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올해 메이데이에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선언할 예정이다.

△1997년 1월 대중파업으로 정리해고법과 반민주 악법들을 철회시킨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한동안 한국 정치의 주역이었다. 이 때 얻은 정치적 자신감과 교훈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어졌다.

민주노총이 발행한 “2011년 정세와 투쟁” 교안은 이 과제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노동조합이 단위사업장의 근로조건 개선 등 경제투쟁을 뛰어넘는 …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해 나가는 정치적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자신만의 고용에만 안주하고, 통장에 남은 잔고만 바라보는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정당을 통해서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 정당에 의존해서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깨달음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그 가운데 대중적으로 성공한 첫째 시도가 2000년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한때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며 약진하기도 했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분열했다.

다수의 현장 조합원들은 진보정당이 단결해 세력을 키워서 노동자 투쟁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민주노총의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진보대통합’을 뜻하게 된 이유다.

이 점에서 일부 급진좌파들처럼 진보대연합을 지지하지 않거나 냉소적인 것은 잘못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왜 난관에 부딪쳤는가

민주노동당은 2004년 4월 총선 때 노무현 탄핵 반대 투쟁의 열기 속에서 의원 열 명을 당선시키며 약진했다.

2004년은 파병반대 운동, 비정규직 투쟁,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 대중운동이 활발한 시기였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런 투쟁들을 확대ㆍ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의회 안에서 열린우리당과의 공조에 더 매달렸다. 자주파와 평등파 지도자들 모두 이러한 방침을 추구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아예 우경화해 2005년에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고 2006년에 한미FTA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양극화는 심화했고, 비정규직은 늘어만 갔다.

문제는 이에 맞서 투쟁과 대안을 건설해야 할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을 회피하려고 비정규직 투쟁 등 단결된 투쟁을 외면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는 비리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대체로 정파를 가리지 않고) 이런 노조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투쟁을 호소하는 대신 침묵했다. 게다가 “정규직 이기주의론”에 굴복하는 사회연대전략 같은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각주:1]

그것은 오히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을 모두 겨냥한 우파의 공세에 힘을 실어줄 뿐이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과 우경화에 실망해 왼쪽으로 이탈한 대중을 민주노동당은 흡수하지 못했고 민주노총의 선진 조합원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줬다.

진보정치의 위기에는 주요 지도자들의 온건한 개혁주의 전략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집권당을 대체할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중의 환멸을 기회 삼아 이명박 같은 우파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심상정 전 의원 등은 ‘민주노총당’, ‘데모당’이 문제라며 민주노동당을 더 온건화시켜 이 상황에 대처하려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당원을 제명시키려고도 했다. 원인과 해법이 어긋났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대가를 치렀다.

다함께 등의 좌파가 이 잘못된 시도에 맞섰지만, 끝내 민주노동당은 분열했다. 분열의 결과로 진보 양당이 모두 약화됐고 어느 정도 더 온건해졌다.

그래서 현장 조합원 다수가 진보진영의 단결을 바라지만, 한편에선 불신도 있다. 현대자동차 정동석 조합원은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 구청장을 노동자들이 계속 밀어줬는데,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 진보대통합에 기대감은 있지만 열정적이진 않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따라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대중적 정치투쟁 방식으로 단결을 추구해야 노동자들의 사기와 신
뢰를 높여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반MB 범야권 연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명박 정부 아래서 벌어진 부자 감세, 기업 특혜,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 물가와 전월세 폭등, 노동운동 탄압 등 때문에 수많은 노동 대중이 고통받고 분노하며 싸우고 싶어 한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이들의 ‘반MB’는 기본으로 ‘반정부’를 뜻한다.[각주:2]

문제는 이것이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반MB’ 민주연합(범야권연대)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등은 진보대연합 이후에 민주당과 선거연합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심상정 전 대표는 나아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까지 얘기한다.[각주:3]

그런데 현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꼭 민주대연합이어야 할까? 그것은 ‘반자본주의’를 위해 ‘반MB(반정부)’를 기각하자는 급진좌파 일부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논리 비약이이다. 둘은 같지 않지만, 대립된 목표가 아니며 결합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반MB 정서는 모순적이다. 그것이 대체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대연합 지지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그 이면에는 민주당을 향한 불신이 배어 있기도 하다.
민주당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들과 연합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그 정서는 왼쪽으로 향하는 점도 있다. 그 점에서 정치인들의 민주대연합 노선과 대중의 정서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

그래서 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처럼 ‘반MB’를 단순히 ‘민주당 지지 정서’로 낮춰 보면 올바른 전략·전술을 내놓기 어렵다. 일부 급진좌파처럼 외부에서 기존 진보정당들을 비난하기만 하면, 아직 좌파를 지지하진 않지만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울 의지가 있으며 왼쪽으로 향하는 대중을 오히려 민주대연합 노선에 내맡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래서 진보의 단결이 필요하고, 특히 단결된 대중투쟁이 중요하다. 1997년 1월 노동법·안기부법 철회 파업 때처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청소 노동자 투쟁이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쌍용차·한진중공업 등 정규직 파업 등은 전투적 투쟁 자체가 옛날 얘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줬다. 열쇠는 지도부가 민주노총 차원에서 전(全) 계급적인 연대 투쟁과 파업을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다. .


문제는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연합을 하려 하면 할수록 이명박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는 데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 연합해 진보 개혁을 이룬다는 노선은 자본가들과 타협해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반영인데,
지금처럼 경제 위기 상황에선 자본가들도 이윤과 지배력을 보존하려고 매우 거칠고 무자비하게 나온다.

그래서 단호한 투쟁과 반자본주의 대안이 필요할 때,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은 요구와 강령을 낮추고 투쟁을 자제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각주:4] 그것이 비록 단기적으로는 선거에서 성과를 줄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즉 계급정치의 잠재력을 갉아 먹게 된다.[각주:5] 


예컨대, 전북 버스 노동자 투쟁에서는 민주당이 지역 자본가들 편을 들고 있는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당을 날세워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KEC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민주당과 진보정당 의원들이 함께한 의원 중재단이 투쟁을 자제시키는 구실을 했다.[각주:6] 

이런 상황에서 국민참여당이 진보대통합연석회의에 참가하겠다고 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촛불을 통해서 정치사회에 새롭게 뛰어든 시민들”(이학영)인 국민참여당 당원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국민참여당이 실시한 1월 초 온라인 조사에서 당원 67퍼센트가 자신을 ‘대체로 진보’라고 했고, 75퍼센트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복지 이념으로 골랐다.

그럼에도 그 당의 강령과 핵심 지도자들의 정치가 친자본주의적 자유주의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대체로 ‘제3의 길’ 정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이 당을 진보대통합에 포함시키기보다는 실천 속에서 이 당의 한계와 불철저함을 진보적 대중 앞에서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진보대연합을 건설해 국민참여당에 호감을 갖는 진보적 대중을 끌어당겨야 한다.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패권주의 문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도 진보대통합의 주요 쟁점이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종북주의’ 비판은 색깔론과 유사하며, 단결을 하려면 공통점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종북주의’ 용어는 마녀사냥 느낌을 주는 잘못된 용어다.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의 주범인 미국 제국주의보다 북한을 주되게 비판ㆍ반대하는 것도 균형 잡힌 태도가 아니다. 또 북한 지배자와 남한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일부인 자주파 동지들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핵에 철저하게 반대해야 하는 진보의 원칙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나 핵개발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체제에 반대한다고 남한 체제를 지지해서는 안 되지만, 남한과 똑같이 억압적 착취체제인 북한을 대안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이처럼 북한을 바라보는 견해 차이와 연립정부에 대한 찬반 등을 어물쩍 덮으며 민주노총 지도부가 세몰이 식으로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패권적 태도일 것이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지도자들은 패권주의를 반성한다고 말하지만 ‘묻지마 야권연대’ 추진 과정에서 당내 절차와 비판 의견은 패권적으로 묵살해 왔다. 그 점에서 오히려 진보대통합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런 견해 차이와 문제점들을 이유로 민주노동당 자주파와 연합하는 것 자체를 사실상 반대하는 진보신당 독자파 등의 태도도 적절하지는 않다. 급진좌파 일부처럼 진보대연합이 민주대연합의 사전단계라고 선험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도 지도부의 노선만 보고는 대중의 염원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래서 다함께와 <레프트21>은 진보대통합이란 이름으로 단일 정당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공동전선 방식의 진보대연합을 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각 정파가 독립성과 비판의 자유를 유지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강령 십수 개를 중심으로 단결해 대중투쟁과 선거 대안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치ㆍ문화적 차이와 오랜 갈등의 뿌리를 볼 때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단결 방식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급진좌파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대연합이 선거공학으로 기울어 민주대연합의 부속물이 되지 않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그것이 대중의 염원에 부응하면서도 진보운동의 좌파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 55호(발행 4.23/온라인 입력 4.21)에 실렸습니다. 바로 가기


  1. 이 전략은 상대적으로 평등파 지도자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이때부터 진보정치는 대중투쟁 대신 기업주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다수당 그리고 국가기구와 벌이는 정치협상을 주요 목표이자 수단으로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햇다. [본문으로]
  2. 이 반정부 정서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에 바탕한 반노동계급적 성격 때문에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본문으로]
  3.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여한 진보대통합 시민회의나 최근 모임을 만든 ‘진보의 합창’도 통합진보정당이 범야권연대나 연립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본문으로]
  4. 그 점에서 복지국가 강령으로 민주당과도 연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복지국가단일정당론’은 (진지하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전제에서) 공상에 가까운 목표다. [본문으로]
  5. 만일 민주당의 양보로 민주노동당이 선거에서 성과를 얻게 된다면, 그 성과를 유지하려는 관성과 이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이 스스로 옳았다는 판단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활동 폭은 더욱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즉,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더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개혁주의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변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6. 민주당은 최근에도 부자 감세의 하나인 취득세 인하에 합의했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직업안정법개악에 한나라당과 합의했는데, 민주대연합에 적극적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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