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명박 정부를 두고서 “비리로 비리를 덮는 정권”이라고 분개한다. 


임기 중 비리 혐의 구속자 명단이야말로 핵심 측근 명단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부인과 아들, 친형과 조카까지 부패 추문에 휘말려 있다. 


이명박이 ‘썩은 사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특권층 부패 현상이 특별히 탐욕적인 자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의 모든 정권이 기업 특혜를 대가로 정치자금을 모으고 부정 축재를 해 왔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원조 받은 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부패 사슬을 형성했고, 이 특권 구조를 유지하려고 부정 선거를 저지르다 쫓겨났다. 박정희는 은행 대출을 통제하며 재벌들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부정 축재를 한 돈을 재단 형태로 남겨 자식들에게 물려줬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1995년 구속될 때, 그 죄목에는 오늘날 물가로 치면 수조 원 규모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재벌에게 특혜를 주며 비자금을 모았고, 알짜 공기업들에겐 낙하산 사장을 보내 돈을 빼냈다. 


선거로 집권한 민간인 출신들도 다르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임기 말년 권력형 비리가 드러나 아들 들을 대신 구속해야 했고, 노무현은 친형을 구속했다. 


한때 신자유주의자들은 한국 같은 아시아 발전도상국들이 국가권력과 기업이 인맥으로 유착된 ‘정실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시장 경쟁을 확산하고 정부 개입을 줄이면 경제도 발전하고 부패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는 선진 자본주의에서도 다르지 않다. 


최근 10년 사이 엔론이나 헬리버튼, 월드컴 같은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한국 돈으로 수조 원 규모의 분식 회계로 탈세와 주가 조작, 횡령들을 저지른 게 드러났다. 국제 무기 시장은 막대한 리베이트의 산실이다.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뇌물수수로 한때 정권을 잃기도 했다. 


한국에서 국가자본주의적 정경유착이 시장 자본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정경유착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이다. (부패의 ‘국유화’에서 부패의 ‘민주화’로???)


이처럼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의 경쟁적 속성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기업 이윤과 특권을 향한 경쟁을 본성으로 한다. 그런데 공적 결정은 1퍼센트 소수에게 집중돼 있다. 


정경유착, 정치인과 언론 매수 같은 부패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합법적 사기”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 1퍼센트 지배자들의 부패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도 우습게 만든다.


미국 워싱턴과 EU 기관들 주변에는 각각 4만 명이 넘는 합법 로비스트가 상주한다. 

이들은 개별 기업들에게 유리한 법안과 제도를 만들려고 “공권력 남용”을 날마다 조직하는 것이다. 


로비 활동과 선거 자금 지원은 서방 선진국에서 합법화된 부패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 위기 속에서 1퍼센트를 위한 대규모 부자 감세를 실시한 것도 합법적 정경유착의 한 사례다.


알 카포네가 자본주의를 “지배자들의 합법적 사기”라고 말한 것은 핵심을 찌른 것이다. 



국가와 자본의 유착은 자본주의에 생래적인 것이다. 이 둘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특히 자본 축적의 조건을 돕는 자본주의 국가의 본성 때문에 정부가 특정한 경제 정책이나 성장 방식을 택할 때 더 유리한 기업과 아닌 기업이 생겨난다. 


공기업 민영화나 국책사업 민간 진출을 둘러싼 특혜 시비와 리베이트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나 9호선  과정도 그 사례다. 


심지어 사법부나 공공기관도 부패의 사슬을 형성한다. 현장 노동자의 잇따른 암 발병으로 죽음의 공장이 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산재 판정이 나오지 않는다. 


특정 기업과 정부 관료가 유착해 기업 경영진과 정부 관료직을 오가는 회전문 인사도 합법을 가장한 부패다. ‘김&장’이나 ‘삼성공화국’ 같은 현상.


기업들은 경쟁 기업을 따돌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고 로비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정치세력과 특정한 자본가들의 유착 관계도 형성된다. 


예전에 삼성에 자동차산업 진출을 허용하는 문제를 두고,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분열한 예가 있다.  


정권 교체에 대비해 대기업들은 상대적 비주류 정치인에게도 보험금조로 정치자금을 지원한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도 대선 후원금을 대기업들에게 받았던 이유이고,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자금을 고리로 한 기성 정치 전반의 부패 구조가 유지되는 까닭이다. 


국가기구에 대한 정권의 통제력이 이완되는 정권 말기에 권력형 비리의 폭로가 집중되는 것도 바로 이런 관계들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이동기에 고위 정치인들과 개별 기업들 사이에서 관계 재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신구 권력간, 기업간에 음모와 숙청, 폭로가 난무하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은 경제 위기와 겹친데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더 치열한 양상으로 폭로와 상호 공격이 진행되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부패 추문 폭로가 지배자들 간의 암투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면서 오히려 저항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비리를 비리로 덮는 이명박의 쇼가 무한정 계속될 수 없는 이유다. 



※ 이 글은 <레프트21> 81호에 실렸습니다.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