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은폐하려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무효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가 5월 21일 6차 회의에서 특별법 시행령 전부 개정안을 의결해 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특조위가 정부 시행령 발표 전에 내놨던 시행령안으로 유가족들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지지했던 안이다.


핵심 내용은 세월호 특별법에 근거해 유가족 등의 추천으로 임명된 상임위원들의 업무 지휘·감독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진상규명·안전사회·지원 소위원회를 맡은 상임위원들이 “관련 업무를 각각 지휘·감독”하도록 했다. 반면, 정부 시행령은 ‘협의·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관료 중에서 임명한 행정지원실장이 진상규명·안전사회·지원 등 실무기구를 감독하도록 돼 있다.


또한 세월호 특조위는 안전사회국의 활동 범위를 ‘정부조사결과(자료) 분석’으로 제약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 안전사회기획과와 보고서 작성과를 신설해 특조위의 임무가 진상규명을 통한 안전사회 추구에 있음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물론 시행령 전부개정을 이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박근혜는 세월호 시행령 개정 투쟁이 계기가 된 국회법 개정에 3권 분립 위배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다. 여당 내 갈등도 불사하면서 말이다.


가히 ‘유신 스타일’의 ‘시행령 정권’답다. 박근혜 정부는 여당이 국회 과반인데도, ‘국민적 논의’의 장이라 불리우는 국회 논의조차 불편하게 여겨 시행령 같은 행정입법에 의존해 개악들을 추진해 왔다. 최근에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고 시행령을 손봤다. 국가정보원이 판사 임용에 개입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3권 분립을 무시해 온 것도 바로 박근혜 정부다.(3권 분립은 애초 국가기관들 사이에서 비선출 집단이 선출직을 견제하려고 고안된 제도로 노동계급에게 반드시 더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수사권·기소권 같은 권한도, 인적 구성의 독립성도 충분하지 않은 반쪽 조건에서 온전한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은 계속해서 암초에 부딪힐 것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정부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쓰레기 시행령이 통과된 후, 유가족들을 포함한 4·16연대는 사회적(범국민 or 민간) 진상규명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법적 권한이 없는 민간 조사기구가 의혹 제기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누구도 확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진상규명 운동의 구실이나 위상, 특조위 감시나 정부를 상대로 진상규명을 압박하는 활동과의 관계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사회적 진상규명 운동을 벌이면서도 여전히 국가에 진상규명을 요구할 필요성은 남는다.


첫째, 국가는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으로 강제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사회 전체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가를 통해 실질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국가를 압박해 그것을 매개로 우리 운동의 요구를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정당하다.


강제력 있는 수사권 보장과 책임자 처벌 등은 현실에서 국가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둘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핵심 대상이 바로 국가다. 규제 완화, 민영화, 정경유착 부패 등으로 참사의 조건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또한 구조 실패 문제가 있다. 국가기관의 구조 능력 약화가 누적돼 왔고 박근혜 정부도 컨트롤타워 구실에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데 국가기관과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를 민간이 강제할 수 있을까? 역설이게도 국가기관의 혐의는 (혁명의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기관의 힘을 통해서만 밝혀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살인 사건, 노태우 정권의 강기훈 누명 사건을 사법부가 재심해 ‘무죄’로 판결한 것이 그 사례다. 광주 학살과 쿠데타의 주범인 전두환과 노태우도 결국은 검찰과 사법부를 통해 단죄했다.


셋째, 국가와 정치의 문제를 ‘국가주의 반대’, ‘대중의 직접 정치’ 등의 이름으로 회피할 수 없다. 지배계급은 이윤지상주의를 문제 삼고 박근혜 정부에 도전하게 되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불편하게 여긴 지 오래됐다. 노동절 시위 때 봤듯이, 상당한 수준의 국가 폭력이 이 운동을 향해 벌어졌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들에게도 소환장 발부 등 법적 협박이 이뤄졌다.


운동이 굳건히 유지되려면, 정부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를 무시하려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도 우리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새정치연합 등에게서 정치적으로 독립된 대중투쟁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특조위에 의존하지 않되, 정부의 진실 규명 방해에 맞서 계속해서 싸우도록 독려·압박해야 한다. 사회적 진상규명 운동은 이런 전체 과정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때 나름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다시 온다면, 시행령만이 아니라 특별법 자체를 개정하는 투쟁도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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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더 정치적으로 돼선 안 되는가



4월 20일 4·16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주최로 경찰 탄압 규탄과 시민 피해 상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4·16연대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소속 단체이기도 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은 이 기자회견을 지지해 여럿이 참가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직후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밝힌 한 사람이 이들에게 ‘운동권이 많이 와서 외부 세력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유가족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운동의 중심에는 유가족들이 있다. 운동이 지속돼 올 수 있었던 것도 유가족들이 단호하게 진실 규명을 요구한 덕분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광범한 ‘외부 세력’의 연대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부와 우파는 유가족과 광범한 ‘외부 세력’을 분리시키려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시위에 정권 퇴진 구호가 나오거나 정치 단체나 사회운동 단체들, 노조가 참여하는 것을 두고 “불순 세력의 개입”, “외부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질”이라는 식으로 비난해 왔다. 익숙한 상투어들이다. 

특히 16일, 18일 집회 후에는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우파 언론의 마녀사냥식 공세도 거세졌다. 아마 그 시민단체 활동가도 여기에 위축돼서 그런 발언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깨달았듯이, 안전 문제조차도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에게는 이런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고, 사고가 나면 구조를 못 받을 확률도 높다. 계급 간에 불평등하게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대형 사고는 대부분 작업장에서 일어난다. 이윤을 만들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공장, 건설 현장, 백화점, 철도나 선박 등등. 이런 공간들 대부분이 노동자나 서민 대중이 일하거나 이용하는 공간들이다. 이런 곳들에서 기업주들은 비용을 줄여 이윤을 늘리려고 노동자를 쥐어짜고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을 위해 국가는 안전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오래된 건물의 수직 증축을 허용하고,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에 대한 관리 기준을 완화하는 등 규제 완화라는 돌팔이 ‘항암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안전 산업 육성’을 대안이라고 내놨다. 이는 위험에 대한 대비를 상품화한다는 것이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은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기업의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국가가 이를 도우려고 지속적으로 안전 규제를 약화시켜 온 것과도 관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기업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까지도 따져 묻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동이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고, 박근혜 정부와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특별법 시행령 건에서도 보듯 박근혜 정부 스스로 진실 규명 방해 주범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참사 이후 이윤 획득을 가장 앞세우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의문과 각성이 커져 왔다. 유가족들 스스로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 줬다.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려면, 더 많은 정치적 각성이 필요하고 정치적 운동과 정치적 조직이 필요하다. 정부와 우파의 협박은 이런 식의 사태 발전을 막으려는 것이다.

탄압 협박과 외부 세력 개입 운운은 분노한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이간시키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계급적 각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좌파들이 세월호 참사에 적극 나서는 것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운동이 정치적으로 비치면 ‘역풍’이 분다는 수세적 태도가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노동자 연대> 147호 | 발행 2015-04-27 | 입력 2015-04-24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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