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공습 반대 주장은 옳지만 구체적 대안도 제시해야

리비아 혁명에 대한 <레프트21>의 주장은 극단적 소수파적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옳은 주장이었음이 시시각각 드러나고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과 같은 언론들은 폭격이 시작됐을 때 이를 지지했다. 그러다 점점 서방 세력의 실체(민간인 사망, 아랍 세력의 냉대, 반제국주의 여론 확산)가 드러나자 은근슬쩍 군사 개입이 잘못됐다는 식의 기사를 쓰고 있다. <레프트21>만큼 시종일관 서방의 개입을 반대한 곳은 없어서 매우 반가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구체적 대안 제시가 없었다는 거다. 서방의 리비아 공습은 잘못된 것이지만, 궁지에 몰린 리비아 혁명 세력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습 이외의 대안이 무엇인지 제시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주장에도 더 힘이 실린다.

나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대안'들을 생각해 봤다. ‘서방은 군사공습하지 말고 동결한 카다피의 재산을 혁명 세력에 넘겨라’, ‘즉각 카다피와 모든 외교관계를 철회하고, 자국의 리비아 대사를 추방하라’, ‘혁명 세력이 승리할 때까지 리비아산 석유에 대한 거래를 즉각 중단하라’ 등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리비아 공습 잘못된 것 아니냐’ 하고 주장할 때마다 벽에 부딪혔다. ‘넌 카다피를 옹호하는 거냐’는 반응 때문이었다.

카다피도, 제국주의도 모두 거부하는 입장임을 명확히 보이려면 카다피를 혁명가로 착각하는 다른 좌파연하는 세력과 다르게 구체적인 주장을 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리비아 혁명을 지지하고 리비아 혁명에 대한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는 <레프트21>의 주장에 공감하는 정원석 씨의 독자편지가 매우 반가웠다.

정원석 씨의 말대로 리비아에 대한 서방 개입에 반대하는 주장은 아직 상대적 소수파다. 그것은 그 주장의 근거나 명분이 취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겹게도 서방 열강이 리비아 혁명에 도움을 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리비아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방 개입 찬성론자들은 반대자 모두를 카다피 지지자로 쉽게 몰아세울 수 있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3월 31일에 <경향신문>에 쓴 칼럼에서 그렇게 했다.

그는 서방 개입 반대론을 비판하면서, 리비아 민중 항쟁을 사실상 지지하지 않으면서 서방의 리비아 개입에 반대하는 자주계열 활동가들의 논리(민주노동당 논평)를 비판하면서,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집회까지 열면서 서방의 군사 개입 반대 활동을 주도하는 곳은 다함께나 사회진보연대처럼 반카다피 혁명 세력을 지지하는 급진 좌파들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카다피에 반대하고 민중 항쟁이 성공적인 혁명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중동 개입에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원석 씨의 글을 보면서 <레프트21>이 어느 정도 이 과제를 잘 수행한 듯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정원석 씨는 ‘서방의 군사 개입이냐, 카다피 지지냐’ 하는 왜곡된 이분법을 깨려면 리비아 혁명 과정에 서방 개입이 아닌 [혁명 지원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데 <레프트21>은 다양한 기사들에서 이미 대안들을 제시해 왔다.

가령, 정원석 씨는 카다피의 재산을 동결해 혁명세력에게 넘기라는 주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레프트21> 53호 1면 기사 ‘리비아 폭격을 중단하라 – 아랍 혁명에 승리를’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런 일을 해야 할 주체는 서방 국가들인데,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할 세력이 아니라는 점도 봐야 한다. 서방의 리비아 개입 목적은 혁명의 성공이 아니라, 석유 통제권과 중동 반란 확산 저지에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구체적 대안’은 혁명 과정을 더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반카다피 혁명 세력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즉각 개선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요구와 이를 위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반카다피 세력이 더 많은 리비아 민중의 지지를 확보해 카다피와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리비아를 건설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정원석 씨는 ‘혁명 세력이 승리할 때까지 리비아산 석유에 대한 거래를 즉각 중단하라’는 요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단서를 달아 지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 세력이 장악한 유전지대에서 석유 판매 대금은 당분간 혁명 자금과 사회개혁을 위한 재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석 씨의 문제제기에 대한 더 자세한 답변은 이 주제와 관련한 <레프트21>의 최근 기사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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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최병천 비판을 보충하려 한다. 전형적인 인도주의 개입 찬성 논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천 씨[각주:1]가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며 밝힌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다.

2.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

3.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지금 리비아에서 대결 구도는 ‘민중 vs 독재자’다. 리비아 혁명에 관한 태도를 결정하려면, 리비아의 혁명적 민중을 지지할 것이냐, 카다피 독재 체제를 지지할 것이냐 가운데에서 선택하면 된다.

이것이 ‘보편적 인권 vs 주권(반제국주의)’으로 바뀌는 것은 실제로는 대결 구도를 ‘민주적 제국주의 vs 카다피 체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생기는 의문은 이것이 왜 ‘보편적 인권 vs 독재’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vs 주권’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이란 사실상 국경 안에서 무력을 합법으로 독점하는 권리를 뜻하는데, 그 점에서 최병천의 구도는 오히려 카다피의 학살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해 주는 것과 같을 수 있다.[각주:2]

그러나 리비아 혁명 민중의 편에 서면 카다피의 주권 논리는 가증스런 것이다. 어떤 합법 절차도 없이 무력을 독점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에게 ‘주권’이 있다고 인정할 민중은 없다.

결국 최병천은 이 혁명과 군사 개입 논쟁을 계급 분단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선의 문제, 즉 강대국 정부와 후진국 독재정부의 문제로 보는 셈이다.

그래서 ‘보편적 인권’을 대변할 행위 주체는 리비아 민중이 아니라 ‘민주적’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다. 

리비아 민중은 독자적 행위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으로 승리할 가망이 있다면 군사 개입을 찬성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최병천에게 그들은 민주적 제국주의가 대신 해방시켜줘야 하는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다.[각주:3]

최병천은 ‘민주적’제국주의와 카다피 독재 정부 둘 가운데서 ‘민주적’ 제국주의를 지지하자고 말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보편적 인권 vs 반제국주의 주권’ 구도에는 좀더 이데올로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천은 그동안 북한 같은 아류 스탈린주의 독재정권들의 실패에서 온건 개혁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찾으려 해 왔다. 그에게 리비아나 북한은 유엔 등을 통해 절차만 거치면 인권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처리’해도 되는 국가다.

이 정권들이 위선적이게도 급진적이거나 반제국주의 수사들을 즐겨 써왔기 때문에 이 나라들의 독재와 가난은 오히려 급진적 반제국주의 정치의 신용도를 추락시킬 좋은 소재였다.그럭저럭 남는 장사였던 것이[각주:4].

그러나 세계경제에 깊숙하게 엮여 있는 한국경제에서 세계자본주의[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전략이 아니고선 불가역적인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

초기의 환호가 잦아든 지금, 리비아 혁명은 목적의식적인 연속혁명을 추구해야만 카다피의 반동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 점에서 이런 개혁주의 사고는 처음부터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설정한 문제틀에서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국, 민중혁명도 신뢰하지 않고 제3세계 독재정부가 신뢰하지 않는 진보가 리비아 같은 사태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것은 서방의 가치를 미화하며 민주적 제국주의의 구실에 기대는 것 뿐이다.

사실은 바로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서방의 많은 자유주의 좌파들이 1990년대 이후(달리 말하면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의 ‘인도주의 개입’ 논리에 휩쓸려 갔다

이와 관련해 토니 블레어는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공격을 정당화하면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경찰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제3의 길’식 세계화 담론을 주장한바 있다. 

1990년대 이후 국제 구호 단체들 안에서도 균열이 일어나 중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향이 많이 일어났는데, 옥스팜의 각국 지부들이나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가 그렇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치단체가 독일 녹색당인데,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한 이 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지지한 것은 참으로 몹쓸 장면이었다.

한때 혁명가였던 이 당의 리저 요슈카 피셔는 한때 슈뢰정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기도 했고, 녹색당 자체도 사민당의 단골 연정파트너 정당이 됐으나 좌파적 신용은 상당히 잃어 버렸다.

서방 군사 개입에 찬성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이렇듯 분명하다.

문제는 최근 잠시 소강 상태인 듯하던 리비아 국내 상황이 바뀌어 카다피가 우세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같다.

첫째, 서방 강대국들이 결코 인도적이나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관련 글 보기 ☞ 제국주의와 인도주의)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인도주의 개입의 이름으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해 왔다. 바레인을 침공한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것은 미국이다.

서방 강대국 정부들은 또 2000년대이후 카다피 정부와 유착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리비아 간첩 사건도 리비아 정부에 좀더 좋은 [로비] 선(線)을 대려는 시도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쓴 다른 글을 보시오. ☞ 관련 기사 / 관련 포스트)

둘째, 서방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가증스런 ‘학살 주권’이 아니라 리비아 혁명의 ‘주권’과 충돌할 것이라는 점이다. 혁명 세력이 장악했다는 석유 관련 시설 80퍼센트를 서방 군대는 가만히 둘 것인가.

서방 강대국들 입장에선 국유화된 석유 통제권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혁명 정부에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벌써 EU 지배자들은 반군측에 카다피와 맺은 자신들의 석유개발권을 그대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혁명을 이끄는 세력은 과도정부와 전국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과도정부에는 구체제의 법무장관 등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전국위원회는 이 과도정부와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교착 상태 때문에 비행금지구역을 찬성하는 부류가 있을 만통일성이 부족하다. 

셋째, 리비아에서는 이집트나 튀니지와 달리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적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과도 정부와 혁명위원회의 내부 분화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고, 반카다피 대중을 혁명으로 동원하는 문제에서 사회적 내용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가 오일머니로 주택 제공 등 복지 혜택을 약속한 바가 있는데, 혁명위원회의 전국위원회는 이를 뛰어넘는 변혁 강령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해 리비아 혁명이 직면한 어려움은 서방의 지원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혁명 과정에서 폭력의 힘은 절대적으로 정치적 설득력(지지세력의 결집과 동원 능력)에 달려 있다.

군부가 감히 혁명에 총부리를 못 겨누고 후퇴한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 점은 증명됐다. 2006년 레바논 헤즈볼라가 최정예 이스라엘 군대를 이긴 것도 이런 사례다. 지금까지 혁명 세력이 승승장구한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점에서 카다피가 일방적으로 혁명세력을  ‘학살’하는 듯한 일부 보도는 과장에 가깝고, 가끔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어려움이 있다면 앞서 말한 혁명 주도 세력의 내부 약점에서 비롯한 것과 더불어 혁명의 선제공격에 대항한 구체제의 반동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군대가 바레인 민주화 저항세력을 진압하려고 출동한 것을 보라.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나라가 어디인가. 서방 강대국 가운데 사우디 군대를 막을 군사 개입을 말하는 나라가 있나?

오히려 서방의 군사 개입이 거론된 이후 서방의 음모에 맞서 아랍의 주권을 지킨다는 카다피의 거짓말이 먹힐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과도정부나 전국위원회가 서방 개입에 찬성하면 혁명 진영은 크게 분열할 수 있다. 실제로 서방의 군사개입 얘기가 나온 뒤로 혁명이 주춤하고 카다피의 반혁명 공세가 거세졌다. 

그렇다고 혁명이 후퇴하거나 끝장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카다피는 리비아의 더 적은 지역을 톶제하고 있고, 공식 군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용병에 의존하고 있다. 벵가지가 쉽게 함락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혁명은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초기의 환호와 역습, 후퇴와 전진 등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각 정치세력의 실체와 실력이 드러나는 치열한 대결의 장이다. 그리고 현재 중동 혁명은 단순히 독재자가 아니라 서방의 후원을 받는 독재자에 맞선 혁명이다. 

따라서 열쇠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리비아 혁명의 운명은 이집트가 조금씩 그러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혁명으로, 다른 중동혁명과 연대하는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달린 듯하다.

카다피의 이권이 다른 기득권 집단의 이권으로 넘어가는 식의 과도 정부 대안이 아니라 노동자권력 대안만이 카다피가 해결 못한 빈곤과 자유, 진정한 민중주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성마른 이들에게 이런 결론이 매우 무기력하거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실패가 명백한 길로 갈 수는 없다. 서방 군사 개입이 아니라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혁명을 돕는 길이다.



  1.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본문으로]
  2. 그래서 그는 주권도 중요하긴 하므로 유엔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주권 국가가 사라져도 국가가 통치하던 그 사회는 남는다. 주권을 가진 억압적 국가기구는 외국군대가 파괴할 수 있어도 그 사회에 사는 민중은 제국주의 군대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최병천에게 이 문제는 고려사항이 없다. 다른 좀더 덜 현학적인 표현과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4. 그래서 온건 진보파들은 북한 정권과 일체감을 느끼는 민족해방파 식의 반제국주의 노선 뿐 아니라 다함께 같은 반자본주의적 반제국주의 노선도 혐오하는 것이다. 후자는 현재 국내외에서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질서)에 혁명적으로 도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 질서에서 안주하려는 온건 진보파에겐 매우 거북스런 존재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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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는 ‘반미 전사’인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한때 반미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69년 쿠데타 후에 국가이름을 리비아사회주의공화국으로 내세웠고 이집트, 시리아와 아랍연방을 구성해 이스라엘과 맞서기도 했다.

이 아랍연방은 이집트의 사다트 정부(무바라크의 전임자)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와해되고 만다.

미국은 카디피를 제거하려고 1986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하기도 했다. 미사일은 민간인지구에 떨어져 수백 명을 죽였다.

비록 카다피가 미국과 맞섰고,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리비아에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권력은커녕 모든 민중이 함께 누리는 풍요와 민주주의도 없었다.

다만 그가 서방 강대국들의 질서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것만으로 그의 독재정부가 진보적으로 평가받을 순 없는 까닭이다.

사실 이런 반항은 냉전 시대 소련의 후원 아래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한계가 뚜렷했다.

냉전 해체 이후 고립된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벗어나려 카다피는 미국 중심의 질서에 순응하려 했다. 미국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고, 2003년 12월에 핵 개발 포기 선언을 했다.

그 대가로 2004년에 경제제재가 해제됐고, 2006년에는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고 외교관계를 완전 정상화했다. 2006년 당시 이라크침략전쟁 기획자의 하나였던 부시 행정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핵 개발 문제로 북한과 이란을 압박하면서, “2003년이 리비아에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올해가 이란과 북한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총리 블레어는 미국을 대신해 2003년 극비 협상을 진행했다. 제재 해제와 외교 정상화 후 영국회사 BP는 그뒤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권을 여럿 따냈고, 영국 정부는 막대한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했다. 카다피의 아들은 영국에 유학했고, ‘제3의 길’을 배워 갔다.

그뒤, 영국 사법부는 1988년 팬암기 폭파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영국에 구속돼 있던 리비아 인 한 명을 조건 없이 석방했다.(증거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중동의 민중혁명 파괴가 진짜 목표

서방 강대국들이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인도주의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그래서 위선이다. 위선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들의 관심사는 막대한 자원과 리비아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관계 회복 후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이 석유와 각종 개발 사업에 큰 규모로 투자해 왔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형님 외교 대상국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중해, 소말리아 앞 아덴만 등에 있던 미국, 중국 등의 함대가 리비아로 이동하고 있다. 나토도 긴급 회의를 열고 개입을 논의했다.

자국민 안전 이동 등 여러 핑계를 대고 있지만, 리비아 혁명이 내전 상태로 진행되면서 저항세력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이 정부가 강대국과 다국적기업들에 적대적일 경우, 즉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권력이 무장한 채 리비아를 장악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청해부대도 ‘해적을 팽개치고’ 리비아로 이동했다. 구축함으로 민간인을 태우겠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다. 전세기와 육로, 민간 선박으로 ‘탈출’ 의향 한국 교민은 거의 이동을 한 상태다.

청해부대는 리비아에서 항구 이용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소형 보트를 직접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것 자체가 사실상 해당국의 허가 없는 해당국 영토/영해 내 군사 작전을 펴겠다는 뜻이다. 국민 안전을 핑계로 한 일방적 군사 개입인 것이다.

영국도 특공부대를 진입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 모두 리비아 혁명 상황을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시설의 안전을 말하는데, 석유시설은 80퍼센트 넘게 혁명 세력이 장악했으므로 카디피의 광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미국 네오콘들이 군사 개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포함된 나토 내부에서 영국 정부를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독자적으로 리비아와 관계 개선을 하고 각종 이권을 확보해 온 국가들인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등은 군사 개입과 비행금지구역에 두드러지게 소극적이다. 카다피와 유착관계를 고려할 때 현상 유지가 더 낫기도 하려니와 군사개입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재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국보다 감소하는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주:1]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군사 개입의 수순이며, 그 자체가 전쟁의 시작이기도 한데, 한편에서 그것은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할 여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당장 리비아 근해로 이동 중인 미군 항공모함 등이 ‘합법’적으로 제한 없이 군사 작전을 할 수 있다. 중동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세계의 모든 세력은 이부터 반대해야 한다.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제국주의 전폭기들은 카다피의 대공 방어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이유로 리비아 전역에 선제 폭격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떤 이유든 만들어 내서 혁명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폭격할 수 있다.

이는 리비아 전역에서 혁명 열기를 식히고 폭격의 공포에 떨게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리비아를 제국주의 군대가 장악하면 그것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반미 수사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 카다피의 반혁명 몸부림에 도움을 줄 것이다 . 이것은 리비아 안팎에서 좌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벌써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제국주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고 경고하며 카다피를 공개 응원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진 못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다.

지금 미군과 나토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매여 있어 지상군 투입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실패 트라우마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군사적 대응 방식에 선뜻 합의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대중운동의 정치적 반대로 이를 좌절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동의 민중혁명을 지지하고, 리비아 아 민중의 잠재력을 믿는 것과 연관돼 있다. 나쁜 쪽의 가능성을 막으려면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좌파가 단결해 리비아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방 강대국들이 군사 개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카다피의 저항에 따른 여러가지 피해를 때론 과장해 가며 교묘히 개입 지지 여론을 부추기려 할 것이다. 반군 내에서 폭격 요청을 조작하거나 과장할 수도 있다[각주:2]

무엇이든 나토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 목표는 현존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동의 민중혁명 확산을 차단하고, 리비아와 중동(과 석유 자원)에 대한 강대국들의 통제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다피의 학살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결코 ‘인도주의 개입’을 명분으로 한 서방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리비아의 운명은 리비아 민중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중의 혁명인 것이다. (계속)


<레프트21>51호 온라인 기사, ‘리비아 혁명가는 말한다 ― 서방의 군사 개입은 우리 투쟁을 방해할 뿐이다’에서 발췌.

(생략) ...

혁명위원회를 본 사람들은 위원회의 효율성과 열정에 감탄했고, 위원회의 통제 아래 있는 곳에서는 ‘자유’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벵가지에서는 비록 식량이 부족하지만 빈민들은 혁명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 벵가지에서 식량과 기타 서비스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제공된다.

많은 공장과 핵심 시설 들은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다른 곳들은 혁명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고용주에 의해 운영된다.

혁명가들의 군사 전략은 서방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대 진압 명령을 받고 온 군인들을 설득해 혁명의 편에 서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무장이거나 보잘것없는 무기를 가진 시위대들이 징집 군인들을 설득하는 데 계속 성공했다.

... (생략)




  1.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며, 프랑스 등은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반대 이유가 리비아가 자국의 무기수입 고객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의 행동을 설명할 때, 경제적 이익은 중요하지만 전략적 이익의 맥락에서 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개입이 리비아와 주변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까 봐 두려운 점이 큰 듯하다. 이들 국가들은 그래서 이라크 전쟁의 개시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혁명 세력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므로 이런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기존 기득권층에서 反카다피로 돌아선 세력 가운데 이런 세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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