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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03 음모론이 자라나는 이유와 국가의 본질

국가의 본질과 음모론


국가의 용서받지 못할 범죄가 갈수록 또렷해진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이 사실상 잠수 구조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게 점점 밝혀지고 있다.


해경과 유착해 구조 작업을 독점한 언딘의 기술이사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구조가 아니라 배 인양을 위해 갔으며, 해경이 지시한 첫 잠수는 침몰 다음날(4월 17일) 오전이었다’고 밝혔다.


해체 방침으로 자기 방어가 힘든 해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언딘의 의도를 고려하더라도, 해경의 구조 방기는 다른 여러 증거들과 일치한다.


침몰 당시 45명을 구하고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한 진도 인근 어민 김현호 씨도 ‘해경이 구조 작업에 열의가 없었고 오히려 세월호 접근을 막았다’고 말했다.


정말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은 정부”다.



‘국가는 국민 안전의 최후 보루고, 국가의 주권자는 국민’이라는 지배적 상식이 참혹한 진실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정당성 위기).


바로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관심을 기울인다. 아직 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음모론은  세상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외된 처지를 반영한다. 음모론이 자라는 배경을 이해하면 알 수 있다. 음모론은
사회적 위기를 배경으로 자라난다. 예를 들어, 프랑스대혁명 전야는 온통 미확인된 루머의 시대이기도 했다. 지금 세계적 차원의 경제 위기는 시장과 경제성장에 대한 지배적 믿음을, 세월호 참사 등의 사건은 국가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자면, 애초의 지배적 상식이란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결코 국민 모두를 대변할 수 없다. 자본과 노동이 화해할 수 없는 적대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둘 다의 이익을 동시에 대변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개별 자본과 국가가 충돌하는 것은 어떤 것이 더 체제 안정에 효과적인지를 두고 다투는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힘이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이전 시절에도 성장지상주의가 이런 비극적 사고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와우아파트, 남영호, 삼풍백화점, 서해훼리호, 성수대교 등)


자본이 원활하게 노동자를 쥐어짜고 다른 나라들의 자본과 경쟁해 이기는 것 말이다. 국가 안보는 바로 이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안보도 간접적으로 이윤 지상주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해경 예산은 대형 경비정에 치우쳐 있었고, 해경의 인력 배치가 구조보다 유족 감시에 맞춰졌던 것이다. 찾아 달라는 시신은 못 찾으면서 엉뚱하게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강탈해 유골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게 해 버리는 게 경찰의 본질이다.


해경만이 아니라 해양수산부의 안전 예산도 총 예산의 1.7퍼센트에 불과했다. 정부 전체로 보면, 안전과 재난 대처를 위한 예산은 1퍼센트도 안 된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찰(9.1조 원), 법무부ㆍ검찰(3조 원), 헌법재판소(1.6조 원) 등이 포함된 ‘공공질서 및 안전’ 예산 15조 원을 ‘안전 예산’이라며 눈속임하려다가 망신만 당했다.(예산 항목이 시사적이다. 공공질서 및 안전인데, 압도적으로 공공질서 예산이다.)


이렇게 보면, 왜 세월호 침몰 당시(‘골든타임’)에 왜 구조가 방기됐는지 (음모론의 도움 없이도, 설사 일각의 잠수함설이 사실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왜냐면, 직접이든 간접이든 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과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 구조에 있지 않았다는 구조적 요인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구조 문제에서 드러난 무능, 부패, 무책임은 저비용 고수익이라는 자본의 십계명과 통치자들의 일상적인 노동계급 천대와 연관돼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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