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제도 도입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도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누진세를 강화하고 주식과 토지 등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국방비를 줄이면 일정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출처: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추가됐습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적정 액수의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제도입니다.주민등록이 된 모든 국민은 개인 통장을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는 매달 이 통장에 기본소득을 입금합니다.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는 사람들[각주:1]은 대체로 부자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득 하락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다.

대기업주와 땅부자, 주식부자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 돈을 주는 건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의 생산성을 낮춘다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실질 실업률이 13퍼센트에 이르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정당화하는 수작일 뿐입니다.

사 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부자들은 정부의 거품 정책으로 앉아서 돈을 법니다. 부동산 가격이 노동소득보다 빨리 오르면 집을 사려는 월급쟁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재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1백 대 주식 부자들의 74퍼센트가 재벌 2·3·4세들입니다. 이들 다수가 미성년자입니다.이들이야말로 소득을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평범한 노동자들 수백 명이 평생 모아도 벌지 못할 돈을 소유합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세계적 차원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협력적 노동의 기여 없이는 결코 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주와 부자들이 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이유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정주부와 어린이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이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여 사회적 지위를 더 높이고 천대와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보장은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당장 생계를 위해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가 기본소득 재원을 계산했습니다. 만 19세까지 30만 원, 만 39세까지 40만 원, 만54세까지 50만 원, 그 이상은 60만 원을 매달 지급하면 현재 인구 기준에서는 1년에 2백15조 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무상 교육․의료 비용을 더하면 총 2백40조 원이 필요합니다.

강남훈 교수는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에서 이자와 배당 등 불로소득에 30퍼센트의 소득세를 매기고 토지세와 주식 거래 양도소득세를 도입하자고 말합니다.[각주:2] (한국은 주식 거래 차익에 무는 증권거래세가 0.3퍼센트에 불과함.)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 주장에서 기존 복지제도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에 사용하자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소수지만 기본소득 요구가 신자유주의 플랜의 하나인듯 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이런 인식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강 교수의 제안을 보면, 국민연금에 한정해 재원을 돌리자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는 개념상으로 기본소득처럼 보편주의 복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본 성격이 같기 때문에 더 포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데 당겨쓰자는 겁니다. 전 합리적이라 봅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현재 인구의 절반이 소득이 부족해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입니다. 국민 절반이 연금을 받질 못하는 것이죠. 평균 소득이 1백50만 원 정도일 때, 이 소득 기준으로 20년을 납부해도 65세부터 월 30만 원을 조금 넘게 받습니다.(물론, 이 정도도 사보험보단 훨씬 높은 급여입니다)

이런 한국의 조건에서 지금 당장 모든 국민에게 40~6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 기존 연금 일부를 돌리는 건 그리 불합리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밖에 고용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연금 등이 좀 중요한 현금지불식 복지제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제도들은 그 지급액이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두 제도 모두 수급 자격을 심사하고 부정수급을 감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수급자에게 사회적 모멸감을 줍니다. 기본소득은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비해 장점이 있습니다.(실업급여는 예외일 수 있겠네요)

물론 일부 기본소득 모델은 이런 제도까지 통폐합하자고 합니다. 이 점은 논쟁거리이며, 전 이 견해엔 반대합니다. 이런 '필요에 따른 지급'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것이고, 이에 비춰 이 제도들은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업을 개인의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적 복지' 등의 이름으로 노동 여부/의지/능력과 복지를 연계시키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저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 기본소득의 존재를 이유로 기업주들이 저임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계층에 주는 소득제도는 소득 차이를 그대로 가져가므로 소득 재분배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고용 노동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거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실업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도입되는 모든 복지 제도(개혁) 안은 경기변동 탓에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존 제도의 비용 이전이나 불로소득 논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급진좌파가 개혁 요구를 낼 때, 제도의 완결성이나 (체제 안에서) 실현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반대로 첫째, 돈을 어느 계급이 부담하는가를 제기하는가. 둘째, 요구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 셋째, 노동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개혁 요구는 싸워야 실현이 가능하므로 요구의 내용 자체가 이 싸움을 크고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지제도를 다룰 때 늘 명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제도의 세부 설계(와 그에 바탕한 실현가능성 판단)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레프트21> 6호 "부자 증세로 기본소득 쟁취해야"  ⓒ사진 제공 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이 기준에서 한국 좌파들의 기본소득 요구를 보면, 재원을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지만, 그 돈이 부자들의 누진세와 불로소득에 매긴 세금에서 나옵니다. 과정 자체가 소득의 재분배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덧붙이면, 주식과 부동산 등 투기로 번 불로소득은 경제의 다른 부문에서 생산한 부를 약탈한 것에 불과하므로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것은 정당합니다.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려 사회와 개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보육에서 교육, 복지를 실행합니다. 노동자들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기업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들에게 줘야 할 것은 '해고의 자유'가 아니라 복지 비용 부담 의무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분명하다면 기본소득 요구는 꽤 쓸 만한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요구가 단지 대화와 설득으로 채택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제도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질서를 근본에서 바꾸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요구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를 어느 정도 거부합니다. 기본소득 지지자가 많아지는 것은 시장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폭넓게 단결해 싸운다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인 대기업주들과 벌일 싸움입니다. 특히, 경제 위기 시대에는 대자본가들이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기간 산업 등에 고용된 '조직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갖는 이유입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 점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 규모가 커 실업자가 늘어나는 때 조직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 실업자 등이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요구입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레프트21>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중행동의 요구로 기본소득 요구를 포함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사회당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있고, 학자로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와 시립대 곽노완 교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엔 약간 색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소득 지지 단체와 개인들은 기본소득네트워크 (http://cafe.daum.net/basicincome)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합니다. 제가 취재한 기본소득 국제학생대회도 이 네트워크가 주축이 돼서 개최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강남훈 교수가 재원 마련에 적용한 주요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①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 ②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지금대로 유지. ③ 불로소득(이자·배당·증권양도소득 등)은 30퍼센트 과세. ④ 환경 관련 세금 통합해 환경세로. ⑤ 재산세, 종부세 등은 토지세로 통합해 3% 과세. ⑥ 250조원 정도 추정되는 지하경제 철저 과세. ⑦ 단계적으로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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