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단결 해치는 금융노조 지도부의 비정규직 외면

 

6월 하순경 우연히 금융노조 규약을 살펴 보던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 차윤석 위원장은 깜짝 놀랐다.

올해 1월 20일 금융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지부의 조합원 자격을 위협하는 규약 개정이 이뤄졌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그동안 산별노조답게 포괄적으로 조합원 가입 자격을 유지해 왔다.

“금융업, 금융관련 서비스업 및 이와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자”는 물론이고, “금융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및 금융관련 자격을 취득하고 있는 자”면 가입이 가능하도록 해왔다.

이 덕분에 계약해지와 재취업이 빈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시적인 해직 상태에서도 비정규직지부에 가입해 금융노조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며 각종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뀐 규약은 “금융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및 금융관련 자격을 취득하고 있는 자” 등 포괄적인 가입자격 조건을 모두 삭제해서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 유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조합활동 관련하여 해고된 자”와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 된 자”의 조합원 자격은 살아 있다.

그러나 기간제 노동자들이 해고될 때는 대체로 기간 만료에 따른 개인별 계약 해지 형식을 띠므로 조합 활동이나 경영상 이유로 해고됐다는 점을 증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계약해지와 재취업이 반복되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경우 조합원 자격이 있었다 없었다 하게 돼 노동조합의 보호를 일관되게 받기 어렵게 됐다. 특히, 파견제가 조금씩 도입되는 현실에서 이런 규약 개정은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바뀐 금융노조 규약 아래서 기간제 노동자들이 계약해지 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려면 해고무효소송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소송에 드는 비용도 문제지만, 평균 2년이 넘게 걸리는 재판 기간과 블랙리스트에 찍혀 재취업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도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차윤석 위원장은 금융노조 담당자에게 전화로 문의하고 내용 증명 질의서를 보냈다.

3주 가까이 답변을 미루던 금융노조는 7월 27일 답변을 보내 “금융산업에 근무한 경력”으로 조합원이던 사람은 바뀐 규약에서 “필연적으로 조합원 자격이 박탈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비정규직 조합원 자격 박탈한 금융노조의 공문. 질의 2 관련 답변을 보시오.

결국, 차윤석 지부장 등 서른 명이 넘는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바뀐 규약에 따라 사전 협의나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금융노조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됐다.

금융노조 집행부는 2007년부터 내부적으로 비정규직지부 해산을 추진해 오다 여의치 않자 올해 비정규직지부를 사실상 없애는 수준의 규약 개정을 한 것이다.

이는 산별노조 취지에도 거스르는 것인데 예를 들어,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규약에서 “금속산업과 금속관련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구직중인 실업자”와 “기타 제조업에 근무하는 자”에게 조합원 가입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비정규직지부 차윤석 위원장은 “금융노조 규약 개악 자체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므로 조합원들과 충분한 토론을 통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지부는 8월 9일 규약의 원상 회복과 비정규직의 유니온샵[각주:1] 적용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 투쟁은 노노 갈등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대의를 저버리고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에 조작된 분열의 씨를 뿌리고 있는 집행부를 향한 조합원들의 민주적 항의다. 

 

한편, 금융노조의 하나은행지부(정규직) 지도부도 황당한 짓을 저질렀다.


그동안 하나은행 시급제 노동자들은 사측을 대상으로 미지급임금반환소송(☞관련기사: 쥐꼬리만한 시급마저 훔쳐간 은행들)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이 소송에서 하나은행지부 지도부가 재판부에게, 단체협약(보충협약)이 규정한 “전 종업원”의 범위에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노조가 앞장서 ‘비정규직은 우리와 같은 하나은행 종업원이 아니다’ 하고 매정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금융노조와 하나은행지부 집행부의 이런 태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크게 해치는 잘못된 행동이다. 금융노조 안에서 2만 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국민은행지부와 몇몇 지방은행지부를 제외하면 이들을 정규직지부로 가입시키는 일도 감감무소식이다[각주:2]. 금융노조 지도부가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비정규직 악법을 더 개악하려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기업주들은 어떻게든 비정규직 차별로 노동자들을 이간질시켜 경제 위기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

특히, 금융산업은 이명박 정부의 메가뱅크 재추진 입장과 우리은행 민영화 발표 후 또다시 인력 구조조정의 공포에 젖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는 행위에 금융노조 지도자들이 앞장서는 것은 노동자 단결을 해치는 것으로 용서받기 힘들다[각주:3].

금융노조 지도부는 규약을 재개정해 과오를 시정해야 한다.




기사가 좋으셨나요? 그렇다면 핸드폰으로 1000원, 후원하세요! | 정기구독을 하세요!

<레프트21>은 정보공유라이선스2.0:영리금지를 따릅니다.

ⓒLeft21.com

  1. 입사와 동시에 자동으로 노동조합에 가입이 되는 제도. 금융산업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현재 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지부 가입에 유니온샵을 적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2. 내부적이지만 자신들이 방침으로 정하고 내가 비정규직지부장 직무대행일 때, 통보했던 내용이다. 자기가 한 약속도 지키지 않더니... 이들은 노동운동의 큰 오점이다. [본문으로]
  3. 금융노조 양병민 위원장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는 등 노동운동의 큰 길에서 벗어나는 행보를 계속 보여왔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관련 기사: 쥐꼬리만한 시급마저 훔쳐간 은행들


시중은행이 임금을 체불한다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지난 주말에 시급제 소송을 시작한 은행 계약직 모임에 갔었습니다. 모임 구성원이기도 하면서 후속 취재 같은 것이기도 하죠.

시급제 소송을 시작한 하나은행 시급제 해직자 분들과 올초 전원 해고돼 역시 소송 중인 국민은행의 내부통제점검자 분들이 오셨습니다. 

조 단위로 수익 내는 은행이 임금 체불?

하나은행의 유급 휴일 문제는 기사에 썼습니다만, 이날 새로 알게 된 내용은 월 중식대 22만 5천 원도 시급제 노동자들에겐 적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1년으로 치면 2백70만 원에 해당 하는 큰 돈입니다. 


시급제로 1년만 근무했어도 휴일 관련 체불액이 5백만 원 가까이 되므로 총 7백만 원 가까운 돈을 규정을 어기고 지급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날은 그밖에도 열악한 처지를 이용해 규정 이상의 실적 압박하기, 재계약 부담을 이용해 성희롱하기 등 은행 쪽 관리자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날 하나은행에서 오신 분들은 돈 주며 하라 해도 부당해고 소송(복직)은 하기 '싫다'고 했을까요.

시급제 해직자들 다수는 이밖에도 승산이 없다는 생각으로 부당해고구제신청을 거의 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분노 만큼이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정권이 바뀐 뒤로 비정규직 관련한 소송의 결과가 노동자들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더라는 정보 때문입니다. 

국민은행 해고자 분들은 명백한 사유인데도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차별시정만 인정받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하는 것도 참 부담입니다. 재직자는 회사 눈치를 봐야 하고 퇴직자는 1인당 60만 원 하는 소송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물론 이기기만 하면 비용은 문제가 안 되지만) 대상자가 1천 명 가까울 거라고 보는데 시급제 소송 참여자는 재직자가 거의 없고 해직자(최근 계약해지)로만 스무 명을 조금 넘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면서 방문한 브라질에선 부당노동행위의 입증 책임이 신고한 노동자가 아니라 신고 당한 사용자에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 부당노동행위가 생기면 한국은 노동자들이 돈 들여 증거 찾고 브라질은 사장들이 돈 들여 증거를 찾아 해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변호사 고용 등 소송 비용과 정신적 부담을 사용자가 진다는 겁니다. 

관련 노동법에서 이 점만 개정돼도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겁니다.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개별 근로 관계라 해도 소송 자격을 노조에게 개방한다면 개인들의 부담은 매우 줄어들 겁니다.

국민은행에선 해고가...

한편, 국민은행 건은 은행이 내부통제점검 직무에 있던 계약직 4백여 명을 일괄 계약해지한 사건입니다. 직무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해당 직무 전원을 계약해지한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입니다. 

이들의 대량해고는 정규직 임금피크제 도입이 명분입니다. 임금피크제란 고용이 불안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년을 보장해 주는 대신 마지막 몇 년 간의 임금을 대폭 깎는 제도입니다. 한마디로 은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게 만든 것입니다. 

금융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던 국민은행지부는 이 난처함 때문에 이 문제에서 거의 침묵하고 있습니다. 둘 다 일할 자리를 만들어 내라고 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이 다 구제될 방안을 만들어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몇 년 간 이뤄놓은 성과를 앞으로 지키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처럼 이날 모임도 비정규직 싸움에서 흔히 보는 특징들-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정규직노조가 외면하면 매우 어렵고 외롭게 싸워야 한다, 당연한 권리인데도 (소송조차) 참여하기 힘들다 등-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자기 확신과 사회적 연대

이런 고립감 때문에 분노를 발산하기도 하지만 정규직노조와 사측의 차이를 못 보기도 하고, 열악한 조건 때문에 오히려 손쉬운 타협이나 포기의 유혹을 더 쉽게 느끼기도 합니다.

워낙 주눅들고 살아서 자신의 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노하고 행동하려 해도 '투쟁' '연대' 이런 것들에 확신이 없고 스스로 믿지 않는 게 흔한 경우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연대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고, 연대에 소홀한 정규직노조 지도부가 강력하게 비판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날 참석한 두 모임 모두 정규직노조의 도움을 못 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평소 정책과 태도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하나은행 해직자 분들은 노조 집행부 뿐 아니라 일반 정규직 직원에 대한 불만도 더 크더군요. 

정규직노조 집행부의 태도가 집행부에 대한 태도 뿐 아니라 해당 작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증이라 보면 비약일까요.

참고로 굳이 비교하자면 최근 수 년 동안 노조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훨씬 더 적극적이었던 국민은행에서 정규직 처우도 상대적으로 더 나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행노조가 소극적 대응만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성과를 갉아먹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비정규직들에겐 서러운 시절입니다. 별다른 비법이 우리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하늘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은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들썩이고 조직률도 높아졌던 때는 2007년 비정규 악법 시행과 발맞춘 이랜드 투쟁 때였습니다. 이 투쟁을 보고 은행 경영자들도 한발한발 양보하기 시작했고 굼뜨던 정규직노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조직화와 연대 확산 같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그 자신감이 조금 아쉬운 요즘입니다. 앞으로도 자신감을 북돋워 줄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야 겠죠.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