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세론이 위기에 처하자, 온갖 처방이 나오고 있다. 친박계 안에서도 신 친박의 2선 후퇴를 요구할 정도다.


이런 시점에서 박근혜가 이명박을 만나 직접 요구한 무상보육 정책을 이명박 정부가 후퇴시키는 발표를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무상보육 후퇴를 비판하면서도 이제 민주당과 합의한 내곡동 특검 임명 문제에서 청와대 편을 들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과 20~40대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오르지 않거나 또 하락한 것은 박근혜의 우파적 본질에서 비롯한 것이다. 5·16과 유신이 “헌법의 가치를 훼손”이라고까지 양보했지만, 진정성을 의심 받아 여론조사 상의 우위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박근혜는 인혁당 문제에 관해 사과를 한다면서도 정작 이 문제에 사과를 건의한 홍일표는 당 대변인 자리에서 잘라냈다


이른바 사과문이란 것의 표현이 진짜 사과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박근혜는 5·16을 늘 “혁명”이라고 해왔는데, 기존 헌정 질서를 중단하는 ‘혁명’이 헌법을 훼손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므로 사과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치혁명으로 세운 민주주의 질서를 뒤엎어 초착취 반동 체제를 만들었는데, 이를 두고 “정치 발전은 지연시켰다”고 한 것은 사실상 경제성장과 안보를 위해 5·16 쿠데타와 유신이 불가피했다는 우파의 평가에서 본질적 반성은 전혀 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사과문의 맥락에서 박근혜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한 것은 문장 전개상은 사과의 문맥 상에 있었지만, 결국 아무리 욕을 해도 [박근혜의 평가가 후퇴해도] 박정희의 목적 만큼은 정당했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놓고 구국의 영단”이라던 태도에서는 한발 물러선 것이니 반우파 여론의 성과인 것은 사실이다. 


그 점에서 내가 박근혜 사과 전에 “결코” 사과를 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들어맞지 않았다. 선거 정치라는 측면을 간과하고, 우파적 본질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교묘하게 말을 비트는 사과는 할 수 있다고 했고 실제 사과문은 그런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내 예상보다는 수위가 높았다.

그럼에도 내가 경제 위기 조짐 때문에 지배계급 주류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점, 박근혜 외 대안부재론 때문에 우파가 박근혜 지지로 뭉쳐 있는 점 등에 주목한 것 자체는 앞으로 추세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다. 


한편, 우파 논객 조갑제이 박근혜에게 “자신의 양심을 버리고 지지 세력을 배신하고 아버지와 조국을 깎아내림으로써 표를 구걸한 이가 당선된 예는 없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렇다고 박근혜마저 중도로 보이려고 애쓰는 대선 지형에서 대안 부재론인 우파들이 당장 산산조각날리는 없다. 그러나 중도층 외연 확장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는 조금의 균열이라도 박근혜에게 상징적 타격이 될 수는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박근혜는 그동안 우파 결집과 외연 확대 사이에서 동요해 왔다. 지금도 동요는 계속되고 있다.


보수대연합을 주장하는 김무성을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의장으로 앉혀 놓고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역사적 화해’가 필요하다며 한광옥, 김경재 등 김대중 비서실장 출신들을 영입하려는 것도 그런 사례다.


수도권과 청년세대 사이에서 반우파 정서가 결집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가까스로 묶어 놓은 보수층 결집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히려 박근혜의 ‘과거사’ 후퇴는 역설이게도 박근혜의 권력욕이 얼마나 집요한지 보여 주는 사례다. 2005년에 노무현이 대연정 제안을 해서 만난 단독 회담에서 박근혜는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라며 노무현의 초당적 내각 구성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바 있다.


정계 복귀 후 박근혜의 정치 궤적을 살펴 보면, 그녀는 반동적 본색을 우파 포퓰리즘으로 위장하며 숱하게 말과 태도를 바꿔 왔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은 거짓 신화에 불과하다.


대세론이 필패론으로 바뀌면서 박근혜는 자질론을 내세우려는 듯한데, 사실 정계 복귀 초기부터 본인이 누린 높은 인기는 언론을 장악한 독재 정권 시절에 쌓은 인지도 덕분이지 자질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독재 성향이 어디에 쓸모 있는 자질이겠는가.



※ <레프트21> 90호 기사를 참조하세요. ☞ 바로가기 


(다음에는 박근혜 행적 돌아보기 글을 올릴 예정.)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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