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본질과 음모론


국가의 용서받지 못할 범죄가 갈수록 또렷해진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이 사실상 잠수 구조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게 점점 밝혀지고 있다.


해경과 유착해 구조 작업을 독점한 언딘의 기술이사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구조가 아니라 배 인양을 위해 갔으며, 해경이 지시한 첫 잠수는 침몰 다음날(4월 17일) 오전이었다’고 밝혔다.


해체 방침으로 자기 방어가 힘든 해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언딘의 의도를 고려하더라도, 해경의 구조 방기는 다른 여러 증거들과 일치한다.


침몰 당시 45명을 구하고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한 진도 인근 어민 김현호 씨도 ‘해경이 구조 작업에 열의가 없었고 오히려 세월호 접근을 막았다’고 말했다.


정말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은 정부”다.



‘국가는 국민 안전의 최후 보루고, 국가의 주권자는 국민’이라는 지배적 상식이 참혹한 진실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정당성 위기).


바로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관심을 기울인다. 아직 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음모론은  세상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외된 처지를 반영한다. 음모론이 자라는 배경을 이해하면 알 수 있다. 음모론은
사회적 위기를 배경으로 자라난다. 예를 들어, 프랑스대혁명 전야는 온통 미확인된 루머의 시대이기도 했다. 지금 세계적 차원의 경제 위기는 시장과 경제성장에 대한 지배적 믿음을, 세월호 참사 등의 사건은 국가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자면, 애초의 지배적 상식이란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결코 국민 모두를 대변할 수 없다. 자본과 노동이 화해할 수 없는 적대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둘 다의 이익을 동시에 대변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개별 자본과 국가가 충돌하는 것은 어떤 것이 더 체제 안정에 효과적인지를 두고 다투는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힘이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이전 시절에도 성장지상주의가 이런 비극적 사고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와우아파트, 남영호, 삼풍백화점, 서해훼리호, 성수대교 등)


자본이 원활하게 노동자를 쥐어짜고 다른 나라들의 자본과 경쟁해 이기는 것 말이다. 국가 안보는 바로 이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안보도 간접적으로 이윤 지상주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해경 예산은 대형 경비정에 치우쳐 있었고, 해경의 인력 배치가 구조보다 유족 감시에 맞춰졌던 것이다. 찾아 달라는 시신은 못 찾으면서 엉뚱하게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강탈해 유골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게 해 버리는 게 경찰의 본질이다.


해경만이 아니라 해양수산부의 안전 예산도 총 예산의 1.7퍼센트에 불과했다. 정부 전체로 보면, 안전과 재난 대처를 위한 예산은 1퍼센트도 안 된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찰(9.1조 원), 법무부ㆍ검찰(3조 원), 헌법재판소(1.6조 원) 등이 포함된 ‘공공질서 및 안전’ 예산 15조 원을 ‘안전 예산’이라며 눈속임하려다가 망신만 당했다.(예산 항목이 시사적이다. 공공질서 및 안전인데, 압도적으로 공공질서 예산이다.)


이렇게 보면, 왜 세월호 침몰 당시(‘골든타임’)에 왜 구조가 방기됐는지 (음모론의 도움 없이도, 설사 일각의 잠수함설이 사실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왜냐면, 직접이든 간접이든 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과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 구조에 있지 않았다는 구조적 요인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구조 문제에서 드러난 무능, 부패, 무책임은 저비용 고수익이라는 자본의 십계명과 통치자들의 일상적인 노동계급 천대와 연관돼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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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윤 경쟁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재연될 수 밖에 없다 

- 박근혜에게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5월 9일 새벽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 주저앉았다.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진상을 밝혀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고도 싶었다.


그러나 ‘부모를 흉탄에 잃은 사람으로서 가족의 아픔을 이해한다’던 박근혜가 하소연하러 온 유가족들에게 들이댄 것은 따뜻한 위로와 환대가 아니라 방패 든 경찰 1천여 명과 경찰 차벽이었다. 


‘무능한 엄마ㆍ아빠여서 미안하다’며 땡볕을 가릴 천막도 양산도 마다하고 길바닥에서 면담 요청 결과만 기다린 유가족들에게 박근혜는 물 한 모금, 방석 하나 주지 않았다. 


대신 그 시각에 박근혜는 각료들을 모아 놓고 민생대책회의라는 것을 열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서민 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일은 국민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도 했다. 


유가족과 서민 대중(민중)을 이간시키려 한 말들이다. 또한 ‘많은 아이들 목숨보다 기업주들의 돈벌이가 더 중요하다’고도 선언한 것이다. 


이 말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의 비통한 심장에 가시를 박아넣었다. 이 가시는 기업 규제 완화를 위해 빼낸 기업주들의 손톱 밑 가시였을 것이다.


박근혜의 발언이야말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본주의 체제와 그 국가의 우선순위는 기업 이윤에 있지, 평범한 다수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을 위한 맹목적 돌진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의 탐욕ㆍ부패ㆍ무책임이 쌓이고 쌓여 노동계급의 자녀들, 승객과 일부 선원들을 직접ㆍ간접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는 작업 중에 다친 노동자에게 들어갈 산업재해 보험료를 아끼려고 119 구급차를 부르지 않아 결국 죽게 만든 제2롯데월드 건설현장 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은폐 범죄와 다르지 않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 진실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해 수백만 명을 위험에 처하게 한 간 나오토 일본 정부의 범죄와 다르지 않다.


박근혜의 발언은 이윤 지상주의에 대한 지배자들의 강박적 집착을 보여 준다. ‘국가 개조’에 나서겠다는 박근혜의 발언은 가증스럽게도 국가 불신 정서를 역이용해 공무원과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겠다는 말로 들린다.


분노


청와대 앞 농성이 정권책임론을 더 자극할까 봐, 박근혜 정부는 KBS 사장의 사과를 지시하는 양보 제스처도 취했다. 


그리고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와 일부 선원들을 살인죄로 기소해 속죄양 삼고 있다.(물론 모든 속죄양이 죄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정도로 대중의 분노가 진정이 안 될 것이므로 해경에서도 속죄양이 일부 나올 것이다.


이런 일들은 참사 전 박근혜의 ‘높은’ 지지율과 달리 이 정권이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실제로, 5월 10일 안산과 서울 등지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는 합쳐서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5월 17일 서울 집회의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박근혜는 5월 14일, 쌍용차 대한문 농성 시위자들에게 불법 시위 3진아웃제를 적용하겠다고 협박했다. 명백히 참사 항의 시위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주력해 온 철도와 의료 등의 민영화 반대, 작업장 안전, 핵발전 중단,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의 의제들은 하나같이 이윤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문제들이다.


자본의 이윤 동기에 제동을 걸 능력이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고유의 투쟁 방법을 사용하며 저항의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의제들이 이 사회의 보편적인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한다.


※ <노동자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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