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선동죄는 ‘형법 안의 국가보안법’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원회”는 최근 ‘5월 12일 강연 녹취록’을 새롭게 정리해 공개했다. 이것을 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참석자들 사이에 모종의 연락망이 있다는 것과 이석기 의원과 참석자들의 (과장되고 잘못된) 정세 인식과 정치 노선뿐이다.


그러므로 이를 근거로 중형을 선고한 것은 이 재판이 전형적인 사상 탄압 재판이라는 뜻이다.


국가보안법은 머릿속 생각을 처벌하는 희대의 악법이다. 박근혜가 김정일을 만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이석기 의원이 북한 체제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한 것은 죄가 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행위자의 ‘내심의 목적’을 재판부가 자의로 재단해 처벌하기 때문이다. 행위를 처벌하는 부르주아 사법 원리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형법(1953년)보다도 국가보안법(1948년)이 먼저 제정된 나라다. 냉전적 반공주의와 친서방 자본주의 확립을 목표로 미군정이 수립한 이 우익 국가는 냉전 격화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제압하려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은 처음부터 “내부의 적”에 맞선 한국 자본주의의 ‘체제수호법’이었던 것이다.


형법 제90조 내란의 ‘예비ㆍ음모ㆍ선동ㆍ선전’의 죄 항목은 형법을 만들 때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대신 이 법의 기능을 형법으로 옮기려고 만든 ‘쌍둥이’ 조항이다. (거꾸로 말하면, 국가보안법이 우파의 말과 달리 ‘내부의 적’을 처벌하는 내란죄 처벌 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승만과 그 후배 독재자들은 두 법을 모두 유지하며 저항 단속의 무기로 애용했다.


결국 ‘증거는 없지만 내란을 목적으로 모인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유죄’라는 자의적 판결은, 형법 제90조 자체가 내면의 양심을 처벌하는 ‘형법 안의 국가보안법’ 조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무장관 황교안은 지난해 국회에서 “내란 선동은 … 내란에 대해 고무적 자극을 주는 일체의 언동”이라며, 행위로 옮겨지지 않은 말과 생각까지 처벌하는 조항임을 분명히 했다. 


내란죄의 “국헌 문란” 개념은 국가보안법의 “국가 변란” 개념보다 더 폭넓게 저항적 사상을 처벌할 수 있다. 

(※ ‘귀게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성격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교안 본인이 쓴 《국가보안법》[구판은 《국가보안법 해설》]도 ‘국가 변란’이 ‘국헌 문란’ 개념보다 더 좁은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국가 변란이 혁명이나 타국과의 전쟁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가체제가 수립하려는 행위를 지칭하는 개념이라면, 국헌 문란은 그것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현 국가체제 안에서 특정 정부기관을 타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헌법기관 중 일부를 정지시키거나 변혁하는 것’에서 ‘상당 기간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 차이 때문에 전두환, 노태우처럼 군사쿠데타를 통한 정부기관 접수 시도는 내란죄 국헌문란으로는 처벌돼도 국가보안법상 국가 변란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개념으로는 맘만 먹으면 정부 퇴진, 국정원 해체, 국회 보이콧 같은 주장과 투쟁 등도 처벌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한 예비와 음모, 선전과 선동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 퇴진 주장도 누가 하냐에 따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절차상 합법이라도 민의에 반하는 정부의 중도 퇴진을 요구하고 행동할 귄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 선거 기간과 이후가 판이한 정부를 제어할 수 없다면, 선거라는 것 자체가 이후에는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반기가 직선제로 유지된 독재였다는 것도 이런 사례다.


그래서 내란 선동죄의 성립 조건을 엄격히 적용하라는 진보당 변호인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한편, 이런 내란죄를 적용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와 우익 통치자들은 국가보안법만 썼을 때는 얻지 못할 또 다른 이점을 얻었다. 현존 국가체제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내란 음모’ 혐의자들을 방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제ㆍ안보 위기 속에서 이미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던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배신적 태도 때문에 노동운동은 진보당 방어 문제에서 분열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제안해 온 자유주의자들의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꾀죄죄하고 위선적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증명됐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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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우파적 정면 돌파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은 37일 제주도 구럼비바위 폭파를 시작했고, 그 다음날 KTX 민영화를 위한 투자자 설명회를 개최했다. 315일엔 한미FTA가 발효된다.

이명박이 36일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한 직후에는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 합참의장 등이 ‘응징’, ‘복수’ 등의 호전적 용어를 쓰며 ‘북풍’을 자극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호전적·냉전적 발언들이 “정권 차원의 공통된 인식과 계획 속에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돌아보면, 집권당이 치명적 위기에 빠진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의 쇄신 사기극도 이명박 정부의 친부자·반민주 정책과 부정부패에 분노한 대중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민주당을 흉내내며 ‘좌클릭’을 해봤자 어차피 불리한 게임이라는 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이 정권은 한미FTA 발효, 제주 해군기지와 KTX 민영화 등을 강행하며 오히려 보수층을 결집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송사 파업에도 초강경으로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안보 위기 선전과 색깔론을 되살리고 있다.

이들은 제주 해군기지, 탈북민, 이어도 문제를 ‘북풍 3종 세트’로 이용하고 있다.

탈북민 북송 문제로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부각한 데 이어, ‘이어도는 중국의 경제수역과도 겹친다’는 중국 외교부의 발언도 부각하며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제주 해적기지’ 발언 마녀사냥도 하고 있다.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과 ‘전략적 동맹’을 맺으며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해 온 이명박 정부가 ‘중풍’으로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는 것이다. 

산토끼 잡기에 한계를 느낀 박근혜도 정부의 우경화에 발맞춰 우파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는 2005년 농민 시위를 살인 진압한 책임자이자 KTX 민영화를 추진했던 허준영 등 부패한 우파들을 ‘전략’ 공천하고, 한미FTA와 제주 문제 등으로 민주당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5·184·3 항쟁을 ‘폭동’이라고 부른 이영조를 서울 강남을에 공천했다가 취소했는데, 이 해프닝은 박근혜의 반동적 역사관을 보여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박근혜는 공천 과정에서 ‘일부’ 친이계 솎아내기를 했지만, 빈 자리를 메운 친박계들은 더 부패하고, 더 우파적이며, 더 철두철미하게 1퍼센트를 대변하는 자들일 뿐이다.

이명박은 이런 박근혜를 “우리나라에서 그만한 정치인이 몇 사람 없다”고 추켜세웠다. 낙천한 친박계 이탈파 김무성, 친이계 이동관 등도 ‘종북좌파 저지와 우파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잔류를 선언했고, 박근혜는 청와대 전 정무수석 출신인 정진석 등을 공천하며 화답했다.

‘이명박근혜’당이 본색을 강화하면서 안보 위기론의 ‘샴쌍둥이’인 ‘종북 색깔론’도 등장했다. 이명박은 “북한이 지금 가장 반대하는 것이 제주 해군기지, 한미FTA”라며 반대 여론을 매도했다. 통합진보당 김지윤 후보의 ‘해적기지’ 발언 마녀사냥 소동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이런 반동을 통해서 화수분처럼 터져 나오는 저축은행 로비 의혹, 이상득 차명계좌,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다시 불거진 BBK 등 각종 권력형 부패들을 감추고 입막음하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등이 바로 민주당 정부 때 추진돼 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반MB 야권을 분열시키려고도 한다.


보수층 결집


근본에서 이 프로젝트들은 한국 지배자들이 오래 전부터 합심해 추진해 왔던 것들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를 받으며 이 사안들이 추진됐던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 주류 지배자들은 혹시라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고, 자신감을 얻은 대중의 압력 때문에 민주통합당이 이런 핵심 의제들에서 후퇴할까 봐 우려할 것이다.

우선 이명박과 박근혜의 흉물스런 우파 동맹은 불안정한 동맹이다.

이명박은 퇴임 후를 대비하려고, 박근혜는 대선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 각자 사리사욕을 위해 맺은 동맹이므로 총선에서 참패하는 등의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등을 돌릴 수 있다. 박근혜가 2007년에 김경준을 기획 입국시켰다는 최근의 폭로도 잠재적 갈등 소재다.

(이와 관련한 박근혜의 모순된 처지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반복했으므로 이 블로그의 관련 포스트를 참고하시기 바람)

최근 한미FTA 폐기와 제주 해군 기지 반대를 요구하는 집회 모습. 투쟁하는 진보정치를 추구해야만 이런 열망을 받아 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낡은 냉전 우파적 공세가 오히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반MB(정권 심판) 정서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천안함’을 이용한 안보 색깔론을 밀어붙이다가 역풍을 맞은 것, 무상급식에 우파적 돌격을 시도하다가 서울시장 자리만 야당에 헌납한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그래서 최근의 우파 공세는 최대한 총선 전에 우파적 정책들을 해치우고 ‘대못’을 박아 두려고 ‘돌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류 지배자들은 만일을 대비해 진보정당을 배제하고 민주통합당 길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이런 문제들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가 없다. 민주통합당의 이런 한계는 그 계급 기반과 친자본주의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결국 주류 지배자들은 민주통합당이 허둥대는 걸 보며 반MB 대중이 정치적 냉소에 빠지기 바랄 것이다.

벌써 길들이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야권연대 협상에서 민주통합당은 한미FTA ‘폐기’로 합의하길 끝내 거부했고, 민주통합당 대표 한명숙은 “안보적 측면에서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한발 뺐다. 최고위원 김부겸은 ‘해적기지’ 발언을 두고 “해군에게 모욕감을 주고 … 색깔론의 빌미를 줄 뿐”이라며 한나라당 출신다운 본색을 드러냈다.

공천심사위원장인 강철규는 “[정체성의] 내용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며 “한미FTA 찬반과 같은 것으로 정체성을 판단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선대인 같은 친민주당 인사들조차 실망할 정도로 민주통합당 공천에 대한 진보 대중의 실망도 크다. 이 때문에 이해찬 탈당설이 나올 정도로 파열음도 컸다.

이렇게 난리법석을 떠는데도 민주통합당을 왼쪽으로 견인하겠다며 들어갔던 NGO 출신 인사들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김기식, 이학영, 박용진 등은 당 지도부의 기회주의적 처신에 공개적 비판조차 하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난처한 우파적 의제들을 이명박이 강행하고 자신들은 그로 말미암은 선거적 반사이익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새누리당도 아니고 민주통합당도 아닌 진정한 진보의 대안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명박이 부패와 분열 위기를 덮고 총선 전에 각종 개악들을 완료하려고 돌진하고 있는데, 총선심판론에만 안주하다가 분노한 진보 대중의 섟만 죽이고 말 수 있다. 진보진영은 제주와 방송사 파업, 한미FTA 폐기 투쟁 등을 한데 엮으며 앞장서 이명박의 우파적 정면돌파에 투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


※ 이 글은 일부 축약해 <레프트21> 77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 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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