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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05 10·26 이후 야권통합과 진보정치 11

10ㆍ26 재보선에서 진보정당은 위기와 가능성을 모두 보여 줬다.

우선 진보정당과 후보들은 무대 위에서 별로 시선을 끌지 못했다.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얻은 표는 2퍼센트 남짓이었다. 야권연대를 위해 ‘어차피 사퇴할 후보’라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조차 최규엽 후보 선거운동이 아니라 당선이 유력한 박원순 후보와 선을 대고 약속을 받아내기 바빴다.[각주:1]

진보의 독자성을 훼손해서라도 의회에 진출하는 게 실질적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 온 게 민주노동당 지도부였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거둔 성적을 보면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민주당과 단일화하지 않고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11~27퍼센트를 득표한 것이다. 이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는 거의 모두 낙선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노원구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당선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것과 대조된다. 양천구에서 민주당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표의 70퍼센트도 채 가져가지 못했다.

반MB ‘계급’투표를 한 노동계급 청년세대가 민주당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으며 이들 중 의미있는 수가 진보정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의 실체인 것이다[각주:2]

만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대통합이 성공했다면 이 가능성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강령까지 후퇴시키며 친자본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다가 진보대통합을 망쳐 버렸다.

그 결과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의 주도권을 안철수ㆍ박원순 등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안철수 현상에는 진보정당이 제대로 공백을 메꾸지 못한 탓도 있는 것이다. 

노동자ㆍ청년들이 계급적 각성을 하며 진보를 갈망하기 시작하는데, 노동자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약해지는 역설을 자초한 것이다.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뼈아픈 패착이 아닐 수 없다[각주:3].  
 

계급적 분노
 
한편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그토록 그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던 유시민과 참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각주:4]. 참여당이 여전히 구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아류[각주:5]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분열까지 조장하면서 참여당과 통합하려 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정당성은 더욱 약화됐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은 또다시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에게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회찬ㆍ심상정 등 통합연대 지도자들도 이 압박에 무원칙하게 타협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각주:6] 사실이라면 유감스런 일이다. 

민주당의 아류로 비치는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를 진보정당이 흡수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고, 민주노총에서 불필요한 분열을 재연할 것이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일으킬 것이고, 결국 진보정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더 약화될 수 있다.

그리 되면
 ‘혁신과 통합’ 등 NGO 성향 인사들이 주도하는 야권통합 정당에 진보정당들이 들어오라는 압력도 커질 것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나 친노의 주도력은 많이 약화됐지만, 야권연대의 선거적 힘은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번째 역설인데, 야권통합의 실질적 대주주인 민주당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야권통합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당과의 통합을 고집하면 일관되게 이 압력을 거스르기도 힘들다. 참여당은 진보정당과 ‘소통합’ 이후에 ‘혁신과 통합’과 함께 야권대통합으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당과의 통합이든 야권통합이든 모두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위태롭게 하는 퇴행적 시도다. ‘노동 없는 정치’가 정치 불신의 근본 배경인데, 그 정치를 해야 할 당의 독자적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청년세대는 이번 선거에서 1퍼센트 특권층이 지배하는 기성 정치 구조가 이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계급적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각성은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희망버스’와 최근 한미FTA 저지 운동이 그 사례다[각주:7]. 이들은 조직 노동운동의 투쟁에 대해서도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세력은 급진적인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미FTA 저지 투쟁이나 ‘99퍼센트의 저항 운동’ 등을 건설하며 이들의 분노를 행동으로 조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각주:8] 

그 과정에서 반한나라ㆍ비민주당 개혁주의의 현재 수렴점인 진보적 NGO들과도 개방적으로 협력해 급진화하는 청년 대중과의 소통과 공동 실천을 강화한다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이 계급적 각성의 급진적 정서에도 부합하며, 정치적으로도 더 급진화시킬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지해 선출한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든 나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든] 그런 대중행동으로만 개혁을 성취하고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68호에 실렸다. ☞ 바로 가기

※ 서울시장 재선거 과정이나 박원순 시장 선거운동, 그리고 안철수 현상에 관한 내 논평은 이전 포스트를 보세요. 

 
  1. 박원순 선본은 나경원에게 역전당한다고 경고등이 켜진 시점에서 노조들과 협약을 맺었다. 민주노총은 우리는 박 선본의 집토끼가 아니라며 협약을 해야 선거운동과 조합원 투표를 조직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본문으로]
  2. 이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이 흐름의 현재 정치적 수렴점은 NGO·의회 개혁주의로 보인다. 일부에서 민주노동당 대표냐, 야권연대당 대표냐 하는 비판을 듣는 이정희 대표가 당 바깥에서 인기가 높은 것도 이정희 대표가 상징하는 포지션이 여기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수렴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3.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 이 약돠되지 않았다면, 정치 지형상 급진화 속도는 더 빨랐을 가능성이 높다. [본문으로]
  4. 민주당도 출마한 두 곳에서 민주노동당 등과 단일화해 나갔으나 4퍼센트, 8퍼센트를 득표했다. 경기도지사 선거 때부터 보이는 참여당의 득표력 부진은 회복 기미를 찾기 힘들다. [본문으로]
  5. 어떤 이들은 본류로 보기도 한다.참여당 지도부가 주로 노무현 정부의 친위 정치인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통합연대가 최종 결정한 결정문의 문구로만 봐서는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에 찬성했다고 보긴 어렵다. 약간 섣부른 비판이었다. [본문으로]
  7. 더 멀리 가면 2008년 촛불항쟁도 그럼 흐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8. 다른 야당과는 필요하고 서로 의견이 같은 쟁점에서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사안별 연대를 하면 된다. 통합과 사안별 연대는 다른 문제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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