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밝혀진 부분적 사실들과 정황, 이 사회의 작동 원리들과 결합해 참사의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법정 기구로 수사하고 그것들을 확정된 진실로 내놓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실종과 관련해 중대 재난에 대한 정부의 보고 지휘 체계의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은폐의 장본인이 박근혜 정부다.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라는 세월호 집회 한 참가자의 팻말이 신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전선이기 때문이다. 책임 규명은 조금이라도 참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법정 기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참사의 책임자들에게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진실 파헤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셋째, 수사든 조사든 그 결과에 공신력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광주 학살이 전두환 신군부의 짓인 것을 당연히 알았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을 요구했다. 결국 1988년 국회 청문회,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과 유죄 판결로 광주항쟁은 ‘독재 정권의 민중 학살에 맞선 정당한 민중 저항’으로 국가적 차원의 공인을 받았다. 오늘날 우파들은 이를 함부로 뒤집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실 규명 기관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법이 설령 애초 요구대로 통과돼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정부에 요구하지 말고 대중 스스로 진상 규명에 나서자는 주장은 일면적이다. 또한 폐기가 아니라 문구 수정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 문구 수정 수준에서 타협하자는 운동 내 일각의 태도는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할 뿐이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는 진실 규명을 향한 장도의 첫 발



박근혜가 대통령령인 특별법 시행령(안)을 전격적으로 내놓은 것은 확실히 기습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기습이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항의 운동이 매우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 4월 4~5일 도보 행진과 마무리 집회에는 수천 명이 참가했다. 최근 여론조사들에서도 정부 시행령(안) 반대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 지지가 50~70퍼센트를 넘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공분은 잠복해 있었을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격랑의 정국 속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살 사실들이 새롭게 폭로되거나 정권이 무리수를 두는 등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한 <노동자 연대>(136호)의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이런 전망 속에서 당시 <노동자 연대>는 불필요한 양보를 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며 끈질기게 싸우자고 주장했었다.


지금 4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민주노총도 파업 요구안에 정부 시행령안 폐기 등 포함, 집회 적극 참가 등 세월호 참사 항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전교조도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저지를 위해 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연가 투쟁 형태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 시작한 “부패비리 발본색원” 작업은 김기춘, 허태열 등 친박 핵심 인사들로 불똥이 튀었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와 세월호 진실 침몰시키기 공세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박근혜는 늘 해 왔던대로 정부 시행령(안)을 쉽게 폐기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편에 유리한 여론과 집회 참가 등 행동 규모 사이에 여전히 격차가 있다.


따라서 요구안 후퇴가 아니라 유리한 요소를 이용해 운동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 문제가 민주노총의 파업과 연계돼 4·29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박근혜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이를 통해 세력균형이 우리 편에 유리해지면, 정부 시행령(안) 강행도 어렵겠지만, 설사 이를 통과시켜도 다시 개정하거나 심지어 특별법 자체를 새로 만드는 운동을 자극할 수도 있다. 유가족은 물론 특별조사위 이석태 위원장 등도 불복종하고 싸우겠다고 투쟁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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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넉 달 반]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는 동전의 앞뒷면



세월호 참사의 감춰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기업들과 국가 기관(국정원 포함)들의 부패와 무책임도 드러날 것이다. 민영화, 규제 완화 등과 연관된 유착과 무책임성도 드러날 것이다. 구조 지휘 책임을 내팽개친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이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7월 30일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의 국면 전환에 올인해 왔다. 마치 유가족이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 호도했다. 8월 26일 경제부총리 최경환, 29일 국무총리 정홍원 등이 나서서 경제 살리기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영산대 한성안 교수가 구체적 수치를 들어 반박했듯이, 세월호 참사와 경기 위축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말하는 ‘민생’은 평범한 노동자와 서민의 생계를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기업 이윤 등 부자들의 수익을 가리키는 기업주들과 그 정치인들의 코드명이다. 그래서 박근혜가 안달하는 ‘민생’ 대책은 카지노와 영리 병원 허용, 크루즈산업 육성 등 기업주 돈벌이에 관한 것들뿐이다.


박근혜는 심지어 이번 일을 “재난재해 보험상품 개발 촉진 … 안전 산업 육성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안전’ 부문 민영화 등 재난을 본격적으로 상품화ㆍ시장화하자는 것이다. 8월 12일 내놓은 ‘제6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 민영화 등 이윤과 시장 지향적 정책들로 가득하다.


바로 그런 정책들이 세월호 참사의 일부 원인들이었다. 참사를 낳은 지옥문을 더 크게 열어젖히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사고가 나든 말든, 구조를 하든 말든 보험 상품만 많아지면 되냐”며 울분을 토한다. 도대체 보험 가입을 안 해서 애꿎은 목숨이 가라앉았다는 말인가.


이처럼 노동계급 자녀들 구조에는 관심도 없던 정부가 기업주들 구조에는 전력을 다한다.


이런 방향 전환을 위해 박근혜는 경찰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도 더 억압하려 한다. 박근혜는 지난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습격한 강신용을 새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그는 8월 25일 취임식에서 “도로 점거 [같은] … 불법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에는 사전에 경찰력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우선순위


결국 세월호 참사 넉 달 반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이윤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 사람들의 목숨과 안전은 전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서 이 우선순위를 바꿀 수 없다고 선언하며 지금의 야비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재ㆍ보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최대한 밀어붙여 보겠다는 의도이다. 체제의 위기를 강조해 정치적 위기를 단속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경제 살리기’ 기치는, 특히 박근혜가 “의회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부디 경제활성화와 국민안전, 민생안정을 위한 핵심 법안들을 이번 8월 임시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한다]”고 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진영 내 자유주의ㆍ개혁주의 정치세력들 ― 체제의 우선순위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의사와 의지가 없는 정치세력들 ― 을 겨냥한, 특히 ‘장외투쟁’을 겨냥한 압박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당연한 요구다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ㆍ기소권을 달라는 요구는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 법안 자체는 사회 주류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협이 함께 만든 것이다. 법학자 수백 명도 법리상으로든 사법제도상으로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회 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국 같은 경우가 오히려 흔치 않는 경우다. 검찰이 법무부장관 직속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소권 요구가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반대 논리는 정권의 보위가 걱정된다는 말의 가증스런 앞가림일 뿐이다.


권력과 자본의 외압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구성된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수사해서 문제라는 비난도 옳지 않다. 


새누리당은 ‘자력 구제 금지 원칙’을 운운하는데, 피해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에 따른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고, 수사권과 기소권은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므로 유가족들의 요구는 자력 구제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자력 구제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학살당하던 민중이 국가권력을 봉기 등으로 심판하는 혁명적 자력 구제는 정당하다.)


오히려 (사고 원인의 일부인) 규제 완화와 구조 방기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하고, 조사 대상이 돼야 할 박근혜의 충복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수사 대상인) 피의자가 수사권을 갖겠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비문명적인 야만이다.


결국 저들이 거부할수록 진실과 책임 규명의 알맹이가 통치자들의 부패와 무책임을 밝히는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진상규명 기구가 꼭 필요하고, 이 기구가 설립된 뒤에도 엄청난 방해 공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진정한 ‘책임 규명’을 위해서는 정권과의 (정치적인) 정면 대결을 감수할 태세를 갖춘,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조직 노동운동이 중추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 <노동자 연대> 133호에 실림. http://wspap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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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넉 달 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 

조직 노동자 계급이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단식 46일째 만인 8월 28일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했다. 진상 규명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한 건 “여당하고 유가족하고 대화하는데 진전도 없고 … 장기전이 될 것 같아서”였다( ‘김현정의 뉴스쇼’).


정부와 우익의 음해 공작이 노모의 건강과 둘째 딸 사생활까지 위협하는 것도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는 “[진도 체육관] 이틀째부터 정부가 나를 밥 먹는 데까지 계속 따라다녔다”며 정부의 통제 시도도 폭로했다.


그러나 “단식을 풀었다는 것 자체가 극한 대치를 누그러뜨리고 타협의 물꼬를 트는 측면이 있[다]”며 국회 협상에 기대를 걸자는 자유주의적 진단은 자의적인 것이다. 


바로 그런 해석을 우려해 김영오 씨는 단식 중단 기자회견 도중 가족대책위 대변인에게 문자를 보내 “문재인 의원 등 단식 중인 의원들에게 국회로 돌아가라는 것이 장외투쟁 중단하시라는 게 아니고, 단식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으로 힘을 모아 달라는 뜻”이라고 거듭 밝혔다.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된 진실 규명 법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뻔뻔하다. 단식 중단이 자신들의 면담 등 소통 노력 때문이란다. 가족대책위는 곧바로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축했다. 새누리당과의 면담은 예상대로 별 무소득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진실 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국가정보원이 김영오 씨 주치의를 불법 사찰한 일도 들통났다. 심지어 박근혜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면담 요구도 외면했다. 생존 학생들은 자신들이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했다”고 말한다. 눈앞에서 구경만 하던 해경들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적반하장으로 박근혜는 참사 원인의 일부인 친기업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도리어 확대하려 한다. 노동계급 사람들과 그 자녀들의 생명 구조를 외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살아남은 유가족과 나머지 노동계급의 삶도 유린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김영오 씨가 병원에 실려간 6일 동안 동조단식자가 전국에서 약 3만 명에 이르렀다. 


8월 27일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파업 후 광화문으로 집결해 ‘김영오 조합원 생명살림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홈플러스노조는 29일 파업을 하고 세월호 특별법 촉구 집회를 하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조직 노동운동이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고 참사 책임자들 모두에게 크고 작은 책임을 묻는 일은 정의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과정이다.


또,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장 안전, 민영화, 핵발전 등의 문제도 의제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에 내 일처럼 나서야 한다. 실제로 내 일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이런 참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문제의 원인이 이윤 경쟁에 있는 만큼 파업이라는 수단이 사용돼야 효과적이다. 파업으로 자본가들의 이윤을 공격해야 지백계급에게 최대한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내 일처럼 분노한 상황에서 하루 총파업 정도가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금속노조의 28일 상경 파업 대오 다수가 민주노총의 광화문 집회로 오지 않고 귀향한 것은 아쉽다. 파업과 세월호 문제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특히 그날 주력 대오였던 현대차와 기아차지부 집행부들의 협소한 경제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 <노동자 연대> 133호에 실림. http://wspap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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