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박근혜를 탄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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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우익 총동원 집회에 10만~20만 명이 모이자, 예상대로 청와대는 탄핵 찬반 여론이 반반이라느니, 3월 4일 집회도 기대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자신이 조종하고 독려한 시위로 여론 운운하는 것을 보니 가소롭다. 박근혜는 삼일절 우익 총동원 집회을 앞두고는 박사모에게 직접 격려 메시지를 전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박근혜가 표명한 입장들은 탄핵 반대 집회의 명분과 논리가 돼 왔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박근혜 변호인단은 이 집회의 단골 연사들이다.

△ "찬탄/반탄"이 아니라 "탄핵 즉시 인용"이 진짜 민심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친박 우익 단체들을 청와대 행정관이 관리하고, 삼성과 전경련이 자금을 대 왔다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된 지 한참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만들고 돈 모으는 일에서만 박근혜와 전경련이 한통속인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바닥 민심이 아니라 위에서 조직한 운동이었으므로 삼일절 ‘옹박(擁朴)’ 집회가 성공했다고 해서 ‘열에 여덟’이 박근혜 퇴진을 바라는 여론 지형을 바꾸지는 못했다. 퇴진 운동의 삼일절 집회 규모는 주말 집회보다 크게 줄었어도, 여전히 매주 평균 70여만 명이 참가하는 이 운동에 우익 집회를 들이댈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열에 둘(우익)’이 넋 놓고 있는 것과 총력 동원을 하며 기를 살리려는 것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측이 불공정 시비와 세 과시로 헌법재판소를 압박한 것은 평결 지연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을 시험해 본 것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로서는 최악의 경우(탄핵 인용)에도 자기 대오를 유지하고 결속시킬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다음 정권이 경제 회복에 실패하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 등을 펴다가 인기가 떨어지면 우파에게도 재기의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 정권의 임기가 남은 동안 그 힘을 이용해 최대한 자기 세력을 결집해 다음 기회를 엿볼 태세를 갖추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박근혜식 ‘질서있는 퇴각’ 계획인 것이다.


적폐 청산

게다가 너무 부패하고 민망한 실상 때문에 박근혜 제거에는 동의한 지배계급의 일부(아마도 상대적 다수)도 박근혜의 적폐 정책들까지 버릴 생각은 없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블랙리스트 통치로 민주적 권리 옥죄기, 한일 ‘위안부’ 합의나 사드 배치 같은 친제국주의 정책 펴기 등으로 노동자·민중을 무시하고 못살게 구는 일들 말이다.


(박근혜가 자신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강변한 것은 순전한 거짓부렁이지만) 그의 부패는 기업주들과 공모해 벌인 것이지, 기업주들을 괴롭히거나 이윤 추구를 방해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박근혜와 거리를 두는 우익 언론들조차도 지금은 촛불 운동과 좌파,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데 더 열중한다. 황교안이 권한대행으로 박근혜가 없는데도 박근혜 정부처럼 유지하는 것에 호의를 보낸다.


또한 이 운동의 발전 수준 때문에 아직은 정치적 헤게모니가 주류 야당에 있다는 약점을 이용하려고 야당 대선 후보들을 흠집 내는 데 신경 쓴다. 또한 마치 탄핵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처럼 호도하며 우익 결집을 일부 돕는다. 저들은 사람(박근혜)은 미워해도 (박근혜) 정권은 미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황교안 내각은 노동개악도 포기하지 않았고, 사드 배치와 국정교과서 실시를 강행했다. 국가보안법 탄압도 벌였다. 삼일절에 한일 ‘위안부’ 합의를 존중하라고 도발했다. 경찰은 삼일절에 교묘하게 퇴진 집회를 방해하며 우익 집회의 기세가 돋보이도록 유도했다.


이런 동향 때문에 헌재의 탄핵심판 전망이 퇴진 지지 측에 다소 유리해 보인다고 해서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2월 말 3월 초에 퇴진 운동의 방심과 주류 야당의 기만 때문에 우익의 책략이 일부 성공해 그들의 기를 살려줬다. 특검 연장 무산이 대표적이다.


야당은 아직 특검 연장 결정 시한이 일주일가량 남았던 2월 23일에 국회 처리 무산을 선언해 버려 결과적으로 특검 연장을 거부하려는 황교안의 부담을 덜어줬다.


결국 황교안이 27일에 특검 연장을 거부하자, 이번에는 특검법 개정의 국회 처리를 무산시킨 요인들(자유당의 반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거부)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도 황교안 탄핵이니 특검법 개정이니 믿기 힘든 ‘뻥카드’만 날리면서 면피를 하려 했다. 야당을 압박하되,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퇴진 운동은 처음부터 박근혜 1인 제거가 아니라 정권 퇴진 운동이었다. 노동자·민중의 대다수는 정권 퇴진을 통해 부패한 인물들을 처벌하고, 가진 자들만 대변하는 정책들을 중단시키고 싶어서 이 운동에 매주 참가하고 열렬한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려면, 헌재 평결 이후에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억제하고 정치 체제의 안정을 재구축하고 싶어 하는 지배계급의 나머지와도 싸워야 한다.


주류 야당이 특검 연장을 진지하게 추진하기보다 쇼만 하고 그만둔 것만 봐도 그렇다. 최근 민주당의 우클릭에는 단지 중도보수층 표를 얻을 계산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기성 체제를 지지하는 야당으로서 지난 다섯 달간의 정치 상황을 정리하는 것에는 이해관계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주류 야당들은 운동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정도로만 얌전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한 자진 사퇴(항복)와 달리, ‘탄핵 인용’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박근혜 정부는 황교안(혹은 그 후임) 같은 자들의 통솔 아래 조기 대선이 끝나는 날까지 유지된다.


따라서 퇴진 운동은 계속 힘의 우위를 유지하려 해야 하고, 탄핵이 인용돼도 조직을 유지하고 시위를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향후 진행될 검찰 수사와 재판에도 압력을 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우익 결집에도 맞서야 한다. 그래야 지배계급이 운동을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 퇴진(탄핵)이라는 1차 목표를 이룬 자신감으로 적폐를 유지하려는 구체제의 인물·정책들에 맞서 곳곳에서 싸우도록 고무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벌이는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 낼 진정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미 퇴진 운동의 전진이 미친 영향들이 조금씩 엿보인다. 학생들이 대학본부의 친기업화 정책에 맞서 점거농성을 벌여 온 서울대에서 비학생조교들이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이화여대 경비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후퇴에 본관 점거로 맞서 승리했다. 경북 경산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학교 관리자들에 맞선 교사와 학생들의 저항이 거세다. 입학식이 무산될 정도다. 이런 일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특히, 조직 노동계급의 파업과 시위가 많아져야 한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헌재 평결을 전후로 헌재 앞 대규모 집회를 열어야 한다. 탄핵 기각(또는 각하)은 결코 수용할 수 없고, 그럴 경우 더 격렬한 저항으로 박근혜를 직접 끌어내리겠다고 강조하고 준비도 해야 한다. 탄핵이 인용돼도 퇴진행동은 해산하지 말고, 조직 명칭과 투쟁 기조를 유지하며 주말 집회를 이어 가야 한다.


또한 지금보다 더 전진하고 싶어 하는 퇴진 운동 참가자들은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전망과 정치가 필요함을 이해해야 한다.


탄핵 인용을 위한 촛불의 약속


헌재 탄핵 선고가 다가 오고 있다.
이제 우리 촛불이 탄핵 인용을 위해 더 비상하게 나서야 할 때다.
광화문에 모인 우리는 약속한다. 그리고 호소한다.

1. 선고 전날 7시 광화문에 모이자!
2. 선고 당일 아침 헌재로 모이자!
3. 선고 당일 저녁 광화문에 모이자!
4. 선고 주말 광화문에 모이자!
5. 3월 11일(토) 광화문에 모이자!


촛불이 승리한다! 함께 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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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연장 거부는 범죄 은폐 시도박근혜의 공범 황교안은 퇴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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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권한대행 황교안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끝내 거부했다. 정확히는 특검을 해체해 버린 것이다.


마치 박근혜의 치부와 연결된 우병우의 혐의에 청와대 특별감찰실이 주목하자, 이를 공중분해시켜 버린 것을 연상시킨다. 박근혜·황교안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수사하던 검찰총장을 날려버린 일도 떠오른다.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이 필요한 이유는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곳곳에 쌓아 놓은 비리와 악행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선 실세, 각 부처, 기업주, 언론 등이 유착해 저지른 정경 유착, 부정 축재, 세월호 참사 구조 방기, 블랙리스트 통치 등등.


게다가 이 수사는 아직 임기가 남은 정권을 대상으로 한 수사였다. 정권 차원의 증거 은폐, 박근혜의 범죄 은폐 교시 인터뷰, 초기 검찰 수사 부실 등 수사 방해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우병우와 문고리 3인방, 삼성 이재용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 총수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박근혜의 몽니로 박근혜 대면 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도 하지 못했다. 이런데도 검사를 30년이나 한 자가 수사가 충분했다고 하니, 공범을 자인한 것에 틀림없다!


이런 조직적 방해에도 정권 퇴진 운동의 강력한 압박을 배경으로 특검 70일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정권의 유력 실세들이 여럿 구속됐다. 최순실과 비선 실세들, 김기춘, 조윤선, 안종범, 문형표 등 청와대와 내각의 실세 관료들, 재계 1위인 삼성 이재용 등.


황교안은 박근혜와 나머지 기업 총수가 구속되지 않도록 특검을 해체한 것이다. 황교안 스스로 범죄 은폐의 종결자 구실을 하는 것은 그가 박근혜 정권의 핵심적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 특검 연장에 반대하며 황교안의 뒤를 받친 것이다.


황교안은 이 정권이 시작할 때부터 내각 구성원이었다. 실세 장관과 총리로 박근혜의 범죄적 통치에 앞장서 왔다.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를 가로막았고, 진보당 해산을 주도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황교안은 박근혜 국회 탄핵 가결 후에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옹호하고, 국정교과서, 노동 개악, 사드 배치 등을 강행하며 박근혜 적폐의 대행자 구실을 해 왔다.


한편, 여러 여론조사에 이미 대선 후보로 포함돼 있는 황교안이 특검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연장을 거부한 것은 사실상 검찰에 대선 기간 수사하지 말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황교안의 특검 해체는 퇴진 운동에 대한 도발이다. 우리 운동은 부패한 통치자들의 단죄를 요구해 왔다. 바로 이런 더러운 일들을 예상해 박근혜 국회 탄핵 이후 황교안 퇴진 요구가 커져 온 것이다.


선출된 적도 없고, 오로지 박근혜의 비호와 임명으로 버티다가 운좋게 대통령권한대행 자리에 오른 이 자격없는 자를 끌어내야 한다.


애초에 정권이 통째로 연루된 권력형 부패를 다루는 특검법이 수사 기간을 최장 1백 일로 제한하고, 그나마 그중 30일 연장도 수사 대상인 대통령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 문제였다.


여기에는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지난해 11월경 민주당 지도자들은 박근혜 퇴진보다는 범죄 소굴이 된 청와대와의 협상을 통해 2선 후퇴 후 거국 총리 임명 같은 정치 거래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 당 소속인 국회의장 정세균은 그나마 특검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해 박근혜 일당의 부담을 덜어 줬다.


퇴진 운동이 계속해서 강력한 힘을 보여 준다면, 향후 특검이 재개되든 검찰 수사로 넘어가든 검찰 수사 막판에 그랬듯이 소기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촛불은 이런 꼴을 보려고 한겨울 영하 10도의 혹한과 눈비를 견디며 다섯 달째 거리 투쟁을 벌여 온 것이 아니다.


거리의 민중은 박근혜가 임명한 마름이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박근혜의 공범이 정권 퇴진과 적폐 청산을 가로막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황교안은 퇴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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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은 민중의 투쟁이 낳은 성과즉각 퇴진 투쟁은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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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2백34표로 가결됐다. 국회 재적 대비 78퍼센트 찬성이고, 새누리당 의원의 절반 가까이가 탄핵소추에 찬성했다. 무기명 투표의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집권당도 거의 절반이 등을 돌려 박근혜의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외쳐 온 민중의 투쟁에 국회가 압박당한 결과다.

지은 죄로 말하자면,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때 이미 두 번 세 번 탄핵됐어야 할 자다. 퇴진 운동은 여기서 멈추거나 조기 대선 준비로 휩쓸리기보다 고삐를 더 당겨야 한다.

지도자의 추락에 전전긍긍한 공범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주류 야당들도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주류 야당들은 즉각 퇴진이 압도적이었던 거리의 운동과 처음에 거리를 뒀다. 박근혜 ‘2선 후퇴’, ‘거국 내각 구성’ 따위로 거래하려 하면서 말이다. 그 뒤 운동에 발을 걸치며 박근혜 퇴진 당론을 정하고 탄핵소추 추진을 선언해 놓고도 새누리당 일부와 밀실 거래를 하는 등 기회주의적 처신을 거듭했다.

이런 틈새를 노려 지난 주 박근혜는 검찰 수사도, 자진 사임도 거부한다는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즉각 퇴진" "구속 수사" 박근혜에 대한 노동계급 대중의 증오가 상징하는 것은 정경유착 특권층 사회와 불평등 구조에 대한 반감이다. ⓒ이미진

박근혜의 몸부림에 크게 한 방 먹인 것은 성난 민중이었다. 역대 최대 시위로 답했다. 주최 측 추산으로 전국 2백30만 명, 최초로 청와대 담벼락 1백 미터 앞까지 진격한 서울에서는 1백60만 명이 넘게 나왔다. 이날은 ‘단 하루도 꼴 보기 싫다’는 분노가 더 두드러졌다. 여전히 뻔뻔하게 버티는 박근혜의 모습에 민중은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강력한 거리 운동이 의회 정치인들로 하여금 자칫하다가는 자신들에게도 분노의 불길이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사회 안정을 위해서라도 성난 여론을 국회 탄핵으로 제도권 안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그는 ‘헌재 심판에 담담히 대비하겠다’며 “정부가 추진해 온 국정과제만큼은 마지막까지 추진해 [달라]”고 밝혔다. 그리고는 민정수석 최재경의 사표를 수리하고 세월호특조위를 내파하려 한 조대환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아마 특검 수사와 헌재 탄핵심판 심리 대비일 텐데, 이미 박근혜는 변호사들을 선임해 그 준비를 시작했다. 검찰과 헌재 재판연구관 등 고위직 출신들로 알려져 있다. 총리 황교안도 2004년 고건 직무대행 당시의 자료를 검토하며 탄핵소추 가결 상황에 대비해 왔다.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면 청와대 비서진은 총리실로 출근하며 박근혜에게는 비공식적 보고를 계속할 것 같다. 박근혜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막판 뒤집기를 획책할 것이다. 황교안은 복지 축소와 민주적 권리 침해 등 온갖 개악에 앞장서 온 박근혜 ‘내각 원년 멤버’다. 노동개악, 각종 민영화 등 악행에 앞장선 장관들도 자리를 그대로 지킨다.

박근혜가 임명한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고, 박근혜가 아직 대통령 권좌에 앉아 있는 것은 박근혜 퇴진 운동을 통해 사람들이 바꾸길 바라는 많은 적폐들이 청산되지 않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압도적으로 가결하게끔 만든 그 힘, 박근혜 즉각 퇴진 대중 투쟁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박근혜 내각 '원년 멤버' 황교안 이 자도 쫓아내야 한다. 

4년간 누적된 반감과 저항이 박근혜를 코너로 몰다

여론조사는 변하는 사람들의 정서의 단면을 잘라 보는 것이고, 설문 문항의 구성에 따라 같은 시기에도 다른 답변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여론조사는 간접적으로, 서로 다른 조사들의 비교를 거쳐 시간 변화에 따른 추이 등을 봐야 한다.

이 점에서 최근 폭발적인 반박근혜 여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물론 박근혜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를 동시에 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반박근혜 여론이 갑자기 최순실 등 몇몇 폭로로만 폭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근혜가 당선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얻은 1천5백만여 표는 비우파 후보가 얻은 최대치였다. 이는 인구 증가나 문재인의 인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과거 반성 없는 독재자의 딸이 구 세력과 함께 돌아오는 것에 반감을 표한 반박근혜 투표였던 것이다. 박근혜의 초기 내각 구성이 대중의 반발 덕에 한 달 이상이나 걸린 것을 떠올려 보자.

이후 상황은 〈한국갤럽〉이 집권 1년차부터 조사한 추이를 바탕으로 살펴 보자.(다른 조사들도 추이가 대강 비슷하다.) 박근혜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대체로 낮을 때도 40퍼센트 수준에서 안정되게 유지돼 왔다. 그래서 콘크리트 지지율이란 말도 나왔다. 그러나 임기 첫해, 국회의 법안 통과율이 ‘0’에 가까웠음도 봐야 한다. 즉,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한 박근혜의 악행이 본격화하지 못해서 지지율이 유지된 것이다.

철도 민영화를 본격화하려다가 이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이 2013년 12월에 3주가량 진행되자 부정 평가도 30퍼센트를 넘기며 결집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부정 평가가 40퍼센트 후반에서 50퍼센트 중반대를 유지해 왔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하고 냉소적인 대응 때문에 2014년 3분기 이후 지금까지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앞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측근 부패의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격한 반대 여론 속에서도 관철된 2015년 상반기에는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당시까지 가장 큰 격차로 앞섰다. 그 때는 바로 민주노총이 한상균 팀 하에서 노동개악 반대 파업을 벌이며 저항을 재개한 때이기도 하다.

결국 온갖 반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경제 실패도 확연해지자, 올해 총선에서 박근혜는 참패했다. 그 뒤로 정권의 불안정은 본격화됐다. 노동개악 반대 공공·금융 파업이 시작된 가을에 마침내 지지율이 3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정권이 가장 취약해진 순간, 그토록 꽁꽁 싸매왔던 해괴망측한 부패상이 줄줄이 폭로됐다. 부정 평가도 늘었다.


분수령

결국 10월 29일 박근혜 퇴진 집회가 시작됐다. 참가 규모는 주최 측 예상보다 거의 열 배나 됐고, 사람들은 너나 없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종로, 광화문을 행진했다. 이 시위는 일종의 분수령이었고, 퇴진 운동이 커지는 속도만큼 박근혜 지지율은 급속히 추락했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때, 사상 최대의 반박근혜 시위가 벌어진 뒤로 모든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지지율은 최저치로 떨어졌고 부정평가는 최대치로 올랐다. 결국, 파죽지세로 성장한 퇴진 운동이 청와대 1백 미터 앞까지 이르자, 박근혜는 온갖 몸부림도 소용 없이 대통령 직무를 정지당하는 탄핵소추 상태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 퇴진 운동이 단지 몇몇 부패 추문 때문에 일어난 운동이 아님을 보여 준다.(물론 그런 추문은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박탈감을 한층 더 자극했다.) 운동 과정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폭락하고 주류 야당들과 그 당들의 대선주자들이 수혜자가 됐지만, 이 운동은 단지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만을 위한 운동이 아닌 것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중심에는 시작부터 좌파와 조직 노동자들이 있었다. 여기에 대부분 미조직 노동자들로 보이는 30~40대들이 가족과 함께 대거 참가했고, 청소년들의 참가도 비교적 초기부터 두드러졌다.

즉, 거리 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반박근혜 여론이 강력하게 조성되고 있었고, 노동자 투쟁이 이 여론을 이끌고 있었으며, 퇴진 운동의 사회적 구성도 노동계급 중심의 민중인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되는데도 대기업과 특권층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사회, 평범한 민중보다 강대국 지배자들과의 협력을 더 중시하는 정부, 무고한 아이들의 생명보다 대통령 개인의 심기 경호가 더 중시되는 정치 등에 대한 불만들이 결합한 것이다.

게다가 이 정부는 더러운 공작 정치를 일삼아 왔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방해와 모욕, 노동운동 와해 시도 등이 모두 정권의 공작과 관계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더러운 일들이 재벌과의 끈끈한 유착 속에서 이뤄졌음도 드러났다.

친특권층, 친기업, 반노동, 반민주, 반생명 정책들에 맞선 여러 투쟁과 경험 속에서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반감은 총체적 증오로 성장했다. 물론 권력자들과 기업 성장을 위해 노동자·민중을 옭아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박정희 신화’에 대한 거부도 연관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와 그 체제는 아직은 죽지 않았다. 탄핵소추 가결 선포 후 “더 이상의 혼란은 없어야 한다”는 국회의장 정세균의 말과 달리, 거리의 민중은 할 일이 남아 있다. 파죽지세로 성장한 이 운동이 여기서 멈출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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