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투쟁이 1천 일을 맞았다고 한다. 대단한 투사들의 영웅적 투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스무 명이 쌍용차 정리해고 후과로 사망했지만, 쌍용차를 비극으로 기억하는 흐름에 나는 반대한다. 

쌍용차는 지배자들과의 치열한 전투였고, 밀렸지만 아직 승부를 내지 못한 싸움이다. 비극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 싸움의 한 단면일 뿐이고, 사실 자본주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극이다. 그러나 쌍용차 투사들은 비극을 양산하는 체제의 야만에 정면으로 맞섰던 사람들이다. 투사에게 비극은 주어진 현실이고 살아가는 배경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돌아 보면, 이 파업은 많은 이들에게처럼 내게도 좋은 영향, 나쁜 영향을 모두 미쳤다. 이 파업은 내게 노동계급의 전투성과 도덕성에 무한한 영감을 줬지만, 한편에서 좋지 않은 결과 탓에 정세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게 돼 철도노조 파업을 판단하는 데서 오류를 겪기도 했다. 

2009년 봄 직장을 그만 두고 제주도 일주와 도보를 겸한 남도 여행을 대전에서 마치고 서울로 온 뒤, <레프트21>에 첫 출근한 것이 5월 중순이었다. 첫 취재가 대전에서 열린 화물연대 시위였다. 그리고 쌍용차 파업이 시작되는 날, 나는 평택 공장에 내려갔었다. 3일을 상주했다가 임무 교대 지시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서울로 돌렸다. 

당시 검색 결과로는 쌍용차 가대위의 당시 대표인 이정아 씨의 인터뷰를 가장 먼저 내보낸 것이 나였다. 현대차나 발전 가대위를 거론하며 인터뷰어가 나름 방향을 제안하는 신개념 인터뷰가 아니었나 싶다.(사실 질문하는 사람이 버벅거리고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이 더 또박또박 말을 잘 한다는 점이 진짜 신개념이었던 듯도 싶다.) 양형근 동지나 지금 지부장인 김정우 당시 지회장도 인터뷰를 했었다.

나중에 공장이 고립된 초기에는 주말에 내려가 조합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사에 내 이름이 빠져 맘 상하기도 했고, 밤에 혼자 들어가다 조합원들의 새총 공격을 받을 뻔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연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놈을 붙잡았는데, 그 과정을 취재한다고 붙어있다가 이 놈이 우리 편에게 덤벼서 불가피하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정의를 ― 펜을 쥔 손이 아니라 꽉진 주먹으로 ― 직접 실현하려는 신개념 취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인상적인 상황은 파업 이틀째 일요일 아침, 노무현 자살 소식이 들여왔을 때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조합원들을 돌아다니며 만나봤는데, 공통되는 반응은 ‘그 냥반 참 도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도의 원인인 상하이차 매각을 [노조 반대를 거슬러] 
강행한 것이 노무현 정부였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조문 정국이 쌍용차 파업의 이슈화를 막을 것이라고 여겼다. 속전속결이 필요한 노동자들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파업 조합원과 그 가족들을 빼고 가장 인상적인 집단은 구사대 폭력이었다. 조합원들이 느꼈을 비통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서 인간성의 고양을 봤다면 공장 앞에서 동료의 부인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인간성의 끝을 봤다. 그러니까 노동자가 이른바 임금 노예 같은 것이 아니라 영혼을 저당잡힌 노예가 되면 그 자체가 야만이 되는 것이다. 

사실 구사대가 진격할 때 카메라 기자와 함께 공장에 들어갔다가 카메라기자 잃어 버리고 나 혼자 양쪽이 쏘는 볼트와 너트가 날아다니는 한복판에 서 있기도 했는데, 구사대는 자신들의 수가 많은 때조차 결코 혼자 힘으로 조합원들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 편이 강고하면 결코 좀비들은 인간을 이길 수 없다. 

나중에 금속노조 연대파업 등이 무산되면서 점거 파업이 갈수록 궁지에 물릴 때 구사대의 발악이 극에 달했는데, 그 때는 나도 공장 앞에서 도망 안 가고 개기다가 쓰레기통을 뒤집어 쓰는 등 곤경을 겪었다.나중에 상황을 종합해 보니 나는 약과였다. 한 동지는 주차장에 차를 찾으러 갔다가 몰매를 맞아 뼈가 부러졌다. 

지배자들과의 진정한 전투였던 이 파업에서 저들의 야만성과 장단점, 우리 편의 강점과 약점이 드러났다. 저들은 이후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이 투쟁에서 단결했다. 집권 초기였고 촛불항쟁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재정비를 하는 상황이었다.

쌍용차 파업이 불러온 위기를 겨우 넘길 때만 해도 이명박 정권은 스스로 지금같은 상황을 예상했을까. 그러나 저들은 설득의 기제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경기 경찰청장 조혐오가 무자비한 진압 작전을 펼 때마다 이 정권의 정치·도덕적 수명은 단축됐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편의 대안이었다. 우리 편의 강점은 도덕적 호소력과 당사자들의 전투성이었다. 연대 단체와 개인들도 잠재적 전투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거파업은 경제 위기 시대에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라는 게 드러났다. 승리하려면 점거하라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얘기가 됐다. 물론 산 자와 죽은 자를 저들이 가르기 전에 
더 빠른 파업 돌입으로 우리 편의 단결을 공고히 할 기회를 놓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다. 

무엇보다 이 점거 파업의 전투성을 정치적 일반화하는 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즉 우리 운동의 개혁주의 지도부들은 이 전투성을 여타의 연대투쟁이나 또는 시기 집중 파업 등으로 [노동계급 안에서] 필요한 만큼 확산하지 못했다. 그걸 위해 부도 기업의 정리해고 철회 싸움을 일반(제도)적으로 해결할 해법, 즉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보장이라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금속노조의 연대파업이나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 보장 요구가 혁명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조처인 것도 아닌데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이를 회피한 것은 우리 편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형편없이 유약하고 기세가 약한지 보여 줬다. 개혁주의는 체제 안에서 무언가를 고치려 하므로 체제가 위기에 빠져 투쟁이 고조될 때, 투쟁이 위협적으로 성장해 갈 때 유약해지고 먼저 도망갈 채비부터 하게 된다.

노동조합운동의 필연적인 관료화와 더불어 IMF 이후 구조조정 국면에서 조직 노동계급이 아직 충분히 기세를 회복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기업화는 궁극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당장 국가를 압박해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내놓을 수 있는 요구, 그러면서 자본의 횡포가 주적이라는 걸 분명히 하는 요구였다는 점에 장점이 있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투쟁은 우리 편의 강점과 약점을 다시 보여 줬다. 한진중공업 노조 지도부의 투쟁 방침이나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애초에 이 싸움에 대해 보였던 태도는 쌍용차 때의 약점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매개로 전투성이 전통적 조직 흐름 바깥에서 조금 다른 형태로 표출됐다. 최소한 우리 편 안에서 연대투쟁을 동원하는 문제에서는 일반화가 이뤄졌다. 반대로 저들은 2009년과 달리 분열돼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모두 가슴에 상처를 입었지만, 조금씩 실패에서 배웠고 좀더 빨리 배운 이들은 조금씩 실수를 만회해 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약점은 남아있다. 유성과 KEC에서 순진한 태도로 전투에 임하다가 뒤통수를 맞았고 현대차 비정규직에서도 관료적 우경화 압력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비극 속의 희생자는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다. 계급투쟁으로서 우리 삶에서 비극적 요소를 찾는다면 오직 이길 힘이 있는 투사가 이기지 못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노동에 기생하는 [공멸의 가능성을 빼고 말하면] 저들은 우리를 절멸시킬 수 없기 때문에 저들은 최종적인 승리 ― 지배의 영구화(역사의 진정한 종말) ―를 거둘 수 없다.

오직 최종적인 승리는 우리에게만 허용된 조건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영웅적 비극은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 잠정적 요소에 불과하다. 

저들의 위기가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지금은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는 사람일수록 낙관적일 수 있다. 
더 낙관적이어야 하고, 더 정치적이어야 하며, 더 전투적이어야 한다.


※ 아래는 쌍용차 투쟁 기간에 썼던 많은 글 가운데에서 투쟁이 정리된 뒤 평가 시점에 쓴 글이다. 이런 글이 지금 돌아보기엔 더 나을 듯하다. 더 좋은 평가 글들은 두 개를 링크했고, 다함께가 발행한 소책자를 참고하실 것을 추천한다. 





쌍용차 파업에서 진짜 부족했던 것은  노동과 권리 

2009/08/30 18:54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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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파업 평가 토론회에 다녀와서

쌍용차 파업에서 진짜 부족했던 것은

 

워낙 초점이었던 투쟁인 만큼 쌍용차 파업 평가를 두고서도 진보 진영 안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가 20일 주최한 “쌍용차 투쟁 ─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아 '파업의 정치적 대안' 문제를 제기했다.

 

이종탁 부소장은 쌍용차 파업이 “경제위기로 인한 기업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려 한 자본의 시도에 맞선 투쟁”이었으며 “노조가 단순한 반대자 이상의 역할을 했고” “다양한 사회적 연대”가 형성된 점이 의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쌍용차 파업이 “단사의 고용 투쟁으로만 전개되면서 정치적 성격이 부각되기 힘들었다”며 “대정부 사회 투쟁이 부족했던 점”을 아쉬움으로 평가했다. “별도의 정치 전선”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부소장이 쌍용차 파업의 정치적 성격과 정치 대안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옳다. 이날 토론회에서 많은 토론자들이 지적했듯이 경제 공황기에 파산하는 기업의 노동자들이 고용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며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소장의 말대로 이번 투쟁의 의의가 “경제 위기로 인한 기업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려 한 자본의 시도에 맞선 투쟁”에 있다면 그 해결책 역시 자본이 책임지도록 해야 일관된 견해일 것이다.

 

자본에게 책임을 묻는 대안은 쌍용차 위기의 주범인 ‘먹튀’ 상하이차와 ‘묻지마 매각’을 추진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동시에 파산 기업을 낳을 수밖에 없는 자동차산업의 세계적 과잉생산에 대응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소장은 쌍용차 노조가 “디젤 및 디젤 하이브리드 분야의 경쟁력을 근거로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점도 제기하고 기업 체질 개선에 대한 주장”을 한 점을 성과로 평가했다.

 

또, 노조가 임금과 노동조건 양보로 “사회적 설득력”을 높여야 했다고 주장한다. 또 점거파업 전술 탓에 투쟁이 지역(평택)과 단사(쌍용차)에 갇혀 버렸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기업 체질 개선으로 경쟁력 회복하기를 대안으로 삼는다면 파업의 논리는 자기 모순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쌍용차의 경쟁력 강화가 자동차 산업의 과잉 생산이라는 근본 문제에서 해답이 되지도 못한다. 게다가 ‘노조의 선제적 양보안’은 무시당했고, 저들의 자신감만 키워줬을 뿐이다.

 

그 점에서 이 부소장이 내세운 “경쟁력 있는 사회적 기업화”보다 “친환경적인 대중교통 생산 기지로 전환해 고용을 보장하는 공기업화” 요구가 더 일관되고 효과적인 ‘자본의 책임 묻기’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대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적 자본의 소유권에 도전해야 하는 공기업화 논의를 진보 진영 다수가 꺼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당과 연합 문제 탓에 민주당의 쌍용차 매각 원죄를 거론지도 못했다. 이는 일관성을 떨어뜨렸다)

 

이 부소장이 정책 측면에서 주도했던 자동차범대위조차 경쟁력 논리를 수용하는 ‘한시적 공기업화’ 이상을 말하지 못했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역시 공기업화 요구를 회피했다. 투쟁의 막바지에 모호한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을 뿐이다.
 

이것이 진보 진영의 연대가 이 부소장이 지적한 대로 “단사 투쟁에 몸 대주기”처럼만 ‘보였던’ 이유다.

 

그래서 문제는 점거 파업 전술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쌍용차 파업이 여론의 정점에 선 것은 순전히 사측과 정부의 공격에 맞선 점거 파업의 견고함 때문이었다. 점거 파업은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강력한 압박이 됐다.

또 “나가라”는 요구에 공장 점거로 맞서는 투쟁은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고용보장”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적 효과도 있었다. 따라서 점거 파업을 지원하고 엄호하기 위한 “몸 대주기” 연대 역시 매우 중요했다. 정치적 연대 투쟁은 여기서 발전해야 했다.

 

부족했던 것은 “파산 기업의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보장”이라는 대안이었다. 이런 요구야말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다른 사회 세력들에게 쌍용차 투쟁에 적극 연대할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었다.

 

쌍용차 파업이 남긴 교훈은 경제 위기시에 “부도 기업의 공기업화” 같은 대안적 강령으로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건설하여 대정부 정치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 이 부소장의 평가는 아쉽다. 무엇보다 정치 투쟁을 말하면서 정부와 정면 대결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 관련 쌍용차 파업 평가 기사 ☞ 바로 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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