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공산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7.07 1930년대 독일 좌파와 브렉시트 논쟁
  2. 2012.07.24 《패배한 혁명》제대로 이해하기

브렉시트에 찬성한 좌파들을 1930년대 독일 공산당에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엉터리없는 무지거나 사기질이다.


독일 공산당은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독일 사민당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해서 문제를 일으켰는데, 지금 영국 노동당(코빈은 물론이고 블레어도 포함해)이나 개혁주의 좌파를 파시스트에 비유하는 브렉시트 찬성 좌파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무엇보다 나치의 집권에는 공산당의 초좌파적 종파주의만이 아니라, 독일 사민당의 차악론(나치가 위험하니 우파 공격을 자제하고 심지어 협조하기)도 결정적 문제였다. 즉 둘 다 문제였다. 독일 공산당이 초좌파주의적 종파주의로 노동계급의 단결과 총명함에 해를 끼치고, 스스로 고립의 길로 나아가 잠재력을 소진시켰다면, 독일 사민당은 최악을 막자는 차악론과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합헌주의를 내세워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갈수록 우익 정부와 정당을 추수했다. 즉, 당시 고통전가의 진짜 주역인 국가와 맞서길 회피했다.


바로 그 바이마르 공화국의 당시 수장들(주류 우파들인 힌덴부르크, ,브뤼닝, 슐라이허, 피펜 일당)이 히틀러를 총리에 앉혔다. 따라서 나치 국가의 등장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독일 공산당의 황당한 종파주의만이 아니라, 독일 사민당의 거지 같은 우익 추수주의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나치가 번성할 조건을 1920년대 내내 만든 것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제국주의 경쟁과 전쟁 배상금 등이었고 이로 말미암은 고통을 노동계급과 빈민들에게 전가한 것은 독일 지배계급 주류 정치인들이었다. 따라서 사민당이든 공산당이든 노동계급을 이 문제들에 대한 반대와 저항으로 단결시켜야 했다. 그렇게 되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반혁명적 구조 문제에 부딪쳤을 것이고, 그 과정을 겪고 이겨내야만 나치가 아니라 혁명적 좌파들이 대중을 반체제 행동으로 단결시킬 가능성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 자체에 맞서는 방향으로 투쟁을 상승시키지 못한 것이야말로 독일 좌파들의 잘못이었다. 1918년 세계대전을 마침내 끝낸 바로 그 노동자 혁명이 사민당의 노골적 배신과 공산당의 어리숙함으로 1923년에 패배하고 한동안 사기저하 시기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1929년의 위기는 다시금 위기와 긴장, 저항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민당과 공산당의 지지세와 득표가 성장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두 당은 상황을 이용하고 바꾸는 데 실패했다. 초좌파주의와 추수주의는 고조되는 불만을 이를 체제에 대한 혁명적 반대로 끌고 나가지 않았다.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한 것이 나치에 대한 대응에도 약점을 낳았다. 훗날 올바른 입장을 채택했음이 입증된 트로츠키의 지지자들은 수백 명에 불과해 사태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반복하는데, 공식정치에서 위기 극복에도 실패하고, 오히려 고통전가로 나오는 상황, 이런 공식정치에 대한 반대를 좌파가 제대로 조직하지 않는 상황 등이 서로 화학 작용을 일으켜 나치가 자본도 싫고 좌파도 싫다며 성장할 틈을 준 것이다.(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기구로서 작동하는 EU에 잔류하자는 현상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좌파들이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 좌파에 브렉시트 찬반을 비유하는 것도 엉터리없이 무지하지만, 독일 공산당의 초좌파주의만 말하고, 독일 사민당의 결정적 과오는 언급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이는 은연 중에 자신들의 (기회주의적인) 정치/전략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이 경우는 의도적 누락(무지)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여전히 트로츠키가 반나치 전략에 대해 말한 바, 쥐들도 청소해야 하지만, 쥐들의 서식처가 되는 하수구도 청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유효하다. 우리는 파시스트들의 싹을 짓밟으려 해야 하지만, (파시즘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에게 성장할 틈을 주는 야만스런 자본주의의 문제를 폭로하고 주류 정치(국가)의 고통전가/우경화 등에 맞서는 데서 전진해야 한다. 그럴려면, 단지 중심 없는 (그래서 그 달콜함과 달리 실상에선 실속없고 허무한) 대동단결론이 아니라 올바른 입장으로 단결을 추구할 행위주체로서의 혁명적 정치조직의 존재가 중요하다.


또한 EU 같은 제국주의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 기구들의 약화에도 기여해야 한다. 운동이 더 많은 것들을 다루며 체제 일반에 맞선 투쟁으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려면 그런 일들을 잘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고, 그런 정치로 무엇보다 사람들을 조직할 주체가 필요하다. 궤변과 교묘한 왜곡, 논점 회피 등으로는 그런 조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무지한 게 죄는 아니지만, 그러려면 엉터리없는 역사 유비로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총체적 진실을 왜곡해서 사람들을 현혹하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면 무지가 사기질이 된다.


그리고 EU 잔류 찬반 투표였고, 그 결과와 입장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논쟁이므로, 자꾸 EU는 쟁점이 아니란 식으로 눙치지 말고, EU 자체가 무엇인지부터 살펴 보길 바란다.


참고 기사:

1933년에 나치는 어떻게 쉽사리 권력을 장악했는가?


+++++(7/8 추가)


한심 그 자체다. 그가 독일공산당에 노동자연대를 빗댄 것은 노동자연대가 종파주의라는 인상을 한국의 코빈 애호 좌파들에게 심어줘서 이간질하려던 의도인 걸 뻔히 아는데.


이제 와서는 독일 사민당은 어차피 개량적이라 자본주의에 혁명적 반대를 할 수 없으니 행위주체 차원에서 '독일공산당의 관점에서' 실수를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독일공산당에 대한 유비가 갑자기 노동자연대에서 필자 본인으로 바뀌는 광경이다.(그런 입장이라면, 코빈은 도대체 왜 지지하는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자기 글을 자기가 반박하는 모순)


그런데 말이다. ‘사민당은 개량주의라 어차피 반체제 투쟁을 안 할 것이니, 제쳐 두고 사민당 지지 대중에게 직접 함께하자고 설득하자’(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고 한 것이 독일공산당의 ‘사회파시즘론-기층공동전선론’의 핵심이고, 처참한 과오의 실제 내용이다. 그러니 그는 독일공산당의 실천적 결론으로 (그 결론의 전제가 되는) 독일공산당의 분석을 비판하겠다고 용감히 나선 것이다!


그러나 사민당 지도부를 노골적인 반혁명/파시스트 (부역) 세력으로 치부하면서 어떻게 사민당 지지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었겠는가. 그건 계급의 단결투쟁이 아니고, 그냥 공산당 가입 캠페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사민당 정치에 전혀 도전하지 않는 기권주의로 귀결됐다는 게 비극의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20세기 전반기 독일의 경험은 분석의 문제도 있지만, 개혁주의에 대한 전략·전술의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자산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탈린의 그따위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트로츠키의 이름을 끌어들여서 그따위 허접 변명을 정당화하려 하다니. 장난 지금 나랑 하나? 이견의 문제도, 무지의 문제도 아니고, 부정직의 문제임을 알아야 하고, 정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의 무지(단지 알지 못한다는 의미에서)와 건망증에 베팅을 거는 셈이다.


오히려 당시의 세계사적 비극은 독일 노동운동 안에 제대로 된 행위주체의 부재가 결정타였다고 볼 수 있다.(http://wspaper.org/article/13822) 어떤 현실적 근거를 찾아내서 그것을 무엇으로 변화시키려고 개입하지 않고 관조적으로 이러면 이렇게 되고, 저러면 저렇게 될 거라는 관조적 논평이나 해대는 것으로는 그런 행위주체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그 무엇도 능동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또 한 번 지적하자면, 이 국면에서 독일공산당 얘길 끌고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브렉시트 지지 좌파는 대부분 코빈을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치의 등장에 유비하는 것이 황당하다. 지금 국면은 영국 독립당이나 일베 같은 것에 공포심을 느낄 때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존 국가(를 운영하는 전통적 지배계급)의 노동자 공격(경제 위기 고통전가든, 인종차별 억압과 이간질이든, 경찰폭력이든, 제국주의/친제국주의 군사경쟁 때문이든)이 문제인 국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기존 통치자들의 악행에 대한 반대를 대표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우익포퓰리스트들의 성장도 견제하는 길이다.


그럴려면, 좌파에게는 정치적 명료함과 기민함, 응집력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 개입주의 조직을 건설하려는 노력에 개인적 앙심으로 부정직한 방식으로 재나 뿌리려는 자들에게 연민을 가지기 힘든 이유다.



국제 사회주의자들의 토론혁명가들은 좌파적 개혁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영국혁명가들은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좌파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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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5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논쟁적 서평인데, 20년대 독일 상황을 검색하다 발견했다. 그람시의 <리용테제>를 참고한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글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더 ‘혈기방장’한 티가 난다. 지금이라면 더 차분하고 예의바르며, 좀더 간결하게 썼을 것 같다.   



《패배한 혁명》(크리스 하먼, 풀무질, 2007)의 압박이 크다. 가슴이 답답해 지고, 나는 저 상황에서 그런 재앙적 오류를 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긴 힘들어진다.


전략 전술이란 이런저런 기계적 원리들을 이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당면 시점의 구체적 세력관계, 무엇보다 지배계급부터 밑바닥 대중까지 사회적(그리고 정치적)으로 표출되는 심리와 정서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62일 허세욱 열사 49재 집회에서 노동자해방 당 건설 투쟁단(약칭, 당건투)라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현장노동자>라는 신문을 보았다. 뭐 면식 있는 선배도 있고 하는 단체라서 유심히 지켜봐 왔는데, 이번 신문에 실린  《패배한 혁명》  서평은 대실망이었다. 틈만 나면 레닌의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도대체 레닌의 중요 저작 중에서도 중요 저작인 좌익소아병》은 읽어나 보았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구체적인 국면에서 어떤 전술,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한 귀중한 분석서인 이 책을 추상적인 혁명정당 당위론 설파 수준으로 격하시킨 것은 아쉬움을 넘어 화가 나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당건투가 아니라 사회실천연구소 소속의 활동가가 쓴 서평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치 전통에 있는 도서의 서평이라면 그런 수준 낮은 서평을 이런 대규모 집회에서 배포하는 신문에 싣는 것은 자신들의 형편 없는 정치적 수준을 대중 앞에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아무리 계급에게 솔직해야 한다지만!!) 그것은 저자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19191월 스파르타쿠스동맹의 섣부른 봉기 시도를 예로 들어보자. <현장노동자>의 서평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사민당의 그럴듯한 말에 마음을 빼앗긴 “완전히 새로운 노동자층을 정치활동에 끌어들이는”데에도 무능력했다.(108결국 1919년 1월에 일어난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봉기는 사민당 정부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노동자계급은 화해협상의 덫에 걸렸으며이에 자신의 힘시간혁명적 열정이 파괴되는 것을 허용했다그 사이에 정부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마음대로 써가며 최종 진압을 준비할 수 있었다.”(132저자는 1월 봉기의 교훈을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평가한다. “강력한 혁명정당을 가졌다면베를린 노동자계급은 화해협상의 덫에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다.”(132)


때이른 봉기 이후 국면에서 화해협상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 것과 봉기 자체가 애초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것은 범주가 다른 문제다. 서평 필자는 후자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사민당을 앞세운 덫에 걸려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봉기 자체가 섣부른 모험주의 였다는 점이 변하진 않는다. 그것이 설사 50만 당원을 가진 당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19191월 스파르타쿠스 봉기의 가장 커다란 교훈은 국민대중 다수의 지지 없이 노동계급이 권력을 쥐려하는 것, 또는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 없이 혁명정당이 권력을 쥐려 하는 모험주의에 대한 경계다. 섣부른 봉기는 정부의 반격을 정당화하고, 다수 대중을 사태의 방관자로 전락하게 한다. 결국, 섣부른 봉기의 대가로 실제로는 봉기 정책에 반대했던 로자 룩셈부르크 등 최고의 유능한 지도자들을 잃었다. 운동은 탄압으로 후퇴했다.


섣부른 권력 장악 시도에 대한 경계는 훗날 공동전선으로 정식화된 정책에 대한 강조로 결론나야 정당한 평가가 될 수 있다. 즉 다수를 획득하기 위한 정책(전략전술)로서 개량주의 좌파들과 협력을 통해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노동자 대중들과 접촉할 기회를 얻고 좌파와 노동계급 단결의 욕구를 대변하는 것. 이를 통해 다수 대중들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자신들의 실제 경험으로 체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떠나 극좌파에 대한 지지로 옮아오게 만드는 능력에 대한 강조로 이어져야 옳다.


역사적 기회에서 벌어진 독일공산당의 처참한 실패는 이러한 정책의 중요성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면서 모험주의 공세론과 엉뚱한 수세 전략을 좌충우돌한 대가다. 그 대가는 너무 컸다. 반혁명의 승리가 파시즘(독일에선 나치즘)의 승리와 동의어가 됐기 때문이다.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선진적인 제국 중 하나였던 독일에서 노동자와 병사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고 카이저 제정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이런 노동자들이 왜 사민당을 뛰어넘지 못했냐고 묻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어제까지 제국주의 강도 전쟁의 총알받이 신세이던 노동자와 병사들이 어제까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전시에 불법이 된 좌파 정당의 집권을 지지한 것이 어찌 큰 잘못이겠는가.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들이 뿜어낸 혁명의 열기와 의지를 어떻게 그들 자신의 권력을 수립하는 것으로 나아가게끔 도울 수 있었는가다. 우리가 진정으로 실천적이라면 질문은 이렇게 던져야 한다.


<현장노동자>의 서평은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역사는 우리에게 계급협조 정책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이런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중략) 이런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단절한 독립적인 혁명정당의 필요성이다. 자본가 정치세력들의 헤게모니 하에 노동자들을 갖다 바치는 역할을 하는 사민주의 세력! 이들이 외치는 ‘진보진영 단결’이니 ‘진보대연합’이니 하는 구호가 세계노동자운동에 얼마나 큰 질곡으로 작용했는지 ‘패배한 독일혁명’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역사는 우리에게 사민당-개량주의정당의 지도자들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압도 다수의 대중들이 아직 이런 가르침을 자신의 신념과 행동지침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거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저항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당면 시점에서 적절한 행동을 촉구하며 끈질기게 사람들을 설득하는 기예를 배워 익혀야 한다.


아직 변혁운동가들의 대의를 수용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대중들과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하고, 이들을 자기의식적인 배신적 지도자들과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필요할 땐 개량주의자들을 지지하고, 먼저 협력을 제안할 줄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필요한 건 단순한 인내심이 아니라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것은 '주도면밀한 집요함'이다.


저자가 강조한 '혁명정당'이란 바로 이런 실천과 정책의 주체이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런 실천 속에서 자신들을 단련하고 대중을 획득해 가는 수단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혁명정당'이 대중을 획득하기 위한 정책을 거부하는 결론을 내리면서, '혁명정당'의 존재와 대중 장악력을 교훈으로 내세우는, <현장노동자>의 서평은 관념론(역사적 추상주의 또는 추상적 선전주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1923"독일의 '10'"이 왔을 때, 독일 공산당은 그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으로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노동계급 생활의 파탄과 내부적으로는 지노비에프 등 일부 코민테른 지도자들의 엉성한 지도를 교정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노력으로 다시금 50만 당원의 정당으로 되살아 난 상태였다. 그러나, 그 해 유례없는 위기와 행동이 있었고, 억압 기구로서 국가가 완전히 마비됐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손상되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혁명의 기회는 유실되고 히틀러의 전진이 시작됐다.


따라서, 격변의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구체적으로 행동지침을 결정하는 데, '혁명정당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저항의 성공 여부는 수년 간의 단련과 경험을 통해 쌓은 대중적 신뢰와 마르크스주의자들 자신의 정치적 판단력/실행력, 전국적 행동을 조율하고, 이견들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조직 구조를 형성해 놓았느냐라는 전제 위에서 '구체적으로 직면한 상황에 걸맞는 올바른 행동방침을 내놓을 수 있는 판단력과 실행력을 발휘하고 이를 대중 행동에 관철할 수 있느냐'까지 모두 검토돼야 한다.


여기에 우연적 요인들까지 감안한다면 그 판단과 실행의 기민함에 더해 상황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있는 지도자들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느냐, 유연한 행동 보폭을 조직 구조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까지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일상적 시기부터 실천을 통해 스스로 검증하고 대중에게 검증받으면서 오류와 실수를 교정해 가며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조차도 결정적인 바로 그 순간에 다시 한번 최종적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 것으로 과거가 미래를 완전히 담보할 수 없는 미결정의 영역을 남겨 놓는다.


따라서, <현장노동자>의 서평처럼 추상적이며 종파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패배한 혁명>에 대한 완전한 곡해다 《패배한 혁명》 은 당과 운동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 실천과 판단에 대한 중요한 분석서이자 보고서이다. 우리가 뼛 속 깊이 새겨야 할 또는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될 쓰라린 그러나 유익한 교훈들로 가득찬 이 책을 그런 식으로 해독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일상적 냉소와 무기력에서 일순간에 행동으로 도약하는 대중들은 낡은 사회의 때를 한순간에 털어낼 수 없다. 이들은 평상시 가지고 있던 계급내 의식과 경험 수준의 불균형, 모순된 편견 등을 가지고 행동에 돌입한다. 그리고 뒤늦게 행동에 참여한 후진 부위는 대체로 이 낡은 때가 더 많지만 그래서 행동에서 더 성급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적절한 슬로건과 실제 적절한 행동지침을 제시하고 온갖 곳에서 이런 행동을 구체적으로 조직하고 각각의 행동들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당시 독일에서는 그럼으로써 선진부위와 독일 공산당은 밀착됐을 것이고, 선진부위는 후진부위에 대한 주도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격변의 시기에 대중들은 매우 빨리 정치의 속성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 자신의 경험"이다.


저자와 <좌익소아병>에서 레닌이 거듭 강조하듯이, 대중의 기대 심리와 환상을 반영한 이런 비판적 지지(협력)과 공동전선 정책은 개량주의 지도자들 자신을 시험대에 오르게 만든다. 필요한 공동행동을 거부한다면 그들 스스로 노동계급의 단결보다 부르주아 정당과 협상을 중요시한다는 것이고, 공동투쟁 계획에 동의한다면 더 많은 대중이 실천에 나서게 되고, 그 대가로 더 많은 접촉면을 통해 신생 공산당과 교류하게 됐을 것이다.


<현장노동자>의 서평 필자는 '진보진영 단결''진보대연합'을 체제를 위해 대중을 속이는 개량주의자들의 기만 행위라 부르고 있다 《패배한 혁명》 에서 독일 공산당이 붕괴한 사민당 정부에 대항해 독립사민당 좌파 정부를 지지하면서 합법 야당으로 활동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때, 레닌과 트로츠키, 그리고 책의 저자 크리스 하먼은 적절한 정책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구절을 서평의 필자가 읽었는지 궁금하다.


민주노동당을 [아직은 거리감 있는] 급진좌파로 여기는 수백만의 대중들이 사이비 개혁정부와 그 당에서 이탈하고 있다. 다수는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세력의 집권을 바란다.


그들에게 수동적이나마 정치적 표현체를 제공하고, 지배계급이 위기를 봉합하기 전에 판을 흔들어 정치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것, FTA 반대 운동 등에 기초한 진보연합으로 진보 후보를 유력한 후보로 만드는 것, 이를 통해 진보개혁 정부의 집권을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것은 다음 단계의 진전을 위해 매우 유용한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더 급진적인 정부로 향하는 도정일 수도 있고, 대중 자신이 기대감에 바탕한 대중행동에 나서게 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그 과정은 쓰라린 급진적 각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독일에서 1919년에 혁명가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민당 정부를 지지했던 대중들이 반혁명에 직면해서 그리고 반혁명을 제압하는 데 진지하지 않은 (자신들이 지지했던) 사민당 정부를 지켜 보면서 더 급진적인 정부를 요구하며 일부 지역은 스스로 권력으로 나아가면서 전진했던 경험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혁명정당이니 나를 따르라’라는 선험적 자기 선언이 아니라 ‘혁명정당이 수행해야 할 임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실천이다(2007.6.9)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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