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량 제약 때문에 줄였던 부분 중 일부를 되살린 버전.


박근혜 2년

거듭 지연된 반동 공세와 팽팽해진 정치적 양극화




2012년 12월 박근혜가 당선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노동자와 활동가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파 재집권에 실의와 좌절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만만찮은 민심에 잘 보이려고 대선에서 “아버지[박정희]의 꿈이 복지국가”라는 흰소리를 해댔지만, 선진 노동자들은 대체로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이 중 일부는 박근헤 당선으로 사기저하되기도 했지만 팽팽하던 세력균형이 바뀐 건 아니었다.)


이런 계급적 직관이 더 통찰력 있었다는 것이 취임식 전부터 분명해졌다. 박근혜 표 ‘신뢰의 정치’는 오로지 기업주들과 우파를 위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핵심 공약이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공약이 취임식도 하기 전에 폐기됐다. 기초생활보장 예산도 삭감했다. 당선 직후부터 대선 복지 공약은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서 거두어들이라고 ‘조언’했던 조중동은 이런 조처들을 반겼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 · 철도 · 은행 민영화 등을 공언하고 부자들에게 활로를 터 주려고 부동산 경기 부양책에 매달렸다. 그런 부담들은 은근슬쩍 노동자 증세로 때웠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이라며 호통치던 박근혜 2년 아래서, 부자에겐 ‘증세 없는 복지’가 제공되고 노동자 · 민중에게는 ‘늘어난 것은 세금과 빚뿐’인 현실이 됐다.


이런 고통전가 정책이 성공하려면 노동자 투쟁에도 족쇄를 씌워야 했다. 기업 규제를 “암 덩어리”라며 ‘규제 완화를 위한 전쟁’을 선동하던 박근혜는 노동운동에는 온갖 제약과 탄압을 선물했다.


박근혜 정부는 20년 전 민주노총 창립 이래 민주노총 본부를 경찰력으로 침탈한 첫 정부였다. 해직자에게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라며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시도했다. 형법 내란 선동 · 음모죄 조항을 부활시키고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진보당을 해산시켰다. 불법 채증과 통신망 사찰을 남발하며 집회 참가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집권 3년차에는 더 본격적인 고통전가를 추진하려 한다. 정리해고는 물론이고 일반 해고까지 그 요건을 완화하고,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확대 정책으로 임금비용을 대폭 줄이려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는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국민연금 삭감, 전반적 임금 삭감으로 이어가려는 수작이다.



경제 · 안보 위기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를 전반적으로 악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진정한 존재 이유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근이 버텼던 한국 자본주의도 곧 본격 위기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져 왔다. 또한 경제 위기가 낳은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동북아시아에서도 강대국 간 갈등을 낳고 있다. 이런 갈등을 배경으로 한 미 · 중 사이의 줄타기 문제와 남북 갈등 심화를 놓고 한국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 안보의 이중 위기 속에서 우익 지배자들은 단호하게 노동자들을 공격해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고 국가적 단속을 할 정부가 필요했다. 단순히 위기를 겪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안정적인 관리자”가 아닌 ‘공격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유신 DNA의 박근혜가 딱 적임자였다.


박근혜의 당선 과정부터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선거 개입으로 얼룩진 것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지지 기반 때문에 집권 과정은 물론이고 정부의 인사 전반이 부패와 반민주적 인물들의 향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신헌법의 기초자 김기춘,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 등 엘리트 공안검사 출신, 군부 출신이 중용됐다. 심지어 미국 CIA에 협력했던 자까지 끌어들이려 했다.


올 2월 말에는 지지율 하락을 만회한다며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현직 국정원장이자 공작정치의 대가인 이병기를 임명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북한 위협론으로 ‘빨갱이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아 왔다(냉전적 반공주의). 이를 통해 자유주의 세력과 의회 내 진보정치 세력들을 위축 · 순치시키고 좌파의 영향력이 확산하는 것을 축소 ·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거듭 지연된 반동 공세


그러나 박근혜의 이런 우경화 본색은 자주 벽에 부딪혔다. 복지 공약 파기와 인사 파동으로 박근혜는 취임시 지지율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위선을 꿰뚫어 봤던 조직 노동자들이 정권 초기부터 고통전가 공세에 맞선 투쟁의 최선두에 서 왔고 이후 저항의 주 동력이었다.  박근혜 첫해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적 평가가 가장 높고 지지율 하락 폭이 가장 컸던 때도 2013년 12월 철도 파업 때였다.


(※ 조직 노동자들은 대선 직후 잠시 우울함을 맛보기도 했고 개혁주의 리더들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 명확하진 않았지만 세력균형에서 밀렸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곧바로 저항에 나섰다. 대선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세력균형이 노동계급에게 불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박근혜의 대선 때 언행과 공약이 실체와 달리 포퓰리즘적이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도 박근혜 정부에 타격이 됐다. 사건 자체가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에서 노동자 계급의 생명과 안전이 뒷순위로 밀렸음을 드러냈다. 이에 더해 박근혜가 기업과 관료를 보호하려고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에 전혀 성의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불신과 분노는 더한층 커졌다.





이런 어려움에도 박근혜는 2년 내내 통치권 강화를 위해 국가기관 전반에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도 그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2013년 8월에는 노동운동 공격을 막 본격화하려는 시점에서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제동이 걸리는 판결이 나와 타격을 입었다.(당시 전교조 조합원들의 강경한 법외노조화 거부 태세가 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2월에는 박근혜 당선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구속하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 내부에서 이 사건 수사를 놓고 한때 항명이 일어나 청와대가 검찰총장까지 날릴 정도로 사건 은폐에 애를 썼는데도 그리된 것이다.


3권 분립이 애초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를 통해 선출된 의회와 대통령 등을 견제하려고 교묘하게 고안된 부르주아 지배 체제인 점을 감안하면, 3권 분립이 자본주의 우익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설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통치 스타일은 ‘유신’이지만 유신 체제 회귀는 아니고, 이 정부 아래서 팽팽한 세력균형 때문에라도 지배자들이 쉽게 ‘동의에 의한 지배’의 장점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노동자 연대>의 전망이 옳았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식 반동이 거듭 지연된 것 때문에 이 정부는 우익 기반 안에서도 점차 신뢰를 잃어 왔다. 이 때문에 올해 박근혜는 더더욱 전면적인 반노동 공세를 관철하려고 악착같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애초에 이런 공격을 위해 집권한 정부가 집권 3년차에야 이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상황이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는 것도 보여 준다.



노동자 민주주의


이렇게 봤을 때, 정치적 양극화가 팽팽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 국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운동이 저항의 선두에 섰지만 손에 쥐는 성과를 얻은 것도 없다는 점도 봐야 한다. 여기에는 운동의 정치, 특히 노동운동 상층 리더들의 개혁주의 정치의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유신 회귀 반민주 세력에 맞서 새정치민주연합, 중간계급 등과의 계급 협력적 방식으로 싸우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성장해 ‘강압’만으로는 이를 다루기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자본가 계급이 부르주아 지배 체제에 노동자 민주주의 요소를 ‘일부’ 허용한 체제다.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합법적 임금 인상 투쟁, 복지 확대, 정치적 표현과 결사의 자유 등.


이는 민주주의의 동력이 노동자 투쟁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권력을 분배해주는 체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래서 노동계급과 자본가들 사이의 화해는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로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권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단절하는 과정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때문에 계급을 가로질러 협력하자는 전략은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에서조차 효과적 방식이 못 된다. 자본의 이윤에 타격을 주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투쟁 방식(이자 가장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야권연대에 기대를 걸고 자기 제한적으로 싸운 경우들이 그렇다.


부르주아 야당으로서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의 권력 접근을 보장할 절차적 민주주의의 일부 요소를 보호하는 문제 외에는 진지한 열의가 없다. 철도 파업, 연금, 세월호 참사 등에서 거듭 입증돼 왔다.


이런 분석이 노동운동에게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 위기가 계속될 것이므로 그에 따른 안보 위기, 정치 위기도 지속될 것이다. 이에 따른 지배계급의 동요와 신경질적인 탄압도 벌어질 것이다. 이는 박근혜가 가려는 길과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동시에 보여 준다. 지금 박근혜는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국면 전환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둘째, 노동운동은 계급투쟁적 전략으로 저항에 나서야 한다. 노동운동의 투쟁 태세가 확고하고 강력해 보일 때만 지배자들 안에서, 박근혜와 그 지지 기반 사이에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셋째,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이 노동자 민주주의이므로 정치적 요구를 내건 투쟁뿐 아니라 부문적 경제투쟁들도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두 가지 형태의 투쟁을 결합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둘 모두 이윤에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노동자들의 투쟁이 단순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을 효과적으로 해 내려면 ‘정치’가 중요하다. 공식정치에 선거로 대응하는 것만이 노동자 정치가 아니다. 이간질에 맞서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기, 북한 위협 등 안보를 이용해 노동자 운동을 위축시키려는 시도 등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노동계급 운동 안에 더 많이 뿌리 내리고 성장해야 한다.




기사 원문: <노동자 연대> 144호 | online 입력 2015-03-12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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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중항쟁 30년 ④: MBC와 투사회보, 그리고 저항 언론
광주민중항쟁 30년 ⑤: MB 시대와 민주주의, 저항의 길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정부가 두 차례 집권했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대단한 민주개혁도 없고, 사는 건 더 힘들어지고, 오히려 정부 정책은 부자와 기업주만 이로운 정책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운동의 성과물로 집권했지만, 단순한 집권세력 교체는 일당국가를 해체했지만, 사람들이 바랐던 희망으로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운동의 리더들이 민주당 등을 통해 기성 정치권에 진입했지만 그들은 기껏해야 기득권 질서의 얼굴마담이 됐을 뿐입니다. 

진정한 권력자들은 ― 대기업주들, 토지/금융 자산가들, 군부, 고위관료들 ― 선출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더 분명해 졌습니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은 요새 상식처럼 돼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주들이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건 아닙니다. 이들의 파워는 고위 관료와 언론, 법조계 등과 엮여 있습니다.

삼성을 지배하는 이건희 일가와 그 일당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지만, 한편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막대한 돈을 ‘뇌물’로 바쳐야 합니다. 최근 천안함 조사 등의 청문회에서 보듯, 고위 군인들이나 관료들이 청문회 등에서 국회의원들 다루는 태도에는 여전히 권위주의가 남아있습니다. 삼성 일방 지배가 아니라 대기업주와 대자산가들, 고위 정치관료(군인 포함) 들의 동맹 지배입니다.

민주당 정권이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데 실패한 이유입니다. 이들은 늘 이 진정한 권력자들의 충실한 동료이거나 조력자였습니다. 그런 점에선 의회중심 진보정당 노선도 한계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이명박이 제도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우습게 만드는 걸 보면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불가역의 성과가 아니라 매우 허약한 것일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칩니다. 기업주들은 경제위기로 흔들리고 저항을 억누르는 게 일차 과제라고 느낄 때 (부르주아)민주주의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들의 의도가 늘 관철되는 건 아닙니다. 이명박 집권 후 가장 약했을 때는 가장 정부가 강해야 할 선출 직후였습니다. 바로 2008년 촛불운동이 이들의 집권 플랜을 흔들어 놨습니다. 요새 보이는 이명박의 무리수는 모두 이때 중요한 우파 개혁을 시도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2008년 촛불운동은 정권이 힘있는 상태일 때, 전격 실행해야 할 인기없는 개혁들 - 공공서비스와 의료 민영화 등- 의 추진력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세계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정책 수단의 폭이 매우 좁아 졌습니다. 그뒤 지난 2년간 경기부양에 중심을 두고 왔는데, 이젠 이 정부의 발목을 잡습니다. 감세 정책이 경제 위기로 지출을 늘린 재정 정책의 발목을 잡습니다. 재정을 늘려야 하는데 세수가 줄어드는 겁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이명박 정부가 숨길을 트는 길은 정권 반대파들의 민주적 권리를 억누르는 쪽으로 달려가는 것밖에 없는 듯 보입니다. 당근으로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을 달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에 민주적 권리를 빼앗아 저항을 억누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문제는 혐오스런 이 정권을 촛불항쟁으로 맞이했던 사람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촛불 트라우마를 용산과 쌍용차에서 만회하려 했으나, 지배자들 자신도 그 과정에서 상당한 트라우마를 입었다는 게 용산참사 총리 사과와 올해초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 등에서 드러났죠. 

막대한 북풍 여론 몰이와 엉터리 여론조사를 뚫고, MB 심판 의지가 드러난 지방선거 결과도 저들의 트라우마를 다시 키울 듯합니다.[각주:1] 

이처럼 아무리 부르주아민주주의라도 그 안에 피지배계급의 저항과 자치의 요소를 반영합니다. 국가에게서 자유를 획득한 영역,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과 집회로 표현하고, 그것을 조직으로 구현해 제도화시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 민주주의는 피지배계급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사법부 마녀사냥으로 3권 분립을 해쳐 부르주아민주주의마저 무시하는 듯이 보였을 때도 그 본질은 노동계급의 조직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던 거죠.

주목할 것은 부르주아민주주의 안에 포함한 피억압자들의 자치 요소 가운데 중요한 하나인 노동계급의 권리들 - 노동조합 결성과 행동권, 노동계급 기반의 진보정당, 언론 등 - 은 쉽게 건드리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 한국에서 탄탄하게 형성돼서 저들도 쉽게 승산을 따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명박 시대 민주적 권리가 축소된 게 사실이지만 그 공포와 후퇴 효과를 과장하는 게 잘못인 이유입니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를 파쇼라 부르며 반한나라 대동단결을 외치는데, 이는 단견입니다. 왜냐면, 정권 뜻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0년 전 광주항쟁의 투사들이 그랬듯, 민주주의란 피억압 대중의 운동이 억압적 권력과 맞서는 형국에 따라 앞으로도 뒤로도 갑니다. 그래서 1970년대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싸우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노동악법을 없애라 하면서 싸운 겁니다. 제도가 아니라 계급 세력관계가 핵심입니다.

운동은 조직과 사상이라는 성과물을 통해 경험과 이론, 인적 연결망을 현재의 것으로 남겨 둡니다. 운동이 탄력을 잃고 재구성됐어도 쉽게 성과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 이 성과들이 조직으로 구현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탄탄하고 지속적이며 힘을 갖는 건 노동계급의 조직과 운동입니다. 노동조합 뿐아니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리는 반동을 한다는 것은 이 사회 지배자들이 피억압 대중에게 허용하던 정치적 시민권을 제약하고 억압한다는 말로, 이는 가장 강력한 피억압 대중의 조직과 운동인 노동계급의 조직과 운동, 권리를 공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다른 조직력과 투쟁력을 보유한데다, 이들이 실제로는 사회를 운영하는 노동을 하기 때문에 무작정 학살할 수도 없구요. 이 조직들이 반동에 맞선 저항의 보루 구실을 하게 되는 이유죠. 그 점에서 촛불항쟁이 노동계급 중심의 변혁 사상과 결합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각주:2].

광주항쟁의 한계는 바로 이런 운동과 조직이 아직 한국 사회에 등장하기 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한계였다고 봅니다. 전국의 지지 파업은커녕 광주에서도 파업 같은 노동계급 고유의 힘을 동원한 항쟁 참여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한계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광주항쟁의 존재는 1980년대 운동이 도약하는 계기가 됩니다. 전두환 정권은 유신 독재의 연장이었지만, 이 정권은 경제 발전과 더불어 더 유연한 정책을 펴야 했습니다. 

△ 19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


첫째, 광주항쟁이 운동의 발전에 도약대가 된 것은 평범한 노동 대중이 저항과 사회운영 능력에서 잠재력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독재에 반대한다 해도 지역 유지·명망가와 정치인·기업주들이 포함된 수습위원회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주항쟁 당시에도 호남전기 여성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최근 증언이 있고, 아시아자동차처럼 현장 노동자들이 항쟁에 협조한 사례도 있습니다. 시민군 사망자와 부상자의 절반 이상이 하층 노동자들이며 항쟁[시민군] 지휘부의 다수도 노동자 출신이란 점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운동의 성격에서 배우고, 잘못되긴 했지만 혁명적 스탈린주의를 채택한 다수 운동가들이 대중의 잠재력에 바탕한 권력을 봉기로 타도하는 급진적 정치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발전 수준은 어느 정도는 경제 발전 수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세력을 만들어 낸다는 마르크스의 분석적 예언의 위력을 살인마 전두환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전두환 시절, 정권에겐 운 좋은 3저 호황이 대중적 노동계급 운동이 탄생하는 토양이 됩니다.

민주화운동의 성장과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에 따른 노동계급의 전반적 자신감과 노동운동의 성장은 1987년 항쟁의 수준과 조건을 1980년과는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놨습니다. 1987년 6월 민중 항쟁은 뒤이은 7~9월 노동 항쟁으로 민주주의의 진정은 어느 정도 불가역적인 힘을 획득합니다.

그래서 전두환 체제는 또다른 쿠데타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제대한 군바리로 정권을 넘기고(노태우), 일당 체제 안의 민간인에게 넘기고(김영삼), 그 다음엔 아예 정권을 넘깁니다(김대중). 그리곤 1987년 항쟁의 투쟁적인 명망가 출신들이 정권을 잡습니다(노무현).

이런 진보가 이명박으로 뒤집힌 건 순전히 점차 왼쪽으로 바뀐 정권들이 대중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명박 시대의 민주주의 훼손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 성장의 역사에서 민주당의 실패도 봐야 하고, 노동자운동의 구실도 봐야 합니다.

둘째, 경제위기에는 저항을 하는 쪽이나, 억압하는 쪽이나 격렬하게 나설 개연성이 큽니다. 사소한 요구에서 시작한 저항이 격렬한 항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뒤에는 심각한 경기침체라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1979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 때문에 박정희는 노동계급 궁핍화 정책을 폈습니다. 한마디로 공공요금과 생필품 가격을 올리고(물가가 20퍼센트나 오름), 임금과 일자리 등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을 줄여 기업주들을 보호하고 위기에 빠져 나가려 했습니다. YH무역 투쟁의 요구도 일자리 보호였습니다.

1980년은 1998년 전까지 유일하게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해입니다. 1980년 봄에만 유신 체제 아래서 벌어진 파업 수보다 많은 9백여 건의 파업이 벌어졌습니다. 강원도 사북에서도 광부들이 읍 전체를 장악하는 ‘사북항쟁’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세계경제 위기와 한국경제의 장기 침체가 겹친 상황에서 우리의 민주주의 요구는 정치적 시민권과 경제적 시민권 요구를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배고프게 하는 정책을 비민주적으로 추진합니다.

셋째,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하고 광주항쟁의 투사들은 물었습니다. 오로지 노동자와 민중의 힘이 국가의 물리력을 정치·도덕·경제적으로 압도할 때만(그래야 우리 편의 진정한 군사력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국가의 무장력은 우리 앞에 무릎 꿇을 것입니다.

△ 이 강력한 힘이 사회 변혁을 위한 다수의 저항을 이끌어야 한다.

이런 투쟁이야말로 민주적 대안 권력의 씨앗일 겁니다. 그래서 가장 잘 조직돼 있고, 이 사회의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노동계급 대중을 설득하고 동원해 조직하는 것, 이들의 힘이 나머지 피억압 대중을 끌어들이는 것, 이것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교훈을 종합하면, 정치·경제 위기에 처한 국가권력의 도발에 단호하고 단결한 저항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저항 행동의 사사을 알리고 주도하며 조직할 투사들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노동자운동 안에서. 그래서 운동이 정치·도덕적으로 무장하도록 고무해야 합니다. 

광주항쟁을 돌아보며, 민주당이 말해 온 역사적 화해가 아니라 기층의 노동계급 대중의 저항이 진정한 오월 정신이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전두환을 사면한 것은 이 정부들의 불철저함을 증명한 것이고, 이후 10년의 배신을 예고한 사건이었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정치·경제 모두에서 민주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렇게 살아난 전두환을 계승한다는 당이 정권을 잡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려 합니다. 항쟁을 폭도로 왜곡하고 매도했던 언론이 여전히 진실을 쓰레기통으로 보내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광주항쟁이 부활해야 합니다. 투사들의 유언대로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전통의 이름을 팔아 겨우 꾀죄죄한 민주당 밀어주기나 하자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건 항쟁 정신을 모독하는 비겁한 짓이고, 무엇보다 항쟁의 교훈을 망각하는 어리석은 전략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단순히 절차적 민주주의, 의회정치의 정상화 요구에 머물 순 없니다. 표현의 자유와 먹고 살 권리가 모두 보장되는 게 진짜 민주주의입니다. 진짜 민주주의는 그래서 민중의 권력입니다.

사람들의 분노와 저항 열망이 단호하고 더 결의에 찬 항쟁, 즉 노동운동이 주도하는 민중항쟁으로, 민중권력으로 발전하도록 기대하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해방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끝]

※ 조금 수정해 올리려고 바로 공개하지 않았는데, 엄청 밀렸네요. 안 그래도 늦었던 건데 ㅠ.ㅠ
5월 초에 기획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거의 한 달이 밀려서 끝났네요.

  1. 저들이 이 반발을 친노 세력의 것 정도로 파악하고 대책을 내놓는 한, 헤어날 길은 없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사후정당화된 것이죠. 지나고보니(이명박 정권을 보니) 그때가 나았다. 한마디로 구관이 명관이다는 정서입니다. 그래서 민주당 친노도 이번 선거로 부활은 했지만, 반사이익의 성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잘해서 부활한 것이 아닌 만큼 심상정처럼 친노세력과 통째로 진보연합 하자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 연합 방안이라 봅니다. 진보좌파는 노무현 정부를 그리는 대중 정서의 합리적 측면과 소통하되, 이제와서 진보연하는 친노 정치인들에겐 평가를 냉정히 하고, 과오 반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 과정 없이 하는 연합은 진보연합이 아닙니다. [본문으로]
  2. 그것은 촛불항쟁에 조직 노동자운동이 경제적 힘을 동원해 해결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가능한 일이었죠. 그러나 촛불항쟁 기간 동안 화물연대 파업 말고 별다른 노동자투쟁의 기여가 없었습니다. 이 역설은 반MB 전선이 노동계급운동이 주도하는 진보연합이 돼야 진짜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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