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적폐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에도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대중적 관심사를 좇는 언론의 상업성 탓에 이제야 안전사고 보도가 늘어난 탓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월호 사고처럼 이런 사고들이 하나같이 이윤을 위한 비용 절감을 위해 이용자들과 작업 노동자들의 안전을 내팽개쳐 일어난 사고들이라는 것이다.


5월 28일 전남 장성의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이 죽었다. 그 이틀 전엔 경기도 고양시 종합버스터미널에서 화재가 나서 8명이 질식사하고 58명이 다쳤다.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은 비용을 아끼려고 간호사를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노인 환자를 재빨리 대피시키는 등의 조처를 할 수 없었던 이유다. 스프링클러도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도 박근혜의 규제 완화 ‘전투’의 흔적이 발견됐다. 시행만 하면 됐던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조처의 실행이 규제 완화 방침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고양터미널에선 지하 매장 조기 개장을 위해 공사를 서두르며 소방설비를 꺼 버렸다. 방화벽도, 스프링클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이 탓으로 보인다. 지하에서 불이 났는데, 지상 2층에서 질식사가 일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 터미널 건물 전체에서 화재 대피 안내 방송도 없었다.


건물주인 맥쿼리 투자신탁운용과 매장주인 CJ푸드빌이 사고의 주범인 셈이다.


서울 지하철 상왕십리역 등에서 벌어진 사고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후 설비를 제때 교체하지 않고 각종 신호시스템이 통합 운영되지 않은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철도에서는 작업 중인 노동자가 죽는 사고도 났다. 인력 감축과 강제 전출 등으로 말미암은 무리한 초과노동 끝에 일어난 참사였다. 현대중공업에서도 올해에만 노동자 8명이 작업 중에 사망했다.


이 나라는 산업재해 처벌도 약하다. 2011년 이마트 탄현 냉동창고에서 사측의 잘못으로 노동자 4명이 죽었을 때 이마트는 겨우 1백만 원을 벌금으로 냈다.


이윤(결국 수익성)이 최고 우선순위인 체제에서 안전을 위한 비용은 거의 낭비로 취급된다. 소방대원 한 명이 안전장갑을 두 개 구매할 수준도 예산이 안 돼 사비를 써야 할 형편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적폐’야말로 ‘안전불감증 사회’의 주범이다. 노동자는 작업자로서, 서비스 이용자로서 이중의 위협을 받고 있다.


박근혜야말로 이 자본주의 적폐를 수호하고 앞장서 대변하는 인물이다. 또 그 수혜자이기도 하다. 박근혜와 기업주들의 동맹이 지키려는 사회의 운영 원리에 도전하는 것이 진정한 ‘안전제일’이다.


체제의 우선순위 문제는 근원적인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원이 다수의 필요가 아니라 극소수의 이윤과 특권을 위해 사용되는 현실을 바꾸려 애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압도 다수의 필요가 우선순위가 되도록 아래로부터 노동계급이 저항해야 한다.



한국 국가와 자본의 천민성이 문제인가



세계 어느 자본가도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작업장과 이용자들의 안전을 알아서 염려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일본 같은 선진자본주의에서도 그렇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사고 지점 반경 20킬로미터 이내 주민 대피령을 발동하는 데 5시간이나 걸렸다. 이토록 늑장 대응을 한 일본 정부도 인터넷 등의 ‘유언비어 단속’은 신속하게 시작했다. 진실 은폐를 위해 항의 시위도 탄압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서로 책임 공방을 벌였지만, 둘 모두 진실 은폐에는 한 마음이었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속이고 사고 현장에서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하도록 시켰다.


무엇보다 실제 핵폭탄의 피해를 어느 나라보다 잘 아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일본이 핵발전에 열중하고, 그 안전에 그토록 소홀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 자본가들에게도 자본 간, 국가 간 경쟁이 노동계급과 민중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작업장 안전 문제는 어떨까.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제국주의 패권을 위해 벌인 살육 전쟁이었다. 그런데 1969년 당시 노동부장관 (훗날 벡텔 회장과 국무부장관 등을 역임하는) 조지 슐츠는 “[전쟁 개시] 4년 동안 베트남에서 죽은 미국인들보다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미국인들(1만 4천여 명)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다음 해 ‘직업 안전 및 건강법’을 제정했지만, 그로부터 2006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는 35만 명이나 된다.


작업장 안전 문제 처벌도 약하다. 안전 법규를 어겨 직무 중 노동자의 사망을 초래한 사용자가 가장 세게 처벌 받을 수 있는 한도가 6개월 징역형에 불과하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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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워지고, 정부는 예산을 삭감한다. 대부분 안전을 위한 비용이 먼저 삭감된다. 민영화도 한다. 기업에 대한 안전 규제 따위가 약화된다. 그러다가 대형 사고가 난다. 피해는 대체로 노동계급이나 빈민에게 집중된다. 정부와 해당 기업은 사고 초기에 사죄, 최선 어쩌고 하지만, 뒤로는 책임 회피와 진실 은폐에 골몰한다. 또한 사고를 또 새로운 돈벌이로 이용하려 한다. 갈수록 피해자들은 사고 전보다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심지어 매도당한다.


국제적 대형 재난들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수습되는 과정까지 이처럼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그것은 이런 사고들의 근본적 원인이 국가별 특성이 아니라 세계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강대국 미국, 그 나라의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를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친 2005년 가을로 돌아가 보자.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을 위해 안전 예산을 삭감했고, 뉴올리언스의 제방은 부실해졌다. 뉴올리언스는 바닷가이지만 저지대라서 제방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뉴올리언스 시 당국은 두 해 전 가상 훈련을 해 봤다. 3급 태풍이면 6만 명이 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대책 마련에 활용되지 않았다. 필요 경비로 추산된 1백40억 달러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6주간 쓸 비용과 맞먹었다. 오히려 부시 정부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려고 홍수 방지 예산마저 삭감해 버렸다.


주민들에게 이런 위험을 경고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재난이 이미 시작됐는데도, 뉴올리언스 시장은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괜스레 재난 위협을 과장해 시의 관광산업을 위태롭게 할까 봐서였다. 당시 한창 돈을 벌고 있던 호텔 사주들은 강제 대피령에 반대했다. 결국 정보를 빨리 알아챈 부자들만 먼저 시를 빠져나갔다.


결국 카트리나가 가상 훈련에서보다 더 약한 태풍이었음에도 수천 명이 죽는 피해가 난 것이다.


당시 수난을 당한 사람들(대부분 흑인 등 가난한 노동계급 사람들이었다)이 겨우 살아나 처음 맞닥뜨린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난리통 속에서도 지배자들은 부자들이 비워둔 집과 관공서, 대형 마트, 호텔 따위를 지키는 것(‘질서 유지’)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식 구조 구난 시스템은 마비됐고, 집과 거리가 물에 잠긴 상황이었으므로 피난민들이 어떻게든 기초 식량과 물, 필수약품 그리고 휴식을 얻으려고 대형 마트와 빈 공간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우파 언론은 흑인들의 약탈과 강간, 살인이 도시에 난무하고 있다며 국가의 구조 책임 회피를 정당화해 줬다.


부시 정부의 연방재난관리청(부시는 9ㆍ11 테러 후 국토안전보장부를 신설했다. 연방재난관리청은 이 국토안전보장부의 산하 기관이다.)은 정부 안팎의 많은 기관의 수송 관련 도움 제안을 거절했다. 심지어 해군이 병원선을 보내주겠다는 것도 거절했다. 


그리고는 부시를 지지한 기업들에게 재난 지역과 바깥을 버스로 오가며 수송하는 사업을 독점적으로 맡겼다. 그런데 이 업체는 트럭 운송 업체였다. 그래서 이 업체는 2차 하청을 주고는 한 일 없이 돈만 벌어갔다.


부시는 뉴올리언스 시장에게 강제 대피령을 내리라는 전화를 했음에도 이 사실을 은폐했다. 사건 초기부터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는데도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 폭로되는 게 더 두려웠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널려 있다. 2004년 스리랑카 동부 해안에서 쓰나미가 닥쳐 수십만 명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 재앙은 지역 관광업주들이 지역 어민들을 해안가에서 축출하는 기회로 이용됐다. 대피했던 어민들은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난민수용소에서 사는 신세가 됐다. 구호를 핑계로 미국은 군대를 스리랑카에 들여보냈다.


쓰나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붕괴로 이어진 2011년 일본에서도 간 나오토 정부와 (사기업인) 도쿄전력회사는 정보 통제에만 급급했다. 


정부는 다섯 시간 만에 폭발 사실을 인정했다. 한국과 꼭 마찬가지로 필요한 정보 제공은 감춘 반면, 유언비어 단속을 이유로 민간의 정보유통과 항의시위는 틀어막았다. 


조처도 형편 없었다. 대피령도, 대피령 확대도 늦었다. 피난처도 준비하지 않고 사람들을 소개해 난민만 만들었다. 


안전 파악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방사능 제거 작업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거 동원해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그리고는 몰래 오염수들을 태평양 바다에 흘려 보냈다. 정부와 도쿄전력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바빴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삼성 소속 선박이 충돌해 기름이 어마어마하게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 중에는 정부가 기업의 비용 절약을 도우려고 유조선의 선체를 두 겹으로 하도록 의무화하는 조처를 뒤로 미뤄 준 문제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사건 초기에 삼성을 위해 사고 발생과 경위를 숨겨 줬고, 방제에 늑장을 부렸다.


지배자들이 재앙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을 때, 그 반대로 사회적 유대와 자치 능력을 보인 것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 자신이었다. 


이번에도 허둥댄 해경과 달리 진도 인근 섬의 어민들이 사태를 파악한 지 20분 만에 생업을 미루고 구조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세월호 앞에 집결했다.


※ <노동자 연대> 126호에 축약 게재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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