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좌우 양극화 투표 속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했다. 박근혜가 복지 약속 따위를 지킬 거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계경제 침체가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오는 상황에서 재벌, 고위관료, 조중동, 옛 군부세력 등 1퍼센트 반동적 지배자들이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똘똘 뭉쳐서 박근혜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한진, 쌍용차를 봐도 좌우 양극화 속에서 지배자들이 갈수록 참을성(인내와 양보 의지)을 잃어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그것이 유례 없는 보수대연합의 배경 아니겠는가.]


박근혜는 당선 기자회견에서국민대통합을 강조했지만, 당선 직후 그가 만나 감사와 축하 인사를 주고 받은 이들은 정몽구 같은 재벌 오너들이었다. 탄압과 장기 투쟁에 지쳐 목숨을 끊거나 지금도 철탑 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실 박근혜 정치 기반의 뿌리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이다. 정치 일선에 들어선 뒤에는 ‘TK+구 민정계+재벌+사학재단같은 반동적 기득권층이 그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2012년 시사만화가협회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시사만화상 우수상 수상작.


박근혜 정부에서 내각이나 실세로 중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군을 봐도이한구·진념·김광두·안종범 등 모두 강경한 신자유주의 우파들이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 면면도 [일부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마찬가지다.


이런 기반만 봐도 박근혜 당선은 명백히 친재벌 신자유주의(냉전주의) 강성 우파 정부를 예고한다국제적으로도 세계자본주의 지배자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직후 국가 개입과 경기부양에 돈을 쏟았지만, ‘긴축과 내핍 강요라는 신자유주의 기조는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파 결집을 추구하면서도 말은복지·경제민주화등 포퓰리즘을 앞세웠던 박근혜도 선거 막판에는내가 말한 경제 민주화는 [5년 전] 줄푸세 공약과 다르지 않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가 기본적으로 취할 방향은 분명하다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노동계급 생활수준을 공격할 것이다. 미국 중심의 친제국주의 정책도 유지할 것이고, 대북 문제 뿐아니라 국내에서도 냉전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저항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민주적 권리를 축소하고 사회 분위기가 오른쪽으로 옮겨가도록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성소수자, 좌파, 청소년 등을 마녀사냥하며 분열·지배 방식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시도 때문에 한동안 상당히 불편한 시기가 될 것이다. 


2013년 예산도 신자유주의적 균형예산 기조로 확정했다. 그러면서도 제주 해군기지 예산은 전액 보전된 반면, 학비 호봉제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군부는 박근혜 당선 직후 발간한 ‘2012 국방백서에 ‘NLL이 국경선’[각주:1]이라고 못박았다. 검찰은 해묵은 일을 끄집어내 국가보안법 마녀사냥도 다시 벌이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 사법부 등 국가기구에서의 우위를 이 과정에서 이용하려 할 텐데, 이는 우파적 반동 시도가 국가기구의 권위주의화 시도와 연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노동운동에게도 민주주의 쟁점과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반동적 성격과 의도를 밝히는 것이 상황이 그들의 뜻대로만 흘러갈 거란 뜻은 아니다. 어떤 행위주체도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의지만으로 세상을 주조할 순 없다.


지금껏 박근혜 정부와 지배계급의 반동화를 낳은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의지·방향을 살펴 봤으니,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의 반동성을 제약하는 조건을 따져보자. 첫째, 곧장 이 나라가 1987년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민주화의 핵심 동력인 노동운동의 조직과 의식이 [투지가 아주 높지는 않아도] 전반적으로 건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학자들의 허구적 과장과 달리 부르주아민주주의란 노동계급의 투쟁과 조직의 성장 속에서 확장돼 왔다.] 이런 힘이 유지되면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함부로 권위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박근혜 시대가 영국의 80년대로 가느냐, 한국의 80년대로 가느냐는 진보와 노동운동의 대응에 달려있다. 저들이 영국의 80년대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둘째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친기업 정책에 대한 반발로 복지 요구가 강해져 왔다. 박근혜가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교 무상의무교육 시대!” 같은 구호로 대선 현수막을 도배했던 까닭이다


또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이회창·이인제가 얻은 표를 모두 더하면 총유권자의 약 40퍼센트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이들이 모두 결집해 박근혜로 모은 표는 총유권자의 약 38.9퍼센트다. 우파 지지층이 크게 확장됐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한겨레>의 신년 여론조사에선 무려 60.1퍼센트가차기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를 묻는 질문에성장이 지연되더라도 복지와 분배가 우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5년 전보다 복지 응답은 늘고, 성장 응답은 줄었다[각주:2]더는 성장 담론이 예전처럼 일방적 우위가 아닌 것이다. 



이런 사회적 세력관계가 [격변에 가까운 사건 없이] 단번에 무너지진 않는다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장주의 같은 우파적 가치와 정책에 [이명박 초기보다도] 덜 우호적이고정치적 반대파도 더 강경하게 결집한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게다가 박근혜에겐 내핍 정책을사회적 타협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해 줄 정치적 완충지대 기반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명박조차도 [실패는 했지만] 한국노총 지도자들을 끌어들였는데, 박근혜는 그조차도 없다시피하다.
(※ 2015년에 필자의 추가 멘트: 노동운동 안에서 완충지대 기반이 거의 없다는 예측은 취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 보면, 다소 부정확했으며 기계적이고 일면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 노사정위원회에 한국노총이 포함돼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노동운동 안에서 상층 노조관료주의의 발전, 한국노총의 전통적인 보수파 지도자 집단의 구실은 물론이고 그들과 개혁파 지도자들의 관계, 그리고 민주당을 매개로 한 연결 고리 등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의 주된 통치스타일이 피억압 대중의 저항을 살살 달래기보다는 윽박지르는 강성우파 스타일일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틀린 것은 아니다. 또한 체제 위기를 과장해 민주당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저항의 무마와 위기 탈출에 써먹을 것이라는 예측도 옳았다는 것이 거듭 증명됐다.) 


‘강제’(채찍)와 ‘동의’(당근) 두 축에서 동의 없이 강제에 주로 의존하는 통치는 당장은 편한 듯 보여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는국민적 합의란 명분으로 각종 개악에 민주당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 의회 민주주의 자체가 하나의 완충장치이기 때문이다당분간 정치 쟁점과 사회적 의제의 우선순위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이데올로기 투쟁의 주요 무대가 국회와 공식 정치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거리 투쟁조차도 그 요구와 대상은 대체로 정부와 국회가 될 것이란 점에서도 더욱.)


민주당을 끌어들여 국회를 완충장치로 활용하려한다는 것은 국가기구의 권위주의화에도 명백한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넷째, 박근혜가 표를 위해 내놨던 포퓰리즘 공약을 거둬들이는 것은 자신에게 투표했던 일부 하층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후진 부위도 배신하는 것이다.


반대파가 완고한데, 정치적 완충지대를 못 갖춘 조건에서, 지지층이 이반하는 것은 재보선과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집권당의 안팎에서 상당한 긴장을 낳을 것이다.


정권을 잃을까 봐 뭉쳤던 보수대연합은 경제 위기 본격화 국면에서 민심 이반이 가중되면, 통치 방식을 놓고 분열할 수 있다. 궁지에 몰리면, 박근혜가 부패덩어리인 이명박 일당을 속죄양으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이런 분열이 상호경쟁적 부패 추문 폭로를 부추길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은 억눌리던 민중에게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3당 합당(보수대연합)으로 우파 정권이 연장된 경우였던 김영삼 정부와 집권당이 1997년 경제 위기와 노동자투쟁의 압력 속에서 분열한 것이 이런 사례다


박근혜 세력 자체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므로 부패 문제는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벌써 인수위원회 임명자들의 각종 비리 전력이 폭로되고 있다


바로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 ― 무엇보다 경제 위기라는 조건에서 나오는 상반된 압력 때문에 박근혜 세력은 인수위원회 인선 과정부터 최대한 말을 아끼며 신중하게 행보하고 있는 것이다.(조용한 인수위?) 박근혜 세력은 정치적 자본가로서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대중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도 어떤 복지는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다급하게 뻥카를 날리느라 재원 계획이 비어있다. 게다가 경제관료, 재벌들을 중심으로 긴축(내핍) 압력이 커지고 있다. 저들이 내놓을 복지란, 체제 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 위 사진처럼 사람들의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수준에 머물 것이다.



물론 이런 전망이 반동적 공세에 경계를 늦춰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객관적 조건은 모순된 압력을 낳고 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반동적 의지가 제약받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저항의 기세와 의지를 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테니 말이다


노조이기주의 담론, 종북 마녀사냥,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등 각종 소수자 공격 등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며 노동계급을 분열·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영국 총리 대처가 처음부터강성 노동운동을 진압한 철의 여인이었던 건 아니다전면적 저항을 피하려고 파업권 약화를 위한 법 개악도 집권 후 수 년에 걸쳐 단계별로 조심스럽게 추진했고, 인력 구조조정도 노동운동이 약한 부위부터 신중하게 시작했다


영국 노동운동의 핵심부대인 광원노조는, 이런 각개격파 속에서 어느새 고립됐고, 석탄까지 비축해 놓은 뒤 벌인 대처의 공격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주력부대의 격렬한 전투와 유혈낭자한 패배로 영국 노동운동 전반이 침체하게 됐다.


지금은 지배계급이 반동화하는 경제 위기의 시대이므로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야금야금 먹어오는 공격에 무신경하면 노동운동이 결정적 순간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각개격파 시도에 계급적 단결과 공동 대응을 추구해야 한다.  


요컨대, 객관적 조건만으로 유불리를 말할 순 없다. 주관적 의지와 단결 면에서 일단 저들이 한발 앞서 나갔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반동을 막고 그들 처지의 모순을 이용해 상황을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가는 조직 노동운동과 반우파 청년들이 투쟁 태세를 얼마나 잘 갖추고 단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활동가들에게 가장 나쁜 것이 비관주의에 빠져 우경화하고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면현실 직시를 회피해 적을 과소평가하고 단결된 방어 전선 구축에 소홀한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진짜 과제는 단결과 투쟁, 단호함을 얼마나 잘 촉진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물론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는 기업주들의 때이른 도발로 조직 노동운동의 한두 작업장 투쟁이 갑작스레 분출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임기초 주요 양상은 작업장 투쟁보다는 정치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미조직 청년들보다는 조직 노동자들이 먼저 각개전투를 벌일 것이다. 이런 투쟁들이 쉽게 이기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서 박근혜의 정치 위기 양상이 누적된다면, 국면은 점차 대중투쟁에 유리하게 바뀌어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일부와 엔지오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개혁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 주듯경제 위기 반동 시대에 개혁주의는 [노동계급을 투쟁 속에서 단결시킬 수 있는[각주:3]] 일관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급진좌파가 민주주의 쟁점을 포함해서 단결과 공동 대응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독자적 폭로와 선전선동으로 박근혜의 모순을 위기로 바꾸려해야 한다. 박근혜가 필연적으로 맞게 될 정치 위기를 이용해 현장과 거리에서 실질적 투쟁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 위기에 대한 급진적 대안도 선전해야 한다. 


정리하면, 개혁주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반우파 공동 투쟁 건설에 나서도록 하면서도, 독립적이고 효과적인 비판과 대안을 설득력 있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각주:4]. 노동운동의 정치적 지도력을 재구축하고 걸맞는 정치 구조물을 세우는 일도  중 하나다. 


※ 이 글은 일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96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1.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는 관련 주제를 다룬 이 블로그 글을 검색해 읽어 보시오. [본문으로]
  2. “일부가 희생되더라도 성장이 우선해야 한다”는 쪽은 36.8%였다. 비슷한 설문을 포함한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 준다. 성장 담론이 힘을 잃었다고 할 순 없지만, 예전처럼 일방적 힘을 발휘하지는 못 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투쟁만이 과제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대중투쟁의 힘을 보유한 조직 노동운동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본문으로]
  4. 경제 위기 시대에 맞서는 투쟁의 초점 구실을 할 수 있는 행동강령 같은 것을 내놓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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