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혁명이 서방의 군사 개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간교하게도 서방 열강들은 군사 개입 목표를 카다피 제거와 민주화 시위대 보호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글을 써 왔는데, <레프트21>에 실린 독자편지에 여러 관련 기사들과 겹치지 않는 내용으로 답변을 해 봤습니다.

리비아 혁명에서 서방 개입이라는 난제

배상진

지난 호 기사에서 리비아 혁명에 대한 두 편향, 즉 독재 국가를 옹호하는 한심한 주장과 민주주의의 'ㅁ'도 가져오지 못할 서방의 개입을 지지하는 어리석은 주장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 주장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한 가지 맹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만약 서방이 실제로 군사적 개입을 통해 카다피 세력을 공격할 때다. 원칙적으로는 카다피와 서방세력에게 모두 반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시기에 이러한 충돌이 벌어질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후 북한이나 쿠바 등에서 벌어질 혁명의 중요한 전략, 전술 문제가 될 수 있다.

리비아 민중들은 제국주의 세력과 제휴해 카다피를 우선 축출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하는가? 아니면 카다피 세력과 우선 협상하면서 서방 세력부터 몰아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두 세력을 동시에 축출하는 전략을 써야 하는가? 셋째라고 한다면 원칙상 옳을지는 모르지만 역량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효과적인 전략인지에도 다소 의문이다.

어떤 전략을 쓰고 어떤 세력과 일시적으로 제휴를 하든, 서방과 카다피 모두 궁극적으로는 리비아 민중의 적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로와는 별개로 리비아 민중의 권력 장악을 위한 시도에서 이 문제를 건너뛰고 생각할 수는 없을 듯하다.

<레프트21> 52호 | 독자편지 online 입력 2011-03-17



사실, 이 문제를 놓고 <레프트21>이 여러 기사를 싣고 있으니 먼저 이 기사들을 참고하길 바라며 몇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중동의 민중 반란 기사 모음: 여기누르세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군사개입을 결정하자마자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곧바로 전투기 출격과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다. 정확히 8년 전, 미국과 그 동맹들이 이라크 침략을 개시했던 날이다.

이제 리비아 주요 도시는 서방 전투기와 함대의 폭격을 받는 처지가 됐다.
비행금지구역이 평화 조처가 아니라 리비아 전역을 향한 군사 작전이라는 비판자들의 주장이 옳았다는 게 드러났다.

이미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다. 전례를 볼 때 민간인 사망은 필연적이다. 1999년 세르비아 공격 때 나토(NATO)가 자랑한 ‘정밀폭격’은 방송국, 병원, 발전소 등을 부숴 버렸다.


카다피는 민중 혁명이 서방 제국주의 사주를 받은 것이고, 자신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거짓 선전을 정당화할 기회를 얻었다. 서방의 폭격으로 카다피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전쟁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공중 폭격은 지상군 투입으로 이어질 것이다. 1999년 나토의 코소보전쟁(세르비아 공격) 때도 78일간 무차별 폭격을 했지만 결국 지상군이 투입돼서야 코소보를 점령하고 협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상군 투입은 더 큰 인도적 재앙을 낳을 것이다.

이것은 혁명세력의 명분과 발언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당분간 혁명 세력은 주변화될 것이다. 이것이 민중 혁명에 도움이 될까.

서방 열강은 중동 혁명을 차단하고, 석유와 패권을 지키려는 전쟁을 시작했다. 저들은 동결된 카다피의 재산을 혁명세력에 제공하는 등 혁명세력을 직접 강화시키는 방안은 수행하지 않았다. 저들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중동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한다. 민중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배상진 씨는 서방의 개입을 반대하는 주장이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옳다’고 지적하면서도 카다피와 서방 군대에 동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 주장’의 “맹점”이라고 주장한다. 역량이 분산돼 혁명에 불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리비아 혁명 세력이 초기보다 위축된 상황을 보고 하는 주장인 듯하다. 이해할 만한 그 사정에도 이 주장은 좀 혼란스럽다. 원칙적으로 옳은 주장이 그 주장이 반대한 실제적인 상황이 오면 쓸모없어진다는 말이니까.


나는 배상진 씨가 먼저 자신의 원칙을 따라 “제국주의 군대가 카다피를 물리치는 것을 ‘자기해방’을 뜻하는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 보길 바란다.

서방 군대가 카다피를 제거하는 것은 결코 혁명이 아니다. 그래서 서방 개입에 침묵하거나 용인하는 것이야말로 ‘일관된 혁명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다.

서방 지배자들은 리비아 해방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이 사우디아라비아·UAE 군대가 미군 제5함대 기지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 진압을 위해 바레인에 진격한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들은 동결한 카다피의 재산을 혁명 세력에게 제공하거나 심지어 무기를 제공하는 등 혁명세력을 직접 강화하는 정책은 한사코 거부했다.

서방의 군사 개입과 절친 동맹인 사우디 등의 바레인 진격 시점이 유사한 것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와 아랍의 그 동맹자들이 반혁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게다가 리비아는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지 60년밖에 되지 않았다. 군사 개입을 주도할 미국은 1986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해 민간인 수백 명을 죽였다. 서방 강대국들은 20여 년 동안 경제 제재로 리비아에 가난을 강요했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우리가 지금 보다시피, 단지 카디피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리비아 민중의 머리 위에서 서방의 폭격이 벌어지는 것을 뜻한다.

혁명 역량에 관해 말하자면, 민중 혁명의 힘은 단순히 군사력의 크기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제가 아무리 잔인해도 그 옹호자들은 결국 피억압 민중 안에서 반혁명 군대를 모집하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혁명의 힘은 우리 편을 확고하게 단결시키고 구 체제에 묶여 있는 민중을 혁명의 편으로 끌어당겨, 저들을 약화시키고 우리 편을 강화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는 리비아의 진정한 혁명가들이 혁명의 사회적(계급적) 내용을 더 심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이 더 많은 정치ㆍ사회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중동의 민중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대혁명에서도 러시아혁명에서도 구체제를 지지하는 제국주의의 군대는 혁명의 대의로 단결한 민중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이것은 혁명세력의 강령과 실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체제가 아니라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 진정한 이익과 해방을 얻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베트남과 2006년 레바논에서도 압도적인 무장력을 갖춘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대는 각각 베트남 인민 게릴라와 레바논 헤즈볼라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리비아 혁명세력은 군사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서방 강대국의 방해와 구체제 이탈 인사들의 존재 때문에 혁명을 더 심화시키거나 서방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록 구체제 이탈 인사들의 존재는 혁명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폭격이 시작된 지금 리비아 혁명가들이 서방 개입에 무기력하게 대응한다면, 독재자도 싫어하지만 식민 지배 경험과 강대국들의 경제 봉쇄 때문에 제국주의도 혐오하는 민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 당기거나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리비아에서 온갖 “난제”를 해결할 혁명 전략은 서방의 군사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혁명의 사회적 내용을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공개 포럼 안내]
○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 ― 누구에게 이익인가? _24일(목) 7:30 대학로 한성대 에듀센터 807호

○ 서방 군사 개입은 왜 중동 혁명의 걸림돌인가? _24일(목) 7:30 강남역 8번출구 모임전문공간 모토 S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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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최병천 비판을 보충하려 한다. 전형적인 인도주의 개입 찬성 논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천 씨[각주:1]가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며 밝힌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다.

2.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

3.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지금 리비아에서 대결 구도는 ‘민중 vs 독재자’다. 리비아 혁명에 관한 태도를 결정하려면, 리비아의 혁명적 민중을 지지할 것이냐, 카다피 독재 체제를 지지할 것이냐 가운데에서 선택하면 된다.

이것이 ‘보편적 인권 vs 주권(반제국주의)’으로 바뀌는 것은 실제로는 대결 구도를 ‘민주적 제국주의 vs 카다피 체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생기는 의문은 이것이 왜 ‘보편적 인권 vs 독재’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vs 주권’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이란 사실상 국경 안에서 무력을 합법으로 독점하는 권리를 뜻하는데, 그 점에서 최병천의 구도는 오히려 카다피의 학살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해 주는 것과 같을 수 있다.[각주:2]

그러나 리비아 혁명 민중의 편에 서면 카다피의 주권 논리는 가증스런 것이다. 어떤 합법 절차도 없이 무력을 독점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에게 ‘주권’이 있다고 인정할 민중은 없다.

결국 최병천은 이 혁명과 군사 개입 논쟁을 계급 분단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선의 문제, 즉 강대국 정부와 후진국 독재정부의 문제로 보는 셈이다.

그래서 ‘보편적 인권’을 대변할 행위 주체는 리비아 민중이 아니라 ‘민주적’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다. 

리비아 민중은 독자적 행위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으로 승리할 가망이 있다면 군사 개입을 찬성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최병천에게 그들은 민주적 제국주의가 대신 해방시켜줘야 하는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다.[각주:3]

최병천은 ‘민주적’제국주의와 카다피 독재 정부 둘 가운데서 ‘민주적’ 제국주의를 지지하자고 말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보편적 인권 vs 반제국주의 주권’ 구도에는 좀더 이데올로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천은 그동안 북한 같은 아류 스탈린주의 독재정권들의 실패에서 온건 개혁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찾으려 해 왔다. 그에게 리비아나 북한은 유엔 등을 통해 절차만 거치면 인권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처리’해도 되는 국가다.

이 정권들이 위선적이게도 급진적이거나 반제국주의 수사들을 즐겨 써왔기 때문에 이 나라들의 독재와 가난은 오히려 급진적 반제국주의 정치의 신용도를 추락시킬 좋은 소재였다.그럭저럭 남는 장사였던 것이[각주:4].

그러나 세계경제에 깊숙하게 엮여 있는 한국경제에서 세계자본주의[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전략이 아니고선 불가역적인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

초기의 환호가 잦아든 지금, 리비아 혁명은 목적의식적인 연속혁명을 추구해야만 카다피의 반동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 점에서 이런 개혁주의 사고는 처음부터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설정한 문제틀에서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국, 민중혁명도 신뢰하지 않고 제3세계 독재정부가 신뢰하지 않는 진보가 리비아 같은 사태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것은 서방의 가치를 미화하며 민주적 제국주의의 구실에 기대는 것 뿐이다.

사실은 바로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서방의 많은 자유주의 좌파들이 1990년대 이후(달리 말하면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의 ‘인도주의 개입’ 논리에 휩쓸려 갔다

이와 관련해 토니 블레어는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공격을 정당화하면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경찰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제3의 길’식 세계화 담론을 주장한바 있다. 

1990년대 이후 국제 구호 단체들 안에서도 균열이 일어나 중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향이 많이 일어났는데, 옥스팜의 각국 지부들이나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가 그렇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치단체가 독일 녹색당인데,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한 이 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지지한 것은 참으로 몹쓸 장면이었다.

한때 혁명가였던 이 당의 리저 요슈카 피셔는 한때 슈뢰정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기도 했고, 녹색당 자체도 사민당의 단골 연정파트너 정당이 됐으나 좌파적 신용은 상당히 잃어 버렸다.

서방 군사 개입에 찬성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이렇듯 분명하다.

문제는 최근 잠시 소강 상태인 듯하던 리비아 국내 상황이 바뀌어 카다피가 우세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같다.

첫째, 서방 강대국들이 결코 인도적이나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관련 글 보기 ☞ 제국주의와 인도주의)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인도주의 개입의 이름으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해 왔다. 바레인을 침공한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것은 미국이다.

서방 강대국 정부들은 또 2000년대이후 카다피 정부와 유착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리비아 간첩 사건도 리비아 정부에 좀더 좋은 [로비] 선(線)을 대려는 시도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쓴 다른 글을 보시오. ☞ 관련 기사 / 관련 포스트)

둘째, 서방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가증스런 ‘학살 주권’이 아니라 리비아 혁명의 ‘주권’과 충돌할 것이라는 점이다. 혁명 세력이 장악했다는 석유 관련 시설 80퍼센트를 서방 군대는 가만히 둘 것인가.

서방 강대국들 입장에선 국유화된 석유 통제권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혁명 정부에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벌써 EU 지배자들은 반군측에 카다피와 맺은 자신들의 석유개발권을 그대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혁명을 이끄는 세력은 과도정부와 전국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과도정부에는 구체제의 법무장관 등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전국위원회는 이 과도정부와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교착 상태 때문에 비행금지구역을 찬성하는 부류가 있을 만통일성이 부족하다. 

셋째, 리비아에서는 이집트나 튀니지와 달리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적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과도 정부와 혁명위원회의 내부 분화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고, 반카다피 대중을 혁명으로 동원하는 문제에서 사회적 내용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가 오일머니로 주택 제공 등 복지 혜택을 약속한 바가 있는데, 혁명위원회의 전국위원회는 이를 뛰어넘는 변혁 강령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해 리비아 혁명이 직면한 어려움은 서방의 지원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혁명 과정에서 폭력의 힘은 절대적으로 정치적 설득력(지지세력의 결집과 동원 능력)에 달려 있다.

군부가 감히 혁명에 총부리를 못 겨누고 후퇴한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 점은 증명됐다. 2006년 레바논 헤즈볼라가 최정예 이스라엘 군대를 이긴 것도 이런 사례다. 지금까지 혁명 세력이 승승장구한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점에서 카다피가 일방적으로 혁명세력을  ‘학살’하는 듯한 일부 보도는 과장에 가깝고, 가끔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어려움이 있다면 앞서 말한 혁명 주도 세력의 내부 약점에서 비롯한 것과 더불어 혁명의 선제공격에 대항한 구체제의 반동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군대가 바레인 민주화 저항세력을 진압하려고 출동한 것을 보라.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나라가 어디인가. 서방 강대국 가운데 사우디 군대를 막을 군사 개입을 말하는 나라가 있나?

오히려 서방의 군사 개입이 거론된 이후 서방의 음모에 맞서 아랍의 주권을 지킨다는 카다피의 거짓말이 먹힐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과도정부나 전국위원회가 서방 개입에 찬성하면 혁명 진영은 크게 분열할 수 있다. 실제로 서방의 군사개입 얘기가 나온 뒤로 혁명이 주춤하고 카다피의 반혁명 공세가 거세졌다. 

그렇다고 혁명이 후퇴하거나 끝장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카다피는 리비아의 더 적은 지역을 톶제하고 있고, 공식 군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용병에 의존하고 있다. 벵가지가 쉽게 함락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혁명은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초기의 환호와 역습, 후퇴와 전진 등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각 정치세력의 실체와 실력이 드러나는 치열한 대결의 장이다. 그리고 현재 중동 혁명은 단순히 독재자가 아니라 서방의 후원을 받는 독재자에 맞선 혁명이다. 

따라서 열쇠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리비아 혁명의 운명은 이집트가 조금씩 그러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혁명으로, 다른 중동혁명과 연대하는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달린 듯하다.

카다피의 이권이 다른 기득권 집단의 이권으로 넘어가는 식의 과도 정부 대안이 아니라 노동자권력 대안만이 카다피가 해결 못한 빈곤과 자유, 진정한 민중주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성마른 이들에게 이런 결론이 매우 무기력하거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실패가 명백한 길로 갈 수는 없다. 서방 군사 개입이 아니라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혁명을 돕는 길이다.



  1.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본문으로]
  2. 그래서 그는 주권도 중요하긴 하므로 유엔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주권 국가가 사라져도 국가가 통치하던 그 사회는 남는다. 주권을 가진 억압적 국가기구는 외국군대가 파괴할 수 있어도 그 사회에 사는 민중은 제국주의 군대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최병천에게 이 문제는 고려사항이 없다. 다른 좀더 덜 현학적인 표현과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4. 그래서 온건 진보파들은 북한 정권과 일체감을 느끼는 민족해방파 식의 반제국주의 노선 뿐 아니라 다함께 같은 반자본주의적 반제국주의 노선도 혐오하는 것이다. 후자는 현재 국내외에서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질서)에 혁명적으로 도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 질서에서 안주하려는 온건 진보파에겐 매우 거북스런 존재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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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강대국들이 리비아에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카다피의 학살을 막고 리비아 민중을 구하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혁명을 돕고자 하고, 독재자 탓에 죽어가는 희생을 막으려는 심정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들이킬 순 없다.

서방 강대국들은 카다피보다 더한 살인마들이라는 점, 카다피와 서방 강대국들 정부 서로 진지하게 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 잘못된 외부 개입이 혁명을 왜곡하고 방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군사개입 찬성론은 목적과 반대되는 수단에 찬성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인 최병천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위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가 왜 서방 강대국의 군대여야 하는 것이냐인데,그는 우선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한다.

또 그는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라고 말하는데, 리비아 민중의 자기해방 능력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서방 군대의 개입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결국 최 위원의 주장은 민중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룰 가망이 없으니 강대국 군대가 강제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리비아 혁명의 수도 구실을 하는 벵가지의 한 건물에서 서방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혁명 투사들.


그런데 과연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존재인가.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은 패권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먹여 왔다. 이른바 ‘인도주의 개입’론은 소말리아, 코소보와 세르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해 줬다.

그러나 현실과 명분은 달랐다. 제국주의 군대는 ‘인도주의 개입’ 때마다 자신이 보호하겠다고 한 바로 그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도적 재앙에 빠뜨렸다.

소말리아에서 민간인 수천 명을 죽였고, 세르비아에선 민간인 지구가 폭격 대상이 됐고, 폭격은 민족간 증오를 더 부추겨 세르비아에선 알바니아계가 쫓겨났고, 코소보에선 세르비아계가 수십만 명 쫓겨났다.

세르비아 정부와 의심스런 코소보 해방군을 제외하면 그 두 민족의 평범한 대중은 그 전까지 이웃으로 살아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수백만 명이 학살당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듯이, 제국주의 점령군은 이곳들에서 카다피보다 더 끔찍한 짓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제거하겠다고 했던 후세인, 탈레반, 알카에다 등은 모두 미국이 키운 악당들이었다.

지금 카다피가 사용하는 무기들도 죄다 서방이 판매한 것이다.

최 위원의 주장처럼 리비아에서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가 대립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카다피는 후세인의 몰락을 보며 미국에 항복했고, 그 뒤에는 서방 정부들과 유착해 왔다.

이런 상호 유착 때문에 혁명 초기 서방 국가들은 카다피 비판을 애써 피했다. 지금 그들이 군사 개입을 망설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잡혀 개입할 지상군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개입이 또 실패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서방이 군사 개입을 한다면 그 목표는 강대국들의 패권과 석유 자원 확보이지 리비아의 민주화가 아니다.

이 때문에 리비아 혁명 세력의 ‘전국위원회’는 일단 서방의 지상군 개입에는 반대하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문제에서는 혼란스런 입장을 내면서도, ‘외국 군대’의 주둔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강대국들의 경제제재로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방이 군사 개입을 시작하면 ‘저항세력은 서방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라는 카다피의 악선동에 오히려 힘이 실릴 것이고, 혁명 세력은 분열할 것이다. 심지어 리비아 혁명에 우호적인 국제 좌파 진영도 분열할 것이다. 

일단 발을 들여 놓은 서방 군대는 ‘안정’과 ‘평화’라는 이름 아래 리비아의 모든 국내 세력과 석유 자원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친미독재 국가들을 위협하는 민중 반란 물결을 분쇄하려 할 것이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사실상 카다피의 대공능력을 무력화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므로 선제 폭격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것은 리비아의 혁명 열기를 식히고, 확산하던 중동 혁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폭격과 서방 군대 개입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끔찍한 재앙과 비극을 낳을 것이다.

제국주의 군대는 결코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혁명은 제국주의 폭탄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자기 해방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리비아 민중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혁명을 지지하는 서방 대중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카다피는 고립될 수 있고, 그렇게 돼야 그의 반혁명적 저항은 위력을 잃을 것이다.

서방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치어리더가 돼선 안 된다.

※ 이 글은 축약돼 <레프트21> 52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보기 ☞ 민주와 인권을 위한 서방 개입이 필요하다?

※ 이 글의 보론은 여기로  ☞ 보편적 인권 vs 국가 주권 구도는 허구다 를 읽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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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부 자주파 인사들은 카다피를 반제국주의 지도자로 묘사해 왔다. 반대로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카다피의 독재가 서방의 인권ㆍ민주주의 가치와 대립해 왔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둘 다 진실이 아니다[각주:1]

카다피가 1969년 쿠데타로 미군과 영국군을 몰아내고 석유를 국유화해 일부 복지를 제공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의 정치체제가 민주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복지 제공이 지속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1980년대 미국 대통령 레이건은 카다피를 “미친개”로 불렀다. 그는 1986년에 카다피를 죽이려고 트리폴리를 폭격했다. 60톤의 폭탄이 쏟아졌고 카다피의 수양딸 등 수백 명이 죽었다.

그가 한때 팔레스타인 해방 투사들의 피신처를 제공하고, 시리아, 이집트 등과 아랍연방을 구성하려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짐바브웨의 무가베 같은 제3세계 독재 정부들도 후원했다.

그는 이처럼 한때 제국주의와 갈등했지만, 그것을 독재 정당화에 이용했다. 서방과 갈등이 (베네수엘라 차베스처럼) 진정한 사회 진보를 두고 벌인 갈등도 아니었다. 

그런데 2003년부터는 태도를 바꿔 제국주의에 빌붙어 왔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고,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이 초기에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후세인을 사형시키는 것을 본 뒤, 완전히 항복했다.

미국은 실체도 없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는데, 2003년 12월 카다피는 결국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을 했다.


미국은 그 대가로 2004년 리비아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 제재를 해제했다. 2006년에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그뒤, 서방 지배자들은 카다피를 “지역의 실력자”로 부르며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리비아의 석유 자원 수입, 유전 개발과 각종 건설 투자, 무기 수출로 돈벌이에 나섰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동 지역의 동맹이 절실했던 미국에게 ‘반미 투사’로 알려진 카다피의 지지는 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데 매우 소중했다. 승전 가능성이 적어질수록 미국 지배자들에게 중동에서 동맹의 존재가 중요해 졌다.

유럽 열강들도 원유 매장량이 세계 8위이고 지중해와 접한 리비아와 관계 개선 상황을 한껏 이용했다. 카다피의 ‘안정적인’ 통치와 석유 독점 때문에 서방 강대국들은 카다피와 유착을 통해 안정적으로 전략적·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


서방 열강의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중동 혁명의 와중에도 석유 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출처: http://atopy101.com, stitch님의 작품.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리비아가 서방과 돈독한 파트너가 되면서 전 세계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미 국무부 대변인 숀 맥코믹도 “리비아는 … 미국과는 물론 국제사회와 건설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앞으로 발전 여지도 많다”고 말했다.

2004년 영국 블레어,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2008년 미 국무장관 라이스가 카다피와 회담하려고 리비아를 방문했다.

선두주자는 카다파의 서방 질서 편입 과정을 중재한 영국 블레어였다.
블레어는 회담과 동시에 영국계 석유기업 셸과 BP의 유전(석유와 천연가스) 개발권을 확보하고 미사일과 방공시스템, 시위 진압 장비 등도 판매했다.


블레어는 리비아 장교들을 영국사관학교 샌드허스트에서 교육시키고 군사자문단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에서 부패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2008년에는 식민지배 피해 보상 명목으로 25년간 50억 달러를 개발 원조하겠다는 협정을 카다피와 맺었다.

이탈리아는 지금 EU 회원국 가운데 리비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팔고 있고, 전체 석유 수입의 4분1 가까이를 리비아에 의존한다.


2007년 정상회담 후 프랑스도 원자로와 비행기, 군수물자 등을 1백억 유로어치 판매했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8년 리비아 방문 때 카다피에게서 20만 달러가 넘는 선물을 받았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양국 관계 개선 전망에 매우 흥분해 있다”고 카다피에게 전했다.

이때 카다피는 15억 달러를 미국 정부에 배상했고, 미국 석유기업들은 이 돈을 대줬다.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 다음으로 리비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판 나라다.

서방 지도자들은 2009년에는 카다피를 G8 회의에 초청했고, 유엔총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8회의에 나란히 초청된 카다피와 이명박. 이명박은 독재자와 잘 통했다. 이 회의 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다피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뭐라고 말을 막 하더라. … 내 말에 굉장히 감동받은 것 같은데 어느 대목에서 감동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 출처: 청와대 웹사이트



카다피도 화답했다.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정부에게 유전 개발 등 거액의 사업권을 줬고, 자유시장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다피는 2008년 ‘혁명’(사실은 쿠데타) 39주년 연설에서 “내년 초부터 자유시장 경제 조처들을 도입한다”며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면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서방과 카다피 모두 위선자인 것이다.

서방의 강대국들은 카다피가 저항 세력을 학살하도록 무기와 돈을 제공한 당사자다. 서방 지배자들이 민주주의 운운하거나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을 말할 때 그것은 다른 속셈을 감추려는 것일 뿐이다.

카다피가 ‘주권’을 말하는 것도 위선이다. 그가 해외에서 용병을 불러들이는 데 쓰는 돈은 막대한 석유개발 이권을 독점해 다국적 기업들에게 나눠 준 대가로 받은 돈이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중동을 순방하며 무기 세일즈를 한 직후에 ‘카다피의 학살을 막아야 한다’며 위선을 떨었다.

그가 “영국이 아랍 정상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하고 얘기하는 동안 리비아 학살 동영상에는 영국제 장갑차가 진압에 사용되는 장면이 나왔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을 지낸 ‘네오콘’ 리처드 펄은 세계적 컨설팅 기업인 모니터그룹 소속으로 연간 3백만 달러를 받는 카다피 자문팀에 참여해 왔다.

오바마 정부도 불과 몇 달 전에 카다피와 무기 수출 계약을 추진한 바 있다. 카다피는 ‘테러와의 전쟁’을 돕겠다며 미국의 전투기, 헬기, 탱크를 수입해 왔다.

결국, 카다피는 반제국주의이기는커녕 제국주의에 빌붙어 온 독재자일 뿐이고, 서방은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도와준 공범들일 뿐이다.

서방 강대국 지배자들이 카다피를 단죄하려 한다면, 그것은 카다피가 더는 안정적으로 리비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때일 것이다. 패권과 석유 자원을 위협하는 민중혁명을 차단하려고 결심했을 때인 것이다.

이명박과 카다피의 유착 관계

한국은 카다피의 학살 만행을 공식적으로 비난하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외교부가 지난주 유엔의 인도적 지원에 6억여 원을 내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응의 전부다.

한국 기업들이 리비아가 경제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설기업들이 현재 리비아에서 따낸 공사 수주액은 40조 원이 넘는다. 

2009년에 이명박은 G8 회의에서 만난 카다피가 “[아프리카 개발에 도움을 주겠다는] 내 말에 굉장히 감동을 받은 것 같다”며 흡족해 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지난해 7월 리비아에서 과도한 첩보 행위가 발각돼 국정원 요원들이 추방됐을 때, 이명박 정부는 ‘형님’ 이상득을 카다피에게 특사로 보냈다. 

당시 이상득은 “용서해 달라”며 “양국 정상이 서로 방문하고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키자”고 카다피를 달랬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 52호에 실렸습니다. ☞카다피와 서방의 공범 관계이명박과 카다피의 유착



  1. 의도는 다르지만, 두 견해 모두 카다피 식의 제3세계 독재를 반제국주의 국가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최병천은 리비아나 북한식의 ‘반제론’은 틀렸다며 서방의 제국주의적 개입 지지론을 정당화한다. 이에 대해서는 http://left21.com/article/9399를 보라. 이 기사를 보완한 포소트도 곧 올릴 계획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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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는 ‘반미 전사’인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한때 반미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69년 쿠데타 후에 국가이름을 리비아사회주의공화국으로 내세웠고 이집트, 시리아와 아랍연방을 구성해 이스라엘과 맞서기도 했다.

이 아랍연방은 이집트의 사다트 정부(무바라크의 전임자)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와해되고 만다.

미국은 카디피를 제거하려고 1986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하기도 했다. 미사일은 민간인지구에 떨어져 수백 명을 죽였다.

비록 카다피가 미국과 맞섰고,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리비아에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권력은커녕 모든 민중이 함께 누리는 풍요와 민주주의도 없었다.

다만 그가 서방 강대국들의 질서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것만으로 그의 독재정부가 진보적으로 평가받을 순 없는 까닭이다.

사실 이런 반항은 냉전 시대 소련의 후원 아래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한계가 뚜렷했다.

냉전 해체 이후 고립된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벗어나려 카다피는 미국 중심의 질서에 순응하려 했다. 미국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고, 2003년 12월에 핵 개발 포기 선언을 했다.

그 대가로 2004년에 경제제재가 해제됐고, 2006년에는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고 외교관계를 완전 정상화했다. 2006년 당시 이라크침략전쟁 기획자의 하나였던 부시 행정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핵 개발 문제로 북한과 이란을 압박하면서, “2003년이 리비아에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올해가 이란과 북한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총리 블레어는 미국을 대신해 2003년 극비 협상을 진행했다. 제재 해제와 외교 정상화 후 영국회사 BP는 그뒤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권을 여럿 따냈고, 영국 정부는 막대한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했다. 카다피의 아들은 영국에 유학했고, ‘제3의 길’을 배워 갔다.

그뒤, 영국 사법부는 1988년 팬암기 폭파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영국에 구속돼 있던 리비아 인 한 명을 조건 없이 석방했다.(증거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중동의 민중혁명 파괴가 진짜 목표

서방 강대국들이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인도주의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그래서 위선이다. 위선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들의 관심사는 막대한 자원과 리비아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관계 회복 후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이 석유와 각종 개발 사업에 큰 규모로 투자해 왔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형님 외교 대상국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중해, 소말리아 앞 아덴만 등에 있던 미국, 중국 등의 함대가 리비아로 이동하고 있다. 나토도 긴급 회의를 열고 개입을 논의했다.

자국민 안전 이동 등 여러 핑계를 대고 있지만, 리비아 혁명이 내전 상태로 진행되면서 저항세력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이 정부가 강대국과 다국적기업들에 적대적일 경우, 즉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권력이 무장한 채 리비아를 장악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청해부대도 ‘해적을 팽개치고’ 리비아로 이동했다. 구축함으로 민간인을 태우겠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다. 전세기와 육로, 민간 선박으로 ‘탈출’ 의향 한국 교민은 거의 이동을 한 상태다.

청해부대는 리비아에서 항구 이용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소형 보트를 직접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것 자체가 사실상 해당국의 허가 없는 해당국 영토/영해 내 군사 작전을 펴겠다는 뜻이다. 국민 안전을 핑계로 한 일방적 군사 개입인 것이다.

영국도 특공부대를 진입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 모두 리비아 혁명 상황을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시설의 안전을 말하는데, 석유시설은 80퍼센트 넘게 혁명 세력이 장악했으므로 카디피의 광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미국 네오콘들이 군사 개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포함된 나토 내부에서 영국 정부를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독자적으로 리비아와 관계 개선을 하고 각종 이권을 확보해 온 국가들인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등은 군사 개입과 비행금지구역에 두드러지게 소극적이다. 카다피와 유착관계를 고려할 때 현상 유지가 더 낫기도 하려니와 군사개입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재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국보다 감소하는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주:1]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군사 개입의 수순이며, 그 자체가 전쟁의 시작이기도 한데, 한편에서 그것은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할 여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당장 리비아 근해로 이동 중인 미군 항공모함 등이 ‘합법’적으로 제한 없이 군사 작전을 할 수 있다. 중동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세계의 모든 세력은 이부터 반대해야 한다.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제국주의 전폭기들은 카다피의 대공 방어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이유로 리비아 전역에 선제 폭격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떤 이유든 만들어 내서 혁명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폭격할 수 있다.

이는 리비아 전역에서 혁명 열기를 식히고 폭격의 공포에 떨게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리비아를 제국주의 군대가 장악하면 그것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반미 수사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 카다피의 반혁명 몸부림에 도움을 줄 것이다 . 이것은 리비아 안팎에서 좌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벌써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제국주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고 경고하며 카다피를 공개 응원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진 못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다.

지금 미군과 나토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매여 있어 지상군 투입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실패 트라우마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군사적 대응 방식에 선뜻 합의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대중운동의 정치적 반대로 이를 좌절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동의 민중혁명을 지지하고, 리비아 아 민중의 잠재력을 믿는 것과 연관돼 있다. 나쁜 쪽의 가능성을 막으려면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좌파가 단결해 리비아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방 강대국들이 군사 개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카다피의 저항에 따른 여러가지 피해를 때론 과장해 가며 교묘히 개입 지지 여론을 부추기려 할 것이다. 반군 내에서 폭격 요청을 조작하거나 과장할 수도 있다[각주:2]

무엇이든 나토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 목표는 현존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동의 민중혁명 확산을 차단하고, 리비아와 중동(과 석유 자원)에 대한 강대국들의 통제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다피의 학살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결코 ‘인도주의 개입’을 명분으로 한 서방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리비아의 운명은 리비아 민중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중의 혁명인 것이다. (계속)


<레프트21>51호 온라인 기사, ‘리비아 혁명가는 말한다 ― 서방의 군사 개입은 우리 투쟁을 방해할 뿐이다’에서 발췌.

(생략) ...

혁명위원회를 본 사람들은 위원회의 효율성과 열정에 감탄했고, 위원회의 통제 아래 있는 곳에서는 ‘자유’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벵가지에서는 비록 식량이 부족하지만 빈민들은 혁명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 벵가지에서 식량과 기타 서비스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제공된다.

많은 공장과 핵심 시설 들은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다른 곳들은 혁명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고용주에 의해 운영된다.

혁명가들의 군사 전략은 서방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대 진압 명령을 받고 온 군인들을 설득해 혁명의 편에 서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무장이거나 보잘것없는 무기를 가진 시위대들이 징집 군인들을 설득하는 데 계속 성공했다.

... (생략)




  1.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며, 프랑스 등은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반대 이유가 리비아가 자국의 무기수입 고객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의 행동을 설명할 때, 경제적 이익은 중요하지만 전략적 이익의 맥락에서 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개입이 리비아와 주변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까 봐 두려운 점이 큰 듯하다. 이들 국가들은 그래서 이라크 전쟁의 개시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혁명 세력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므로 이런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기존 기득권층에서 反카다피로 돌아선 세력 가운데 이런 세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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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민중 혁명의 한 곳인 리비아 혁명이 내전 형태로 발전하면서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은 군사 개입을 논의하고 있다. 의도가 아니라 능력이란 문제 때문에 군사 개입 개시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군사개입 의도 자체는 명백히 민중 혁명을 차단하고 옥죄려는 시도다. 리비아의 운명은 리비아 민중이 이룩해야 한다. 그들은 어두운 과거를 반복할 뿐이다. 이런 강대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예전에 쓴 글을 다듬고, 새로 써서 보강해 올린다.


제국주의는 개별 자본들의 경제적 경쟁이 세계시장으로 번지면서 이 경쟁이 국가 간 군사적 경쟁으로 발전한 세계자본주의의 한 단계를 가리킨다. 레닌은 이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경쟁이 낳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 경향은 일국 안에서 독점자본의 등장과 국가와 자본의 융합 경향으로 드러나고, 국제 차원에서는 소수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이들을 등에 업은 초거대 다국적기업들)이 지배하는 서열 체계로 발전한다.

자본 간 협력과 경쟁이 일국의 틀을 넘어 국가들 사이의 관계로 발전하면 경제적 이해관계 뿐 아니라 전략적(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중요해지고, 군사적 경쟁이 주요한 경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러시아 혁명가 부하린은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 사이의 투쟁이 무엇보다도 군사력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이유는 군사력이야말로 서로 투쟁하는 ‘국민적’ 자본가 집단들의 최후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최후 수단이 모든 수단인 것은 아니다.냉전 초기 미국은 막대한 경제력으로 자신의 동맹 진영의 결속을 다졌다.

냉전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영원히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강대국들 사이의 군사‧경제적 경쟁이 양대 초강대국 간 경쟁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던 냉전 질서가 해체되면서 오히려 세계는 다극화된 강대국들의 경쟁이라는 현실로 변했다.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 최강대국이지만, 더는 냉전 질서를 주도하던 그런 경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냉전이 시작될 때 미국 경제는 세계경제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냉전이 끝날 때는 세계경제의 4분의 1로 하락해 있었고, 지금은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제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진앙지가 되면서 세계를 향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통제력은 한층 약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여전히 유일 강대국이지만, 상대적인 경제 비중의 하락 때문에 경쟁자들이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국 바로 아래 제국주의 국가들이 점차 자신의 독자적 이익을 추구해 간다는 뜻이기도 하며, 한국 같은 하위 파트너들이 미국 중심의 질서 아래에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지배자들의 제국 유지 전략의 기본은 이제 ‘월등한 군사력’을 이용해 제국주의 질서를 전 세계(특히 자신의 경쟁자들)에 과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인도주의 개입의 실체

다만, 상시적 적대국이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의 상시적 군사 드라이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해 줄 것들이 필요했다. 클린턴 정부는 이를 위해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발명해 냈고, 이 바탕 위에서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했다.

이는 군사적 패권주의를 서로 정당화해 준 냉전 적대국이 사라진 현실과 이에 따른 제국의 필요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후 미국과 서방 강대국 동맹은 지역의 독재정부 제거, 빈곤 구호와 난민 보호 등을 명분으로 세워 지역 ‘깡패국가(Rogue State)’를 상대로 군사력을 과시했다.

이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를 여전히 세계의 경찰로 보이게 하고, 진정한 군사 개입 목표를 가리는 효과를 냈다. 이것은 여러 나라에서 좌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각주:1].

인도주의 개입이란 명분을 정당화하는 과정은 친서방 엔지오 구호단체들이 가진 실용주의의 도움을 받았다. 소말리아와 코소보 등은 이 엔지오들이 ‘인도적 군사 개입’을 요구한 지역이기도 했다. 자선 구호 단체들이 (자의든 타의든) 제국주의의 침략 수단으로 이용된 이용된 분명한 사례다.

공교롭게도 최근 문제가 된 소말리아가 ‘인도주의적 개입’을 제국주의 침략(군사 개입)의 명분으로 내세운 첫째 사례였다. 그러나 이 개입은 두 가지 점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첫째, 인도주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유엔군은 구호 식량의 배분 과정을 내전 중인 군벌에게서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는데, 이것은 사실상 식량을 두고 다투는 전투부대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을 의미했을 뿐이다. 미군은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수천 명을 학살했다.

둘째, 군사적 위신도 망쳤다.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전투 과정에서 최정예 전투 헬기인 블랙호크가 격추되고, 미군 18명이 죽었으며, 소말리아 인들은 난데없이 찾아와 자신의 형제자매를 죽인 ‘외국 군대’에 대한 증오심에 이 시신들을 차량에 매여 시내를 행진했다. 이 장면은 CNN에 생중계돼 미군의 위신을 추락시켰다.

미국은 10년 동안 50만 명을 죽게 만든 이라크 경제 봉쇄와 1999년 나토를 동원해 세르비아를 공격하면서야 위신을 되찾았다.

인도주의 개입이란 명분으로 시작된 이라크 경제제재는 야만적 결과를 낳았다. 석유 수출 등으로 중동에서 가장 1세계에 근접했던 이라크 사회는 이 기간 동안 빈곤과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후진 사회로 바뀌었다. 후세인에게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이 두 사례도 마찬가지로 인도주의 개입을 내세웠는데, 특히, 이라크에서는 후세인의 독재, 쿠르드족 탄압, 쿠웨이트 침공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지역 강국으로 성장한 이라크를 약화시켜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고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였다.

1991년 이라크 북부 지역을 비행금지 구역으로 설정하고 방공망을 파괴했다. 이듬해에는 남부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했다. 한마디로 군사적으로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가한 것이다.

후세인이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아 이란을 침략한 동맹이었다는 사실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후세인의 쿠르드족 학살을 미군이 방조한 것,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 정부가 더 혹독하게 쿠르드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실의 자리에서 배격됐다.

세르비아 개입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나오는 천연가스 송유관의 안전 확보라는 경제적 이익 뿐아니라, 나토의 동진 정책이라는 전략적 목표가 있었다. 옛 소련의 영향권 또는 영토였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미국과 나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지정학적 목표 말이다. 

1999년 세르비아 전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인데, 코소보 인종 청소[각주:2] 때문에 세르비아 영토를 폭격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민간 지역이 폭격 대상이 됐다.

이라크 경제 제재는 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미국은 쿠르드족 보호를 이유로 1991년 4월 이라크 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을 시작으로 석유수출금지 등 경제제재를 경제 봉쇄로 확대해 나갔다[각주:3].

이 때문에 이라크는 경제가 곤두박질쳐 생필품과 의약품 등이 부족해졌는데, 나중에는 의약품 등마저도 수입금지품목에 들어가 2003년 전쟁 전까지 1백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경제제재가 낳은 빈곤과 의약품 부족으로 죽었다. 이중 10세 이하 아동이 50만 명이 넘는다. 외부 개입으로 사회가 파탄나자 내부 반대파는 오히려 더 취약해 졌다.

모든 곳에서 그랬지만, 이라크에서 벌어진 ‘인도주의적 개입’은 인도적 재앙을 낳은 것이다.

뒤이어 등장한 부시 정부와 네오콘은 이런 위선적인 이데올로기에 바탕해 더 공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석유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세계 석유 생산의 중심지인 중동의 '불량국가'들이 군사적 패권 과시의 핵심 목표가 됐다.

2001년 9.11 사태는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격'이었고 당시 부시 행정부는 거침없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군사적 침략의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결과는 지금 보듯이 악몽이었다. 이라크를 점령해 신자유주의 국가를 세우려던 꿈은 물거품이 됐고, 고립시키려던 이란은 오히려 영향력을 확대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베트남 전쟁보다 더 긴 전쟁이 되고 있다.

지금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은 리비아에서 새로운 표적을 찾아냈다. 카다피는 학살자이고 독재자지만, 제국주의 군대가 리비아의 평범한 민중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석유 수출 세계 8위국인 리비아의 자원 통제권을 자신들이 질서를 따르지 않는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 뿐이다. 리비아 군사 개입은 인접국인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을 위협할 것이고, 중동의 민중 혁명에 강력한 브레이크 구실을 목표로 할 것이다. (계속)



  1. 1998년 인도네시아 혁명 후 동티모르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한국도 다국적군 파병 논란에 휩싸였는데, 엔지오 일부와 많은 진보적 개인들이 파병을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이 파병은 동티모르 독립을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독립 동티모르에 친서방 정부가 안정적으로 들어서도록 돕는 구실을 하는 파병이었다. [본문으로]
  2. 여기서 인종청소는 Ethnic Cleansing인데, 이는 나치의 대량 학살 Massacre와는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대량 ‘소개’, 즉 쫓아낸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3. 그러나 막상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을 지지했던 쿠르드족이 후세인에게 보복 탄압을 당할 때,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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