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선거의 특징은 새누리당과 야권연대로 표의 좌우 양극화 현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선거와 달리 무소속 당선자가 거의 없는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새누리당이 선전한 결과 이면에는 다른 우파 정당들의 희생이 있었다. 야권연대에 참여하지 않았던 진보신당도 몰락했다. 
실제 전국 범위에서 정당비례나 지역구 득표수를 따져 보면, 새누리당과 야권연대 표가 얼추 비슷하거나 야권연대 득표 총합이 살짝 앞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지역별로는 편차가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는 민주당의 말바꾸기, 진보적인 듯하나 속내는 그렇지 않은 점을 이용해 과거 민주당 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들을 되살린 것이다. 또 통합진보당을 색깔론으로 공격해 反새누리 표를 분열시키려 줄기차게 시도했다. 

결국 민주통합당의 약점이 박근혜의 술책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선거판이 더러워지고, 민주당의 대안적 매력을 못 주고 노무현 향수에만 의존하는 듯하자, 진보 성향 유권자 일부의 투표 참가 의지가 약해진 듯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명박근혜의 당이 싫어서 투표하려는 것인데, 별다른 비전을 못 보여주니 말이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은 한나라당이 해체 위기까지 몰렸을 때 거리의 한미FTA 반대운동과 통합진보당을 배제하면서 양당 구도를 복원해 주고, 양당 구도 아래서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멍청한 전술을 썼다. 

정권심판론의 진정한 동력은 거리에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反우파 투쟁이었는데, 이 투쟁의 섟을 죽이니 우파의 사기만 올려줘 우파 결집을 막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민주당 관점에서 보면 자업자득이다

야권연대 덕분에 18대의 참패를 상당히 만회했는데도,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사실상 진 선거라고 보는 이유다. 

야권연대의 일부였던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대 의석을 얻고 제3당으로 부상했는데, 反새누리 야권연대 지지 세력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정당의 지지가 성장세에 있다는 걸 보여 줬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엄청난 색깔론 공격을 이겨내고 말이다.
양극화 추세 속에서 야권연대에포함된 진보정당이 약진하고, 새누리당이 약진한 상황은 이전부터 유력한 구도였던 反새누리非민주 정서의 오른쪽 정서에 공백을 만들었다. 친노가 밀던 문재인의 파괴력도 단기적으로 약화했다. 민주당 보수파는 대선을 위해서 다시 우클릭해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 만도 하다. 이 점이 내가 선거 직후 제기한 안철수 조기 등판 가능성의 전제다. 


※ 전국과 서울 득표 비교는 선거 직후 쓴 내 글의 표를 참고하시오. (바로가기)


2. 박근혜당의 과반 확보는 중도층 흡수나 민주당 지지율을 뺏어온 결과가 아니다.  

사회 전반이 보수화해 우파 지지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우파가 위기감 속에서 색깔론, 안보 위기론, 지역주의 등을 동원하며 결집한 결과다. 즉 이전 선거들과 비교하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다른 우파 정당들을 잡아먹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우파 정당들의 득표 추이를 살펴 보면 드러난다. 

우파가 완전히 찌그러든 채 선거를 치렀던 17대 총선(2004)에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정당 득표를 더하면, 820만여 표가 나온다. 우파가 득세했던 17대 대선(2007)에서 이명박 혼자만 1천149만 표를 얻었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642만여 표를 얻었고, 여기에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를 더한 우파 3당의 정당 득표는 985만 표였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당이 얻은 전국 정당 비례 득표는 912만 표였고, 자유선진당을 더하면 우파 2당의 득표 합계는 981만 표다. 

새로운 표의 확장은 전혀 없었고, 우파를 초결집한 결과인 것이다. 반대로 야권연대 두 정당들의 정당비례 합계는 997만여 표다. 지역구 득표수도 야권연대가 전국적으로 더 많다. 

이 점에서 박근혜의 승리는 지역주의 등을 자극하고, 민주당의 자체 삽질로 얻을 걸 못 얻은 결과로 생긴 불안정한 어부지리다. 

박근혜가 잘 한 것은 우파 결집+민주당 약점잡기였다. 박근혜의 비MB 차별화는 이명박에 실망해 사기저하한 우파와 보수적 대중을 다잡았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선거 승리로 이명박 책임론을 통한 이명박 제거 기회가 유보되면서, 여전히 이명박과의 단절 문제라는 아킬레스 건을 지니고 가게 됐다. 또 박근혜 개인으로나,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는 수도권과 중도층으로 표의 확장성이 없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지금 박근혜는 이명박과 차별화도 해야 하지만, 우파 결집도 유지해야 하는 모순에 처해 있다. 




3. 서울을 보자. 2007년 대선에서 우파 후보인 이명박(약 269만 표)과 이회창이 서울에서 얻은 표는 무려 330만여 표다. 

그것이 이듬해 총선에서 우파 정당들이 얻은 정당비례 득표는 203만여 표로 추락했는데, 여기에는 투표율 저하와 함께 ‘고소영’ 등으로 반감을 사기 시작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서울을 주무대로 벌어진 3개월 간의 촛불시위의 조짐을 보였다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야당의 득표율이 더 추락해서 서울에서 의석 다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우파2당이 얻은 정당비례 득표도 203만여 표다. 그럼에도 의석 분포가 역전된 것은 그 반대편 정당들의 득표가 4년 전과 비교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나라당과 야권연대 후보로 표의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첫 전국 선거인 2010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은 208만 표를 얻었다. 여기에 자유선진당 지상욱 표를 더하면 214만 표가 된다. 당시 두 당의 서울광역 정당비례는 195만여 표(44%)였다. 

무리한 주민투표 실패와 후보의 각종 부패 혐의로 패색이 짙던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선 나경원이 186만여 표를 얻었다. 참고로 16대 대선(2002)에서 이회창이 얻은 서울 표가 244만 표였다. 우파가 찌그러진 17대 총선(2004)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얻은 정당 득표는 175만 표였다. 

결국 이번 서울에서 박근혜당이 얻은 것은 나경원 선거 때 사기저하로 분산된 우파 표를 재결집해 2008년 수준으로 복원한 것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통합진보당은 [사전 여론조사 단일화를 통해 민주당을 이기고 올라가거나, 민주당 탈당파와 겨뤄] 최초로 지역구 두 석을 얻었고, 서울에서 정당비례득표 48만여 표(10.56%)를 얻었다. 여기에 진보신당 정당비례를 더하면, 55만여 표(12%)가 된다. 

민주통합당은 이번에 서울에서 정당비례로 175만여 표를 얻었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 서울광역 정당비례보다 4만여 표 줄어든 결과다. 

당시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을 모두 더한 표가 55만 표였다. 이중 참여당 지지표가 분산한 것을 고려하면 성장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성적표는 단일 진보정당으로 출마한 17대 총선(2004)의 민주노동당이 얻은 역대 최대치 60만 표에 근접하는 수치다. 18대 총선의 민주노동당 13만여 표, 진보신당의 14만여 표와 비교하면 완연한 회복과 성장이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통합진보당 지지표를 계급투표와 무관하게만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이렇게 봤을 때, 서울에서는 2010년 이후 야권연대 소속 정당과 후보가 전반적 지지도에서 앞서고 있다는 특징이 이번에도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더 성장했다. 지역구에선 지지표 결집과 야권연대의 도움으로 지역구에도 교두보를 마련했다. 



4. 노동자 도시라는 울산을 보면 어떨까. [창원 성산구(옛 창원을 선거구로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는 명백히 진보정당 후보들의 득표 합계가 새누리 후보보다 높았으므로 진보정당 간의 반목과 분열 때문에 낙선한 것인데, 이를 통합진보당의 노동자성 후퇴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건 어처구니없는 아전인수 해석이다.) 

특히 진보정당이 구청장과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당선 경력이 있는 울산 북구와 동구를 보자. 

이 두 곳에서 통합진보당은 애석한 패배를 했다. 그런데 이곳들은 2008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했던 곳들이므로 당시의 민주노동당 후보 득표수와 비교하면, 좀더 선명한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18대 총선과 비교하면, 북구에서 2만 5천여 명, 동구에서 1만5천여 명의 투표자가 늘었다. 

동구의 이은주 후보는 늘어난 투표자를 모두 흡수했다. 북구에선 늘어난 투표자의 80%인 2만여 표를 흡수했다. 이것은 야권연대의 효과이기도 할 테고, 계급투표의 성장이기도 할 것이다. 

아쉽게도 북구에선 늘어난 약 5천 표가 양당 구도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가는 바람에 석패했고, 동구에선 새누리당 표가 18대 수준을 유지하는 바람에 석패했다. 

양 구에서 18대 총선과 비교하면, 동구에선 우파 정당들의 총 득표 합계가 새누리당으로 그대로 유지됐다. 북구에선 오히려 늘어난 투표자의 5분의 1인 5천여 표를 추가했다. 

울산 전체 정당비례로 가면, 18대보다 진보정당 합계는 1만 9천여 표가 늘어 8만 7천여 표(18.3%)었다. 통합진보당이 2만 5천여 표 늘었고, 진보신당이 6천여 표 줄었다. 득표율은 양당을 합치면 0.4% 줄었다.

2010년 지방선거와는 직접 비교하기 힘든데, 당시에 민주당이 울산에서 광역비례 후보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광역비례 후보를 낸 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의 정당득표를 더하면, 이번 선거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울산 북구로 보면, 18대 총선의 진보 양당 득표(1만 2천여 표+3천여 표)보다 통합진보당 득표만 4천여 표 늘었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을 더하면 18대 양당 합계보다 6천여 표 성장한 것이다. 득표율로 하면, 2% 하락했다. 예외로 볼 수 있는  2004년과 비슷한 수치다.

동구에선 18대 총선에서 약 9천 표+5천여 표이던 것이, 약 1만 6천 표+약 1천5백 표로 늘었다. 득표율로 하면, 그대로다. 2004년 2만 1천여 표보단 적다. 

이를 통해서 울산에선 투표의 좌우 양극화가 새누리당과 통합진보당으로 표현됐다. 두 구에서 통합진보당은 상당한 득표수 성장을 기록했다. 지역주의와 색깔론으로 무장한 우파 결집도 상당했던 데다가, 진보정당이 분열해 지지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석패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울산에서 통합진보다의 정당비례 득표수가 최대치인 2004년과 비교해 준 것은 주로 남구와 중구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예외적 최대치였던 2004년과 비교해도 울산 북구와 동구의 정당 득표는 거의 줄지 않았고, 이곳에서 진보정당 득표율 하락의 주요 양상은 진보신당의 지지율 대폭 하락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울산에서 진보정당을 향한 계급투표는 여전히 성장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울산의 선진노동자들은 두 선거정당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보고, 다수 속에선 통합진보당으로 쏠림 투표가 일어났고, 일부에서는 분열상에 실망해 기권한 듯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부는 통합진보당의 예비 후보로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이경훈이 나왔던 것 등을 이유로 투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듯하다. 

사실적 근거를 놓고 봤을 때, 일각의 주장처럼 진보정당을 지지하던 울산 노동자들 사이에서 계급투표 현상이 사라졌다거나, 크게 후퇴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찾기 힘들다. 

한편, 김창현 후보에 대한 상당한 우파적 색깔론 공격이 울산 북구에선 당선으로 가는데 큰 걸림돌이 됐을 거라고 본다. 후보가 조승수였다면? 그건 확답할 수 없다. 





5.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묻지마’ 야권연대는 문제가 있었다. 통합진보당으로선 어느 정도 우클릭을 감수해야 했다. 야권연대에 정신적으로 종속된 나머지 야권연대가 원내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자, 의기소침해져 민주당 일부 보수파의 진보정당과의 야권연대 무용론을 제대로 비판하지도 못하는 모순도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을 패퇴시키려면 어느 정도 진보적 후보들끼리의 선택적·제한적 야권연대의 불가피성은 인정할 필요도 있다.

또 묻지마 전면 야권연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선거에서 실리가 있었느냐 하는 것은 별개다. 전자는 가치판단 문제지만, 후자는 실증의 문제다. 그 점에서 통합진보당에게 야권연대는 확실한 선거적 실리가 있었다.

그리고 전면적·전략적 야권연대 즉 인민전선 전략의 약점은 계급 연합 때문에 노동계급의 투쟁이 발목 잡히는 데 있지, 선거 부진에 있지 않다. 이 둘을 구분 못 하고 비판하는 좌파는 오히려 ‘내 안의 선거주의’를 한 번쯤은 의심해 봐야 한다. (이 점에선 나도 선거 직후 불명료했는데, 득표 결과를 실증적으로 살펴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야권연대 때문에 통합진보당이 얻은 표는 단순히 민주당 표를 거저 먹은 것이라고 볼 수 있나.

이 질문의 경우, 한국사회 전체의 정치지형에서 진보정당의 입지를 판단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친북와 민주노총 꼬리를 약화시키려고 참여당을 포함한 통합으로 탄생한 당이지만, 다수 사람들에게는 민주노동당의 확장판으로 비춰졌다. 게다가 우익들은 통합진보당을 ‘종북’좌파로 줄기차게 공격했다.

그런 조건에서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 과정에서도 독자적 성장을 했다. 급진화 수준이 ‘민주당 왼쪽, 그러나 진보정당은 아직 아닌’ 수준이므로 야권연대로 反새누리 표가 결집하는 속에서도 진보정당이 성장한 것은 의미있는 성과다.
게다가 울산과 창원 등에서 절대 득표수가 성장한 것은 계급투표에 기반해 야권연대의 실리를 챙겼다고 볼 수 있게 한다.

일부에서 민주당의 보수적 지지층이 단일 후보라 할지라도 통합진보당 지지를 곳곳에서 거부하고 이탈한 마당에 통합진보당의 지역구 성적이 민주당과 직접 겨룬 호남에서조차 고루 올라간 것은 그런 해석이 무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6. 그럼에도 진보정당간 분열 때문에 창원과 거제처럼 당선이 유력한 선거구에서 패배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고 이는 앞으로 노동운동의 단결, 진보정치의 단결이란 과제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고 이를 야권연대 탓에 계급투표가 실종된 결과라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다. 통합진보당의 득표수 성장이나 진보신당의 몰락에서 보듯 사실이 이런 가설을 전혀 뒷받침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르주아 의회 선거란 어차피 주어진 선택지에서 고르기다. 통합진보당의 일부 우경화 행태나 ‘묻지마’ 야권연대에 반감이 있더라도 노동계급 운동의 다수를 대표하는 정당에 소극적으로나마 투표해서 전체의 이익 증진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별 차이도 없어 보이는 진보정당들’이 선거에서 분열하는 것은 바라지는 않는 것이다. 그게 투표와 관련한 노동 대중의 정서이기도 했다. 그것이 통합진보당의 득표수 성장과 진보신당 득표수의 추락으로 뒷받침된다.

그 점에서 야권연대 때문에 계급투표가 부진했고,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영남에서 몰락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통합진보당의 영남 노동벨트 당선 실패는 진보진영의 분열 때문이다.

이런 주장의 진위를 가리려고 더 살펴 본 울산의 선거 결과를 통해 통합진보당을 향한 계급투표가 여전히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필자들이 득표율을 놓고 대폭 지지 감소 얘기하는데, 선거마다 투표율이 다르므로 득표‘율’만 놓고 증감을 말하는 건 상황을 잘못 볼 수 있다. 득표‘수’와 득표율을 동시에 놓고 비교해야 한다. 전국 범위나 광역 단위로 볼 땐 정당비례도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통합진보당 지역구 후보들은 역대 최고의 득표를 기록했다.

민주당 표를 일부 흡수했다 해도, 이것은 상대적으로 지역구 지지세가 민주당보다 더 센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어진 계급투표가 지속됐다는 전제를 하지 않고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정세에 따른 증감이 그동안 있었는데, 실제로 역대 최고치이던 2004년의 정당비례와 비교해도 정당비례에서도 질적인 후퇴를 찾긴 힘들다.

총선 결과를 이렇게 해석하면, 우리는 여러 아쉬움과 조짐에도 진보정치의 성장 가능성을 정확히 볼 수 있다.. 일부 초좌파적·종파적 선거 결과 분석은 오히려 이런 긍정적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보수화 같은 잘못된 신화의 유포를 의도치 않게 도울 수 있다.

해적기지 발언이 문제가 됐다는 우파들의 해석도 우습다. 정치적으로 문제는 많았지만 어쨌든 해군기지 강행에 문제를 제기한 민주당이 제주에서 모두 지역구 당선했고, 제주기지 전면 반대를 내세운 통합진보당은 지역구 후보 하나 안 내고도 정당비례에서 자신의 정당득표 전국 평균보다 높은 12%를 득표했다.(여러 후보를 내고 선전한 2010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투표율이 줄었는데도 당시 민주노동당의 정당비례 득표 규모를 유지하면서 득표율은 상승했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득표수가 크게 하락했고, 참여당 지지표는 분산된 듯하다. 2008년과 비교하면, 통합진보당 득표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을 더한 것보다 많다. 이곳에서도 역대 최대치인 2004년 결과보다는 4천여 표 적다.)


7. 선거 결과는 좌우 양극화를 보여 줬고, 그 왼쪽 극의 다수당 실패는 민주통합당 중심으로 反우파 정권심판론을 다수화하기 힘든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진보정당 성적은 이를 대체할 가능성을 일부 보여 준 것이고, 이 잠재력은 제대로 된 투쟁을 건설할 때 현실적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통합진보당은 진보의 정체성과 노동 중심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 선거는 실제 계급투쟁의 한 시점과 한 단면만을 보여 줄 뿐이다. 

그러므로 선거 결과가 통합진보당의 오류를 다 덮어주는 것으로 봐선 곤란하다. 단지 객관적 조건이 비관적이지 않다는 걸 밝혀낸 것 뿐이다. 앞으로 야권연대로 얻을 민주당 보수적 지지층을 의식해 진보정치의 날을 무디게 하는 것은 패착이 될 것이다.

진보정당은 영남 진보벨트(또는 노동벨트)라 불리는 지역에서조차 당선 안정권을 고정표로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울산 북구에서조차 2000년 이후 구청장 포함 아홉 번 선거에서 4번을 이겼을 뿐이다. 충성도가 아직 다져지지 못한 지지층은 영남이라는 지역 특성상 지역주의, 색깔론에 흔들릴 수 있고, 정당의 실수, 후보의 선호도 등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다.

이는 진보진영의 단단한 결속과 노동중심성에 기반한 진보적 대안 추구, 투쟁 건설에 실천적으로 진지하게 임하기 등으로 정치지형 자체를 왼쪽으로 이동시키려 노력해야 진정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박근혜의 딜레마를 극대화하는 길은 이명박에 줄기차게 맞서며, 이들의 1% 정책에 도전하는 대중투쟁 건설에 전략을 다하는 길이다. 이런 투쟁이 국민적 지지를 얻을 때, 우파는 분열하게 돼 있다

이것 없이 선거공학적 야권연대에 매달리면, 이번처럼 오히려 보수대연합에 포위될 수 있다. 1988년 총선 이후 야권 주도력을 쟁취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당시 전투적 학생운동과 민주노조운동과 거리를 두며 이 운동들의 섟을 죽이고 이 에너지를 의회로 흡수해 자파의 입지 강화에만 이용하려 했고 진보진영이 독립적이지 못한 결과, 민자당이라는 보수대연합에 포위됐다가 결국 19915월 투쟁의 덕으로 간신히 숨통을 확보했던 역사가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