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은폐하려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무효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가 5월 21일 6차 회의에서 특별법 시행령 전부 개정안을 의결해 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특조위가 정부 시행령 발표 전에 내놨던 시행령안으로 유가족들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지지했던 안이다.


핵심 내용은 세월호 특별법에 근거해 유가족 등의 추천으로 임명된 상임위원들의 업무 지휘·감독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진상규명·안전사회·지원 소위원회를 맡은 상임위원들이 “관련 업무를 각각 지휘·감독”하도록 했다. 반면, 정부 시행령은 ‘협의·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관료 중에서 임명한 행정지원실장이 진상규명·안전사회·지원 등 실무기구를 감독하도록 돼 있다.


또한 세월호 특조위는 안전사회국의 활동 범위를 ‘정부조사결과(자료) 분석’으로 제약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 안전사회기획과와 보고서 작성과를 신설해 특조위의 임무가 진상규명을 통한 안전사회 추구에 있음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물론 시행령 전부개정을 이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박근혜는 세월호 시행령 개정 투쟁이 계기가 된 국회법 개정에 3권 분립 위배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다. 여당 내 갈등도 불사하면서 말이다.


가히 ‘유신 스타일’의 ‘시행령 정권’답다. 박근혜 정부는 여당이 국회 과반인데도, ‘국민적 논의’의 장이라 불리우는 국회 논의조차 불편하게 여겨 시행령 같은 행정입법에 의존해 개악들을 추진해 왔다. 최근에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고 시행령을 손봤다. 국가정보원이 판사 임용에 개입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3권 분립을 무시해 온 것도 바로 박근혜 정부다.(3권 분립은 애초 국가기관들 사이에서 비선출 집단이 선출직을 견제하려고 고안된 제도로 노동계급에게 반드시 더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수사권·기소권 같은 권한도, 인적 구성의 독립성도 충분하지 않은 반쪽 조건에서 온전한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은 계속해서 암초에 부딪힐 것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정부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쓰레기 시행령이 통과된 후, 유가족들을 포함한 4·16연대는 사회적(범국민 or 민간) 진상규명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법적 권한이 없는 민간 조사기구가 의혹 제기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누구도 확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진상규명 운동의 구실이나 위상, 특조위 감시나 정부를 상대로 진상규명을 압박하는 활동과의 관계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사회적 진상규명 운동을 벌이면서도 여전히 국가에 진상규명을 요구할 필요성은 남는다.


첫째, 국가는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으로 강제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사회 전체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가를 통해 실질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국가를 압박해 그것을 매개로 우리 운동의 요구를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정당하다.


강제력 있는 수사권 보장과 책임자 처벌 등은 현실에서 국가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둘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핵심 대상이 바로 국가다. 규제 완화, 민영화, 정경유착 부패 등으로 참사의 조건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또한 구조 실패 문제가 있다. 국가기관의 구조 능력 약화가 누적돼 왔고 박근혜 정부도 컨트롤타워 구실에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데 국가기관과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를 민간이 강제할 수 있을까? 역설이게도 국가기관의 혐의는 (혁명의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기관의 힘을 통해서만 밝혀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살인 사건, 노태우 정권의 강기훈 누명 사건을 사법부가 재심해 ‘무죄’로 판결한 것이 그 사례다. 광주 학살과 쿠데타의 주범인 전두환과 노태우도 결국은 검찰과 사법부를 통해 단죄했다.


셋째, 국가와 정치의 문제를 ‘국가주의 반대’, ‘대중의 직접 정치’ 등의 이름으로 회피할 수 없다. 지배계급은 이윤지상주의를 문제 삼고 박근혜 정부에 도전하게 되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불편하게 여긴 지 오래됐다. 노동절 시위 때 봤듯이, 상당한 수준의 국가 폭력이 이 운동을 향해 벌어졌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들에게도 소환장 발부 등 법적 협박이 이뤄졌다.


운동이 굳건히 유지되려면, 정부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를 무시하려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도 우리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새정치연합 등에게서 정치적으로 독립된 대중투쟁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특조위에 의존하지 않되, 정부의 진실 규명 방해에 맞서 계속해서 싸우도록 독려·압박해야 한다. 사회적 진상규명 운동은 이런 전체 과정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때 나름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다시 온다면, 시행령만이 아니라 특별법 자체를 개정하는 투쟁도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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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진실 규명의 투지가 정부의 봉쇄선보다 셌다

김지윤ㆍ김문성


4월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및 청와대 인간띠 잇기 대회’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은사람들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의지와 경찰의 진압·봉쇄 의지가 충돌한 날이었다. 경찰은 종로부터 경복궁 앞까지 겹겹이 차단벽을 쌓고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난사하며 수만 명의 사람들과 유가족이 만나는 것을 막았지만, 이날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람들의 투지가 더 셌다. 진실을 세월호보다 더 깊은 곳으로 침몰시켜 버리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겹겹이 둘러친 차단벽을 뚫고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이 만난 이날 집회와 행진은 추모조차 맘 편하게 할 수 없게 만든 박근혜 정부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인 일이었다. 집회 대열은 유가족들과 만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부패한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박근혜와 경찰 당국에게는 불안한 일이겠지만, 참가자들 모두 고무돼 돌아갔다. 다음 주 또 모일 것을 약속하고서.


“추모를 넘어 행동으로”


전국 집중 대회인 만큼 제주, 전라, 경상, 경기, 강원,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노란 깃발을 띠운 대열이 모여 들었다. 3만 대열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지난 4월 16일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10대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대열이 눈에 띄었다. 총파업 선포대회 직후에 열린 터라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많았다.

사회자는 “이제 추모를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진실 규명을 위한 행동을 호소하며 대회를 시작했다.

민주주의 국민행동 상임대표 함세웅 신부가 첫 발언자로 나섰다. 함세웅 신부는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한 다윗과 이를 비판한 나탄에 관한 성경 속 이야기를 소개하며 “잘못된 사람, 부정부패한 사람,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을 도려내고 조사해야 한다고 얘길 했는데 조사 받아야 하고 부패한 것은 바로 박근혜다. 차떼기당인 새누리당은 해체돼야 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해산시키자! 대선 불법 자금 주모자가 박근혜다. 자신의 잘못을 남의 말처럼 하는 이 여인,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박근혜에게 외쳐야 한다”고 속시원히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맞습니다”를 외치며 호응했다.

뒤이어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인 김한성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구미현 씨가 무대에 올랐다.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하며 온갖 거짓말과 폭력, 모욕을 경험하고 상처 받았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겐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 정권은 해도해도 너무 한다. 청와대가 사람 살던 곳이냐. 쥐가 살더니 이젠 닭이 살면서 제 멋대로 하고 있다. 박근혜 찍어줬던 밀양 할매들은 이제 ‘박근혜 오기만 해봐라’ 하며 분노하고 있다. 이 정부는 사람보다 돈이다. 우리 자식들이 침몰하는데 가만히 있지 않겠다. 박근혜가 물러설 때까지 싸우겠다.” 구미현 씨의 발언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김한성 의장은 “대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농성하고 있다. 4.19 혁명의 정신을 잊지 않고 끝까지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은 “지금 박근혜 정부는 우리 모두를 연행하고 있다”며 울분을 담아 시를 낭송해 참가자들을 먹먹하게 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로 단원고 허다윤 학생 아버지 허흥환 씨와 박혜선 학생 어머니 임선미 씨가 무대에 섰다. 임선미 씨가 눈물을 터뜨리며 절규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잡아가나요? 우리가 가해자인가요?” 진실 은폐로도 모자라 유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전 우리 혜선이, 그 예쁜 혜선이 얼굴도 못 보고 보냈어요. 1년이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새털 같은 날들은 어떻게 살죠? 시체팔이라고요? 네, 맞아요. 우리 혜선이 덕에 부자 되어서 이 나라 뜰 거예요. 그리고 박근혜 너도 이 나라 다시 돌아올 생각도 하지마!”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한 임선미 씨는 마이크를 집어 던지고는 무대에 주저 앉아 통곡했다. 참가자들도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유가족들 곁으로 갑시다!”


한편,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선포대회와 세월호 1주기 집회가 열리는 그 시각 경복궁 앞 광화문 현판 아래서는 경찰이 또 도발해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었다. 이날 하루 경복궁 앞에서만 16명이 연행됐다. 출입 통제는 물론, 경찰 차벽으로 유가족들이 무엇을 위해 시위하는지도 감추려 한 경찰들에 항의해 유가족들이 경찰 차벽에 올라가 대로를 향해 팻말 시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야비한 경찰들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치고 유가족들이 기다린 것은 서울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연대하러 와주는 것뿐이었다. ‘유가족은 고립되지 않았다’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우리가 함께 이뤄내야 할 일’이라고 외쳐 줄 수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에게는 필요했다. 경복궁을 지키던 유가족 말마따나 정부가 유가족을 폭도로, 종북으로, 자식 팔아 팔자 고치겠다는 파렴치한으로 몰아 세월호보다 더 깊은 고통의 심연으로 내몰려고 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김혜진 씨가 집회를 중단하고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다. “지금 광화문 앞에서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습니다. 더는 범국민대회를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함께 광화문 앞 유가족 곁으로 모여 주십시오!”

유가족들의 연행 소식에 분노한 대열은 광장을 빠져 나와 광화문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로에는 이미 거대한 경찰 차단벽과 경찰 버스로 만든 차벽이 서 있었다. 경찰은 이날 전국에서 무려 1만 5천여 병력을 동원했다. 1년 전, 바다에서 그토록 무능했던 경찰은 집회 참가자 공격에는 신속하고 정확했다. 광화문 사거리로 통하는 대로는 이틀 전처럼 거대한 차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저렇게 다 광화문으로 오면 동네는 누가 지키냐”는 한 유가족 어머니의 얘기가 와 닿는 상황이었다. 이날 경찰은 어떻게든 유가족들과 집회 대열을 떼어 놓으려 했다.

경찰은 행진 시작도 전에 불법적으로 차단벽을 쳐 놓고는 집회 참가자들에게는 “집시법 위반이다.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해산조치 하겠다”며 위협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유가족들을 향한 연대를 막아 선 경찰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경찰 차벽이 불법이다!”, “먼저 차벽 세우고 교통 통제한 경찰이야말로 시민들 불편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참가자들은 차벽을 피해 청계 광장을 지나 종로를 통해 광화문으로 행진하려 했다. 그러나 길목마다 경찰이 막아선 통에 참가자들은 종로3가까지 뛰어서야 겨우 종로로 나올 수 있었다.

종로를 차지한 대열은 기세 있게 구호를 외치며 안국역 부근까지 행진했지만 이내 종로경찰서 앞 차벽을 마주해야 했다. 유가족들을 코 앞에 두고서 참가자들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하철로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광화문 광장에 겨우 들어 온 참가자들의 분노가 확인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였다. 이미 종로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한 경찰 저지선을 뚫고 온 참가자들에게 광화문 광장에서 경복궁으로 가는 두 차례의 저지선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 해체의 대상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 시민들이, 심지어 10대 학생들까지 서로 앞장을 서며 어떻게든 더 유가족들 가까이 가려고 뛰고 부딪치고 넘었다. 정부의 명백한 구조 실패 책임을 덮으려고 온갖 추악한 공격을 해 온 박근혜 정부, 수십 조 원이 넘는 이명박의 4대강 비리 등은 수사 시늉만 하고 넘어가면서 경제 위기의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한데 모였다.

결국 세종대왕상과 광화문광장의 북단 저지선까지 뚫었다. 이 소식은 금세 경복궁 앞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이 광화문 차벽을 뚫었답니다!” 얼마 안 지나 함성 소리가 들렸고 경복궁 앞과 광화문 북단의 두 차벽을 넘어서 펄럭이는 깃발들이 보였다. 애타게 연대 행진 대열을 기다리던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 북단의 대열에게 들리도록 구호를 외치고, 차벽에 올라 팻말을 들며 서로 함께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해경은 증거 조작, 육지 경찰은 유가족 탄압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경복궁 앞 대로로 나오는 길마저 참가자들이 뚫고 나오려 하자, 유가족들은 아예 차벽을 넘어 나가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경찰들을 몸소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도 부상을 많이 입었다. 유가족들은 대로로 나오는 대열을 조준하려고 오는 물대포차 앞에 누워버렸다. 덕분에 시간을 번 참가자들은 마지막 저지선까지 뚫고 대로로 나와 유가족들과 만났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가 경복궁 앞 대로를 가득 메웠다. 아마 박근혜가 미리 도망가지 않았다면 청와대에서 이 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먼저 나온 참가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대로로 나올 수 있도록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참가자들 일부는 아예 경복궁 앞 차벽까지 넘어 유가족들과 만났다. 이들 수백 명은 유가족들과 함께 경복궁 앞 인도를 통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다급해진 경찰은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무자비하게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이 날 하루만 연행자가 1백 명이 넘는다. 연행된 유가족들만 20명이다. 이 날 박근혜 정부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그 고통에 공감하며 진실 규명을 외치는 참가자들에게 “불법” 운운하며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이것은 명백한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다. “가족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박근혜의 본심은 진실 파묻기일 뿐이라는 것이 똑똑히 드러났다.

몇 시간을 대치한 끝에 밤 10시 반이 넘어서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합류했다. 가족협의회 전명선 대표는 “감사하고 미안하다. 오늘 희망을 봤다. 끝까지 싸우겠다”며 4월 24일과 25일에 또 만나자고 호소했다. 마찬가지로 환호 속에 발언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세월호 진실 규명에도 노동자가 앞장서겠다며 4월 24일 총파업 때 만나자고 호소했다.


18일 집회 성공 이후의 상황과 과제


이 날 경찰 차벽이 박근혜 정부의 진실 규명 가로막기의 상징이었다면, 어떻게든 유가족들의 손을 잡으려고 행진한 대열은 진실 규명 투쟁 의지의 표현이었다. 경찰은 19일 오후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나머지 15개 지방경찰청에도 수사전담반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주최 측에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고까지 했다. 강도 높은 보복성 협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위헌 판결이 난 경찰 차벽을 종로에서 경복궁 앞까지 6겹이나 쌓은 경찰이 불법 시위 운운하고 맨몸의 참가자와 유가족들에게 (규정까지 위반해 가며) 방패와 물대포, 최루액 살포를 아끼지 않은 경찰이 ‘극렬 행위’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실제로 귀가길이 막힌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다.) 진도 앞 바다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가, 진실 규명을 요구한 참가자들의 불법 행위를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런 짓인가.

18일 시위의 성공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만과 분노가 크고 격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줬다. 경찰의 신속한 사법처리 방침 발표는 바로 이런 점을 걱정해서다. 이 시위의 성공이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을 고무하는 것은 악몽일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배계급 안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치 능력에 불신을 가지는 세력이 커져 4.29 재보선은 물론이고 향후 국정 통제력이 급속히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미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30퍼센트 대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가 박근혜 정부의 존재 이유인 고통전가 공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이 경찰의 협박에 위축될 이유는 없다. 우리 요구의 정당성을 더욱 확고하게 주장해야 한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를 이윤보다 인간으로 돌리려는 운동의 일부라는 자각도 커져 왔다.

반면, 경찰의 사법처리 협박은 평범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 어려우면 우파 결집에 기대는 것밖에 모르는 박근혜 정부의 앞길을 보여 준다. 당분간 위기 속에서, 위기 때문에 더욱 박근혜는 강공책에 매달릴 것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KBS, MBC 등과 조중동 종편 등은 이를 위한 여론몰이에 앞장설 것이다. 다음 주 집회 때는 자존심 상한 경찰이 16일이나 18일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최근의 정치 상황 때문에 더 공격적인 진압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예상은 이윤보다 인간을 위한 사회를 위해 싸우는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이 조직 노동운동의 힘과도 만나야 할 필요성을 더 강력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노동운동도 자신들의 쟁점과 연결해 이 투쟁에 앞장서야 더 힘이 커질 수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 다수의 보편적 이익과 연결되고 대변한다는 점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 좌파의 구실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시행령(안) 발표로 참사의 진실을 확실히 묻어버리겠다고 선언한 지 3주 동안 운동이 발전해 온 속도와 강도를 볼 때, 진실 규명 운동의 투지, 이에 대한 지지도 쉽사리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와 함께할 4월 24일, 그리고 25일 행동은 이런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이야말로 경찰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길일 것이다. 그러려면, 다음 주초에라도 징검다리가 될 경찰 폭력 항의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대회

“멈춰! 박근혜, 가자! 총파업”

김지윤·전문기

4월 18일 ‘“멈춰! 박근혜, 가자! 총파업” 노동자-서민 살리기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대회’가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민주노총은 4월 13일 84.35퍼센트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선언했다.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무대에 올라 “역사를 바꾸는 파업에 나서자”며 선포대회 시작을 알렸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 건설연맹 이용대 위원장,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이 투쟁 호소 발언에 나섰다.

“일년에 2천5백명씩 산업현장에서 죽어간다. 수년간 사람 죽어가는 문제 해결해달라 요구했는데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자본을 앞세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하고 있다. 24일부터 시작되는 총파업으로 무능 부패 박근혜 정권 갈아치우는데 복무하겠다.”(건설연맹 이용대 위원장)

“1년 전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면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 행동하겠다 다짐했다. 자본의 민낯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의 곳간은 넘치는데 노동자 서민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의 삶, 노후 우리 스스로 쟁취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정부는 전교조 연가투쟁을 불법이라 한다. 그러나 쟁의권도 없는 전교조도 노동자의 권리인 연가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헌법을 짓밟는 박근혜야말로 구속돼야 한다. 협박에 굴복하지 말자. 온전한 삶과 노후를 위해 투쟁하겠다.”(전교조 변성호 위원장)

“공무원노조는 파업권이 없다. 설립신고도 안 돼있다. 노동3권중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투쟁이 급하기 때문에 그 대열에 섰다. 이길 때까지 싸울 거다. 정부가 탄압을 경고했다. 공무원노조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칼 빼지 않았다. 정부가 탄압한다면 더 큰 칼을 빼서 정부에 맞서 투쟁하겠다.”(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노사정합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4월까지 임금피크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고 5월까지 성과연봉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공부문을 돈벌이로 내몰고 있는 공공부문 2단계 정상화 지침 용납할 수 없다”(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

“무능, 무책임 넘어 비리 부패 정권, 박근혜는 나라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 금속노조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맞선 4.24 총파업을 결의했다. 15만 전 사업장 4시간 이상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지역별 결의대회에 참여해 선봉에 서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총파업이고 박근혜와 맞짱 뜨는 투쟁 전개하겠다.”(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끝으로, 한상균 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총파업을 선포하고 최선을 다해 투쟁할 것을 호소했다.

“더 이상 구호에 그치는 총파업 하지 않겠다. 공무원 연금을 공격하고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 뺏고, 노조를 공격하는 정부에 맞서 필사즉생의 각오로 나서고 있다. ...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날 해외로 날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르기 전에 공무원 연금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했다. 부정부패 뿌리 뽑겠다는 가당치 않은 으름장을 놓았다. 진짜 손봐야 할 자들이 누구냐? ... 미친 정부를 끝내려면 미친 듯이 싸워야 한다.”

한편, 본대회에 앞서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노동안전 쟁취대회’가 열렸다.

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의 세월호 참사를 막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재해로 고통 받고 있는 건설연맹 플랜트노조 부위원장이 산재와 비정규직 확대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작업 중지권 보장하라”, “기업 살인법을 제정하라”, “규제 완화 중단하라”,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를 함께 외쳤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성우 아빠’ 최경덕 씨도 연대를 호소했고, 참가자들은 따뜻하고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3백67일 전에 금속노동자였다. 지금은 4.16 가족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노동자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유가족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가만히 있으라 하는 것도 똑같다. 아이들에게 그랬듯이 이제 부모들에게도 가만히 있으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책임자가 없다. 책임자는 어디 있나. 도와달라.”

세월호 인양 상징 의식이 시작됐다. “시행령안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노동자들은 4월 24일 파업을 발판으로 생명과 안전을 지키자고 결의를 모았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노동계급의 문제다. 희생된 사람들도 그렇지만, 참사의 배경에도 모두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는 체제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고유한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과도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총파업 선포대회가 끝난 후에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어진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참가하고 행진에도 앞장서 진실 규명 투쟁에 힘을 보탰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적극적으로 참가해 앞장선 일은 다른 많은 참가자들에게 힘이 됐다.

ⓒ<노동자 연대> 146호 | online 입력 201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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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게. 끝까지 행동할게!”


김지윤ㆍ김문성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조차 가슴 아파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차분한 애도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가족과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분노와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투쟁으로 가득 채웠다.

세월호 1주기인 16일, 낮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분향소에는 청년들의 긴 줄이 저녁까지 줄지 않았다. 서울광장에서 저녁에 열린 ‘대통령령 즉각 폐기! 선체인양 공식 선포! 4 · 16 약속의 밤’에는 5만여 명이 모였다. 사람들이 광장 주변 차도까지 넘쳤다.

이런 애도와 공감, 연대에 박근혜의 대답은 도발이었다. 지난 반 년 간 걸어 나와도 만날 수 있는 광화문광장의 유가족들을 외면해 온 박근혜는 (분노한 유가족이 미리 알고 분향소를 폐쇄하고 철수해 분향도 할 수 없고 유족도 만날 수 없는) 진도 팽목항에 가서 깜짝 쇼를 했다.

도통 박근혜 머리 아니면 생각도 못 할 것 같은 이 도둑 추모 쇼에 따라가 멋진 사진을 찍어 준 주류 언론들은 충실히 박근혜의 팽목항행 일정 관련 엠바고를 지켰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반성하고 약속한 것도 없이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라]”는 복장 뒤집는 소리나 해댔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해외 순방을 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경찰 차벽, 최루액, 경찰 폭력이 남았다. 경찰 방패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수술을 해야 할 지경이 된 성복 엄마 ‘권남희’ 씨가 남았다. 진실을 규명 못 한 상태에서는 추모를 할 수 없다며 분노와 투쟁으로 1주기를 맞자고 호소하던 수백 명의 유족들이 남았다. 자정이 넘어도 폭력경찰에 맞서 물러서지 않았던 수만 명의 성난 청년들, 학생들, 노동자들이 남았다. 분노가 남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세월호 국면을 정리하는 기회로 이용하려고 반쪽짜리 특별조사위원회마저 정부 시행령(안)으로 식물 상태로 만들려고 한 지 3주 만이다.

해고 요건 완화, 공무원연금 개악 등 노동자 공격으로 우파를 결속하고 지배계급 내에서 자신의 신뢰를 재구축해 재 · 보선 등에서 개가를 올리려 했던 박근혜의 계획은 지금 제 궤도를 가지 못하고 있다.


4 · 16 약속의 밤


평일임에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실 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5만여 명이 모였다. 지난해 8월 이후 최대 규모다. 서울만이 아니라 광주, 전남, 부산, 경남,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1주기 집회가 열려, 서울을 빼고도 1만 2천여 명(17일 정오에 집계된 수치만)이 참가했다.

집회 시작 시각 7시가 되기 전부터 이미 서울광장은 노란 리본을 달고 국화꽃을 든 대열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퇴근 시간이 지나자 대열은 삽시간에 불어나 이동이 힘들 정도였다. 지난해 11월 누더기 특별법 통과 이후 잠시 소강 상태인 듯 보였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1주기를 앞두고 정부가 쓰레기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며 다시금 들끓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날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삭발까지 감수하며 단호하게 투쟁에 앞장 선 유가족들의 호소가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핵심 구실을 했다.

이 날 집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줬다. 서명부스마다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노동자 연대> 부스에 마련된 ‘세월호 인양 요구’ 서명은 용지가 모자랄 정도였고, 참가자들은 뒷면에라도 서명을 하고 싶다고 이름을 써낼 정도였다.

특히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그룹을 지어서 참가한 것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대학생들은 이 날 도심행진과 사전집회를 열기도 했다. 조직된 학생 대열은 아니지만 개별적으로 집회에 참가한 청년들도 상당수 눈에 띠었다.

전명선 가족협의회 대표가 첫 발언으로 호소했다. “대통령, 국무총리 누구도 답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생명을 한낱 돈으로 치부하는 정부를 두고 볼 수 없다. 답이 나올 때까지 청와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앞장서 행동할 것이다.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같이 행동해 달라.”

이어진 영상에서는 소중한 가족을 떠나 보낸 유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더 잘해줄 걸” 하며 흐느끼는 한 어머니의 모습에 대열 여기저기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실종자 9명 중 한 명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아버지가 실종자 수습을 외면해 온 정부를 향한 울분을 쏟아냈다. “아직 바다 속에는 9명이 있다. 그들은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다.”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는 눈물을 참아가며 차분하고 또박또박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최윤아 씨의 발언은 많은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난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미안하다’입니다. 그런데 정작 잘못한 사람들은 왜 사과하지 않나요? ‘미안하다’고만 하고 ‘살려달라’는 우리의 손은 왜 잡아주지 않나요?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게 세월호를 인양해 주세요. 시행령을 폐기해 주세요. 희생자 분들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저희는 동생이 죽어 가는 걸 생방송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지 말아 주세요. 같이 행동해 주세요. 저희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말고 잡아주세요.”

발언이 끝나고 유가족들은 함께 세월호 모형을 온전히 인양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안치환 밴드, 이승환 밴드 등도 공연으로 유가족을 비롯한 5만여 명과 마음을 나눴다.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에, 해경의 증거 조작 등이 새롭게 폭로된 상황 때문인지 참가자들의 분노는 투쟁하는 분노로 느껴졌다. 광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고무 받았다. 


행진


이런 자신감과 분노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집회가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은 헌화 행렬조차 거대한 차벽으로 막았다. 태평로 전 차선을 청계천부터 서울광장까지 채운 행진 대열은 물러서지 않고 항의했다. 경찰의 불법 운운하는 해산 방송에는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불법? 구조 안 한 것은 합법이냐?”

행진 대열은 청계광장을 통해 행진을 이어갔다. 청계천에서 종로 방향으로 가는 다리 곳곳에서 경찰 차벽과 방패가 길을 가로막았지만, 그 곳곳마다 교복입은 청소년들, 대학생들들이 최루액을 뒤집어 써가며 싸웠다. 결국 종로3가에서 종로에 진출한 대열이 종각으로 행진하며 곳곳의 대열이 모두 종로로 합류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수만 명이 “정부 시행령안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쳤다. 유가족들과 청년들이 경찰차 위로 올라서 투쟁과 연대를 호소했다. 탄압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종각까지 밀고 갔던 행진 대열은 유가족 70명이 경복궁 앞에서 고립됐다는 말에 인사동 방향을 통해 경복궁을 가려고 시도했다. 이미 막차가 끊길 시점인데도 수천 명이 남아서 인사동 골목을 메우고, 길이 막히자 경찰의 봉쇄를 피해 삼삼오오 경복궁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경찰이 철통 같은 골목 봉쇄를 하는 바람에 많은 참가자들이 경복궁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경복궁 행을 막으려는 경찰 폭력으로 유가족 한 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조계사 앞에서 성복 엄마 권남희 씨가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조계사 뒤편과 종로구청 사이 골목 곳곳에서 작은 충돌들이 벌어졌다.

경복궁에서도 경찰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경찰이 전체를 포위하고 연행 시도를 한 것이다. 유가족들은 (연행 위험이 더 높은) 대학생들을 보호하려고 스크럼을 짜고 저항했다. 격렬하게 버텼지만 힘에 부쳤고 결국 네 명이 연행됐고, 이 날 총 10명이 연행됐다. 그 건너편 광화문광장 북단에서는 경복궁에 들어가지 못한 대학생들이 밤새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차벽과 경찰 병력으로 농성자들을 아침까지 에워쌌다. 17일 오전에는 쓰러진 유가족을 위해 부른 119 구급차 출입까지 방해하는 작태를 부렸다.

경찰의 이런 행태는 유가족들의 경복궁 농성이 새로운 상징이 돼 정권에 대한 저항이 확산될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정권 자체가 부패 문제로 휘청거리고 있다. 박근혜는 자신이 해외 순방으로 없는 동안, 공무원연금 개악도 해 놓으라고 지시하고, 세월호 도둑 추모쇼도 하고 출국했지만, 부패 혐의에 거짓말까지 들통 난 총리 이완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는 엎드려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태도다.

‘얼마나 어렵게 구한 총리인데 또 공석을 만들 수 없다’는 애처로운 오기도 있겠지만, 지금 부패 문제와 국민적 반감 속에서 총리 사퇴는 정권의 레임덕을 가속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이완구, 홍준표 따위 등이 아니라 박근혜의 대선자금 의혹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해경이 구조 과정 기록을 조작했고 검찰과 감사원이 이를 덮어줬다는 사실, 정부의 TF가 발표한 인양 검토 보고서가 사실은 지난해 5월에 이미 작성됐다는 사실 등이 폭로됐다. 구조를 안 하고, 수색도 안 하고, 오로지 진실 은폐에서만 조직적이고 치밀한 국가기관들의 복마전 같은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 것도 정부와 기득권세력의 부패 문제였다. 

결국, 부패 스캔들이 터진 지 2주 만에 박근혜 지지율은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모두 30퍼센트 대로 또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구 · 경북 지지율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이런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서울광장에 모인 5만여 명은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이 날 집회는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이 곡절을 겪을 수 있지만 원칙을 놓지 않고 이어간다면 정부의 위기, 새로운 사실 폭로 등과 맞물려 다시 부양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부패한 측근들을 감싸면서 유가족과 진실을 내치는 대통령에게 더는 관용을 보내기 힘들다는 분노가 표출됐다. 물론 그런 분노가 실현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야 하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들이 진짜로 본격화돼야 할 것이다.

일단 4월 18일 범국민추모대회에서 다시 한 번 진실을 밝히는 투쟁의 힘을 보여 주자.

ⓒ<노동자 연대> 146호 | online 입력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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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진상 규명 노력마저 침몰시키려는 박근혜 정부




3월 31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416시간 광화문 집중 항의행동 농성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 ‘세희 아빠’ 임종호 씨는 “정부가 특별법 같지도 않은 특별법까지 무력화하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3월 27일 입법예고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의 시행령(안)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이 시행령(안)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사실상 관제기구로 만들어 무력화시키는 안이다. 조사 대상인 행정부 관료가 특조위에 임명직으로 와서 돈과 인력을 통제할 수 있게 해 놓았고, 특조위의 진상 규명 범위를 독자 조사가 아니라 정부와 검찰, 감사원 등이 내놓은 조사 결과를 검증만 하도록 해 놓았다.


참으로 뻔뻔하고 사악한 작태다. 참사 직후 ‘적폐 척결’ 운운하던 박근혜는 본인이야말로 참사를 낳은 자본주의 적폐의 수장임을 다시 한 번 자인한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앞장섰다지만, 시행령은 기본으로 대통령령(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다 되도록 박근혜 정부는 구조를 못 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진상 규명 방해, 특별법 반대, 유가족과 항의 집회 탄압, 특별조사위원회 무력화, 유가족 마녀사냥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의 측근들도 “세월호 특조위는 세금 도둑” 운운하며 김빼기를 시도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야 야합으로 권한도 줄여 놓은 특조위를 아예 식물기구로 만들려는 것이다.(애초에 유가족이 요구한 특별법상 진상규명기구는 수사권, 기소권과 함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이 핵심 요건이었다.)


저들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노동계급과 민중의 안전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고 무시하는 이윤 경쟁 체제의 수혜자들이 만들어 낸 비극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의 수혜자들과 통치자들은 이익과 권력으로 유착돼 있다. 이런 유착 구조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비극을 선물했는지 드러나는 걸 그들이 반길 리 없지 않은가. 이들을 대변하는 박근혜 정부가 한사코 참사의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심지어 진정한 애도의 감정조차 표명한 바가 없는 이유다. 


정권에 불리한 이 쟁점이 다시 부각되고 그 때문에 재.보선에 영향을 주는 상황도 고려했을 것이다. 또한 세월호 쟁점이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걱정될 것이다. 최근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지도부가 보인 우클릭도 이런 행보에 힘을 보탠 듯하다.


전날인 3월 30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정부의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하려고 청와대 면담 요청을 하려던 ‘동수 아빠’ 정성욱 씨, ‘성호 아빠’ 최경덕 씨가 폭력으로 연행되기까지 했다. 이날 경찰의 폭력 봉쇄로 곳곳에서 유가족과 시민, 학생들이 고립되고 부상을 당해야 했다.


이래 놓고 정부는 보상금 문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유가족의 끈질긴 항의가 돈 때문인 것처럼 보이게 해 국가(정부) 책임론에 물타기하려는 것이자 세월호 참사 이슈를 정리 수순으로 내몰려는 수작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측이 요구한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지지하는 의견이 60퍼센트를 넘는다. 이는 당장 행동으로 표출되진 않아도 이 운동의 저변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들이 무력화하려는 반쪽짜리 특별법도 5백만 명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배경으로 그나마 제정될 수 있었다.





지금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사)4 · 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 · 16 가족협의회)’ 등은 3월 30일부터 참사 1주년인 4월 16일까지 416시간 시민긴급행동을 선언했다. 매일 저녁 광화문 촛불집회, 도보행진, 온라인 항의, 신문 전면 광고, 주말 대규모 집회 등이 계획돼 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 등 유가족들도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맨몸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이 천막 등의 설치를 막았기 때문이다. 비가 온 3월 31일 밤을 이들은 비닐 천 하나로 새워야 했다.


박근혜 정부의 꼼수와 탄압을 막아 내고 진실 규명을 위한 걸음이 앞으로 나가려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다시 고조되는 관심과 지지를 행동으로 모아 내야 한다. 민주노총이 조직하는 4월 총파업과 총력 투쟁이 세월호 참사 항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 이 글은 4월 1일에 <노동자 연대>에 실렸습니다. 더 자세한 소식은 ☞여기로



주요 투쟁 일정


4월 16일까지 매일 광화문 세월호광장 촛불집회

4월 4~5일 시민·가족 도보 행진(안산~광화문)  ※4월 5일 오후 5시 도착 예정.

4월 11일 시행령 폐기 세월호 인양 촉구 국민대회
4월 16일 참사 1주기 범국민추모제
4월 18일 세월호 참사 1년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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