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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08 12월 5일 행진이 평화적이어서 문제였나

12월 5일에 평화 행진을 한 것이 정권의 평화/폭력 프레임에 갇혀 집회의 실질적 요구가 오히려 부각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봤다. 심지어 그 때문에 경찰의 평화시위 프레임만 강화시켜줬다는 것이다.


완전히 자기모순적인 단견이다. 정작 그 프레임에 갇힌 건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습게도 판단 기준이 평화시위냐, 아니냐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이 행진을 불허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쪽의 어리숙한 대응에 신나서 ‘오버’하다가 삐긋했고, 그 틈을 타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경찰의 단기 전술 목표는 실패했다.(물론 저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보복할 것이다.)


언론 보도가 평화시위 프레임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폭력시위를 한 11월 14일은 그들이 우리 요구를 잘 보도해 주던가? 프레임 개념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프레임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서 ‘힘’이라는 요소를 무시한다. 그들과 돈과 권력, 언론을 가지고 있다.


집회·시위의 목적은 참가자들의 사기와 연대의식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요구를 알리고 동참할 의지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기도 진작하려는 것이다.


그 점에서 평화/폭력은 그 목적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것이다.(사실 그 여부를 우리가 100% 선택하기도 힘들다. 폴리스라인 따라서 행진만 하든 물리적 대결이든 둘 다 물신숭배하지 말라는 얘기다.) 12월 5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냐가 중요했다. 그것 자체가 위축되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효과를 낼 것이었다.


이날 집회 진행이나 내용적 구성에서 여러 차례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건 내용의 문제였지 형식의 약점은 아니었다. 사실 그날 물리적 충돌론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박근혜도 없는 청와대로 돌진? 경찰의 살인진압을 부각시켜야 하는 때 이목이 집중된 집회에서 불필요한 충돌이 어떤 효과를 냈을까? 참가자 다수는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었는가? 아마 일부가 그런 도발을 했다면 십중팔구 우리 편에게서도 욕을 먹었을 것이다.


사실 “노동개혁” 입법에 대한 박근혜의 재촉과 ‘노동계’의 반대 등에 관한 뉴스 보도가 (해당 매체의 가치판단을 떠나서) 계속 되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주도했다는 사실 자체로 노동 개악 반대라는 의제는 어느 정도 전달되게 돼 있다.(그러니 언론 프레임 때문에 대중에게 잘 전달이 안 된다는 점만 일면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지각을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3만 명 넘게 평화행진을 했는데 그게 못마땅한 사람들은 이 집회로 사기를 얻은 많은 사람들을 무시할 뿐아니라, 사실상 법원의 집회 허가 결정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그것이 이날 동원 성공에 기여한 바가 있는데도 말이다. 맥락이 완전히 엉망진창인 것이다.


그래서 12월 5일 집회가 전투적이지 않았고 경찰의 손아귀에 놀아나서 문제라는 식으로 평가하며 현상적인 물리적 충돌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지금 박근혜의 개악 공세에 직면한 (그리고 반격의 계기를 잡을 기회를 이미 여러 차례 놓친) 노동자들과 피억압 대중에게 필요한 진짜 과제를 냉철하게(전략적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방해한다.


지금은 총궐기 같은 대규모 동원 집회는 중요하다.(특히 지금은 서울로 모이는 게 중요하다.), 다만 냉정히 말해 하루짜리 시위들을 몇 주 건너 한번씩 하는 수준으로는 박근혜 개악 공세를 막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 쪽 수단보다) 저들이 더 강도 높은 수단들을 필사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파업, 그것도 중요 사업장들이 적극 앞장서 기업들에 실질적 타격을 주는 파업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박근혜 정부가 움찔할 것이고, 지배계급 내부에서 지금의 막가파 강공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에 회의가 생겨날 것이다.


다만 객관적으로 필요한 이 수단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럼 그렇게 가도록 하는 데서 무엇이 더 효과적일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동에 더 동참하게 하면서 파업으로 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도록 노력하고, 그것을 통해 지도부의 진지한 파업 조직을 압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 아니면 충동적이고 불필요한 충돌로 역습의 빌미를 제공해 한사코 전면 투쟁을 회피하는 일부 상층 지도자들이 투쟁을 미루는 일을 정당화할 수 있게 해 줄 것인가.


분명히 전자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어렵다. 시간이 촉박한데, 시간이 걸리는 과제다. 그렇다고 거칠 수밖에 없는 단계단계들을 의욕만으로 건너 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단순히 ‘나가자 싸우자’만으론 부족하고, 잘 벼려진 ‘정치’가 중요하다. 시야가 협소하지 않고 계급 분석이 정확한. 수동(관조)적이지 않으면서도 조급하거나 경솔하지 않은. 그리고 책임성! 있는.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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