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더니, 취임 한 달 만에 박근혜 정부의 꼴은 한 2년은 지난 정부 같다.


장차관급 고위 인사들이 비리 혐의로 임명장도 받기 전에 벌써 일곱 명이나 짐을 쌌다. 정권 초 낙하산 인사가 활개쳐야 할 시기에 날개 없는 추락만 벌어지고 있다. 


<한국갤럽>가 최근 실시한 국정수행지지도는 44퍼센트로 취임 첫 1분기 지지율로는 역대 최저다임기 초 네 명이나 장관급 인사가 낙마하고, 그 결과 임기 초 지지율도 역대 최저였던 이명박 때보다도 못한 것이다.


법무차관 사퇴로까지 번진 별장게이트 의혹을 두고는 청와대와 검찰, 경찰이 불협화음을 내며 서로 책임 전가를 하기 바쁘다.


이처럼 지지층에는 금이 가고 있고, 집권당과 국가기구는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리며, 청와대에선 이를 두고 공직기강을 다잡겠다는둥 이전투구 조짐도 보인다.


이러니 새누리당은 서울 노원 병 보궐선거에 ‘거물급 인사’를 전략 공천하지 못했다. 물론 안철수가 당선해 야권을 분열시키기 바라는 속셈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승산이 없다고 다들 출마를 기피한 탓이 더 크다. 정권 초기 선거에서 집권당의 이런 무기력함은 시사적이다.


결국 일곱 번째 낙마가 일어나자, 친박계인 새누리당 대변인 이상일마저 “청와대는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친이계들도 곳곳에서 날선 비판을 날리고 있다.


이처럼 예상보다 빨리 정치 위기가 찾아왔지만, 박근혜를 괴롭히는 위기의 요소들이 충분히 무르익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위 권력층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던 별장게이트 수사는 주춤하고, 새누리당 안의 청와대 책임론은 실무진 책임론으로 빗겨가고, 개별적 반발들에도 여전히 박근혜 거수기 노릇을 한다. 진보진영의 저항도 아직 두드러진 것이 없다.


이명박이 첫해에 레임덕 위기에 빠진 것을 지켜 봤던 박근혜는 임기 초 위기에 한층 더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것은 더 강성우파들이 전면에 포진할 거라는 뜻이다.


이동흡이 낙마한 헌법재판소장 자리엔 우파 기질로는 이동흡과 막상막하인 박한철을 내정했다. 2008년 촛불운동 때 대검 공안부장으로 강경 대응을 지휘했던 그는 필명 ‘미네르바’를 구속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퍼센트 변호 집단인 김앤장에도 몸담았다.





또 방송통신위원장에는 측근 이경재를 내정했다. 그것도 방송 장악 음모라는 반발 때문에 한달이나 지연된 정부조직법이 가까스로 통과한 직후에 말이다. 박근혜 스스로 ‘어떠한 사심도 없다’던 대국민 담화를 단번에 뒤집어버린 것이다. 비록 낙마했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평을 들은 공정거래위원장 인사도 그런 케이스였다.


이제 박근혜는 국가기구를 단속해 손상된 국정장악력을 회복하고, 우파 결속을 강화하려 한다. ‘국가 기강 세우기’를 내세우는 까닭이다. 이것은 한편에선 사정 정국을, 한편에선 ‘반국가·반헌법’ 세력인 종북세력 마녀사냥 몰이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위기의 수준 때문에 봉합은 할 수 있지만, 위기의 요소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위기의 주된 책임이 박근혜 본인에게 있다. 복지 공약 먹튀에 서민 증세 계획, ‘부패’·‘우파’ 코드 인사 등으로 신뢰의 위기, 즉 통치의 정당성 위기를 불러 온 당사자는 박근혜다.


또 역대 정권 중 임기 초 사정 드라이브가 효과를 본 것은 김영삼과 김대중 뿐이다. 집권 당시 지배계급 내 소수파였던 이들의 국가기구 내부 숙정이 군부와 민정당 기반의 옛 지배세력 솎아내기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특히 김영삼은 하나회와 재벌을 공격해 크게 지지를 받았다.


이 둘은 모두 임기 초 지지율이 70퍼센트가 넘었다. 사정 정국을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할 기반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지지율이 취약하지만, 무엇보다 사정 대상이 돼야 할 보수적 국가관료와 재벌들이 자신의 핵심 기반이다. “걸레경연대회”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박근혜 인사가 복마전이었던 것도 인적 기반이 박정희 시절부터 국가와 사회의 최상층부에서 군림해 온 주류 지배자들이기 때문이다. 전관예우와 회전문 인사 등은 이들의 부패한 연결망을 얼핏 보여 준 것이다.


따라서 감사원,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을 동원한 전방위적 사정 정국은 자칫 자신의 핵심 기반을 건드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에겐 우파 결속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결국 박근혜의 공직기강 다잡기는 ‘이명박 측근 몰아내기와 색깔 지우기’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MBC 사장 김재철 해임처럼 말이다. 부패 척결은 애초 목적도 아니다. 4대강 공사 수사 가능성도 있다.


별장게이트만 해도 벌써 이 사건을 유야무야 덮어버리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 사건에 검찰, 경찰은 물론이고 감사원, 국정원 등의 고위층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치 위기의 근본 배경에는 경제 위기 심화 조짐이 있다. 가까스로 임명장을 받은 경제부총리 현오석은 첫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7분기 연속 전기 대비 0퍼센트 대 저성장 흐름을 계속하고 있다”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여기에 북한 핵을 빌미로 한 동아시아 군사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그동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커져 왔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을 추구해 온 한국 지배자들조차도 지금의 대외 환경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미일 동맹 강화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의 우경화는 대중의 반감 때문에 한국 지배자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박근혜는 이런 위기들 때문에 지배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겨서, 자신의 통치 기반이 약화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좌파를 희생양 삼아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키고, 지배계급의 우파적 결속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통치 방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여기엔 앞으로 경제 위기가 더 심해지고 고통전가 정책이 펼쳐질 경우, 그 불만이 진보정치 세력들의 성장으로 수렴하는 것을 선제 예방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민주통합당의 협조로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새누리당 의원 김태흠은 ‘종북 당은 해산해야 한다’며 자격심사안의 본심을 드러냈다.


강성우파로 육군 대장 출신인 새 국가정보원장 남재준은 “안보 수사는 … 북한의 의도도 잘 아는 국정원이 하는 것이 능률적”이라고 국정원의 국내 수사권을 옹호했다.


아니나 다를까, 3 26일 박근혜가 ‘사이버테러 위기 대응이 분산돼 있으니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자마자, 새누리당은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핵심 내용은 국정원의 민간 수사 권한을 더 크게 강화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우파 본색으로 위기의 돌파구를 열려고 하는 지금,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 운동의 저항 여부일 것이다. 아쉽게도 민주노총 선거에서 보듯, 노동운동의 지도력 위기가 진행중이다.진보정치 세력들도 각개약진 중이다그럼에도 진보진영은 특정 사안을 두고 협력할 수 있다. 


변혁 좌파는 과장도 회피도 하지 말고, 박근혜의 위기와 모순을 폭로하며, 원칙있는 단결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떠한 단결, 어떠한 혁신이 필요한지 등 올바른 투쟁의 과제와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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