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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8 진보통합 때문에 강령에서 ‘사회주의’ 삭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왜 진보대통합을 앞두고 당 강령을 손질하려는 것일까? 어차피 통합 진보정당에서 새로운 강령 제정 작업을 새로 해야 할 텐데 말이다

64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이정희 대표는 개정 강령안이 당 대회를 통과하면, 새 강령이 통합 협상의 강령 개정 논의에서 민주노동당의 초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방침은 정성희 최고위원의 수정안이 통과돼 확정됐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관련 구절’을 삭제해 앞으로 만들 통합진보정당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좀더 광범위한 세력을 포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판단”(<한겨레>)인 것이다

외연 확대를 위해서는 강령과 정책을 온건화해야 한다는 이런 생각 때문에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연석회의)진보대통합 최종 합의문 협상에서도 초안에 있던 “자본주의 극복” 문구가 빠졌다. 연석회의에 참가신청을 한 다함께가 ‘반자본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경험을 돌아봐도 민주노동당 현 강령의 ‘사회주의 관련 구절’이 외연 확대를 가로막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은 민주노동당이 창당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성장한 것,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열 명을 당선시키며 약진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당의 외연이 축소된 2008년 분당 사태 때도 현 강령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 뒤, 진보신당을 창당한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기층 당원들이 탈당한 것도 양대 정파 지도자들이 강요한 분열에 실망했기 때문이었지 강령의 ‘사회주의 관련 구절’ 때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당 지도부인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엔지오 성향의 곽정숙 의원 등이 ‘사회주의 강령’이 있는데도 2008년 민주노동당에 영입 인사로 입당했다

 

노동당 

 

이런 사례를을 볼 때 더 온건한 정치적 견해가 외연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정확한 가정이 아니며 현실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다

현대적 의회주의 정당들은 득표를 위해 ‘국민정당’을 표어로 내세우지만, 정강·정책과 실천은 고유의 계급 기반에 바탕한 이해관계를 추구한다

그래서 대자본가의 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노동계급에게 표를 얻지만, 노동계급을 위한 정책을 추구하지 않는다. 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는 민주당이 부자 증세를 꺼리고 FTA에 찬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이 비록 온전한 사회주의 정당도 아니고, 사회주의적 실천을 한 바도 없지만, 현재 당 강령의 ‘사회주의 관련 구절’은 민주노동당이 ‘계급정당’이고 다소 모호하더라도 ‘반자본주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사회주의나 반자본주의의 구체적 상이 모호한 것은 정파연합 정당이 가지는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통합 진보정당의 강령 초안으로서 ‘사회주의 관련 구절’을 빼려는 것은 ‘계급정당’의 성격을 후퇴시키거나 완화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의회주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이 더 중요해 보이겠지만, 국민은 계급 분단선으로 나뉘어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와 이건희는 모두 11표의 권리를 받는 ‘국민’이지만, 그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한쪽은 가진 것 없는 임금 노동자이고, 하나는 부와 권력을 소유한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화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통합하려는 이런 의회주의적 국민주의를 받아들이면 노동계급의 일관된 투쟁을 이끌거나 지지할 수 없게 된다.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KEC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공장 점거를 해산시키는 구실을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오히려 인구의 다수(한국에서는 60~70퍼센트 사이)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일관된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다수파 전략’이 될 수 있다.

한편, 정당의 이런 계급적 성격 때문에 진보정당의 정치적 주장 ―예를 들어 무상의료·무상교육 같은 급진적 주장 ―이 대중의 지지를 받느냐 하는 것은 당시의 계급 세력관계에 따른 대중의 정서에 달려 있다

20세기 초 창당 직후 자유당과 연합 노선을 펼쳤던 영국 노동당이 제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국유화(‘사회적 소유’) 강령을 채택하는 등 급진적 자세를 취한 것이 바로 이 사례다.  

당시 영국 노동계급은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은 고통에 대한 불만과 러시아혁명이 준 영감 때문에 급진화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영국 노동당은 국유화 강령을 채택하고도 얼마 후 집권당이 될 수 있었다. 비록 집권 후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말이다.  

 

우경화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잘못된 길을 가려는 것은 이들의 외연 확대가 민주대연합 노선에 바탕한 계급연합, 즉 진보대통합을 민주대연합의 부속물로 만드는 우경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처럼 개혁적이지만 친자본주의적인 당과 연합(합당)하고,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추진하려고 좌파적 강령을 삭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강령 후퇴는 진보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후퇴를 가져올 뿐이다.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정권 교체의 필요 때문에 이런 불필요한 타협과 후퇴를 용인하려 한다

그러나 1995년에 국유화 강령을 폐기한 ‘신노동당’ 노선 채택 과정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재앙인지 알 수 있다.  

당시 노동당 지지자들 상당수가 블레어의 신노동당 노선을 싫어했다. 좌파 지도자 아서 스카길은 “당헌 4(국유화 강령)가 없다면 노동당을 자유민주당이나 보수당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니 블레어의 한 전기작가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노동당 활동가들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그들은 다음 총선에서 노동당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최상의 적임자가 블레어라고 생각해서 그를 지지했지만, 사실은 블레어의 정책과 방침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처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지치고 1984년 광부 파업의 패배에서 노동운동이 전투성을 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선거에서라도 보수당 정권을 끝낼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에 결국 블레어 노선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권을 바꾼 결과는 쓰디썼다. 노동운동이 노동당을 압박하기는커녕 그 볼모가 됐다. 노동조합의 권리는 제약당했고, 복지는 후퇴했다. 결국 지금은 보수당이 재집권해 세계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됐다

한국의 좌파들이 블레어 노선을 수용한 영국 노동당 활동가들의 오류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드높고 여러 노동자 투쟁과 학생 투쟁에 대한 지지도 높다.  

민주당이 말로라도 복지와 진보를 말하는 것은 민주대연합의 청신호가 아니라 계급세력관계가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뜻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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