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열기 속에 77개의 워크숍이 열린 맑시즘2018이 나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매년 개최되는 맑시즘은 올해에는 7월 19일(목)부터 22일(일)까지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열렸다.
해외 연사인 로라 마일스가 “성폭력과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연한 폐막 토론에는 250여 명이 참가했다. 청중 토론에서 발언들이 쉴 틈 없이 이어져 나흘간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를 짐작케 했다.
올해 맑시즘 등록자는 지난해보다 많았다. 낮 기온이 35도 이상 이틀 연속 이어질 때 발령되는 폭염경보를 뚫고서 수백 명이 마르크스주의와 운동의 전략·전술을 다루는 토론에 참가한 것이다. 주제가 77개나 되다 보니, 올해도 분강이 많아 참가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주최 단체인 노동자연대는 8월 공개 토론회, 대학 마르크스주의 포럼, 세미나 모임 ‘마르크스주의 ABC’ 등을 맑시즘2018의 후속 행사로 토론을 이어 갈 기획을 마련했다.
올해 맑시즘은 대학생과 조직 노동자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이론에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골고루 관심을 끌었는데, 그중에서도 노동자 운동과 여성 운동의 쟁점을 다룬 토론·강연들에 대한 관심이 좀더 두드러졌다. 난민, 심리학 등 여느 좌파 토론회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주제들도 관심을 끌었다. 촛불의 여파가 다양한 운동이 성장할 자양분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총 211개 단체가 후원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조합 등 노동단체의 후원이 늘었다. 민주노총, 현대중공업지부, 철도노조, 공무원노조 등 174곳에 이른다. 노조의 지회, 분회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다.
적극성
올해도 20대 청년·대학생들의 참가가 가장 많았다. 마르크스주의 기초 이론에서부터 한국·세계 노동계급·민중 저항의 역사까지 다양한 주제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경청하고 질문하는 대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승리한 경험을 해, 사회운동 참여에 우호적인 이 새 세대 참가자들은 노동운동 등 다양한 운동과 주제에도 관심을 보였고 또 적극적이었다. 맑시즘 기간 중에 열린 대학생 교류 행사들에도 대학생 50여 명이 참석해 소속 학교에 구애받지 않고 허물없이 토론하고 교류했다.
올해 맑시즘에는 노동자 운동의 쟁점들을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많았다.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와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 등 같은 일반적 주제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등 여러 부문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해 경험과 방향 모색 등의 고민을 교류하는 주제까지 다양했는데, 거의 모두 인기 강연이었다.
경영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 농성 중인 현대중공업 조합원 활동가의 워크숍도 생생하고 고무적이었다. 주최측은 현대중공업 파업 노동자들에게 보낼 지지 메시지를 적어달라고 행사 중간에 급히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는데, 200명 이상이 메시지를 작성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조직 노동자 참가가 예년보다 대거 늘어 200명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과 노동운동 역사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해당 주제에서 선배 노동자들이 말한 경험담도 꽤 유익했을 것이다.
조직 노동자의 관심이 꽤 높으리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맑시즘2018 후원 현황에서도 미리 볼 수 있었다. 노동조합들의 후원 중에 지회와 분회의 후원이 많았는데, 직접적인 연대 경험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맑시즘이 노동자 연대의 장이자 계기가 되고 있는 것도 같다. 가령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의 연대 메시지가 특히 인상적이다.
“2017년 [맑시즘]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문제점과 예상되는 향후 상황들에 대해서 듣고 배웠습니다. 그때 그 문제들과 예견된 상황들은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서 … 80일간의 서울역 농성으로 화답해야 했고, 이젠 더 강고한 투쟁을 준비해야 할 입장이어서 맑시즘 2018[이] 너무나 기다려집니다!”
해외 연사인 로라 마일스의 강연도 모두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였다. 197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로라 마일스는 영국 대학노조(UCU) 트렌스젠더로서는 최초의 전국집행위원이고, 대학노조 내 좌파모임의 사무국장도 지냈다. 이 경력이 웅변하듯이, 마일스는 성소수자 차별부터 교육, 심리학, 노동조합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화하며 귀한 경험들을 들려 줬다.
한편, 맑시즘 개최 장소인 고려대학교의 총학생회, 문과대학생회, 정경대학생회, 자유전공학부학생회, 미디어학부학생회 등 학생단체들과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이하 서경지부 고대분회) 등 13곳이 후원해 행사가 안정적이고 쾌적하게 진행되는 데 큰 힘이 됐다. 이 단체들은 정성이 담긴 연대 메시지도 보내 줘서 참가자들을 환영했는데, 특히 연초에 투쟁을 벌여 승리한 서경지부 고대분회가 보낸 정성 어린 메시지는 참가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맑시즘의 인기 장소인 맑시즘 책방에서는 올해에도 마르크스주의 서적이 600여 권 팔렸다고 한다. 국내에서 25년 이상 마르크스주의 해설서로 스테디셀러였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가 전면 개역판으로 새로 나와 주목받았고, 《마르크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도 관심을 끌었다.
주요 내용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소수 정당의 의회 진입 장벽 해제, 선거연합정당 허용 등이었다.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는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의회(국회든 지방의회든) 의석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나마 2002년 지방선거부터 도입된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전체 의석수의 적은 일부만을(국회는 의원정수의 14.3퍼센트인 43석, 각 지방의회는 9.1퍼센트) 할당한다.
그래서 2012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큰 혜택을 봤다. 지역구든 비례든 그 당들은 자신이 실제로 얻은 득표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진보정당들은 매번 손해를 봤다. 가령 100퍼센트 비례대표제라면, 민주노동당(2004)이나 통합진보당(2012)은 원내교섭단체(국회의원 20석)를 만들고도 의원이 열 명 넘게 남았을 것이다. 정의당(2016)도 원내교섭단체 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비례대표 확대는 진보진영의 오랜 요구였다. 물론 기성 정당들은 이를 반대해 왔다.
지난해 노동당, 녹색당, 민중당 등이 꾸린 “정치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제정당 연석회의”는 그동안 전국 단위 100퍼센트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요구하고 캠페인을 벌였다.
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선거연합정당 허용 요구다. 선거 시기에 한정해 각 정당과 정치세력들의 연합을 하나의 정당으로 등록 가능하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는 금지돼 있다.
사실 이 선거연합정당 아이디어는 노동자연대가 여러 해 전부터 제기해 온 것이다. 노동자연대는 2016년 민주노총 정치방침 대의원대회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바 있다.
전에는 진보정당들이 부정적이었다. 선거법 때문이기도 했지만, 각자의 이해관계 불일치가 더 컸다. 당시로선 가장 규모가 컸던 자민통계는 통합된 정당이라는 대안을 고수했다. 이는 독자성을 중시해 온 옛 진보신당, 그리고 노동당이나 자민통계와 통합진보당에서 분리한 진보정의당, 또한 정의당이 진보 통합에 소극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일터와 거리에서 투쟁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는 해도, 선거 시기에는 강력한 진보 염원이 모이도록 초점을 제공할 필요도 있다.
여전히 자유한국당은 개혁과 평화 염원에 역행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들에 대한 반감 덕분에 선거적 이득을 보지만 그 실체는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개혁에 불과하다. 때마침 문재인 정부는 우회전하며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노동자 투쟁이 성장할 조짐이 있고, 최근의 전국 선거들에서 진보·좌파의 득표도 꾸준히 성장했다. 한 달 전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다음의 전국적인 선거에서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정치조직)들이 연합해 선거적 대안을 내놓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현실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세계적 경제 침체 상황에서 진보와 개혁의 성격에 대한 태도, 북한과 안보 위기에 대한 태도 등에서 진보·좌파 세력 안에서 정치적 차이는 더 깊어졌다. 최근 선거들을 보면 노동자들과 진보 염원층에서 정의당에 표를 몰아주는 현상이 굳어지는 듯하다. 물론 정의당이 너무 온건하다는 불만도 이들에게서 감지된다. 같은 이유로 정의당에 투표하지 않는 진보 염원 대중도 적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하나의 단일 정당이라는 프로젝트는 더는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각자 강령과 조직을 유지하면서, 선거에서 합의 가능한 개혁 공약 묶음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지지를 중심으로 선거 연합을 형성하는 것도 유용하다.
사실, 노동당은 예로부터 좌파의 독자성을 내세워 진보측 선거연합 정당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노동당이 선거연합정당을 도입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지역구로 선거를 치르지만 한 정당이 얻은 지역구 득표의 총합 비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정당별 배정 총 의석 수와 지역구 당선자 수의 차이를 비례대표가 채우는 것. 종종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 득표를 초과할 때도 있다. 보통 그 경우 초과의석을 허용한다. 연석회의는 총선에서 이 제도를 전국 단위로 적용하고 지역구와 비례의 의석 비율은 1:1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7월 5일 국군기무사령부의 반동적 친위 쿠데타 기획이 폭로됐다. 올 3월에 이어 두 번째 폭로다. 둘을 종합하면, 군부는 촛불 초기부터 군대 투입을 검토한 걸로 보인다.
이번 폭로에는 지방선거 후 급속한 우회전으로 지지층 이반 위기 조짐을 겪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계산도 담겨 있을 것이다.올 초에도 군대의 무력 진압 논의 의혹이 폭로됐지만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던 문재인은 7월 10일에야 기무사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일부 쿠데타 기획 관련자들은 문재인 정부 아래서 승진도 했다.
한편, 기무사의 쿠데타 기획을 보면 향후 운동의 전략과 관련해 큰 시사점을 준다. 그 점을 주로 다뤘던 기존 기사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을 보강해 증보판으로 발행한다.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제압을 위해 계엄 선포 등 친위 쿠데타를 검토·기획한 사실이 드러났다.
7월 6일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입수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 작성, 사령관 조현천)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그랬듯이,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출동시킬 명분을 국가 혼란과 안보 위기에서 찾으려 했다.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도 상존’하는 상황에서 국가적 혼란이 빨리 해결돼야 하므로, 국민 권리를 침해하거나 위헌의 소지가 있어도 군대가 출동해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군의 우선적인 책임이라는 식이다.
이런 명분을 위해 이들은 상황을 왜곡했다. 촛불과 태극기는 영향력과 규모에서 비교도 안 됐는데, 정국이 좌우로 대등하게 양분돼 국정이 혼란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촛불 집회 : 18차 연인원 1,540만 여명, ‘기각되면 혁명’ 주장 / 태극기 집회 : 15차 연인원 1,280만 여명, ‘인용되면 내란’ 주장”)
또한 주목할 점은, 쿠데타 기획 세력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탄핵 기각시에만’ 출동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촛불로 고양된 정국 상황 자체를 제거하고 싶어한 듯하다.
“탄핵심판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청와대·헌법재판소 진입·점거를 시도”, “유언비어가 난무하고,진보(종북) 또는 보수 특정인사의 선동으로 인해 집회·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돼 “치안 불안” 초래.
탄핵심판 결과에 상관없이 군대가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 문건이 계엄 선포 과정의 난점들을 검토하며 해법을 제시하는 점도 반동적 군사 반란을 해내려는 이들의 ‘의지’를 보여 준다.
계엄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해 위수령으로 시작할 것, 국회에서 위수령을 무효화하는 법안 제정시 대통령(탄핵이 되면 대통령권한대행은 황교안, 탄핵이 기각되면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직 수행)의 거부권 행사를 통해 2개월의 시간을 벌 것, 국군조직법상 육군참모총장(당시 장준규)에게 병력 출동 승인권이 없으니 편법으로 선 승인 후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게 사후 별도 승인을 받는 식으로 할 것 등등.
물론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랬듯이, 군부 쿠데타가 감행됐다면 그 총구는 촛불, 노동자 운동, 진보·좌파들을 향했을 것이다. 군대가 일단 나섰다면, 박근혜가 헌재에서 탄핵됐다고 해서 태극기 집회가 계속 난동 같았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명분을 제공한) 군부를 환영하며 협조했을 것이다.
(※3월 10일의 태극기 집회를 떠올려 보자. 박근혜가 헌재에서 파면된 날, 태극기 집회 측은 경찰버스를 탈취해 들이받고 집회 참가자가 사망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계엄 선포의 명분이 되기엔 소박한 규모였지만 말이다. 그날의 난동이 해프닝으로 끝난 건 이들의 의도와 실제 상황의 큰 격차도 보여 준다. [결국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하면, 이들이 나설 수 있는 상황이란 건 헌재의 탄핵이 기각됐을 때 국정에 복귀하는 박근혜의 친위 쿠데타 형식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문건은 위수령부터 계엄령으로 가는 로드맵과 계엄사령부 구성과 병력 배치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탱크와 장갑차 수백 대 등 중무장한 기갑사단과 공수부대를 동원해 청와대, 헌법재판소, 정부 청사, 국방부, 국회 등 정부 주요 시설과 광화문 등 시위 예상 장소, 전국의 주요 도시, 방송 등을 장악하려 했다.
친박의 친위 쿠데타 몽상?
문건에 따르면, 서울 지역 위수령 발동시에는 무력 진압 논의를 주도한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이 위수사령관이 되고, 편법으로 부대 출동을 승인하도록 한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작전을 짠 기무사령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를 맡도록 했다. 계엄사 합수부는 계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사법처리”와 “언론 통제” 등을 담당한다.
이런 계획은 1979~1980년 전두환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전두환 본인이 쿠데타 당시 보안사령관(지금의 기무사령관)으로 계엄사 산하 합동수사본부를 맡아 중앙정보부, 보안사, 보안경찰 등 모든 정보기관을 통제하면서 실권을 잡았다. 기무사령부는 과거 악명높았던 방첩부대, 특무부대의 후신인 군부 내 정보기관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아래서는 사이버 심리전 부대를 만들어 여론 공작을 벌였다. 그 일환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감시하고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일도 벌였음이 최근 폭로됐다.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전두환 구실을 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최순실의 추천으로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걸로 알려진 조현천은 육군 내 육사 출신 사조직인 알자회 출신이며 친박 실세 부총리였던 최경환의 고교 후배다. 또한 우병우(구속), 국정원 국장 추명호(구속) 등과 함께 군 인사 등에 개입해 온 의혹을 받아 왔다.(추명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우익 단체들을 지원해 키우고 민간인 사찰과 여론 공작 등을 벌인 혐의로 구속돼 있다.) 문건에는 “국가 사이버 대응 조직 활용”도 계엄시 할 일로 포함돼 있다.
따라서 기무사가 작성한 시나리오는 촛불에 대한 박근혜와 군부의 반동적 친위 쿠데타 기획으로 볼 수 있다. 3월에 폭로된 무력 진압 논의와 추가 폭로 사실들을 더해 보면, 수방사령관, 기무사령관 등 정권과 직결되는 지휘관들이 모두 연루돼 있고 그 시기도 촛불 초기인 2016년 11월부터다.
이런 문건이군의 공식 계통에서 누군가의 지시로 기획되고 보고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쿠데타 음모를 적발하는 것이 공식 임무인 기무사에서 쿠데타 검토·기획 문건을 작성하고 있겠는가? 특히청와대가 몰랐다면 그것 자체가 쿠데타 모의이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군부의 핵심이 연루돼서 문재인 정부가 3월에 공개 폭로된 뒤에도 딱부러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걸 수도 있다.)
기무사, 수방사 등의 관련 지휘관들, 육군참모본부와 국방부의 육군 고위 장성 출신들(가령 당시 국방장관 한민구, 청와대의 안보실장 김관진과 경호실장 박흥렬 등 포함)과 함께 박근혜 본인, 대통령권한대행 황교안 등이 모두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
촛불의 기세가 쿠데타 시도를 포기하게 했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군인권센터는 올 3월에도 ‘[촛불 초기인] 2016년 11~12월부터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구홍모 주도로 촛불 시위 진압에 군대를 동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군부는 청와대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에 대한 대응 검토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올 3월에 〈노동자 연대〉는 군부가 시위 진압에 나온다는 것은 (단순한 진압 보조가 아니라) 당시의 정세상 어떤 명분이든 사실상 친위 쿠데타였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를 돌아 보자. 퇴진 운동 초기에 민주당 대표 추미애가 계엄령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낌새를 눈치 챈 태극기 집회에서도 12월부터는 군대가 (계엄을 선포하고) 나서라고 촉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런 일들은 화제가 됐지만, 사람들이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계엄령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당시 정권 퇴진 여론과 촛불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정치 상황상국회가 계엄령에 찬성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집권당 의원들이 분열했다. 그래서 국회가 박근혜를 압도적으로 탄핵해 직무를 정지시켜 버렸다. 문건을 보면, 그들도 국회가 계엄령은 물론이고 위수령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때문에 박근혜 측이 위수령이나 계엄령을 선포한다면 도심만이 아니라 국회, 법원, 방송국 등을 일시에 장악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전격적인 유혈 쿠데타를 각오하는 도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운동의 기세 때문에 이런 도박은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었다. 당시에박근혜와 군부가 도박을 했다면, 5·16의 반복이 아니라 혁명에 의한 카운터펀치를 부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나 당시 대중의 기세가 너무 커서 박근혜 정권에 대한 수사와 검찰, 법원, 국회 모두 운동에 양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노동계급의 투쟁성이 (발휘되지는 않았어도) 잠재해 있었다.
모두가 경멸하는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에 대중은 격분했을 것이고, 사병들도 동원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순식간에 혁명적 상황이 조성됐을 것이고, 당황한 지배계급 내 일부가 박근혜를 비합법적으로 자리에서 제거해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대중의 분노와 사기는 오히려 올랐을 것이고, 대중의 격렬한 저항 태세가 결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저항의 최종 성패는 결정돼 있지 않았다. 우리 쪽 대응 태세가 중요했는데, 그 점이 어떨지 미리 결정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부가 쿠데타를 검토·기획해 놓고도 끝내 포기한 일은 5개월간 평화로운 집회와 행진이 주된 특징이었던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이면에서 계급 간에 치열한 힘겨루기(세력균형에 대한 가늠과 도발)가 지속해서 벌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운동의 승리를 위해서는 노련하고 명확한 판단에 기초한 단호함을 갖춘 지도력의 존재가 중요했다. 그런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의 온건파 지도자들 일부는 12월 초순에 촛불 집회를 중단하자고 했다.(황교안 퇴진 요구도 처음엔 반대했다.) 좌파가 강력히 반대했고 대중이 호응해 계속 대규모 집회가 유지됐는데, 돌아보면 (군대가 보복을 검토하던 그 순간에) 촛불 중단은 오히려 매우 위험한 시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정치적 실패가 명백한 박근혜 정부를 지키려고 지배계급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위험 부담을 감수했을 것 같지 않다. 박근혜 임기 내내 정권과 코드를 맞춰 왔던 헌재가 ‘만장일치’로 박근혜를 파면한 것이 그 방증이다.(박근혜 측에게 행여나 오판하지 말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청와대나 군부 일각에서도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이런 답 말고는 잘 나오지 않으니, 기회를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군대 출동 시나리오까지 만들고도실행에 옮길 생각은 최종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작동·유지하는 동력이 기층 대중의 힘에 있음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이를 뒤집어 지배계급의 처지에서 보면, 퇴진 운동에 양보해 박근혜를 퇴진시킨 것, 집회·행진을 허용하고 (퇴진 수단으로) 헌법재판소라는 헌법 절차를 통한 것 등이 결과적으로는 혁명으로 발전할 작은 가능성을 억제하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방어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도 계급 독재
군부의 쿠데타 모의가 확인됨으로써,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아래서도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얼마든지 “민주주의”, “문민 통치” 같은 기존 통치 질서와 공언을 뒤집고 유혈 참사를 일으킬 수도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100년이 넘은 영국에서도 1970년대 초에 북아일랜드 사태 진압을 위한 군부 쿠데타 논의가 있었다. 2010년 그리스에서도 트럭 기사 파업에 군대가 투입됐다.
1918년 독일 노동자와 사병들의 혁명을 막으려고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넘긴 독일 군부는 결국 1933년 초에는 노동운동과 진보·좌파를 쓸어버리려고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해 나치가 집권하는 길을 열어 줬다.
프랑스 지배자들은 1934년 파시스트의 의회 공격을 막아 낸 노동계급의 투쟁과 사기가 오른 덕에 1936년 공산당이 포함된 민중전선의 집권을 용인했고, 5월 대중 파업에 커다란 양보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1940년 독일 나치 군대의 점령에 협조하며 꼭두각시 비시 정부를 통해 이 양보들을 원상 회복하려 했다.
1973년 칠레에서는 미국의 후원을 등에 업은 군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좌파 정부를 뒤엎고 좌파와 노조원들에게 유혈낭자한 복수극을 펼쳤다. 그때까지 칠레는 라틴아메리카 나라 중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가장 오래 정착된 극소수 나라에 속했다.
한국 노태우 정부 때에는 일부 시위 진압 경찰에게 M16 총기가 지급된 적이 있었고,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검토했음이 폭로된 바 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도 지배 계급인 자본가 계급의 지배가 위험해졌다 싶으면 계급 독재로서의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다.
혁명은 점진적 과정인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분석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도 혁명이 단지 점진적으로 다가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적 가능성(현실성, 실재성)을 지닌 사건이라는 점도 보여 준다.
1934년 봄 프랑스에서 파시스트 쿠데타가 공산당·사회당 공동 시위에 부딪혀 좌절되자 트로츠키는 프랑스 혁명의 서곡이 울렸다고 선언했다. 2002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차베스 정부를 뒤집으려 한 우익 지배자들의 쿠데타가 실패한 뒤에 베네수엘라에서는 대중운동이 고양되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었다.
세계적 장기 침체 시기에는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불안정해지고, 불안정과 저항에 맞서 지배계급이 반동으로 돌아서서라도 계급 지배 질서를 지키려 할 수 있다. 따라서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상 상태를 준수하고 그에 적응하려는 개혁주의는 전략적으로 부적절하다.
가령, 퇴진 촛불 때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어떻게든 운동이 국회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헌정 절차로 수렴되게 하려고 애썼다. 국회 탄핵 후에는 집회도 멈추려 했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인 황교안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도 인정해 주려 했다. 만일 국회 탄핵 이후 12월 중순에 퇴진 촛불을 멈췄다면, 일부 우익에게 오판할 기회를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헝가리인 마르크스주의자 죄르지 루카치(1885~1971)는 레닌주의 정치의 핵심은 “국제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사건 모두를 혁명의 현실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중의 자발성을 뒤따르다가 오히려 혁명적 자발성의 발목을 잡으려 했던 나머지 좌파들과 달리 레닌과 볼셰비키가 결정적 순간에 대중과 함께 혁명적 권력 장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다.
개혁주의자들의 소심함과 달리, 한국 지배자들 다수는 오히려 ‘혁명의 현실성’을 계산에 넣었고, 그래서 당시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더 심화·안정시키는 쪽으로 비교적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킨 것은 ‘혁명의 현실성’이 주는 압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그들이 앞으로도 오판을 안 한다는 보장은 없다. (임박한 가능성은 아닐지라도) 제국주의 시대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 격변의 시대이므로 누구든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혁명의 현실성’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킨 동력이었다는 역설과 현재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이 점증하는 상황은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전략 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양승태 대법원의 반노동 재판 거래 의혹이 결국 검찰 수사로 번졌다. 6월 15일 현 대법원장인 김명수는 수사에 협조하겠다 했다. 하지만 김명수 자신을 포함한 대법관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부인했다. 법원행정처도 검찰에 하드디스크 제출을 거부했다.
대법관들이 이렇게 나온 마당에 검찰 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이나 구속 등이 필요해도 그것을 허가할(영장 발부) 권한이 법원에 있기 때문이다.
수사를 잘해도 재판 거래 범죄를 제대로 판결할까 의심스러운 판국에 수사마저 부실해지면 더더욱 단죄 가능성이 낮아진다.
재판 거래의 일부였던 대법관들이 (어쩔 수 없이 수사에 들어간) 검찰이나 여론을 향해 ‘해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적폐 범죄자들이 적폐 청산 수사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6월 28일 쌍용차 노동자 한 명이 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명박 정부의 살인 진압 피해자였다. 대법원이 재판 거래로 쌍용차 노동자들을 또다시 궁지로 몰지 않았다면 그렇게 세상을 뜨지 않았어도 될 목숨이었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은 파업 후 사회에 이렇게 호소했다. “왜 우리를 구속시키는 법만 적용하고,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은 적용되지 않는 건가?” 재판 거래 의혹의 폭로는 그 이유의 일단을 알려 준 사건이다.
노동자들이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판결이 양승태 체제 아래서 대법원에서 뒤집히자 KTX 승무원, 쌍용차 노동자들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생겼다. 전교조에서는 수십 명의 해고자들이 양산됐다. 진보당 의원과 활동가들이 정당한 시민권을 빼앗기고 부당한 징역형을 살았거나 아직도 살고 있다.
양승태와 그 측근들은 증거 인멸과 다름없는 일들을 자행하고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부인했던 것이다.
사법부 개혁이 가능할까
사법 농단의 중심에는 법원행정처가 있다. 양승태와 전 법원행정처장 박병대 등의 컴퓨터를 디가우징[하드디스크를 복구 불가능하게 지우기]한 것도 법원행정처가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법원행정처는 부인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판사 인사 관리, 재판 배당 등의 사법 행정(사법부 관리와 통제)을 담당하는 핵심 행정 기관이다. 사법 행정의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다. 가령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임명권을 통해 주요 인물 구속영장 기각 등 박근혜 권력 농단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서열이 엄격한 조직인 법원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그가 임명한 보직 판사들이 인사, 재판 관리 등 법원 행정을 담당하니, 법원행정처의 권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법원행정처의 주요 보직들이 사법부 내 고위직(대법관 등) 승진에 유리한 출세 코스인 이유다. 법원행정처는 사법부가 (자유주의자들의 이상과 달리) 독립적인 판사들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곳이 아님을 보여 주는 증거다.
이번 사법 농단 스캔들에서 양승태의 심복인 임종헌이 바로 법원행정처의 2인자 자격으로 앞잡이 구실을 했다. 그렇다면 법원행정처장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까? (임종헌의 윗선인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등의 컴퓨터를 디가우징한 것은 현 법원행정처가 임종헌 선에서 꼬리를 자르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비록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이지만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하고 그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들을 추천하므로(그리고 그 대법관들 중 한 명을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하므로), 국회에서 과반 다수당을 이뤘던 우파 정부 아래서 유착이 더욱 손쉬웠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와 양승태 체제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동안 자유주의적 사법 개혁론자들은 법원행정처를 판사가 아닌 일반 공무원이 맡고 판사는 재판만 맡게 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기관이며, 기성 체제의 법률에 따르는 곳이다. 따라서 서열에 따른 운영이나 인적 구성만이 아니라 기능도 가장 보수적인 곳이다. 3권 분립이 최초로 구현된 미국에서 그 토대를 놓은 인물들은 선출되지 않는 사법부의 기능이 혹시 ‘민중적’으로 구성될지도 모를 의회에 대한 견제라고 못 박았다.
사법부가 대통령의 임명권이나 국회의 임명 동의권을 거쳐 고위직을 충원하는 구조는 권력 3부가 모두 동의할 만한 사람들로 사법부 상층을 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법) 적폐 청산을 주창한 문재인이나 김명수 모두 이번 사법 농단 의혹 앞에서 주춤하거나 청산 의지가 없는 것을 봐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3권 분립 강화로는 반노동계급적 사법 농단이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다. 1심, 2심, 3심을 모두 독립적인 기관으로 하자는 일각의 개혁 방안도 진정으로 노동계급에게 공정한 재판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은 못 된다.(유일하게 대법원에서 뒤집어진 KTX 승무원 판결을 보라.)
6월 21일 대법원장 김명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근로기준법의 휴일 초과 근무에 대한 초과수당을 할증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기업주들이 원한 결과였다. 양승태 체제에서 법 개악을 기대하며 무려 7년이나 미뤄 둔 것이었고, 마침내 2월 말 국회는 할증 지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으로 법을 개악했다. 이 개악이 이번 판결의 근거였다.
이처럼 반(反)노동 재판과 입법이 서로 돕는 현상은 권력층 안에서 어떤 거래가 오가는지 잘 보여 준다. 계급 권력 아래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노동계급의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이유다.
지난해 하반기 우리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에서 시작해 은행권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로 번진 은행권 채용 비리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찰은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에서 임직원 38명(12명 구속, 추가로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성차별 채용으로 은행 자체를 기소)을 기소했다. 이중 은행장이 4명이다. 검찰은 신한금융그룹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발표한 채용 비리의 다수는 이미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드러난 것들이었다.
은행 내부 고위 임원 자녀 부당 합격, 은행과 거래 관계에 있거나 은행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층 자녀의 청탁 합격, 성별·학력 차별 채용 등 총 695건이 기소됐다.
은행들은 청탁 대상자 명부를 작성해 채용 과정에 활용했다. 이런 관행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국민은행에서는 채용팀장이 부행장 자녀와 이름·생년월일이 같은 지원자를 알아서 점수 조작으로 통과시켰다가 다른 인물임을 알고 최종 탈락시킨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특히 성 차별 채용은 학력 차별과 마찬가지로 커트라인을 넘은 지원자들을 대거 탈락시킨 것이라 죄질이 더 나쁘다.
KEB하나은행은 아예 처음부터 내부적으로 남녀 선발 비율을 4:1로 정해 놨다. 그러나 지원자에서 남성 비율이 50~60퍼센트 정도였으니, 여성 지원자들은 남성 지원자보다 적게 잡아도 두 배 이상 높은 경쟁률에 더 높은 커트라인이라는 피해를 본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아예 남녀의 합격을 대놓고 뒤바꿔 버렸다. 515명 합격자 중에서 남성은 113명이 추가 합격했고, 대신 여성 지원자 중 합격한 112명이 불합격으로 돼 버렸다.
문제는 이 정도 규모의 채용 비리가 수년 간 저질러졌는데도 실권을 가진 최고 경영자들을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차별 채용 건은 은행 자체가 기소된 건인데 말이다. 조직적인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대규모 채용 비리가 일어났는데 시킨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기소된 695건 중 하나은행이 239건, 국민은행이 368건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적발된 채용 비리 과정 내내 최고 경영자였던 김정태, 윤종규 두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휴 규탄 성명을 내고 18일 오전에는 본점 앞에서 퇴진 요구 집회도 했다.
“당시 은행장으로서 채용비리의 총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윤종규 회장이 구속은커녕 기소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황당하[다.] ... 채용 비리 사건의 발단은 금융감독원이 특정한 3건의 채용 비리 의혹, 그중에서도 서류전형 813등, 1차 면접 273등에서 최종면접 4등으로 합격한 윤종규 회장의 종손녀와 ... [또 다른 특혜를 받은] 전(前) 사외이사의 자녀였다.
“[윤종규 회장이] 구속자에 김앤장 변호사를 붙여 주고, 임원들과 부서장들이 100만 원씩, 30만 원씩 갹출을 해 도와 주려다 감독기관에 들켜 다시 돌려 주고, 구속자와 별도로 채용 비리 사건 대응을 위해 김앤장에 수십 억 원의 자문료를 주고 얻고자 한 결과[가 윤종규만 빠져나가는 것인가?]”
윤종규는 조합원의 파업 참가 방해와 노조 선거 개입 등을 자행하고 성과연봉제와 성과추진본부 도입 등 노동자 구조조정에 앞장선 악덕 경영자이기도 하다.
국민은행 다음으로 채용 비리 건수가 많은 하나은행의 회장 김정태도 윤종규와 마찬가지로 노조 탄압과 구조조정을 자행해 왔다.
“남녀 성비를 미리 결정해놓고 점수를 조작해가며 성차별 채용을 했는데도 은행장과 지주회장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실제 업무를 수행한 실무자들만을 향했을 뿐 최종 책임자인 CEO들에게는 눈을 감았다. 특히 이번 수사 결과에 대해 1심 재판 결과를 보고 징계를 결정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적폐 청산을 자임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찰은 매번 줄타기를 해 왔다. 이번에도 채용비리는 수사해 수십 명을 기소했지만, 해외 주주들의 지지를 받은 두 최고 경영자는 기소하지 않았다.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은 대규모 투자와 신규 채용 등으로 여론의 화살을 돌리려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를 못살게 굴고, 청년들의 취업 꿈에 찬물을 끼얹은 은행권 적폐는 단죄를 받아야 한다.
금융노조와 해당 은행 지부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문제의 경영자들을 쫓아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6월 15일 금융노조는 산별 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행위 수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사용자들이 노조 요구안을 모조리 거부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의 부도덕한 경영진 퇴진 요구가 임단협 투쟁과 결합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