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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23 범죄 통계 비틀기의 노림수 2

아래는 2010년 초 <중앙일보>가 청소년 범죄가 심각해진다며 내보낸 통계다. 

출처: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988385


이 통계만 보면 청소년범죄가 안정적 가정 환경에 있는 청소년에게까지 번지는 사회 문제로 여겨질 법하다.

같은 대검찰청 범죄분석을 놓고 보면, 통계상으로는 같은 기간에 소년(만 19세 이하, 2009년부터 소년범죄는 만19세 미만) 범죄가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소년범죄의 총 건수가 2005년 6만7천4백78명에서 2008년 13만 4천9백92명으로 늘었다. 총 범죄에서 소년범죄가 차지하는 비율도 3.4퍼센트에서 5.5퍼센트로 늘었다. 우리는 정말 나날이 청소년범죄가 증가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시간을 좀더 길게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1997년의 소년범죄는 총 16만 4천여 건으로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8퍼센트다. 2000년에도 여전히 소년범죄는 15만 건이 넘고 전체 범죄에서 6.3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런 범죄의 하락 추세가 2007년도경부터 조금 상승했지만, 10여 년 전에 대면, 소년범죄는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라고 보는 게 옳다. 

10대의 흉악범죄도 마찬가지다. 강도 건수가 최근 증가했지만, 4천 건에 육박하던 1990년대 후반에 대면, 최근엔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살인은 1990년대 후반에 70~80 건이던 것이 2007년 이후론 스무 건도 안 된다.

폭행죄는 대폭 늘었지만, 2009년에 다시 줄었다. 2004년 이후 굴곡 없이 성장한 범죄는 재산 범죄 중에서 절도와 장물 죄다. 소년범죄에서 가장 빨리 늘고, 단일 죄목으로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절도죄다. 2009년 11만 3천여 건에서 3만 8천여 건을 차지한다. 

강간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인데, 이는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 과거에는 신고율 자체가 떨어지는 범죄였기 때문이다. 즉, 세태가 바뀌면서 신고율이 높아진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즉, 위 <중앙일보>의 통계는 청소년범죄가 가장 낮은 시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우리에게 세태와 다른 이미지를 주는 전형적 보도 중 하나인 것이다. 

여하튼, 실제 10여 년 이상의 통계를 보면 과거와 비교해 청소년범죄가 급속히 늘고 있다거나 흉폭해지고 있다는 것은 실체적 진실과 다르다. 물론 이것이 장기적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계만으로는 사실 알 수 없는 것이고 그조차 원인과 배경을 분명히 알지는 못 한다.(나도 전문가는 아직 아니므로)

다만 한 조사(민주당 김춘진, 2010)에서는 청소년 자살의 원인 순위가 가정 문제/염세/성적 비관으로 나온다[각주:1]. 집단괴롭힘과 폭력은 1퍼센트고, 성적 비관 자살자가 소년범죄 중 살인 건수보다 많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학교 폭력과의 전쟁'을 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몇 가지 통계 관찰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 전문가가 아닌 내 수준에서 총범죄 건수와 소년범죄 건수를 놓고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2008년 이후 총범죄가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보다 늘어났다는 것이다.

2008년엔 세계경제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한국이 타격을 받은 해다. 
소년범죄에서도 확실하게 성장 추세를 보인 것이 절도죄인 점을 고려하면, 경제 위기 때문에 범죄가 늘어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을 해 볼 수는 있다. 

우익 지배자들은 범죄와 치안 쟁점을 이용한 늑대 효과로 이득을 챙기려 한다.

청소년범죄에서도 최근 5년간 유일하게 확인된 건 흉악범죄보다는 절도와 폭행(즉 청소년들끼리 싸운 것)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청소년 문제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과 우파 언론들이 범죄 통계를 비틀고 청소년을 속죄양 삼아 범죄 공포를 부추기고, 대중의 상호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권위적 통제를 강화하고 이를 정당화하려는 우파적인 지배 술책 중 하나다.

또 학교 문제의 진정한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고, 청년·청소년들의 사회적 저항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조처에 불과하다. (관련 글 ☞ 바로 가기

사회적으로 무시·천대받고 입시경쟁교육으로 소외와 억압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심지어 청소년범죄가 늘었다고 해도 전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쓴 글이다.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오세훈과 강금실 사이에서 범죄와 치안 문제가 논쟁됐다. 오세훈이 사회 불안을 보수파인 자신이 당선해야 치안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하자, 강금실은 강남과 강북의 치안 격차를 화두로 제시했다. 한나라당은 강남 치안에만 관심있다는 식이다.(사실 이게 민주당의 한계다. 주류 우파의 프레임 안에서 개혁적인 척하기)

문제는 이런 흐름에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들도 영향을 받아 치안 강화를 공약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던 일들이었다. 아래 글을 쓴 동기는 
진보정당 내부에서 이런 우파적 흐름에 영합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려는 것이었다.

왜 범죄와 치안을 주요 의제로 삼으려 하는지도 주장한다. 아주 잘 쓴 글은 아닌데, 돌아보면 도움이 된다. 
 




치안 강화는 범죄를 줄이는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저항의 논리

2006/05/08 02:17  수정  삭제

복사http://blog.naver.com/bestorm/110004078069

 

범죄에 대해 좌파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라는 의문에서....

 

 

 

 

마포 발발이 사건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치안과 처벌 강화에 대한 여론이 높다.

 

이를 반영하듯, 강금실은 SBS TV토론에서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강남과 강북의 치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강남구에만 372대가 설치돼 있는 CCTV가 강북에는 19대 밖에 없다는 통계를 들이대면서 CCTV 확대, 경찰력 강화, 자율방법대 후원 등을 제시했다.

 

요즘, 언론이 특히 연쇄 강력 범죄를 집중 보도하면서 민주노동당의 후보들도 이런 공약을 내세워야 한다는 압력을 곳곳에서 받는 듯하다.

 

하지만, 2004년 강남 CCTV 설치 후 구별 범죄 통계는 서울 전체에서 범죄율이 12.6% 감소하는 동안, 강남의 범죄율은 단 6.9% 밖에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cctv 한 대 설치에 1천5백만 원이 소요되므로 강남구로서는 1백억 원이 넘는 설치 예산과 13억 원이 넘는 보수 유지 예산을 들여가면서 효과도 불확실하면서, 인권만 침해하는 낭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범죄 대응을 치안 강화에 두는 것은 현실에 대한 과장과 왜곡에 바탕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우선 왜 과장과 왜곡인가. 2004년 총 범죄건수 중 강력 범죄는 14% 정도이며, 살인/강도/강간 사건이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신체 범죄라 할 수 있는 살인/강도/강간/방화/약취와유인/체포와감금/공갈/협박 범죄를 모두 합하면 1%가 조금 넘는다. 

 

반면, 전체 범죄의 30% 가량은 교통 범죄(특히, 음주 사고)다. 범죄로 인한 사망/상해자 수의 80% 정도가 교통 사고 관련이며, 강도/강간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83명으로 전체 범죄 사망자 7,713명의 1% 남짓이다.  (2003년 통계도 마찬가지 패턴이다)

진정으로 범죄를 줄이고 싶다면, 금주령을 내리거나 자동차를 없앨 일이다!!

 

그렇다면, 왜 주류 엘리트들은 과장을 섞어 가면서 (특히, 선거에서)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할까. 당연히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까닭은

첫째, 그것들이 '공권력'(국가)이 사회 전체의 보호자로 비춰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우파들이 쥐도록 만든다.

 

이 경우, 강력한 국가 통제를 주장하는 주류 우익(이 나라에서는 한나라당), 또는 현재 국가기구를 통제하고 있는 우파적 집권당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한마디로, '치안'하면 사람들이 전두환, 5공화국, 한나라당을 떠올리지 민주노동당, 진보, 좌파 등을 떠올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나찌 르뻰은 이주노동자(이방인)에 의한 프랑스 공동체의 파괴와 범죄를 주요 의제로 끌어올렸고, 우파 시라크와 사회당의 조스팽은 이 의제를 주요 의제로 수용했다. 나찌 후보와 사회당 대통령 후보가 서로 자신이 치안 확립의 적임자라고 싸우는 꼴이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르뻰의 급부상이었고, 사회당의 참패였으며, 시라크의 당선이었다.

 

둘째,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우파가 쥐게 되면, 사회 전체적인 이데올로기 지형 역시 우경화한다. 이 결과는 진지한 사회 변화(개혁)의 여론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빈곤과 범죄의 상관관계에 대한 주장, CCTV/전자팔찌 등 인권침해적 조치들에 대한 반대, 국가 통제가 가져올 사회 전반의 억압 강화, 범죄의 뿌리인 소외와 착위 빈곤에 대한 좌파적 비판은 약화되고 이런 얘기들은 당장의 '구체성'을 떨어지는 이야기로 취급당하기 쉽다.

 

당장, 내 아이가 강도 강간의 위협에 처해 있는데, 흉악한 범죄자들의 인권이 무슨 소용이며, 당장 오늘밤의 안전이 걱정되는데, 빈곤 해소가 어떻게 대안으로 들리겠는가.

 

그 공포심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아이가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강간범을 만날 확률보다 높은데도(50% 대 1%) 비정규직 정규직화/차별 철폐를 외치는 당보다도  치안을 강조하는 후보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그것이 당장에 눈 앞에 닥친 위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확률론적으로 따진다면, 강력범죄보다 더 현실적인 위험들이 많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당해 죽거나 다칠 확률이 강도를 당해 다칠 확률보다 161배나 높다.

2004년 통계를 비교하면, 기업주들의 작업장 안전 장치 미비와 혹사 노동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자가 범죄 사망자 중 교통사고를 제외한 모든 이유의 사망자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결국, 주류 우익들은 언론을 이용해 범죄의 위협을 과장해 진정한 위험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다. 

타인에 대한 공포심 조장은 사회적 편견을 강화시키고 이런저런 억압 조치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든다.(이런 사회적 심리와 분위기에 대해서는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을 다룬 하퍼 리의 유명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 잘 묘사돼 있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연대보다 국가권력에 기대기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주류 우익들은 사람들의 수동적 지지를 끌어내며 자신들의 지배(또는 집권)를 정당화하는데 성공하는 것이다. 이 체제를 운영하는 자들은 범죄를 막을 진정한 의지가 없다. 오히려, 지배의 정당화를 위해 일정 수준의 범죄가 필요하다.

 

이들의 정당화가 정치적인 면에서 뿐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부당한 것은 치안의 강화가 실제로 범죄를 줄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했듯이, 강남구의 경찰력 집중 배치와 CCTV 설치는 범죄를 줄이지 못했다.

 

강금실이 말한 강남북의 치안 격차도 거짓이다. 2003년 서울에서 살인 강도 강간 등의 강력 범죄는  2002년 3784건에서 지난해 4597건으로 21.5%(813건) 증가했다. 사건의 관할 경찰서는  강동, 강서, 동부, 강남서 순으로 많았다. 해당 지역 모두 그 전 해에 비해 증가했다. 그러나 성북구 등은 범죄가 감소했다.

 

사회가 지금처럼 운영된다면 앞으로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범죄 건수가 실제로 줄거나 정체했던 때는 민주화가 진전되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호황이었던 때였다. 1988~1989년은 범죄가 연속 감소했다.

 

심각한 경제 공황에 빠져들었던 98년 이후 범죄와의 전쟁이 몇 번이나 반복됐지만, 재산범죄와 강력범죄는 매년 늘어왔다. 지금처럼 빈곤이 만연하고, 자본주의가 체제의 부담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겨 양극화의 골이 깊어져 사람들이 절망과 소외, 다른 표현 수단을 찾을 수 없는 분노가 커질 때, 범죄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이나, 구로 연쇄살인 같은 무차별 범죄 역시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수백만 명의 가장들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나날의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다면, 청소년과 청년들이 암울한 미래에서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갑작스런 가족의 발병으로 산더미같은 치료비 부담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적어도 생계형 범죄를, 사회적 증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차별 범죄들을 획기적으로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동네와 안전한 거리를 원한다면, 여성들이 직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며 밤 늦게 퇴근하지 않아도 되도록 조치하면 된다. (사실은 밤늦은 거리와 성폭력의 상관관계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가족과 직장 등 위계적인 관계의 아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 무료로 운영되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가난한 우리 집 골목 어귀까지 우리를 실어 날라준다면, 우리는 교통사고나 음주운전사고의 위험에서도, 밤 거리의 공포에서도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범죄를 예방하고 줄이는 것 역시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원리와 우선 순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과 절망을 만들어 내는 현재의 사회를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기를 하면 땀이 나듯이 자본주의 체제는 범죄를 양산해 낸다.
 

우리가 진정한 원인을 말하지 않고 오늘 당장 입밖에 내기 편한 답변을 선택하는 순간, 진정한 안전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진정한 사회 변화의 가능성도 조금씩 갉아먹게 될 것이다.

 

 

ps. 도대체, 평택과 하이스코, KTX 등 국가 폭력이 야만의 지경에 이르고 있는데도 경찰력을 강화하자는 말이 좌파들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가. (5/12 덧붙임)

 






  1. 염세와 성적 비관이 전혀 연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불충분한 구분이지만, 진짜 청소년을 괴롭히는 게 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통계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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