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자유에 대한 옹호론이 중도파 집회의 우익 집회 봉쇄에 대한 찬반 논란을 계기로 해 벌어지는 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유쾌한 일이 전혀 아니다. 집회의 자유를 이유로 우파를 편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부의 행태를 지지할 수도 없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로 표현되는 추상적 천부인권론은 공동체 보호(국익론)에 흡수되기 십상이다. 파편화된 개인은 부분에 불과하고 공동체는 전체이기 때문이다. 극단적 자유지상주의나 아나키즘 아니라면 오늘날 개혁주의적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적 자유주의 모두 공동체 우선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물론 요즘 아나키즘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다원주의를 자신들의 신조로 삼는 다원주의적 자유주의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만.)

 

진짜 민주주의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설득력 있어야 한다. 그것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 민주주의, 즉 노동자 권력을 향하는 운동 뿐이다. 노동계급이야말로 자연을 제외하면 자본주의 사회 부의 인간적 원천이고 인구의 다수 집단이기 때문이다.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는 파편화된 개인들에게 주어진 천부인권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우파가 집회의 자유를 주장하고 중도파 정부가 권위주의적 수단으로 막는)이 보여주듯이, 그런 추상적 권리론으로는 어떤 진보의 당위성도 설명할 수 없다. 또라이 우익을 위한 집회의 자유라니.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분쇄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파시스트에게나 도움이 될 논리다. 아니면 권위주의 우파 세력이나. 군대나 경찰도 그런 주장의 팬덤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의적으로 권위주의적 수단을 행사하는 문재인 정부 편을 들 수도 없다. 그것은 위선적인 정권의 2중대가 되는 길이다. 정권은 지금 반정부 우파 집회를 핑계로 노동계급의 집회의 자유를 간접적으로 억제하는 술책을 펴는 것이다.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이유, 그것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①그것을 통해 자주적 대중 행동이 수월해지고, ②자주적 대중 행동개혁만이 개혁 쟁취의 진정한 동력이며, ③ 그러한 대중 행동(과 그것을 통한 성취와 각성, 사기 진작, 영감 창조 등)만이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에 도움 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만이 인류를 자본주의의 고통과 소외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진보나 좌파가 현재의 필요한 요구를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집회의 자유를 말하려면, 독자적 집회을 열고 자주적 투쟁을 벌일 일이다. 그래야 집회의 자유도 제대로 변호될 수 있고, 노동운동도 저항하고 요구를 쟁취하는 힘을 증명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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