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2월말 조합원 여론조사를 근거로 4·11 총선 정당투표에서 통합진보당에게 집중 투표하자고 결정했다. 
 
정당 비례 투표는 지지율만큼 의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지도가 더 높은 정당에게 집중 투표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비춰질 법도 하다. 특히 진보신당은 3퍼센트 득표 여부가 불확실해서 사표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유력한 정당을 지지해 키우지 않으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 대한 배타성(지지 배제)마저 무너져 정치적 실용주의가 만연할까 하는 일부의 두려움도 이해는 한다. 이석행, 이상범 같은 사례가 있기도 하다.  
 
이런 현실적 고려를 이해한다 해도, 진보정당이 둘로 나뉘고 재통합에 실패한 상황을 반영해 배타적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이 집중 투표 정당으로 특정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무리하고 위험한 결정이다.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통합진보당이 지지하는 야권연대 ‘단일’ 후보를 민주노총이 지지하기로 한 마당에 정당투표마저 진보신당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통합진보당을 배타적 지지 정당으로 결정한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물론 20만 명이 넘는 조합원에게 여론조사를 해서 결정하려한 것은 나름 이런 정황을 반영하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선거적 실용주의보다는 노동자가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 그 속에서 노동자 진보정치를 구현하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정신이다.(아래 박스 참조) 
 
상대적으로 지지가 적지만 진보신당도 민주노조운동에 기반한 진보정당이고 조합원 여론조사에서도 20퍼센트(약 4만 명)나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진보신당의 비례후보 1번은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신당 당원이거나 호의를 가진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다른 정당에 투표하라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이다.
 
이런 이유로 진보신당을 민주노총 지지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것은 불필요한 불신과 반목을 불러올 뿐이다. 이미 반대파에서 “ARS조사에서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표본을 취합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반목은 언론 파업 등에서 단결해 연대 투쟁을 건설하는 데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수 우파와 신자유주의 지지 정당을 지지 대상에서 배제하는 ‘배타성’은 유지하면서, 진보정당들(통합진보당·진보신당·녹색당) 가운데서 단위노조나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지지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도록 맡기는, ‘진보 다원주의’ 방침을 정당 집중 투표에서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민주노총은 중집의 통합진보당 집중 투표 방침보다는 ’배타적 진보 다원주의’로 단결을 유지해 당면한 투쟁, 예고된 하반기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 단결한 정치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에 부차적인 선거 지지로 분열을 재생산하지는 말자. 


잠시 이 시대에 필요한 진보정치의 재구성에 관해 살펴 본다. 

내가 보기에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출발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치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독자적 선거정당은 그런 정치투쟁의 논리적 결과물인 것이다. 

이런 해석이 다소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진보운동의 문제가, 이상이 넘쳐서인지, 이상을 더는 추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인지는, 최근 통합진보당의 난맥상이나 민주노총의 어려운 처지를 보면서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글을 보시오. ☞ 바로 가기)

일부는 최근 통합진보당의 혼란상을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패권주의 문제로 덮어버리려는 듯하다.

그러나 
 패권주의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패권주의가 무엇을 밀어붙이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묻지마 야권연대’로 드러나는 인민전선 전략을 밀어붙이면서 진보정치의 정책과 가치, 원칙, 투쟁을 우경화시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런 면에서 나도 이정희 대표가 잘못했고, 후보 사퇴를 해야 한다고 보지만, 득표에 해가 되기 때문인 것은 부차적인 이유라고 본다.

야권연대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헛소리다. 민주당의 과거를 뒤지지 않더라도 지금의 공천과 정책, 단일화 경선 불복 사태를 보면, 이런 당과의 ‘묻지마 단일화’ 자체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진보정당 죽이기라는 우파의 공격(민주당 길들이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궁극으로 의회주의(선거와 의회 입법 협상을 정치의 전부로 보는 경향) 경향, 의회주의를 강화한 야권연대 우선 노선이 결합하면서 강화된 당선제일주의가 진보의 가치(와 기준)를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수준으로 타락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 선본의 잘못은 잘못된 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꼼수를 쓰려 한 것, 그것을 피장파장론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무뎌진 진보의 도덕성에 대한 감수성에 있었던 것이다. 후보 사퇴는 이를 바로 잡는 수순의 출발점일 뿐이다. 

그런 원칙에 찬 결기가 있어야, 진정으로 우파의 진보정치 죽이기에 계속해서 강단있게 맞설 수 있고, 설사 당장 뒤로 밀리더라도 버티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명분이냐, 실리냐 하면서 잘못된 선택지를 제시하는데, 가진 걸 지키려고 하는 보수정치는 그런 구분이 있을 수 있어도, 맨손으로 출발하는 진보정치에게는 명분이 곧 실리다, 즉 명분을 잃으면 실리도 없다.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잃고 지키는 실리의 실체가 뭐겠는가. 그것은 굴복이고 배교다.

경제 위기가 지속하고 제국주의간 갈등이 표출되는 이 시대에 진짜 필요한 것은 국제적·전국적 시야에서 포괄적으로 사회 변혁을 이상과 목표로 추구하는 계급투쟁의 정치학이 아닐까. 

원인의 결과적 현상인 빈곤과 실업에 관해 대증적 요법인 복지 확대에 머물지 않고, 자본주의 계급사회라는 근본 원인을 정직하게 알리고,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 정책을 시기에 맞게 적절하게 내놓는 그런 정치 말이다. 

국가의 군사화(제주 해군기지)에 맞서 단지 군인과 경찰 폭력으로 뒤덮인 ‘절차’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군사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할 줄 아는 그런 정치 말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투쟁하는 진보정치, 즉 계급투쟁의 정치학을 추구해야 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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