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최병천 비판을 보충하려 한다. 전형적인 인도주의 개입 찬성 논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천 씨[각주:1]가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며 밝힌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다.

2.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

3.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지금 리비아에서 대결 구도는 ‘민중 vs 독재자’다. 리비아 혁명에 관한 태도를 결정하려면, 리비아의 혁명적 민중을 지지할 것이냐, 카다피 독재 체제를 지지할 것이냐 가운데에서 선택하면 된다.

이것이 ‘보편적 인권 vs 주권(반제국주의)’으로 바뀌는 것은 실제로는 대결 구도를 ‘민주적 제국주의 vs 카다피 체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생기는 의문은 이것이 왜 ‘보편적 인권 vs 독재’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vs 주권’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이란 사실상 국경 안에서 무력을 합법으로 독점하는 권리를 뜻하는데, 그 점에서 최병천의 구도는 오히려 카다피의 학살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해 주는 것과 같을 수 있다.[각주:2]

그러나 리비아 혁명 민중의 편에 서면 카다피의 주권 논리는 가증스런 것이다. 어떤 합법 절차도 없이 무력을 독점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에게 ‘주권’이 있다고 인정할 민중은 없다.

결국 최병천은 이 혁명과 군사 개입 논쟁을 계급 분단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선의 문제, 즉 강대국 정부와 후진국 독재정부의 문제로 보는 셈이다.

그래서 ‘보편적 인권’을 대변할 행위 주체는 리비아 민중이 아니라 ‘민주적’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다. 

리비아 민중은 독자적 행위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으로 승리할 가망이 있다면 군사 개입을 찬성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최병천에게 그들은 민주적 제국주의가 대신 해방시켜줘야 하는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다.[각주:3]

최병천은 ‘민주적’제국주의와 카다피 독재 정부 둘 가운데서 ‘민주적’ 제국주의를 지지하자고 말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보편적 인권 vs 반제국주의 주권’ 구도에는 좀더 이데올로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천은 그동안 북한 같은 아류 스탈린주의 독재정권들의 실패에서 온건 개혁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찾으려 해 왔다. 그에게 리비아나 북한은 유엔 등을 통해 절차만 거치면 인권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처리’해도 되는 국가다.

이 정권들이 위선적이게도 급진적이거나 반제국주의 수사들을 즐겨 써왔기 때문에 이 나라들의 독재와 가난은 오히려 급진적 반제국주의 정치의 신용도를 추락시킬 좋은 소재였다.그럭저럭 남는 장사였던 것이[각주:4].

그러나 세계경제에 깊숙하게 엮여 있는 한국경제에서 세계자본주의[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전략이 아니고선 불가역적인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

초기의 환호가 잦아든 지금, 리비아 혁명은 목적의식적인 연속혁명을 추구해야만 카다피의 반동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 점에서 이런 개혁주의 사고는 처음부터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설정한 문제틀에서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국, 민중혁명도 신뢰하지 않고 제3세계 독재정부가 신뢰하지 않는 진보가 리비아 같은 사태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것은 서방의 가치를 미화하며 민주적 제국주의의 구실에 기대는 것 뿐이다.

사실은 바로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서방의 많은 자유주의 좌파들이 1990년대 이후(달리 말하면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의 ‘인도주의 개입’ 논리에 휩쓸려 갔다

이와 관련해 토니 블레어는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공격을 정당화하면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경찰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제3의 길’식 세계화 담론을 주장한바 있다. 

1990년대 이후 국제 구호 단체들 안에서도 균열이 일어나 중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향이 많이 일어났는데, 옥스팜의 각국 지부들이나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가 그렇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치단체가 독일 녹색당인데,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한 이 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지지한 것은 참으로 몹쓸 장면이었다.

한때 혁명가였던 이 당의 리저 요슈카 피셔는 한때 슈뢰정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기도 했고, 녹색당 자체도 사민당의 단골 연정파트너 정당이 됐으나 좌파적 신용은 상당히 잃어 버렸다.

서방 군사 개입에 찬성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이렇듯 분명하다.

문제는 최근 잠시 소강 상태인 듯하던 리비아 국내 상황이 바뀌어 카다피가 우세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같다.

첫째, 서방 강대국들이 결코 인도적이나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관련 글 보기 ☞ 제국주의와 인도주의)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인도주의 개입의 이름으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해 왔다. 바레인을 침공한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것은 미국이다.

서방 강대국 정부들은 또 2000년대이후 카다피 정부와 유착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리비아 간첩 사건도 리비아 정부에 좀더 좋은 [로비] 선(線)을 대려는 시도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쓴 다른 글을 보시오. ☞ 관련 기사 / 관련 포스트)

둘째, 서방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가증스런 ‘학살 주권’이 아니라 리비아 혁명의 ‘주권’과 충돌할 것이라는 점이다. 혁명 세력이 장악했다는 석유 관련 시설 80퍼센트를 서방 군대는 가만히 둘 것인가.

서방 강대국들 입장에선 국유화된 석유 통제권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혁명 정부에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벌써 EU 지배자들은 반군측에 카다피와 맺은 자신들의 석유개발권을 그대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혁명을 이끄는 세력은 과도정부와 전국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과도정부에는 구체제의 법무장관 등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전국위원회는 이 과도정부와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교착 상태 때문에 비행금지구역을 찬성하는 부류가 있을 만통일성이 부족하다. 

셋째, 리비아에서는 이집트나 튀니지와 달리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적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과도 정부와 혁명위원회의 내부 분화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고, 반카다피 대중을 혁명으로 동원하는 문제에서 사회적 내용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가 오일머니로 주택 제공 등 복지 혜택을 약속한 바가 있는데, 혁명위원회의 전국위원회는 이를 뛰어넘는 변혁 강령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해 리비아 혁명이 직면한 어려움은 서방의 지원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혁명 과정에서 폭력의 힘은 절대적으로 정치적 설득력(지지세력의 결집과 동원 능력)에 달려 있다.

군부가 감히 혁명에 총부리를 못 겨누고 후퇴한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 점은 증명됐다. 2006년 레바논 헤즈볼라가 최정예 이스라엘 군대를 이긴 것도 이런 사례다. 지금까지 혁명 세력이 승승장구한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점에서 카다피가 일방적으로 혁명세력을  ‘학살’하는 듯한 일부 보도는 과장에 가깝고, 가끔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어려움이 있다면 앞서 말한 혁명 주도 세력의 내부 약점에서 비롯한 것과 더불어 혁명의 선제공격에 대항한 구체제의 반동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군대가 바레인 민주화 저항세력을 진압하려고 출동한 것을 보라.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나라가 어디인가. 서방 강대국 가운데 사우디 군대를 막을 군사 개입을 말하는 나라가 있나?

오히려 서방의 군사 개입이 거론된 이후 서방의 음모에 맞서 아랍의 주권을 지킨다는 카다피의 거짓말이 먹힐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과도정부나 전국위원회가 서방 개입에 찬성하면 혁명 진영은 크게 분열할 수 있다. 실제로 서방의 군사개입 얘기가 나온 뒤로 혁명이 주춤하고 카다피의 반혁명 공세가 거세졌다. 

그렇다고 혁명이 후퇴하거나 끝장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카다피는 리비아의 더 적은 지역을 톶제하고 있고, 공식 군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용병에 의존하고 있다. 벵가지가 쉽게 함락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혁명은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초기의 환호와 역습, 후퇴와 전진 등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각 정치세력의 실체와 실력이 드러나는 치열한 대결의 장이다. 그리고 현재 중동 혁명은 단순히 독재자가 아니라 서방의 후원을 받는 독재자에 맞선 혁명이다. 

따라서 열쇠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리비아 혁명의 운명은 이집트가 조금씩 그러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혁명으로, 다른 중동혁명과 연대하는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달린 듯하다.

카다피의 이권이 다른 기득권 집단의 이권으로 넘어가는 식의 과도 정부 대안이 아니라 노동자권력 대안만이 카다피가 해결 못한 빈곤과 자유, 진정한 민중주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성마른 이들에게 이런 결론이 매우 무기력하거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실패가 명백한 길로 갈 수는 없다. 서방 군사 개입이 아니라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혁명을 돕는 길이다.



  1.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본문으로]
  2. 그래서 그는 주권도 중요하긴 하므로 유엔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주권 국가가 사라져도 국가가 통치하던 그 사회는 남는다. 주권을 가진 억압적 국가기구는 외국군대가 파괴할 수 있어도 그 사회에 사는 민중은 제국주의 군대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최병천에게 이 문제는 고려사항이 없다. 다른 좀더 덜 현학적인 표현과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4. 그래서 온건 진보파들은 북한 정권과 일체감을 느끼는 민족해방파 식의 반제국주의 노선 뿐 아니라 다함께 같은 반자본주의적 반제국주의 노선도 혐오하는 것이다. 후자는 현재 국내외에서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질서)에 혁명적으로 도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 질서에서 안주하려는 온건 진보파에겐 매우 거북스런 존재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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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부 자주파 인사들은 카다피를 반제국주의 지도자로 묘사해 왔다. 반대로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카다피의 독재가 서방의 인권ㆍ민주주의 가치와 대립해 왔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둘 다 진실이 아니다[각주:1]

카다피가 1969년 쿠데타로 미군과 영국군을 몰아내고 석유를 국유화해 일부 복지를 제공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의 정치체제가 민주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복지 제공이 지속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1980년대 미국 대통령 레이건은 카다피를 “미친개”로 불렀다. 그는 1986년에 카다피를 죽이려고 트리폴리를 폭격했다. 60톤의 폭탄이 쏟아졌고 카다피의 수양딸 등 수백 명이 죽었다.

그가 한때 팔레스타인 해방 투사들의 피신처를 제공하고, 시리아, 이집트 등과 아랍연방을 구성하려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짐바브웨의 무가베 같은 제3세계 독재 정부들도 후원했다.

그는 이처럼 한때 제국주의와 갈등했지만, 그것을 독재 정당화에 이용했다. 서방과 갈등이 (베네수엘라 차베스처럼) 진정한 사회 진보를 두고 벌인 갈등도 아니었다. 

그런데 2003년부터는 태도를 바꿔 제국주의에 빌붙어 왔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고,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이 초기에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후세인을 사형시키는 것을 본 뒤, 완전히 항복했다.

미국은 실체도 없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는데, 2003년 12월 카다피는 결국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을 했다.


미국은 그 대가로 2004년 리비아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 제재를 해제했다. 2006년에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그뒤, 서방 지배자들은 카다피를 “지역의 실력자”로 부르며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리비아의 석유 자원 수입, 유전 개발과 각종 건설 투자, 무기 수출로 돈벌이에 나섰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동 지역의 동맹이 절실했던 미국에게 ‘반미 투사’로 알려진 카다피의 지지는 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데 매우 소중했다. 승전 가능성이 적어질수록 미국 지배자들에게 중동에서 동맹의 존재가 중요해 졌다.

유럽 열강들도 원유 매장량이 세계 8위이고 지중해와 접한 리비아와 관계 개선 상황을 한껏 이용했다. 카다피의 ‘안정적인’ 통치와 석유 독점 때문에 서방 강대국들은 카다피와 유착을 통해 안정적으로 전략적·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


서방 열강의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중동 혁명의 와중에도 석유 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출처: http://atopy101.com, stitch님의 작품.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리비아가 서방과 돈독한 파트너가 되면서 전 세계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미 국무부 대변인 숀 맥코믹도 “리비아는 … 미국과는 물론 국제사회와 건설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앞으로 발전 여지도 많다”고 말했다.

2004년 영국 블레어,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2008년 미 국무장관 라이스가 카다피와 회담하려고 리비아를 방문했다.

선두주자는 카다파의 서방 질서 편입 과정을 중재한 영국 블레어였다.
블레어는 회담과 동시에 영국계 석유기업 셸과 BP의 유전(석유와 천연가스) 개발권을 확보하고 미사일과 방공시스템, 시위 진압 장비 등도 판매했다.


블레어는 리비아 장교들을 영국사관학교 샌드허스트에서 교육시키고 군사자문단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에서 부패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2008년에는 식민지배 피해 보상 명목으로 25년간 50억 달러를 개발 원조하겠다는 협정을 카다피와 맺었다.

이탈리아는 지금 EU 회원국 가운데 리비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팔고 있고, 전체 석유 수입의 4분1 가까이를 리비아에 의존한다.


2007년 정상회담 후 프랑스도 원자로와 비행기, 군수물자 등을 1백억 유로어치 판매했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8년 리비아 방문 때 카다피에게서 20만 달러가 넘는 선물을 받았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양국 관계 개선 전망에 매우 흥분해 있다”고 카다피에게 전했다.

이때 카다피는 15억 달러를 미국 정부에 배상했고, 미국 석유기업들은 이 돈을 대줬다.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 다음으로 리비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판 나라다.

서방 지도자들은 2009년에는 카다피를 G8 회의에 초청했고, 유엔총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8회의에 나란히 초청된 카다피와 이명박. 이명박은 독재자와 잘 통했다. 이 회의 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다피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뭐라고 말을 막 하더라. … 내 말에 굉장히 감동받은 것 같은데 어느 대목에서 감동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 출처: 청와대 웹사이트



카다피도 화답했다.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정부에게 유전 개발 등 거액의 사업권을 줬고, 자유시장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다피는 2008년 ‘혁명’(사실은 쿠데타) 39주년 연설에서 “내년 초부터 자유시장 경제 조처들을 도입한다”며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면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서방과 카다피 모두 위선자인 것이다.

서방의 강대국들은 카다피가 저항 세력을 학살하도록 무기와 돈을 제공한 당사자다. 서방 지배자들이 민주주의 운운하거나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을 말할 때 그것은 다른 속셈을 감추려는 것일 뿐이다.

카다피가 ‘주권’을 말하는 것도 위선이다. 그가 해외에서 용병을 불러들이는 데 쓰는 돈은 막대한 석유개발 이권을 독점해 다국적 기업들에게 나눠 준 대가로 받은 돈이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중동을 순방하며 무기 세일즈를 한 직후에 ‘카다피의 학살을 막아야 한다’며 위선을 떨었다.

그가 “영국이 아랍 정상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하고 얘기하는 동안 리비아 학살 동영상에는 영국제 장갑차가 진압에 사용되는 장면이 나왔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을 지낸 ‘네오콘’ 리처드 펄은 세계적 컨설팅 기업인 모니터그룹 소속으로 연간 3백만 달러를 받는 카다피 자문팀에 참여해 왔다.

오바마 정부도 불과 몇 달 전에 카다피와 무기 수출 계약을 추진한 바 있다. 카다피는 ‘테러와의 전쟁’을 돕겠다며 미국의 전투기, 헬기, 탱크를 수입해 왔다.

결국, 카다피는 반제국주의이기는커녕 제국주의에 빌붙어 온 독재자일 뿐이고, 서방은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도와준 공범들일 뿐이다.

서방 강대국 지배자들이 카다피를 단죄하려 한다면, 그것은 카다피가 더는 안정적으로 리비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때일 것이다. 패권과 석유 자원을 위협하는 민중혁명을 차단하려고 결심했을 때인 것이다.

이명박과 카다피의 유착 관계

한국은 카다피의 학살 만행을 공식적으로 비난하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외교부가 지난주 유엔의 인도적 지원에 6억여 원을 내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응의 전부다.

한국 기업들이 리비아가 경제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설기업들이 현재 리비아에서 따낸 공사 수주액은 40조 원이 넘는다. 

2009년에 이명박은 G8 회의에서 만난 카다피가 “[아프리카 개발에 도움을 주겠다는] 내 말에 굉장히 감동을 받은 것 같다”며 흡족해 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지난해 7월 리비아에서 과도한 첩보 행위가 발각돼 국정원 요원들이 추방됐을 때, 이명박 정부는 ‘형님’ 이상득을 카다피에게 특사로 보냈다. 

당시 이상득은 “용서해 달라”며 “양국 정상이 서로 방문하고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키자”고 카다피를 달랬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 52호에 실렸습니다. ☞카다피와 서방의 공범 관계이명박과 카다피의 유착



  1. 의도는 다르지만, 두 견해 모두 카다피 식의 제3세계 독재를 반제국주의 국가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최병천은 리비아나 북한식의 ‘반제론’은 틀렸다며 서방의 제국주의적 개입 지지론을 정당화한다. 이에 대해서는 http://left21.com/article/9399를 보라. 이 기사를 보완한 포소트도 곧 올릴 계획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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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는 ‘반미 전사’인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한때 반미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69년 쿠데타 후에 국가이름을 리비아사회주의공화국으로 내세웠고 이집트, 시리아와 아랍연방을 구성해 이스라엘과 맞서기도 했다.

이 아랍연방은 이집트의 사다트 정부(무바라크의 전임자)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와해되고 만다.

미국은 카디피를 제거하려고 1986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하기도 했다. 미사일은 민간인지구에 떨어져 수백 명을 죽였다.

비록 카다피가 미국과 맞섰고,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리비아에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권력은커녕 모든 민중이 함께 누리는 풍요와 민주주의도 없었다.

다만 그가 서방 강대국들의 질서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것만으로 그의 독재정부가 진보적으로 평가받을 순 없는 까닭이다.

사실 이런 반항은 냉전 시대 소련의 후원 아래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한계가 뚜렷했다.

냉전 해체 이후 고립된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벗어나려 카다피는 미국 중심의 질서에 순응하려 했다. 미국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고, 2003년 12월에 핵 개발 포기 선언을 했다.

그 대가로 2004년에 경제제재가 해제됐고, 2006년에는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고 외교관계를 완전 정상화했다. 2006년 당시 이라크침략전쟁 기획자의 하나였던 부시 행정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핵 개발 문제로 북한과 이란을 압박하면서, “2003년이 리비아에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올해가 이란과 북한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총리 블레어는 미국을 대신해 2003년 극비 협상을 진행했다. 제재 해제와 외교 정상화 후 영국회사 BP는 그뒤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권을 여럿 따냈고, 영국 정부는 막대한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했다. 카다피의 아들은 영국에 유학했고, ‘제3의 길’을 배워 갔다.

그뒤, 영국 사법부는 1988년 팬암기 폭파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영국에 구속돼 있던 리비아 인 한 명을 조건 없이 석방했다.(증거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중동의 민중혁명 파괴가 진짜 목표

서방 강대국들이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인도주의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그래서 위선이다. 위선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들의 관심사는 막대한 자원과 리비아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관계 회복 후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이 석유와 각종 개발 사업에 큰 규모로 투자해 왔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형님 외교 대상국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중해, 소말리아 앞 아덴만 등에 있던 미국, 중국 등의 함대가 리비아로 이동하고 있다. 나토도 긴급 회의를 열고 개입을 논의했다.

자국민 안전 이동 등 여러 핑계를 대고 있지만, 리비아 혁명이 내전 상태로 진행되면서 저항세력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이 정부가 강대국과 다국적기업들에 적대적일 경우, 즉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권력이 무장한 채 리비아를 장악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청해부대도 ‘해적을 팽개치고’ 리비아로 이동했다. 구축함으로 민간인을 태우겠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다. 전세기와 육로, 민간 선박으로 ‘탈출’ 의향 한국 교민은 거의 이동을 한 상태다.

청해부대는 리비아에서 항구 이용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소형 보트를 직접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것 자체가 사실상 해당국의 허가 없는 해당국 영토/영해 내 군사 작전을 펴겠다는 뜻이다. 국민 안전을 핑계로 한 일방적 군사 개입인 것이다.

영국도 특공부대를 진입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 모두 리비아 혁명 상황을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시설의 안전을 말하는데, 석유시설은 80퍼센트 넘게 혁명 세력이 장악했으므로 카디피의 광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미국 네오콘들이 군사 개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포함된 나토 내부에서 영국 정부를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독자적으로 리비아와 관계 개선을 하고 각종 이권을 확보해 온 국가들인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등은 군사 개입과 비행금지구역에 두드러지게 소극적이다. 카다피와 유착관계를 고려할 때 현상 유지가 더 낫기도 하려니와 군사개입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재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국보다 감소하는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주:1]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군사 개입의 수순이며, 그 자체가 전쟁의 시작이기도 한데, 한편에서 그것은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할 여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당장 리비아 근해로 이동 중인 미군 항공모함 등이 ‘합법’적으로 제한 없이 군사 작전을 할 수 있다. 중동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세계의 모든 세력은 이부터 반대해야 한다.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제국주의 전폭기들은 카다피의 대공 방어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이유로 리비아 전역에 선제 폭격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떤 이유든 만들어 내서 혁명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폭격할 수 있다.

이는 리비아 전역에서 혁명 열기를 식히고 폭격의 공포에 떨게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리비아를 제국주의 군대가 장악하면 그것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반미 수사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 카다피의 반혁명 몸부림에 도움을 줄 것이다 . 이것은 리비아 안팎에서 좌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벌써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제국주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고 경고하며 카다피를 공개 응원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진 못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다.

지금 미군과 나토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매여 있어 지상군 투입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실패 트라우마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군사적 대응 방식에 선뜻 합의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대중운동의 정치적 반대로 이를 좌절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동의 민중혁명을 지지하고, 리비아 아 민중의 잠재력을 믿는 것과 연관돼 있다. 나쁜 쪽의 가능성을 막으려면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좌파가 단결해 리비아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방 강대국들이 군사 개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카다피의 저항에 따른 여러가지 피해를 때론 과장해 가며 교묘히 개입 지지 여론을 부추기려 할 것이다. 반군 내에서 폭격 요청을 조작하거나 과장할 수도 있다[각주:2]

무엇이든 나토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 목표는 현존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동의 민중혁명 확산을 차단하고, 리비아와 중동(과 석유 자원)에 대한 강대국들의 통제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다피의 학살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결코 ‘인도주의 개입’을 명분으로 한 서방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리비아의 운명은 리비아 민중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중의 혁명인 것이다. (계속)


<레프트21>51호 온라인 기사, ‘리비아 혁명가는 말한다 ― 서방의 군사 개입은 우리 투쟁을 방해할 뿐이다’에서 발췌.

(생략) ...

혁명위원회를 본 사람들은 위원회의 효율성과 열정에 감탄했고, 위원회의 통제 아래 있는 곳에서는 ‘자유’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벵가지에서는 비록 식량이 부족하지만 빈민들은 혁명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 벵가지에서 식량과 기타 서비스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제공된다.

많은 공장과 핵심 시설 들은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다른 곳들은 혁명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고용주에 의해 운영된다.

혁명가들의 군사 전략은 서방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대 진압 명령을 받고 온 군인들을 설득해 혁명의 편에 서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무장이거나 보잘것없는 무기를 가진 시위대들이 징집 군인들을 설득하는 데 계속 성공했다.

... (생략)




  1.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며, 프랑스 등은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반대 이유가 리비아가 자국의 무기수입 고객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의 행동을 설명할 때, 경제적 이익은 중요하지만 전략적 이익의 맥락에서 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개입이 리비아와 주변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까 봐 두려운 점이 큰 듯하다. 이들 국가들은 그래서 이라크 전쟁의 개시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혁명 세력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므로 이런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기존 기득권층에서 反카다피로 돌아선 세력 가운데 이런 세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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