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 반대 파업

공공·금융 노동자 비난 신화를 논박한다


<노동자 연대> 181호 | 발행 2016-09-21 | 입력 2016-09-21






금융노조 파업을 사흘 앞둔 9월 20일 노동부장관 이기권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볼모로 하는 공공·금융 총파업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기권은 임금체계 개편이 “법으로 의무화됐다”는 억지까지 부렸다. ‘불법 파업’이라는 암시를 주고 싶어서였을 텐데, 그가 기자회견에서 내민 근거는 법 조항’(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법 제정 당시 ‘속기록’이다.


장관이 거짓말하고 억지 부리는 건 불법이 아닌가. 사실 근무지를 이탈해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신분을 속인 일이 들통나고도 경찰청장이 되는 정권에서 그게 뭐 큰 일이겠는가. 노인 기초연금 20만 원 등 표 받기 좋은 본인의 대선 공약을 모두 폐기 처분해 놓고도, 배신의 정치는 극도로 싫어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에게 배신당한 국민에게 배신 정치인을 심판해 달라고 불법으로 선거 개입하는 박근혜가 임명한 장관다운 짓이다.


게다가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노조와의 합의가 안 되면 무시하고 이사회 의결하라고 공식 재촉한 당사자가 이기권 본인이다. 이 결정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이 너무 명백해 불법 논란을 자초했고 죄다 소송에 걸려 있다. 특단의 계급적 판결이 아니라면 정부가 패하기 십상인데, 문제는 그런 불법이 노동자들의 파업 열기를 더 높였으니 파업을 조장한 책임을 묻겠다면 이기권 본인을 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기권이 대표로 말했지만, 금융·공공기관의 파업에 대해 정부와 기성 언론들은 하나같이 고임금 노동자들이 웬 파업이냐고 부르짖는다. 집단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조선사들이나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듯, 기업 부실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와 사주들은 별 책임도 지지 않는다. 대기업 이윤의 일부인 사내유보금만 해도 수백조 원에 이른다. 자본주의와 기업주들이 불러 온 경제 위기에 애먼 노동자들의 임금을 문제 삼으며 책임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은 억지일 뿐이다.


최근 리얼미터가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70퍼센트가 금융·공공기관의 부실 원인은 정부 탓이라고 답했다. 성과연봉제를 정부가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답변이 63퍼센트, 성과연봉제는 공익성과 불합치한다, 사회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답변이 둘 다 66퍼센트였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도 세 번은 통하지 않았듯이, 이 정권의 거짓부렁이 잘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연대도 소중하다. 이기권과 기성 언론들의 정규직·비정규직 이간질을 해 왔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공기관의 성과주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빼앗는다”며 파업을 지지하고 이기권을 정면 반박했다.




공공부문은 위기에 같이 책임져야 한다?



도둑질한 돈도 아니고 사용자인 정부도 동의해서 책정한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액을 이제 와서 문제삼는 것은 경제 위기 시대에 정부와 사용자들의 태세 전환을 잘 보여 준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임금 삭감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고, 이를 지렛대로 민간 부문 임금 삭감으로 나아가려는 속셈일 뿐이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이 모두 높은 것도 아니고, 고용이 철밥통인 것도 아니다. 공공부문에서 성과주의 등 시장주의 논리가 보급돼 온 지 오래고, 또 임금과 복지 향상도 기획재정부의 예산 압박으로 크게 제약돼 왔다.


특히, 총액인건비 제도 같은 임금 통제 정책 때문에 공공부문이야말로 임금 억제와 간접고용 비정규직, 허울만 좋은 무기계약직 양산의 주범이 돼 왔다. 인건비 총액을 제한해 놓고 정규직 임금이 오르는 게 문제라는 건 이자를 50퍼센트씩 받아먹으면서 왜 남의 돈 쓰고 안 갚냐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 없는 억지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가 이런 압박을 더 전면화해 왔다. 지난해에도 멀쩡하게 정년이 있는 노동자들의 말년 임금을 대폭 깎는 임금피크제를 공공부문부터 도입했다.


최근 서울의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이나, 경주 지진 발생일에 철로 수리 작업을 하다 사고로 죽은 노동자들이 모두 공공부문의 저임금 하청 노동자인 것은 단지 우연일까.


이런 비극을 봐도 공공부문에 충분한 임금과 안정된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 대체로 필수적인 공익 서비스에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고,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 숙련도를 높이고, 장시간 노동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다수에게 유리한 일이다. 이렇게 되려면 오히려 정부가 공공부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더 늘려야 한다. 노동계급 관점의 효율성이란 이런 것이다.


금융 고임금이 문제?



최근 금융 산별노조의 임단협 교섭을 파탄 낸 은행권 사용자들도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등 실적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성과연봉제로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의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건설 등 위축된 기업들의 경기 부양을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탓이 더 크다. 그나마도 은행들은 예금 금리를 신속히 낮춰서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하고 있다. 게다가 대출금리도 낮춰 가계대출 영업을 여전히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예대마진 수익이 줄었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임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 최근 집값과 전월세 폭등 등으로 평범한 노동자들조차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은행의 예대마진 수익이 느는 것은 공익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물론 2년 전과 비교해 지난해 시중은행들의 수익이 2조 원 넘게 줄긴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3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고, 최근 실적 하락 공포는 부실기업들로 인한 충당금 부담이 늘어난 탓이 크다. 역시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여기에는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같은 금융공기업들도 해당된다. 도대체 이 은행들에서 부실기업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청와대 서별관회의 등에서 대우조선의 부실과 분식회계를 알고도 계속 지원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정황까지 폭로된 상황에서 말이다.


오히려 그동안 은행권이 한때 10조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때조차도 그중 상당수는 주주들에게 고배당으로 지급한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수익을 위해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 탓을 하지 말고, 주주 배당을 줄여야 마땅하다.


자본주의적 관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임금은 노동력 사용권에 대한 대가(노동력의 생산비)이므로 임금 노동자가 (경영권·인사권의 이름으로 그 노동력을 이미 배치·사용한 결과로 얻게 된) 경영 실적에 책임질 아무 이유가 없다.


안보 위기에 웬 파업?



보수 언론은 북한 핵실험 등 국가적 안보 위기 상황에서 웬 파업이냐는 비난도 한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도 않는 사안을 끌어와 노동자 파업에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고 보자는 식이다. 김일성이 죽었는데 웬 파업?(1994년) 가뭄에 웬 파업?(2001년) 식이다. ‘파업은 무조건 안 된다’는 계급 본능적 히스테리다.


최근 동아시아에서 악화되고 있는 안보 위기는 근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강대국들 간의 동아시아 패권 다툼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 미국이 한미일 간 군사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지렛대로 북한 악마화와 대북 압박을 활용한 것이 더 직접적인 배경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 등 중국을 포위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확실히 줄을 서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야말로 수동적 피해자이기는커녕 한반도 주변의 안보 위기의 한 연쇄고리인 셈이다.


도대체 이런 상황이 노동자가 파업을 자제하고 임금을 삭감하면 해결되는가? 외부의 적에 맞선 국민적 단합을 위해 내부 갈등을 피해야 할 때라면, 왜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을 관철하려고 지금 이 난리인가? 박근혜 식 관점이면 이 정부와 기업주들이야말로 국가적 국론 분열, 갈등 조장의 주범 아닌가?


진실인즉슨,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은 경제·안보·정치 위기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적으로 보는 국내외 모든 상대에게 호전성을 발휘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오히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파업 투쟁으로 박근혜 정부를 약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획득하는 길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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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181호 | 발행 2016-09-21 | 입력 2016-09-21



금융노조는 ‘9월 23일 은행 영업점들이 영업에 차질을 빚는 실질적인 총파업을 만들자’고 현장에 호소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금융노조 전체 지부 대의원들이 9월 10일에 합동 대의원대회를 열고 최대한의 파업 참가 조직화와 2·3차 파업을 결의하기도 했다.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정세와 열기로 봐서는 금융노조의 역대 최대 산별 파업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늘 그렇듯이 파업 조직화 과정에서 지부별 편차가 있는 듯하다. 올해 말에 금융노조와 각 지부 집행부의 임기가 끝나는 것도 부분적으로 파업 조직화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듯하다. 금융권은 성과주의가 많이 도입돼 있기 때문에 일부 후진적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찬성할 수도 있고, 꼭 파업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사측은 이런 점을 이용해 조합원들을 이간질시키고 파업 참가 열기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각 지부 위원장들이 사측의 개별 교섭 방침에 맞서 ‘절대 개별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공개 서약을 하고 파업 참가를 약속한 것은 다행이다. 지난해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를 투쟁으로 막으려 하지 않은 것이 올해 성과연봉제 도입 강공에 길을 터 준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금융노조와 각 지부들이 지금껏 호소해 온 대로, 현재의 성과연봉제는 단순한 임금체계 변경이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를 임금 삭감과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큰 그림 속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9·23 총파업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수백만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이다.

금융노조는 2000년 이후 두 차례의 산별 파업과 주요 지부들의 화끈한 파업의 전통이 있다. 이 전통이 새 세대 노동자들의 불만·분노와 더 융합될 필요가 있다. 전국의 영업점을 마비시키는 단호한 파업으로 9월 말~ 10월 초 금융·공공 파업의 물꼬를 트자.


△물꼬 금융·공공파업의 스타트를 끊는 금융노조 파업의 성공이 중요하다. 9월 10일 대의원대회 모습. ⓒ사진 제공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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