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하 대화록) 공개가 정권 연장과 정권 안보를 위한 총체적 정치 공작의 일부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26일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대화록을] 까겠다’고 한 권영세의 지난해 1210일 발언이 폭로됐다. 권영세는 당시 박근혜의 대선 캠프 종합상황실장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당시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김무성이 비공개 당내 회의에서 “원문을 보고 내부에서 회의도 해봤[] … 공개하려고 했[]”고 말한 사실이 유출됐다.


실제로 지난해 1214일 부산 유세에서 김무성은 “노무현 김정일 간 대화록을 최초로 공개하겠다”며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에 있는 내용을 주욱 언급하고는 ‘친북 좌파세력이 정권 잡는 것을 목숨 걸고 막자’고 호소했다.


그런데 대화록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관리하는 국가기밀이다. 기밀문서를 새누리당 민간 정치인들이 알고 폭로를 검토했다는 것 자체가 새누리당―국정원 커넥션의 방증이다.


이 때 국정원장은 이명박에게 꾸준히 단독 보고를 했던 원세훈이었다. 권영세, 김무성 등 측근들의 계획이나 남재준의 대화록 공개를 박근혜가 몰랐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김무성이 예전에 발설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하극상, 색출, 근절’이라는데 말이다.


이번 대회록 공개를 다룬 <동아일보> 26일치 보도를 봐도,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도 회의록을 국민께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국정원과] 같았다 … 우리가 자신감이 없었다면 공개했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연이은 폭로로 첫째,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선거 개입의 몸통이 박근혜(와 이명박)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둘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이에 대한 정부와 검·경의 비호, 대화록 공개와 NLL 색깔론이 처음부터 한 몸통이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셋째, 저들은 이런 총체적 사찰과 공작에 바탕한 종북 몰이 공안 탄압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새누리당과 주류 지배자들은 우파 정권을 연장하고 장기 집권하려고, 국정원 같은 보안 사찰 기구를 틀어쥐고, 국내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을 사찰하며 정치 공작을 주도해 왔던 것이다.


원세훈 시절 국정원의 진보진영 사찰과 정치 공작은 이미 폭로된 바 있다. 그 일부가 대선 전 청와대의 사찰 의혹으로 드러났고, 또 다른 일부가 올해 국정원의 무상급식 등 공작 문건 폭로로 드러난 바 있다.


현 국정원장 남재준도 이런 공작정치를 ‘대북 심리전’이라고 정당화했다. 국민의 절반을 종북으로 몰면서 전쟁을 벌여 온 자들이 이 더러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국정원의 진보 운동 사찰과 탄압이 이어지고 있다. YTN의 기사 검열과 보도국 회의 사찰 사실이 최근 폭로됐고, 인하대에서는 시국선언을 사찰한 것도 새로 폭로됐다.


이제 ‘국정원게이트’는 새누리당의 장기 집권을 위해, 전현 대통령을 포함해 새누리당―국정원―검·경―조중동 등 주류 우파가 총단결해 벌인 초법적 정치 공작에 관한 의혹이 됐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색깔론, 우파 결집, 진보 분열이 이들의 노림수였던 것이다.


비상 계획


한편, 폭로된 대화에서 권영세는 “[대화록 공개는]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컨틴전시플랜(재난 따위의 비상 사태에 대비하는 장기 계획)”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비상계획은 박근혜가 어려울 때마다 가동돼, 동요하는 우파를 결집하고 색깔론으로 반대파를 분열·약화시키는 구실을 해냈다.


첫째, 지난해 108일 정문헌이 NLL 대화록 문제를 처음 꺼냈을 때는, 박근혜가 곤경에 처해 있던 시점이었다.


박근혜는 9월 초 ‘인혁당 사법 살인이 옳았다’는 식의 발언으로 역풍을 맞았다. 결국 고심 끝에 사과 아닌 사과를 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박근혜 필패론’이 부상하면서 곤경에 몰렸고 결국 107일 측근 실세 최경환이 후보 비서실장에서 사퇴해야 했다.


결국 대화록 공개 협박과 색깔론 공세로 우파 내부 동요를 단속하고 민주당과 안철수는 애국과 반공 프레임에 가둬 놓을 수 있었다.


둘째, 김무성이 부산 유세에서 대화록 내용을 공개한 1214일은, 인터넷 여론 조작에 동원된 국정원의 실체가 폭로된 직후였다. TV 3자 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에게 맹공을 당한 후 젊은층이 움직이면서 박근혜가 위기를 겪던 시점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미 이때부터 대화록은 국정원 선거 개입 물타기용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박근혜는 이런 과정들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비상계획이 작동될 때마다 박근혜는 직접 나서 그 효과를 극대화해 왔다.


10월 정문헌의 발언 이후 “도대체 2007년 정상회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다는 것인가” 하며 대화록 공개 여론에 불을 지폈다. 12월에는 종북 좌파에 정권을 맡길 수 없다는 색깔론 공세에 NLL 발언을 이용했다.


이번 대화록 공개 직후에도 박근혜는 “NLL은 젊은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 … 피로 지킨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국정원을 비호했다.


기껏해야 원세훈과 이명박의 커넥션 정도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 박근혜 몸통론이 등장한 것도 바로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법무장관 황교안이 원세훈을 비호하며 검찰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면서 원세훈이 불구속 처리되고 [심지어 제보자는 기소됐는데] 동원된 국정원 직원들이 전원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국정원을 국정조사해 몸통을 밝히라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한 것이다.


620일부터는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대학가에선 학생의 시국선언이 번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확대되고 있다표창원 씨가 주도한 국정조사 청원 인터넷 서명에는 며칠 만에 1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이런 위기에서 세 번째로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가동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다그러므로 국정원 게이트의 본질이 민주당의 매관매직 의혹이라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어처구니 없는 적반하장이다.


애국?


NLL 발언으로 종북 마녀사냥과 애국주의 구도로 가려는 것은 저들의 자신감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위기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면서 스스로 통치의 정당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배계급 주류의 성마른 위기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한데, ‘금도’를 넘어버린 투쟁은 박근혜의 정치 위기를 한층 더 불안정한 상태로 내몰고 있다.


따라서 대선과는 달리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실정의 책임을이명박이나 노무현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권의 최고 책임자는 박근혜다.


그때와 달리, 경제 위기 조짐도 커져 왔고, 정치 양극화도 더 깊어져 왔다. 이 때문에 초유의 임기 초 위기를 겪었고, 이 속에서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 자신감이 조금씩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을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도 슈퍼 갑들의 대변자인 박근혜를 곤혹스럽게 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임기 초에 민영화 등 개악 의제를 밀어붙여야 할 박근혜에게 조직 노동자들의 사기 회복이나 을의 분노는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대기업 사정을 하는 쇼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를 달래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쇼는 지속될 수 없다. 여기에 국정원의 불법 정치 개입 몸통 의혹이 커지면서 박근혜는 또 다시 우파를 결집하며 종북 몰이 색깔론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화록 공개 협박에 움찔하며, 그럴 리가 없다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올해도 국정원 몸통 의혹에 물타기하려고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하는 것이 명백한데도, 노무현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대화록 공개에 손을 들어줬다.


이런 탓에 새누리당의 의도대로 우파는 결집한 반면, 왼쪽에선 그와 맞먹는 결집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이 휘둘리고 안철수가 침묵하는 가운데, 존재감이 약해진 진보정당의 목소리도 영향력이 미약한 실정이다.


지금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색깔론 총공세로 우파 결집과 진보 분열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철도 노동자들이 박근혜에 맞서 민영화 반대 파업을 준비하고 있고, 박근혜 규탄 시국선언이 번지면서 촛불집회도 당분간 이어질 기세다따라서 우리 운동은 시기를 집중해 대중 행동으로 왼쪽이 결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운동의 요구는 이번 국정원 정치 개입과 대화록 공개의 몸통인 박근혜를 정확히 겨냥해야 하고, 박근혜와 맞서야 하는 더 많은 세력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민주당처럼] NLL 영토 논리와 색깔론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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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12월 20일 연평도 포격 훈련을 강행하며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영토방위를 위해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북한 정부는 “남조선 괴뢰들이 떠드는 ‘북방한계선’은 쌍방 아무런 합의 없이 생겨난 것으로 ‘정전협정’은 물론 … 괴뢰들 자신의 ‘해양법’에도 어긋나는 유령계선”이라고 주장했다.

1999년 제1차 교전을 포함해 세 차례 벌어진 서해상 교전은 모두 NLL(북방한계선) 남쪽 인근 해역에서 벌어졌다. 서해상 군사 위기에서 NLL은 남북간에 큰 쟁점이다.[각주:1]

그런데 NLL은 남한 호전파들의 주장과 달리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경이 아니다. 오히려 ‘남한 해군의 북상을 막으려고 미국 정부가 그은 선’이다.

△ 서해 5도를 빼면 한강 하구의 두 선이 겹치는 부분만 정전협정 때부터 합의된 유일한 서해의 영해선이다.



1953년 휴전 협상 당시 이승만은 휴전에 반대해 북진 무력 통일 주장을 고수했고, 해군을 동원해 황해도 연안을 계속 군사 공격했다. 이런 이승만을 막으려고 미국 정부는 유엔사령관을 통해 NLL을 발표했다.

당시 한국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한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의 호전성을 우려해 반(反) 이승만 쿠데타까지 모의할 정도였다.

그래서 미국 정부도 이 선을 해양 국경선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 연평도 남북 포격 사태 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이 ‘NLL을 북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남쪽으로 변경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베트남전을 주도했던 미국의 전쟁광 헨리 키신저마저 외교 문서에서 “NLL은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 국제법과 미국법에 배치된다”고 말했던 것이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각주:2].

남한의 우익들이 NLL의 효시라고 내세우는 클라크 라인은 한국전쟁 당시 ‘해상 봉쇄선’으로 영해선과는 다르다. 더구나 유엔의 국제 공인을 받지 못해 미군 스스로 1953년 8월에 철폐한 선이다[각주:3]

그래서 북한 정권은 NLL을 국경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1956년부터는 해마다 NLL을 넘으며 불인정 의사를 드러내 왔다. 더구나 서해 5도는 남한 영토보다 황해도 연안에 더 인접해 있어서, 백령도(천안함)나 연평도(포격훈련)에서 벌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북한에 실질적인 군사 위협이 된다.

그래서 북한은 1977년에 서해 5도 이남에 자체 군사분계선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선도 NLL처럼 근거 없긴 마찬가지다.

1953년 정전협정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상호 합의한 군사분계선만 인정한다고 한 바 있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는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해 합의한 경계선이 그동안 없었음을 분명히 했다. 이 말은 우익인 노태우 정부도 NLL이 국경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주권 행위” 운운하며 위협적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미국이 이를 응원한 것은 전혀 명분이 없는 짓이다.

사실 NLL의 진실을 이해하고 나면 연평도 포격 사태의 본질이 ‘남북 상호 포격 사태’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휴전선 남북의 두 사고뭉치 정권은 평화와 한반도 민중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자존심 대결을 지속하고 있다.
바다 위에 멋대로 선을 그어놓고 자칫 국지전을 불러올 수도 있는 군사적 위협 행위를 반복하는 일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아무튼 휴전선 남쪽에 있는 정권이 NLL 문제에서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사고뭉치 정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이 글은 다듬고 약간 축약해 <레프트21> 47호에 기사로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 더 상세한 내용을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故 리영희 교수의 명저 <반세기의 신화>를 참조하세요.


  1. 12월 20일 상황을 두고 북한의 외교술이 이겼고, 남한 정부가 고립됐다는 평가도 있던데 이것은 단견이다. 북한이 굴욕을 당한 것이고, 한미동맹의 압박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여 준 것이다. [본문으로]
  2.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 언론들이 12월 중순 일제히 보도했다. [본문으로]
  3. 故 리영희 교수의 저서 ‘반세기의 신화’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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