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0일 ─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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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 ‘한 사람이라도 빨리빨리 필요하면 특공대도 보내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해 가지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하라’ 이렇게 해 가면서 보고 받으면서 이렇게 하루 종일 보냈어요. … 거기 119도 있고 다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서 제일 잘 알아서 하겠죠, 해경이.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 제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박근혜, 2017.1.1.)

“[참사 당일 구조에 나섰던 어선의]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가지고는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당일] 저녁 7시쯤에 몇몇 부모들이 돈을 걷어서 어선을 빌렸어요. … 애 아빠가 다녀와서는 ‘구조를 전혀 안 해. 보트 같은 것만 주변을 돌고 있어’라고 …”

(유가족 증언)

정의 세월호 참사 항의는 큰 지지와 탄압과 모욕 등 굴곡을 겪었지만, 결국 참사 책임자 박근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진 이미진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1천 일이 다 돼서야 내놓은 박근혜의 변명을 들으며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박근혜가 천진한 표정을 가장하며 3년 전 세월호 참사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할 때는 특히 그랬다.


정말 날짜를 헷갈린 것이든, 그 날 자신에게는 기억날 만큼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암시를 주려 수작을 부린 것이든 둘 다 어처구니 없고 가증스런 언사다.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에 아무런 관심도 안타까움도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그래도 ‘대통령’이라고 이런 작자에게 유가족들이 얘기 들어 달라고 애원한 시간이 억울할 뿐이다.


박근혜의 죄가 참사 당일에 희생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물론 그것만으로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의심할 정도로 큰 죄다.)


참사의 배경이 된 안전 규제 완화, 국가기관의 안전 예산 삭감, 안전 업무 일부 민영화에 앞장선 것이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친기업 행각에 윤활유 구실을 한 부패 구조의 꼭대기에도 박근혜 일당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윤 우선주의 친기업 정책들을 역대 정부들도 강화해 왔다고 해서 박근혜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박근혜는 그런 국가의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친기업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메르스 사태 때도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 무책임과 은폐로 일관하다가 온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사적 치부인 것을 알면서도 기업주들이 돈을 내놓은 것은 단지 협박이 아니라 감사와 청탁의 뜻도 있는 것이다.

팽목항 기다림의 시간은 분노가 자라 온 시간이다. ⓒ이윤선

직접 책임도 있다.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해 첫 해에만 6백 개 넘는 규제를 없앤 것이 박근혜다. 선장의 선박 안전 관리 보고 의무를 없애고 과적과 화물 결박 점검을 서류로 대체 가능하도록 한 것도 박근혜다. 재난 관리 예산을 줄이고 해경의 수색구조계를 폐지한 것도 박근혜다.


해경의 구조 능력 약화는 관련 업무 민영화와 예산 직접 삭감은 물론이고, 예산 절감을 목표로 한 기관별 성과주의가 관료적 무책임과 상명하복 분위기를 조장한 대가일 것이다.


세월호 과적의 중요한 배경이 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적극 찬성하고 공사를 서두른 것도 박근혜다. 그 배경인 미국의 군사 패권 정책에 앞장서 협력해 온 것도 박근혜다.


그런 호전적 정책이 우파 지지층을 달래고, 한국 기업주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박근혜가 기업주들이나 제국주의자들과는 죽이 척척 맞는 것은 독재자 박정희에게서 물려받은 계급본능일 것이다. 그러니 노동계급이 대부분인 희생자들의 목숨을 자기 어깨나 허리 잠깐 아픈 것보다도 하찮게 여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이윤 우선주의를 향한 사회적 문제제기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기업주들을 위해 온갖 반동을 수행해야 할 자신의 정부가 약화되는 일을 막으려고 박근혜는 지난 1천 일 동안 온갖 더러운 일들을 벌여 왔다. 


심지어 박근혜는 아비에게서 배운 공작정치 등 통치 기술을 유가족들에게 써 먹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이 자신의 안정적 통치에 방해된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래도 되는 존재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 이윤 우선주의와 친제국주의 정책에 대중적 문제제기가 일어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무책임하고 비밀스런 사생활이 드러나 위신이 떨어지는 것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진상규명 특별법을 반쪽으로 만들었고 그마저 ‘쓰레기 시행령’으로 다시 반토막 내 버렸다. 청와대(김기춘)와 국정원은 유가족을 ‘돈벌레’로 모욕하고,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를 ‘세금 도둑’으로 몰았다. (김기춘이 감사원 세월호 보고서 내용 변경에, 황교안과 우병우가 세월호 검찰 수사에 각각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들도 최근 제기됐다.)


가진 게 변변찮아 자식이 유일한 희망이고 미래인 사람들이 자식을 잃은 비통함을 하소연할 기회도, 죽은 이유라도 알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꺾어 버리려 한 것이다.


그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조대환을 자신의 마지막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만행들에 책임을 질 자가 박근혜 본인이라는 자백으로 볼 수밖에 없다.


비극의 상징물인 세월호가 사람들의 눈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악몽처럼 여겼을 것이다. 책임론이 다시 대두돼 원망과 분노가 다시 자신을 향할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거듭된 인양 결정 지연과 인양 실패는 ‘연출된 무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세월호 참사는 이윤 우선주의의 야만과 냉혹함, 노동계급 천대의 극치를 보여 줬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체제와 부패한 우익 정권의 합작품이다.


이 사건을 보면, 체제의 사악함을 집약해 놓은 듯한 박근혜 정부의 존재 자체를 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고 열 번이라도 탄핵을 당해야 마땅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항의는 이윤 우선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축하는 것이고, 노동계급적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수천만 노동자·민중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은 연인원 1천만 명이 참가한 정권 퇴진 운동에서 가장 지지를 받는 요구가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책임자 처벌도, 진상 규명도, 세월호 인양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악행들의 대가로 박근혜가 쫓겨나기 직전으로 몰렸다. 다만, 이는 최소한의 정의다.


지금이라도 유가족과 운동의 요구는 즉각 실현돼야 하고, 박근혜 정권은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희생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즉각적인 정권 퇴진과 적폐 청산 요구는 세월호 참사 해결과 한 몸이다.

멈춘 시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별이 돼 버린 아이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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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규명의 적들에게 또다시 배신당한 세월호 유가족들



<노동자 연대> 135호 | 발행 2014-10-06 | 입력 2014-10-02


박근혜는 9월 30일 각료회의에서 ‘야당의 발목 잡기 때문에 국정과 경제 살리기가 표류한다’고 했다. 특별법 타협 불가는 물론이고 단독 국회도 불사하라는 메시지를 새누리당에 전한 것이다.


바로 그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박영선은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완구와 3차 합의를 했다.


합의 내용은 ‘여야 합의로 특별검사 후보군 4인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려운 인사는 배제하고, 유족 참여는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박영선은 야당 몫의 추천권에 유가족의 의사를 반영하겠다고 하지만, 이렇게 뒤통수만 치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겠는가.


유족 참여는 보장하지 않으면서, 진실 규명에 적극적인 인사는 (중립성을 추구한답시고) 배제할 근거를 만들어 놨다. 정권의 압력에서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하길 바라는 유가족과 지지자들에게 합의문이 ‘최악의 공수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족대책위는 이를 거부하기로 했다.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 특검 후보 추천에서 배제되어야 할 주체는 여당이지 유가족 대표가 아닙니다. … [합의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특검의 범위를 정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9월 30일 가족대책위 기자회견문)


사실, 가족대책위는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라는 주장을 완화[해서라도] … 어떻게든 합의에 이르고 싶”어 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배신할 절호의 기회로 악용했고, 이는 또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자신감을 키워 줬다.


권영국 변호사의 말처럼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 여부가 특검의 독립성과 실효성이 실제로 담보되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 될 것”(<한겨레>)이었는데도 말이다.



유가족 음주 시비에 구속영장 청구? 이건 마녀사냥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조직을 총동원해 세월호 유가족 때문에 민생이 파탄 난다는 식의 흑색 선전을 해댔다. 이것이 먹히는 데에는, 유가족을 정략적으로만 이용해 온 새정치연합의 무능과 위선이 도움이 됐다.


결국 경찰은 가족대책위 전(前) 임원들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쌍방 폭행이냐, 아니냐’로 상호 진술이 엇갈리고, CCTV 화면에서도 불분명한 점이 있으며, 도주 우려도 없는 경미하고 흔한 음주 시비 사건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괘씸죄이자 여론몰이를 통한 가족대책위 압박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 일반인대책위도 가족대책위와 반목하고 사실상 여권에 유리한 언행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야비한 책략으로 ‘강요된 타협’을 이끌어 내려 한 것이다. 야합 이후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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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매도와 ‘순수 유족’론

저들이 두려워하는 계급적 분노와 박근혜 책임론




청와대 대변인 민경욱(이 자는 과거 국내 정치에 관련한 정보를 미국 CIA에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는 자다)은 “순수 유족” 운운하며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농성을 매도했다. 가짜 유족 쇼를 했던 정권이 가증스럽게도 ‘순수 유족’을 운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 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사람들과 그 자녀들을 대거 희생시킨 사건이다. 


그래서 계급적 공분이 크다. 이번 참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비정치적으로 여겨졌던 안전 문제가 계급과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우파의 협박은 계급적 각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분노한 노동계급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에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은 매우 ‘정치적’일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는 대정부 분노가 커지는 것도 시위 운동이 커지는 것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적반하장격 협박을 통해서 분노한 사람들을 이간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 책임론은 단지 대통령이어서 도의적 책임을 지라는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의 원인 중에 이 정부도 포함된다.


박근혜야말로 (안전, 건강, 환경 등에 관한) 기업 규제를 “쳐부술 적”, “암 덩어리”라며 ‘규제 완화를 위해 전쟁을 치르자’고 ‘정치 선동’을 해 왔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최초로 재난관리 예산을 줄이고 있다. 화물결박 점검 완화도 박근혜가 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므로 이 시스템의 현재 최고위 통치자인 박근혜를 향해 (퇴진이든 무엇이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이 경우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 죄인’이라는 식의 추모에 머물고 만다면 진정한 악을 제거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집회에서 정치적 구호와 주장이 나오면 ‘역풍’이 분다는 수세적 태도도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세월호 참사를 이루는 선박 전복과 구조 방기의 원인들이 모두 정치적인 문제들이고, 더구나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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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연대> 125호 5.9. 온라인 기사로. 그날 청와대 앞은 고요한 아우성이 넘쳐났다.


“세월호 사고는 ...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하고 망발을 한 KBS 보도국장 김시곤이 9일 낮 보도국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날 밤 유족들의 항의 방문 때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KBS 사장 길환영도 9일 낮 농성장에 직접 나와 유족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 앞에서 고개숙인 KBS 길환영 사장 길환영 KBS사장이 9일 세월호 침몰사고 유가족들이 모여 있는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앞에서 물의를 일으킨 김시곤 KBS보도국장과 관련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노동자 연대

유족 등 수백여 명이 청와대 앞까지 가서 진을 치고서야 그나마 조그만 결과물을 얻은 것이다. 유족들은 애초에 KBS 항의방문을 위한 상경이었던 만큼 이런 조처를 ‘사과’로 인정하고 농성을 마무리했다. 

유족들은 “저희 도와주러 오신 시민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게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나라를 바꿔 나갈 것입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하고 말했다.


계기


사실 KBS 김시곤의 망언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유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이미 '전원 구조' 같은 터무니없는 오보와 편향 보도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8일 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KBS를 둘러싼 경찰에게 울먹이며 길을 열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윤선

△KBS보도국장 김시곤이 세월호 참사와 교통사고 희생자를 비교하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8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여의도 KBS본사를 항의방문하고 있다. ⓒ이윤선

그런데 KBS 사측은 8일 밤 상경해 항의 방문을 한 유족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출입증이 없다며 문전박대했다. 새벽이 돼서야 얼굴을 보인 보도본부장은 ‘그런 발언은 없었다, 오해다’ 하는 어이없는 변명을 해댔다. 

사장의 사과와 당사자의 파면을 바란 유족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새벽에 청와대로 향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이날도 박근혜의 (자기 지지자가 아닌 노동계급의) 손님 맞이는 무례하고 야비하기 짝이 없었다. 만나서 말이라도 들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박근혜가 보낸 답은 경찰 약 1천여 명과 경찰차벽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둘러싼 경찰병력 5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항의하고 있다. ⓒ이미진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신분증 5월 9일 오후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밤샘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 신분증’을 메고 있다. ⓒ이미진

결국 유족들은 그 새벽에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여기에 전날 정부를 규탄하는 만민공동회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함께했다.

아침이 밝자 SNS와 뉴스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밤샘 항의방문과 농성으로 지친 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음료와 국물, 식사, 각종 물품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생겨났고, 농성자들이 주문한 도시락 1백 개의 가격을 대신 치른 시민도 있었다. 

오전 11시경에는 생존자 학생들의 가족도 농성에 합류했다. 이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재발 방지 대안 마련은 모든 피해자 가족의 요구라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해 사람들에게 힘을 줬다.

정오경에는 유족 대표들이 중간 보고를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 박준우와 홍보수석 이정현은 유족 대표들이 전한 구조 과정의 부조리함을 듣고는 ‘자신들은 전혀 그런 상황을 몰랐다’ 하고 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혀를 찼다.

이 정권은 구조 상황과 관련한 언론 보도들을 모니터링조차 안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권의 좋은 친구’인 MBC와 KBS 등과 조중동만 보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유족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잠 한숨 못 잔 몸으로 천막도 양산도 마다하며 오뉴월 땡볕을 견디고 있을 때, 박근혜는 또 반격에 골몰하는 지시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잠시 들어간 농성장 앞 청운동 주민센터 내 TV에서는 마침 박근혜의 긴급민생대책회의 발언이 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서민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박근혜는 “사회분열”이 경제회복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협박까지 했다.

몇백 미터 앞에 자신을 만나겠다고 온 피해자 가족들을 박대하면서, 생명과 안전, 고통과 한숨보다는 기업주들의 사업을 더 걱정한 것이다.

박근혜는 그동안에도 '조문 쇼' 등 온갖 책임 회피를 일삼고, 또 적반하장으로 ‘국가 개조’ 운운하며 이번 참사를 공공부문 ‘정상화’ 정책에 역이용할 궁리만 해 왔다. 

 

위기


그럼에도 오늘 정권의 조처는 박근혜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번 농성이 자칫 박근혜 책임론과 청와대 앞 대규모 농성으로 번질까 두려운 정권이 KBS 사장 길환영을 압박해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다. 

정무수석 박준우는 농성이 끝난 뒤 “사안이 굉장히 심각해 KBS에 최대한 노력을 해 달라고 부탁한 결과”라며 이런 추론을 사실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김시곤은 사임의 변에서 “사사건건 보도본부에 개입한 길환영 사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대놓고 불만을 토로했다. 왜곡 보도는 애초에 진정한 안전과 생명 구조 의지가 없었던 정부를 감싸려는 것이었으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자다.

이런 추잡한 자들의 자중지란에서 드러나듯이,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계급 편향 본질과 부패를 환히 드러내며 박근혜의 정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 정도 조처로 유족과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이 참사에 함께 슬퍼하며 분노하는 수백만 대중을 위로할 순 없다. 애초 보도국장 (자진 사임이 아닌) 파면을 요구한 유족들로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농성이 끝은 아니다. 9일 아침 청와대 앞 농성에 새로 합류한 생존자 가족 한 분의 말처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추모와 규탄의 결합은 물론이고, 올바른 분석과 대안을 위한 토론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운 딸의 얼굴을 쓰다듬는 어머니  박근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사진 속 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이미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생존 학생의 응원 메세지를 들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가족들은 생존 학생에게 "살아줘서 고맙다, 아들아 "외치며 화답했다. ⓒ이미진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사고 원인부터 구조, 수습 과정까지 자본주의 ‘이윤’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대중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준 사건이다. 후순위는커녕 도대체 순위에 들어있기나 할까 하는 의심은 정당한 것이다.

안전 문제에서 드러난 국가의 부패와 무능은 바로 이 우선순위에서 비롯한 것이다. 구조 첫날부터 해경 인력의 5분의 4가 구조가 아니라 유족 감시에 배치된 것은 현재의 국가가 무엇에 유능하고, 무엇에 무능한지 보여 줬다. 

이것은 단지 대한민국 국가(또는 체제)의 문제만이 아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사태 때 부시 정부의 연방재난관리청은 (마치 한국의 해경처럼) 수많은 기관의 수송 관련 도움 제안을 거절하고, 부시 정부 지지자인 기업에게 버스 수송 사업을 맡겼다. 그런데 이 업체는 트럭 업체였다!

당시 수난을 당한 (대부분 흑인 등 가난한 노동계급이었던) 사람들이 겨우 살아나 처음 맞닥뜨린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미국의 통치자들은 (일상의 기초가 붕괴된 그 난리통 속에서도) ‘질서 유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체제의 우선순위다. 그 때문에 노동계급 대중의 다수가 본능적으로 이번 사고를 내 일처럼 여기고, 피해자들에게 깊이 공감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노동계급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려면 많은 것들을 바꾸고 싸워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더는 통치자들이 시키는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경찰버스에 노란 종이배가 가득 붙어 있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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