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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9 4·27 재보선―민주노동당 약진과 야권연대의 모순


4·27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약진했다. 국회의원, 구청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모두 한 명씩 당선자를 냈다. 낙선자들도 평균 20퍼센트가 넘는 득표를 했다.

특히, 전남 순천에서 ‘호남 최초 진보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과 울산 동구청장에서 한나라당을 물리친 것은 큰 성과다.

다만 이것이 오롯이 진보정당 혼자의 힘, 아니면 진보진영의 단결력에서만 나온 성과는 아닌 게 아쉬움이다. 모두 야권연대를 표방한 후보들이기 때문이다. 

선거적 성공이라는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군소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유력 야당인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면 실리를 얻을 수는 있다고 말해 왔다. 특히 스타 정치인이 없는 대신 지역 조직력이 우수한 조건상 경쟁하는 (개혁적 이미지의) 민주당 후보가 없는 것은 선거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야권연대를 비판하면서도 진보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된 곳은 (비판적일 때도 많지만) 조건 없이 진보 후보를  지지해 왔다. 아울러, 진보 후보가 없는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 여겨 지지할 만한 민주당 등의 후보가 있을 때는 비판적 투표를 할 수도 있다.

반MB 야권연대는 반MB 정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반MB 정서를 온전히 수렴하지 못하는 객관적 정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온전히 야권연대 덕분이고, 이번 결과로 야권연대가 완전한 정당성을 얻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약진한 선거 결과를 두고 “야권연대의 길을 닦아 온 것은 옳은 일이었음이 명백해졌[]”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공식 논평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야권이 연대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평가는 투쟁 건설보다는 야권연대를 더 열심히 추진하고, 대선 연합을 통한 연립정부로 나아가려는 노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래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대표 문성근)은 선거 결과가 나오자 “야 5당은 … 야권단일정당 건설을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야권연대로 갈수록 선거에서 단기적 성공은 거둘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모순에 직면할 것이다.


계급 투표

1. 이번 선거의 진보정당 약진을 야권연대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순천에서 야권단일후보로 ‘호남 최초의 진보 국회의원’이 된 민주노동당 김선동 후보는 실제로는 민주당의 조직과 정치인들을 상대로 경쟁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김선동 후보를 “종북주의자”라고 색깔론 공격을 했다.

사실 민주당은 순천에서 “민주당을 겉으로 표명하는 후보를 안냈을 뿐이지 당선되면 결국 민주당으로 입당할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의 당선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각주:1]처럼 보였다.[각주:2]

민주노동당 김선동 후보를 떠받친 것은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계급투표’였다.[각주:3] 그리고 이것이 김해을의 국민참여당과 순천의 민주노동당이 비슷한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낳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김선동 후보 자신은 야권 단일 후보를 강조하느박지원과 포옹하며 ‘내가 진짜 민주당 지지 후보’라고 말하는 등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흐리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했지만 말이다.

김선동 후보 자신이 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이며, 2005년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 지원에서 주요한 구실을 한 바 있다. 게다가 순천은 여천공단, 광양공단 등 공단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기반 위에서 민주노동당은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에 맞서 1만 표가 넘게 득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조합원 교육은 기본이고, 건설플랜트노조는 투표일 당일을 조합원총회 날로 잡아 투표 시간을 보장했고, 민주노총 전남본부 등이 ‘2만 표’를 목표로 열정적으로 계급투표를 조직했다. 선거운동의 주력은 지역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자원한 민주노동당 학생 당원들이었다.

한나라당의 당선가능성이 거의 없는 호남에서는 보수적인 지역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통해 엮인다.

그 점에서 김선동 후보가 추가로 얻은 표의 일부는 민주당 지도부의 지지 덕분이겠지만 상당수는 지역 민주당의 보수성에 실망한 이탈표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할 것이다. 죽어도 민주당을 찍겠다는 표는 당선하면 민주당에 복당하겠다는 무소속 후보들에게 갔을 테니 말이다.

사실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당선한 곳은 대체로 노동자 밀집 지구로 진보정당이 그동안 강세를 보여 왔던 곳이다.

호남 제1호 진보 국회의원이 탄생한 감격의 순간. 그러나 안타깝게도 야권연대 노선과 계급투표 정책은 앞으로 상호충돌하게 될 것이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노동자들의 지지로 세 번이나 진보 구청장을 만든 과거가 있다. 최근에는 두 번 연속 한나라당에 패배하긴 했지만 지난해 구청장 선거에서도 김종훈 후보는 이번보다 1만 표나 많이 얻었고 겨우 2.7퍼센트 차이로 낙선했다.

이번에도 현대중공업 소유주로 울산 동구가 지역구인 정몽준은 우파 노조들을 회유해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노조 집행부의 한나라당 지지 선언을 이끌어 냈고 25천여 명이나 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표를 막으려고 특별 잔업을 시켰으며 진보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야비하게 방해했다.

투표 당일날은 누굴 기표했는지 증거를 가져 오라는 사측의 협박 때문에 한 노동자가 투표용지를 핸드폰으로 찍다가 걸린 사례도 생겼다.

바로 이런 오만한 재벌 정치에 대한 반감과 척결 의지가 민주노동당 김종훈 후보에 대한 지지로 쏠린 것이다. 이곳은 사실 야권연대가 득표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없다. 2002년부터 동구청장에 민주당이 후보를 낸 일도 없다.  

민주노총은 “순천과 울산, 분당에서 막판 2시간동안 투표율이 수직 상승한 것은 청년층과 함께 노동자들의 투표 참여였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이길종 후보가 5천여 표를 얻어 도의원으로 당선한 경남 거제도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의 노동자들이 몰려 있으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후보가 13천여 표를 득표해 아쉽게 2등을 했던 곳이다.

비록 낙선했지만 전주에서 황정구 진보신당 후보가 민주노동당 등과 연합해 36퍼센트나 득표한 것은 전북 버스 파업이 대중적으로 지지받고 있고, 투쟁에 바탕한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음을 보여 줬다.

그래서 야권연대론자들의 주장은 반만 맞다. 이처럼 자신의 지지 기반이 기여한 바를 경시하는 잘못된 평가는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진보적 정책과 자신이 대변해야 할 목소리를 약화시켜온 것과도 연관이 있다. 

한편, 일부 급진좌파들처럼 진보정당이 단순히 민주당에 구걸해 성과를 거둔 것처럼만 묘사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야권연대론자들과 똑같이 현장 노동자들의 정서와 구실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잘못이다.


실종된 진보의 목소리

2.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고 당선가능한 선거구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최우선 과제로 삼다 보니 막상 진보적 정책이 후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야권연대 정책 합의에서는 핵발전 폐쇄는 핵발전 정책 재검토로 약화됐고, 한미·-EU FTA 반대에서 재검토로 후퇴했다. 부유세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요구도 포함되지 못했다.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노동법 재개정 8대 핵심 쟁점도 야4당-양 노총 공조 과정에서 요구가 축소된 상황이다.[각주:4]  

보편적 복지와 이를 위한 부자 증세, 핵발전 반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 인상, 물가 통제 등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진보적 목소리를 스스로 낮춘 것이다.

분당에선 진보 양당 후보가 사실상 자진 사퇴했고, 강원도에선 민주노동당이 진보단체들과 협의도 없이 민주당과 단일화를 해 민주노총 강원본부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전국적 관심이 집중되는 선거구에서 진보 후보가 없다 보니 진보정당들의 존재감도 미약했다.

야권연대 찬양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조용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대의는 희미해져 왔다. 그래서 이번 선거로 오히려 진보정당들에 대한 민주당의 우위가 더 강화됐다. 이것은 불길한 징조다.

3. 선거연합에 발목이 잡혀 노동자 투쟁의 우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전북 버스 노동자들이 민주당 지방정부의 탄압에 항의해 손학규에게 항의 방문을 하는데도 적극적으로 이들을 응원하거나 민주당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야권연대 노선의 진정한 약점이다.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과의 연대를 공고히 할수록 진정한 개혁의 힘인 노동자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집권당이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에서 패배하고 정치 위기에 빠진 틈 사이로 KEC,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투쟁에 나섰는데, 이 투쟁의 발목을 잡은 것은 민주당이 포함된 야권 의원단의 중재 시도였다.

이들은 온정적 태도로 노사간 이해관계를 중재한다고 했지만, 기업주가 해고와 직장폐쇄, 무차별 폭력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투쟁을 접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것은 노동자들의 무기만 빼앗을 뿐이었다. 이것은 민주당이 자본가계급에 기반한 친자본주의 정당이이기 때문이다.

4. 이런 약점들 때문에 야권연대 추진이 오히려 진보진영의 단결을 해쳤다.

이번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도 이갑용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야권연대에 반발해 독자 출마했다. 선진 노동자들은 특별한 하자 없는 두 진보 후보의 경쟁 속에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일차 원인 제공은 민주노동당의 야권연대였다. (그래서 나는 단일화하길 바랐다.)

민주당 시절 살인적인 탄압을 받았던 투사들에게 민주대연합이 마뜩치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 기억을 잊으라고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각주:5] 게다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과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선거 기간 동안 이갑용 후보를 배척하는 듯 행동했다.

물론 이갑용 후보가 민주노동당을 더는 진보정당이 아닌 듯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진 않다. 민주당과 연대했어도 김종훈 후보 자신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진보정당의 후보였고, 경력이나 공약에 지지 못 할 흠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진보정당 당선으로 집권당과 정몽준에게 경고하고 싶었던 대중의 열망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민주대연합 반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상대적으로 더 좌파적인 목소리를 대변해 선진 노동자 일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노동자 구청장은 노동조합을 지원하고 강화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은 신선했다.[각주:6]


향후 전망

이런 점들을 살펴 봤을 때 “김선동 후보의 당선으로 야권연대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어질 것”이라는 이정희 대표의 기대는 헛된 것이다.

그럼에도 야권연대를 주도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성공한 재보선 결과 때문에 내년 야권연대 추진 노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 반대급부에선 진보대통합 협상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진보대통합을 해야 민주당 중심의 선거연합으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생각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대연합을 민주대연합의 사전단계[각주:7]로 보는 이들이 특히 그렇다. 한편에선 재보선 야권연대에 참여했으나 당세가 약해 거의 모든 곳에서 단일 후보로 선출되지 못해 위기감이 커진 진보신당의 통합파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문제는 자신감이 생긴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지도부가 야권연대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패권적으로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경우다. 앞서 인용한 이정희 대표의 발언[각주:8]도 독자파가 주도한 진보신당의 당대회 결정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는 진보대연합 자체가 민주대연합의 사전단계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부추길 것이다. 야권연대에 비판적인 진보진영의 반발이 더 커지면 진보대통합은 더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진보진영의 분열 문제가 빨리 해소되지 않아 각개약진하면 각개격파 식으로 야권연대 압력에 더 내몰릴 수 있다.

따라서 분열을 피하며 유리한 기회를 노동자운동의 전진으로 연결시키려면, 실용주의적 선거공학이 아니라 계급투쟁과 계급정치의 관점에 서야 한다.

모순적이게도 단기적 선거 성공이 대중의 사기를 올려줄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지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과 이명박 정부의 추락을 기회 삼아 투표장만이 아니라 거리와 작업장에서도 정부와 사장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과 독립적인 진보대연합을 건설해 대중투쟁을 건설하며 힘을 모아야 한다.


  1. 최규엽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소장이 민중의 소리 기고 글에서 한 말. 실제로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순용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만 참석한 바 있다. 박지원과 조순용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한솥밥 먹던 사이다. [본문으로]
  2.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순용 후보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둘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본문으로]
  3. 민중의소리는 순천에서 “발은 계급투표로 머리는 야권연대로” 선거운동을 펼쳤다고 평가했는데, 사실 “발”과 “머리”가 일관성있게 움직일 순 없었다는 게 문제다. 서로 지시하는 방향이 다른 목표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4. ○노동자성 및 사용자성 확대 ○노조설립 절차 개선 ○손배가압류 제한 ○타임오프 폐지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산별교섭 법제화 ○단체협약 해지권 제한 ○필수유지업무 폐지 중 ○손배가압류 제한 ○산별교섭 법제화 ○필수유지업무 폐지’를 제외한 5개 항을 공동 발의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5. 이 갑용 후보 자신이 공무원노조 징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청장 직을 박탈당한 바 있다. 심지어 야권연대를 추진한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인 김창현 씨도 1998년 동구청장에 당선되자마자 김대중 정부의 국가보안법 탄압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본문으로]
  6. 득표에서는 진보적 노동자들의 표가 당선 유력한 민주노동당 김종훈 후보에게 몰려 저조했다. 선거 관점에선 2천2백여 명(3.59퍼센트)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운동을 조직하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본문으로]
  7. 진보대연합을 민주대연합의 사전 단계로 보는 것은 마치 전체의 부분(부속물)으로 보는 시각이다. 즉, 계급은 국민의 일부라는 사고인 것이다. 국민이 이해관계로 통일된 집단이 아니므로 이는 계급 화해 사상이고 오래된 개혁주의의 전제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세력도 한 사회 안이 모든 계급을 동시에 대변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국민’주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선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 [본문으로]
  8. “김선동 후보의 당선으로 야권연대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어질 것”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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