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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07 진보정당 우경화를 대하는 급진좌파의 전술 논쟁 4

사노위/노혁추 비판: 진정, 진보대통합의 우경화에 파열구를 낼 수 없는 것은 누구인가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급진적 성격의 창당 강령을 폐기하고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전망 속에 참여당과 당 통합까지 시도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개입하면서 진보대통합의 우경화를 저지하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우경화하는 진보대통합을 폭로하면서 진보대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도 있다. 진보신당 독자파가 대표적인 경우이지만,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와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이하, 노혁추)도 바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정당이 아니라 “부르주아 좌파정당”에 불과하고 이들이 추진하는 진보대통합은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의] 재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함께가 이런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그 속에서 우경화를 저지하려고 투쟁하는 것은 “대중의 꽁무니를 쫓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최근에 발표한 <사노위>15호 “다함께, 자신의 모순을 말하라!”와 16호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 ― 진보정치의 파산에 대한 수줍은 자기고백”, <혁명> 창간준비 1호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진보대통합, 처음엔 비극(悲劇) 이젠 소극(笑劇)!” 등의 기사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얼마 전에 격렬한 논쟁 끝에 분열한 사노위와 노혁추가 이 문제에서 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다함께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사노위 분열에 대한 다함께의 분석과 평가(전지윤,《마르크스21》10호, “사노위의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에 대해서는 둘 다 약속한 듯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마치 외부에 화살을 돌리면서 자신들 내부의 난점은 회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물론 현재 진보양당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진보대통합의 방향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한다는 점에서는 두 단체와 다함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그 외에도 두 단체와 다함께는 공통점이 많다. 자본주의를 적당히 고쳐 쓰자는 개혁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는 입장도 같고, 이를 위해서 혁명가들의 독립적 당이 필요하고 이런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도 같다.

따라서 이들이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의 지향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 어떤 ‘진보’도 현재의 막장 정치지형을 넘어설 수 없다”(사노위)면서, 마치 지금의 대립이 혁명적 당을 건설하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대립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대립은 혁명가들이 노동계급 대중의 개혁주의 의식과 조직에 연루를 맺고 그 속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혁명적 당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계급 대중 조직과 연루되길 회피하면서 그 밖에서 혁명적 당을 건설할 것인가에 있다.

“자본주의적 노동자당”

두 단체는 민주노동당 같은 노동계급 대중조직에 연루를 맺고 개입할 필요성을 부정한다. 여기에는 민주노동당의 성격에 대한 혼란이 깔려있다.

예컨대 사노위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며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성격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노혁추는 민주노동당이 강령 교체로 “노동자정당이라는 성격조차 잃게”됐으며 “부르주아 좌파 정당”이라고 말한다. 또 진보정당들이 “노동자당을 참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레닌과 볼세비키는 확고한 전략적 원칙과 전술적 유연함을 통해 결국 대중에 뿌리내리고 역사상 최초츼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했다.

이런 주장은 개혁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일부 합리적 핵심은 있지만, 옳다고 볼 수 없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영국 노동당을 일러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개혁주의 정당이 노동계급에 기반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개혁을 목표로 삼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런 정치로는 두 계급의 이익이 충돌할 때, 일관되게 자기 기반인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저항과 순응이라는 대립물이 복잡하게 통일된 모순적 혼합물인 것이다.
따라서 레닌은 개혁주의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그 당이 기반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민주노동당도 자유주의 정당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표현체로서 등장했다. 투쟁 속에서 각성한 [그러나 혁명 투쟁의 경험은 없는 한국의] 선진 노동자들의 첫 독립적 정치 표현체가 개혁주의정당인 것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지금도 여전히 인력과 재정에서 조직 노동자들,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주로 노조 상층 간부들을 매개로 한다. 당 지도자들과 노조 지도자들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에 개혁주의적 분업을 따른다. 당은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성에 치묵하고, 정치 활동은 선거와 의회정치로 협소화된다. 그래서 이 당은 운동 안에서 모순적 구실을 한다.

그래서 다함께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을 환영하면서도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기성 권력 체제는 민주노동당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덕망’ 있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 “장외 투쟁”을 삼가고 의회 내에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부르주아 정당들과 “상생”하라는 것이다. … 민주노동당은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압력에 조금씩 적응할 것이다. (최일붕, <다함께>30호, 2004년 5월1일)

그러므로 다함께가 “민노당에 대한 분명한 정치적 규정을 회피”(사노위)했다는 비난은 근거 없는 것이다. 다함께는 이 당의 개혁주의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당이 노동운동과 맺은 유기적 관계를 보고 이 당에 개입해 온 것이다. 이 당의 노동계급적 기반 때문에 노동운동의 쟁점들이 당내에 반영되고, 이 당의 정책과 실천이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최근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민주당 비판을 회피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모두 파업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조합원들이었다. 투쟁 상황이 당내 쟁점으로도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이런 관계를 이용해 노동자 대중과 그 운동 속에 개입하고 활동하면서 스스로를 훈련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을 주요한 도전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와 진보대통합

민주노동당 강령 논쟁이나 진보대통합 쟁점에 개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있던 반자본주의적 요소를 일소하는 창당 강령 폐기에 혁명가들이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우경화를 막는 주요한 과제였다.

제도권에 진출해 의원까지 배출한 진보정당의 강령에 반자본주의적 요소가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선전·선동을 위해서도 유리한 것이었다. 사회주의가 ‘소수 괴짜들의 주장’이 아니라는 상징적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같은 이유로] 민주노동당의 강령 후퇴는 그 상징적 효과 때문에 노동운동의 급진성을 후퇴시키고 혁명가들에게도 불리한 조건을 만든다. <조선일보>가 ‘민주노동당은 제도권 정당 중에서 유일하게 강령에 사회주의를 담고 있었다’며 강령 교체를 환영한 이유이기도 하.

민주노동당을 우경화시키려면 바로 노동운동과의 유기적 관계 때문에 노동계급 기반과 멀어지거나, 아니면 이 운동의 전투성을 약화시켜야 한다. 아직 이들은 노동계급 기반가 단절하기보다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약화시켜 수동적 기반으로 만들려는 것으로 보이나.

따라서 혁명가들은 노동운동의 전투성과 급진성을 약화시키는 맥락에서 추진된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를 반대하는 운동을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건설해야 했다.

실제로 다함께는 이번에 강령 후퇴 반대 투쟁을 통해 민주노동당 안팎의 노동자 대중을 향해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ㆍ선동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강령 후퇴에 반대하는 전투적 소수파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당대의원 대회에서 노동조합원들, 심지어 자주파 활동가들까지 포함해 대의원 3분의 1이 강령 후퇴에 반대표를 던지게 됐다.

강령 후퇴가 “이제야 자신들의 계급적 본성을 드러내 제 자리를 찾아간 것”(노혁추)일 뿐이라며 냉소하며 반대 운동을 회피해서는 결코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없다.

혁명가들이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그 과정에 개입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노혁추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은 총선ㆍ대선 선거 대응을 위한 개편”일 뿐이라고 냉소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면적 진실일 뿐이다. 진보대통합은 단결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이기도 하다는 것을 봐야 한다. 최근 실시한 금속노조 조합원 여론조사에서 73.8퍼센트가 진보대통합에 기대감을 나타냈고, 88.7퍼센트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비슷한 여러 여론조사와 같은 결과다.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 다수는 아직 통합 진보 정당을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표현이라고 여기고 노동계급이 이 당으로 단결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자신의 독자적 조직과 정치를 유지하면서도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면서 통합 진보 정당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고무하고 투쟁 건설에 유용한 구실을 하도록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후통첩

물론 현재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강령 후퇴와 참여당과 통합 등을 통해 진보대통합을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 재판”(노혁추)으로 몰아가려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우경화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참여 자체를 반대한다”(노혁추)면서 단지 밖에서 비판적 폭로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밖에서 폭로하면서 “노동자들은 즉각 민주노동당과 단절하고 진정한 계급정당을 고민”(노혁추)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그 과정에 개입하면서, 진보대연합이 참여당과 통합이나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 등으로 나가지 않도록 투쟁하는 게 더 나은 대응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진보정당을 버리고 혁명정당으로 오라’고 최후통첩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혁명가들의 입장과 노선이 왜 더 올바른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사노위와 노혁추는 이런 관점이 없다. 심지어 노혁추는 “노동자들의 99퍼센트 이상은 민주노동당의 밖에, 90퍼센트 이상은 민주노총의 밖에 있지 않은가?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미래”라고까지 주장한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개입할 생각은커녕, 거의 인연을 끊자는 식인 것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밖에 있는 노동자 90퍼센트’의 다수가 민주당이나 심지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이런 종파적 태도의 이면에는 진보정당들의 우경화가 오히려 왼쪽의 공백을 낳아서 급진좌파에게 유리한 기회를 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노위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통합을 원한다? 그렇다”면서도 “진보대통합의 기만성을 폭로해 나가야 한다”고만 주장한다.

조직 노동자 다수가 영향력을 받고 있는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이 우경화하는 것을 저지하고 방향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폭로하면서 기다리면 자기들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헛된 기대만 하는 셈이다. 운동의 우경화를 방관해 종파가 성장하겠다는 발상은 종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레닌은 “반드시 대중이 있는 곳에서 작업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아무리 반동적일지라도 프롤레타리아나 반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있는 기구들과 협회 및 결사체들에서 체계적으로, 참을성 있고, 끈덕지고 끈기 있게 선전과 선동을 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어야만 하며,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이런 대중 속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 대중을 반동적인 지도자들, 부르주아지의 앞잡이들, 노동귀족들, 또는 부르주아화한 노동자들의 영향력 하에 내버려둠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개혁주의 조직과 단절해야 혁명가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이런 종파적 자세는 결과적으로 진보대통합 연석회의에 참가신청한 다함께를 반자본주의 단체라며 배제한 채 우경적 조항을 삽입하고
, 참여당 통합을 기정사실화하려 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좌파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라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태도를 결과적으로 [의도하든 않든] 도울 될 뿐이다. 이대로 된다면 그 상황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사노위와 노혁추처럼 개혁적 진보정당과 어떤 협력도 할 수 없다는 종파적 태도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책략에 이용돼 우경화를 재촉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만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이 당 지도부의 우경화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전투적 당원 노동자들과 소통하거나 대화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의 우경화, 계급연합에 파열구를 낼 수 없”(사노위)는 것은 진보대통합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다함께가 아니라 오히려 사노위와 노혁추다. 이들은 혁명가들이 독자적인 강령과 조직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 보고, 독자적 강령과 조직을 바탕으로 현실에 개입하며 유연한 전술을 구사할 필요성은 외면해 버린다.(그 점에서 두 단체는 당 건설과 운동 개입을 혼돈하고 있다.)

전자는 후자를 위한 당연한 전제다. 다함께도 민주노동당 개입 활동을 위해 독자 조직과 [기관지 중심의] 실천, 강령을 포기한 적이 결코 없다. 그러나 당 건설 선포만 하면 나머지 과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노위와 노혁추는 한 무리의 혁명가들이 모여 강령에 합의하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선포하면 자동으로 노동계급에 대한 지도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사노위와 노혁추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당 건설을 하려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이들은 혁명적이지 않은 노동계급 대중 속에서 이들의 운동과 유기적 연관을 맺으면서 함께 경험하고 때로 타협하고 때로 논쟁하면서 당을 건설하는 지난한 과정을 건너뛰려 했다.

그러나 사노위 실험이 실패하면서 이런 발상의 한계가 드러났다. 실제로 이들은 “강령으로 무장하지 않고는 꽁무니 전술과 정치적 대기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그토록 강조하지만, 막상 강령은 제정도 못 하고 분열했다.


대중과 함께 배우기

이들은 전쟁과 전략에 관해 늘 떠들지만, 막상 전투가 일어나면 ‘전투 하나로 전쟁이 결정나지 않는다’며 참전을 기피하는 장군과 같다. 추상적으로 그 말 자체는 맞지만, 실전에서 전투 없이 승리하는 전쟁은 없다.

민주노총의 공식 결의로 만든 ‘비혁명적인’ 진보정당조차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데 4~5년이 걸렸고 지금도 민주노총 조합원의 5퍼센트 정도를 당원으로 조직했을 뿐인데, 혁명정당이 현실 개입 속에서의 지난한 고투와 노력 없이 강령 통일과 창당 선언으로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은 몽상이다.

지금 혁명가들은 진보의 단결과 투쟁을 바라면서 동시에 민주당과 선거연합도 필요하다고 보는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에 개입해야 한다. 이 과제의 성패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투쟁 경험과 개혁주의 의식이 모순을 빚어내는 지점을 포착해 운동과 의식의 도약을 끌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앞서 예로 든 전북 버스나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의식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회피하는 사노위와 노혁추의 태도는 노동 계급 대중이 투쟁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원칙과 어긋난다.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들 [자신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곳곳에서 노동계급은 저항을 개시했고, 아랍에서는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혁명이 현실인 시대에 혁명가들은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우경화는 선진노동자들과 이 지도자들 사이에 간극을 낳을 것이고 진보진영 안에서 정치 양극화가 벌어질 것이다. 이 간극을 이용해 운동을 전진시키고, 혁명가들의 세력을 넓혀 계급을 투쟁으로 단결시킬 책무가 혁명가들에게 있다. 사노위와 노혁추가 이 중차대한 과제를 회피하지 않길 기대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 62호 온라인 기사로 실린 것을 약간 보완한 것이다. (☞ 기사 바로 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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