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가 ‘문제적 발언’을 쏟아내며 ‘연합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심 전 대표는 11월 17일 민주당의 이른바 486 의원 모임인 ‘진보행동’ 출범식에 진보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386세대”란 말 대신 “87세대”라는 표현을 쓰자며 공통점을 부각했다.

그는 23일 부산 ‘진보광장’ 토론회에서 “나는 개혁세력에게 … ‘개혁세력이 진보 이슈를 먹어버려라’고 얘기한다. 반면에 진보 세력에게는 ‘개혁세력의 힘을 먹어버려라’고 얘기한다. 양 쪽 다 성찰이 필요하다. 이렇게 좁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7일 심상정의원이 민주당 모임에 참가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출처 민주당


심 전 대표가 했다는 “성찰”은 이렇다.

“용산, 비정규 집회... 열심히 외치고, 농성하고... 공허한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비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비를 함께 맞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각주:1]

이제 그에게 진보적 개혁의 주체는 국가기구에 올라탄정부(집권) or 의회에 있는 ― 엘리트들이고 대중은 수동적인 개혁의 수혜 대상일 뿐인 것일까.

이런 발상에 따라 그는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당 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상설협의체를 제안”했다[각주:2].


그래서 “개혁세력이 진보 이슈를 먹어버려라” 하는 말은 민주당이 비정규직 같은 이슈에 관심을 보여 연합의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진보세력에게
‘개혁세력의 힘을 먹어버려라’ 하는 그의 주문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각주:3].


투쟁은 “공허”하니 민주당과 연합하자?


근로자파견법과 비정규직 악법 등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공격해 온 장본인인 민주당과 손잡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우리 편의 입장을 후퇴시키고, 투쟁을 가로막을 수 있다[각주:4].


이래로부터 투쟁이 “공허”하다며, 민주당과 하는 협력을 통한 ‘위로부터 개혁’을 강조하는 그는 국가기구의 위신과 권능을 인정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만에 상승[常勝]의 최정예 우리 군은 연전 연패의 당나라 군대가 되어가고 있는 … 우려스런 현실”이라는 주장은 그의 이런 태도를 보여 준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등 침략적 한미군사동맹에 반대해 왔던 그로선 명백하게 진보에서 후퇴하는 변화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부원장 노항래는 “이제 진보·개혁 진영이 이명박 정부의 ‘안보 무능’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각주:5], 심 전 대표가 어떤 정치세력과 코드를 맞추고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성찰”을 통해 민주당의 “87세대”와 차이를 “좁혀 나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자신의 ‘연합정치’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연합’이라는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 스스로 진보의 가치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그의 ‘연합정치’는 진보적 대의와 강령에서 후퇴하는 선거공학적 정계 개편 시도에 가깝다.

심 전 대표가 “공허”하다고 폄하했지만, 용산 철거민들은 “열심히 외치고, 농성한” 덕분에 그나마 총리 사과와 생계 보장을 받아냈다. 최근에는 기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구호대로 “함께 비를 맞은” 사람들과 끈질기게 싸워서 승리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투쟁 속에서 자본가 야당과는 다른 진보적 대안을 건설하는 일이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었습니다.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9008

  1. 11월 23일 부산 진보광장 강연회에서. 출처는 심상정 블로그. 그래선지 그가 속한 진보신당이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지원에 열중하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울산을 방문하지 않았다. 다만, 부산에 입원해 있는 분신한 황인화 조합원에게만 위문 방문을 했다. [본문으로]
  2. 11월 13일 전태일 40주기 추도식에서. [본문으로]
  3. 개혁세력이 진보의 이슈를 붙잡는 게 공동의 의제로 연합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면, 진보세력이 개혁세력의 힘을 먹겠다는 것은 사실은 진보세력이 개혁세력과 조직을 합친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는 진보정당들이 더 큰 민주당 등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본문으로]
  4. 이것이 이명박의 비정규직법 개악 막기, 촛불항쟁 때 소고기 수입 막기, 미디어법 개악 막기, 타임오프제 막기, KEC/MBC 파업 등에서 숱하게 반복된 일이다. [본문으로]
  5. 12월 2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와 평화네트워크 공동 주최 토론회에서.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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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합을 넘어 미국 민주당식의 연합정당 모델을 …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위원장이 내놓은 주장이다. 야 5당이 민주당으로 뭉치자는 이른바 ‘빅 텐트’론이다. 

김 위원장은 “연합정당론이 오히려 진보정치를 유지ㆍ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빅 텐트’론은 민주당 수혈론에 불과할 뿐 결코 진보정치 유지ㆍ강화의 전략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다름아닌 미국 민주당에 개입한 좌파의 경험과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미국 좌파의 정치적 존재감이 원래 미약했던 건 아니다. 1912년 유진 뎁스가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서 6퍼센트를 얻을 즈음, 이 당은 연방 하원의원 두 명과 시장 70명, 지방의원 1천여 명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때 민주당은 노예소유주들의 당에서 시작한 자본가 당이었다. 

그러나 사회당 좌파는 미국노동총동맹(AFL) 소속 백인 숙련 노동자 사이에 퍼진 인종차별 의식과 정치적 실리주의에 진지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회당 우파가 민주당 대통령 윌슨과 동맹 정책을 추구해 당이 분열할 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으로 분리해 간) 일부 사회당 좌파를 포함해 좌파들이 민주당에 흡수되지는 않았기에 1930년대에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세계 대공황의 고통 속에서 노동자 투쟁이 부활한 것이다. 1932년에 ‘뉴딜’을 내세워 집권한 루스벨트가 복지제도를 일부 도입하고 노조 결성권과 임금 인상을 허용한 것은 이런 투쟁에 밀려서였다. 

그러자, ‘신’이민ㆍ흑인ㆍ여성 노동자들도 자신감을 얻고 투쟁에 동참했다. 투쟁 속에서 노동계급의 폭넓은 단결이 이뤄졌다. 

이런 배경에서 기업주들은 1936년 재선에 나선 루스벨트를 ‘친노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맞서 공산당은 루스벨트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공산당이 조직과 전략마저 민주당에 종속시킨 것이었다. AFL과 산업별조직회의(CIO)도 민주당 투표부대로 전락했다. 

그때 공산당은 스탈린의 인민전선 지침으로  루스벨트의 충실한 동맹자가 됐다. 민주당을 진보정당인 듯 분칠한 것도 모자라 충성을 증명하려고 1938년에는 기관지를 폐간했고 1944년엔 아예 공산당을 해산했다. 

공산당이 이렇게 정치ㆍ조직상으로 무장해제되자 루스벨트는 손쉽게 탄압으로 돌아서 본래 기반인 기업주들을 달랬고 제2차세계대전을 핑계로 그동안의 양보를 일부 거둬들였다.


신좌파 운동

그 뒤 민주당 정부는 한국전쟁을 벌이며 냉전 매카시즘을 일으켰고 곧이어 베트남전쟁을 시작해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미국 좌파와 노동운동은 대안적 진보정당을 만들지 않고 흑인 민권 운동과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폭발한 1960~1970년대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이 시기에 신좌파운동이 정치에서 한 일은 1972년 ‘반전’ 후보 맥거번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든 것뿐이다. 이에 민주당 주류는 사실상 공화당 닉슨을 지지했고 맥거번은 참패했다.

△“부시 복귀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 미국 반전운동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 낙선을 위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못 이겨 이라크 전쟁 지지자인 존 케리를 지지했다.

이로부터 신좌파운동은 오히려 민주당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끌어냈다. 이들은 1984년 대선에서 AFL-CIO 지도부와 함께 민주당에서도 보수파인 먼데일을 지지했다. 레이건의 보수혁명에 맞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흑인운동 등은 무지개연합을 꾸리고 제시 잭슨 목사를 먼데일의 당내 경쟁자로 내세웠다.

그러나 잭슨이 레이건 낙선을 위해 민주당의 ‘단결’에 이바지한 결과, 무지개연합의 좌파 개혁주의와 반제국주의 강령은 후퇴했다.[각주:1] 

결국 잭슨은 당내 경선에서도 패하고는 먼데일의 당선을 돕는 보수적 선거 캠페인에 동원됐다. 

2004년에도 무브온 등 풀뿌리 단체들은 반전후보 하워드 딘을 지지했다가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에 실패하자 이라크 전쟁 지지자인 존 케리 선거운동을 해야 했다.

요즘도 미국 노동조합의 정치기부금은 90퍼센트 넘게 민주당에게 가지만, 이는 민주당이 받은 기부금에서 10퍼센트를 조금 넘는다. 민주당은 정치자금의 대부분을 대기업주들에게 받는다. 민주당은 ‘연합정당’이 아니라 대기업주들의 당이었던 것이다. 

좌파가 미국 민주당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파산했다. 좌파는 민주당 안에서 질식당했다. 독립적 진보정당 없이 대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두 개의 신자유주의ㆍ제국주의 정당만이 존재하는 미국의 암울한 정치 상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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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이 진보진영이 참조할 모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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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당 주류는 당선가능성을 위해 민주당이 좌파라는 공격을 받으면 안 되니 잭슨의 선거강령을 온건화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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