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선거 논쟁

지난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의 약점


<노동자 연대> 138호 | 발행 2014-11-24 | 입력 2014-11-22



파업은 주머니 칼이 아니다


전재환 선본은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이제 산별연맹과 기업별 임단협 투쟁을 뛰어넘[고] … 시기 집중이라는 방식을 탈피하여 민주노총 중심성을 확보 … 전략적 투쟁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사실 민주노총 집행부가 개별 사안에 총파업을 남발하지 말고, 정치투쟁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5대 이수호 집행부가 2004년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내놓은 바 있다.(“준비된 총파업”)


당시 중앙파 집행부는 실질적인 투쟁 조직은 하지 않으면서 파업 계획만 남발한다는 투쟁적 조합원들의 불만을 샀다. 이수호ㆍ이석행 후보 조는 이를 차용해 선거에 이용한 것이다.


‘파업을 남발하지 말자’는 주장은 그동안 파업을 회피한 소심함과 개혁주의를 은폐한 채, 투쟁을 자제하고 교섭(개별, 산별, 노사정)을 더 중시하자는 말이다.


이런 입장은 조직 노동계급 전체를 동원하는 정치투쟁에도 전혀 이롭지 않았다.


이수호 집행부는 ‘2006년 준비된 총파업’을 말해 놓고는 2004~05년에는 노무현 정부와의 사회적 합의에 매달렸다. 결국 정부의 비정규직 악법, 노사관계로드맵 추진을 막지도 못하면서 투쟁 동력만 갉아먹다가 2005년 강승규 부위원장의 수뢰 사건 폭로로 중도 사퇴했다.


지도부가 파업 건설에 소홀했는데도 2004년 11월 비정규 악법 반대 하루 파업에 15만 명(단체행동 포함하면 21만 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1년 뒤 연말 두 차례 총파업에는 6만, 2만 명이 참가했다. 2006년 조준호 집행부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3월 하루 총파업에 19만 명이 참가했는데, 정작 법안이 통과된 11월 말과 12월에는 10만 명도 안 됐다.


조준호 집행부와 산별대표자회의는 노사관계로드맵의 연말 통과가 불확실하다며 12월 15일 파업을 취소해 버렸다. 엿새 뒤에 악법은 여유 있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폴란드계 독일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조합 상층 관료들의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대중파업을 위급할 때를 대비해 호주머니 속에 접어 넣어 두었다가 마음 먹으면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주머니칼처럼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당면한 투쟁을 외면하는 지도부를 보며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지도부의 투쟁 호소에 사기가 떨어지거나 신뢰를 잃은 노동자들이 호응하기는 쉽지 않다. 2008년 촛불운동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정치적 운동에서 이런 지도자들이 정작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정한 책임의 회피



기업과 산별 노조는 임단협을 하고, 민주노총은 정치투쟁을 하자는 것은 일종의 역할 분담론이다. 개혁주의에 특징적인 정치 운동과 경제 운동의 분업이 노동운동 내에서도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부분의 투쟁이라 해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이 걸린 투쟁이 될 수 있다. 개별 투쟁들의 성패가 불가피하게 전체 계급 세력균형에 영향을 주곤 한다.


그러나 역할 분담론은 민주노총이 매우 중요한 부분의 투쟁에 대한 연대 건설을 회피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했다.


비정규직 악법 시행 시기와 맞물린 2007년 이랜드ㆍ뉴코아 점거 파업은 비정규직 악법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비정규직 의제를 한국 사회의 중심에 올려 놓았다. 파업은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수호―조준호 집행부를 계승한 이석행 집행부는 외곽 지원만 조직했을 뿐, 실질적인 연대 조직은 서비스연맹에 맡겨 놓았다. 투쟁은 결국 1년을 넘게 끄는 장기 투쟁으로 가야 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와 이에 맞서는 점거 파업도 경제 위기 고통전가 문제에 대한 불만의 초점을 이뤘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간이나 공장을 점거하고 살인 진압에 맞선 것은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기업주들이 똘똘 뭉쳐 공격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도 노동계급 전체의 방어를 조직해야 했다. 그러나 통합 집행부였던 임성규 집행부는 이런 책임을 회피했다. 오히려 양보교섭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연대 파업 책임은 금속노조로 넘겨졌고, 금속노조 지도부는 질질 끌며 경찰에 진압되면 연대 파업을 벌이겠다는 등 투쟁을 회피했고, 결국 파업은 패배했다.


박근혜 정부의 각개격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민영화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고 벌인 철도 민영화에 맞선 파업에 민주노총이 제대로 맞서지 못해 투쟁은 어려움을 더 겪었다.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 운동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능력이 적용되지 못한 것도 덧붙여야겠다. 


왜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직접적인,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만 파업할 수 있다고 보는가? 5월부터 교황 방문 때까지 적어도 두 차례 항의성 하루 또는 이틀 총파업의 기회가 있었다. 또는 임단투 시기 조율 방법으로 정권의 핵심 기반인 대기업의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제 투쟁적 조합원들은 이런 무사안일한 지도자들을 뽑지 말아야 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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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선거 논쟁

“준비된 투쟁”론은 당면 투쟁을 회피하는 핑계일 뿐


<노동자 연대> 138호 | 발행 2014-11-24 | 입력 2014-11-22



민주노총 임원선거 기호4번 전재환ㆍ윤택근ㆍ나순자 팀(이하 전재환 선본)은 핵심 기치로 “준비된 통합 지도부”를 내세운다.


전재환 선본은 십수 년간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 층의 주류를 이뤄왔던 세력들(이른바 중앙파ㆍ자주파ㆍ국민파)이 연합한 후보 조다. 현 집행부 승계 후보 조이기도 하다. 후보들 자신도 각각 금속, 보건, 지역본부에서 위원장 자리를 거쳤다. 민주노총의 핵심 의결ㆍ집행 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의 구성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상층 활동 경험이 많은 것을 강점으로 삼고 있다. 폭넓은 대표성을 갖고 있고 상층 경험이 많으니 민주노총의 “통합과 단결”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투쟁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결정적 약점이다. 이들은 민주노총 상층의 보수적 투쟁 회피와 관료적 타성이 낳은 폐해에 공동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전재환 선본의 주장에서 이에 대한 반성적 평가는 거의 없다.


전재환 후보는 2005~06년 비정규직 악법 통과 국면에서 금속연맹 위원장과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을 지냈고 오랫동안 중집의 구성원이었다. 그러니 전재환 후보가 중앙 임원을 하지 않았으니 자신은 책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안일하다. 어쨌든 그는 동료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타성, 개혁주의를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전재환 선본은 2016~17년 총ㆍ대선에 맞춰 준비된 투쟁을 하자고 주장한다. 당장 박근혜 정부의 파상공세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계획은 무책임한 투쟁 대기론일 뿐이다.


또, 지역 순회 연설회에서 ‘사업 계획과 예산을 중앙위로 넘기고, 대의원대회는 중앙위 결정을 추인하는 기관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의결 기관의 기능을 약화시켜 관료적 조율과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동안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의원대회의 투쟁 결정을 임의로 유보ㆍ철회시키는 식의 태도를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주의가 낳은 문제를 관료주의를 강화해 해결할 수는 없다.



‘나중에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더라’


전재환 선본의 강조점은 “준비된 투쟁”론에 있다. 당선 후 1년 간 준비해 2016~17년 총ㆍ대선 일정에 맞춰 노동계급 전체의 요구를 걸고 정치투쟁을 하자는 것이다.


전재환 후보는 TV 토론에서 ‘긴박하다고 해서 현장이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총파업 동참할 리 없다. 준비된 공세적인 파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급 전체의 요구를 걸고 전 조합원이 함께 준비하고 투쟁하자는 것에 투사라도 이의는 없을 것이다. 단위노조 임단협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된 투쟁”론의 문제점은 ‘준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준비’를 이유로 지금 당면한 투쟁들을 회피ㆍ외면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지난해 말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탄압과 민주노총 침탈에 광범하고 즉각적인 분노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즉각 대중적 항의를 선언하지 않고 준비가 필요하다며 2월 말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런 소심한 대응은 민주노총 본부 침탈로 무리수를 둔 정권에 도리어 한숨 돌릴 여유를 줬고, 정권의 탄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촉각만 둔감해졌다.


정작 두 달을 준비했다는 파업은 정권과 기업주들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나중에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더라’는 말이 들어맞은 상황이었다.



‘준비된 투쟁론’과 정권 교체


민주노총의 전략적 정치적 투쟁의 시기가 총대선 시기로 맞춰진 것을 보면, 이 투쟁의 핵심 목표는 정권 교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교섭의 대상이 될 개혁 정부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게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대로 귀결된다.


이를 위한 핵심 수단 하나가 “진보대통합”과 “반신자유주의 반박근혜 범국민전선”이다. ‘진보정치 통합’이 민주노총이 승리하는 야권연대―정권교체로 가는 지렛대인 것이다.


이는 제9대 김영훈 집행부가 2012년 총ㆍ대선 국면에 추구한 전략이다. 전략적 야권연대를 위해 노동운동의 투쟁성과 독립성을 약화시킨 결과, 정치 지형을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총선 승리 후 총파업’ 계획은 총선 패배 후 흐지부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한편, 전재환 선본의 전략은 진보당 중앙위가 인준한 “당 혁신과 진보정치 단결을 위한 우리의 출발” 문서와 흡사하다. 중앙파와 국민파 지도자들 다수가 노동정치 재편에서 진보당을 배제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선거 연합을 하고는 이제 그들의 전략을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진보당은 이 문서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새로운 진보대통합은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중심의 진보대통합이어야 한다 … 진보대통합에 기초해서 야권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쌍용차, KEC, 현대차 비정규직, 철도, 전교조, 공무원연금 등 숱한 문제에서 새정치연합은 중재를 자처하며 노동자들이 투쟁을 중단하고 불필요한 양보를 하도록 종용하는 구실을 해 왔다. 이 당이 자본가 계급의 비주류에 기반을 둔 친자본주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투쟁성과 독립성을 해치고 일관된 투쟁 건설 노력을 해친다.


더구나 이런 전략에 따라 ‘진보대통합’을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구한다면, 그것은 배타적 지지 방침 결정 시도로 이어져 필연적으로 노동운동을 분열시켜 약화시킬 것이다.



진보ㆍ좌파 다원주의와 정치 방침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의 방어를 위해 특정 부문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조직이다. 정치적 견해는 불가피하게 다양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 2008~12년에 사분오열해 재규합이 난망한 지금, 진보정당과 좌파들 안에서 자유롭게 지지를 선택하는 진보ㆍ좌파 다원주의가 투쟁으로 조합원들을 단결시키는 데에 현실적이고 현명하다.


한편, 전략적 야권연대는 분명히 반대해야 하지만, 모든 야권연대가 문제라는 좌파 일각의 고집은 지나치다. 국회에서 특정 개혁 입법 발의를 쟁취하거나 특정 악법을 저지하려고 부르주아 야당과 불가피하게 전술적 공조를 취해야 할 때도 있다. 선거에서 특별히 수구적인 후보에 맞서, 그리고 그에 비해 민주당 후보가 노동자들에게 진보적으로 비쳐지는 인물일 때 특정 선거구에서 후보 단일화 추진이 불가피할 때가 있다.


최근 노동조합 투쟁이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야권연대 노선 탓만은 아니다.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와 개혁주의가 가장 큰 약점이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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