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국민 통합”을 선언하더니 연일 “박근혜가 바뀌네 쇼”를 벌이고 있다. 


박근혜는 후보 선출 다음 날, 노무현 묘역에 갔다. 26일에는 반값등록금 운동의 학생 대표들과 만났고, 27일에는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헌화를 시도했다. 심지어 박정희가 죽인인혁당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려 한다는 소식도 있다. 


이뿐 만이 아니라 김종인을 다시 앞세워 ‘경제 민주화’ 정책을 강조했고, 차떼기 수사로 인기를 얻었던 안대희를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박근혜의 ‘광폭’ 사기극은 역풍을 일으키고 있다. 


27일 전태일 열사 유족들은 박근혜의 방문을 공개 거절했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는 ‘쇼를 그만 두라’고 일갈했다. 박근혜는 발길을 돌려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헌화를 하러 갔다가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에게 통쾌한 면박을 당했다. 


오히려 쌍용차 문제나 해결하라는 압력만 커졌고, [이왕 국민 통합을 선언한 마당에] 홍사덕 등의 유신 옹호 발언을 박근혜가 비판해야 한다는 반발이 친박 내부에서조차 나올 정도다. 


사실 박근혜는 ‘민주화 세력’의 핵심인 노동운동·진보진영과 ‘화해’할 생각이 눈꼽 만큼도 없다. 


박근혜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면담과 청문회 수용 등을 요구하며 새누리당 당사에 찾아가자 경찰을 시켜 접근을 가로막고 노동자들을 구타·연행했다. 박근혜가 사실상 소유한 정수장학회 산하 영남대의료원과 부산일보의 언론 탄압과 노동자 해고는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경제 민주화?


대선캠프 인사도 새로울 게 없다. 김종인과 안대희의 유명세를 앞세웠지만, 막상 새누리당 대선캠프의 돈과 조직을 총괄하는 자리는 최경환과 이주영 같은 친박 핵심들로 채워졌다. 

김종인이나 안대희 등은 “바뀌네 쇼”의 장식물일 뿐인데, 그 장식물들마저도 과장 광고로 덧씌워진 이미지가 전부다. 


김종인은 재벌 개혁하겠다며 나섰지만, 정작 현대차 재벌의 불법 파견에 침묵하면서 도리어 비정규직 해법의 걸림돌이 민주노조라고 말하는 자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에 국회의원과 장관을 하면서 승승장구한 낡고 부패한 인물이다. 



△박정희 민주주의 하는 소리 박근혜의 국민 힐링은 민중 킬링이고, 박근혜의 변신은 노동자 봉변이다. ⓒ이미진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막강 권력을 누리던 시절, 동화은행 비자금을  뇌물로 받고,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도 연루돼 실형도 살았다. 그래서 김종인이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총선시민연대가 비례대표 부적격 후보라고 공표한 바 있다.


안대희도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보수의 일원일 뿐이다. 


노무현의 사법고시 동기인 안대희는 [자신을 유명하게 해준] 2002년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삼성 비자금과 박근혜의 뇌물 수수 부분은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넘겨 버렸다. 


김용철 변호사는 안대희가 삼성 비자금인 걸 알면서도 넘겼다고 폭로한 바 있다. 


대법관이 된 뒤에는 ‘1퍼센트 프렌들리’ 판결로 두드러졌다. <중앙일보>조차 그를 당시 대법원에서 “보수의 핵”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파업 참가를 이유로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의 승진을 취소한 울산시장의 조처가 적법하다고 판결했고, 상지대 비리재단의 복귀를 결정적으로 돕는 판결을 했다. 강제 종교교육 거부해 퇴학당한 강의석 군에게도 퇴학이 정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출퇴근시 사고는 산업재해가 아니라는 판결로 개별 노동자의 권리도 위축시켰다. 


안대희는 벌써부터 박지만과 그의 처 서향희 관련 비리 의혹에 관해서는 “그런 의혹들이야 옛날에 거론된 것 ... 새롭게 거론되는 것 등을 ... 점검하겠다”며 박근혜 치부 가리개로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된 뒤,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통합의 ‘100퍼센트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유신 정신’ 충만한 성명을 내놓았다. 쌍용차 해고자를 ‘물리쳐야 할 세력’으로 규정해서 짓밟고 끌어내면서 전태일과 화해(?)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식 ‘국민통합’인 것이다. 


박정희처럼 권력을 휘둘러보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이 났으면 박근혜가 이런 쇼를 할까 싶다. 


그런데 여전히 박근혜는 보수층·영남 기반을 넘어선 ‘표의 확장성’이 없다. 올해 총선에서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워 ‘중원’을 차지해서 승리했다는 일각의 평가는 신화일 뿐이다. 


총선에선 위기감을 느낀 우파들이 ‘이명박근혜’로 똘똘 뭉치고 [민주당이 별 볼 일 없어] 겨우 패배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전국적으로 표를 더하면, 새누리당이 얻은 표는 이른바 야권연대로 모인 야당들의 표보다 적다. 


박근혜가 보수진영의 확고한 리더로 자리잡은 것은 2004년부터다. 노무현 정부의 온건 개혁조차 반대하면서 “국가정체성 투쟁”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장악했고, 당내 주류가 됐다. 박근혜의 확고한 보수층·영남 기반은 바로 이 때 다져진 것이다. 


수도권 중도층


그러나 이런 강한 우파적 성격 때문에 수도권과 청년세대 사이에서, 심지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었던 사람들(수도권 중도[보수]층)조차 선뜻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금 박근혜는 ‘공공의 적’이 돼 버린 이명박과 갈라서지도 못하면서 ‘정책적으로만’ 선을 긋는 “바뀌네 쇼”를 해야 하는 모순에 직면해 왔다. 내곡동과 불법 사찰에 관한 특검을 민주당과 합의했다가 번복 논란이 벌어진 것도 이런 얄궂은 처지 때문이다. 새누리당내 일부의 유신 재평가 발언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이재오, 정몽준, 정운찬 등이 중도신당 따위로 분리해 나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불안감도 깔려 있다. 사실 박근혜의 지지율은 2010년 8월 이명박과 회동 후 협력 선언을 하면서 재상승한 바 있다. 


박근혜의 ‘국민통합’에 이명박과의 협력도 핵심으로 포함돼 있는 이유다. 그러나 바로 그 [이명박을 찍었던] 수도권 중도 보수층에서 이반이 일어난 것이 한나라당 위기의 한 뿌리라는 점이 문제다. 


이제 중도 보수 성향에서 박근혜와 지지층이 겹치는 것은 바로 안철수다. 바로 그 때문에 경제 민주화와 복지 뿐만아니라, ‘소통과 통합’ 이미지도 보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명박과 차별화 압력을 다시 키울 것이다.)


(그래서 둘 다 포퓰리즘 행보에 열중하고 있는 [2일로 예정된] 이명박―박근혜 회동은 [속마음이 무엇이든] 일단 겉으로는 민생에 힘 모으자는 식의 겉치레식 협력 제스처를 취하는 모양새를 연출할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 결과물을 내놓진 못할 것이다. 물론, 박은 조직적 협력과 정책적 차별화, 이 두 문제에서 양해와 합의를 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조짐이 커지면서 주류 지배자들의 반동적 태도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의 불안정한 “바뀌네 쇼”가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새누리 내부의 보수대연합 논쟁도 이런 모순된 처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사실 “바뀌네” 정책들의 우파적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박근혜는 5년 전 자신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는 친재벌·우파 정책) 원칙과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등 3대 원칙이 결코 배치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실토했다. 그래서 “재정 건전성을 무시하면서까지 복지를 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것이 박근혜의 본심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박근혜가 대세론을 유지하는 데에는 민주당의 무능과 한계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민주당의 찌질한 대선 후보 경선과 거듭되는 비리 의혹은 진보·개혁 대중에게 ‘짜증과 분열’을 주고 있다. 


김종훈, 안대희 등 박근혜가 올해 들어 영입한 인물들 다수가 민주당 정부에서 중용됐던 인사들이라는 것도 민주당의 한계를 보여 준다. 사실 노동자 가슴에 대못을 박고는 뒤로 어루만지는 척했던 쇼는 민주당도 자주 했던 쇼다. 


1997년과 2002년에 우파 진영을 분열시켜 정권을 잃고 대선에서 패배하게 만든 것은 경제 위기 요인과 함께 기층의 저항 압력이었다. 이는 진보진영이 지리멸렬한 민주당과는 결이 다른 진보적 대안을 내놓고 반우파 정치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 좌파는 노동운동의 급진적 정치리더십을 재구축할 수단을 내놔야 한다. 주장: 줄기찬 정치 폭로와 올바른 분석, 행동: 진보적 반우파 정치투쟁의 구축 등이 필요하다. 이 둘을 아우르는 과제는, 이런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조직을 강화하는 것이다.)


※ 이 글은 축약돼 <레프트21> 88호에 실렸다.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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