여론을 부추기려 할 것이다. 반군 내에서 폭격 요청을 조작하거나 과장할 수도 있다[각주:2]

무엇이든 나토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 목표는 현존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동의 민중혁명 확산을 차단하고, 리비아와 중동(과 석유 자원)에 대한 강대국들의 통제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다피의 학살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결코 ‘인도주의 개입’을 명분으로 한 서방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리비아의 운명은 리비아 민중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중의 혁명인 것이다. (계속)


<레프트21>51호 온라인 기사, ‘리비아 혁명가는 말한다 ― 서방의 군사 개입은 우리 투쟁을 방해할 뿐이다’에서 발췌.

(생략) ...

혁명위원회를 본 사람들은 위원회의 효율성과 열정에 감탄했고, 위원회의 통제 아래 있는 곳에서는 ‘자유’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벵가지에서는 비록 식량이 부족하지만 빈민들은 혁명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 벵가지에서 식량과 기타 서비스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제공된다.

많은 공장과 핵심 시설 들은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다른 곳들은 혁명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고용주에 의해 운영된다.

혁명가들의 군사 전략은 서방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대 진압 명령을 받고 온 군인들을 설득해 혁명의 편에 서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무장이거나 보잘것없는 무기를 가진 시위대들이 징집 군인들을 설득하는 데 계속 성공했다.

... (생략)




  1.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며, 프랑스 등은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반대 이유가 리비아가 자국의 무기수입 고객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의 행동을 설명할 때, 경제적 이익은 중요하지만 전략적 이익의 맥락에서 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개입이 리비아와 주변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까 봐 두려운 점이 큰 듯하다. 이들 국가들은 그래서 이라크 전쟁의 개시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혁명 세력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므로 이런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기존 기득권층에서 反카다피로 돌아선 세력 가운데 이런 세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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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민중 혁명의 한 곳인 리비아 혁명이 내전 형태로 발전하면서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은 군사 개입을 논의하고 있다. 의도가 아니라 능력이란 문제 때문에 군사 개입 개시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군사개입 의도 자체는 명백히 민중 혁명을 차단하고 옥죄려는 시도다. 리비아의 운명은 리비아 민중이 이룩해야 한다. 그들은 어두운 과거를 반복할 뿐이다. 이런 강대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예전에 쓴 글을 다듬고, 새로 써서 보강해 올린다.


제국주의는 개별 자본들의 경제적 경쟁이 세계시장으로 번지면서 이 경쟁이 국가 간 군사적 경쟁으로 발전한 세계자본주의의 한 단계를 가리킨다. 레닌은 이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경쟁이 낳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 경향은 일국 안에서 독점자본의 등장과 국가와 자본의 융합 경향으로 드러나고, 국제 차원에서는 소수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이들을 등에 업은 초거대 다국적기업들)이 지배하는 서열 체계로 발전한다.

자본 간 협력과 경쟁이 일국의 틀을 넘어 국가들 사이의 관계로 발전하면 경제적 이해관계 뿐 아니라 전략적(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중요해지고, 군사적 경쟁이 주요한 경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러시아 혁명가 부하린은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 사이의 투쟁이 무엇보다도 군사력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이유는 군사력이야말로 서로 투쟁하는 ‘국민적’ 자본가 집단들의 최후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최후 수단이 모든 수단인 것은 아니다.냉전 초기 미국은 막대한 경제력으로 자신의 동맹 진영의 결속을 다졌다.

냉전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영원히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강대국들 사이의 군사‧경제적 경쟁이 양대 초강대국 간 경쟁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던 냉전 질서가 해체되면서 오히려 세계는 다극화된 강대국들의 경쟁이라는 현실로 변했다.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 최강대국이지만, 더는 냉전 질서를 주도하던 그런 경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냉전이 시작될 때 미국 경제는 세계경제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냉전이 끝날 때는 세계경제의 4분의 1로 하락해 있었고, 지금은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제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진앙지가 되면서 세계를 향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통제력은 한층 약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여전히 유일 강대국이지만, 상대적인 경제 비중의 하락 때문에 경쟁자들이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국 바로 아래 제국주의 국가들이 점차 자신의 독자적 이익을 추구해 간다는 뜻이기도 하며, 한국 같은 하위 파트너들이 미국 중심의 질서 아래에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지배자들의 제국 유지 전략의 기본은 이제 ‘월등한 군사력’을 이용해 제국주의 질서를 전 세계(특히 자신의 경쟁자들)에 과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인도주의 개입의 실체

다만, 상시적 적대국이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의 상시적 군사 드라이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해 줄 것들이 필요했다. 클린턴 정부는 이를 위해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발명해 냈고, 이 바탕 위에서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했다.

이는 군사적 패권주의를 서로 정당화해 준 냉전 적대국이 사라진 현실과 이에 따른 제국의 필요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후 미국과 서방 강대국 동맹은 지역의 독재정부 제거, 빈곤 구호와 난민 보호 등을 명분으로 세워 지역 ‘깡패국가(Rogue State)’를 상대로 군사력을 과시했다.

이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를 여전히 세계의 경찰로 보이게 하고, 진정한 군사 개입 목표를 가리는 효과를 냈다. 이것은 여러 나라에서 좌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각주:1].

인도주의 개입이란 명분을 정당화하는 과정은 친서방 엔지오 구호단체들이 가진 실용주의의 도움을 받았다. 소말리아와 코소보 등은 이 엔지오들이 ‘인도적 군사 개입’을 요구한 지역이기도 했다. 자선 구호 단체들이 (자의든 타의든) 제국주의의 침략 수단으로 이용된 이용된 분명한 사례다.

공교롭게도 최근 문제가 된 소말리아가 ‘인도주의적 개입’을 제국주의 침략(군사 개입)의 명분으로 내세운 첫째 사례였다. 그러나 이 개입은 두 가지 점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첫째, 인도주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유엔군은 구호 식량의 배분 과정을 내전 중인 군벌에게서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는데, 이것은 사실상 식량을 두고 다투는 전투부대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을 의미했을 뿐이다. 미군은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수천 명을 학살했다.

둘째, 군사적 위신도 망쳤다.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전투 과정에서 최정예 전투 헬기인 블랙호크가 격추되고, 미군 18명이 죽었으며, 소말리아 인들은 난데없이 찾아와 자신의 형제자매를 죽인 ‘외국 군대’에 대한 증오심에 이 시신들을 차량에 매여 시내를 행진했다. 이 장면은 CNN에 생중계돼 미군의 위신을 추락시켰다.

미국은 10년 동안 50만 명을 죽게 만든 이라크 경제 봉쇄와 1999년 나토를 동원해 세르비아를 공격하면서야 위신을 되찾았다.

인도주의 개입이란 명분으로 시작된 이라크 경제제재는 야만적 결과를 낳았다. 석유 수출 등으로 중동에서 가장 1세계에 근접했던 이라크 사회는 이 기간 동안 빈곤과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후진 사회로 바뀌었다. 후세인에게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이 두 사례도 마찬가지로 인도주의 개입을 내세웠는데, 특히, 이라크에서는 후세인의 독재, 쿠르드족 탄압, 쿠웨이트 침공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지역 강국으로 성장한 이라크를 약화시켜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고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였다.

1991년 이라크 북부 지역을 비행금지 구역으로 설정하고 방공망을 파괴했다. 이듬해에는 남부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했다. 한마디로 군사적으로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가한 것이다.

후세인이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아 이란을 침략한 동맹이었다는 사실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후세인의 쿠르드족 학살을 미군이 방조한 것,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 정부가 더 혹독하게 쿠르드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실의 자리에서 배격됐다.

세르비아 개입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나오는 천연가스 송유관의 안전 확보라는 경제적 이익 뿐아니라, 나토의 동진 정책이라는 전략적 목표가 있었다. 옛 소련의 영향권 또는 영토였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미국과 나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지정학적 목표 말이다. 

1999년 세르비아 전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인데, 코소보 인종 청소[각주:2] 때문에 세르비아 영토를 폭격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민간 지역이 폭격 대상이 됐다.

이라크 경제 제재는 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미국은 쿠르드족 보호를 이유로 1991년 4월 이라크 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을 시작으로 석유수출금지 등 경제제재를 경제 봉쇄로 확대해 나갔다[각주:3].

이 때문에 이라크는 경제가 곤두박질쳐 생필품과 의약품 등이 부족해졌는데, 나중에는 의약품 등마저도 수입금지품목에 들어가 2003년 전쟁 전까지 1백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경제제재가 낳은 빈곤과 의약품 부족으로 죽었다. 이중 10세 이하 아동이 50만 명이 넘는다. 외부 개입으로 사회가 파탄나자 내부 반대파는 오히려 더 취약해 졌다.

모든 곳에서 그랬지만, 이라크에서 벌어진 ‘인도주의적 개입’은 인도적 재앙을 낳은 것이다.

뒤이어 등장한 부시 정부와 네오콘은 이런 위선적인 이데올로기에 바탕해 더 공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석유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세계 석유 생산의 중심지인 중동의 '불량국가'들이 군사적 패권 과시의 핵심 목표가 됐다.

2001년 9.11 사태는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격'이었고 당시 부시 행정부는 거침없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군사적 침략의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결과는 지금 보듯이 악몽이었다. 이라크를 점령해 신자유주의 국가를 세우려던 꿈은 물거품이 됐고, 고립시키려던 이란은 오히려 영향력을 확대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베트남 전쟁보다 더 긴 전쟁이 되고 있다.

지금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은 리비아에서 새로운 표적을 찾아냈다. 카다피는 학살자이고 독재자지만, 제국주의 군대가 리비아의 평범한 민중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석유 수출 세계 8위국인 리비아의 자원 통제권을 자신들이 질서를 따르지 않는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 뿐이다. 리비아 군사 개입은 인접국인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을 위협할 것이고, 중동의 민중 혁명에 강력한 브레이크 구실을 목표로 할 것이다. (계속)



  1. 1998년 인도네시아 혁명 후 동티모르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한국도 다국적군 파병 논란에 휩싸였는데, 엔지오 일부와 많은 진보적 개인들이 파병을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이 파병은 동티모르 독립을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독립 동티모르에 친서방 정부가 안정적으로 들어서도록 돕는 구실을 하는 파병이었다. [본문으로]
  2. 여기서 인종청소는 Ethnic Cleansing인데, 이는 나치의 대량 학살 Massacre와는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대량 ‘소개’, 즉 쫓아낸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3. 그러나 막상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을 지지했던 쿠르드족이 후세인에게 보복 탄압을 당할 때,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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