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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복지국가는 양보가 아니라 투쟁으로 가능


오늘(1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보편적 복지와 6·2 지방선거”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각주:1]

제가 볼 때 이 토론회를 특징짓는 주요 쟁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지금 '개발'에서 '복지'로 사회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였습니다.
셋째는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잔여주의 복지와 관계 문제였습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10년 넘게 급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 한국사회에서는 위기를 계기로 진보와 복지 쪽으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니다. 

고양에서 온 엔지오 활동가는 지방선거 공약 공모를 했는데, 예년과 달리 개발 공약은 없고 삶의 질과 관련된 공약이 다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회자인 이상이 교수는 고양은 중산층 도시이므로 고양의 변화는 중산층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겨레> 이창곤 기자는 최근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 정당과 관계 없이 보편 복지를 바라는 여론이 다수였다고 밝혔습니다.(곧 기사로 나온답니다)

올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주요 선거 이슈가 되고, 전면 급식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점과 그래서 민주당까지 나서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변화가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10년 가까이 위기의 깊이와 폭이 더 커졌다는 방증이라 봅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어쨌든 반갑고 힘이 되는 토론이었습니다.

둘째, 재원 문제는 누구나 중요하다고 인정했지만, 이번 선거 공약과 관련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민주당 발표자(추경민)는 아동수당을 예로 들며, 만1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짰다고 밝혔습니다. 재원 때문이죠. 아울러,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내세운 무상급식·무상보육을 하려면 중앙정부가 떠안아야 할 몫이 있는데, 이를 거부할 경우 지방정부로선 난처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진보신당 발표자(장석준)는 역시 재원 문제 때문에 아동수당을 만 3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건강보험도 보장성을 올리되, 재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 보험료를 함께 올리는 계획을 내놨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노동당 발표자(고영국)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12세까지로 하겠다고 했지만, 대신 액수는 적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습니다. 기존 예산에서 조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제도 도입에 상징적 의미를 더 두자는 차원에서 연령만 과감하게 올렸다는 겁니다.

저는 민주당 쪽의 설명을 들으며, "결국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보다 당선도 되기 전에 한나라당 때문에 하기 힘들다는 알리바이부터 대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뒤이어 발제한 진보정당 정책 담당자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 아쉬운 것은 민주당의 책임회피식 자세를 비판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조원희 교수 등이 복지를 주장할 진보정치세력이 그동안 제로베이스에 있었다는 듯이 주장했는데도 반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진보정당은 모두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누진적인 증세를 해야 한다는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4대강 같은 토건 예산 가운데 상당액을 복지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동수당이란 것도 애초에 없던 것이므로 뭐 두 살이든 열 살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닙니다.

제가 우려한 건 복지제도 요구에 접근하는 이들의 관점입니다. 복지 요구에 재원 계획을 함께 내놓는 건 당연히 중요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복지에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를 제시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진영의 재원 계획에는 부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논거와 요구가 포함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재분배일테니까요. 그래서 저들이 돈을 댈 여력이 있다는 것, 그 여분의 돈이 엉뚱한 데 쓰이거나 부자들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을 선명하게 밝혀야[각주:2]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주류 집단(관료/언론/기업주 등)에게 책임(수권능력) 정당으로 인정 받으려는 목적이라면 오히려 진보정당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이리 되면, 요구를 실현할 수단으로 재원 마련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있는 재원 안에서 요구를 조정하는 식으로 본말이 전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석준 씨가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강화를 연결하는 설명이 딱 이랬습니다[각주:3].

지금 같은 기업주와 부자들이 금고를 꽁꽁 숨겨놓으려 하고 정부도 재정적자에 민감해지는 경제 위기의 시대에 재원 먼저 걱정하게 되면 제대로 요구를 내걸 수 있을지, 요구를 내걸더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앞서 살폈듯이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서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쪽으로 옮겨온 것인 만큼 진보진영은 여기서 상황을 더 급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한데[각주:4], 진보 정치세력은 더 온건해지는 쪽으로 상황에 적응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인용했듯이, 한명숙, 유시민 모두 집권 시절 무상급식에 반대했던 양반들입니다. 민주당의 정책 실행 의지를 아직 완전히 믿기 힘들기 때문에 무상급식 하나만 봐도 진보정당의 독자적 구실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진보 양당은 오히려 반mb 단일화란 명분으로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는 문제에 다들 걸려 넘어져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 길로 미친듯이 달려가면서 진보의 단결을 내팽개치고, 진보신당은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면서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두 당의 따로 놀기와 민주대연합 문제로 진보의 동력이 약화된 거죠.

이런 문제들이 복지가 화두인 선거에서 보편 복지 정책의 선두주자인 진보 양당이 거의 두각을 못 나타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2000년 이후 이번처럼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없는 선거는 처음입니다.

한편, 발제자 중 한 분인 인하대 윤홍식 교수는 보편주의/선별주의/잔여주의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봅니다.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은 보편주의 제도지만, '65'라는 선별 조건을 부과하므로 선별적 보편주의 제도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윤 교수는 보편/선별주의는 조합이 가능하며, 보편주의의 대립물은 선별주의가 아니라 자산조사에 기초해 특정 계층에만 복지를 지급하는 잔여주의 복지라는 겁니다.

잔여주의 복지는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굶어죽지는 마라 하고 주는 시혜성 복지 (철학이자 제도)로 오히려 복지의존성(우익들이 말하는 복지병)을 더 강화합니다. 경제적 자활 능력이 생기면 복지 혜택이 사라지니까요.

여기에 '잔여주의'란 용어가 어려워 대중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이상이 교수 등의 반론 비슷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윤 교수는 선별주의 대응이 효과적일 때도 있는데,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면 대응을 잘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일반인에겐 그닥 필요 없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제가 있습니다.(윤 교수가 말하려고 한 바는 신사회 위험으로 보이는데,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아 그냥 제가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들어봤습니다)

고무와 걱정과 유익한 정보를 함께 준 토론회였습니다.

※ 그밖에도 토론해 볼 만한 다양한 쟁점들이 있었는데, 이 한 편의 글에서 다 다루기는 힘들 듯합니다. 늘 그랬듯이 또 한번 미뤄야죠. 출구전략과 보편 복지를 연관짓는 시각도 흥미로웠구요, 복지국가를 사회정책+경제정책으로도 보는 시각도 사회투자론과 연결해 토론해 볼 만한 주제라고 봅니다.

  1. 주최 단체는 참여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 한국여성단체연합. [본문으로]
  2.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란 구호는 이런 정신을 반영한 구호였습니다. 이상이 교수가 이 구호를 진보적 잔여주의 구호라 비판하는 것은 왜곡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요구한 것은 부유세를 만들어, 보편주의 복지제도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으로]
  3. 이 계획은 국민들이 선 보험료 인상을 결의하자는 겁니다. 그러나 보험료를 올리는데 다수가 동의해도, 보장성을 높이려면 '보험료 인상 결의'를 무기로 결국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 '투쟁'을 '보험료 인상'으로 대체하려는 게 이 계획의 핵심으로 보이는데, 결국 투쟁이 필요하다면, 이 계획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모순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4. 대중적 지지를 받는 무상급식을 민주노총 등의 투쟁 의제로 삼아 대중 캠페인을 건설할지, 아니면 무상급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급진적 요구를 제출할지 하는 논점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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