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재판 자인한 “내란 음모” 대법원 판결

사상과 토론의 자유 처벌한 판결을 규탄한다


<노동자 연대> 142호 | online 입력 2015-01-24



“내란 음모 무죄, 내란 선동 유죄”


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다. 1월 22일 대법원은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 등에 유죄와 중형을 선고한 2심 결과를 확정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박근혜 정부의 “내란 음모” 소동이 사실은 정치적 마녀사냥일 뿐이었음을 인정한 꼴이다.


검찰은 조직적으로 “내란 음모”를 했다고 기소한 것인데, 내란 음모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치 않음을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거가 불충분하면 당연히 구속자들을 무죄 석방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재판이 애당초 우익 지배자들이 벌인 마녀사냥식 사상 재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기소한 정부와 유죄 판결을 한 사법부 모두 나름대로 일관된 태도를 보여 온 것이다.


대법원이 이석기 전 의원 등 구속자들의 행위를 “내란죄의 성립에 필요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발언의 목적”이다. 대법원은 또, “[회합 주도자들이] 발언의 목표로 한 것은 헌법이 정한 정치적 기본조직을 불법으로 파괴하는 것에 해당하여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이라고 했다.


즉, 구체적 조직과 행위를 증명하지 못해도, 발언의 “목적”과 “목표”를 재판관이 단정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심’을 처벌하는 사상의 자유 탄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석기 전 의원 등은 구체성도 없고 실현 가능성도 없어 계획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들을 토론했다는 이유만으로 2년에서 9년의 중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헌법재판소보다는 좀 덜 막무가내였어도, 이 재판 자체가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저열함을 보여 줬다는 사실을 감출 순 없다.(국가보안법 유죄 판단에는 만장일치였다.)



제2의 국가보안법, 내란선동죄



대법원은 이번 판결문의 내란선동죄에 관한 법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란 선동에 있어 시기와 장소, 대상과 방식, 역할분담 등 내란 실행 행위의 주요 내용이 선동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또 선동에 따라 피선동자가 내란의 실행행위로 나아갈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되어야만 내란 선동의 위험성이 있다고 할 것은 아님.”


즉, 내란 선동 죄를 입증하는 데서 구체성과 개연성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란선동죄가 사실상 행위자의 ‘내심의 목적’을 재판부가 자의로 판단해 처벌하게 해 주는 조항이라는 뜻이다. 제2의 국가보안법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형법 제90조 내란의 ‘예비ㆍ음모ㆍ선동ㆍ선전’의 죄 항목 자체가 1953년 형법을 만들 때 특별법인 국가보안법(1948년 제정)의 기능을 일반법인 형법에 옮겨 넣으려고 만든 ‘쌍둥이’ 조항이기 때문이다.(이승만과 그 후배 독재자들은 두 악법을 저항을 단속하는 무기로 유지ㆍ애용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보안법만으로는 공포 정치의 효과를 충분히 누리기 힘들다고 보고, 형법 상 내란 조항을 걸어 충격 효과를 극대화해 노동자 운동을 위축시키려 했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의 ‘국가변란’보다 더 폭넓은 개념인 ‘국헌문란’을 통해 좌파정치세력들을 체제 내화하고 혁명적 좌파들을 압박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혁명적 좌파들이 노동계급 안에 더 뿌리내리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 응답인 이유다.


지배계급의 위기감과 박근혜 정부의 반동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지배자들은 이런 식으로 좌파들의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을 앞으로 더 벌이려 할 수 있다. 재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노동자 운동을 고무하고, 이 운동이 노동자 계급의 자력 해방을 추구하는 사상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지율 추락의 정치 위기를 겪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이런 탄압에 의존하고 싶어할 것이다.


1월 21일 신년 업무 보고에서 법무부가 ‘국가보안법 개정’ 등을 ‘국가 혁신’ 방안의 하나로 내놓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법원이 반국가단체ㆍ이적단체에 해산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해산명령 후 단체 이름을 건 집회ㆍ시위 등을 금지하며, 잔여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키는 내용의 법 개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박근혜 정부의 반동



우익과 지배자들의 요구대로 대법원이 사상 재판을 정당화했지만, 차마 국정원의 위조가 다수 포함된 녹취록과 국정원 첩자 구실을 한 자의 불충분한 증언뿐인 “RO”(내란 음모 조직)의 실체를 증거로 인정하진 못했다.


이는 대법원이 말로나마 자유민주주의 원리인 삼권 분립과 법정증거주의 등의 형식적 외양마저 완전히 팽개쳐 버리긴 어려웠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이는 “RO”의 실체를 사실상 인정하고서 진보당이 “RO”의 조종을 받는 정당이라는 식의 논리로 진보당을 해산시킨 헌법재판소의 입장과 충돌한다. 이 때문에 대법원 판결 다음 날 진보당 전 의원단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했다.


“헌재가 ...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선고를 강행한 이유를 묻고 싶다. ... RO의 실체와 내란음모가 없었다는 판결이 나올 것을 우려한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은 박근혜의 유신 스타일 통치가 곧바로 유신 체제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이는 박근혜 집권 이후 노동자 운동이 각종 민영화와 고통전가 드라이브에 맞서 곳곳에서 싸워 온 덕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우익과 지배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판결임에도 대법원 판결은 가뜩이나 지지율 추락 사태를 겪는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에 흠집을 추가했다.


1월 23일 총리 교체와 청와대 인사 일부 쇄신 등을 발표한 것은 이런 위기감의 반영일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1월 셋째주 박근혜 국정수행평가는 긍정적 30퍼센트, 부정적 60퍼센트로 취임 후 최악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속적인 하강 추세에 있다. 최근에는 서민 증세와 연말 정산 사태에 대한 분노가 지지율 추락의 추가적 요인들이 됐다.


물론 박근혜는 통치 스타일상 아랑곳 않고 좌파 단속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반동의 동력이 약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공무원연금 개악, 노동시장 구조 개악, 비정규직법 개악 시도 등에 맞서 조직 노동자 운동이 단결해 투쟁한다면 박근혜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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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무죄 — 드러난 ‘사상 재판’의 실체

사상 탄압 중단하고 관련자들을 무죄 석방하라




8월 11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내란 음모 혐의는 무죄로,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상 이적 혐의는 유죄로 선고했다.


서울 고등법원 형사9부는 내란 음모의 주체라 할 “RO” 조직의 실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음모의 주체가 없으니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증명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은 내란을 실제로 계획하고 준비했다는 증거를 재판에서 내놓지 못했다. 2013년 5월 12일 회합 ‘녹취록’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총 8백여 곳을 위조한 것이 드러났다.


재판부의 판결은 박근혜 정부의 “내란 음모” 소동이 사실은 정치적 마녀사냥일 뿐이었다고 인정한 셈이다.


“내란 음모”로 잡혀갔는데 내란 음모의 증거가 없다면, 구속자들은 모두 무죄 석방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도 재판 후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지하혁명조직 RO가 존재한다, 그리고 조직원들이 사전에 준비 행위를 했다, 폭동을 모의하기 위해 모였고, 내란을 합의했다는 것이 [내란 음모와 선동죄 기소의] 핵심적인 기둥이었는데요. 내란음모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4개의 기둥에 대해서 [2심] 재판부는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다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내란 선동도 무죄로 봐야 [합니다.]”(YTN 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그런데도 재판부는 내란 선동죄와 국가보안법은 유죄라고 판결한 것이다. 결국 구속자들은 2~9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 판결대로라면, 비공개 모임에서 토론했을 뿐인데 이것이 살인보다 중한 죄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회합 참석자들이 이 의원과 상명하복 관계에 있고 발언에 적극 호응한 점 등을 보면 참석자들이 가까운 장래에 내란 범죄를 결의ㆍ실행할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구체적 ‘행위’가 없어도 참석자의 ‘내심의 목적’을 추정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 재판이 개인의 정치 사상(내면의 양심)을 단죄하는 ‘사상 재판’이라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선고 결과만 봐도, “RO”의 실체 여부는 진정한 쟁점이 아니었다.


박근혜와 이 나라 통치자들은 노동운동 일부의 친북사상을 마녀 사냥하고 처벌함으로써 경제ㆍ안보 위기 속에서 고조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을 분열시키고 위축시키려 한 것이다.



우익의 압력에 순응한 사법부


내란 음모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굳이 형법상 내란 혐의에 유죄를 유지한 것은 재판부가 박근혜 정부와 우익의 압력을 판결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형법상 내란죄로 좌파를 단속하려는 행정부의 의도에 한편이 된 것은 사법부 역시 통치자들의 일원으로 체제를 수호하는 데서 한마음이라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의 우익과 지배자들은 세계 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한 경제와 안보 위기감 때문에 갈수록 신경질적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계급지배 질서를 유지하려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외양이 일부 훼손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핵심 증거들을 기각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3권 분립을 내세운 통치기구의 일부로서 대중에게 존재(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RO”의 실체와 내란 음모 혐의는 검찰의 증거로는 도저히 입증됐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짝퉁 박정희” 정권의 유신 흉내는 ‘유신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유신 스타일’일 뿐이라는 것이 이번 판결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이 마녀사냥에 그다지 위축되지 않고 민영화와 고통전가에 맞서 곳곳에서 싸워 온 덕분이기도 하다.


결국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검찰의 기소가 무리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RO” 조직을 전제로 논리를 세운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도 정당성이 크게 훼손됐다. 이 판결대로라면, 정부는 순전히 진보당의 강령과 활동만을 놓고 위헌 정당임을 증명해야 한다. 정치 사상 탄압이라는 본질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세월호 참사, 의료 민영화 등 각종 개악과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 파업과 거리 투쟁 등 더 투쟁적 저항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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