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진보진영은 국민참여당(이하 참여당)을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여겨왔다. 5·31 진보대통합 합의문이 “새로운 진보정당’이 보수세력, 자유주의세력과 구별되는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명시한 까닭이다. <레프트21>은 아예 자유주의적 친기업주 당이라고 규정했죠. 

반대로 참여당 통합에 찬성하는 쪽은 참여당이 5·31 진보대통합연석회의 합의문에 동의했으므로 이제 진보정치세력이라고 주장한다. 좌선회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통합에 찬성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로선 참여당을 진보로 규정하면, 당대회 결정 위반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있다. 6월 민주노동당 당대회는 “진보진영과 통합을 추진한다”고 결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우경화의 끝은 꼼수정치인지도 모른다. 
 
참여당 대표 유시민도 “합의서에 나오는 ‘자유주의 세력’은 민주당을 지칭하는 것”이라면서 합의문을 승인한 자신들을 진보대통합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시민 스스로 7월 19일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5.31 합의문에는 우리의 의견이 토씨 하나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불평했다. 중앙위원회에선 “[합의문] 동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형식에 불과하고, 일단 논의 자리에 들어가서 우리의 내용을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반대파를 설득했다. 진보대통합 합의문과 정면 충돌하는 자기 당의 강령을 손보지도 않는다. 뭘 동의하고 승인한 걸까.
 
최근 한 토론회에서 유시민은 스스로 차이가 많다면서도 통합하려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정권 교체라는 당면 목표’를 위해 “우리 모두 순진해질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차이는 묻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유시민 본인은 순진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인간이란 … 불안정하고 모순덩어리다. 국가권력을 두고 다투는 정치라는 사업은 그 속에서 하는 것이다. … 속으로 갑갑해도 뭔가 일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하면 자기 입장을 바꿔야 한다”(<레디앙> 2011.8.17)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입장을 바꿀 땐 명확한 해명과 단절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유시민의 좌선회는 전혀 기존 입장을 바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행보로 가득차 있다.


사람 헷갈리게 하는 FTA 찬반
 
2007년 “한미FTA는 체결했으면 한다. 정부 각료로서 … 경제학자로서 내 소신”이라던 유시민은 올해 7월 전국농민회총연합에 찾아가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한-미FTA를 그렇게 하자고는 못했을 것 … FTA 비준 문제도 우리 당은 이제 민주노동당과 함께 반대한다”며 사과했다.
 
그런데 사흘 뒤 참여당 대변인 이백만은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한미FTA는 “미국측이 큰 손해를 봤다면서 재협상을 … 강요할 정도로 떳떳한 협상”이었다고 논평했고 그 한 달 전 참여당 부설 참여정책연구원은 “FTA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미래의 진보> 북콘서트에서 유시민은 “[과거 잘못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제한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눙치는 발언을 했다. <미래의 진보>에는 FTA가 잘못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지난 봄 한EU FTA로 국회 로텐더홀에서 민주당을 뺀 야당이 농성할 때도, 이 농성에 참가한 참여당 최고위원 유성찬은 날치기에 반대하는 것이지, FTA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이백만의 논평에 유시민이 침묵한 것을 봐도, 참여당은 사실상 이명박 표 FTA만 반대한다는 것인데, FTA 자체를 반대하는 진보진영과는 여전히 견해 차이가 [참여당과 한나라당의 견해차보다] 크다.

이미지 출처: atopy님의 블로그. http://atopy101.com/entry/freetrick

 
 

아예 거짓말로 책임회피하는 영리병원

최근 한나라당은 영리병원 도입을 노무현 정부가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유시민은 “2006년 4월 중순 [자신의 건의로] … 정부에서는 영리의료법인은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후로 일체의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0064월 중순 청와대 관저에서 있었던 주요정책에 대한 긴급업무보고에서 제가 당시 장관으로서 영리의료법인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 국민보건이나 국가운영에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대통령께 말씀드렸”으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을 받아들여 “그 이후 정부에서는 영리의료법인은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후로 일체의 논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유시민 복지부장관은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것은 노무현이 그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의료 등 서비스 산업 중시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시장 도입의 방식으로 의료 등 서비스 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발상은 삼성경제연구소도 주장한 것이며, 이 발상이 고스란히 한미FTA 추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개정안에 관해선 내용은 그해 2월 23일 유시민의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수백여 사민사회단체들이 합동으로 발표한 성명서 일부를 인용해 보자.  

 
의료기관의 영리행위를 조장하는 조항을 끼워 넣은 것으로 독소조항이 삽입된 것  … ‘병원경영지원회사’ 설립을 포함한 의료기관의 영리성 부대사업을 대폭 확대하여 사실상의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 병원 간 인수합병을 허용하여 병원을 일반기업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 의료기관의 환자에 대한 유인알선을 허용하여 환자유치행위를 허용하고 민간보험사와의 가격계약을 허용하는 것 등이다. 참여정부가 추진해왔던 시장주의에 따른 의료의 상업화, 의료산업화정책의 종합판이 바로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 

이 법 개정 시도는 결국 이해당사자들까지 반발하면서 무산됐지만,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재추진했던 의료 민영화란 정확히 이 법을 다시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영리병원 관련해선 명백히 두 정권 사이에 연속성이 있을 뿐아니라, 문제의 2006년 4월 이후에도 유시민 본인이 영리병원 도입 시도를 했던 것이다. 이명박의 의료민영화는 수만 명이 온라인 명을 하는 등 반대 여론이 거셌다[각주:1].

그 뒤 노무현 정부는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 23일 국회 본회의에 민주노동당을 뺀 여야 합의로 경제자유구역 내 국내 자본의 영리병원 진출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반대표는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무소속 임종인 의원 뿐이었다. 유시민은 이날 국회본회의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

유시민은 2007년 대선 예비 후보 시절에 발간한 <대한민국 개조론>이란 책에서 의료산업 시장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런 발상이 노무현 정부의 핵심 플랜인 ‘비전 2030’과 연계돼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노무현 표 한미FTA도 일단 발효되면 경제자유구역 내 국내 자본의 영리병원 진출을 막을 수 없고, 이것이 의료보험 민영화로 가는 참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최재천조차도 2008년에 지적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뒤 경제자유구역 지정도 더 확대돼 왔다.
 
도둑이 뒷문으로 들었는데, 문지기가 앞문 막았으니 죄가 없다고 하면 누가 인정해 주겠는가. 참여당의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연결돼 있고, 유시민은 지금 명백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과거 행적을 거짓으로 감추면서 입장을 바꾸는 것을 누가 진정성 있는 좌선회라고 볼 수 있겠는가.


음주운전
 
그런데도 유시민은 자신들에 대한 신자유주의 규정에 반감을 드러낸다. “종북”, “빨갱이” 낙인과 같다는 것이다. “당시 정책 중 신자유주의 정책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다. … [그러나] 신자유주의 추종자라는 [규정은] … 아주 비민주적이다.”
 
술 먹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격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도 폈지만, 복지도 늘렸으므로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명박 정부도 신자유주의가 아니다. 그러면, 진보진영은 근 15년 동안 유령과 싸우고 있단 말인가.

이런 모순을 지적하며 참여당의 진보대통합 참여를 반대하는 진보세력에게 유시민은 “탐미주의적 열정”이라고 비꼬았다. “큰 불이 나서 난리인데, 좀 더 우아하고 고상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당이 진보대통합에 쉽게 끼지 못하고 “자존심을 굽히[는]” 정치적 비용을 많이 쓰고 있는 까닭은 본인 스스로 지적했듯이 참여당이 너무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5년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을 옹호하며 “[민주노동당과의 타협은]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왼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 타협의 정치적 비용이 민주노동당 쪽과 할 때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고 말한 바 있다.
 

계급과 국익

지금도 이백만은 한나라당에게 “지지층이 강한 반대를 하더라도 [한미FTA 등] 국가의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면 소신껏 추진했다. 이게 바로 ‘노무현 정신’”이라고 일갈한다. 유시민은 신자유주의 비판에 “대통령이 국민 일부에만 맞는 정책 패키지를 선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답한다.
 
이처럼 참여당이 계승하는 노무현 정신은 노동자·민중의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계급사회다. 계급 사회에서 정치는 어느 계급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익’ 정치는 모든 계급을 대변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가를 지배하는 세력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치가 변장한 것에 불과하다. 참여당이 친기업가 정당이란 건 그래서다.

가뜩이나 세계경제가 커다란 위기 속에서 그 지속불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는 때, 대중과 함께 
반자본주의 대안을 모색해야 할 진보정치세력이 자본주의를 수호하려는 [그래서 앞으로 계속 동요할] 친기업가정당과 당을 합쳐 공생 발전한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헛발질이다.  
 
지난해 참여당은 건강보험료를 보편적으로 인상해 보장성을 높이자는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조차 재정 안정성을 해쳐 국익에 역행한다며 비판하는 정책연구서를 낸 바 있다.

“일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하면 입장을 바꾸”는 유시민과 참여당의 실용주의 정치는 계급 기반과 득표 기반이 다른 엘리트 정치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참여당이 “자본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극복하며 … 초국적 자본과 재벌 등 모든 독점 권력을 반대하고, 노동자, 민중이 …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치권력을 수립하기 위한 진보적 대중정당”에 함께하겠다면서도, 강령에 “기업하기 좋은나라”, “군사력의 강화” 등을 포함하고 한미FTA를 여전히 지지하면서 민주노동당 노동정책을 “친노동·반기업”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이유다.
 
이런 당과 함께 정권 교체를 추진하다간 노동자들에게서 진보정치의 신뢰만 잃을 것이다.
  1. 당시 이명박 정부는 복지부가 나서서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해명했는데, 유시민의 해명과 비교해 보면 재밌다. 참여당과 통합이 한나라당 반대도 일관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고를 잘 새겨야 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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