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이 한나라당을 최종 정리하는 역할을 할 줄이야.” 정두언의 탄식이다.

2008년 당 대표 경선 당시 박희태 쪽에서 돈봉투를 뿌렸다는 폭로는 풍전등화의 한나라당을 ‘올킬’하는 태풍이 되고 있다. 차떼기당·성나라당에 이어 ‘돈봉투당’이 된 것이다. “깊은 한숨이 전염병처럼 방을 돌았다”는 1월 초 한나라당 의원 오찬 풍경은 이런 위기감의 한 단면이다.

난파선의 침몰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서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가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친이계와 연합해 박근혜를 견제하던 정몽준은, 총부리를 돌려 친이계가 당시 자신을 견제하려고 박희태를 지원했다고 폭로했다. 사실상 돈 살포 배후로 이명박과 이상득을 지목한 것이다.

홍준표는 친이계 핵심 안상수와 겨뤘던 2010년 당대표 선거에서도 돈과 향응 제공이 있었다고 폭로하더니, 10일에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겨룬 2007년 대선 경선에서도 돈봉투가 돌았다고 폭로했다. 대선 경선 돈봉투 의혹 폭로에는 친이계 출신 원희룡도 가세했다.

돈봉투 자금 출처로 이명박의 대선 잔금도 거론된다. MB 측근인 청와대 정무수석 김효재가 돈배달을 했다는 의혹이 일자 검찰은 돈봉투 전달자가 박희태의 비서라고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김효재와 박희태(의 비서들은) 모두 돈봉투와 디도스 의혹에 연루돼 있다. 박희태는 이명박과 이상득의 지원으로 당대표를 하고 국회의장까지 올랐다.

이제 한나라당과 정권 실세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도 비례대표 돈 공천 의혹을 제기했다.

이상득을 캐던 검찰은 이명박 정권에서 이상득·강만수 못지 않은 실세인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수백 억 규모의 비리 의혹이다. 게다가 ‘상왕’ 이상득은 물론이고 내곡동 사저 의혹으로 부인과 아들도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이 개입된 게 분명하다면 대통령 탄핵 사안”이라는 선관위 사이버테러 사건도 여전히 이명박의 뒷목을 잡고 있다.

한편, 검찰은 디도스 사건이 최구식과 박희태의 비서 둘이 공모해 ‘공을 세워 윗선에 더 잘 보이려고 일으킨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공을 세우려고 범행을 기획·실행했다는 비서관들이 범행 전 또는 범행 성공 뒤 ‘의원님’들께 ‘전과’를 왜 알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상득과 최시중을 건드린 검찰의 이런 허술함이 오히려 청와대 개입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 관계자는 돈봉투 사건을 두고 “실비를 보전해 주는 관행까지 문제 삼아 의혹을 제기하면, 여야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어리석게 돈 살포를 두둔해 제 무덤을 파는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명박으로선 레임덕을 넘어 자칫 데드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데드덕


일부에서는 박근혜 쪽에서 친이계를 공격하고 물갈이 하기 위해 ‘돈봉투’를 터뜨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은 지금 한나라당이 직면한 위기를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박근혜 비대위의 상황통제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은 ‘주류 엘리트가 지배하는 집권당의 부패와 정치 위기’라는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누구의 음모로 누가 희생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 주류 모두 부패의 주범이고, 바로 그 때문에 폭발 직전인 대중의 불신과 분노가 원심력으로 작용해 분열과 해체 위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BBK 소방수를 자임해 2008년 공천을 받은 뒤 “이상득의 양아들”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고승덕이 공천 갈등 속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자체가 원심력이 더 커진 현 위기의 방증이다.

이런 상황은 비대위로 전면에 나선 박근혜에게도 치명타다. (박근혜의 전력과 본질을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링크한 기사를 참조하시오. ☞ 바로 가기

우선 강경 친이계 일부(와 비리 혐의자들)이 박근혜 음모론을 믿고 보복 폭로를 하려 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부패 폭로 아귀다툼 복마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라인도 한나라당 부패한 우파 정치의 중심에 서 왔던 세력이기 때문이다. 

△명박과 친박 모두 쪽박찰 날이 임박하고 있다. 틈을 주지 말고 투쟁으로 압박해야 한다. ⓒ사진 출처 청와대


박근혜로 치면, 박정희 독재의 정치적 복권을 추구하고, 박정희가 부정축재한 자산으로 떵떵거리며 살아온 것이다. 또 박근혜는 2002년과 2008년 두 번이나 한나라당에서 분열한 전력이 있다.[각주:1] 누가 누굴 몰아세울 처지가 모두 못 되는 것이다

박근혜가 우파적 부패 정치를 청산하려면 자기 살점을 베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적전 분열은 박근혜의 대선가도에도 치명타다. 
그래서 박근혜는 인적 쇄신론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정책 쇄신론에 비중을 둬 온 것[각주:2]이다. 대선에 도움을 받으려면 이명박과 완전히 갈라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박근혜와 이명박 사이에 퇴임 후 안전 보장 등을 놓고 밀약이 있다는 설까지 나온 바 있다박근혜는 한나라당 정강에서 “보수” 용어를 삭제하자는 의견은 ‘논의된 바 없다’고 즉답을 피했지만, ‘현정권 실세 자진 용퇴론’은 개인의 의견이라며 분명하게 거리를 뒀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 비대위도 어쩔 수 없이 검찰에 돈봉투 의혹 등을 수사해 달라고 의뢰해야 하는 처지다. 박근혜의 바람과 달리 ‘헤쳐모여 식 재창당론’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10
일 정두언, 남경필 등 친이계 출신 쇄신파들은 해체 후 재창당이 아니면 탈당하겠다고 박근혜를 압박했다. 사실상 이명박과 결별하자는 것이다. 자칫하면 한나라당이 난파선에서 유령선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11일 열린 박세일의 자칭 중도신당 창당발기인대회에는 예전 같으면 한나라당 공천 후보로 줄을 섰을 전직 의원과 고위 관료 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러나 창당을 주도한 인물들의 면면만 봐도 ‘보수낡은당’인 이 당은 한나라당을 대체하기보다 보수대분열의 한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만사돈통당


그것은 쓰나미 같은 반한나라당 태풍의 뿌리가 반보수·반특권층 정서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돈봉투 의혹이 터지기 전 여론조사에서 이미 한나라당의 쇄신을 믿을 수 없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었고, ‘이 당의 가장 큰 문제점이 부자정당’이라는 응답이 40퍼센트나 됐다.

최근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는 2004년과 비교해 자신이 보수 지향이라는 답변이 8.5퍼센트나 줄었다. 특히 20·30대는 자신의 성향이 보수라는 답변이 11퍼센트 남짓에 그쳤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층에서조차 “보수” 용어 삭제에 절반이 찬성했다.

따라서 박근혜의 딜레마는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중도층에 구애를 해도 어지간한 변화로는 반한나라당 정서를 달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강경 우파들이 작은 변화마저도 ‘좌파’ 운운하며 반발해 ‘보수대분열’만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박근혜식 공천 쇄신이 동아줄이 되기도 힘들 것이다. 상황이 워낙 더러워서 이름값 있는 누구라도 이런 시궁창에 오길 꺼릴 것이 분명한 데다, 백번 양보해 설사 1급 청정수를 갖다 붓는다 해도 시궁창에 부은 물이 1급 청정도를 유지할 순 없다.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와 ‘따먹문수’, 사법 정의를 지키는 소신 개혁 검사로 이름 날리던 ‘보온상수’와 ‘막말준표’, 이들 모두 1996년 신한국당 창당시에는 성공적인 개혁 공천으로 불렸다. 2000년 총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영입 인사는 오세훈이었다.

10년이나 야당으로 지낸 뒤에는 그 때처럼 쌈박한 영입이 쉽지 않은 듯하다. 이명박이 주도한 2008년에조차 조전혁과 강용석 따위가 세대교체 영입파들이었다.

그럼에도 저들은 역겨운 쇼를 하며 일부를 달래 불만을 무마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돌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칠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비대위는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회의’ 등을 개최하며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좌파 마녀사냥을 다시 확대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거짓말과 꼬리 자르기를 통해 디도스와 돈봉투 사건을 적당히 덮어 버리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위기를 무마할 시간을 주지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총선까지 기다리지 말고 뿌리부터 썩은 정권에 대한 분노를 지금부터 행동으로 조직해야 한다.

최근 유사 전례로 비교되곤 하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처음엔 사건 주범 모두 진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대통령 닉슨이 사임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흑인 민권운동 등이 정권의 위기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1퍼센트 특권층 정치의 위기’를 진보 대안 세력의 성장 기회로 삼으려면 정권을 총체적으로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 73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 가기 
 

  1. 2002년은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다고 복당했고, 2008년엔 자신만 남고 공천탈락한 친박계들을 탈당시켜 친박연대로 선거에 임했다. [본문으로]
  2. 박근혜 비대위는 정책적으로 완고한 신자유주의보다는 국가 개입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경향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를 두고 완전한 중도화라거나 커다란 차별화라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예민한 정국에서는 미묘한 정책적 차이가 훨씬 더 큰 정치적 균열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요즘 경찰과 검찰 출입 기자들은 정치부 기자들에게 이명박 가계도 챙겨주느라 바쁘다고 한다. 친인척 중에 비리 연루 의혹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이명박 일가의 탐욕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명박에게 위협인 것은, 권력형 비리가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부에서 폭로되고 있고, 이를 파헤치는 주체가 그동안 이 정권을 떠받쳐 온 검찰과 경찰이라는 데 있다. 권력기관에 대한 이명박의 통제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10월에 폭로된 내곡동 사저 의혹은 청와대 인사가 소스를 제공했다는 것이 《신동아》 취재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상득 보좌관들이 차명계좌로 거액을 돈세탁한 사실을 들춰냈다. 

일가 비리가 터져 나온 시점도 역대 정권과 견줘 훨씬 빠르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아들들의 비리는 집권 5년차에 가서야 드러났다.  

권력기관들 사이의 암투 때문에 이 과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디도스 사건이 밝혀지는 과정이 바로 그랬다. 이 사건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갈등 과정에서 폭로된 것이다.

경찰은 충성의 대가로 바랐던 수사권을 얻지 못하자 디도스 사건을 터뜨렸지만[각주:1], 이명박을 위해 [그리고 협상용으로] 몇가지[각주:2]를 감추려한 듯 하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그 부분까지 밝히며 [경찰과 결과적으로] 이명박을 물먹였다. 

권력기관끼리 기습과 역공을 하는 과정에서 이제 청와대 몸통설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탈당을 강요당한 한나라당 최구식이 “혼자 죽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도 심상치 않다. 이 사건은 갈수록 워터게이트를 닮아가는데, 워터게이트에서 결정타는 닉슨의 거짓말이었다. 이명박의 거짓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도저히 형광등 1백 개의 아우라를 느낄 수 없는 면면들.

 

물론 이명박은 김정일 사망 정국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나고도 마냥 이 정국이 유지될 수는 없다. 12월 26일 서울대 학생회 대표자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디도스 사건의 청와대 몸통 의혹을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런 움직임과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수 있고 이것은 권력기관의 마비와 암투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김영삼 정부도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나면서 5조 원이나 되는 불법 정치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이미 민주노총 총파업으로 기력을 잃은 김영삼은 상황을 무마하려고 5월에 아들 김현철을 구속해야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5월 내내 서울 도심에서 강력한 거리 시위를 벌였다.

결국 당시 대권 후보였던 이회창은 김영삼을 신한국당에서 쫓아내고 당명도 한나라당으로 바꿨지만 대선 패배와 정권 상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돌아보면, 정권 말기에 다음 정권을 놓고 지배자들끼리 벌이는 암투가 극에 달해 권력형 비리가 폭로되고 레임덕이 심화되면서 대중투쟁을 자극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이 모두 권력형 비리 폭로와 집권당 분열, 대중 불만의 고조 속에서 집권 4~5년차에 자신이 만든 집권당에서 쫓겨났다.
 

정권 재창출
 
박근혜의 처지도 1997년 이회창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 재창출을 하려면 이명박과 선을 긋고 중도층 대중을 흡수해야 하는데, 이는 보수층의 분열을 낳을 수 있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이인제와 갈라서 꼬마민주당과 합당하자, 이인제가 박정희 흉내를 내고 다니며 보수층 표를 노린 것도 이런 효과였다.  

그렇다고 보수층 결집에 치중하느라 이명박 정부를 감싸면 박근혜도 함께 가라앉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비대위의 특징은 ‘좌충우돌’과 ‘동요’가 될 것이다. 

박근혜는 보수층부터 잡자고 부자 증세에 반대하며 이명박과 타협하고, 국회 차원의 김정일 조문단 구성에 반대하며 우익들을 기쁘게 했지만, 막상 한나라당 비대위 구성은 ‘비MB’ 보수 인사들로 구성했다. 한미FTA에 반대표를 던졌던 황영철을 대변인으로, 4년 동안 이명박의 정책을 줄곧 비판해 왔던 김종인과 이상돈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 날치기에 동조하는 등 본질에서 이명박과 다를 바 없는 박근혜호에 들러리로 승선한 이들이 눈속임 이상의 ‘쇄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비대위의 면면을 들춰 보면 박정희와 연관 있는 인물이거나 그런 가문 출신들이 꽤 있다.(김종인, 이양희, 김세연 등) 

그래서 박근혜가 최근 당정청회의에 불참하며 날을 세웠지만 이명박과의 관계를 놓고 지금처럼 동요를 거듭할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의 쇄신은 정책쇄신이 먼저”라는 말도 인적 쇄신, 이명박과의 결별이 가져올 위험을 우회해서 차별화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BBK 의혹 폭로 장본인인 박근혜로서도 BBK 의혹이 다시 불거지는 것이 부담스런 일이다. 이미 인터넷에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가 ‘BBK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고 말한 동영상이 돌고 있다.  
결국 박근혜 비대위는 이명박 비리의 뒷수습을 하는 ‘비리’대책위가 될 듯하다. 오죽하면 친박 윤상현은 “박근혜 대표가 철거 전문 업체냐?”고 한탄했겠는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수록 박근혜 비대위는 점점 이명박과 척을 지는 방향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것은 다시금 정권의 마비 상태와 집권당의 분열, 해체 위기를 한층 가속할 것이다. 정치 위기와 경제 위기 모두 너무 심각해 이명박과 박근혜 모두 미래가 밝지 않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명박과 박근혜 비대위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던져 준 것은 민주통합당이다. 진보진영은 이런 민주통합당의 행보를 비판해야 한다. 

지배자들의 암투가 치열하고, 권력기관들이 이완되는 틈을 이용해 이명박 정부의 고통전가 정책과 각종 부패 추문에 맞서는 대중투쟁을 조직하며 독립적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 한미FTA 반대 투쟁의 분출이 이명박의 위기와 분열을 더 앞당겼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글은 약간 줄여 <레프트21>72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 보기    


  1. [공교롭게도 최구식의 친형이 대검 부장검사이고, 이 사건과 동시에 터뜨린 사건이 벤츠 여검사 건이다.] [본문으로]
  2. 사건 전날, 공 씨 등 사건 주도 보좌관들 모임에 홍준표 비서 출신 청와대 행정관이 참석한 사실, 이 보좌관들과 사건 결행한 팀들 사이에 거액의 돈이 오간 사실 등이 그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레임덕이 이미 시작된 이명박에게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는 여러모로 중요했다.

최근 유로존 위기의 재발과 중국 경제의 정체 상황은 2008년 위기 이후 수출 중심의 성장 우선 정책으로 경제 위기에 대응해 왔던 한국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치솟는 물가와 9백조 원에 이른 가계부채도 뇌관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 한 해 대중의 복지 확대 요구는 커져 왔다. 바로 이 때문에 이런 요구를 거스르려던 서울시장 오세훈(과 나경원 등)이 하루아침에 정치무대에서 퇴출된 것이다. 한진중공업에서 거의 관철시켰던 정리해고를 ‘희망버스’ 운동으로 다시 되돌린 것도 기업주들의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의 이중고에 빠진 지배계급에게는 반격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조직 노동자운동을 전면 공격하는 것은 절박성이 아직은 크지 않고, 지배계급의 자신감도 높지 않아 쉽지 않은옵션이었다. 외부(미국 중심의 자유시장 세계화=강대국의 정치적 압력과 다국적기업들의 공세)의 힘을 빌어 신자유주의 재편을 완수하려는 한미FTA 비준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려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그래서 전경련은 반대 시위와 여론 때문에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자, 1117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부진과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내수위축 등으로 내년도 우리 경제가 3퍼센트 중반의 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면서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해 국회가 조속히 비준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촉구”했다.

이미 레임덕 위기에 빠진 이명박은 무리수를 둬서라도 한미FTA를 관철하면 훼손된 지배계급의 신임을 얻어 정치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임기 내내 야당 행세를 하던 박근혜도 계급 기반상 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우파는 결집시키고, 한미FTA 원조 추진세력과 섞여 있는 반MB 야권은 분열시키는 효과도 기대했을 것이다. 감히 말이다. 

그래서 날치기 후 거리에서 FTA 비준 무효 투쟁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겁을 잔뜩 먹었으면서도 “옳은 일은 반대가 있어도 해야 한다”고 헛된 큰 소리를 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신뢰와 정당성을 잃은 레임덕 정부의 도박이 오히려 패가망신을 불렀다는 걸 깨닫는 데는 보름 남짓이면 충분했다. 거리의 저항은 더 확대됐고, 레임덕 위기는 도리어 심화됐다.

단결을 기대했던 집권당은 오히려 해체 위기로 몰렸고, 권력기관은 제멋대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으며, 민주당은 운동의 구심력 때문에 아직도 등원을 못해 국회마저 마비됐다.

한나라당 홍준표는 “부자 증세”와 “복지 예산 확대” 등의 사탕발림으로 불만을 무마하고 민주당에게 등원 압력을 넣었으나 먹히지 않았고 그나마 박근혜의 어깃장으로 유야무야됐다.

무엇보다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 두드러졌다. 보수적인 부장판사들마저 한미FTA가 사법주권을 팔아넘긴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항명에 나선 것이다.


정당성 위기


이런 혼란 속에서 수사권 문제로 정권에 불만을 품은 경찰은 10·26 재보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 테러”의 범인이 한나라당 의원 최구식의 공모 비서라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역 먹으라고 주인을 문 것이다. 몇 가지 의혹은 숨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Ddos 사건은 한나라당에 “피니시 블로”가 됐다. 집권당이 국가기관을 “테러”했다는 사실 때문에 여당은 “통치의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후폭풍으로 한나라당 지도부는 공중분해됐다. 집권당이 위에서부터 해체되면서 권력기관들끼리 충돌하는 양상이 되고 있다. 



사태가 너무 커져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이제 경찰은 청와대 연루설을 감추며 개인의 단독 범행이라고 무마하려 하지만, 유승민조차 단독범행설은 “한나라당 의원인 나로서도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로 설득력이 없다.
 

이제 청와대의 수사 상황 인지 여부와 연루설, 사건을 알고도 침묵한 국정원 등 의혹을 해명할 책임은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검찰이 이제까지처럼 정권을 비호해 줄까.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정권을 말이다.

무엇보다 디도스 사건이 터져 나온 것은 레임덕의 결정적 징후다. 청와대와 검찰을 견제하려고 디도스와 벤츠 검사 등을 터뜨린 경찰이 거래용으로 남겨 놓은 몇 가지 사실들을 검찰이 역공으로 터뜨리며 정권이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 밝혀지고 있거나, 밝혀져야 할 핵심 의혹들은 다음과 같다.

사건 시각 국회의장 박희태의 전 비서와 다섯 차례나 통화했다는 사실
청와대 행정관과 실세 의원 전현직 비서들이 공모씨와 거사 전날 모였다는 점, 그리고 경찰이 이 사실을 숨겼고, 심지어 이들 간에 거액의 돈이 오간 사실도 알면서 감췄다는 점, 동네 건달 출신인 일개 비서가 수백 대의 좀비PC를 동원할 자금을 어디서 마련했느냐 등 이 사건은 의혹투성이다게다가 공모 씨가 고향 진주에서 친구들에게 ‘내가 한 게 아닌데 덮어쓰게 생겼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또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 전체가 아니라 투표소 검색 기능만 불통됐는데 공교롭게도 선관위는 바로 두 달 전에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투표소를 충분한 예고없이 교체했다. 특히 서대문구금천구 등 한나라당 득표율이 낮은 지역은 강남과 달리 거의 절반 가까이 교체했다이 때문에 선관위 내부 공모 의혹까지 있다.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의 선거 전략이 젊은 층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더러운 전략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사건 주범이라는 공모씨는 당시 나경원 선본의 홍보를 맡고 있던 의원 최구식의 비서였다.

 
아니나다를까
 이명박의 정적을 겨누던 검찰의 칼끝이 이제 이명박의 측근들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1210일 “상왕” 이상득의 측근 보좌관 박배수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 돈의 ‘돈세탁’에 이상득 보좌관 5명이 연루됐다고 발표했다. 이상득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검찰조사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12일에는 이명박 사촌처남인 KT&G 복지재단 이사장 김재홍에게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명박은 이제 검찰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결과도 마음 졸이며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발작적 경련을 일으키던 말기 환자가 이제 전신마비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박근혜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애초 박근혜는 홍준표 체제를 총선까지 끌고 가며 자기 손에 피묻히지 않고 홍준표가 대신 쇄신 명목의 공천 물갈이를 해 주길 바랐다.

그런데 친박계 리더 유승민이 박근혜와 상의도 없이 최고위원을 사퇴하며 결국 지도부가 붕괴해 버렸다. 박근혜의 전면 등장을 촉구한 것이다. 박근혜는 사퇴한 유승민과 통화하며 “어휴, 일단 지켜보죠”라고 했다고 한다. 친박계도 아귀가 안 맞을 만큼 위기가 심각한 것이다.

이왕 조기 등판하게 된 처지이니 박근혜는 총선 때까지 전권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재오나 정두언, 정몽준 등은 박근혜가 비상 국면에서 총알받이 구실을 해 주길 바라고 조기 등판을 촉구한 것이어서 박근혜에게 공천권까지는 줄 생각은 없다. 총선 준비까지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친박 윤상현이 “박근혜 전 대표가 일회용 반창고인가” 하고 항변한 것이다.

1212일 의원총회에서 박근혜에게 비대위 전권을 주되, 비대위 운영 시기는 추후 논의하는 식으로 결정한 것은 이런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봉합된 것에 불과하다.


플랜 B


누가 쇄신, 즉 공천 물갈이 대상이냐를 놓고 아귀다툼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재창당(쇄신파 등)이냐, 재창당 수준의 리모델링(박근혜)이냐의 문제로도 번질 것이다. 이런 아귀다툼은 상호 폭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한나라당의 분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부패한 우익 독재자인 박정희를 계승한다는 박근혜가 한나라당 쇄신의 구세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본질을 보여 준다. 아무리 씻고 닦고 분칠을 해도 한나라당의 뿌리와 기반은 1퍼센트의 부패한 친미·우파 특권층인 것이다.

박근혜의 실체는 <부산일보>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부산일보> 사주 정수장학회는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 부일장학회를 빼앗아 설립한 것이다. 박근혜는 강탈한 공익재단을 개인 소유처럼 운영해 왔을 뿐아니라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재단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평균 2억여 원에 이르는 연봉을 받아왔다. 지금 정수장학회는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 요구를 짓밟으며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바로 이런 본질 때문에 박근혜는 부패한 우익 이미지를 없애려고 그 동안 중도층에 구애를 하며 두 마리 토끼 전략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반MB 정서 확대와 정치 양극화 추세 속에서 산토끼인 중도 성향 대중은 뜻대로 잡히지 않는 대신 집토끼 우파들의 반발은 커져 왔다.

따라서 한나라당을 접수한 박근혜는 말은 중도적으로 하고, 행동은 우파적으로 하는 모순된 행보를 하게될 것이다. 여당 내 야당 행세를 해왔지만, 박근혜는 한미FTA 날치기에 협조했고, 최근 이명박이 다주택 보유자 양도세를 감면하고서울 강남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한 부자 특혜 조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변검’형 쇄신이 분노한 대중을 되돌릴 순 없다. 기존 박근혜의 두 마리 토끼 전략의 한계는 이미 10·26 재보선에서 드러났다. 그때 이미 한나라당의 대주주는 박근혜였고, 박근혜의 나경원 지지도 한나라당의 몰락을 막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둘은 기본적으로 계급 기반이 같기 때문에 그 차별화라는 게 이명박의 권력형 비리를 폭로해 쫓아내는 방식의 내부 권력투쟁일 것이다. 이것은 현 집권세력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 전반에 대한 불신을 더 높여 진보적 대중의 사기를 높여 오히려 박근혜식 포장이 더 먹히지 않는 조건을 만들 것이다. 

MB·반한나라당 정서의 본질은 반보수·반특권층 정서기 때문에 그렇다. 고로, 박근혜의 반MB는 오도가도 못 하빠져 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김용태는 “지금 민심은 우리가 어떻게 바뀌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없어지라고 한다”고 탄식했는데, 사태를 정확히 본 탄식이다.

이런 한나라당에게조차 버림받는 이명박은 쓸 사람이 없어 또다시 ‘고소영’ 출신으로 청와대를 채웠다. 대신 임태희, 유인촌 등 기존 청와대 MB맨들이 총선에 나가겠다며 청와대를 나왔다. 이런 “구정물이 흘러들 판”을 ‘물갈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기만 하다.

그래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정치적 무기력 상태에서 발작적인 탄압과 포퓰리즘 언사를 조울증 환자처럼 왔다갔다할 것이다.

한편, 이익공유제를 논의하려 했던 1213일 정부 동반성장위원회 회의에 전경련이 불참했는데, 이는 재벌들이 속된 말로 개무시를 한 것인데, 이제 이명박과 더는 파트너십을 유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자당 최고위원들조차 “한나라당 해체 운동을 벌이겠다”며 떠나는 판국에 기업주들이 뭐가 아쉬워 다 죽어가는 집권당에 매달리겠는가. 지배계급은 이제 자신들의 “플랜
B” 정당인 민주당을 통해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달래며 상황을 단속하려 할 수 있다.

민주당이 한미FTA 반대 운동과 국회 등원 사이에서 양다리 전략을 펼치는 것은 지배계급의 “플랜 B” 정당으로서 대중의 불만을 달래 체제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지배계급에게 입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한나라당의 해체 위기를 민주당 의존이 아니라 독자적인 투쟁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나라당의 위기에서 민주당이 좀처럼 반사이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아직 진보진영에게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집권당의 분열과 상호 폭로전, 그리고 권력기관 통제력 상실은 사람들에게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진보진영은 한미FTA 저지 등 강력한 정치투쟁을 건설하며 진정성을 입증받아야 한다. 그래야 엉뚱한 인물과 세력이 지금의 기회를 가로채 수혜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관련 기사: ☞ 바로 가기 

※ 한나라당 재창당 역사를 돌아본다도 읽어보세요.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